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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1217화 (1,214/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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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사신지혼…?

묘한 그 단어가 내 마음속에 틀어박히는 듯 했다.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말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 대뇌가 두쪽 나는 듯한 격통때문에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고, 나는 모든 극기(克己)를 잊어버린 채 비명소리를 토해내었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악 - !!!”

아프다.

너무 아프다…!!

생살을 인두로 후비는 고통이라 할지라도 이보다는 덜할 것이다!! 무인으로 살아오며 온갖 고통과 부상을 다 입어보면서 고통에도 내성이 생겼다 생각했지만 역시 고통은 겪을수록 새로워질 뿐 익숙해지지 않는다. 지금이 내 인생에서 가장 중대한 시점이란 걸 뼈저리게 느끼고 있으면서도 그저 눈물콧물 쏟으며 고통스러워할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이 고통이었다.

“으아, 아아아아아악!!”

왜 아픈지 궁금해할 겨를도 없다. 그저 아프다. 내가 바닥을 구르며 내 광대뼈와 눈두덩을 정신없이 만지작거리고 있자 황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럴 수밖에 없으리라…. 업보를 이용한 능력…. 역천(逆天) 그 자체인 힘을 사용했으니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지….]

“허억, 허억. 으아아아아아아!! 아아아아!!!”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 거지?

왜 싸우고 있었던 거지?

관자놀이에 구멍을 뚫어서 혈관을 당겨내어서 쭉 늘어뜨리고 싶은 기분이 든다. 눈 코 귀를 차례차례 맨손으로 떼어서 내팽개치고 싶은 이유 없는 폭력성이 마음속에서 감돈다. 환향(幻香)이 맴도는 코끝에서 찡한 피냄새가 고이면서 내 눈동자에도 핏물이 차오르는 착각과 함께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우웩.”

극한의 고통 속에서 내가 결국 구토를 하자 황제의 나직한 목소리가 울렸다.

[니알라토텝. 결투의 승패를 판정하라.]

슈욱

구토를 해서 조금 정신이 맑아졌을 때 니알라토텝의 신형이 장내에 나타나는 게 보였다. 니알라토텝은 처음과 다를 바 없는 모습으로 싱글거리며 웃고 있었는데, 그는 묘하게 눈을 가늘게 뜨면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후후, 이거 참. 망량선사가 그만큼 판돈을 올리려 한 이유가 있었는 걸? 설마 이런 비장의 한 수를 감춰뒀을 줄이야.”

[원칙대로 할 생각이냐, 아니면 네 변덕대로 할 것이냐.]

“그것도 고민이로군. 어느 쪽이든 상관없거든…. 크큭.”

기분좋게 웃던 니알라토텝이 말을 이었다.

“우선 결투자가 제정신을 차리고 나야 판정을 내릴 수 있을 것 같군? 그럼 백웅이 반 각 이내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면 자동 패배로 하고, 정신을 차린다면 그 때 새로운 결론을 내려주지.”

[납득했다.]

동시에 황제와 니알라토텝의 시선이 내게 꽂히는 게 느껴졌다. 아직도 악몽같은 고통이 머릿속을 떠도는 도중에도 이성적으로 한 가지를 알 수 있었다.

정신차려야 해.

이기든 지든 이 싸움의 결말을 내야 한다….

여기까지 온 모두의 넋을 위해서라도….

“크윽… 으으윽…. 으극.”

나는 이빨을 갈아붙이며 억지로 일어서려 했다. 경혈 중에서 고통을 마비시키는 혈을 자극해서 최대한 진통효과를 내 보았지만 그걸로도 잘 먹히지 않았다. 나는 인생에서 겪어보았던 최악의 고통을 겪으면서 계속해서 혈관을 뜯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안 돼…. 보통 방법으론 절대 정신을 차릴 수 없는 고통이다….’

