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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나는 소호의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내심 침음성을 흘렸다.
‘으음….’
행성을 에워쌀 정도로 거대한 붕조의 모습이 본디 소호의 모습이지만 지금은 자신의 옥좌이기 때문인지 크기를 많이 줄였다. 그러나 지니고 있는 광대무비한 절대적 마력은 전혀 시들지 않았으며 나는 그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전신이 저릿저릿하게 위압당하는 걸 느꼈다.
소호의 날개 깃털이 한 번 움직일 때마다 촤라랑 하며 칠색의 빛이 광자가 되어 허공에 흩날리는데 그 때마다 마치 차원이 떨리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저 현상이 얼마나 가공할만한 것인지 실감하고 있는 나로서는 순식간에 뭔가를 깨달을 수 있었다.
‘멀었어.’
이게 바로 진짜 우주적인 힘을 지닌 존재!
아무것도 몰랐고 힘도 없던 때와는 달리, 지금은 어느 정도 강해졌기에 소호의 진짜 위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방금 전 해신과 어느 정도 맞서싸웠을 때 느꼈던 자신감.
이제는 이 세계의 [신]에게도 칼을 댈 수 있을 정도로 강해졌다는 자부심이 소호의 본체를 마주하는 순간 대번에 현실을 인식하게 되었다.
격(格)이 다르다.
지난 생에 어마어마한 규모의 전쟁을 치르는 바람에 삼황오제라는 존재들, 그 중에서도 오제가 별 거 아닌 거라는 착각이 들었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아직도 내 힘은 삼황오제의 일좌에 비하면 발톱의 때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신의 계보 중에서 말단에 불과한 해신과 맞서싸웠다고 소호 앞에서 자랑스러워하기에는 너무나 격이 다른 존재라고 할 수 있었다.
…해신과 달리, 소호금천은 죽었다 깨어나도 지금의 힘으로는 도저히 일대일로 이길 수 없다. 동료들의 힘을 다 모은다 해도 당장은 불가능하며 최소한 수백여 년 동안 불철주야 힘만 키워야 하리라.
이래서야 언제 황제에게 도달할 수 있지?
내가 입술을 꾹 깨물고 있을 때 소호금천이 조류의 눈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말했다.
[대답이 늦군. 허나 재밌는 놈이니 그 무례를 한 번은 용서해 주마.]
“…….”
[네가 내 권능을 함부로 쓴 놈인지 물었다.]
그 말에 나는 번뜩 하고 현실을 환기했다. 지금 너무 갑작스러워서 상황파악이 잘 안 되었지만 상황은 명백하다.
지난 생에 [매듭]에서 얻었던 소호금천의 권능인 안구광선. 이번 생에 그 광선을 소호금천이 내게 준 적이 없었지만 인과율이 연결되어 있기에 소호금천의 힘만이 빠져나오게 된 상황인 것이다. 그래서 소호금천은 내게 함부로 권능을 쓴 이유를 물으려고 나를 소환한 것이리라.
‘젠장. 정신차려….’
나는 지금 황제 공손헌원의 환영에 매달릴 때가 아니라고 느꼈다. 지금 당장 소호금천을 설득시키지 못하면 이 자리에서 바로 신적 존재에게 수천년간 고문만 당할 가능성도 있다. 필멸자와 달리 불멸자는 영혼을 속박하여 갖고놀 수 있었으므로 함부로 개기면 큰 후환이 올 수 있었다.
나는 공손하게 포권을 하며 소호금천에게 말했다.
“그렇습니다. 저는 백웅이라 합니다. 위대한 소호금천을 뵈어 영광입니다.”
그러자 소호금천이 조류의 눈을 데굴하고 굴리더니 대꾸했다.
[첫 대면일텐데 내가 소호 금천이란 걸 알고 있군.]
한 번 찔러오는건가?
원래라면 여기에서 위기감을 느껴야 하겠지만 나는 왜인지 크게 긴장이 되지 않아서 아무렇지도 않게 그 말을 받아쳤다.
