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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사공린에게 강림한 황제 공손헌원!
순식간에 전투의 분위기가 감돌았고, 절대무인들은 삼엄한 기세로 그에게 의념을 방출하는 게 느껴졌다. 아주 찰나지간의 침묵이 감돌고 - 새하얀 신형이 마치 튀어나오듯 공손헌원을 향해 뻗어나갔다.
신역절기(神域絶技)
일수탈혼(一手奪魂)
그를 향한 첫 공격은 바로 신투지존이었다. 신투지존이 다른 자들보다 더 경지가 나은 것은 아니었으며, 그저 그가 좌중에서 황제에 대한 두려움이 상대적으로 가장 덜한 존재라는 의미였다.
일수탈혼은 그리 빠르지 않았다.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뇌신지혼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느렸고, 그저 초절정고수의 심력을 다한 한 수 정도의 빠르기! 절대고수들 사이에서는 그저 견제기로만 쓸 법한 속도였으며 황제 공손헌원같은 거물에게 쓸 법한 기술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
투콱
신투지존의 손이 사공린의 얼굴 정면을 난데없이 붙잡아 버렸고, 그와 동시에 마치 뚜껑을 따는 듯한 빠른 손움직임이 이어졌다. 아무리 봐도 사공린의 능력만으로도 충분히 피할 수 있을 것 같은 공격이었는데 적중된 것이다!
‘저건?!’
피하려 해도 피할 수 없었다는 느낌이 정확하다.
그리고 저런 공격은 내가 익히 보아왔던 것이기도 했다.
인과율을 뒤집은 신(神)의 영역!
더 놀라운 건 그 다음에 일어난 일이었다.
찰나의 순간에 염심(念心)의 잔향(殘響)이 흘렀고 흑백의 시공간 속에 모든 게 멈춘 듯 했다. 신투지존은 자신의 손을 확인하고는 아무것도 없음을 확인했고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
그는 무척이나 낭패한 듯 잠시동안 몸이 뻣뻣하게 굳으며 욕지기를 토해냈다.
[씨발! 무슨 이런 어이없는… 처음부터 가면이….]
나는 나도 모르게 그 순간 사공린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절세미모를 지닌 그 얼굴에는 아직도 황금빛의 안광이 맴돌고 있었고, 절대자의 여유가 흐르는 은은한 미소가 감돌았다.
쿠궁
그리고 그 다음 순간 신투지존의 전면으로 천마 사공린이 전신에 황룡(黃龍)의 기운을 머금고 쇄도했고, 마치 수묵화처럼 굵은 의념의 선이 현실에 새겨지는 듯 했다. 그 황룡은 무시무시한 위풍을 머금고 있었으며 기력이 압축되어서 보는 이의 모골을 송연하게 했다.
파지직!
쌍장(雙掌)에 가득한 기운이 차원을 비틀어버리는 듯 끼긱거리는 소리를 내었다. 쌍룡이 승천(昇天)하는 기세가 사공린의 양비(兩臂)에서 꿈틀거렸다.
나는 내 이목을 완전히 의심해야만 했다. 신투지존의 전면으로 뛰어든다 싶었던 사공린의 모습이 어느 새 장내에 있던 모든 절대고수들의 눈 앞에 나타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분신술인가?
투두둥
그러나 사공린의 쌍장이 모두를 공격하기 시작했을 때, 장심 중앙에서 휘몰아치는 소용돌이같은 기세가 수많은 공명(共鳴)을 일으키는 게 눈에 보였다. 공명이 만들어낸 짧은 소리는 순식간에 수백만 개의 파장을 형성해냈고 칠채(七彩)의 혼연(混然)이 사위를 감쌌다.
츠아앗
그 초수가 완결되는 걸 지켜볼 수 없다는 듯 여동빈과 청면의 무사가 거의 동시에 자신의 절기를 시전했다. 그들은 쌍룡의 기운에 저항하는 것만으로도 피부가 울긋불긋하게 달아오를 만큼 부담이 되는 듯 했지만, 지금이라도 나서지 않으면 그 기운에 완전히 먹혀버릴 것 같은 예감이 든 것이리라.
피잉
먼저 여동빈의 무형검(無形劍)이 원무(圓舞)를 그리며 사공린의 인중을 찔러왔다. 아까처럼 한 점의 변동조차 없는 무위무형의 혼검(混劍)! 자연 그 자체인 혼돈의 검에서 그 누구도 마지막 검로를 읽어낼 수 없는 무형검을 막아내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또한 청면무사의 다섯 자루 대검이 동시에 살아있는 것처럼 뽑혀나오며 절기를 시전했다.
