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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황제는 내 말에 대답하지 않고 여전히 팔짱을 끼고만 있을 뿐이었다. 저 모습 또한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인지라 나는 내가 또 뻘짓을 했나 하는 생각에 두려움이 덜컥 찾아왔다. 그러나 나는 한 번 의혹이 생겼다면 끝까지 밀고가기로 작정한 채 외쳤다.
“안 봐줘도 되니까 어디 날 쳐 죽여봐! 그 잘난 천마신공으로!!”
파밧!!
나는 바로 황제에게 달려들었다. 방금 전까지의 망설임은 온데간데없었고, 정기신(精氣神)이 하나로 뭉쳐서 고도의 집중력이 만들어지는 게 느껴졌다. 동시에 검뢰가 의지의 속도로 뻗쳐나와 거대한 기둥처럼 확산되어 황제의 몸을 후려쳤다.
콰과광
거센 폭음과 함께 황제의 신형이 그 자리에 철벽처럼 멈춰서서 앞으로 손을 내민 자세가 되었다. 그의 전신에는 회색빛의 호신강기가 떠올라 있었는데 내가 모르는 무공이 분명했다. 그러나 나는 그 방어를 보면서 확신했다.
‘영겁지무를 쓰지 않았어!’
만일 영겁지무를 썼다면 방금 전 내 공격을 완전히 무시하고 도리어 반격해서 나를 일격에 끝장내버렸을 것이다! 혹시나 황제가 봐주었을지도 모른다는 가정은 무의미한게, 황제가 나를 일격에 없애는 것보다 더 간편하고 빠른 승리방법은 존재치 않았다.
확실하다.
황제 공손헌원은 지금 천마신공을 쓰지 못해!!
우웅
나는 검뢰를 더욱 응축시키며 내 몸안의 잠재력을 향상시키는데 주력했다. 기가 점차 다스려지며 혼란스러웠던 마음이 가라앉자 무인의 역량이 점차 퍼져나오는 게 느껴졌다. 마음의 자세만으로도 그 실력이 크게 달라지는 게 바로 무림인이었기에 지금의 나는 방금 전보다 더 강해졌다고 말할 수 있었다.
내가 집중상태로 들어가자 황제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알아차렸나.]
자신의 속임수를 자인(自認)하는 황제. 더 이상의 허세와 거짓말이 불필요하다고 깨달은 자의 행동이었다. 나는 그의 질문에 히죽 웃으며 대답했다.
“니알라토텝이 말했지. 제물을 필요로 하는 건 쓸 수 없다고.”
[…그렇군. 너무 얕보았나.]
생각해보면 조건이 상충된다.
니알라토텝은 [제물이 따로 존재치 않고, 자기자신이 수련해서 얻어낸 힘이라면 얼마든지] 무공을 쓸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백련교주에게서 들은 바로 천마신공이란 바로 만신전에서 소모되는 인간영혼을 제물로 해서 시전되는 마공(魔功)!
그러므로 제물이 있어야 쓸 수 있는 천마신공은 이 전투에서 쓸 수 없는 것이었다!
어찌보면 이 자리에 오기 전부터 깨달았어야 하는 것이었지만 계속해서 상황에 쫓기다보니 냉정한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던 것이리라. 그래도 이제라도 의혹을 깨달았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호기롭게 외쳤다.
“천마신공을 못 쓰면 네가 그렇게 두렵진 않아! 네가 설마 만신전에서 무공이라도 수련했다고 말할 셈은 아니겠지!”
[…….]
“끝장내주마!”
파밧
나는 재차 황제 공손헌원에게 달려들면서 두려움따윈 느껴지지 않았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내게 유리하다면 두려워하는 게 이상한 것이다. 이래 봬도 나는 재능은 없어도 무수한 기연을 이용해서 절대지경에 오른 고수였고 지상에 나보다 더 강한 무술인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나를 확실히 이길만한 존재들은 신역절기의 고수들이나 투선쯤 되어야 존재했고 그나마도 그들은 한계를 초월한 궁극의 수련자였다.
