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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1193화 (1,190/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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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천우진이 있을만한 곳은 짐작이 간다. 나는 곧장 비등을 써서 이동했다.

파앗

‘다행히도 비등과 목갑이 현실에서도 유지되는군….’

나는 예전 대웅제국 황궁이 있던 곳에 도착했다. 그리고 황궁을 비롯한 낙양의 황도가 아직 생각보다 멀쩡하다는 사실에 놀랐다.

“저건 결계인가?”

잘 보니 낙양 전체를 둘러싸는 둥그런 막같은 게 있다. 어둠이 넘쳐나는 현재의 세상에서도 은은한 빛이 흐르는 걸 보면 틀림없이 저 결계같은 게 낙양을 보호해주고 있는 것이리라.

‘대결계…?’

아니, 아니다. 망량선사의 대결계는 여태껏 무형이었고 저렇게 보기 쉬운 형태일 리가 없다. 저건 아마도 인간들이 인위적으로 설치해 둔 결계! 대웅제국의 기술력을 이용해서 만든 것이리라.

나는 결계 때문에 비등을 써서 바로 황궁엔 들어가지 못하고 우선 낙양의 정면으로 갔다. 그리고 근처에서 순찰을 하는 병사들을 보았는데 인간병사가 아니었기에 또 다시 놀랐다.

‘저건… 기계인가?’

위이잉

철컹

사족보행을 하는 기계덩어리 병사들이 돌아다니는 게 보였다. 총은 들고있지 않았으나 순식간에 총탄이나 광선을 발사할 수 있는 장치가 탑재되어 있으리라. 하긴 인간이라면 이 [종말]의 강력한 마기 때문에 제대로 경비를 설 수 없을 테니 기계병사를 세워두는 게 합리적인 판단일 것이다.

나는 우선 은신술을 써서 안으로 진입했다. 그리고 기계병사들은 은신술을 인식하지 못하는 듯 비교적 수월하게 내부로 들어갈 수 있었다. 나는 화려했던 낙양의 내부를 잠시 둘러보았는데, 인기척이 굉장히 적어졌고 바깥으로 돌아다니는 사람이 없었다. 모두가 건물의 지하같은 곳에 몰려있는 듯 했다.

‘긴급피난 중이군.’

종말이 닥쳐왔을 때 낙양시민들이 저렇게 대피하도록 되어있다고 사마령에게 들은 적이 있는 것 같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빠르게 도시의 옥상을 뛰어서 황궁으로 향했고, 머지않아 황궁 내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천우진이 있던 연구소에 들어가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 왔다.

“왔군.”

“천우진.”

천우진은 십수 년 전과 외견이 달라진 점이 없었다. 그러나 얼굴은 전에 없이 침중해져 있었고, 늘상 나를 마주하면 느껴지던 짜증스러운 기운도 거의 없었다. 그만큼 천우진의 내면 심경이 복잡하다는 뜻이었다.

천우진이 말했다.

“백웅.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대략 알고 있다.”

나는 그 말에 흠칫 놀랐다.

“알고 있다고? 정말이냐?”

“그래. [매듭]에 갇힐 뻔 해서 제갈사와 진소청의 도움으로 항아를 물리치고 탈출했다는 걸 알고 있다.”

“……!! 그걸 어떻게….”

“…….”

끼깅….

천우진이 윗주머니에 있던 전자담배를 꺼내서 피웠다. 그리고는 말했다.

“진소청이 내게 업(業)을 전승했기 때문이다.”

“뭐? 무슨… 아!”

그 순간, 나는 진소청이 마지막에 했던 말이 생각났다.

[나는 [경계]를 여노라. 위대한 나의 스승이시여. 제가 이뤄낸 업적의 인과율은 사형께 이어주십시오….]

그 때 분명히 진소청이 나를 현실로 돌려보내 주면서 그런 말을 했었다. 나는 그 기억을 떠올리며 말했다.

“업적의 인과율! 그런 말을 했었지. 그게 무슨 말이냐?”

“그걸 말해주기 전에 우선 흑요석을 다오. 나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파악해야 한다. 내가 알고 있는 건 진소청이 널 마주친 이후의 일 뿐이니까.”