좌절하던 나는 결국 제갈사에게 들었던 극단의 비책을 쓸 수밖에 없었다.

[지통(持痛)을 멎게 하려면 격통(激痛)을 연속해서 오게 해야한다. 방법이라면 뭐 신체의 훼손이겠지. 특히 여기… 말이다. 여길 뽑아라.]

[그, 그런 엉터리 같은…. 손 치워! 내가 미쳤냐고. 왜 그걸 뽑아!]

[크큭. 결국 감각의 장난이지. 통증에 무엇이 더 반응하느냐 순서의 차이라면 뇌를 착각시키는 수밖에 없어. 이 방법을 쓸 정도라면 지옥의 고통일 테지만 부디 잘 기억해내길 바란다.]

…….

어차피 죽을 목숨 여기까지 잘도 왔구나….

어차피 죽을 거…. 조금만 더 고통스럽게 죽어볼까…!!

나는 잠시 몸에서 힘을 뺀 후, 내 손을 들어서 그대로 우악스럽게 눈두덩으로 쑤셔 박았다.

푸콱!

아무렇지도 않게 눈알이 손에 잡히고 천천히 빼내어진다. 신기하게도 제갈사의 말대로 극한의 고통이 한 차례 쏟아지자 방금 전까지 전신을 후벼파던 고통이 잠시나마 가라앉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니, 착각일 뿐이었지만 어쨌든 이런 미친 방법이 통한다는 게 다행이다.

부들부들

나는 내 한쪽 눈알을 손에 잡고는 서서히 통증을 딛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는 히쭉 웃었다.

“흐흐… 흐하하하…. 정신… 차렸… 어…. 결론을… 말… 해….”

잠시 장내에 침묵이 흘렀다.

[…….]

“호오, 꽤 마음에 드는군~ 이 전생자는 꽤 각오를 하고 왔나본데.”

황제는 침묵했고 니알라토텝은 한층 짙은 웃음을 띄웠다. 니알라토텝은 내 쪽으로 다가와서 내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했다.

“그 눈알 맛있겠는데 나 주지 않을래?”

미친 놈….

…아니, 나도 미친 건가….

나는 속절없이 광기에 물들어가는 걸 느꼈다. 그것은 비단 내 손으로 내 눈알을 뽑았기 때문이 아니라, 왜인지 방금 전에 썼던 기술 때문에 내 정신에 광기가 침입해 온 듯한 기분이었다.

그래서인지 평소라면 기겁을 할만한 제안에도 나는 그저 웃으면서 대꾸했다.

“내가… 이겼다고…. 말하면… 주… 지….”

“흐음. 그럼 안 되겠군. 편파판정은 재미를 깨니까.”

아쉽다는 듯 빙글 돌아선 니알라토텝이 입을 열었다.

“판정을 내리겠다.”

이어진 니알라토텝의 말에 나는 그만 힘을 잃고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이 결투는 황제 공손헌원의 승리! 축하한다~”

뭐라고…

이… 이럴수가.

[…….]

나는 쓰러졌지만 황제 공손헌원은 여전히 팔짱을 낀 채 침묵하고 있었다.

나는 그만 모든 고통을 잊고 턱을 덜덜 떨면서 니알라토텝에게 말했다.

“어… 어… 어째서….”

“하하. 뭐 네가 눈알을 안 줘서 삐졌다거나 그런 건 아니야. 지극히 합리적인 이유지.”

니알라토텝이 싱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무신(武神)의 힘을 쓴 것까지는 용납할 수 있는 선이지만, 너는 [가면]의 영역에까지 침범했다. 처음에 정해두었던 결투의 규칙을 위반한 건 바로 너다, 백웅.”

“…무슨… 말이냐….”

“흐음. 좀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줘야 할까? 안 그래도 지능 낮은 녀석이 고통 때문에 제정신이 아니니.”

곤란하다는 듯 중얼거린 니알라토텝이 나를 검지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네가 상상력으로 만들어내서 훔친 가면술. 반칙이야.”

