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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1205화 (1,202/1,615)

1205====================

사신지혼(四神之魂)

쿠르릉

바로 그 순간 천둥이 울리는 소리와 함께 망량의 등 뒤편에서 거대한 신의 몸뚱이가 소환되는 게 보였다. 반고소환이 현실으로 이어지면서 마저 소환이 진행되는 중인 것이었다. 본디 반고의 소환이므로 크게 기뻐해야하거늘 장내에 있는 아군은 그 누구도 숨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긴장해 있었다.

천마의 수족(手足)에 전욱과 소호가 소환되었다는 것.

그리고 오제(五帝)의 근원이 황제라는 것.

‘처음부터 오제가 아니었다….’

황제 공손헌원 한 명일 뿐이었어.

내가 뒤늦게 상황을 이해하고 멍해져 있자 뒤편에 있던 제갈사가 말했다.

[천마여. 밑천까지 다 털어서 보여주는 건 패배의 공식이 아닌가? 크크. 백웅이 다음 전생으로 간다면 이 행동은 크나큰 패착이 될 텐데.]

“상관없다. 어차피 너희 제갈가의 책사들은 이걸 어느 정도는 짐작하고 있었을 테지.”

천마가 투명한 눈으로 허공에 소환되고 있는 반고의 육신을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인류 최후의 영웅들이여. 약간은 경의를 표하겠다. 내가 인과율을 읽지 못하는 순간의 빈틈…. 그 틈에 여기까지 내게 대항할 수 있다는 사실에….”

그 말이 끝나는 순간 천마의 왼쪽 팔이 슥하고 움직였고 그 팔이 향하는 방향은 바로 미호 쪽이었다. 미호는 찰나에 그걸 감지한 듯 포효했다.

[위대한 천상의 반고시여!! 나는 여와에게 선택받은 질서의 사도이니, 내게 힘을 주소서!!]

위잉!!

미호의 등 뒤에 후광처럼 원시적인 형태의 음양반(陰陽般)이 떠올랐다. 그것은 틀림없이 지금 소환되고 있는 반고의 힘을 빌리는 간접소환술이었다.

또한 황제의 왼팔에서 뿜어져 나온 것은 바로 전욱의 본체였다. 삽시간에 출현한 전욱의 본체는 육중한 암흑거신의 몸체를 크게 내뻗더니 한 손에 장대한 크기의 도리깨를 소환했고 이윽고 격렬하게 휘둘러서 미호의 전방을 때렸다.

쿠콰쾅

전욱의 도리깨가 미호의 음양반을 뚫지 못하고 그대로 튕겨나왔다. 아까 미호가 자신의 힘이 오제에 못지 않다고 했던 건 결코 허세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별 피해없이 막아낸 듯한 미호도 갑자기 주춤거리며 비명을 터뜨렸다.

[아아아아악.]

“미호!!”

끔찍한 비명!

치리링 - !!

자세히 보니 방금 전 전욱의 도리깨가 가격했던 미호의 어깨와 목덜미 사이에 마치 황금색으로 빛나는 낙인같은 게 찍혀 있다! 분명히 저 황금색의 낙인이 미호에게 큰 타격을 준 것이 분명했기에 내가 휙하고 천마가 자신의 왼팔으로 전욱을 회수하며 말했다.

“순수한 힘의 크기에서는 분명 지금의 미호는 전욱에 못지않겠지…. 하지만 내 왼팔을 회수하면서 태초에 봉인되었던 내 권능 또한 부활했다.”

“뭐?!”

“나는 사제(四帝)를 창조하면서 사지(四枝)를 스스로 찢었던 거나 마찬가지였다. 여태껏 사람으로 치면 비참하기 짝이 없는 몰골이었지. 나 이외의 그 어떤 지배자도 종말에 대비하기 위해 이런 위험을 감수했던 자는 없었다.”

사공린의 얼굴을 하고 있는 천마의 얼굴에 묘한 웃음이 떠올랐다.

“알겠는가? 나는 종말이 시작되면 힘을 되찾아 계속 강해진다는 거다, 백웅….”

