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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1194화 (1,191/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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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천우진의 양손이 모아져서 깍지를 끼는 형상이 되었다. 그리고 천우진이 나직이 말했다.

“사도 천우진이 명한다. 경계에서 새어나온 무한의 꿈이여. 세계를 뒤덮어라!”

스아아아

그 주문이 울려퍼지자 사방에 자욱한 안개가 가득 끼었다. 운무의 술법은 자주 보아왔지만 이 안개가 특이한 점은 오색(五色)의 빛이 은은하게 흐르고 있다는 점이었다. 내가 궁금해서 천우진에게 질문했다.

“천우진. 이건 무슨 술법이냐.”

“반 각만 기다려다오. 그러면 술법이 완결될 테니.”

“이 안개는 대체 뭐지?”

천우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안개에 닿은 자는 영원한 몽환(夢幻)의 세계로 가게 된다. 그리고 삶도 죽음도 없는 [경계]에서 고통없이 최후를 맞이하게 되겠지. 이 안개가 전 세계에 퍼지는 시간은 반 각 정도 걸린다.”

“……!!”

“네가 죽음을 결의했으니, 나머지 인간들에게 편안한 안식을 주려 한다. 그건 망량선사의 사도로써의 내 의무다.”

나는 천우진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채고는 소름이 돋아서 외쳤다.

“…수십억 인류 모두가 꿈의 세계로 가버린다는 거냐?!”

“그렇다. [경계]일 뿐 완전한 꿈 속은 아니기에 약간의 고통은 피할 수 없겠지만, 적어도 [옛 지배자]에게 고통당하는 것보다는 낫겠지.”

그게 가능하다니!

저 말대로라면 천우진은 주문 한 번으로 인간을 가볍게 멸망시킬 수 있다는 소리가 아닌가? 전 인류를 [경계]로 보내버릴 정도의 권능이라니! 아니, 내가 저 주문을 멈추지 않으면 틀림없이 그렇게 되리라!

‘하지만 선량한 의도로 인간을 멸망시킨다는 거니 막을 수가 없다.’

나는 차마 말을 하지 못하고 있다가 조심스레 말했다.

“천우진. 그렇게 되면 지금 목성에 가서 싸우는 동료들은 돌아올 곳이….”

천우진의 눈이 차갑게 변했다.

“네가 그 말을 하면 안 되지. 넌 이미 자살한다는 선택으로 판을 버리지 않았나. 나는 무고한 양민들에게 자비를 베풀 뿐, 죽음을 각오한 전사들까지 구해내려는 오지랖은 부리지 않아.”

“…….”

“하나에만 집중해라. 넌 능력도 되지 않으면서 다 얻으려 하다가 모든 걸 잃는 일이 부지기수니까.”

“알았다.”

톡 쏘는 듯한 독한 말이었지만 천우진의 말이 옳았다.

내가 자살한다고 선택했던 것에는 분명히 이런 희생도 뒤따랐던 것이다. 당연히 의리상으로는 동료들을 도우러 가야겠지만 판을 버린 자는 의리조차 지킬 수 없다. 한 번 마음을 정했다면 끝까지 가야만 한다.

그것이 바로 천우진이 내 동료가 되겠다고 한 이유.

자기만을 위한 왕이라 할지라도, 그런 왕을 받아들이겠다고 한 것이다.

나는 문득 생각이 나서 말했다.

“천우진. 사도인 네가 이 정도 능력을 쓸 수 있다면 어째서 망량선사는 진작에 인간들을 전부 [경계]로 보내지 않았던 거지? 그렇게 했다면 인간들이 구태여 수천년 간 고통받을 이유도 없었을 거고…. 충분히 가능한 일이 아닌가?”

“갑작스럽게 중요한 걸 묻는군.”

천우진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대꾸했다.

“삼황오제가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다. 본디 동방에 군림하던 삼황오제와 천계의 영향력이 고스란히 있었다면 그자들이 모두 이 주문에 저항할 게 틀림없으므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오제가 거의 절멸했으며 삼황 또한 은거했고 천계도 이 세상을 떠나있지. 그렇기에 나 정도 힘으로도 충분히 인간을 멸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군.”

무주공산이라서 가능하단 말인가.

“그리고….”

“그리고?”

천우진은 먼 곳을 응시하는 듯 했다.

“스승님은 평소에 인간의 가능성을 늘 믿고 계셨다. 어떤 식으로든 종말에 저항하려는 인간들의 의지를 존중했기에 굳이 역사를 끊으려 들지 않으셨던 거겠지….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한다.”

“…….”

“그조차도 이젠 무의미하겠지. 그럼 가자.”

저벅….

천우진이 몸을 돌려 어디론가 걸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천우진의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는데, 어느 새 안개로 가득 찬 사방은 황궁의 모습이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고 안개구름이 가끔씩 소스라칠듯 흐르곤 했다.

걸어가던 도중 중간에 누군가의 신형이 보였다. 나는 그 신형을 발견하고는 흠칫하고 놀랐다.

“전뇌자?”