“소호금천을 찬양하라!! 아무려면 위대하신 분의 권능을 그 정체도 모른 채 빌려올 수 있겠사옵니까? 우주에서 가장 위대한 군주를 이렇게 뵙게 되어 감격의 마음이 실로 심장에서부터 차오르고 있나이다.”
살짝 아부를 해 볼까!
[흐음… 그러냐…. 그렇다 치자.]
소호 금천이 기분이 좋은지 자신의 부리를 살짝 떠는 것 같았다.
[말을 잘 하는 녀석이구나.]
“헤헤헤.”
[하지만 그것과 인과적 상관관계는 별개의 이야기지.]
“…….”
내 표정이 약간 굳어지자 소호 금천이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 허락이나 동의없이 이미 술수의 인과율이 이어져있는 건 이해하기 힘들군. 하물며 그 눈알광선은 내가 만든 적도 없는 술법인데 말이야.]
나는 뜻밖의 말에 흠칫하고 놀랐다.
“…네? 만드신 적이 없다고요?”
이, 이건 예상 밖인데?
아니 그렇게 되나?
그 눈알 광선은 [매듭] 안에서 즉흥적으로 소호가 내려준 권능이였으니 현실세계에도 그런 게 존재하리란 보장은 없는 거구나…!!
[크큭…. 재밌지 않으냐.]
소호 금천이 살짝 한쪽 날개를 홰치더니 안광을 흘렸다.
[만든 적 없는 술법으로 멋대로 인과율을 얻어 삼황오제의 힘을 강신시키는 존재라…. 유사 이래 너같은 존재는 없었다.]
“…….”
[좋아…. 그럼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지. 너는 왜 그 힘을 가지고 해신과 싸웠느냐?]
“…그건.”
나는 소호금천의 질문에 잠시 생각을 했다.
‘해신의 갑작스러운 습격이 내 생각보다 훨씬 강하고 빨라서 제대로 대응할 방법이 없었기에 본능적으로 가장 강력한 힘을 쓸 수밖에 없었다…. 제길, 이건 빠르게 튀지 않은 내 잘못이군.’
원래 생각대로라면 적당히 놀려주고 바로 비등을 써서 튈 생각이었다. 그런데 분노한 해신이 내게 기습을 날리는 순간 모든 순간이동능력이 차단되었고 피하거나 막을 방법이 다 사라졌던 것이다. 해신의 역량을 내심 얕잡아본 게 실수였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걸 구구절절히 다 얘기해봤자 소호금천이 관심있게 들을 리도 없었고, 그가 듣고 싶은 건 이런 내 개인사정이 아닌 다른 것이리라. 그 요점을 간파한 나는 손을 비비면서 입을 열었다.
“해신이 너무 까분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놈을 해치워서 명성을 얻고 싶었습니다.”
[호오. 까분다라? 너는 어디서 그런 이야기를 들었느냐?]
“저도 나름대로 신들의 세계에서 주워듣는 것이 있는 놈입죠. 그리고 해신이 흉신을 등에 업고 날뛰어서 모두가 싫어한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우연히 이 술법을 얻은 김에 소호 님의 위광으로 놈을 토벌해서 세상에 도움을 주려 했습니다.”
당연히 거짓말이다. 괜히 내 개인적인 내면사정을 구구절절히 말해봤자 소호금천이 더 캐묻게 만들 뿐이었으므로 기왕 이렇게 된거 끝까지 아부를 하는 쪽으로 가야겠다!
그리고 내 말이 어느정도 먹혀들었는지 소호금천이 재밌다는 듯 말했다.
[명성이라, 결과적으론 그렇게 되었군. 다들 네가 어떤 놈인지 궁금해하여 여기로 오고싶어 하고 있다.]
“……네? 오고 싶어 한다니.”
[크큭….]
소호금천이 가볍게 웃었지만 나는 그 순간 등줄기에 소름이 쫘악 끼쳤다.