그 말에 덜컹하고 마음속에서 뭔가가 무너져 내리는 소리가 들린다.

“…….”

진짜 힘?

이제 와서?

천마의 힘만 하더라도…. 지금까지만 해도 도저히… 백 번 전생해도 이길 수 있을지 의심스러울 정도인데…. 여기서 더 강해지고 있단 말인가?

이게 정말 현실일까.

내가 망연자실해서 굳어있을 때 망량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반고여!! 나 그대를 소환한 술자(術者)로써 고하노니. 눈앞의 사악함을 벌해주소서!!]

구구구궁

망량의 일언과 함께 지금까지 느릿하게 소환되던 반고의 몸뚱이가 빠르게 나타나, 새하얀 손 하나가 허공에 떠오르게 되었다. 그 손은 천천히 천마의 몸을 옥죄는 자세를 취했는데, 천마는 그 공격을 전혀 피할 수 없는 듯 했다.

본디 피할 수 없는 걸 이상하게 여길지도 모르지만 지금의 나는 아니다.

신력을 모아서 눈에 집중하니 보인다.

반고의 손이 일으키고 있는 압도적인 인과율의 왜곡!

질서의 태초신이 지니고 있는 너무나 강력한 신성(神聖)!

그 질서의 힘이 천마의 모든 반항이나 회피동작을 무시하고 잡아채고 있는 광경이 똑똑히 보이고 있었다.

덥썩

이윽고 천마가 반고의 손에 붙잡힌 상태가 되었으나 그는 여유롭게 말했다.

“중원대륙의 상고시대였다면 이런 공격이 내게 의미있었을지도 모르지. 나도 이럴 가능성을 늘 경계하여 지상에 직접 관여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천마의 눈이 황금안(黃金眼)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이미 승천은 나의 것이다. 판이 다 끝나고 나서 끼어들면 뭐 하는가? 위대한 질서의 축이여…!”

천마신공(天魔神功)

극성(極成)

만마군림(萬魔君臨)

우두두둑!!

“……!!”

저, 저게 무슨….

나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괴이한 광경에 입을 벌렸다.

천마가 그냥 왼팔을 쭉 밀어서 완력으로 반고의 손을 밀어내고 있다!! 반고의 손은 계속해서 천마를 옥죄려는 것 같았지만 순수하게 힘으로 밀리고 있는 기색이었다. 이건 망량조차도 예상치 못했는지 그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고, 그의 얼굴에 절망의 기색이 스쳐지나갔다.

[말도 안 돼….]

천마신공…!!

나는 저 힘을 보자 그저 경외밖에 느낄 수밖에 없었다. 신이 무공을 익혀 저런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걸 상상도 해본 적이 없었을 뿐더러, 심지어 그 힘이 태초신 반고에 대항할 수 있을 정도일 줄이야!

진정한 힘을 되찾은 황제는 저 정도로 강하다는 건가!

다만 최소한의 위안이 되는 건 저 힘을 발휘하는 천마도 전력을 다하는 듯 전신이 황금빛으로 둘러싸여 꿈틀거리며 천천히 벗어나고 있다는 사실 정도였다. 그러나 힘겹게 이겨내든 쉽게 이겨내든 반고에 필적하는 힘이라는 건 달라지지 않는다.

덜덜

‘뭘 해야하지?’

아니…. 뭘 할 수 있긴 한가?

나는 내 전신이 떨리는 걸 느꼈다. 계속 지켜보고만 있으니 뭘 해야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아까부터 들고 있었지만 그런 생각조차 잊혀지고 말았다. 몸은 멀쩡하지만 저런 괴물을 상대로 대체 내가 뭘 할 수 있을지, 아득한 절망감이 가득했다.

[배, 백웅….]

그 때 힘겹게 미호가 내게 말해왔다.

[여기까지구나…. 부디… 다음 생으로 가거라!]

파앗

미호의 신형이 새하얀 빛처럼 변해서 전방으로 뛰어들었다. 미호는 천마가 완전히 반고의 압력을 이겨내기 전에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 그런 천마에게 조금이라도 타격을 줄 셈이었다. 나는 그런 미호의 행동에 깜짝 놀라서 외쳤다.