강대한 권능만을 휘둘러 왔던 황제가 과연 천마신공도 없이 나보다 무공이 강할 수 있을까?
‘그럴 리가 없지!’
난 그렇게 약하지 않아!
절대검뢰(絶對劍雷)
무량단(無量斷)!
무량을 베는 번개가 마치 메아리처럼 울리며 뇌영(雷影)을 남긴 채 황제를 스쳐지나갔다. 황제는 예의 회색빛 호신강기를 이미 발동시켰던 모양이지만 심천무량조차 베어버리는 무량단의 공격력 앞에서는 두부나 다름없이 호신강기가 박살났고, 이윽고 거대한 참선(斬線)이 황제의 가슴팍에 크게 그어졌다.
촤악!!
[…….]
“다시 한 번 간다!”
아무리 그래도 상대는 황제 공손헌원 - 괜히 잡스러운 기술을 써서 틈을 주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무리해서라도 무량단을 연속해서 쓰기로 했다. 반격의 여지 없이 3초 이내에 상대를 끝장내는 것보다 더 실전적인 선택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량단의 검격이 번개처럼 변해서 뻗어나가는 순간이었다.
[만에 하나를 대비해두길 잘 했군….]
육대금기마공(六大禁忌魔功)
황천은형수(黃天隱形手)
우웅
그 순간, 찰나의 염과 함께 황제의 오른손에서 거대한 황금빛의 구(球)가 나타났다. 그 구체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거대한 기력이 모여있었으며, 내가 반사적으로 구체를 무량단으로 동강낸 순간 거대한 폭발이 터져나왔다.
쿠콰콰쾅
그리고 폭발과 거의 동시에 내 쪽으로 황금빛의 괴조(怪爪)가 뻗어나와 내 중추혈을 노렸다. 굉장히 정밀한 초수인지라 나는 흠칫하면서도 삼보절기를 이용해서 빠르게 회피했고, 보이지 않는 열여덟개의 기경(氣經)이 중첩되어서 내 요혈을 향해 날아오는 걸 알 수 있었다.
타다다당
나는 몸을 그 자리에서 회전시키며 검강을 검막처럼 운용하며 은형기경을 떨쳐내었고 거기까지가 한 초수 교환이란 걸 알 수 있었다.
방금 그건 굉장히 높은 수준의 절초!
절대지경 고수와 겨뤘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나는 깜짝 놀라서 말했다.
“아니?! 어떻게 무공을!!”
[방금 네가 정답을 말했지 않으냐….]
“뭐?”
[그래…. 본좌가 만신전에서 아무것도 안했을 것 같은가…. 치우(蚩尤)의 힘에 그토록 치욕적인 패배를 겪어놓고도….]
원한을 곱씹듯 중얼거리던 황제의 눈에서 시퍼런 빛이 섞인 황금의 광채가 흘러나왔다.
[백웅. 네놈은 본좌가 천마신공을 무(無)에서 만들어냈다 생각하느냐? 그럴 리가…. 당연히 동서고금(東西古今)의 무수한 무예자들의 무공과 그 영혼을 연구해서 만들었다. 두 번 다시 치우같은 존재에게 패하지 않기 위해서….]
“…….”
[그다지 쓸 필요도 없는 힘이었는데 이런 식으로 연구결과가 도움이 될 줄은 몰랐군.]
나는 그 말을 듣자 뭔가를 깨닫고는 황망하게 중얼거렸다.
“…저, 정말로 황제 너는 만신전에서 무공을 연마하고 있었단… 말인가?”
미, 미친.
말도 안 돼.
어떻게 이런 일이….
[연마가 아니라 연구다. 천마신공을 제작해서 발전시키기 위한.]
내 말을 가볍게 정정한 황제가 성큼 하고 내 앞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물론 연구했던 것만으로도 너와 승패를 가르기에는 족할 듯 하구나.]
“웃기지 마!!”
나는 이를 악물며 다시금 황제에게 덤벼들었다.