분명히 너구리인형을 안고 있는 건 전뇌자였다. 전뇌자는 원망스러운 듯한 눈으로 나와 천우진을 쏘아보더니 말했다.

“비겁해.”

“…….”

“언젠가 이렇게 될 줄 알았지만…. 정말 끝이라니. 너무하단 말이야.”

전뇌자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나는 뭐라고 해야할지 몰라서 전뇌자를 쳐다보다가 나도 모르게 홀리듯 전뇌자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전뇌자를 안았다.

덥썩

크게 안았는데도 체온이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전뇌자의 어깨가 떨리는 건 느껴진다. 어째서 전뇌자가 이런 곳에 나타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이해따윈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전뇌자를 끌어안고 있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미안하다….”

“미안하면 하지를 말던가…. 왜… 이겨낼 수 있다는 희망을 줘 놓고 이런 식으로 끝내는 거야? 흐… 흐흑.”

전뇌자가 울음을 참으며 말을 이었다.

“용서 못해…. 당신이 어떤 마음과 생각으로 이 세상을 버렸든…. 이런 결말은 용서할 수가 없어.”

“…미안하다.”

“차라리 처음부터 개망나니처럼 굴었다면 이렇겐 되지 않았을 거야. 이기적으로 당신 자신만 생각했다면, 차라리 더….”

“…….”

그리고 잠시 후, 한참동안 서로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끌어안았다.

‘아…. 그렇구나….’

나는 그 순간 알 수 있었다. 체온도 느껴지지 않고 결혼을 한 적도 없지만, 어째서 전뇌자가 나의 딸을 자칭하는지를.

지금 이 순간 - 혈연이 아니고서는 알 수 없는 공감(共感)이 나와 전뇌자 사이에 존재한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인과율이야.”

전뇌자가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여기는 당신의 의지에 의해 만들어진, 당신의 세상. 당신의 처음 행동이 세계를 뒤바꾸었어. 그게 전생(轉生)마다 이어지고 있는 거고…. 나는 강인공지능으로써 그 세상의 모든 데이터를 읽었기 때문에 당신에게 강하게 끌리는 거였어. 전에도 말했지만 나를 만든 건 제갈부이지만 아버지는 당신이야.”

“…그래….”

“이건 그런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 도박이야.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의 힘으로….”

“응?”

푸욱!!

그 순간, 전뇌자의 한쪽 손이 마치 칼날처럼 변하더니 내 심장을 꿰뚫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고, 나는 피할 수 있었지만 왠지 피할 생각이 들지 않았다. 전뇌자에게 미안하다는 마음이 너무 컸기 때문이었다.

“…….”

이렇게라도 사과할 수 있다면…. 심장이 뚫려 죽어도 상관없어.

주륵

심장부위에서 선혈이 튀기며 내가 비틀거리자, 전뇌자가 슬픈 표정을 짓더니 말했다.

“꼭 다시 만나…. 아빠….”

지지징

전뇌자의 신형이 일그러지는 것 같았다. 마치 전자파가 일그러지듯 서서히 아지랑이처럼 변해지던 전뇌자의 모습은 잠시 후 조그마한 점이 가루가 되어 흩날리듯 사라졌다.

털썩

나는 심장이 꿰뚫린 고통조차 잊고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이게 진정으로 전뇌자의 마지막 모습이라는 걸 직감했기 때문이었다.

전뇌자는 죽은 것이다.

“아…. 아아….”

나는 주먹으로 바닥을 밀어내며 머리를 땅에 박고 울부짖었다.

“아아아아아아.”

가슴이 끊어질 듯 아프다. 신체의 고통보다도 전뇌자가 사라졌다는 게 더더욱 뇌수를 뒤흔드는 것만 같다. 혈육이 죽은 슬픔이라는 게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이게 내 선택의 결과란 말인가?

이토록 무겁단 말인가!!

내가 오열하며 꿇어앉자 천우진이 뒤에 서 있다가 냉담하게 말했다.

“일어나라, 왕이여! 네 길은 끝나지 않았다.”

“…….”

“나락으로 향한다 할지라도 지금은 왕의 행보다. 목숨을 건 동료들을 부끄럽게 할 셈이냐?”

“아니. 절대 그러진 않는다.”

나는 눈가의 눈물을 슥 훔치고 빠르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직도 마음 속은 혈관이 가닥가닥 끊어지는 기분이었다. 할 수만 있다면 예전처럼 술을 한도없이 퍼먹다가 죽어버리고 싶은 기분이다. 계속 이 자리에서 울고만 싶다.

“가자.”

하지만, 그건 내가 했던 일에 책임을 지는 길이 아니다. 죽을 때 죽더라도 내가 할 일은 하고 죽어야 한다!

저벅….

다시 나는 천우진을 따라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걸어가는 와중에 딱히 상처를 치유하지 않았는데도 어느 새 전뇌자가 입혔던 심장의 부상이 완전히 사라진 걸 발견할 수 있었다.

‘천우진이 치유했나?’

그렇다기엔 처음부터 천우진은 전뇌자의 습격 자체를 막지도 않은 느낌이다. 내가 심장 근처의 가슴을 살펴보고 있을 때 천우진이 말했다.

