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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나는 눈이 검어진 이유가 틀림없이 암기(暗氣)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아무리 멍청하더라도 그 정도 추측은 할 수 있다.
‘제길. 어디서 틀어진 거지?’
소환진과 소환수의 강화도 틀림없이 내 마력같은 게 강해졌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내 마력이 강해질 이유가 어디 있었단 말인가?
‘…짐작이 잘 안가…. 지난 생에 막판까지 정신없이 왔다갔다만 해서….’
오히려 각을 잡고 열심히 수련한 건 거의 대부분 무공 쪽이었고 마법이나 마도는 아예 보지도 않았다. 무공을 수련해서 더 나아지겠다는 강한 열망이 있었기에 무공부터 신역의 경지에 올리려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뜬금없이 마력이 강해지다니?
아니,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원인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난 생에 너무 많은 일이 스쳐지나갔기에 그걸 지금 하나하나 되짚기에는 억측에 불과할 뿐이다. 나는 혼란스러움을 잠시 후 진정시키고는 심호흡을 했다.
“후우우….”
생각을 바꿨다.
‘원래라면 이쯤에서 제갈사를 찾아갔겠지만…. 관두자.’
왠지 이 정도로 마력이 강해졌다면 내가 어느 정도 마력을 낮출 방법부터 찾는 게 맞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제갈사에게조차도 큰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자 지금 제갈사나 망량을 찾아가지 않고 나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되짚어보았다.
“…….”
그 순간 나는 예전에 제갈사를 찾아갔던 일이 생각났다. 그리고는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지는 걸 느꼈다.
[그것들은 마력(魔力)에 극성의 성질을 갖고 있군. 내가 만지면 즉시 뇌전에 타 죽을 것이다.]
사대신기(四大神器)…!!
나는 사대신기가 마력에 극성이란 걸 떠올리자 즉시 눈을 감고 사대신기를 떠올렸다. 그리고는 머릿속에 떠오른 네 개의 원 중에서 백색의 원을 향해 손을 뻗었다. 백색의 원에는 뇌신기 바즈라가 있었다.
‘바즈라를 이용해서 내 마력을 억제해 보자….’
그냥 손에 쥐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효력이 있지 않을까?
나는 그런 생각으로 백색의 원에 손을 집어넣었지만 그 순간이었다.
파지지지지직!!!
“흐아아아아아아아아악!!”
나는 전신이 구워지는 고통과 함께 즉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정작 바즈라는 손이 아파서 꺼내지도 못했으며, 실제로 내 몸에는 뇌전 때문에 불이 붙어 있었다.
화르륵!!
“아아아악!! 으아악!!”
나는 비명을 질렀다. 산 채로 몸이 타는 고통은 지난 생에 겪은 것만큼은 아니지만 무지막지한 게 틀림없었다. 나는 까무러치기와 깨어나기를 반복하면서 생살이 타는 냄새를 맡아야 했고, 잠시 후 내 몸에 붙은 불이 조금 꺼지는 걸 느끼자 바로 근처의 강물에 달려가서 뛰어들었다.
풍덩
슈아아악
강물이 순식간에 증발해버리는 게 현실 같지가 않다. 염신기 아그니도 아니고 뇌신기에서 파생된 불꽃일 뿐인데 벌써 강물이 2할은 말라버린 것 같았다. 나는 이대로라면 강물이 통째로 사라질 거라는 걸 예감하고는 잠시 통증이 사그라진 틈에 거대한 기력을 끌어올려서 전신에 호신강기를 쳤다.
후와아악!!
후와아악!!
연속해서 호신강기를 안에서 바깥으로 뿜어내는 극심한 소모방식! 보통의 무인들이라면 절대 하지 않을 이 비효율적인 방식을 몇 번이고 반복하자 기력에 반응했는지 점차 바즈라의 불꽃이 사그라지는 게 느껴졌다. 나는 바즈라의 불꽃이 사그라지자 파김치가 되어서 간신히 강물에서 기어나왔다.
“헉… 허억….”
나는 녹초가 된 상태로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틀림없어…. 이건… 마력이 극대화되어 있는 거야.’