신역절기(神域絶技)
아르겔도 검제(劍帝) 불멸외천기(不滅外千機)
제팔백육십삼식(第八百六十三式)
융성파(融星破)
쿠구구구…
청면무사의 다섯 자루의 검이 갑자기 둥그런 빛의 공으로 변하더니 제각각 다른 외계의 색을 뿜어냈다. 둥근 빛의 공에서 새파란 날이 용광로에서 정련되듯 뻗어나오더니 삽시간에 이계의 눈(眼)이 허공에서 빛을 뿜어내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빛의 파장 하나하나가 광선이 되더니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광인(光刃)이 면(面)으로 변했고, 청면무사가 여섯 개나 되는 팔을 내뻗어서 광인을 어루만지는 듯한 움직임을 취했다.
쩌저저정
다음 순간, 광인은 청면무사의 호흡 하나하나에 호응하듯 촉수줄기처럼 뻗어나가서 사공린을 타격했다!
‘저… 저것도 무공인가?!’
너무나도 이질적이지만 어마어마한 위력을 지닌 절기! 그러나 도무지 지상의 인간이 펼칠 수 있는 무공절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애초부터 인간의 몸뚱이에 맞지 않는 괴이한 무(武)의 체현을 눈 앞에서 본 듯한 느낌이었다. 청면무사의 팔이 여섯 개나 되는 걸 눈 앞에서 보자 당황스러울 지경이었다.
쿠웅
사공린은 두 번의 신역절기를 마주하자 두 팔을 마치 벽처럼 모아서 상반신을 막는 태세를 취했고, 둔중한 충격음과 함께 뒤로 한 걸음을 밀려났다.
‘좋았어!’
나는 황제 공손헌원에게도 충분히 신역절기로 타격이 들어간다는 걸 확인하자 내심 뛸듯이 기뻤지만, 정작 여동빈과 청면무사의 얼굴은 전에 없이 딱딱하게 굳어져 있었다. 그리고 사공린은 양비벽의 권식(拳式)을 유지한 상태에서 황금빛 안광을 넘실거리며 한 마디를 중얼거렸다.
[무신의 사도들이여. 여기까지가 너희의 운명이다.]
만마군림(萬魔君臨)
천마 사공린의 신형이 완전히 내 인지영역에서 사라졌다. 뇌신지혼조차도 인식 정도는 할 수 있었으나 만마군림은 완전히 그 영역을 벗어나서 소멸해버린 것이었다.
퍼억 - !!
다음 순간, 신투지존의 머리통이 날아가 버렸다. 신투지존은 만마군림에 대항해서 마주 신역절기인 만상지투로 대항하려 한 듯 했지만 그의 손은 허무하게 허공에 멈춰 있었다. 신투지존의 눈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크게 떠져 있었다.
슈칵
동일한 순간 청면무사는 불멸외천기로 방벽을 만들다가 방벽째로 종(縱)으로 몸이 반토막나서 허공을 날았다. 나는 지켜보면서도 청면무사가 어떤 기술에 당했는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철퍽
청면무사의 떨어진 한쪽 몸뚱이가 바닥에 떨어졌고, 그는 쩍 갈라진 자신의 청색 가면 사이로 신음성을 내며 중얼거렸다.
[…나 검성(劍聖), 은하 저편에서 아르겔도 백억 문하생의 염원을 안고 이 세계를 지키러 왔거늘… 분하다….]
그는 잠시 후 움직이지 못했다. 완전한 죽음인 듯 했다.
퍼버벙
그나마 선방한 것은 여동빈과 장삼봉인 듯, 그들은 만마군림을 어떻게든 무마시키거나 막아낸 모양이었다. 그리고 아수라 또한 공격을 받았으나 암야참으로 상쇄를 시키는 데는 성공한 듯 했다.
“쿨룩.”
주르륵
그러나 여동빈은 선 자리에서 그대로 입에서 선혈을 크게 토해냈고 장삼봉의 경우는 얼굴빛이 완전히 창백해져 있었다. 저만한 절대고수들 조차도 만마군림 앞에서 멀쩡할 수 없었다는 의미였다.
나는 그 참상을 보며 이를 부득 갈았다.
“그만해!! 치사하게 신이 인간을 상대로 [작은 굴레]를 이용해서 학살하다니!”
그러자 천마 사공린의 몸을 빌린 황제가 나를 힐끔 보며 말했다.
