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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나는 백련교주의 말에 적잖은 호기심을 드러냈다.
“혼돈과 태허의 융합을…?!”
융합!
그것은 이미 백련교주가 쓰는 기술임을 알고 망량선사에게 그 원리까지 물어보았던 적이 있다. 다만 망량선사가 말해줬던 기술의 원리와 수련법은 너무 까다로워서 인간이 추구할 수 없는 것이었고, 전제조건 자체가 지금의 나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었다.
“그건 원영신을 이루어야 쓸 수 있는 게 아닌가?”
이게 문제였다.
망량선사에게 들은 바로는 혼돈을 끌어모아서 태허를 통해 인과율에 접속하는 게 기본 원리였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기를 분해해서 태허로 만들어야 하는데, 역설적으로 그러기 위해서는 압도적인 혼돈이 필요했다. 그래서 인간 중에서는 압도적인 혼돈을 보유하고 있는 원영신의 소유자인 백련교주만이 융합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내 말에 백련교주가 빤히 나를 쳐다보다가 말했다.
[한백령에게 자세한 얘기를 듣지 못한 걸 보면 귀환했던 네 무공경지가 그녀의 눈에 차지 않았나 보군.]
“…뭐?”
[원영신을 차기 교주인 한백령에게 전수할 때 나는 두 가지 언질을 해 두었다. 아마 첫 대면에 들었던 얘기는 알고 있을 것이고, 두 번째 조건은 만족치 못했었나보군….]
그렇게 말한 백련교주가 말을 이었다.
[선검에 답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네게 굳이 원영신이라는 외법을 전수하게 두지 않고 네 선검의 성취를 지켜보라 했었던 것.]
“선검에?”
[백웅이여. 융합의 경지에 담겨있는 요체는 결국 태허를 깨달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태허를 쓸 수 있다면 굳이 혼돈을 이용해 기를 분해할 필요도 없지 않겠는가.]
“…….”
[원영신을 통해 도달하는 융합의 경지는, 우주멸망의 양상을 이용한 외법(外法). 아수라에게 직접 암야참의 비의를 전수받은 그대에게는 필요없다.]
스으으
백련교주가 만다라를 띄운 채 공중에 부양하여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크게 정신을 집중하는 듯 하던 그가 내 쪽으로 손바닥을 내보이며 말했다.
[하지만 외법이라 할지라도 때로는 써야 할 때가 있지…. 그게 지금이다.]
후오오오오!!
갑자기 백련교주의 손바닥에서 새까만 옥(玉)이 튀어나와서 내게로 날아왔다. 나는 흠칫했지만 그게 공격이 아니라고 알아챘기에 그대로 옥에 격중되었다.
스아아아
‘이건.’
옥이 내 몸에 스며들듯이 검은 기운을 흘려내며 전신을 뒤덮는 게 느껴졌다. 어느 새 내 몸에서는 시꺼먼 영기가 마치 안개처럼 흐르기 시작했으며 나는 이 영기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알아채고는 외쳤다.
“순수한 혼돈!!”
[그렇다. 내가 생전에 지니고 있던 마지막 혼돈의 결정체…. 그게 곧 네게 엄습하며 강대한 압박을 줄 것이다. 신력과 기력을 포함한 모든 내력을 갉아먹어 혼돈의 존재로 변화시키려 할 것이다.]
“…왜?”
[이해하지 못했는가…. 원영신의 효과를 인위적으로 연출하는 것….]
“아…!!”
내가 그제서야 이해를 하자 교주가 여전히 손바닥을 뻗은 상태로 말했다.
[선검을 들어 집중하라…. 그리고…. 너를 엄습하는 혼돈을 베어 두 가지의 거대한 힘을 일시적으로 융화시키는 감각을 익혀라!]
“선검으로 베라는 거냐?”
[그래….]
잠시 침묵하던 백련교주가 말을 이었다.