“바루나 - !!”

물의 사대신기, 바루나가 즉시 발동했다. 사대신기 중에서도 가장 방어력에 특화되어 있는 바루나는 장벽이나 방어막을 펼치게 되어 있었고, 삽시간에 바루나의 장막이 미호의 몸을 둘러쌌다. 동시에 미호의 몸통박치기가 쩡 하는 소리와 함께 천마를 들이받았다.

쿠쿵!

“영겁지무(永劫之舞).”

그러나 천마는 그 짧은 순간에 반응한 듯 오른쪽 다리를 내밀어 미호의 이마를 막아버렸다. 미호의 필사적인 돌격도 저지당한 것이다.

“죽어라.”

동시에 다시 한 번 쩍 하는 소리와 함께 황금색의 인(印)이 미호에게 박히려는 것 같았지만 바루나의 수막(水幕)이 터져나가면서 황금색의 인이 허공에 사라지는 게 눈에 보였다.

그러자 천마가 불쾌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사대신기 덕에 목숨을 건졌구나, 여우.”

투웅!!

[카학…!!]

미호의 몸이 천마의 이어진 발차기에 튕겨서 날아갔다. 그 한 번의 발차기가 미호에게 위중한 상처를 입힌 듯 전신에 핏줄기가 솟아오르는 게 보였다. 나는 미호가 중상을 입자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아서 이를 꽉 깨물며 전의를 불태웠다.

‘제기랄!!’

미호의 상태를 보면 더 이상 싸우는 건 무리야! 이제 더는 여유가 없어!

압도적인 힘의 차이 때문에 쫄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

나는 덜덜 떨리는 몸을 억지로 다잡은 채 어떻게 싸워야할지를 찰나지간에 고민했다. 오랜 기간 단련해 왔던 전투의 경험 덕분에 짧은 순간에 수많은 전략이나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고, 나는 순간적으로 이상함을 느꼈다.

‘저 놈은 왜 황금색 인을 써서 미호를 끝장내지 못한 거지?’

대답은 금방 머릿속에서 나왔다.

연속사용을 할 수 없는 능력인 것이다.

저 황금색 인에는 뭔가 비밀이 있다!

“아그니!!”

나는 사대신기 중 아그니를 소환해서 천마를 겨누었다. 원거리에서 견제하려면 불의 신기 아그니가 제일 나을 것이다!

투웅!

“사대신기라. 나도 진심으로 대적해야겠군.”

아그니가 발동되자 천마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신염(神炎)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별안간 이번에는 자신의 오른쪽 팔죽지를 들어올렸고, 그 팔죽지는 순식간에 거대한 암흑의 팔으로 변화했다.

“전욱이여…. 나의 팔, 나의 힘이 되어라. 마치 그 때처럼.”

팔을 소환해낸 천마가 알 수 없는 소리를 뇌까리더니 다시금 천마신공을 운용하는 게 보였다.

천마신공(天魔神功)

치우살(蚩尤殺)

그리고 흑완(黑腕)이 아그니의 화염과 부딪히자 뜬금없이 제갈사가 비명을 질렀다.

[크아아악.]

“제갈사?!”

퍼벙!

가만히 있던 제갈사의 몸에 아그니의 불꽃이 옮겨붙은 것이다!

아니 대체 왜?!

저 천마신공은 무슨 기술이지?!

‘제길 이대로면 사대신기에 제갈사가 타죽겠어!’

나는 급히 아그니의 신염을 회수하려 했지만 아그니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려퍼졌다.

[전생자여. 이번 출염(出炎)이 마지막이다! 이걸 그대가 회수하게 되면 더 이상 그대는 화염을 쓸 수 없다!]

네?! 어째서?!

[신기 아그니에 맺힌 인과율이 부족하다!]

아그니는 그 한마디를 끝으로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으나 나는 속이 타들어감을 느꼈다. 그렇다고 이대로 사대신기에 제갈사가 죽게 내버려둘 수도 없는 게 아닌가!

