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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천우진의 말이 들리는 순간 나는 저편의 하늘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고 심지어 신역절기를 이룬 것 같은 세 사람 또한 아무것도 못 느끼는 기색이었다.
어떻게 천우진만 눈치챈 거지?
내가 어리둥절해하자 천우진이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 채 말했다.
“…무리하면서까지 스승님의 힘을 빌려 인과율을 들여다보았다! 황제 놈은 아무 전조도 없이 오고 싶어 하겠지만 내가 눈치챈 거다.”
“헉 인과율을?!”
“반 각도 남지 않았으니 빨리!”
“알았다!”
아무래도 천우진이 사도의 권능으로 뭔가 엄청난 짓을 해낸 듯 했다. 황제가 온다는 건 틀림없으리라!
‘자살한다!’
후웅
나는 그 순간 단검을 내 목에 망설임 없이 꽂아넣으면서 만감이 교차하는 걸 느꼈다.
이번 생엔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마지막까지 모든 걸 이뤄내진 못했고, 아쉬움이 너무 많이 남은 삶이었다. 특히 시공간을 마구 옮겨다니는 동안에 동료들에게 미안한 점이 많았다. 아직 봐야할 것도 더 있었지만 더 이상은 욕심일 것이리라.
콰악
칼날이 내 목을 파고드는 게 느껴짐과 동시에, 나는 지체 없이 칼날에 모든 내공과 의념을 불어넣어서 천하제일의 명검으로 바꾸었다. 검뢰가 전에 없이 명동하며 황금빛을 번쩍거린다!
‘출혈사로 죽는 건 늦어! 빨리 죽으려면 목을 베자!’
그리고 칼날 끝이 목 뒤를 관통하면서 아릿한 통증이 느껴지자 곧장 몸의 고통을 차단하는 기공운행을 했고, 동시에 손에서 힘을 잃지 않고 고스란히 횡으로 목을 그었다. 이것은 내가 틈날 때마다 줄곧 생각하던 깔끔한 자살 목베기였다.
츠각!
내 시야가 크게 분리되었다. 목을 내 스스로 벨 때의 반발력 때문일까, 잠시 목이 튕겨나와 하늘을 날아가는 게 느껴졌다.
‘됐어….’
목이 절단되었으니 적어도 숨 열 번 쉴 사이에 숨이 끊어질 것이다! 나는 목이 베여서 날아가며 만족스럽게 눈을 감았고, 이게 28번째 삶의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했다.
‘다음엔 더 잘해야지.’
황제에게 이용당하느니 이제 죽겠다.
다음에 두고보자…!!
“…….”
어…?
왜…. 의식이 안 끊어지지?
잠시의 침묵 후, 천우진이 황당하다는 듯 말했다.
“안 죽나?”
“그, 그러게.”
벌써 숨을 스무 번 쉴 시간이 지났다. 그런데 나는 아직까지 의식이 또렷했고 목만 굴러다니는 채 말을 하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죽을 기미가 없었기에 나는 뭔가가 이상하다는 걸 알아차렸다.
나는 황급히 몸을 통제할 수 있는지 살펴보았는데 순식간에 나는 몸통의 통제력 또한 지니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엥?!”
목과 몸통이 분리되었잖아?! 어떻게 내가 몸을 움직일 수 있지?!
“이건….”
내가 엉거주춤 몸뚱이를 움직이고 있자 천우진의 눈빛이 점차 날카로워졌다. 나는 급히 몸을 조작해서 내 검에 검뢰를 실었다.
파칭!!
“기다려 봐! 검뢰 최대출력을 심장에 박아넣고 터뜨려서 자살할게!”
퍼버버벙
“끄아아악.”
나는 곧이어 내 몸이 나 자신의 검뢰에 터져나가며 뇌기가 사방으로 비산하며 육편덩어리가 되었다는 걸 느꼈다.
슈슈슉
그러나 도로 몸이 원래대로 되돌아 와 버렸다! 심지어 방금 전에 목이 베였던 것 또한 무효화된 듯 멀쩡한 몸이 되어 있었다. 나는 당황해서는 다시금 외쳤다.
“포, 폭탄개미로 자살할게! 멀리 날려 줘!”