[사실… 아주 난이도가 높은 편법이다…. 한백령에게 이 편법을 일러두었으나…. 너무 위험하므로 웬만하면 전하지 말라 했었다….]
“위험한 건가?”
[실패하면… 즉사일 뿐만 아니라…. 내가 지니고 있었던 무진장한 마기(魔氣)가 네 영혼까지 침범해 악몽같은 부작용을 줄 수 있기 때문이었지…. 네가 섣불리 원영신을 익혀서는 안 되는 이유와 상통한다.]
“그, 그랬었군….”
[원영신이란 천재적인 소양을 지닌 자가 오랜 수양 끝에 이론을 숙지하여 천부적인 감각으로 이룰 수 있는 경지…. 너의 본디 지닌 재능으론 어림도 없는 수련이다….]
“…….”
내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제기랄! 거대한 재능을 필요로 하는 수련이었던가?’
하지만 나는 재능이 없는데!
이런 천부적인 감각이 필요한 수련을 성공할 확률은 무(無)에 가깝다고!
내가 잔뜩 긴장하자 백련교주가 말했다.
[허나… 아마 지금이라면 가능하겠지….]
“백련교주! 날 믿지 마! 나는 천재도 뭣도 아닌 둔재라고!”
나는 불안함 때문에 이빨을 잠시 부딪히듯 떨었다. 여기서 끝장나버린다는 감각이 절실히 닥쳐왔기 때문이었다. 나는 폐부에서 쏟아져나오는 듯한 말을 연속해서 바깥으로 긁어내었다.
“난 단지 기연을 많이 얻었을 뿐 처음부터 아무것도 아니었어! 장삼봉 진인과 무쌍패 대결을 하면서 더 심하게 느꼈다고!! 그렇게, 혼신의 힘을 다해서 싸웠지만 찰나의 깨달음과 심득따윈 없었어…!!”
[…….]
나는 비명을 내지르듯 소리질렀다.
“난 평범한 사람이야. 세상일이 그렇게 쉽지도 않아. 깨달음을 얻어서 갑자기 강해지는 기적따윈… 일어나지 않는다고!!”
잠시동안 정적이 감돌았다.
그리고 백련교주가 손바닥을 뻗은 상태에서 잔잔하게 말했다.
[확실히 그렇다. 그렇게 쉽게 생사지간의 위기에서 깨달음을 얻는다면 강호의 수많은 무림인들이 그리 쉽게 죽어나갈 리가 없지…. 누군들 자신의 목숨을 걸고 무(武)를 겨루는 절실함이 부족하겠는가? 누구나 자기 목숨을 걸고 싸운다면 절실하게 되어있고, 거기에 거짓말 같은 깨달음이 관여하는 일은 무척이나 드물지…. 절실함이란 깨달음의 조건일 수는 있으나 결국 조건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이윽고 그가 자신의 손바닥을 슬며시 내렸다.
[하지만 그게 바로 무(武)의 재밌는 점이지.]
“…뭐?”
[자신의 생명과 존엄을 지키고자 하는 간절한 행위. 그건 아(我)도 타(他)도 다를 바 없는 소중한 의지다. 그 공평함이 깨달음이라고 하는 하찮은 인위로 깨지지 않는다는 것…. 그 현실적인 냉엄함 또한 무(武)의 본질이며 공평함이지 않은가.]
“그, 그건.”
[열심히 싸워서 상대를 반죽음으로 몰아갔는데 갑자기 상대가 깨달음을 얻어서 나를 죽여버리면 정말 억울하겠지…. 안 그런가. 그 깨달음에 정의가 있다고 말할 수 있겠나?]
생각지도 못했던 이야기에 나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 무림지존의 자리를 수십 년간 지켜왔던 백련교주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니!
그는 공중에 부양한 채 손을 단전 위에 수도하는 자세로 얹은 채 말했다.