“뭐….”

“외법(外法) 중의 외법이야. 큭큭큭…. 내가 이 옥좌의 공간에 걸어둔 제약을 무시하고 사용가능한 권능이라면 그럴 수밖에 없지만.”

“이해… 가… 안 돼….”

“그러니까 권능이라고.”

니알라토텝이 한층 싸늘하게 웃었다.

“나는 무공으로만 싸우라고 했었다. 그런데 넌 권능을 썼다. 그러니까 실격. 간단하지 않나?”

“…….”

권능이라고…?

‘상상절도가 권능?’

그, 그럴 리가 없어. 그저 상상력으로 가면을 훔친 것뿐인데 이게 어째서 무공이 아니라 권능이란 말이냐.

이건 내가 개발해낸 나만의 힘이야.

그런 소리 들을 게 아니라고…!!

나는 나도 모르게 버럭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아냐!! 이건 무공이야!! 만상지투를 써서 훔친 건데 왜 아니란 말이냐!”

“호오…. 그래? 그러면 어디 투표를 해 볼까.”

“투표?”

“나는 권능이라고 본다만 애매한 점은 확실히 차고 넘치니까 결투의 참관자들에게 의견을 물어보도록 하지.”

따악

그 순간 망량선사가 장내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리고 망량선사를 포함한 세 사람의 머리 위에 웬 종이 같은 게 둥둥 떠올라 있었다. 니알라토텝은 망량선사와 두 명의 괴인에게 말을 건네듯이 입을 열었다.

“백웅의 반칙을 인정하는가?”

우웅

그리고 그들의 머리 위에 떠올라있던 종이의 표면이 각각 색이 바뀌었다. 나는 그들 중 망량선사와 마도사의 머리 위에 있는 종이가 시꺼먼 색, 그리고 무인의 머리 위에 있는 종이가 백색으로 변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걸 본 니알라토텝이 웃었다.

“훗후후, 반칙 둘에 반칙이 아니다는 한 명뿐…. 다수결로도 백웅의 패배로군.”

“……!!”

뭐?!

그렇다면 종이를 검은색으로 변한 건 두 명…. 망량선사와 마도사는 내가 반칙을 했다고 보는 거라고?!

나는 황당함에 고통을 거의 잊어버리고는 망량선사를 바라보았다.

“마, 망량선사…!! 여기서 내가 지면 어떻게 되는지 알잖아!! 어떻게 그런….”

[상황의 유불리 때문에 자신의 신념을 꺾고 판정할 수는 없다.]

망량선사는 그렇게 말하고는 아무런 감정없이 말을 이었다.

[니알라토텝의 말대로 네가 쓴 가면술은 권능의 영역이다. 정확히는 무공과 권능이 섞였으나 순수한 무공이라고 보기는 힘들다는 게 나의 판단이다.]

“…….”

[모순이구나. 누구보다도 풀려나기를 원하는 나는 나 자신의 성향 때문에 어느 한 쪽을 편애할 수 없다는 사실이….]

“씨발…!!”

나는 나도 모르게 욕이 나오는 걸 느꼈다.

망량선사 저 미친 고양이새끼!

전 우주의 운명이 걸려있는데도 공정하게 신념에 따라 판단하고 앉아있냐! 이건 다른 사람의 일도 아니고 바로 네 일이라고!

달리 말하면 저 등 돌리고 있는 신역절기의 무인은 내 상상절도를 반칙이 아니라고 본다는 뜻이었기에 약간 호감이 생겼다. 하지만 그런 잡생각이 어쨌든 이대로라면 내가 황제에게 패배하게 생겼기에 나는 절망감이 들었다.

모든 혼신의 힘을 다해 싸웠는데 이런 결말이 말이 된다는 말인가?

“말도 안 돼….”

“그게 바로 세상의 묘미지, 백웅.”