‘오제(五帝), 아니 삼제! 그 자들에게 내 존재가 쫙 퍼졌구나! 지금 이 곳에 화신을 보내서 직접 나를 보고싶어 하는 거야!!’
‘다들’이라고 하는 건 아마 전욱과 제곡일 것이리라!
본의아니게 거짓말이 현실이 된 걸 보고 내가 내심 당황하고 있자 소호금천이 말했다.
[뭐어…. 걱정 말거라. 네가 충분히 흥미로운 놈인 건 사실이니 다른 놈들에게 쉽게 보여주는 건 아까운 일이지.]
“그 말씀은….”
[다른 놈들에게 네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 암중모색으로 네 정체를 알아내는 것까지는 어쩔 수 없으니 주의하도록.]
“네, 네입!”
소호금천은 내 정체를 숨겨주기로 한 모양이었다. 나는 십년감수했다고 생각했고 소호금천의 말이 이어졌다.
[대신 이렇게 된 이상 너는 내 사도가 되어주어야겠다.]
“네?!”
[싫나? 싫으면….]
소호금천의 눈에 기광이 흐르면서 천천히 부리를 벌리는 것을 본 나는 급히 무릎을 꿇고 절하면서 외쳤다.
“소호금천 만세만세 만만세! 사도가 되고말고요! 당장 시켜 주십쇼!”
이건 교섭할 여지도 없다. 안한다고 하면 이 자리에서 타죽고 30번째 삶이 시작되리라!
[흐흠. 종잡을 수 없는 녀석이군. 흉중에 복잡한 생각을 하는 건 분명한데 겉으로는 이토록 멍청해보이다니. 인간세계의 간웅(姦雄)이라 불린 녀석들이 이러했던가.]
“…….”
[좋다. 백웅 너를 내 사도로 임명하노라.]
소호금천이 슥 하고 한쪽 날개를 흩뿌리자 은빛의 날개 하나가 둥실 떠올라서 내게 날아왔다. 별로 빠른 속도는 아니었지만 잠시 후 내 팔뚝에 꽂힌 은빛의 날개는 이윽고 흡수되어 사라졌다.
‘뭘 한 거지? 이게 사도임명의식인가?’
내가 어리둥절해서 내 팔뚝을 내려다보자 소호금천이 흥미롭다는 듯 말했다.
[오호…. 사도로 활동하는데 필요할 마력을 조금 줬는데 미량이라고는 해도 받아들인 티도 나지 않는단 말인가? 인간이었다면 대마도사라고 해도 당장 육체가 강대하게 변이할 텐데.]
“……!!”
[재밌군…. 이미 마력의 덩어리라는 건가…. 크큭…. 역시 보통 인간은 아닌 듯 하구나.]
아 제기랄! 뭔가 또 꼬였나!
내가 긴장해서 얼어있자 소호금천이 말했다.
[긴장할 필요 없다. 첫 번째 임무는 그리 어렵지 않을 테니까.]
“이… 임무요? 일을 해야 합니까?”
[뭔가 문제있나…?]
“소호금천 님은 일하기를 싫어하시는 주의라고 알고 있었는데….”
그러자 소호금천이 무슨 말을 하냐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나는 그렇지. 그러나 내가 일을 안 하는 만큼 부하들은 일을 해야 할 게 아니냐.]
“…….”
[나를 위해서 일해라.]
이런 나쁜 닭새끼….
내가 내심 욕을 하고 있을 때 소호금천이 말했다.
[첫 번째 임무는 바로 요순(堯舜)의 행적을 찾아내어 내게 보고하는 것이다.]
“요순? 오제의 일인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잘 알고 있군. 요순은 현재 실종된 상태다.]
“음….”
[얼마 전부터 이 세계에 이변이 일어나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그 이변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우리 편이 하나라도 많을수록 좋지. 허나 요순의 만신전은 차원이 닫혀있고 누구도 들어갈 수 없는 상태가 되었으니, 네가 그 행방을 찾아오도록 해라.]