“어리석군, 전생자여.”
“뭐?”
“네 말은 죽은 이들을 더욱 모독하는 것이다.”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내가 당황하고 있자 그 상황을 냉정하게 지켜보던 천우진이 어두운 얼굴으로 말했다.
“…인간의 왕, 백웅이여. 저 자는 굴레를 조종하지 않았다.”
“……?!”
“저게…. 바로 황제 공손헌원의 힘이자 세계를 제패한 천마의 진정한 힘이다.”
저벅
비교적 상세가 덜하던 아수라가 한 걸음을 앞서 걸어나와서 여동빈과 장삼봉의 곁에 섰다. 그 또한 완전히 죽음을 각오한 듯 평온한 표정이었고, 짐짓 유쾌하게 내게 말을 걸었다.
“여어 백웅! 좋든 싫든 이게 마지막이군.”
“…아수라.”
“두 초식 안에 아마 우리는 다 죽을 거다. 하지만 그 전에, 어떻게든 희망을 만들어 보마.”
그러자 천마 사공린의 안광이 황금빛을 넘실거렸다. 그는 다소 기묘하다는 표정으로 아수라를 쳐다보더니 말했다.
“창힐의 신하여. 너는 무신(武神)에게 버림받고도 끝내 내게 대항하느냐?”
“…….”
“끝없는 무의미 속에서 검을 휘두르느냐, 검의 망자(亡者)여.”
마치 책망하는 듯한 엄숙한 말. 그 말에는 조롱보다는 기품이 서려 있었다.
아수라는 그 말에 히죽 웃으며 크게 고개를 숙여서 예를 갖추었다. 그리고는 정중하게 말했다.
“창힐에게 존성대명을 들은 이래로 처음으로 뵙습니다, 위대한 분이시여. 허나 모든 걸 아는 것처럼 말씀하지 마십시오.”
아수라는 생사대적임에도 불구하고 상대를 존대하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히 적아로 따질 수 없을 만큼 적이 위대한 존재라는 걸 인정했다는 뜻이었다.
“네가 신역절기에 도달하지 못한 건 사실이지 않은가?”
“그건 그게 제 역할이었기 따름입니다.”
“그저 정신승리가 아닌가.”
“…그걸로 만족합니다.”
천마가 눈을 반개했다.
“가련한 자로다.”
대화는 거기까지였다. 절대자들의 강렬한 의념이 시공간을 뒤틀며 이 장소를 격리했고, 나는 긴장상태 속에서 그들이 대치하며 수많은 수법을 염상으로 교환하는 걸 느낄 수가 있었다.
…….
사위가 잠잠해진다.
다음 충돌을 대비하듯 자연이 적막에 휩싸였고, 천하를 뒤덮고 있는 수많은 혼돈의 비명소리와 아비규환도 지금만큼은 마치 소스라칠듯 잦아들었다. 여동빈과 장삼봉이 걸음을 옮겨 아수라와 함께 삼재진의 형태로 천마를 둘러쌌고 천마는 포위될 때까지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그리고 순식간에 빛이 교차한다.
만마군림(萬魔君臨)
황금의 기운을 머금은 쌍장이 여동빈의 무형검로에 정통으로 부딪혔다.
쫘악!!
그러자 신역의 경지에 이른 여동빈의 일검이 단천(斷天)하며 쌍장을 올려베었고 천마 사공린의 몸에 커다란 참상(斬傷)이 일어났다. 너무나 호쾌무비한 일격이라 한 번에 승패가 결정나는 줄 알았다.
‘역시 여동빈!’
그러나 놀라운 일은 그 다음에 벌어졌다.
투두두둥
천마의 쌍장이 갑자기 휘몰아치듯 번복(飜覆)하여 여동빈의 심장을 정통으로 가격한 것이다! 어찌된 일인지 천마의 몸을 한 번 베어넘겼던 무형검로의 참상은 아예 흔적조차 없어져 있었다.
“으음.”
현격한 역량의 차이를 느끼는 듯 여동빈이 침음성을 흘렸다. 여동빈의 검계(劍界)는 황룡(黃龍)의 기운을 미처 막아내지 못하고 꿰뚫렸고 여동빈의 등 뒤편이 마치 구멍이라도 뚫린 것처럼 터져나갔다.
푸콱
“아니 될 일!”
신역절기(神域絶技)
무쌍패(無雙覇)
태극앙원(太極央元)!