내가 도저히 평정을 찾지 못하고 갈팡질팡하고 있을 때였다.

마왕의 육신이 화염에 불타고 있던 제갈사가 갑자기 내 쪽을 보며 말했다.

[크… 크큭. 백웅. 도리어… 다행이군…. 천마신공…. 이게 아직도 무공으로 보이나…?]

“젠장! 일단 거둘….”

[하지 마라!! 인과율이 부족할 터!]

제갈사가 몸이 불타는 고통에도 똑바로 내게 시선을 향하며 말을 이었다.

[속지 마라!! 신역을 이길 수 있는 무공이라 하여…. 신역보다 뛰어난 무공은 아니다! 황제는 그 파해법을 두려워하여 널 속이고 있는 것이다! 이걸로 난 눈치챘다….]

“제갈사.”

[이것이 내가 둘 수 있는 마지막 한 수다!]

화르르륵….

점차 제갈사의 마(魔)로 가득찬 몸이 아그니에 타올라서 몸의 절반 가까이가 소멸되어 있었다. 내가 멈칫하자 제갈사의 눈이 새빨갛게 물들더니 포효했다.

[고하노니 태초의 사룡(死龍) 니랏사 다그여!! 나 스스로를 제물로 바치나니, 백웅을 도와주소서!!]

퍼어엉

그것이 대마왕 제갈사의 최후였다. 아그니의 불꽃이 제갈사를 집어삼키자마자 시꺼먼 암흑의 핵이 허공에서 떠올랐고, 곧장 내 손목을 향해서 빨려들어오는 게 보였다. 나는 손목에서 시큰한 통증을 느꼈고 동시에 머리가 아찔해지면서 머나먼 곳에서 목소리가 들려오는 게 들렸다.

[종말의 전투에 불려올 줄이야. 복희, 과연 네가 태초에 말했던 대로군….]

거대한 은하 속의 성계(星界).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어둠의 공간 한가운데에 또아리를 틀고 있던 거대한 성계의 암흑룡(暗黑龍)이 서서히 삼두(三頭)를 치켜세우는 게 머릿속에서 느껴진다. 은하의 성단 너머와 시공간이 연결되는 감각과 함께, 그 삼두거룡(三頭巨龍)이 나직이 말했다.

[인과율은 성립되었으니.]

쿠구구구…!!

내 등 뒤에 형용할 수 없는 어둠의 힘이 도사린 게 느껴졌다. 갑작스럽게 [옛 지배자]의 마력이 내 몸에 잔뜩 들어차는 느낌이었다.

“……!!”

니랏사 다그!

사도 드라큘라와 우연히 연결되었던 머나먼 은하의 [옛 지배자]!

드라큘라가 내게 건네주었던 손등의 각인, 설마 제갈사가 그걸 염두에 두고 스스로를 공양하여 니랏사 다그를 소환할 줄이야!

천마는 니랏사 다그가 출현하자 마치 예상했다는 듯 말했다.

“오랜만이군, 위대한 삼두룡이여. 만신전에 있을 때 그대가 출현할 인과율을 읽었으나 그대 스스로가 받아들일 확률이 너무 낮아서 염두에 두지 않았었네.”

[…….]

“복희와 대등한 세월을 살아온 원죄의 고룡(古龍)이 하찮은 마왕의 소환을 받아들일 줄은 몰랐군. 그것도 완전소환일 줄은.”

마치 옛 친구를 대하는 듯한 말투.

황제 공손헌원과 니랏사 다그는 구면인 듯 했다.

그러자 니랏사 다그가 말했다.

[위대한 야망을 품은 자여. 가장 특이한 근원을 가진 지배자가 가장 종말의 승리에 가까워졌구나. 그럴지도 모를 거라 생각했지만…. 본좌도 그대의 업적에 경의를 표하노라.]

“고맙군.”

[허나 그대 스스로가 뿌리를 극복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군…. 그런 잔재주에 [기어오는 혼돈]이 과연 당할지.]

명백한 비웃음이 스며있는 말투.

무언가를 알고 있는 걸까?

천마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꾸했다.