마력의 극성인 사대신기가 내 손도 못 대게 할 정도로 내 안의 마(魔)가 들끓어오르고 있다는 증거다.
‘그렇다는 말은 지금은 사대신기를 하나도 못 쓰게 되었단 소리인가? 바즈라 뿐만 아니라 다른 사대신기도 마찬가지일 게 분명한데….’
이, 이건 너무 큰 손해인데?
나는 암울한 마음에 멍한 표정을 지었다. 사대신기가 실질적으로 [옛 지배자]를 상대로 써볼만한 최강의 무기였는데 이렇게 되면 봉인된 거나 마찬가지지 않은가? 나는 이 문제가 예상보다 심각하다는 걸 느꼈다.
‘…모르겠다. 방금 그 개지랄을 했지만 내 마력이 줄어든 건지 감이 안 잡혀.’
나는 당장이라도 제갈사에게 달려가고 싶은 충동을 느꼈지만 일단 참았다. 왜인지 지금 제갈사한테 가봤자 뻔한 대답밖에 못 해주리라는 감이 온다. 제갈사를 찾아가려면 나 혼자서 뭔가 단서라도 잡아놓고 움직여야 효율적일 것이다.
무엇을 해야 할까.
무엇을 얻으면 이 사태에 단서를 얻을 수 있을까.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서문혜부터 구하자….”
예전에는 제갈사나 망량을 만나는 일이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기에 순서를 조금 바꿔서 책사부터 보고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 얻어야 할 보물을 다 얻은 게 아니니 일단 보물부터 다 얻고 나서 움직여도 늦진 않으리라. 또한 보물을 얻는 와중에 단서를 얻을지도 모르지 않은가?
파앗
나는 곧장 서문혜가 있는 해적섬으로 향했다. 해적섬의 포로들이 갇혀있는 곳에 들어가자 폐인이 되어있는 서문혜의 모습이 보였고, 나는 그녀의 의식을 되찾게 하려고 금천제령대법(禁天制靈大法)을 푸는 침술을 평소처럼 시전하려고 했다.
그러나 첫 장침을 꽂는 그 순간.
“아… 으으… 으아아….”
서문혜의 입에서 뜻밖의 괴성이 흘러나왔다. 여태껏 한 번도 없었던 일이었기에 내가 흠칫하고 있을 때 서문혜의 내면에서 갑작스럽게 거대한 힘이 격발되며 포효가 터져 나왔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
쿠콰콰콰쾅!!
후두두둑
내가 짧은 순간에 모든 기력을 동원해서 서문혜와 나를 둘러싼 방어막을 친 덕에 다른 포로들이 죽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는 내 기력을 총동원한 방어막으로도 서문혜의 포효를 완전히 막을 수 없어서 손이 저릿저릿한 걸 느끼고는 내심 놀랐다.
‘뭐지? 서문혜는 원래 지금 시점에서 절정고수의 상위수준 정도일 텐데 어디서 이런 힘이….’
설마 벌써 선조회귀로 거신의 힘을 되찾았다는 건가?
하지만 대체 왜 지금?
쿠구구구구
서문혜의 백발이 천천히 허공으로 떠오르며 어마어마한 괴력이 움트는 게 느껴졌다. 나는 결코 지금의 서문혜를 상대로 봐주면서 싸울 수 없다는 걸 직감하고는 이를 악물고는 재빨리 일검으로 지하감옥의 모든 창살을 베어버렸다. 그리고는 외쳤다.
“빨리 내 옆으로 와라!! 죽고 싶지 않으면!!”
슈슉
지하감옥의 모든 죄수들이 내 곁으로 오자 나는 재빨리 목갑 안으로 다 들어가게 했다. 그리고 내가 마지막 한 명을 넣은 그 순간 서문혜의 신형이 내 목전으로 쇄도해 왔다.
쿠콰콰쾅!!
가공할 힘을 담은 일장(一掌)! 나는 그 일 장을 쌍장으로 받아내었는데 화경을 겸했는데도 전신이 저릿저릿하고 울리는 걸 느꼈다.
‘이 정도면 이미 신승 명호대사가 전력으로 일장을 날린 것보다 더 강하군….’