“…….”

“이 세상은 혼돈이자 절망. 가히 사랑스럽지 않은가.”

니알라토텝이 싱긋 웃으며 내 쪽으로 수도(手刀)의 자세를 맺은 채 걸어왔다.

“바깥 굴레에서 [나]는 한 번 네 목을 딴 적이 있는 것 같은데 나도 각별한 경험을 하게 되겠구나.”

“…….”

이 새끼, 설마 그 때의 기억을 전승받았다고…?

“그럼 잘 가.”

슈욱

니알라토텝의 손칼이 내 목을 관통하려 날아오는 걸 보고도 나는 피하지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 상대가 우주적 존재라서 어차피 피하려고 해도 못 피할 걸 알고 있는 데다가 이 결말에 대해서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기에 정신적 육체적 고통이 너무 극심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

콰아아아앙!!!

[…….]

“호오. 이게 무슨 짓이지?”

거대한 폭음과 함께 내 앞에 누군가가 서 있었다. 침묵하며 황금빛의 거대한 장벽을 내뿜고 있는 그 존재는 한쪽 손을 내뻗으며 니알라토텝의 수도를 정면에서 막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니알라토텝도 그 존재의 방어를 뚫을 수는 없는지 이윽고 수도를 풀며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니알라토텝이 내 앞에 서 있는 자를 묘한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승리를 떠먹여주는데도 버리겠다는 건가…. 황제 공손헌원.”

그랬다.

마지막 순간에 만신창이가 된 내 앞을 가로막은 건 바로 방금 전까지 나와 목숨 걸고 싸우던 황제 공손헌원!

그가 어째서인지 끝장을 내려는 니알라토텝의 손에서 나를 지킨 것이다!

황제 공손헌원이 손을 뻗은 채 니알라토텝에게 시야를 고정시킨 듯 했다. 그리고는 내게 머릿속으로 말을 걸어왔다.

[백웅이여. 나는 인과율을 읽었노라. 그리고 그대의 기억은 마치 암호의 조각처럼 숨겨진 인과율을 내게 보여주었다…. 그대에게 일격을 맞은 지금 이 순간에 내게 진실을 보여주도록 말이다….]

“…….”

[처음부터… 계산된 것이었다. 아마도 그대가 처음으로 이 옥좌에 도달했을 때… 그 때부터 저 자의 수읽기는 시작되었다…. [큰 굴레]를 넘는 인과율 해석…. 설마 전대(前代) 전생자가 이 정도의 능력을 가지고 있었을 줄이야.]

무슨 말을 하는 것일까?

황제 공손헌원이 자조적으로 말했다.

[나는 위대한 굴레의 조연에 불과했다는 것….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그러나 운명을 스스로 극복하고자 모든 혼돈과 군마를 헤쳐 나왔던 것…. 그 운명이 통째로 부정당했으니, 나는 태어난 업(業)에 충실코자 한다.]

그 때였다.

“후후. 태어난 업에 충실하고자 한다고?”

갑자기 니알라토텝이 나와 황제 사이의 공간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리고는 덥썩 하고 황제의 얼굴을 붙잡으며 말했다.

“원하는 대로 해 주지…!!”

푸콱!!

황제의 얼굴이 니알라토텝의 손아귀에 붙잡혀서 뜯겨나갔다. 그리고 은빛의 깨어진 무면 뒤편에서 거대한 공허와 혼돈이 소용돌이치는 게 보였고, 황제의 얼굴 그 자체가 조그마한 우주인 것처럼 보였다. 황제가 그 자리에 붙박히듯 멈춰있자 니알라토텝이 말했다.

“아직도 너의 본질을 거부할 셈이냐?”

마치 책망하는 듯한 말.

거기에는 일말의 연민이 스며들어 있었다.

[나는….]

황제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갑자기 전신에서 황금의 빛을 뿜어내었다.

