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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천뢰지경!
뇌신류 검술의 극한에 도달한 검뢰의 경지와 마찬가지로 창술 또한 그에 상응하는 경지가 있었으며 자유자재로 뇌기를 다룰 수 있는 수준을 천뢰지경이라 했다. 마음의 번개를 생성할 수 있다는 건 같았고 검술은 검뢰, 창술은 천뢰라고 부르는 차이일 뿐이었다. 그리고 전대의 뇌신류 때는 약 4~5명의 천뢰지경급 고수가 있었다고 들은 바가 있었다.
물론 대단한 고수인 건 사실이다. 천뢰지경의 뇌신류 창술 고수라면 내 전생시점에서 절대지경이나 호법사자를 제외하면 강호에 거의 적수가 없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내가 놀란 건 그런 이유가 아니었다.
이 장소는 바로 [옥좌]의 앞으로 가는 길.
이 세상에서 가장 흉험하고 무시무시한 악의의 전당과도 같은 장소에 어째서 뇌신류의 고수가 존재한다는 말인가? 그것도 파수병이라는 존재가 되어있다니!
내 질문에 상대가 대답했다.
[천뢰지경이 뭐지.]
“천뢰지경이란 건 뇌신류 무술경지로써….”
[뇌신류?]
“…사대무류가 뭔지도 모르시오?”
[하나도 모른다. 나는 내 이름도 모르니 처음부터 다 이야기해라.]
“좋소. 잘 들으시오.”
나는 뇌신류와 사대무류에 대한 걸 열심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왠지 눈 앞의 파수병이 뇌신류라고 생각하니 남같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니알라토텝 놈이 옥좌에 오라고 했지만 빨리 오라고 얘기한 적은 없었으니까 천천히 가도 되겠지.’
그렇게 약 한 식경동안 설명을 하자 상대가 뭔가를 중얼거렸다.
[기억났다. 호월때문에 내가 여기 왔다.]
“……?! 호월 교주를 아시오?”
[몰라. 방금 전 불현듯 떠올랐을 뿐이다. 호월이 누구냐?]
“백련교의 제 2대 교주이자 사대무류의 창시자요. 당신은 그와 아는 사이였구려.”
[아는 사이…. 음….]
파수병은 무언가 혼란스러운듯 머리를 휘적휘적 흔들었다. 그렇게 한참이나 침묵하던 파수병이 말을 이었다.
[호월이 내게 대우(大愚)를 만나라 했었다. 왜냐면, 기억이, 안 나. 흠…. 대우라는 게 뭘까?]
“…나한테 물어봤자 내가 알 리가 없잖소. 사람이름인 거 아니오?”
[아냐…. 사람이름이 아니고…. 어떤… 예지된 존재…. 신녀가… 말했.]
중얼중얼거리던 파수병이 갑자기 말했다.
[아아. 정해진 고통의 시간이 다가왔구나.]
슈아아악!!
갑자기 파수병의 몸 전체에서 시꺼먼 촉수같은 게 수십 개나 튀어나와 버렸다. 나는 깜짝 놀라서 그의 뒤로 물러섰는데, 파수병의 살갗과 뼈를 하나하나 헤집으며 부수는 게 육안으로 보이자 괴이하기 그지없었다. 이윽고 파수병의 억눌린 신음소리가 고통스럽게 흘러나왔다.
[오오오오오…. 오오오…. 어째서….]
“괘, 괜찮소?”
[어째서…. 나를… 바쳤는가…. 나는… 이런… 고통일줄은 몰랐다….]
“…….”
파수병이 진심어린 원한과 절망을 품은 목소리로 포효했다.
[언제까지 이 지옥에서 고통받아야 하는가…!!]
콰지지직
이윽고 시꺼먼 촉수가 그의 전신을 완전히 휩싸면서 마치 거대한 식물처럼 강고하게 지반에 내려앉았다. 파수병은 순식간에 흑두건을 쓴 머리만 남은 채 대롱대롱 허공에 매달린 상태가 되어버렸다.
그는 잠시 후 이성을 되찾은 듯 그 상태에서 내 쪽을 보며 말했다.
[백웅이여…. 여기는 나와 같은 자들이 돌아다닌다…. 네가 가는 곳이 안개의 뒤편이라면… 결코 그들과 오래 싸우려 들지 말라….]