말도 안 되는 힘의 폭주. 지금의 서문혜는 이미 현 시점의 백련교 호법사자보다 좀 더 강하다고 볼 수 있으리라.
나는 씩 웃으며 서문혜에게 말했다.
“진작 공격할 수 있었을 텐데 포로들이 끝까지 다 들어간 걸 보고서야 공격하는군. 아직 이성이 남아있는 거요?”
“우… 으으….”
그 때 서문혜가 잠깐 정신을 차린 듯 흐리멍텅한 눈에 이지가 되돌아왔다. 그녀는 혼란스러운 눈으로 더듬거리며 말했다.
“도… 도망쳐…. 내가… 내가 아냐….”
“알고 있소.”
“아냐…. 몰라…. 내… 내 안의 또다른 뭔가가… 다, 당신을… 죽이라고 하고 있어…!! 당신만은… 살려둘 수… 없다고…. 계속 말하고 있어….”
“…….”
그런가….
거신족의 피가 이미 나를 적대시하고 있나.
“도망쳐…!!”
서문혜가 피끓는 듯한 목소리로 외쳤지만 나는 무덤덤하게 대꾸했다.
“싫소.”
“왜….”
“서문혜. 당신은 모르겠지만 지난 생에 당신은 나를 위해 목숨을 걸어주었소. 당신의 아버지 또한 내게 부탁을 했소. 난 아직 그 빚을 갚지 못했으니….”
나는 서문혜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이젠 내가 당신을 위해 목숨을 걸 차례요.”
“아아아아아…!!”
다음 순간 폭주상태에 잠식된 서문혜의 일장이 재차 날아왔다. 그리고 그 일 장이 날아오는 걸 보는 순간, 나는 내 무공의 잠재력으로 정면에서 흘려내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제길… 엄청난데….’
방금 전보다 무려 세 배는 더 강력해 보였는데 이미 단순한 힘의 크기로는 인세(人世)의 무공을 초월한 듯 했다. 이미 내 내공으로도 감당이 안 되는 규모였으며 용비천도 이걸 막으려다 몸이 터져 죽으리라.
무쌍패(無雙覇)!
하지만 나는 그 순간 무위전변을 펼치며 음양의 패도를 펼쳐내었고 거대한 원이 내 후광처럼 스며드는 걸 느꼈다. 그리고 극한의 집중상태에서 펼쳐낸 무쌍패가 서문혜의 거대한 힘을 그대로 무화(無化)시키면서 초식이 산산히 흩어지는 걸 볼 수 있었다.
“……!!”
광기에 매몰된 서문혜조차 뜻밖의 일인지 잠시동안 멈칫거리는 게 보였다. 나는 이 허점이 최초이자 최후의 기회라는 걸 직감하고는 그대로 한 손에 선검을 소환해서 그녀의 명치를 향해 날렸다.
쿠콰쾅!!!
아직 나는 선검으로 불살(不殺)을 이룰 정도의 경지에 이르지 못해서 이 선검에는 태산도 부술 정도의 파괴력이 잠재되어 있다. 원래라면 인간의 육체에 펼치면 무조건 살육초식이 될 테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펼쳤다. 왜냐하면 절대지경의 고수가 되었기에 상대의 잠재력을 파악하는 역량도 상승했고, 이 정도로 세게 때려도 서문혜의 현재 방어력으로는 절대 죽거나 다치지 않으리라는 걸 파악했기 때문이었다.
퍼엉!!
“크… 아악!!”
내 예측대로였다. 짧은 폭음과 함께 서문혜는 전신이 뒤흔들리며 뒤로 튕겨져 나갔지만 약간 각혈을 했을 뿐 몸에는 미약한 상처조차 보이지 않았다. 거신족 선조회귀로 얻은 어마어마한 방어력은 내가 전력을 다해 갈긴 선검조차도 경상으로 막아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육체의 방어가 강하다 하여 기혈의 방어까지 강력할 순 없어.’
나는 서문혜에게 생겨난 빈틈을 타서 빠르게 접근하여 그녀의 단전에 손바닥을 얹었다. 그리고는 전력을 다해서 그녀의 기경팔맥에 뇌신류의 비전신공을 펼쳤다.