[우주를 지배할 자, 황제 공손헌원이다…!!]

키이이이잉

황제의 몸에서 뿜어져나온 상상도 할 수 없는 신력! 그 신력의 소용돌이 속에서 모든 것이 황금의 물결에 소멸당하는 것처럼 보였으나 니알라토텝은 아무렇지도 않게 잉어처럼 그 물결을 헤쳐 나오며 또다시 황제의 얼굴 속으로 손을 쑥 집어넣으려 했다.

“……!!”

뭐, 뭐야?!

저렇게 강력한 황제의 힘이 하나도 통하지 않는다고?!

반고마저 멀쩡할 수 없는 황제의 힘이었는데!

모든 법칙을 무시한 듯한 니알라토텝의 움직임에 내가 깜짝 놀라고 있을 때 황제 공손헌원이 말했다.

[과연 인과율을 읽은 대로군.]

덥썩!

황제의 손이 어느 새 니알라토텝의 손목을 붙잡고 있었다. 그 공방은 짧고 간단해 보였으나 우주적 존재들의 격돌을 함축하고 있었다. 그리고 니알라토텝이 처음으로 놀란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런. 공손헌원 네가 읽어 들이는 인과율 계산으로는 절대 여기까지 도달할 수 없는데? 어떻게 한 거냐?”

[…….]

“…아하, 과연. 아주 재밌는 수를 써 주셨군. 크크큭…. [그 때] 백웅에게 불어넣었던 게 바로 지금 이 순간을 위한 선행계산이었단 말이지.”

[그렇다.]

“크크크! 결국 네가 천마를 통해서 백웅의 기억을 받아들일 인과율까지도 계산했단 거군. 과연 대단한 놈이야.”

찰나지간에 뭔가를 알아차린 듯한 니알라토텝의 새빨간 시선이 누군가를 향했다.

그의 시선이 향하는 끝에는 바로 옥좌 옆에 서 있는 마도사복장의 괴인이 있었다.

“……?”

응? 왜 저 놈을 보는 거지?

방금 전에 내게 실격판정을 내린 못된 놈인데….

‘저 놈이 설마 이 판을 설계했다는 건…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서 내가 어리둥절하고 있을 때 황제가 갑자기 한쪽 손을 뻗어서 내게 황금의 빛을 발사했다.

쩌엉!!

나는 황금의 빛을 맞자 별안간 몸이 모조리 회복된 것을 알 수 있었다. 내가 내 몸을 내려다보자 황제 공손헌원이 말했다.

[백웅. 잘 들어라. 나는 이 결투에서 승리하지 아니하였다. 그 어떤 결투라 하여도 승자가 자신의 승리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승리가 될 수 없다.]

“황제….”

우드득

황제가 한층 강력하게 니알라토텝의 손목을 잡아부숴버리려는 듯 했다.

[이 결투는 무승부다. 너는 충분한 자격을 쌓은 대적자가 아니었으며, 나는 충분한 권위를 지닌 패왕이 아니었을 뿐이다.]

쿠르르릉

황제 공손헌원과 니알라토텝 사이에 흐르는 거대한 암류가 점차 커지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황제의 황금빛 기류에 눌려있던 니알라토텝의 힘이 서서히 거대해지는 것이었다. 니알라토텝이 진짜 힘을 발휘하기 시작하면 아무리 황제라도 당해낼 수 없다는 건 자명한 일이었다.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아서 황제에게 말했다.

“어째서? 왜 승천의 기회를 포기해 버리는 건가!”

내게는 너무 좋은 일이지만 황제의 급작스러운 변화가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제 황제는 나를 꺾었으니 승천하여 외신이 될 일만 남았을 텐데 어째서 무승부를 고집하면서 니알라토텝에게 반항하는 것인가?

[더 이상 니알라토텝에게 농락당하지 않겠다.]

황제가 말했다.

