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1202화 (1,199/1,615)

1202====================

사신지혼(四神之魂)

나는 그 순간 사대신기가 하나하나 륜(輪)에서 떨어져 나와 내 앞으로 오는 걸 볼 수 있었다. 사대신기 중에서 아그니와 바즈라는 특히 강렬한 힘을 갖고 있는 듯 심상치않은 힘의 방출이 느껴졌다. 그리고 내 앞에 현신한 아그니가 내게 말했다.

[그대, 법멸(法滅)을 이루리라!]

파앗!

나는 환한 빛과 함께 현실로 튕겨 나왔고, 그런 내 눈 앞에 거대한 마(魔)가 천공을 뒤덮은 걸 볼 수가 있었다. 그것은 말 그대로 [옛 지배자]처럼 보이는 거대한 무언가 였고 마력이 물결치면서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천마를 에워싸는 모습이었다.

‘제갈사!’

제갈사가 모든 힘을 다해서 천마를 봉인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 그리고 그런 제갈사에게 힘을 보태듯 미호가 모든 달의 마력을 쏟아서 봉인에 집중하는 중이었다. 실로 어마어마한 힘의 집중이었으며 저 정도면 천마가 당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그 때 내 귀에 밝고 경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초상기인 류하(劉河)가 왔다~!”

“…….”

그 녀석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히히. 간만임다 폐하.”

나는 목소리의 주인이 누군지 당연히 알고 있었다. 제갈사와 함께 나타난 4인 중에 당당히 섞여있는 그 얼굴을 모를 리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저 녀석은 왜 온 것일까 하는 궁금증이 사실 처음부터 존재했다.

저 녀석이 이제 와서 무슨 도움이 될까?

더 이상 [문]을 여는 능력도 무의미한 종막에 다다랐는데…. 설령 신이 조력자로 온다 해도 이 상황에 큰 도움이 되지는 못하리라.

“류하. 이제 정말 마지막이구나.”

나는 그런 마음을 다 접어두고는 탄식하듯 말했다. 그리고 내 몸 주위에 떠올라 있는 사대신기들에 정신력을 불어넣으며 천공에 떠올라 있는 천마의 고치를 노려보았다.

“죽을 때 죽더라도 저 놈에게 한 방 먹이고 죽을 것이다.”

내가 막 날아가서 달려들려던 그 순간이었다.

덥썩

콰앙!!

“내 얘기 좀 듣고 죽으셔~!”

류하가 갑자기 내 목깃을 확 잡아채서 땅바닥에 내팽개쳤다.

“카학!! 무슨 짓이야.”

내가 화를 내며 일어서자 류하는 뜬금없는 소리를 했다.

“제갈유룡은 안 죽었음다.”

“……!!”

이게 뭔?!

내가 멈칫하며 류하를 쳐다보자 류하가 말을 이었다.

“좀 있으면 여기 올 검다.”

“뭐…?! 나치와의 전쟁에서 사도 할치올레이푸라에게 죽었다고…!!”

“석화에 당했다고 기록돼 있었을 검다. 하지만….”

류하가 웃었다.

“제갈부의 구라였슴다~ 수백 년 전, 그때부터 제갈유룡은 황제를 저격하려는 계획을 시작했던 검다.”

“뭐……?!”

“바로 이 자리에 참전하기 위한, 아주 긴…. 계획을.”

내가 멍한 표정을 짓자 류하가 문득 자신의 귀에 끼고있던 커다란 헤드셋을 만지작거리며 깊은 생각을 하는 듯 했다.

류하는 성큼 다가오더니 큰 눈망울로 빤히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대뜸 딱밤을 내 이마에 때렸다.

따악

“억.”

꽤 아파서 내가 눈살을 찌푸리자 류하가 씨익 웃었다.

“억만년이 지나도 나랑 류오, 기억해 주기! 약속.”

“알았어. 약속할게.”

“히히….”

류하는 천진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럭저럭 재밌었음다, 빡대가리 황제폐하.”

파아앗 - !!