“알았다.”

우웅

내가 천우진에게 기억을 전해주자, 천우진은 잠시동안 멍하니 있다가 쓴웃음을 지었다.

“후후... 이제 제 차례라는 거군요, 스승님.”

“……?”

“백웅. 간략하게 상황을 설명해 주마.”

천우진의 말이 이어졌다.

“[종말]이 시작되면서 목성이 지구에 급격히 가까워지면서 목성에 열린 거대한 차원문에서 무수한 괴물이 지구로 침공하기 시작했다. 사공린을 비롯한 모든 전력은 지금 목성으로 가서 놈들과 싸우는 중이지. 그런데 이 재앙이 벌어진 게 너무나 이상한 일이다.”

“뭐가 이상한데?”

“제갈사의 말을 기억하는가? 칠요(七曜)를 이루는 행성이 일렬로 일어나는 현상이 말세에 일어난다고 했었는데, 그 재앙이 바로 지금 일어나는 중이다. 그러나 이건 본디 있을 수가 없는 일이야.”

“어째서지?”

이어진 천우진의 말에 나는 흠칫했다.

“칠요의 직렬을 이루는 건 바로 흉신(凶神)의 마력이기 때문이다.”

“아!”

“알다시피 흉신은 이미 소멸되었지. 그가 기거하던 심해의 도시조차도 소멸되었다. 그렇다면 칠요직렬현상은 본디 일어날 수가 없어. 그런데도 일어나버렸고, 지금도 목성 이외의 행성이 급격하게 움직이고 있는 중이다.”

“어, 어째서 그런 일이?”

“네가 오기 전까지는 그 이유를 몰랐다. 아니, 정확히는 진소청의 업을 받기 전까지는 몰랐다는 거지…. 그래서 예기치 못한 재난에 더더욱 당황했었는데.”

천우진이 전자담배를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뭔가를 생각했다. 그러더니 말했다.

“쉽게 생각하자면 이 현상을 일으키는 건 흉신이 아닌 황제 공손헌원이 된다. 그 자가 종말을 시작한 게 확실하다. 능력도 동기도 확실히 존재해.”

“그 놈이…!! 근데 그게 가능한 일인가?”

“충분히 가능하지. 황제 또한 흉신만큼 대단한 존재니까. 칠요의 행성을 움직이는데 드는 마력은 상상을 초월하겠지만 황제가 그걸 못할 존재는 아니다.”

“으음.”

“문제는 황제가 그 짓을 하는 이유겠지만, 그 또한 설명이 가능하다. 왜냐하면 바로 어제 그 일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엥? 무슨 말이지?

내가 어리둥절해하자 천우진이 전자담배의 끝을 내게 향했다.

“바로 너다. 네가 오늘 귀환했기 때문이야.”

“……?!”

“황제에게는 인과율을 읽는 능력이 있다. 황제는 인과율을 읽어서 네가 [매듭]이라는 꿈에서 현실로 귀환하는 게 오늘이라는 걸 알아냈을 것이다. 그리고 너를 자신의 계획에 넣고 휘두르기 위해서 어제부터 판을 짜기 시작했던 거지.”

“그런건가….”

천우진의 말이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나는 한 가지 이해가 되지 않는 게 있어서 천우진에게 반문했다.

“굳이 내가 복귀하기 하루 전날부터 시작해야 할 이유가 있었을까? 기왕 할 거라면 한 1년 전에 종말을 시작해 버려서 내가 귀환했을 때는 아무것도 못하게끔 황폐화시키는 게 더 확실하지 않겠어.”

“맞는 말이다. 그 이유는 아직까지 알 수 없지만…. 좀 더 시점을 넓혀서 생각하면 이해가 가능하지.”

천우진은 염세적인 표정을 지으며 다시 한 번 전자담배를 피웠다.

“네가 있든 없든간에 한 번 종말을 시작하면 황제는 만신전의 힘을 써서 10할 완벽하게 이길 자신이 있는 거다. 너무 압도적인 전력차이가 있기 때문에 굳이 네 힘을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게 가장 크지.”

“…….”