“질투는 보기 흉하군. 우주의 원로(元老)라 하여 정중히 대접받을 생각은 하지 말게.”

퍼벙!!

그 순간 천마가 지금껏 밀어내고 있던 반고의 새하얀 손이 완전히 터져나갔다. 그리고 압력을 완전히 벗어난 천마의 신형이 내 쪽으로 쇄도해 왔고, 그런 천마를 향해서 다시금 허공을 부유하던 아그니의 신염이 날아들어서 유도공격을 했다.

천마신공(天魔神功)

치우살(蚩尤殺)

다시 한 번 천마가 흑완을 휘둘러 기이한 절기를 발휘하자 아그니의 불꽃은 이번에는 망량에게로 옮겨붙은 것 같았다. 어찌된 영문인지도 알 수 없었다.

화륵!

그러나 망량은 아그니의 불이 붙었는데도 제갈사처럼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 그의 전신에 타오르는 불꽃은 은염(銀炎)으로 변화해 있었고, 망량은 눈을 감은 채 정신을 집중해서 뭔가를 암송하는 듯 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몸은 전혀 타거나 녹지 않은 채 그저 아그니의 화염을 집약시키고만 있었다.

그리고 천마의 정권(正拳)이 나를 향해 어마어마한 속도로 뻗어져 나왔다.

꽈앙!!

[오오…. 강하구나.]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내 몸을 움직이던 니랏사 다그가 거대한 흑암의 힘을 덧씌워서 황제의 공격을 막아내었다. 천마의 손을 붙잡은 내 손아귀는 마치 바위처럼 단단해져서 전혀 움직이지 않았고, 지금껏 천마를 상대하던 중에는 가장 뛰어난 전적이 틀림없었다.

천마신공(天魔神功)

영겁지무(永劫之舞)

그 순간 천마의 신형이 잠시 흐릿해지더니 완전히 사라진 듯 했다. 그리고 찰나후에 바로 그 자리에 나타나더니 다시금 내 명치를 정권으로 후려쳤고, 이번에는 니랏사 다그도 막아주지 못하고 그대로 얻어맞을 수밖에 없었다.

뻐억!!

“커흑.”

나는 명치를 맞고 날아가면서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니랏사 다그는 틀림없이 우주에서 손꼽히는 강력한 [옛 지배자]일 텐데 그 자의 힘으로도 천마신공을 완전히 막을 수 없단 말인가?! 그리고 [옛 지배자]의 강고한 마력이 천마를 완전히 옥죄고 있었는데 방금 전 영겁지무라는 기술은 어떻게 해서 그걸 빠져나온 거지?!

그리고 날아가는 내 몸을 통제해서 잡아준 니랏사 다그가 나직이 내 머릿속으로 말했다.

[저런 존재와 싸우다니 과연 전생자로군. 눈앞에 있는 건 현재 우주 최강에 가장 가까운 존재이다.]

‘천마신공의 정체를 알고 계십니까?! 알려 주십시오!!’

내가 간절하게 마음속으로 외치자 그가 말했다.

[혼연(混然)의 속성을 지닌 자이다. 태허를 지닌 자는 혼연의 양(陽)으로, 혼돈을 지닌 자는 혼연의 음(陰)으로 누를 수 있으니 그 누구를 상대하더라도 상성에서 절대적인 우위를 지닐 수 있는 무적이다. 나도 혼연을 극복할 방법은 없으니, 아마 다음 번 공격에 소멸하겠구나.]

‘…….’

[황제의 전리품이 되어 영겁토록 고통받을 그대에게 미리 가련하다고 말해두지….]

니랏사 다그의 말에 나는 이를 악물며 말했다.

‘더 이상 의지하지 않겠소! 그러니까 닥치고 한 순간만 놈에게 덤빌 수 있게 틈을 만들어주시오!!’

[어떻게?]

‘몸이 터져도 좋으니까 모든 마력을 주시오!’

[좋다. 우주 최후의 발버둥을 지켜보지….]

쿠르릉!!