“알았다.”
후웅
천우진의 술수로 나는 단숨에 성층권으로 보이는 영역으로 날아가 있었다. 나는 제갈사에게 배운 폭탄개미 소환의 술수로 내 몸을 터뜨렸다.
퍼버버벙
슈슉
“……?!”
또 몸이 원래대로 되돌아왔어?!
남은 자살법을 다 시험해봐야 하는데 시간이 될려나?!
내가 우주공간에 둥둥 떠 있자, 어느 새 내 옆으로 순간이동한 천우진이 말했다.
“전륜성왕의 권능이 그대로 남아 있군. 완벽한 불사(不死)다.”
“뭐라고!!”
“생사부는 인과율에 맞지 않아서 소멸되었으나 전륜성왕의 직위 자체가 지닌 권능인 절대불사신은 박탈당하지 않는다는 건가. 정말 쓸데없는 능력이군….”
뭔가를 중얼거리던 천우진의 말이 이어졌다.
“전륜성왕의 권능을 완전히 버려야만 죽는 게 가능하다.”
“어떻게 해야 그럴 수가 있지?”
“잠시. 세계의 기록을 열람하지.”
기록을 열람한다고?
우우우우
사도 천우진은 눈을 감고 무언가를 받아들이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말했다.
“명계를 부활시키는 수밖에.”
“뭐?”
“[매듭]에서 보았듯 명계를 부활시키면 일시적으로 전륜성왕의 권능이 모두 소멸된다. 힘이 최약으로 떨어진 그 순간에 내가 사도의 힘으로 너를 죽이는 게 최선의 방법일 거다.”
아 맞다!
그런 방법이 있었구나! 천우진도 머리가 좋군!
나는 감탄하다가 뭔가를 알아차리고는 반박했다.
“…[매듭]에서 있었던 일이 현실에서도 그렇다는 보장이 없잖아.”
전륜성왕의 옥좌에서 그 봉인을 풀기 위해서는 수많은 시련을 통과해야 한다. 무척이나 복잡한 그 시련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단 하나의 과정도 실수하면 안 된다. 하지만 [매듭]이 꿈 속이었다는 걸 감안하면, 과연 현실에 그 시련의 해법이 고스란히 적용되는 걸까?
“그렇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 어떻게 할 거냐? 이 방법이 아니라면 우주 어딘가에 있을 사형을 찾아내어서 전륜성왕끼리 죽고 죽이는 방법이 있는데 이건 너무 현실성이 없다.”
“제길…. 명계로 가자!!”
나는 소리를 버럭 질렀다. 이렇게 된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
파앗
나는 천우진과 함께 전륜성왕의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심호흡을 하며 주문을 외듯이 이곳의 공략법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외우기 시작했다.
“전륜성왕을 상징하는 황금색 불화(佛畵)가 나타나야만 성공…. 남동으로 파랑 빨강 초록 자색 자색 파랑 파랑 초록, 그리고 북동쪽으로 다섯 걸음을 간 후 북북서로 자색 자색 자색 초록 초록 빨강 빨강 파랑을 밟고 동서남북으로 한 번씩 발판을 밟은 후에 서쪽으로 열 걸음을 가면 주황색 발판이 떠오르는데 대각선으로 여섯 개의 발판을 밟고 나면 바닥의 발판이 갑자기 전부 용의 그림으로 뒤바뀌고….”
공략을 반도 외우지 않았지만 옆에서 나를 힐끔 쳐다보던 천우진이 말했다.
“그럴 시간 없다. 내가 하겠다.”
“뭐?”
“사도 천우진이 명한다.”
천우진이 앞으로 손을 뻗으며 외쳤다.
“파동(派動)이여 붕괴하라!! 원하는 가능성에 도달할지어다!”
두웅
다음 순간 - 나는 어째서인지 모든 공략이 끝나있는 상태로 전륜성왕의 잔류사념이 눈앞에 둥둥 떠올라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오오…. 나의 뒤를 잇는 새로운 전륜성왕이여…. 이전에 시련을 한 번 해결했으나 아무런 선택도 하지 않고 떠나간 자여…. 이제 선택할 각오가 되었는가?]