다음 순간, 류하의 몸에서 청색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류하의 바로 곁에 활활 타오르는 듯한 시뻘건 빛이 소환되었고, 그것은 마치 류하의 청령(靑靈)과 대비되는 적령(赤靈)처럼 보였다. 이윽고 류하의 몸은 완전히 반투명해진 빛덩어리로 변했고 눈을 감은 류하가 손을 뻗어서 맞은편에 있던 적령의 존재와 손을 맞잡았다.

‘류오(劉烏)…!!’

나는 적령의 형상이 사실 류하의 쌍둥이동생인 초상기인 류오라는 걸 깨닫자 흠칫했다. 류하는 청령이 되고 류오는 적령이 되다니! 그리고 동시에 내 머릿속에 설마 하는 생각이 스쳐지나갔고, 잠시 후 류하와 류오가 서로 손을 맞잡다가 포개어지는 게 보였다.

우우우우!!

청령과 적령이 혼돈 속에서 뭉치면서 일그러지고 다시 찰흙처럼 뭉치기를 반복했다. 마치 태초의 혼돈을 보는 듯한 그 강대한 힘의 융합 속에서 잠시 후 무언가가 정해진 형태를 지닌 채 소환되었고, 완연히 모습을 드러낸 것은 바로 내가 익히 알고 있던 그 모습이었다.

백발의 초상기인!

단지 이목구비도 완전히 같은 그 존재는 머리카락이 흑색이었다. 나는 그 자의 이름을 알고 있었으므로 떨리는 목소리로 불렀다.

“…류진(劉珍), 이냐?”

최초의 대웅제국 결전병기(決戰兵機)이자 특화형 초상기인!

나치와의 전쟁에서도 제갈부의 육체를 받아서 대신 싸웠던 존재!

내 질문에 그 흑발의 초상기인이 서늘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황제폐하. 처음 뵙사옵니다.”

“…….”

나는 한동안 류진의 출현에 말을 잇지 못하고 있다가 뭔가를 깨닫고는 말했다.

“설마…. 류하와 류오는 처음부터 너를 부활시키기 위해 만들어졌던 거냐.”

“네. 바로 지금 종말의 이 순간을 위해서.”

안 좋은 예감이 들어맞았다.

내가 멍한 표정을 짓자 류진이 말했다.

“신혈(神血)을 동원해서 만든 최강의 초상기인. 그건 존재하되 존재할 수 없는 모순이었습니다. 일시적으로 최고의 힘과 순도를 유지할 수 있었으나 그 대가로 현실에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은 고작 사흘. 아무리 탈혼형이라지만 폐하께서 언제 현실에 귀환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계속 최강의 초상기인을 현실에 반복소환할 순 없었습니다.”

“그럼….”

“명목상 류하와 류오는 실패작으로 세상에 나타났지만 사실 그들은 초상기인을 소환하기 위한 초상기인이었습니다. 그들이 힘을 합치면 전 언제든 세상에 나올 수 있었습니다. 이는 대웅제국 초상연구부(超上硏究部)조차 모르고 있던 제갈유룡의 누대(累代)의 비술(秘術).”

“…….”

“초상기인이라는 하나의 종족에 이어지는 전승이었습니다.”

“그,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나는 급히 류진의 말을 끊고는 말했다.

“어째서? 류하와 류오의 희생을 감수하고서…. 여기까지 와서 어떤 의미가 있단 말이냐? 그리고 제갈유룡이 살아있다는 건 무슨….”

“…….”

류진은 문득 조금 슬픈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가다가 말했다.

“…천계와의 협정에 따라 이미 원시천반의 봉인은 풀렸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도 마지막 역할을 다하시게 될 겁니다.”

류진이 갑자기 하늘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천공에서 무수한 별이 떨어지는 듯한 환영과 함께 무려 108개나 되는 광선이 류진을 향해 유성처럼 내려꽂히기 시작했다.

슈우우우웅

파아아앗!!