나는 소호금천의 말에 상황을 알아챌 수 있었다.
‘요순을 찾아내라고…. 하지만 요순은 본디 옥황상제로 변신해 있었다가 어느 순간 내 천암비서 때문에 존재가 사라졌다.’
다만 얼마 전 천암비서 내부에서 창힐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 적이 있었는데 그건 대체 뭣때문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일단 나는 요순이 천암비서 내에 있다고 생각했으나 이걸 곧이곧대로 말해주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말해줘봤자 천암비서를 뺏으려고 밖에 더 하겠는가?
하지만 달리 말하자면 이미 행방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찾는 시늉만 하고 있으면 소호금천 밑에서 대충 시간을 때우기에 아주 좋은 임무라고도 할 수 있다. 나는 조심스러운 말투로 포권하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꼭 찾아내겠습니다.”
[좋아…. 그럼 오색조. 녀석을 지상으로 데려다주어라.]
그러자 옆에 서 있던 오색조가 오색의 날개를 나풀거리며 내 쪽으로 다가왔다. 나는 문득 이상함을 느끼며 말했다.
“오색조 님은 제곡의 황후가 아니십니까? 어째서 서방상제 소호님이 계시는 이곳에….”
[…….]
오색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도리어 뒤에 있던 소호금천이 말했다.
[나와 제곡은 임시로 비밀동맹을 맺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오색조가 유능한 편이라 잠시 내 밑에서 일을 돕게끔 교환을 했지. 그 정도만 알고 있어라.]
“교환이라면….”
내가 뭔가 말하려 했지만 오색조가 그 순간 나를 무섭게 째려보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오색조의 말이 내 뇌리에 파고들었다.
[소호 님의 심기를 거스르지 마라. 너를 좋게 보고 있으셔도 없애는 건 한 순간이니까!]
“…….”
확실히 여기서 정보를 더 캐내려 하면 오색조가 아니라 소호금천에게 죽을 것이다. 내가 입을 다물자 오색조가 홰를 쳤다.
[그럼 가겠다.]
파아앗 -
나는 다음 순간 현실에 되돌아와 있었다. 전투의 여파로 폐허가 된 해적섬이었지만 이젠 해신족들의 시체만 근해에 둥둥 떠다닐 뿐 완전히 평화로운 정적이 감돌고 있었다. 그리고 오색조가 내 앞에 떠올라서 말했다.
[신들의 비밀에 대해 아주 잘 아는 놈이구나. 네가 실력있는 놈이라는 건 인정하지만 입조심하는 게 좋을 것이다.]
“아니 그게….”
[위대한 신격 모두가 이변을 느끼고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다. 알량한 재주를 믿고 까불면 화를 면치 못하리라.]
파앗!!
오색조의 경고가 끝나자마자 모습이 사라져 버렸다. 나는 그 경고에 가시가 돋쳐있긴 했지만 일리 있는 경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변이라…?’
확실히 이번 생은 뭔가가 다르다는 느낌이 든다. 아직 그다지 보물의 회수를 많이 진행하지도 않았는데 급격히 상황이 변하고 있다. 이 격렬한 흐름 속에서 제대로 중심을 잡으려면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반복해야 하리라.
“백웅 님!!!”
그 때 저만치에서 나를 발견한 듯 서문혜가 달려오는 게 보였다. 나는 서문혜에게 상황설명을 해 주었고, 내 이야기를 다 들은 서문혜가 말했다.
“그랬군요. 소호금천의 사도가 되셨을 줄은….”
“내가 너무 경솔했소. 미안하오.”
“아닙니다. 어찌보면 백웅 님의 긴 전생 중에서 언젠가 한번은 했을 일이 아니겠습니까? 게다가 이걸로 또 한 가지 이득을 얻을 수 있었지요.”
“이득?”
내 반문에 서문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백웅 님의 이번 생의 목적은 황제 공손헌원의 봉인여부를 알아내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소호 금천의 사도가 되었다는 건, 어찌보면 그 목적에 굉장히 빠른 지름길을 찾아냈다고 할 수도 있지요.”