[백웅이여…. 비록 기적을 보여주지 못할 망정…. 그대는 그 누구보다도 무(武)에 솔직히 다가갈 수 있는 존재…. 스스로를 폄하하지 말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라.]
“최선을 다했다는 말 한마디로 해결되지 않는 상황이 오더라도…. 동료들이 나를 원망하지 않을까?”
백련교주가 훗하고 웃는 듯 했다.
[그대가 초개처럼 하찮게 죽어간다 해도 누구도 원망치 않을 것이리라.]
“…….”
나는 내가 한심스럽게 느껴졌다.
‘아직도 난 멀었군.’
백련교주의 그릇은 저다지도 큰데 나는 아직도 이렇게 움츠러들어 있단 말인가. 아무리 황제 공손헌원에게 몰리고 몰렸다지만 이렇게 한심한 꼴을 보이게 되었단 말인가.
좀 더 강해져야 한다.
지금까지도 밟히고 깨졌지만, 내게 미래가 있다면…. 나는 진실로 마음을 강하게 만들고 말 것이다!
꽈악
나는 선검을 세게 잡은 채 눈을 반개했다. 그리고 집중상태로 들어가서 격렬하게 머리를 회전시켰다.
암야참을 써야 한다.
머릿속에 즉시 떠오른 정답은 이것뿐이었다. 혼돈을 선검으로 베어야 하지만 내 몸을 감싸고 있는 이 혼돈을 베려면 나 자신을 베게 된다. 물론 검술의 명인 수준에 오른 내가 그걸 할 수 없는 건 아니지만 별개의 정답이 존재했다. 그것은 바로 선검으로 베되 암야참을 응용하는 것!
‘마음이 일어나니…. 내 검은 움직인다…. 그리고 벤다….’
나는 그 말을 되뇌이면서 마음으로 만들어낸 날을 내 몸을 둘러싼 혼돈에 갖다대었다. 그리고 그 순간 격렬한 통증을 느끼고는 움찔했다.
‘크윽!’
의념으로 만든 심인(心刃)은 물리적인 피해와 고통을 주게끔 되어 있었다. 심인을 선검에 덧씌운다 하여 해결되는 게 아니었다. 이게 바로 진정한 심검과 심인의 결정적인 차이점! 이대로 베게 되면 혼돈을 베기는커녕 내 몸만 스스로 난도질하는 꼴이 되고 말리라.
암야참을 써서 혼돈을 베어야 하는 건 확실한데 도대체 어떻게 베어야 하지?
이것 자체가 수수께끼였기에 나는 갈팡질팡했다. 원래라면 이걸 해결하기 위해 수십 년의 폐관수련을 겪어야할지도 모를 정도의 난제! 그러나 앞에서 지켜보고 있던 백련교주가 바로 실마리를 내게 건네주었다.
[흐름이다. 혼돈에도 혼돈만의 흐름이 존재하니, 그 흐름의 맥을 끊어보아라.]
“…….”
[혼돈은 만유 속에 통섭(統攝)하는 듯 하나 그 속에서 고유한 법칙성을 얻을 수 있다. 혼돈은 무한의 자유를 누리는 것 같으나 결국 위대한 근원으로 회귀(回歸)하려는 성질이 존재하기 때문이지. 그걸 읽기 위해서는 너 자신이 혼돈에 스며들어라.]
마치 뜬구름잡는 듯한 말이었다. 나는 재능이 부족해서인지 그 말의 뜻을 잘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그 순간 예전에 들었던 아수라의 말이 생각났다.
[적멸무극의 진짜 약점은 바로 륜(輪)의 이음새다.]
[이음새의 약점은 절대 눈에는 보이지 않지.]
[잘 들어. [흐름]이야. 다섯 개나 되는 의념이 보조를 맞춰서 하나의 흐름에 섞이기 위해 필연적으로 생기는 인위적인 흐름. 만일 상대가 그 하나의 흐름을 파악해서 이음새를 베어버릴 수 있다면…. 적멸무극은 완전히 무력해진다.]