그의 중후한 목소리와 함께 나는 점차 이 옥좌의 공간에서 튕겨져 나가는 것을 깨달을 수가 있었다.

[이것은 내가 생각한 패왕의 길이 아니다…!!]

쿠구구구구구…!!!

나는 황제 공손헌원과 니알라토텝의 신형이 점차 멀어져서 작아지는 것을 느꼈다. 황제 공손헌원은 한 순간 자신의 몸을 거대하게 부풀리며 니알라토텝을 짓누르려 했으나, 그와 동시에 거대한 악마(惡魔)의 형상이 뛰쳐나오며 황제의 상반신을 찢어발기는 게 보였다.

그러나 황제는 니알라토텝에게 저항하는 걸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니알라토텝에게 계속해서 덤비고 덤볐다. 니알라토텝이 마치 지옥에서 흘러나오는 듯한 목소리로 웃는 게 들려왔다.

[승천 도전자여. 이제 와서 힘으로 해 보겠다고?]

[…….]

[힘으로 나를 치겠다면 그 때 치우를 없애지 말았어야지! 어리석구나…. 아하하하!!]

쿠콰콱

니알라토텝의 칠흑 손톱이 황제의 가슴팍을 꿰뚫는 게 보였다. 황제는 그 손톱을 손으로 부여잡은 채 니알라토텝의 동체를 때리는 듯 했으나, 놈의 동체는 마치 끓어오르는 혼돈과도 같아서 황제의 압도적인 신력마저도 전혀 먹히지 않는 것 같았다.

그 때 일순간 우주를 누비는 거대한 흑룡처럼 변한 니알라토텝의 껍질이 크게 벗겨졌다. 나는 그 모습을 보자 그만 숨을 집어삼키고 말았다.

“……!!”

뭐… 뭐지….

니알라토텝의 몸 안에 무한대의 가면이 떠다니고 있다…?!

가면 하나하나가 불쑥 하고 뒤로 넘어가는 순간, 그 가면 뒤편에서 우주가 하나 만들어지는 게 보였다. 음양이 파괴되며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는 그것은 말 그대로 우주의 창생과도 같아보였다.

“허… 억….”

그 기이하고도 몽환적인 광경에 나는 니알라토텝이 상식으로 판단할 수 없는 존재란 걸 깨달았다. 그리고 저런 니알라토텝을 막고 있었던 망량선사 또한 괴물같은 놈이라는 걸 새삼 실감할 수가 있었다.

쿠구구구구….

니알라토텝의 눈빛이 빛나는 순간 그의 입에서 주문이 읊조려졌다.

[나 니알라토텝이 명하노니 대라(大羅)를 녹여 나의 살로 삼는도다.]

치지지직

우주가 들끓어 오른다. 일 초만에 수십억 개의 별이 증발하면서 니알라토텝의 비늘 안으로 흡수당하는 게 육안으로 보였다. 무한의 성천이 거대한 혼돈에 탐식당하는 듯한 끔찍한 풍경이었다.

[하하하… 아하하하하!!]

쿠콰쾅

니알라토텝의 광소와 함께 그의 꼬리가 황제의 몸뚱이를 다시 한 번 후려쳤다. 황제는 그 일격에 맞자 제대로 비틀거리며 뒷걸음질을 쳤다. 이미 힘의 격차는 명백하게 벌어져 있었다.

어느덧 상상도 할 수 없이 넓어진 옥좌의 공간 속에서 황제가 살해당하는 건 시간문제처럼 보였다. 니알라토텝이 이번에는 입을 쩍 벌리며 달려들 때 황제가 눈을 빛냈다.

[걸렸구나.]

갑자기 황제가 손을 내뻗으며 주문을 외치는 걸 볼 수 있었다.