“……?!”
뭐야 이건?!
어찌된 일인지 시간은 하나도 흐르지 않았는데 내 머릿속엔 방금 전까지 [공략을 했다]는 사실이 남아있었다. 한 적도 없는 기억이 남아있는 게 이상하지만 어쨌든 과정이 생략된 것 같았다. 내가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자 천우진이 말했다.
“중첩된 현실을 도약했다. 이게 망량선사 사도의 권능!”
“시, 시간이동인 건가?”
“아니. [작은 굴레]와는 다르다. 설명하기 복잡하니 그냥 이런 게 있다고만 알아둬라. 어차피 나 이외엔 쓸 수 있는 자도 없는 권능이니.”
그렇게 말한 천우진이 나를 강하게 쳐다보자, 나는 번뜩 정신을 차리며 말했다.
“나는 명계를 부활시키겠다! 나의 모든 불사성마저 바치겠다!”
[새로운 전륜성왕이여…. 그대의 뜻이 이뤄질 것이리라!]
쿠구구….
바닥에 있던 황금빛 불화가 서서히 일어나면서 마치 허공에 와불이 일어서는 듯한 기분이 들었고, 나는 이게 예전에 있었던 대로 전륜성왕의 본질을 주시하는 과정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삼안(三眼)의 부처가 손으로 인(印)을 맺는 순간 - 천우진이 어느 새 그 부처의 바로 앞에 나타나서 마주 인을 맺고 있었다. 찰나의 순간에 천우진이 그 부처에게 말을 거는 것 같았다.
[전륜성왕이여. 진정한 왕의 재생(再生)을 방해하지 말고 영원 속에 잠들라.]
천우진은 혹시나 이 각성을 통해서 내게 새로운 불사성이 깃들까봐 도중에 끼어든 것 같았다. 그리고 사도 천우진의 격이 전륜성왕에 못지 않은 듯, 잠시동안 둘 사이에 큰 힘의 충돌이 일어나는 게 느껴졌다.
파앗
이윽고 삼안의 부처가 서서히 손의 인을 풀면서 가루가 되어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부처가 사라지며 두 손바닥을 위로 향하게끔 겹쳐서 가장 기초적인 수도의 자세가 되었고, 부처의 말이 내 귓가에 들려오는 듯 했다.
[…윤회의 탕아(蕩兒)인가….]
슈욱!
잠시 후 방 전체가 무너져나가며 명계가 부활하는 게 느껴졌다. 그와 동시에 나는 전륜성왕의 권능이 내 몸에서 씻은 듯이 사라지는 걸 알 수 있었고, 급히 천우진에게 외쳤다.
“천우진! 이제 된 거지!”
“내가 지닌 무위의 힘을 검에 부여해 주마.”
위잉
검에 신비한 힘이 깃든 게 느껴졌다. 이제 이걸로 죽을 준비는 마쳤다.
나는 내심 안도의 한숨을 쉬며 천우진에게 말했다.
“지금까지 고마웠다.”
“…….”
천우진은 내 말에 대답하지 않은 채 다소 창백한 안색을 하고 있었다. 마치 순간적으로 악몽같은 무언가를 본 듯한 얼굴이었다.
“이럴 수가…. 이미 와 있었단 말인가?”
마치 귀신이라도 본 듯한 표정이었다. 나는 천우진의 난데없는 변화에 어리둥절했으나 더 망설이지 않았다.
‘쳇! 시간없어! 죽자!’
푸콱
나는 천우진의 말을 다 듣지도 않고 검을 내 목에 꽂았다. 이번에야말로 불사성이 사라졌으니 자살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꾸깃….
하지만 내 검은 허공에서 누군가에게 잡혀 있었다.
어디선가 본 듯한 새하얀 손이 내 검의 날을 잡은 채 목까지 한 치 길이를 남기고 있었다.
“……?!”
검에 힘을 주었으나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그리고 서서히 그 손의 주인이 모습을 드러냈고, 맞은편에 서 있던 천우진이 침중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미 [옛 지배자]를 넘어선 건가….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나는 내 검을 맨손으로 붙잡은 존재를 똑똑히 목격할 수 있었다. 그리고 믿기지가 않아서 중얼거렸다.