“천축의 파괴신 시바와 싸우면서 그걸 느꼈을 거다. 비단 천계 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힘을 다 갖다보태도 그 자를 이길 순 없었어.”

“제기랄….”

“혹은, 네게 여유를 줘야만 하는 이유가 따로 있다던가…. 하지만 이건 너무 수가 깊어서 짐작도 못하겠군.”

천우진의 말에 나는 이를 악물었다. 확실히 만신전의 힘이 그 정도라면 내 존재는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하는 것이다. 이제부터 최선을 다해서 싸운다 하더라도 황제를 이길 확률은 전혀 없는 거나 다름없으리라.

나는 천우진에게 말했다.

“검마는 여와나 복희도 믿지 말고 너를 바로 찾아가라고 했어. 지금 삼황조차 믿지 못할 이유가 있는 건가?”

“그건 검마의 판단이 옳다. 만일 여와나 복희를 찾아간다면 그들은 널 봉인하거나 이용해서 뭔가를 시도하려 할지도 몰라. 삼황이 종말을 극복할 의지가 없다는 걸 이미 확인했기 때문에, 검마는 그들을 완전히 신뢰할 수 없다고 판단한 거다. 특히 여와는.”

“으음….”

“아무튼…. 여기까지 대충 상황설명은 되었군. 이제 네 의지가 남았다.”

천우진이 다소 싸늘한 눈빛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백웅. 넌 이 상황에도 끝까지 승리를 위해 싸울 거냐? 아니면 계시를 목격할 때까지 버티는데만 주력하겠나?”

“갑자기 그걸 묻는 이유가 뭐야?”

“이도저도 아니면 지금 당장 자살하고 다음 생을 시작하는 게 가장 네게 이득이 되기 때문이다.”

“…….”

“말해. 지금 네 선택에 따라 모든 운명이 결정된다.”

천우진의 말을 단숨에 이해할 수 있었다.

한 줌의 희망조차 없는 지금 상황에서 어떻게든 동료들과 힘을 합쳐서 끝까지 저항하던가, 그게 아니라면 목숨만 살아서 [계시]만 목격하고 죽는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두 가지 방법은 모두 황제 공손헌원의 흉계에 빠지거나 그에게 이용당할 확률이 있기에 자신없으면 지금 당장 죽는 게 가장 나은 것이다.

‘어떻게 하지….’

아까 시바와 싸울 때는 검마와 동료들의 노고에 대한 의리가 있었기 때문에 죽어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으로 모든 의지를 다했다. 그러나 지금부터는 앞으로의 전생 모두가 걸려있는 중대한 선택이다. 나는 한참동안 고민하다가 천우진에게 말했다.

“천우진. 그 전에 물어볼 게 있다.”

“뭐냐?”

“망량은… 어디 갔지.”

내게 있어서 가장 중대한 질문.

‘[매듭]은 아마… 항아 말대로 천계 항우와의 전투 때 맺어진 게 아니다. 아마도 처음으로 항아가 각성했던 바로 그 시점, 영귀의 점을 보기 직전에 맺어졌던 것이리라.’

검마나 다른 동료들의 반응을 보면 대충 그렇다는 걸 짐작할 수 있다. 항우와 싸우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 모두가 멀쩡히 있었던 것이리라.

그렇다면 그 시점에서 망량은 죽지 않았던 것이다.

왜냐하면 99층의 시련관으로써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중이기에.

그렇다면, 당연히 살아있지 않을까?

그러자 내 질문을 들은 천우진이 씁쓸하게 말했다.

“사형은… 실종되었다.”

“뭐라고?”

“너는 영귀의 시련에서 난데없이 자취를 감추었다. 그리고 그렇게 되자 전생자를 시험하려고 온갖 시련을 준비하던 여와 또한 힘이 빠져서 시련을 철회했고, 그럭저럭 무난한 난이도로 마지막 층까지 천계 탐사대가 시련을 통과했지. 물론 장삼봉의 지도 아래 수준을 올리기 위해 5년 정도는 수련했다고 들었다. 그 후 99층에 도달했으나 사형은 이미 삼황의 시선에서 벗어나서 자취를 감추었다….”

“…….”