뇌신류(雷神流) 오의(奧義)
뇌정잠룡(雷精潛龍)
쿠르륵 하는 소리와 함께 내 기력이 뇌정으로 변환되어서 서문혜의 기경팔맥을 향해 흩어졌다. 본디 상대의 무공을 폐하기 위해 쓰는 봉인오의였고 상대를 폐인으로 만들려고 쓰는 악독한 오의였지만 나는 이게 도리어 이 상황에 맞다고 생각했다.
파지지직!!
서문혜는 뇌정잠룡에 당하자 더 이상 힘을 끌어내지 못하고 바닥에 엎드려서 뇌전에 감전당한 듯 뇌류를 흘려내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눈에서 혈광을 흘리고 있는 서문혜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본디 금천제령대법을 해혈해 줘야겠지만 지금은 반대로 하겠소. 지금 풀어주면 적토마를 초원에 풀어주는 것과 다를 바가 없으니 도리어 금제를 역이용할 거요.”
파바밧
나는 상회의 창고에서 훔친 금침 16개를 서문혜의 등쪽 요혈에 꽂고는 침을 통해서 기를 흘려내었다. 그리고 이미 그녀의 기경팔맥에 흩어놓은 뇌정과 내 기를 감응시킨 후 기존에 펼쳐져 있던 금천제령대법을 더욱 강화하되 그녀의 단전부터 봉쇄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우우우
“하아… 하아….”
금천제령대법의 기운이 강해지자 점차 서문혜의 눈에서 혈광이 사라졌고 이윽고 그녀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나는 간신히 서문혜를 제압하자 한숨을 쉬었다.
“후우… 음?”
파앗
나는 등 뒤에서 날아온 화살 열 발을 일수에 보지도 않고 잡아챘다. 초절정고수가 몰래 쏘아도 모자랄 판에 이따위 궁술로는 천 년을 쏘아도 나를 맞출 수 없는 것이다.
힐끔 뒤를 보자 해적들이 건물 입구 쪽에 잔뜩 몰려와 있었고 개 중 선두에 있던 놈이 환도를 겨누며 소리쳤다.
“저 새끼 뭐야!! 잡아서 족쳐!!”
“…….”
윽…. 뭐… 뭐야…. 마음이 흔들린다….
‘갖고놀고 싶다.’
나는 해적들을 보자 갑자기 살심이 들끓어오르는 게 느껴졌다. 원래도 해적들을 다 죽여버릴 생각이긴 했지만 그건 의협심과 연동되는 살심이었다. 그러나 지금 느껴지는 살심은 내 의지와 무관한 야만적인 본성에 가까웠다.
놈들의 목을 베고 팔다리를 분리시켜서 입 안에 쑤셔넣고 싶다.
공포로 물든 놈들로 시체의 산을 쌓아서 불태워버리고 싶다.
한놈한놈 눈알만 따로 떼서 터뜨리면서 놀고 싶다.
“윽….”
갖고놀아?
죽이면 죽였지 말도 안 되는 소리!!
나는 무인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잔혹하고 야만적인 충동 때문에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차라리 깔끔하게 일격에 목을 베어주는 게 옳지 이렇게 쓸데없는 잔인함은 본디 내 취향이 아닌 것이다. 인도(人道)를 벗어난 비인외도적인 충동은 내게 뭔가를 깨닫게 해 주었다.
‘마력의 영향이 점차 강해지고 있어.’
큰일났다. 이대로라면 뭔가 사고를 칠지도 모른다. 나는 빨리 상황을 해결해야하는 걸 느끼고는 전방에 있던 해적 한 놈을 노려보며 말했다.
“네놈들이 내 앞에서 얼쩡거리니까 쓸데없는 생각이 드는구나. 내 눈 앞에서 사라지게 해 주마.”
“크하하하!! 이 숫자가 보이지 않는거냐? 지금 내 뒤에도 동료들이….”
“안다. 한 몇백 명 되지?”
몇십 번 가까이 몰살시켜보니까 숫자도 대충 다 안다.