“사공린.”
천마(天魔) 사공린이 맨손으로 내 검을 붙잡은 채 내 자살을 막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눈을 보는 순간 흠칫하고 놀랐다.
황금의 눈.
완벽하게 황제 공손헌원의 지배하에 있음을 상징하는 그 눈이 - 나를 얼어붙게 했다. 그리고 [사공린]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주 오랜만이군, 전생자. 그대가 복희와 함께 내 만신전에 쳐들어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
“너무 긴장하지 않아도 좋다.”
사공린이 아니다.
지금 말하고 있는 것은 [다른] 존재이다.
그것도… 이번 생 최악의 적수.
‘안돼…!!’
늦어버렸다.
저 놈이 오기 전에 최선을 다해서 자살을 이루려 했지만 결국 시간에 맞추지 못한 것이다.
“나와 거래를 하지 않겠나?”
나는 그 말이 들려오자마자 천우진에게 목청이 터져나가라 외쳤다.
“천우진!! 내가 자살할 틈을 만들어 줘!!”
일생일대의 마지막 부탁!
피 맺힌 절규에 천우진이 이를 악물며 전투태세에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왕의 명이시라면!!”
파바밧
다음 순간 천우진의 주변에 방금 전 북극에 있었던 여동빈, 신투지존, 청면의 무사 세 명이 소환되었다. 단숨에 명계에 소환된 그들은 어리둥절해하는 기색이었으나 청면의 무사가 천마 사공린을 보자마자 경악해서 외쳤다.
[아니!! 저 자는 [옛 지배자]다!]
외계어?
저건 인간세상의 말이 아닌 듯 했다. 틀림없이 외계인의 언어다!
그것보다도 청면무사는 일견에 [옛 지배자]를 알아보는 능력이 있는 듯 했다.
차차창!!
그 외침과 동시에 여동빈과 신투지존이 전투태세를 즉시 갖췄고 청면무사 또한 자신의 대검에 손을 올리며 대비를 하는 듯 했다. 여동빈이 설명을 바라는 듯 뒤편에 있던 천우진을 힐끔 바라보자, 천우진은 침묵의 시선을 무시하며 그대로 두 명을 더 소환했다.
파앗
또 다시 나타난 것은 바로 장삼봉 진인과 아수라였다. 그들은 난데없이 나타나자 다른 세 명과 마찬가지로 어리둥절해하는 듯 했으나, 이윽고 눈앞에 천마 사공린이 내 검을 움켜잡은 광경을 보자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서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천우진이 장내에 나타난 다섯 명의 고수들에게 말했다.
“위대한 무인들이여! 눈앞의 저 자가 바로 삼황오제의 필두이자 종말의 주역이오!”
“……!!”
“백웅을 죽여야만 그가 새로운 전생을 시작할 수 있소! 황제가 그의 죽음을 막고 있으니, 부디 황제를 물리치는데 도움을 주시오.”
그 말에 모두가 상황을 알아차린 듯한 표정을 지었다.
스윽….
다섯 명의 절대고수가 순식간에 나와 천마 사공린을 포위한 오행진의 형상을 만들었다. 하지만 천마 사공린은 그들을 신경조차 쓰지 않는 듯 시선 한 번 주지 않고는 내게 말했다.
“너라면 이 모든 게 무의미한 발악이란 걸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겠지. 그렇지 않은가?”
“웃기지 마….”
나는 반박하면서도 믿기지 않는 기분이 들었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무려 신역절기를 익힌 백좌의 고수가 네 명이나 있으며, 아수라 또한 그들에 못지않은 경지에 이르렀다. 거기에다가 사도 천우진마저 이 자리에 와 있다. 이렇게 강력한 존재들이 뭉쳐있다면 자신만만해야 정상이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자신감이 하나도 들지 않는다.
눈앞에 있는 게 어떤 괴물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절망이라는 단어가 내 마음속에 깊이 박혀들기 시작하는 게 느껴졌다.
“다시 한 번 말하지.”
천마가 웃는다.
“전생자, 나와 거래를 하지 않겠나?”
황제(黃帝) 공손헌원(公孫軒轅)이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