속수무책으로 여동빈이 당하는 순간 바로 그 뒤편에서 출현한 장삼봉 진인이 양팔을 옆으로 뻗으며 무쌍패의 기운을 여동빈의 등과 허공으로 이었다. 그의 몸을 중앙에 두고 두 개의 태극이 동시에 떠오르더니, 장삼봉 진인이 허공으로 뻗고 있던 좌수(左手)에서 승천하는 황룡의 기운이 날아가는 게 두 눈에 똑똑히 보였다.
울컥
여동빈의 육공(六孔)에서 피눈물이 철철 흐르고 있었으나 여동빈은 장삼봉 진인 덕분에 즉사를 면한 듯 했다. 그러나 그것은 만마군림을 완전히 막아냈다는 뜻이 아닌 듯, 여동빈을 방어해 준 장삼봉 진인에게 이변이 일어났다.
퍼버벅
장삼봉 진인의 왼쪽 팔이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날아가 버렸다. 순식간에 외팔이가 되어버린 장삼봉 진인은 고통을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이겨낸 듯 도리어 기력을 솟구치며 외쳤다.
“천마의 마지막 한 수, 봉(封)하겠소!”
파앗
두 명의 신인(神人)은 마치 둘이서 한 몸인 듯 동시에 천마에게로 쇄도했다. 여동빈 또한 아직은 기력이 쇠할 때가 아니라는 듯 재차 무형검로를 시전하였으며 한쪽 팔밖에 남지 않은 장삼봉 진인도 여동빈과 똑같은 호흡으로 무쌍패의 태극을 만들어 내었다.
우웅
마치 태극의 후광이 일어나 무형의 신검을 가속시키는 듯한 형상! 양인일체의 완벽한 공방은 하나의 극치(極致)라고 표현하기에 충분했다.
천마 또한 그 사실을 느낀 것일까?
잠시동안 그 모습을 보며 한 동작을 놓치는 게 눈에 보였다. 문득 찰나지간의 염원이 허무하게 흐르며 천마가 천천히 움직였다.
[상대할 만 하구나.]
그의 한 마디가 절대적 정적의 공간에 울려퍼졌다.
영겁지무(永劫之舞)
그것은 춤(舞)이었다. 단지 베기, 찌르기, 막기의 세 가지 동작밖에 없는 간단한 춤사위였으나 점차 그 가짓수를 더해갔다. 환영처럼 교차되는 춤사위 속에서 단 한 순간이 정확하게 무형검로와 충돌했고, 영겁의 춤이 그대로 현실에 구현화된다.
그리고 여동빈은 베었지만 천마는 찔렀다.
후발선제(後發先制) 그 자체 - 여동빈이 헛가른 참격의 궤도 사이로 천마의 일격이 가차없이 비틀어왔고, 비틀린 교차와 함께 여동빈의 운명도 결정되었다.
단 한 걸음의 차이.
여동빈의 월공투안이 천마의 영겁지무에 패배한 것이었다.
퍼억
여동빈의 명치가 관수(貫手)에 꿰뚫림과 동시에 장삼봉의 무쌍패가 함께 깨졌다. 여동빈의 방어를 보조해주던 신역절기 무쌍패는 맹진해 오는 영겁지무의 관수에 실려있는 잠재력을 감당치 못한 것이었다.
천마의 눈이 황금빛으로 빛나며 마지막 일격이 내리꽂혔다.
치우살(蚩尤殺)
쩌저정!!
마치 황금빛의 천검(天劍)이 내려꽂히는 듯한 일격! 그 일 검에 여동빈과 장삼봉의 최후가 결정되었고, 천마가 천공으로 비상하는 게 마치 태양의 후광처럼 비쳐보였다.
털썩….
나는 그 광경을 보다가 그만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아… 아아….”
전멸(全滅).
신역절기의 절대무인이 다섯 명이나 덤볐는데도 천마에게 강림한 황제의 삼 초식을 당해내지 못하고 패퇴한 것이다. 그러나 진짜로 내 마음속에 절망을 가져다 준 것은 절대무인들이 패배하여 죽었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었다.
망연자실해서 주저앉은 내 귀에 황제 공손헌원의 목소리가 마치 스며들듯이 울려퍼졌다.
“전생자여, 어떠한가.”
이어진 말에 나는 내가 방금 전에 눈으로 본 게 현실이었다는 걸 인지해야만 했다.
“신역(神域)에 도달한 천마신공(天魔神功)의 위력이.”
그렇다.
황제 공손헌원은 - 신역에 도달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