나는 지끈거리는 두통을 간신히 참으며 말했다.
“이런 건 내가 자주 쓰는 무공은 아니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구나.”
우우우웅!!
내가 기력을 장심에 모조리 집중시키자 빛의 공이 만들어졌다. 나는 파직거리며 빛나는 공을 손바닥에 흡수시키며 앞으로 뻗어내었다.
“극대(極大) 뇌령인(雷靈印).”
쿠우우우우우…!!
다음 순간 지하시설물은 물론이고 전방에 있던 모든 게 번쩍하는 빛과 함께 날아갔다. 내 전신내공을 순수한 뇌령인의 장법으로 바꾸어서 전력으로 전개한 것일 뿐이었지만 그 효과는 대단했다.
스스스스
나는 내가 날린 뇌령인 한 방에 지하시설물은 물론이고 전방에 있던 섬의 조그마한 언덕이 날아가고 그것도 모자라 맞은편의 해안까지 바닷물이 오 리 가까이 파여서 해양의 바닥이 드러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파직! 파직!!
아직도 번개의 기운이 남아있는 바닷물의 바닥은 마치 양쪽으로 절벽이 생긴 것처럼 그 안으로 바닷물이 침투해 들어오지 못했고 마치 바다를 갈라버린 듯한 효과였다. 나는 이 해적섬을 일 장으로 절반 가까이 날려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마 여기에 몰려왔던 수백 명의 해적은 흔적도 남기지 못하고 다 죽었으리라.
‘…다 죽지는 않았겠지. 평소에 해적선에 상주하던 놈들은 안 왔을 테니까.’
빨리 청소하러 가자!
뎅강 뎅강
나는 해적선으로 가서 남은 놈들을 수도로 쳐서 일격에 한 놈씩 목을 날려서 끝장냈다. 그리고 해적 청소를 끝낸 후 해적섬의 보물을 모두 수발한 후 기절한 서문혜가 깨어날 때까지 옆에서 기다렸다.
약 세 시진 후 서문혜가 부스스 자리에서 일어났다.
“으음…. 여긴…?”
나는 서문혜를 물끄러미 보다가 말했다.
“서문혜. 당신이라면 내 흑요석에 저항력이 있으리라 생각하오.”
다른 때라면 몰라도, 거신족의 선조회귀를 치뤄낸 그녀는 어찌보면 대마도사인 제갈사보다 더 저항력이 높은 존재일 것이다.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는 서문혜에게 대략적인 상황설명을 해줘서 설득한 후 그녀에게 흑요석을 건네주었다.
파아아앗
“……!!”
흑요석을 건네받은 서문혜가 흠칫거렸다. 그녀는 한동안 멍하니 있다가 갑자기 손바닥을 내밀었고, 그 손바닥 위에 시꺼먼 공이 생겨난 걸 볼 수 있었다.
“백웅 님. 이걸 보세요.”
“이건…?”
“백웅 님의 말대로 저는 지금 선조회귀를 한 차례 거친 덕에 거신족의 힘을 일부나마 통제할 수 있게 됐어요. 그리고 그 힘을 이용해서 제 몸에 침투한 사마(邪魔)의 기운을 몰아내어 한 곳에 집중시켰어요.”
“금천제령대법은….”
“제가 정신을 차린 순간부터 무의미해졌어요.”
“…….”
제갈유룡에게 듣기로 금천제령대법 또한 고대부터 전해져오는 강력한 비전대법인데 인간을 초월한 종족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건가….
“흑요석에 존재하던 사기를 집중시킨 결정체. 그게 바로 이 시꺼먼 구체입니다….”
“그 말은….”
후웅
서문혜가 시꺼먼 공을 해안의 절벽으로 던지자, 그 시꺼먼 공은 천천히 절벽 내부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잠시 후 시꺼먼 공이 닿은 부분에서 혼돈의 균열이 일어나더니 절벽 전체에서 사악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쿠구구구….
서문혜는 암울한 눈빛으로 내게 말했다.
“백웅 님은 지금 인간에게 흑요석을 주셔서는 안 돼요. 제갈사라고 해도 미쳐버릴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