“다 왔다.”

우우우우 -

서서히 주변의 안개가 풀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주변 풍경은 완전히 얼어있는 북극의 빙하와 빙암으로 가득해 있었고, 천공에는 불길한 붉은 빛이 번득이며 거대한 마(魔)가 떠올라 있는 게 보였다.

쿠구구구….

시꺼먼 바다에서 쉴 새 없이 거대한 촉수들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으며 적공(赤空)에는 쳐다보기만 해도 끔찍한 마물들이 날아다니며 누군가를 공격하고 있다. 나는 마치 천하의 모든 악의가 덮쳐오는 듯한 그 전투광경 속에서 한 자루의 검(劍)이 인검일체(人劍一體)로 날아다니는 걸 볼 수 있었다.

피잉 - !!

어검비행술!

나는 무시무시한 속도의 어검비행술이 천공에 수백 개의 빛을 만들어내는 동안에 그 궤도에 존재하던 무수한 괴물들이 찢겨나가는 걸 볼 수 있었다. 굉장한 무위였지만 수많은 신적 존재들의 위상을 보아왔던 내게는 회의적인 마음이 들었다.

‘여동빈….’

그렇다. 여동빈이 세계를 멸하려는 [옛 지배자]를 상대하려고 북극에 와 있는 것이고, 나는 그의 전투 속에서 그의 신역절기를 직접 보러 온 것이다!

‘여동빈은 확실히 500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졌다. 하지만….’

정말로 [옛 지배자]를 이기는 게 가능할까?

구우웅 -

천둔검법(天遁劍法)의 거검이 허공에 의념으로 만들어지더니 빙하와 함께 지평선 너머까지 모든 것을 절단해 버렸다. 그 일격으로 졸개들이 대부분 나가떨어진 듯 했고 심지어 그 때까지 허공에서 관전만 하던 [옛 지배자]가 처음으로 자신의 의지를 보였다.

[재밌는 여흥이구나 필멸자여…. 너를 씹어먹으며 [계시]의 때를 즐거이 기다리리라.]

펄럭….

마치 가오리처럼 생긴 존재의 거대한 옆면의 날개가 펄럭거렸다. 언뜻 그저 거대 가오리처럼 생긴 [옛 지배자]로 보였으나, 자세히 보니 그 존재의 몸뚱이에는 마치 실덩어리같은 기이한 신체기관이 부유하며 매달려 있었으며 모가지 밑에는 수백 개나 되는 눈이 다닥다닥 붙어있어서 혐오감을 불러일으켰다.

스윽

여동빈은 그런 [옛 지배자]에게 대항하려는 듯 옆에 있던 화룡진인을 화룡신검으로 변화시켜서 기수식을 잡는 듯 했다.

드디어 여동빈의 전투가 시작된다.

그런데 멀리에서 빙암 위에 서서 나와 함께 지켜보던 천우진이 말했다.

“불청객이 왔군. 누구냐?”

터엉!!

천우진의 말이 끝나는 순간 허공에서 무언가가 튕겨져나가더니 무형에서 서서히 실체를 드러내었다. 모습을 드러낸 존재는 허공에서 공중제비를 돌며 자세를 다시 잡는 듯 하더니 이윽고 입을 열었다.

“너희야말로 불청객같군, 안 그래? 나는 만당시대에 여동빈에게 빚을 진 적이 있어서 그를 도와주러 왔는데.”

“…….”

그 자가 툴툴거리며 말했다.

“에잉, 생전 처음 보는 애송이들이 감히 이 몸께 뭔 소리를 하는 건지 원.”

…어?

뭐지?

왜…?

나는 물론이고 천우진도 예상치 못한 듯 황당해하며 그를 쳐다보았다.

그 자는 우리의 눈빛을 느낀 듯 어리둥절해했다.

“뭐야 그 눈빛은? 우리 혹시 구면이었냐? 너희 나 알아?”

“아니…. 그게… 알고 있긴 한데….”

나는 어이가 없어서 멍한 표정으로 말했다.

“다, 당신이 왜 여기… 아니 진짜 왜…?!”

“뭐냐. 진짜 나 알아? 천오백년 전에 너처럼 못생긴 놈은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정말로 여동빈을 도와주러…. 외우주를 다시 뚫었단 말이오?!”

내 경악어린 목소리에 그 자가 히쭉 웃으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프하하하하!! 굉장하지 않나? 나는 주시자한테 두 번이나 인정받았단 말이야! 그 누가 나를 최고라고 하지 않을쏘냐!”

“……!!”

“아 잠깐. 그런데 너는 그 사실을 어떻게 알고 있지? 설마 수해 지배자의 끄나풀이냐?”

“…아니오….”

“흥. 뭐 아무렴 어떠냐. 무신백좌의 싸움을 알리는 서막이니까 웬만한 건 봐주마.”

그 자가 씨익 웃었다.

“너네, 이 천상천하제일대도(天上天下第一大盜)님을 방해하면 뒤진다!”

그렇다.

신투지존(神偸之尊)이 나타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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