“우리는 사형이 어디로 갔는지, 그리고 왜 사라졌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여와에게 전후사정을 들었으나 삼황조차도 그들과 협력하던 사형이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지. 혹시나 해서 명계로 가 보았으나 명계에도 사형은 없었다.”

“무슨 그런….”

나는 어이가 없어서 멍하니 있다가 불현듯 생각나서 말했다.

“미호는 어떻게 됐지?”

“그녀는 여와에게 거둬졌다. 지금 뭐하고 있는진 모르겠군….”

“흠.”

천우진이 놈 답지 않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사형이 배신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사형을 만나려 들지 마라. 그건 최악의 선택이다.”

“망량의 사제인 네가 그런 말을 할 수 있단 거냐?”

“사형은 내게 소중한 존재이지만 지금은 [종말]. 대의를 좀 더 앞서서 판단할 수밖에.”

천우진은 한숨을 쉬는 듯 했다.

“…하아. 정말이지, 여기까진 오고싶지 않았다. 언젠가 이 순간이 올 거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

“백웅. 어쩌겠나?”

천우진은 그 답지 않게 내게 짜증을 표현하지 않고 있었다. 그만큼 지금의 [종말]이 절망적이며 최후의 순간이라는 뜻이었다. 나는 잠시동안 생각하다가 결국 입을 열 수 밖에 없었다.

“…난, 자살하겠어.”

이것밖에 없다.

계속 생각해 봤지만 이것뿐이다.

“그게 네 선택이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더 이상 황제의 흉계에 말려들고 싶지 않아. [계시]를 보지 못하는 건 아깝지만 이쯤에서 이번 생을 정리하려 한다.”

해야할 건 많다.

그러나 황제가 하필 지금 종말을 일으켰다는 것 - 그것은 이미 벗어날 수 없는 흉계가 시작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내가 발버둥칠수록 거미줄처럼 인과율이 나를 옥죄어 올 것이고, 나는 결국 황제에게 당하고 말리라. 소탐대실을 범하게 되면 내 전생이 영영 끊기게 되리라.

“그렇군…. 가장 무난한 선택을 했군.”

“날 비난하고 싶나?”

“그럴 리가. 너의 선택을 존중한다.”

천우진은 천천히 내게 손을 뻗었다.

“잘 가라.”

순간, 나는 못다한 말이 있다는 걸 깨달아서 그를 제지했다.

“하지만.”

“하지만?”

나는 전에 없이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나는 죽기 전에 여동빈의 검(劍)을 보고 싶어. 그게 내 마지막 소망이야.”

내 말에 뜻밖이라는 듯 천우진이 눈을 둥그렇게 떴다.

“어째서?”

“그가 쓰는 신역절기를 보고 싶다. 정말로 그가 신역절기를 얻었는지 보고 싶어.”

“그게 그렇게 중요한 일인가?”

무표정한 천우진의 얼굴을 마주하고 있으니 점차 힘이 빠지는 게 느껴졌다. 지나쳐 온 피로감이 한꺼번에 몸에 몰려드는 듯한 무기력한 기분이었다.

“이기적이라는 건 알아…. 모두가 죽어가는 종말에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정말 이기적이라는 건 알지만….”

나는 다소 지친 얼굴로 천장을 보며 말했다.

“…나도 희망을 갖고 싶어. 힘들다고. 그것뿐이야.”

“…….”

한동안 침묵이 감돌았다.

천우진도 나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의자에 앉아서 허공을 응시했다. 같은 공간에 있지만 서로 하나의 시선도 마주치지 않은 채 서로의 상념에 잠겼다. 그것은 너무나 많은 고뇌와 사건을 지나쳐 온 탓에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계속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이윽고 천우진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좋아. 네 마지막 선택을 존중하겠다.”

“고맙다.”

“너 자신을 돌아보는 데 성공했군.”

천우진의 몸에서 심상찮은 기운이 일어났다. 그의 눈에서 서서히 빛이 번득이더니 주변의 시공간이 뒤바뀌는 게 느껴졌다.

“그렇다면 나, 망량선사의 사도(使徒) 천우진은 끝까지 너와 함께 해 주마. 인간의 왕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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