“파수병이 더 돌아다닌다고? 왜 그 자들과 오래 싸우면 안 되오?”
[…파수병은… 무한히 강해진다…. 그게 이곳의 법칙….]
“……!!”
뭐라고?!
[나는 왠지…. 너와 이야기하며 과거의 기억을 조금 되찾았구나….]
잠시 침묵하던 파수병이 말했다.
[내 이름을 잊었으나…. 나의 무공을 기억해주겠는가….]
“무공….”
나는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펼쳐보시오.”
슈르르륵
시꺼먼 촉수에서 무언가 분신 같은 게 그림자처럼 흘러나왔다. 이윽고 인간의 형태를 한 그 분신이 내게로 쇄도하듯 달려들었고, 나는 검을 뽑아서 그 분신의 공격에 대적했다.
일수일장(一手一掌).
무공의 특징은 대번에 알 수 있었다. 왼 손은 수도(手刀)의 형태를 잡고 오른손은 전형적인 장법의 자세인 포장(捕掌)의 형태를 잡고 있었다. 저런 무공이 드물긴 하지만 없는 건 아니었기에 나는 끝까지 무공을 관찰하다가 수도가 먼저 내 심장을 찌르는 걸 빠르게 피하며 목을 베어 반격했다.
하지만 그 순간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오른손의 포장이 내 검면(劍面)에 달라붙듯이 추격했고, 왼손 또한 수도에서 포장의 자세로 바뀌어 흡인력으로 내 검의 궤적을 뒤트는 것이었다. 절묘한 합식이었기에 나는 무리해서 베다가는 큰일날 거라는 걸 깨닫고는 반 보를 신법으로 물러나며 삼보절기로 다음 기회를 잡으려 했다.
쿠앗!!
“컥!”
갑자기 내 전신에서 일어나는 거대한 역류! 정확히는 내 몸 안의 피가 마구 끓어오르면서 터질 것만 같았다. 아니, 진작에 터졌어야 할테지만 내 내공이 너무 거대해서 강제로 억제하고 있을 뿐이었다. 눈이 터질 것만 같은 역류의 압박감을 정신집중으로 이겨내고 있자 이번에는 혈관의 피가 소용돌이치며 회전까지 하는 게 느껴졌다.
‘이, 이게 무슨….’
마치 용이 내 혈맥에서 또아리를 틀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이를 악물며 크게 사자후를 터뜨려서 기력을 강화시켰다. 이 수룡을 기술적으로 해결하려면 기경팔맥의 달인이어야 하는데 내 내공조예가 그런 신의 경지는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강제로 힘으로 몰아내지 않으면 몸이 터질 게 분명했다.
“크합!!”
쿠웅
어마어마한 내공을 터뜨렸던 덕분일까? 상대의 비기는 순식간에 멈추었고 초수교환도 거기까지인 듯 했다. 나는 상당한 체력을 소모했기에 잠시 숨을 고르다가 파수병에게 질문했다.
“이건 대체 무슨 무공이오? 태어나서 처음 보는 무공이군….”
[오의(奧義) 수룡팔극인(水龍八極印)과 수룡혈폭(水龍血爆)이다... 흡인력을 이용해서 네 몸에 수룡인을 먼저 찍었고 그 틈으로 의념의 수룡을 밀어 넣어서 피를 조작해서 폭발시킨다….]
“……!! 아, 아니 그 말은….”
나는 황당해서 외쳤다.
“당신 뇌신류 아니었어?! 그건 수신류 무공인 거잖아!!”
수룡팔극인도 수룡혈폭도 생전 처음 들어보지만 어쨌든 수(水)가 들어가고 수기를 조종하는 무공이라면 수신류 무공이 틀림없다! 그러자 파수병이 말했다.
[모른다…. 그냥 기억이 났다…. 나는 아무래도 수신류와 뇌신류를 다 익혔었나 보군….]
“…….”
[아니…. 더 익혔나….]
“제기랄! 대체 뭐 하는 작자요? 당신이 알고 있는 그 무공은 백련교주도 모르고 있는 것 같은데 대체….”
[그오오오… 오오오…. 또 다시… 고통이….]
“아앗.”
슈르르륵
슈르륵
얼굴이 촉수에 뒤덮여가던 파수병이 뭔가를 깨달은 듯 외쳤다.