이래봬도 나는 백수십 년 동안 지옥훈련을 하면서 수많은 기연과 노력을 거쳤다! 그저 천마신공을 만들기 위해 연구만 했다는 신, 황제 공손헌원의 오락거리 유흥보다 못할 리가 없다고!!
이번에 내가 택한 공격법은 무량단이 아니라 선검이었다. 나는 선검에 정신을 집중한 후 상대의 헛점을 살펴서 적당한 각도로 쳐내리듯 일참을 가했다. 선검이 뭉툭한 날과 함께 황제의 견정혈 쪽을 내리치자 황제는 이번에도 방금 전 사용했던 황천은형수를 사용해서 막으려 하는 듯 했으나, 선검은 아무렇지도 않게 황천은형수를 깊게 파고들어 방어영역을 꿰뚫었다.
‘역시!’
방금 전 황제는 무량단을 속도로 감지한 게 아니었다. 황천은형수라는 저 무공 자체가 상대 무공의 속도와 관계없이 자동으로 반응하는 속성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속도에 의존하지 않고 적을 공격하는 선검은 왠지 통할 것 같았는데 예측대로구나!
황제는 자신의 손이 잘리려 하자 살짝 손을 물리면서 이번에는 또 다른 무공을 시전했다.
육대금기마공(六大禁忌魔功)
설월대연강(雪月大聯罡)
천축신공(天竺神功)
월아영상패룡파(月牙永狀覇龍波)
공격을 받는 쪽에는 새하얀 죽음을 휘감은 듯한 수강(手罡)이 형성되었고 맞은편의 손에는 내가 익히 알고 있는 천축의 절세신공인 월아영상패룡파가 맺혔다. 황제는 설월대연강으로 한 차례 선검을 정면으로 맞서다가 시간을 버는 사이에 월아영상패룡파를 날려서 나를 공격했다. 강대한 기세를 품은 용형강기가 날아오자 나는 피할 수밖에 없었고 황제는 연속으로 쌍장을 모아서 새로운 무공을 펼쳤다.
수황염(守皇炎)
환사무영장(幻死無影掌)
위천호호종각(衛天豪護宗脚)
투콰쾅
‘크… 크으윽….’
순식간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무공이 세 개나 동시에 날아오자 나는 반격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전부 삼보절기로 피할 수밖에 없었다. 무쌍패로 맞설 수도 있었지만 저만큼 자유롭고 제약없이 수많은 무공을 사용하는 자 앞에서 무쌍패의 빈틈을 들키면 단숨에 죽을 수도 있다!
마라회륜격(魔羅回輪擊)
꾸궁!!
수십 개의 륜 형태의 강기가 날아오자 나는 더 버티지 못하고 두 걸음을 물러섰다. 나는 공격을 받아내다가도 어이가 없어서 외쳤다.
“대체 무슨 무공을 그렇게 많이 익힌 거야!!”
그것도 하나하나가 모두 최소한 절정무공이잖아!
나와 약간 간격이 벌어진 상태에서 황제가 자신의 주먹을 꾸욱 말아쥐며 대꾸했다.
[치우에게 패배하지 않을 최강의 무공을 만들려면 이 세상의 모든 무공을 섭렵할 필요가 있었지. 그래서 황금관에 모인 영혼들이 지닌 모든 무예의 경험을 내 것처럼 받아들이고 하나하나의 특성과 장단점을 파악하여 최고의 무공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연마해 왔다…. 그래… 너희 인간들의 선사시대(先史時代)부터 동방과 서방의 모든 맹자들이 지닌 무공을 연구했다….]
“…….”
[나는 노력해 왔다. 내가 익힌 무공은 십만 종류가 넘으며 수련기간은 은주시대 이전부터 칠천 년 정도…. 그 연구의 결과 탄생한 게 가장 강력한 무공인 천마신공이다.]
황제가 비웃듯이 중얼거렸다.
[과연 네가 본좌의 노력 앞에서 무학의 종사라 칭할 수 있겠느냐?]