이윽고 류진의 전신은 수많은 성염(星炎)으로 타올랐다. 그리고 전신이 마치 지옥불에 타오르는 듯한 그 극한의 불빛 속에서도 그의 몸체는 전혀 타지 않았고, 전신의 형태를 유지하면서 불빛 하나하나를 조절해서 구체처럼 둥글게 다듬기 시작했다.

키이이잉!!

완전히 둥근 형태로 고정된 별빛의 환염은 잠시 후 거대한 힘을 내뿜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자 나도 모르게 경악했다.

“…성좌(星座)!! 서, 설마?!”

류진은 양손을 하늘에 뻗은 채 천하를 울리는 듯한 광량한 목소리로 외쳤다.

[유사이래 이 세상에 떨어졌던 108개의 성좌여…. 나 초상기인 류진의 모든 삶과 영혼을 바치나니, 내 몸을 먹어치우거라!! 이 몸에 흐르는 신혈(神血)에 더욱 성좌의 빛이 달구어지리라!]

고오오오오!!

초상기인 류진의 전신에 마치 구슬처럼 박힌 108개의 성좌가 영롱한 빛을 뿜어내더니 이윽고 용광로처럼 끓어오르는 무시무시한 힘의 덩어리로 변하는 게 보였다. 나는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바로 눈치챘기에 경악했다.

“그만둬!! 몸이 터질 거야!!!”

성좌의 흡수!!

성좌는 대우주에 퍼져있는 별과같은 우주적 힘의 근원이었다. [옛 지배자]가 지닌 힘의 근원과 무척이나 닮아있는 성좌의 힘은 하나나 두 개만 있어도 재앙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성좌의 힘을 십수 개나 아무렇지도 않게 다루는 항우의 힘만 보아도 얼마나 괴물 같은지는 알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초상기인이라고 해도 고대인에게 존재하던 108개나 되는 성좌를 모두 흡수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나만 하더라도 항우에게 받은 성좌 한두 개도 통제하기 힘들어서 쩔쩔맸는데 어찌 108개를 통제할 수 있단 말인가!

그 때였다.

류진의 등 뒤에서 잠시동안이지만 제갈유룡의 환영이 스쳐지나간 게 분명히 내 눈에 보였다.

“…….”

설마 제갈유룡은….

내가 멍하니 있자 류진이 고통을 억지로 누르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지께선 천마에게 추적당할 수 있는 모든 흔적을 지우기 위해…. 고대인들과 협정을 맺는 동시에 스스로를 성좌로 변화시켰습니다. 인간의 모든 육신과 영을 태워 성좌로 화하는 술수를 이용해서…. 그리고 원시천반에 봉인되었죠.]

“…….”

[이 힘은…. 마지막에 그대의 도움이 되기 위해 수백 년 동안 벼려낸 힘입니다.]

그렇게 말한 류진이 한 마디 외침과 함께 튀어나갔다.

[인간의 왕을 위하여!!]

류진은 마치 화살처럼 쏘아져 나갔다. 그의 전신에 휘감은 108개의 성좌가 올올이 빛나면서 꽉 짜여진 빛의 군집(群集)이 천공을 가로질렀고, 가로지른 틈이 미호와 제갈사를 지나쳐서 어둠에 둘러싸여 있던 천마를 정통으로 가격했다.

꾸우우웅!!!

육중한 파괴음과 함께 활활 타오르는 듯한 초상기인 류진의 전신이 천마의 고치를 마치 에워싸듯 꾹 안았다. 그러자 그 안에서 거대한 분노가 섞인 외침이 터져나왔다.

[진정 무의미한 발악이구나!!]

영겁지무(永劫之舞)

쿠콰콰쾅

천마의 광대한 힘이 터져나오며 류진의 몸뚱이가 갈가리 찢겨나갔다. 고치를 뚫고 한쪽 팔이 떨쳐나왔으나 이윽고 류진의 찢긴 몸뚱아리 하나하나가 빛의 입자로 변했고, 수백 개나 되는 성좌가 천마에게 달라붙는 게 눈에 보였다.

[나는 최고의 초상기인, 류진이다.]

류진의 단말마가 몰아쳤다.