내가 적멸무극을 배워서는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해줄 때 그런 이야기를 들었었다. 암야참의 극에 달한 존재는 적멸무극의 륜 사이의 이음새를 베어서 무력화시킬 수 있다고. 그 당시에는 그저 적멸무극을 배울 수 없게 된 아쉬움에 투덜거렸지만, 교주가 말했던 [흐름]이라는 단어 때문에 그 때의 기억이 떠오르자 다른 생각이 들었다.
‘혼돈에도 ‘이음새’가 존재할까?’
내가 그 이음새를 간파해서 암야참으로 벨 수 있다면 - 그게 바로 정답이 되는 게 아닐까!
나는 아수라가 그 때 펼쳤던 암야참을 떠올려 보았다. 일위(一爲)의 암야참만으로 수천 개의 검영을 분쇄해버렸던 그 신위! 그 당시에는 아수라의 엄청난 무공에 경악만 했었지만, 어쩌면 내가 보아야 했던 건 아수라가 펼친 그 신위의 결과가 아니라 원인이었던 게 아니었을까?
‘따라해 보자….’
나는 중얼거리면서 암야참을 따라하려고 마음먹었다. 그 때 보았던 기술의 흐름, 그리고 아수라의 동세 하나하나를 잔근육 하나까지 머릿속에 떠올렸다. 절대지경이 되면서 그 정도 기억력과 관찰력은 충분히 존재했고 나는 마치 내 앞에 아수라가 서 있는 듯한 착각을 하게 되었다.
아수라가 움직여서 나를 벤다.
암야참은 정확히 내 몸을 에워싼 혼돈의 이음새를 본다.
그러나 맞은편에 있는 아수라의 시선은 내게 공유되지 않으므로 나는 이음새가 어디 있는지 알 방법이 없다.
나는 어떻게 해야 이음새의 존재를 파악할 수 있지?
그 때였다.
나는 순간적으로 내 몸에 내가 아닌 또 다른 존재가 있다는 걸 느꼈다. 마치 내가 아닌 타인이 내 몸을 대신 움직이는 듯한 착각 -
설마 영혼인가?
아니다. 영혼같은 건 느껴지지 않는다.
이것은… 기억이다.
새하얀 섬섬옥수가 내 검의 손잡이를 잡는다. 그리고 환영의 아수라의 검초에 대적하여 마주 암야참을 시전한다.
이는 용왕화련(龍王華蓮).
수백 년동안 연마되어 온 검사의 의지.
타오르는 힘의 검류(劍流)가 검극에 맺힌다.
그 기쾌(奇快)한 검무(劍舞)가 한 차례 흩어지자, 마치 천화(千花)의 꽃잎이 허공에 흐드러지는 듯한 환영이 보인다. [나]와 아수라가 절초를 부딪히는 와중에 나는 어느 새 내가 어디를 공격받을지가 느껴졌다.
살기가 강하게 날아와서 부딪히는 그 곳.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유동하는 혼돈의 이음새가 마치 코앞에 있는 것처럼 선명하게 보인다.
나는 그 순간 검을 현실에서 처음으로 휘둘렀다. 허공에 휘두르고 있었지만 심인(心刃)은 어느 새 선검과 분리되어 있었고, 어느 새 거대한 암야참의 환영이 내 몸를 크게 횡으로 가르는 게 느껴졌다.
치리리링!!
방울이 울리는 듯한 소리와 함께 나는 환영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전신에서 미친듯이 울부짖고 있던 백련교주의 혼돈의 힘이 갑작스럽게 가라앉으면서 그 기세가 소멸되는 게 느껴졌다.
슈슈슉
나는 그 기운이 소멸되면서 동시에 빨려들어가듯 두 개의 상반된 힘이 내 심장 부근에서 회전하면서 부딪히는 게 느껴졌다. 쉴 새 없이 소용돌이가 서로의 칼날같은 외전을 충돌시키는 듯한 거대한 힘의 발현!! 나는 두 개의 소용돌이가 합쳐지면서 강대한 힘이 끝도 없이 증폭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 이건…!!”