다음 순간, 니랏사 다그의 모든 마력이 내 몸에 들어차는 기분이 들었다. 일순간이지만 [옛 지배자]의 진신마력이 들어차자 대라멸진을 훨씬 초월하는 고양감과 초월감이 몸에 울려 퍼졌고, 내 몸이 압도적인 마력 때문에 찌부라지는 듯 했다. 그러나 나는 이미 생각해둔 게 있었기에 마지막 힘을 짜내어서 외쳤다.

“바유! 바루나! 내 몸을 지탱하라!!”

우웅

수풍(水風)의 신기가 내 몸을 반으로 나누어서 각자 보호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어마어마한 마력이 잠시동안이지만 수그러들어서 통제가능하게 되었고, 나는 이로써 내가 쓸 수 있는 사대신기의 모든 인과율을 소모했음을 알게 되었다.

동시에 나는 모든 힘을 다 짜내어서 최후의 비기까지 시전했다.

대라멸진(大羅滅盡)!

평상시보다 수백 배는 힘이 증폭한 것 같다! 나는 이게 내 전생 중에서 최강의 상태라는 걸 깨닫고, 최후의 일격을 위해 천마를 향해 도약했다.

‘이게 마지막이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이게 안 통하면 더는 없어!

피잉

뭔가가 끊어진다.

소리의 영역은 애저녁에 지나쳐 있었고, 잠시동안 내 몸이 빛의 영역에 들어섰고, 이윽고 그것조차 뛰어넘은 공허 속으로 진입했다. 그 공허 속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지만 무수한 입자들이 떠돌고 있었고 점차 작아지더니 구를 가운데에 두고 회전하는 전륜(轉輪)이 느껴졌다.

공(空).

너무 빠르고 강해지니 아무것도 없는 허(虛)가 비친다는 건 어찌보면 모순같았다. 그러나 그 모순이 형용되는 기이한 세계 속에서 나는 내 자신을 머나먼 허공에서 내려다보는 기분이 들었다. 전륜이 내 주먹을 휘감아오며 거대한 힘을 응결시켰고, 그 힘은 이윽고 천마를 향해 정면으로 쇄도했다.

파앗

그 순간 내 뇌리에 기억이 비친다.

이건 [누군가]의 기억이었다.

[…너무나 억울하오. 우리는 그저 의술을 펼치고 싶었을 뿐…. 허나 무림인이란 자들은 알량한 이득 때문에 내 혈육을 붙잡아 고문하고 고깃국으로 만들어 먹었소….]

[살아가는 것 자체가 죄라고 말할 셈이오…?]

[…우리 의원들에게 힘을 주시오…. 힘을 가진 후에 그대의 질문에 대답하리다…. 크흐흐….]

[드디어 완성되었소…. 이게 바로 대라멸진…. 무림을 멸망시키고 말리라….]

[누군가]가 피비린내 나는 벌판에 수천 명의 시신이 쌓여있는 걸 지켜보고 있다.

평범하게 생긴 그 의원은 어느 새 두 주먹으로 무수한 무림인들의 생명을 끊어버렸다. 이 자리에 몰려들었던 수천의 무림인들은 단 하나도 살아돌아가지 못했다.

무공도 모르던 의원이 [누군가]를 보며 허탈하게 웃었다.

[무살(無殺)…. 당신이 말하는 무신(武神)은… 이런 걸 무(武)라 칭한단 말이오?]

무살은 고개를 끄덕인다.

콰칭!!

대라멸진(大羅滅盡)

멸절진의(滅絶眞意)

해금(解禁)

진정한 악에 대한 분노.

그리고 쓰여야 하는 상황에 쓰여야 하는 비기(秘技)의 특성.

그것이 지금껏 누군가에 의해 인과율로 봉인되어 있었다.

…그저 봉인되어 있을 뿐이었는데도 최후의 파멸기로 쓰인 것은 누구의 의도였을까.

그리고 무살(無殺)의 절기, 대라멸진은 종말에 이르러 진정한 이름을 되찾았다.

처음부터 이런 상황이 아니면 드러나지 않는 것이었으리라.