[인간과 초상기인의 업(業)을 만만히 보지 마라, 천마!!]

콰지지직!!

[크으으윽.]

천마는 방금 전에 농락하듯 일격에 모든 걸 분쇄하며 고치에서 탈출하려 한 모양이었지만 이번에 류진의 한 수는 진짜로 벗어나기 힘든 속박인지 천마의 목소리가 잦아들며 움직임이 멎었다.

108개의 성좌를 이용한 봉인!!

그것도 신혈을 지닌 최강의 초상기인이 스스로를 희생해서 만들어낸 것!

세상에 저것보다 더 강력한 봉인은 거의 있을 수가 없었다.

제갈사가 그 순간 뛸듯이 기뻐하며 외쳤다. 그답지 않을 정도로 기뻐하는 기색이었다.

[이럴 수가!! 생각지도 못했구나. 이것이야말로 천재일우의 기회다…!! 지금이라면 어쩌면.]

평소에 냉정 그 자체인 제갈사조차도 저럴 정도면 류진이 만들어 낸 이 틈은 굉장히 귀중한 게 틀림없었다. 나는 그 즉시 크게 도약해서 사대신기를 활성화시키며 앞으로 날아갔다.

해야만 한다.

반드시 사대신기를 천마에게 꽂아넣을 테다!!

그리고 바로 그 때였다.

하늘이 쩍하고 열렸다.

우우우우!!

제갈사와 미호의 시선이 천공을 향했다. 그리고 제갈사가 씹어뱉듯 말했다.

[광성자.]

황금빛 의관과 도복을 입고서 거대한 장(杖)을 왼손에 들고 있던 그 소년은 이윽고 전신에서 거대한 휘광을 뿜어내며 변신하기 시작했다.

[설마 천마가 이 정도 위기에 처할 줄이야. 인간들의 힘을 과소평가했구나….]

변신하고 있던 광성자의 입에서 언뜻 자애로운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가련한 자들이여. 진정으로 우주를 유지한다는 게 어떤 건지 알려주마.]

쿠구구구!!

광성자의 몸체가 거대하게 변하더니 네 개의 팔을 지닌 거인으로 변했다. 동시에 인간과 같은 외모는 거의 변하지 않았고, 대신 대자대비를 상징하는 광대한 연꽃의 옥좌가 소환되어 광성자의 몸을 받쳤다. 가부좌를 틀고 앉은 광성자가 이윽고 자신의 진정한 이름을 밝혔다.

[나, [유지하는 자] 조화대신(造化大神) 비슈누가 종말의 마무리를 짓겠다!!]

어마어마한 신력…!!

나는 마치 여와의 본체를 눈앞에 두었을 때와 같은 막강한 압력이 천하에 퍼져나가는 걸 알아챘다. 다만 사대신기를 소환하고 있기 때문일까? 이전처럼 숨도 못 쉬고 행동조차 제약되는 그런 상태는 전혀 아니라는 게 다행이었다.

위잉

다음 순간, 비슈누의 한 손에서 꽃이 새겨진 거대한 원반이 기이한 이명을 내며 발출되었다. 그 원반은 정확하게 미호를 노리고 있었고, 미호는 그 공격을 막으려는지 자신의 꼬리를 휘둘러서 튕겨내려고 했다.

슈칵!!

[아아악!!]

비슈누의 원반은 단 한 번의 움직임으로 미호의 꼬리 중 세 개를 잘라버리고 미호의 목을 베어버릴 뻔 했다. 미호의 현재 신력 또한 오제(五帝)에 그리 뒤지는 게 아닐 텐데 너무나 쉽게 당해버리는 것이었다! 신들끼리의 싸움이라서 인과율조작보다는 순수한 힘의 대결이라는 걸 생각하면 그만큼 비슈누의 권능이 높다는 걸 의미했다.

쿠구구구!

제갈사가 그 순간 마력의 흡수를 더욱 강하게 하며 천마를 더욱 위중한 상태로 빠뜨리려 했다. 그는 둘이 동시에 덤벼도 비슈누를 이기기 힘들다고 판단하고 천마에게 더 피해를 집중시키려 한 것이다.