[성공했구나.]
“이게 바로 [융합]인가?!”
내가 믿기지 않아서 외치자 백련교주가 말했다.
[그 힘을 선검에 옮겨담아서 천마신공을 상대로 버텨라.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여기까지다.]
“잠깐…!! 내가 어떻게 해낸 거지?!”
나는 당황스러워서 내 손을 번갈아서 쳐다보며 말했다.
“방금 전에 내가 나 자신이 아닌 것 같았어!”
방금 전의 편법수련은 절대로 내 재능으로 이뤄낼 수 없는 것이었다!
오랫동안 무공을 수련했기에 알고 있다. 방금 전의 그 일참을 이뤄내기 위해서는 적어도 수십 수백 년동안 폐관수련해서 검술만 갈고닦아도 부족하리라. 그런데 내가 도대체 어떻게 방금 전 절묘한 암야참으로 혼돈의 이음새를 끊을 수 있었던 거지!
[그랬을지도.]
“뭔가 알고 있는 거냐?”
[…….]
잠시 침묵하던 백련교주가 말했다.
[그저 모험이 성공했을 뿐…. 어쩌면 이게 무신이 원하던 무혼(武魂)의 다른 형태일지도 모른다.]
“……?”
[백웅…. 더 이상 여유가 없구나.]
저벅
백련교주가 공중부양을 끝내고 발을 딛어 내 등 뒤편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내 등 뒤를 막는 듯한 수신류의 전투자세를 취했다.
“교주, 갑자기 왜….”
[그들이 왔다.]
쿠구구구…
백련교주의 맞은편에서는 두 명의 파수병이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파수병들의 전신에서 흘러나오는 기세를 육안으로 보자 눈을 부릅뜨고 말았다.
“……!!”
너무 강해!
방금 전에 내가 지나쳤던 파수병들이 뿜어내던 기운보다 수십 배는 강해 보였다. 나는 저들 하나하나가 지닌 기운이 나보다 훨씬 강력하다는 걸 즉시 깨달았고, 무한히 강해지는 법칙이 적용중이라는 걸 깨달았다.
나는 백련교주에게 말했다.
“대체 저 파수병들의 정체는 뭐지? 사대무류를 쓰던데 저 자들도 원영신과 천령단을 사용했다는 말인가?”
[…….]
“설마 저 녀석들 독고준과 용비천인가?”
백련교주가 침묵하다가 말했다.
[아니다. 그보다 더욱 오래된 존재들…. 아주 오래된 계획에 의해 예비된 존재들이다…. 독고준과 용비천은 아직 고(苦)의 단계인지라 혼연에 적응하지 못했다.]
“……?”
[백웅… 만일에 다음 생이 있다면, 반드시 호월 교주를 찾아내어야 한다. 그 자가 모든 운명의 단초를 쥐고 있다.]
“호월을….”
[온다. 이제 가거라!]
쐐액!!
두 명의 파수병이 달려들어왔다. 그와 동시에 백련교주는 심천무량을 발동시켰고, 거대한 만다라가 위잉 하는 소리를 내며 파수병들의 공격을 막았다. 그리고 그 짧은 순간 한 명의 파수병이 갑자기 괴음을 내는 게 보였다.
[으오오오오오...]
뇌신류(雷神流)
폭주오의(爆走奧義)
혈신(血神)
그 자가 뇌명 비슷한 호흡을 한 차례 하더니 전신에 시뻘건 번개가 튀는 게 보였다. 뇌명과 비슷해 보였지만 완전히 다른 기술이란 걸 멀리서도 직감적으로 느낄 수가 있었다. 극호가 쓰는 기술과 겉으로는 비슷해 보였지만 저건 뇌신지혼에 기반한 게 절대 아니다.