[그렇군…. [옥좌]는 너에게 정보를 주는 것 자체를 거부하는가…. 그렇다면 곧 네 앞에 나타나는 건 다른 파수병이다…!!]
“뭣?”
[도망… 쳐라…!!]
슈륵!
잠시 후 파수병의 모습이 촉수로 된 나무 안쪽으로 사라졌다. 비명조차도 삼켜진 걸 보면 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촉수에 잡아먹힌 듯 했다. 나는 황당해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지만 동시에 오싹한 걸 멈출 수가 없었다.
‘제길…. 대체 뭐냐고….’
나는 일단 떠나기로 했다. 마지막 말대로라면 이제 방금 전의 파수병을 볼 수 있는 확률은 사라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괴기스러운 광경에서 빨리 탈출하고 싶은 마음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타다닷
한참을 뛰듯이 걷고 있자 갑자기 눈앞에 파수병의 형체가 보였다. 나는 그 파수병이 이번에는 쌍장으로 전투자세를 잡으며 나를 기다리고 있자 손쉽게 피해갈 수 없음을 알아차렸다.
뇌령인(雷靈印)!
쿠콰콰콰!!
단숨에 내 최대능력으로 뇌령인을 날려서 파수병을 견제하려 했지만 산악도 날릴 수 있는 뇌령인을 상대로 그 자가 바로 절기를 써서 대응하는 게 눈에 보였다.
풍신류(風神流)
천도풍신(天到風神)
“……?!”
저건 용비천의 기술?!
빠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뇌령인과 천도풍신이 부딪혔다. 당연히 급수로 따지면 뇌령인보다 천도풍신이 훨씬 높았지만 무공의 잠재력으로 친다면 전성기의 용비천도 지금 내 뇌령인을 절대로 막을 수 없으리라.
하지만 상대의 손이 일렁이더니 기묘한 손동작과 함께 천도풍신의 형태가 의념으로 바뀌는 게 보였다. 마치 뜨개질을 하는 것마냥 보였다.
진(眞) 최종오의(最終奧義)
투명호접도(透明胡蝶刀)
천도풍신의 형태가 거대하고 투박한 박도처럼 변했다. 그리고 동시에 상대가 신도합일(身刀合一)의 기세로 도리어 속력을 높여서 내게로 돌진해 왔고, 나는 그 기세를 정면으로 받아내면 아무리 나라도 큰 피해를 입는다는 걸 알아차렸다. 나는 급히 도첨이 향하는 방향을 피하면서 방어초식을 전개했고, 다음 순간 정말로 놀랄 일이 벌어지는 걸 느꼈다.
슈칵!!
“크아악?!”
나는 그대로 팔이 잘려나가버려서 비명을 질렀다.
‘아니 씨발 어째서!! 막았는데!’
분명히 막았다! 그 이상 확실할 수 없을 정도로 검뢰를 끌어올려서 막았단 말이다! 그런데 마치 신도합일의 박도가 투명해지는 것처럼 변하더니 내 검뢰는 물론이고 모든 내공방어를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관통해 버리다니!!
파악
나는 급히 떨어져 나간 팔을 붙잡아서 그대로 환부에 직접 대 보았다. 그러자 순식간에 달라붙는 걸 느끼고는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얼마나 정밀하게 잘렸으면.’
저건 정말로 풍신류의 무공이 맞긴 한 것인가? 풍신류 무공에 상대의 방어를 무(無)로 만들어서 투명하게 관통해 버리는 성질이 있다고는 듣지도 못했다! 풍신류는 분신술과 환술로 먹고 사는 문파 아니었나?!
그리고 나는 바로 직감할 수 있었다.
뭔가 여기 있는 파수병들이 쓰는 사대무류는 내가 아는 것과 다르다!
“이봐 잠깐 당신도 뭔가 기억을 잃은 것 같은데 내가 설명을….”
진(眞) 최종오의(最終奧義)
투명호접도(透明胡蝶刀)
슈칵!!
“크악! 씨발!”