나는 순간적으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제기랄… 이런… 미친….’
내가 잘못 생각했다.
저 놈은 수천 년의 노력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게 여길 정도의 신적 존재! 수십억 년 전부터 사제를 창조하며 판을 짰고 인과율을 읽어왔던 괴물에게 있어서 무공을 수천 년 동안 연마하는 건 그다지 힘든 것도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백수십년 동안 무공을 수련해왔던 나를 초라하게 만들 정도의 자체적인 무공역량을 지니고 있는 셈이었다.
나는 기세에서 지지 않으려고 발악하듯 외쳤다.
“웃기지 마!! 무공수련 오래 했다고 더 쎄다는 보장은 없다고!!”
[덤벼라.]
콰광
재차 무량단을 써서 황제를 공격해 가자 이번에도 황제는 무려 세 개나 되는 방어형 무공을 써서 내 공격을 막아내었다. 이번에는 아예 이름조차 알 수 없는 생소한 무공들이었으나 각각의 무공이 결합해서 무량단을 막는 공능이 생겨났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저 수법이 왠지 낯익어서 수상쩍은 눈으로 보다가 문득 뭔가를 알아차렸다.
“…설마.”
황제에게 흐르는 무예의 기운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었다. 저건 틀림없이 무예에 그가 적응해가고 있다는 뜻이었다.
[직접 무공을 써서 싸워볼 일이 있으리라 생각지도 못했거늘 이제야 몸이 조금 풀리는구나.]
우우우
황제의 몸 주변에 각각 다른 성질의 기류가 맴돌기 시작했다. 저 기류 하나하나는 단초로써, 황제가 의념과 기감을 불어넣는 순간 실제하는 무공이 되어서 내게 덮쳐올 것이다. 그리고 나는 저런 느낌을 지닌 무공을 이미 수십 번이나 보아왔기에 눈꼬리가 파르르 떨리는 걸 느꼈다.
‘아니겠지? 설마… 아니겠지!’
그러나 안좋은 예측이 옳다는 걸 증명하듯 황제 공손헌원이 양손을 뻗으며 말했다.
[아수라가 아주 재밌는 기술을 지니고 있더군. 본좌 또한 오랜 수양기간 동안 그 기술에 호기심을 느끼고 비슷한 걸 만들어봤지.]
투웅!!
다섯 개의 기류가 허공에서 뭉치더니 황제의 쌍장 사이에 소용돌이처럼 맴돌았다. 그리고 황제는 다음 순간 멸혼보에 비견되는 가공할 신법으로 내 전면으로 짓쳐들어오며 기류를 살짝 놓치듯이 내쪽으로 날렸다. 나는 그 기류가 그리 빠르지 않아서 충분히 쳐낼만하다고 생각했지만, 동시에 내가 짐작하는 ‘그것’이라면 절대 정면승부해서는 안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퓨웃
빛의 잔영만 남기고 내가 멸혼보로 더욱 더 뒤로 빼자, 황제가 나와 속력을 맞추어 따라붙었다.
‘멸혼보를?!’
육대금기마공(六大禁忌魔功)
파천괴룡장(破天壞龍掌)
대체 무슨 신법인지 경악하고 있을 때 황제가 마치 패대기치듯 내 단전으로 일장을 날렸고 나는 검뢰로 응수했다. 파천괴룡장의 기운은 검뢰에 잘려나가는 듯 하더니 갑자기 점착하듯 엉기며 내 검을 붙잡았고, 내가 아차하는 사이에 황제는 또다른 절세신공으로 검지와 중지를 모아서 나를 공격했다.
창화신령지법(蒼華神靈指法)
복룡대연화(伏龍大蓮花)
쿠콰쾅
“크아악.”
무쌍패를 써서 막을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위력이 대단치 않아 보이는 지법이라서 무쌍패까지 쓸 건 없다고 생각했지만 저 두 손가락에서 날아오는 용형지법의 위력은 내 호신강기의 위력을 아득하게 상회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가 허공에서 피를 튀기며 날아가자 황제가 두 눈을 번쩍이며 말했다.