[천지무겁(天地無劫)에 가장 근원된 계약의 정표가 여기 있나니, 그 이름은 힌두, 소드마, 아자트라. 열생(咽生)의 언령(言靈), 666의 지배자의 합일로써 기어오는 혼돈을 봉인하노니 그 이름은 영겁일지어다. 위대한 외신들의 칭송으로 완결되는 그 이름은 창천일지어다. 이는 마도(魔道)의 극에 도달한 증거이다.]

그러자 황제를 몰아붙이던 니알라토텝이 흠칫하고 놀라는 게 보였다.

[…그 주문은 설마?]

[눈치챘구나.]

파칭!!

잠시 후 우주를 집어삼키는 칠흑의 용으로 변한 니알라토텝의 신형이 갑자기 엄청난 기세로 쪼그라들더니 좌우종횡으로 이루어진 광선으로 이루어진 감옥에 붙잡히는 게 보였다. 삽시간에 니알라토텝의 크기는 고작해야 소형 용종 정도로 줄어들었고 황제의 손가락 크기보다 못할 정도로 줄어들어버렸다.

[마도황제가 과거에 너를 봉인했을 때 쓴 주문이다.]

잠시 멍하니 있던 니알라토텝이 크큭거리며 웃었다.

[크크큭… 그렇군…. 놈이 대항책도 전생자 백웅의 기억에 같이 넣어서 네게 넘겨줬구나. 그러니 감히 네가 반항하려고 마음먹을 수 있었던 거군.]

[…….]

[재밌구나…. 참으로 재밌어….]

니알라토텝은 뭐가 재밌는지 계속 껄껄 웃었다.

[너를 넘어선 인과율의 계산을 받아들인 결과…. 너는 자유의지와 이득을 분간할 수 없게 되었구나. 허나 나는 그런 너를 긍정한다….]

[…….]

[스스로를 파멸시키는 그 혼돈조차…. 나 자신일지니…. 가장 나 다운 나….]

파스스스

잠시 후 황제의 몸이 가루처럼 부스러지며 사라지기 시작했다. 나는 먼 곳에서 그걸 보다가 깜짝 놀랐다.

“……!!”

설마 저 주문을 쓰는 대가로 소멸되는 것인가?

아니나 다를까 황제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들려왔다.

[니알라토텝이 봉인된 사이에 다음 생으로 보내주마…. 전생자여….]

“…어째서냐….”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황제에게 외쳤다.

“나쁜 놈이면 끝까지 나쁜 놈처럼 굴라고!! 제기랄!!”

나는 왜인지 화가 났다.

황제 공손헌원이 전력을 다해서 이 대결을 무르고 나를 다음 전생으로 넘겨주려 한다는 게 여실히 느껴진다. 하지만 그건 도리어 내게 굴욕감을 주는 일이었다. 황제는 내 의지에 자신의 뜻을 꺾은 게 아니라, 바로 저 [마도황제]라는 놈의 수계산에 설득당한 셈이기 때문이다.

이제야 이해가 간다.

내가 처음으로 [옥좌] 앞에 도착해서 [기어오는 혼돈]에게 살해당했던 그 때.

마도황제가 내 머릿속으로 넣어줬던 모종의 기억은 바로 [지금 이 순간까지의 인과율 계산]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황제는 그 계산과 함께 니알라토텝을 봉인할 주문을 손에 넣고는 그대로 실천에 옮겼으리라.

처음부터 마도황제는 [지금의 황제 공손헌원]을 조종하려는 계산을 끝냈던 것이다.

이 자리는 바로 그가 짜 놓은 무대였으리라.

실로 말도 안 될 정도의 인과율 계산능력!

‘분해.’

저 거인들의 싸움 속에서 나는 인간의 왕으로써 제대로 서지 못했다는 굴욕감 -

전신전령을 싸워도 발끝에도 미치지 못했다는 열패감이 나를 분하게 만들고 있었다.

황제는 그런 내 마음을 읽었는지 훗하고 웃으며 말했다.