다시 한 번 모든 방어를 무시하는 투명한 마도(魔刀)가 날아들자 나는 기겁해서 피했다. 저 투명호접도는 어떻게 된 건지 검뢰고 뭐고 다 관통해 버려서 막을 방법이 없다! 게다가 더 골치 아픈 건 허공에서 완전히 투명해지기 때문에 도저히 육안으로는 도법의 투로를 간파할 수가 없다는 점이다! 절대지경의 의념으로 얼추 파악은 할 수 있었지만 그마저도 확실치 않은 진정으로 악랄한 무공이었다.
상대는 전혀 얘기를 할 생각이 없어보였다. 그저 죽어라고 공격하는 걸 보자 나는 상대를 때려눕히거나 도망치거나 둘 중 하나라는 걸 알아차렸다.
‘제에기라알… 내가… 내가 뇌신류 종사인데 풍신류 따위에게….’
부들부들
나는 뜬금없이 풍신류를 피해서 달아나는게 몹시 자존심 상하는 기분이 들었다. 저놈의 호접도를 한 번은 대적해 봐야 자존심이 살아날 것 같았다. 나는 그래서 이번에는 검뢰 대신에 선검을 일으켜서 상대의 투명호접도를 막아보았다.
키잉!!
그러자 기묘한 울림이 터져나오며 선검이 광검(光劍)처럼 번쩍거렸고 그 빛의 잔광에 상대의 투명호접도의 유리같은 검날이 비쳐보였다. 그리고 일순간 비쳐보인 투명호접도의 도광이 마치 우거진 수풀처럼 수십 가지로 뾰족거리는 걸 보자 나는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진짜 상대를 소리없이 죽이려고 만든 최종오의군!’
그나마 선검으로는 막을 수 있음을 느끼고 내심 안도했지만 나는 이상함을 느꼈다.
‘풍신류에 저런 압도적인 기술이 있었다면 왜 용비천이 익히지 않은 거지?’
용비천 너도 나만큼 재능이 없었나보구나!
나는 내심 용비천에게 욕을 하면서 상대를 피해서 삼보절기로 거리를 벌렸다. 삼보절기를 쓰자 아무리 투명호접도라고 해도 내 움직임을 따라잡아 습격하지는 못했고, 나는 약간의 헛점을 틈타서 그대로 멸혼보를 써서 도주했다.
파바밧
일단 체면치레만 했으면 됐다. 계속 싸워봤자 무한히 강해질 뿐이라고 하니 계속 부딪혀서 좋을 것은 없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한참을 멸혼보로 뛰다가 또 다시 한 명의 파수병을 마주친 듯 했다.
‘큭. 다 온 느낌인데….’
이번의 파수병은 좀 기이한 느낌이 들었다. 합장을 한 채로 그 자리에 붙박혀서 움직이지 않았는데, 이상하게도 나는 그 합장을 한 파수병의 곁을 빠져나가기 힘들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저 자세에서는 어떻게 하더라도 내가 삼보절기와 멸혼보로 몸을 뺄 수 있을 것 같은데 왠지 꺼림칙하다. 저 공간을 빠져나가려는 순간 잡혀버릴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이 든 것이다.
그리고 잠시 후 파수병이 말했다.
[드디어 왔군.]
영문모를 소리를 하던 그 파수병이 갑자기 합장하던 자세를 바꾸었고, 이윽고 그의 몸 주변에 거대한 만다라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우우우우!!
생전보다 열 배는 거대해진 만다라! 나는 그 만다라의 만개(滿開)가 무척이나 익숙했기에 눈을 부릅떴고, 잠시 후 파수병이 자신의 의념을 전개한 채 말했다.
[기다리고 있었다.]
“…….”
나는 상대의 정체를 바로 알아챌 수 있었기에 멍하니 서 있었다. 그리고는 상대에게 말했다.
“당신은 다른 파수병들과 달리 기억을 잃지 않았군.”
[옥좌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지…. 아슬아슬했다….]
“천마는 신역에 도달한 여동빈과 장삼봉조차 다 죽여버렸다. 알고 있어?”
[그럴 수밖에…. 처음부터 그렇게 만들어진 무공이니.]
짐작이 간다는 듯 중얼거린 그가 수신류의 권법자세를 잡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안 싸울 건가?]
“……아니.”
[그거면 됐다. 천마신공을 이길 순 없지만….]
백련교주(白蓮敎主) 독고운천(獨孤運天)이 훗하고 웃었다.
[지지 않는 법을 가르쳐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