필멸일광(必滅一光)

무의식에서 날린 정권(正拳)이 천마의 영겁지무와 동시에 부딪혔다. 그러자 나는 그 순간 천마의 몸뚱이가 입자만 남은 공허 속에서 완벽하게 분해되더니 두 개로 나뉘는 것을 알아차렸고, 이게 오로지 공허의 영역에서만 관찰할 수 있는 영겁지무의 진짜 능력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영겁지무.

그 진짜 능력은 - 백련교주가 말했듯 법리를 뒤흔드는 혼돈의 춤. 혼돈의 춤사위는 한없이 태허에 가까운 극소의 영역에서 분화(分化)하며, 황제 공손헌원의 혼연을 이용하여 강제로 나뉘게 된다. 그리고 인과율을 읽어 들여서 한없이 자신에게 유리한 선택을 고르게 되는 것이다.

마치 파천의 가호와 같은 느낌 - 아니, 황제는 틀림없이 그 원리를 자신이 따라하고자 하여 만들어내었을 것이리라. 그리고 그 분화 속에서 상대가 택한 행동이 무엇이든 인과율의 선행과 후행 속에서 자신이 원하는 현실을 택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천마신공 영겁지무를 시전하는 사공린을 상대로 백련교주가 단 한 대도 맞추지 못한 이유.

애초에 영겁지무와 대등한 영역까지 인식할 수 없는 한 건드릴 수조차 없다.

무적의 방어이자 회피이며, 동시에 공격으로도 쓸 수 있는 궁극의 절기!

대등한 영역에서 싸울 수는 있으나, 신역절기의 소유자들조차 영겁지무를 상대하기는 까다롭기 그지없다.

구구구궁

그러나 반드시 멸하게 되는 최후의 빛(必滅一光)은 그 원리를 거스를 수가 있다.

아무것도 죽일 수 없는(無殺) 존재가 만들어낸 절기.

무(武)의 이단아가 만들어낸 사술.

그것은 반대로, [이런] 상대를 쓰러뜨리기 위해 특화되어 있는 것이다.

투쾅!!

[아.]

처음으로 천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내 주먹이 그의 명치를 정면으로 때려서 치솟아오르게 만든 것이었다. 그걸 끝으로 나는 전신에서 모든 기운이 빠져나가는 걸 느꼈고, 점차 힘이 풀리는 내 눈에는 천마의 오른쪽 다리에서 단말마가 뿜어져나오는 게 느껴졌다.

[아아아아아아!!]

소호의 영혼이 소멸하고 있다. 천마에게 깃들어 있는 황제의 영혼이 붕괴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소호에게로 피해를 전가시키는 것이었다. 이내 소호의 비명이 잦아들자 이어서 전욱의 고통스러운 외침이 이어졌다.

[크흐으…. 으아아아아아!!]

전욱의 영혼은 비교적 이성이 남아있는 듯 울부짖는 소리가 명확했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전욱의 새까만 흑안(黑眼)의 시선이 내 쪽으로 향하는 게 느껴졌다. 거기에는 무언가 숨길 수 없는 집념과 야망이 스며 있었다.

콰직!!

‘끝… 인가….’

전욱의 영혼에도 타격은 갔으나 소멸지경은 아닌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천마는 크게 날아가서 경직된 채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고, 그건 마치 죽은 것처럼 보였다.

처음으로 천마에게 제대로 된 타격을 입힌 것이다.

나는 정말로 사대신기의 모든 힘이 떨어지고 필멸일광도 완전히 끝나서 더 이상은 아무 힘도 쓸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정말 때려죽여도 이젠 아무런 수가 남지 않은 것이다.

후왁

동시에 니랏사 다그의 소환도 완전히 해제되었다. 방금 전 그 일격으로 모든 계약이 만료되어버린 것이다. 제갈사 최후의 술책도 소멸되었다.

‘제발….’

힘이 빠진다.

눈이 점차 감기는 가운데, 나는 천마의 손이 내 목을 콱 하고 붙잡는 걸 느꼈다.

“아슬아슬했군.”

아무렇지도 않은 목소리.

그 한마디에서 나는 모든 게 끝장났음을 직감했다.

천재일우의 기회가 사라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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