[아까 말했듯 너는 아직 모든 게 부족한 자…. 그런 네게는 적절한 여유가 되겠구나.]

“뭐?”

[니알라토텝을 봉인하는 궁극의 주문. 이 주문을 쓰는 대가는 [다음 굴레]에서의 봉인. 마도황제 또한 그 때문에 니알라토텝에게 승기를 빼앗겼었다. 내 경우 어떤 식이 될지는 모르겠군.]

“……!!”

내가 놀라자 황제가 나직이 말을 이었다.

[우둔한 인간의 왕이여. 과연 네가 다시 도전할 때는 내 적수가 될 수 있겠는가? 대답해라!]

“…….”

나는 이를 악물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되고말고!! 네놈이 처박혀 있는 동안에, 천마 따위는 한 손으로 패대기칠 정도로 강해질 거다!!”

[네 재능으로?]

“그래!! 안 되면 될 때까지…. 노력할 거다!! 수천 년이고 수만 년이고! 몇 백 번 몇 천 번을 뒈져도 노력할거라고!!”

나는 피눈물을 흘리며 악을 쓰듯 외쳤다.

저 개같은 놈에게 수준미만으로 지적받고, 심지어 동정받는 게 너무나 분했다.

“절대, 이번처럼은 안 될 거야!! 개같은 자식아!!”

[…그래야지.]

스스스

황제의 몸은 어느덧 거의 다 사라져가고 있었다. 그는 옛날 일이 떠오른 듯 천천히 중얼거렸다.

[어쩌면…. 치우를 없앤 게 나의 실수였을지도 모르겠구나….]

“제길!! 이제 와서 후회하면 어쩌자는 거야! 니가 저질렀으면서!”

[전생자인 너라면 그걸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

“뭐?”

[마도황제가 제시한 가능성…. 그걸 기대했기에 이 일을 저지른 거지….]

알 수 없는 소리를 하던 황제 공손헌원이 니알라토텝을 가둔 감옥으로 양손을 뻗으며 말했다.

[보아라…. 내가 바로… 정점에 선 자이다.]

공손헌원의 전신이 한 순간 황금의 광채로 번쩍하고 빛났다.

[내가 바로 황제 공손헌원이다…!!]

쿠구구궁

니알라토텝을 봉인한 감옥이 칠흑의 어둠 속으로 사라져버린다. 공손헌원의 마지막 일격으로 니알라토텝이 완전히 존재감을 감춰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황제 공손헌원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끝인가.’

우주가 터져나가는 게 보였다.

억년의 별들은 이제 흔적조차 없었고 혼연 속에서 무한의 성좌가 뒤틀어 울렸으며, 그때 비로소 혼연의 옥좌 주변을 감싸고 있던 총천연빛의 안개가 서서히 사라지는 게 보였다.

안개가 사라지며 나타난 것은 - 노래를 부르는 자들.

아아아아 -

상상할 수 없는 기이한 존재들이 기음(奇音)과 함께 노래를 부른다. 그들은 옥좌를 떠돌면서 무한히 노래만 부르고 있다. 그 노래는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 필멸자가 듣는 순간 미쳐죽는다는 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저 존재들이 [바깥]의 무언가라는 건 굳이 누군가가 설명해주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편안… 하군….’

나는 도리어 그 노래 속에서 천천히 눈꺼풀이 무거워짐을 느꼈다. 너무 듣기 좋은 노래라는 생각이 들었고, 나는 다시 꿈을 꾸게 되리라는 걸 직감했다.

꿈속의 노래일까, 노래 속의 꿈일까.

어쩌면….

그다지 상관없을지도 모른다.

[그게 너의 선택인가?]

…알 수 없는 과거의 한 마디.

그 한 마디가 스쳐지나가며 우주가 부숴져 나가는 마지막 일순간의 섬광이 눈에 새겨박힌다.

번쩍

그것이 나의 28번째 죽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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