[…….]

그러나 제갈사가 뭔가 당황한 듯 멈칫했고, 비슈누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말했다.

[이미 만신전에서 그대의 주문에 대한 대가를 모두 지불했다. 아무리 외신의 주문이라지만 한계가 있지 않겠는가?]

[하….]

[빚이 쌓이는 것보다 더 빨리 갚아버리면 그만인 것이다.]

제갈사가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크크큭…. 터무니없군. 설마 황제가 종말까지 쌓아온 인과율과 마력이 이 정도일 줄은….]

[자아. 그럼 이만 가거라.]

콰아아아아

비슈누의 등 뒤에서 연화광(蓮花光)이 크게 일어났다. 비슈누의 눈이 반개하더니 영롱한 칠채의 빛이 떠올랐고, 그 빛 하나하나에 잠재된 힘은 실로 행성 하나를 멸망시킬 정도였는데 그런 게 수천 개나 동시에 떠올라 있었다. 지금의 피폐화된 명계는 저 비슈누의 일격에 세계째로 붕괴될지도 몰랐다.

비슈누의 힘이 저 정도일 줄이야.

아니, [매듭] 속이라지만 여와의 본체와 싸워서 몰아붙였을 때부터 예상했어야 하는 것일까?

나는 그 순간 내가 양자택일의 순간에 놓였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사대신기를 이용해서 비슈누의 공격에 맞서느냐.

아니면 지금이라도 궁지에 몰린 천마에게 마지막 일격을 가하는가.

“…….”

생각할 것도 없다. 나는 비슈누에게 크게 외치며 천마에게 달려들었다.

“비슈누!! 내가 너보다 빠르다!!”

비슈누의 공격에 반격하다가 천마를 죽일 힘이 모자랄지도 몰라.

모두가 나한테 여기까지 기회를 줬다면 천마를 죽이는 게 최우선이야!!

[……?!]

“일단 천마부터 죽인다!”

다음 순간, 나는 사대신기를 모조리 전개하며 천마를 공격했다.

“아그니!! 바유…!!”

[이런?!]

비슈누는 당황했는지 연화광을 내뿜다 말고 멈칫하는 게 눈에 보였다. 당연히 사대신기로 반격할 거라 생각한 것이고, 내가 생사를 도외시하고 천마부터 없애려 할 줄은 예측하지 못한 것이다.

콰과과광

아그니의 염화(炎火)가 제일 먼저 뿜어져 나오며 천마의 전신을 불태웠다. 그리고 천마가 둘러싸인 거대한 막을 향해서 바람의 바유가 전개되자 그 불의 기운이 몇 배나 강하게 확장되었다.

쿠오오오오오!!

[크윽… 으으윽….]

천마의 신음소리가 흘러나오는 게 느껴졌다. 새어나오는 절규를 억지로 참는 저 소리는 무척이나 익숙하다. 나는 그 소리를 듣자마자 깨달을 수 있었다.

통한다.

다른 누구도 아닌 사대신기의 공격력이면 천마에게도 통해!

“바루나!!”

나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물의 바루나를 소환해서 뒤늦게 아군을 공격하는 비슈누의 공격을 차단했다. 허공에 거대한 물의 방어막이 생겨나자, 비슈누가 만들어낸 연화광은 곧장 바루나에게 차단당한 것이다.

키기기깅!!

비록 완전히는 연화광을 막지 못했는지 물의 방어막 여기저기에 반쯤 관통한 연화의 창이 보였으나 어쨌든 미호와 제갈사는 급한 순간을 넘긴 듯 했다. 나는 사대신기를 자유자재로 활용하게 되자 내가 마치 삼황오제와도 대등하게 싸울 수 있는 수준이 된 것 같았다.

아니, 느낌이 아니다.

사대신기를 완전히 활용하게 되면 충분히 싸워서 이기고도 남아!!

“마지막이다…!!”

나는 파직거리는 번개의 신기를 한 손에 쥔 후 이를 악물고는 전방으로 튕기듯이 쏘아져 나가서 천마를 찔렀다.