“아…!!”
그렇구나!
‘소 뒷걸음치다가 쥐잡은 격이긴 하지만….’
삼황오제의 사도가 되어 그들의 신뢰를 얻다보면 황제 공손헌원의 이상에 대해서 빠르게 알아낼 수 있으리라!
“자세한 건 저보다 똑똑한 책사들과 의논해야겠지만 저는 나쁘다 보지 않습니다.”
“그렇구려.”
“백웅 님. 이젠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나는 잠시 곰곰이 생각하다가 말했다.
“수요의 수기 때문에 머지않아 수재(水災)가 일어날 것이오.”
“네, 그렇지요. 원래는 그 때문에 수기를 천계에 공양하셨지요.”
“그래서 망량을 찾아갈까 하는데….”
그러자 서문혜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됩니다.”
“망량에게 기억을 줄 수 없어도 대화로 설득하면….”
“천우진이 문제입니다.”
“천우진?”
이어진 서문혜의 말에 나는 당혹했다.
“지금 백웅 님의 마력을 보면 그는 전력을 다해서 백웅 님을 토벌하려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상황을 옆에서 망량선사가 뻔히 보고 있을 텐데 과연 감당하실 수 있겠습니까.”
“……!! 천우진은 나한테 충성을 바쳤….”
“지난 생의 일이지요. 흑요석을 넘겨주면 그 충성이 계승될지도 모르지만 천우진이 지금의 흑요석을 받을 리가 없습니다. 어찌되었든 현재 백웅 님의 마력은 절대 인간의 수준이 아니니까요….”
이, 이런. 그런 문제가 있었던가.
‘천우진을 지난 생 막바지에 동료로 만들었다 생각해서 그건 생각지도 못했는데….’
무력적으로 500년 후의 천우진은 절대 못이긴다. 나는 죽었다 깨도 전 인류를 환술 한 번에 봉인하고 황제 공손헌원을 상대로도 버티는 망량선사의 사도를 이길 순 없다.
허나 현재의 천우진을 못이기는 건 아니다. 천우진의 술법이 성가시긴 하지만 예전에도 이미 상대할만 했었고, 뜻밖의 강력한 환술만 조심한다면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상대다. 그러나 당연히 그 마을에는 망량선사도 같이 있으므로 잘못하면 제자를 공격당한 망량선사가 나를 조질 수도 있는 것이다.
아니….
망량선사부터가 나를 경계해서 바로 죽이려들 수도 있지 않을까?
“…….”
생각보다 더 일이 꼬여있는 걸 확인하자 나는 멍해져서 입을 벌렸다. 내가 멍하게 있자 서문혜가 말했다.
“하지만 수요의 수기는 처리를 해야겠지요. 선량한 민초들이 고통 받는 건 두고 보실 수가 없겠지요.”
“다른 방법으로 천계에 접촉해야겠소?”
“아닙니다. 어떤 식으로든 천계에 접촉하게 되면 천계가 백웅 님을 경원시하거나 적대할 수 있습니다. 삼황오제의 사도인데다가 어마어마한 마력의 소유자인 백웅 님께서 수기를 공양하겠다 하면 마치 강도가 칼을 들이밀며 적선하는 듯한 느낌이 들지 않겠습니까?”
“…….”
너무 맞는 표현이라서 할 말이 없다.
“지금만 해도 일이 꼬여있는데 그렇게 되면 너무 꼬이게 되겠지요.”
“확실히…. 투선이 출동해서 나를 팰 수도 있을 것 같소.”
“…….”
서문혜가 잠시 내 눈치를 살피다가 입을 열었다.
“백웅 님. 이렇게 된 이상 이번 생에 천계의 공양은 포기하고 직접 흡수하십시오.”
“직접 흡수하라고?”
고개를 끄덕인 서문혜가 말을 이었다.
“수기를 흡수하여 수신기(水神器) 바루나에 공양하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바루나의 화를 푸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