쿠콰콰쾅!!
혈신을 펼친 파수병이 창섬 한 번에 백련교주의 방어막을 파괴해 버리고는 그대로 백련교주의 머리통을 잡아서 바스러뜨리려 했다. 실로 엄청난 힘과 속도였으나 백련교주가 그 순간 절묘하게 힘을 흘리면서 도리어 파수병의 인중을 쳐서 뒤로 물러나게끔 만들었다.
타닷
백련교주의 우위인 듯 했으나 백련교주가 전혀 여유가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서 가라…!! 오래 버틸 수 없다!]
파밧
재차 달려드는 파수병들을 보자 나는 잠시 갈등했으나 이내 이를 악물고는 고개를 돌렸다.
“알았어!!”
나는 백련교주가 머지않아 못 버티고 당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으나 그를 버릴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당해서 결투장에도 못 가게 된다면 모든 게 허사가 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대의 때문이라고는 해도 백련교주에게 뒤를 맡기고 그의 희생을 감내해야 한다는 게 정말로 우울하고 괴로웠다.
나는 계속해서 달렸다. 달리고 또 달리던 중 환영같은 목소리가 내 귓전을 스치고 지나갔다.
[감동의 해후는 어땠지? 간만에 반가운 얼굴을 보아서 즐거웠나?]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환영같은 목소리는 수다를 떨듯 계속 내게 말을 걸었다.
[그런 기분을 알고 있나? 가장 재밌는 놀이를 당장이라도 끝낼 수 있다면 끝낼 건가 끝내지 않을 건가 고민하게 되지. 내게 있어서는 바로 지금이 그 시점이야. 과연 어찌할지 고민을 많이 했지.]
“…….”
[보통이라면 운에 맡기지. 하지만 나는 운조차도 통제할 수 있는 자. 그렇기에 나는 나보다 더 위대한 존재에게 모든 의지를 의탁할 수밖에 없어. 그 분이 가장 우둔하다 하더라도 맹종할 수밖에. 왜냐하면 내게 재미를 주실 수 있는 건 오로지 그 분 뿐이니까….]
“아가리 닥쳐!!”
내가 소리를 버럭 지르자 그 목소리가 껄껄대더니 말했다.
[네가 어떤 선택을 할까…. 큭큭큭큭.]
그 말을 끝으로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나는 그 목소리가 니알라토텝이란 걸 알고 있었기에 이를 꽉 깨물며 증오를 읊었다.
“아가리만 살아있는 새끼. 이마에 칼 박고 싶은 새끼….”
그러면서도 나는 내가 뛰어가는 한 걸음 한 걸음이 죽음으로 향하는 한 걸음이라는 걸 실감할 수가 있었다. 이 길의 끝에 바로 [옥좌]가 있으며, 내 전생에 있어서 최후의 대결일지도 모르는 게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과연 어떻게 될까.
나는 마음을 비우면서 뛰었고, 머지않아 거대한 문짝을 하나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천천히 그 문을 밀어서 열기 시작했다.
끼이이익….
문을 열어서 들어온 순간.
그곳에는 다섯 명의 인영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황제(黃帝) 공손헌원(公孫軒轅)이 나를 보자마자 용포를 흩날리며 뜻밖의 말을 했다.
[전생자. 망량선사가 추가제안을 해 왔다.]
나는 힐끔 이 자리에 앉아있는 새까만 고양이를 보았다. 니알라토텝과 공손헌원의 가운데에 당연하다는 듯 앉아있던 망량선사가 입을 열었다.
[니알라토텝. 나는 이 결투의 참관인으로써 하나의 규칙을 추가할 것을 요구한다.]
이어진 말에 니알라토텝의 웃음이 한층 짙어지는 게 보였다.
[이번 승부에 나 자신을 걸겠다. 그 대신 옥좌에 묶인 승천자(昇天者) 중 한 명을 해방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