“바즈라!!”

푸콱!!

분명히 천마의 심장을 바즈라로 관통하려 했던 그 순간.

[난 네놈을 인정하지 않아!!]

머릿속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파지직

“…어…?”

뇌광을 머금은 뇌신기 바즈라가 꿰뚫고 있는 것은 바로 내 심장이었다.

바즈라가 스스로의 의지로 나를 거역해서 천마 대신 나의 심장을 찌른 것이다.

쿨룩

눈이 흐릿해지면서 점차 정신이 아련해지는 게 느껴졌다.

이, 이럴 수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와서 이런 어처구니없는….

[백웅!!]

미호의 비명같은 절규가 아련하게 귓가에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나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어? 바즈라 때문에 죽어도 그것 나름….’

나는 그대로 죽어서 29번째 삶이 시작된다 하더라도 내게 나쁠 것은 없다는 걸 알아차렸다. 애초에 황제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전생을 하는 게 내 승리조건이 아니었던가! 게다가 일단 아그니를 이용해서 크게 한 번 지져주었으니 한 방 먹여준다는 목표도 일단 달성한 것이다.

풀썩

몸이 허공에 드러눕는 것까지 선명하게 느껴진다. 내 몸이 아닌 것 같았고, 이젠 완전히 끝이라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나는 의식이 나락까지 떨어져서 오감이 사라지고 육감마저 흐릿해지는 경계에서 부유하듯 몸이 둥둥 떠 있는 걸 느꼈다.

언제나 느꼈던 기분.

죽기 바로 직전의 이 한 걸음을 느끼곤 했다.

말도 안 되는 절망을 초반에 느끼곤 했지만 갈수록 익숙해지니 그저 스쳐가는 단계로 인식하게 된 한 걸음.

나는 그 찰나지간 동안에 온갖 생각을 다 하다가 문득 한 가지 망념만은 버릴 수가 없었다.

더 이상 도망치고 싶지… 않아.

도망치는 게 현명한 건데 대체 무슨 소리인지.

이것이야말로 광기(狂氣)이리라.

하지만 죽기 일촉즉발의 이 순간이야말로 나는 더더욱 이 생각을 버릴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내 삶 전체를 비추어볼 때 - 절대적인 강자 앞에서 억울하게 살해당하는 이 순간보다 더 기분이 더러울 때는 딱히 없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황제가 정말로 권능을 쓸 수 있다면 지금 내 죽음조차 마음대로 되지 않겠지.

한 켠에 냉정한 생각이 떠오른 순간 - 아니나 다를까 죽음의 저편으로 사라지려는 내 의식을 ‘무언가’가 단단하게 붙잡는 게 느껴졌다.

덥석

나는 영체 상태에서 슬며시 그 무언가를 힐끔 돌아보았고, 그것은 바로 황제의 것으로 보이는 황금빛의 거대한 쌍수(雙手)였다. 마치 새장 안의 새를 움켜잡듯 내 영체를 단단히 움켜잡고 있었다.

동시에 황제의 광소가 울려퍼지는 게 들렸다.

[하하하… 소용없다…. 바즈라의 권능으로 죽는다 해도 명계를 내가 봉쇄해버린 상태에서 네게 어찌 죽음이 찾아오겠는가…. 여기서 드디어 지루한 싸움이 막을 내리겠구나.]

…….

처음부터 어떤 수를 써도 방법이 없었던 건가….

하지만 그렇다면 모든 지혜와 힘, 용기를 다해서 맞서 싸웠던 내 동료들의 희생은 대체 뭐가 되지….

안 돼….

억울해….

죽고 안 죽고를 떠나서, 제대로 한 방 먹여주지 않고는… 눈을 감을 수가 없어….

하지만 도저히 어떠한 방법도 없었기에 내가 절망해서 눈을 꾹 감았을 때였다.

[나의 왕이여.]

누군가의 목소리가 황천의 경계에서부터 내 귀에 들려왔다.

[마지막 한 수가 남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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