[끝내주마.]
절기(絶技)
황룡무극(黃龍無極)
웅웅웅
방금 전 내게 날렸던 다섯 개의 기류가 황색 용이 또아리틀듯 선명한 기세로 날아왔다. 나는 방금 전 얻어맞아서 경직에 걸린 상태였기에 그 공격을 결코 정상적으로 막거나 피할 수 없다는 걸 알아차렸고, 결국 이를 악물며 무위전변을 시도했다.
무쌍패(無雙覇)!
파지지직
황룡무극이 내가 만들어낸 무위전변의 태극 속에 흡수되어 사라지는 게 보였다. 나는 허공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으며 무쌍패의 음양을 상징하는 쌍수자세를 취했는데, 다음 순간 울컥하고 입에서 피를 토해내었다.
“크헉…!!”
너무 위력이 강했던 걸까? 나는 무쌍패로도 미처 다 막아내지 못한 황룡무극의 여진이 내 몸을 뒤흔들었다는 걸 알아차렸다. 역시 예측한대로 내 인생에서 손에 꼽을 만큼의 압도적인 패력을 지닌 공격이었던 것이다. 내가 무쌍패로 막아낸 걸 본 황제가 놀랍다는 듯 말했다.
[과연 장삼봉의 무쌍패로군. 황룡무극을 연구할 때도 무쌍패라면 막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예측대로였구나.]
“크… 흐윽…. 제기랄…. 네놈….”
나는 숨을 몰아쉬며 눈가에 흐르는 피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아수라의 적멸무극을 따라하다니!!”
그렇다.
방금 전의 황룡무극은 안에 들어가는 무공의 종류가 다르다는 것 뿐, 적멸무극과 완전히 똑같은 원리!!
어떤 식으로 무공 사이의 조화를 맞췄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단순히 황제가 수십만 가지의 무공을 연구하는 동안에 결이 맞는 무공을 찾아낸 것 뿐이리라. 아수라는 직접 시행착오를 거치며 절대무인의 감으로 골라냈다면, 황제는 단순한 반복작업 끝에 찾아낸 것이리라.
황제가 문득 훗하고 웃으며 말했다.
[…즐겁군. 배우고 때로 익힌 걸 써먹는다는 게 이런 즐거움인가.]
“…….”
[자아, 좀 더 덤벼보거라 백웅.]
황제의 목소리에 나는 상황을 너무 쉽게 생각했다는 걸 깨달았다.
[니알라토텝의 함정에 빠져서 가장 약해진 나를 쓰러뜨려 보란 말이다.]
그런 건가.
황제가 아무리 약해져있어도 이런 건가. 니알라토텝 때문에 권능도 천마신공도 못 쓰는 황제라고 하더라도 지금의 내가 섣불리 상대하기 힘들 정도의 격차가 있는 건가….
그럼 원래의 격차는 어느 정도였던거지?
수십만 배? 수백만 배? 수억 배?
“…….”
미치겠다.
이게 대체 무슨 절망인지 모르겠다.
나는 대체 얼마나 강해져야 이 무수한 절망을 이겨낼 수 있을까?
나는 전신에 힘이 빠져서 절망할 뻔 했지만 이윽고 이를 꽉 깨물고는 내상을 치유하며 검을 잡았다.
“그거 좋지. 이럴 때 아니면 언제 황제를 죽여보겠나.”
[좋은 기세다.]
난 포기하지 않는다.
이제부터가 진정한 사투(死鬪)다.
죽음의 수라장을 몇 번이나 넘는다 하더라도 기필코 저 자의 목을 따고 말리라.
그리고 나는 이미 무수한 실전을 넘나든 경험으로 이길 방법을 깨달은 상태였다.
‘방법은 있어.’
단 하나의 헛점.
아수라가 가르쳐준 그 헛점을 찌를 수만 있다면 - 나는 단숨에 황제를 없앨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