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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1192화 (1,189/1,615)

1192====================

사신지혼(四神之魂)

나는 검마와 함께 전장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달려가는 와중에 검마에게 말했다.

“내가 갑자기 나타난 걸 이상하게 생각하진 않습니까?”

검마가 대꾸했다.

“늘 있는 일 아니었나? 지금에만 집중하게!”

“알겠습니다!”

“온다!”

쿠르르릉….

번개와 천둥이 동시에 일어난다. 그리고 저편의 하늘에서 마치 번개의 파도처럼 보이는 거대한 물결이 넘실거리며 날아왔다. 그 번개의 파도는 장내에 존재하는 모든 신선들을 덮어버릴 것만 같았다.

지잉

그러자 천공에서 선명한 별빛이 맺히는 듯 했다. 그리고 광포한 외침이 터져나오며 수백 갈래의 화살이 쏘아졌다.

[나, 꿰뚫노라!]

퍼퍼펑

별빛의 화살이 단숨에 번개의 파도를 관통하며 거대한 공백을 만들어내었다. 그리고 파도의 기세가 약해지자 그틈에 몰려있던 신선들이 보패를 가동시켜서 보호막을 만들었고, 해신이라도 뒤덮을 법한 초거대 번개파도가 그대로 힘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나는 파도를 막아낸 게 누구인지 멀리에서 확인하고는 흠칫했다.

“…예인가!”

예의 손에는 적궁백시가 들려 있었다. 또한 그런 예의 주변에는 적들이 수백 마리나 포위하는 중이었고 격렬한 전투가 이어지는 게 보였다. 나는 그 광경을 보자 순식간에 실감할 수 있었다.

‘전투의 수준이 차원이 달라! 이게 진짜 차원계의 전투…!!’

저 공격을 막아낸 예가 대단한 것도 있지만 방금 전 적이 펼쳤던 술법 또한 분명한 신급 주술이었다. 적측에도 파괴신을 제외하고도 마왕을 격살할만한 술사가 존재한다는 뜻이다. 전반적인 수준이 굉장히 높았다.

신들의 전투를 목격한 적은 꽤 있었지만 차원의 세력 전체가 총력전을 벌이는 사투를 목격하는 건 이번이 거의 처음이다. 내가 나도 모르게 긴장하자 검마가 말했다.

“백웅! 혹시해서 묻는거지만 실종된 동안 새로운 힘을 얻었나?”

나는 그 질문에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좋아. 그럼 자네의 권능으로 우리를 엄호해주게. 파괴신의 지근거리까지 우리 힘만으론 갈 수 없어.”

“우리…?”

파앗

어느 새 지근거리에 허공답보를 써서 무영검제와 진국준이 와 있었다. 무영검제가 자신의 장검을 뽑아들며 호쾌한 목소리로 말했다.

“간만이군요, 폐하! 갑시다!”

“…가긴 갈 건데!”

나는 망설이다가 말했다.

“솔직히 자신없어! 파괴신한테서 보호해줄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고.”

내 신력을 이용해서 혼원지순을 중첩시켜서 걸면 일시적으로 방어력이 급증하겠지만 그렇다 해도 지금 나타난 저 파괴신은 격이 다른 존재다. 솔직히 말해서 멀리서 느껴지는 힘만으로도, 절대 정면으로 싸우고 싶지 않은 자다. 접근하다가 다같이 파리처럼 때려잡힐 확률이 훨씬 높은 것이다.

그러자 진국준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신과 싸우는데 당연히 그 정도는 각오하고 있다. 또한 말세인데 싸우다가 죽으면 그것도 그 나름 명예로운 죽음 아니겠나?”

“……!!”

“죽어도 원망 안 한다! 가자!”

나는 눈앞의 셋이 진정한 전사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단순무식한 게 아니라 모든 걸 이해하면서도 죽음 앞에서 초연해질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더 이상 망설일 수 없다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동시에 나도 각오한다.

종말을 끝까지 못 보는 한이 있어도 저 파괴신한테 한 방 먹이고 죽겠다!

치리링

나는 나를 포함한 모두에게 혼원지순을 중첩해서 걸어주었다. 동시에 묘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거 봐. 옥황의는 없지만 그래도 옥황의를 이용해서 소화했던 신력의 가용량은 그대로 남아 있잖아….’

즉 [매듭] 내부에서 얻었던 힘은 전승되었단 소리다. 그게 비록 꿈일지라도. 산하사직도와 같았다.

그런데 어째서 방금 전 그 표범마왕에게 생사부를 썼을 땐 바로 살아났던 거지?

‘생사부에 문제가 생긴건가? 그게 아니라면….’

분명히 힘이 전승되었다면 내게 유리한걸텐데 예감이 안 좋다.

뭔가 복잡해지는 기분에 내가 인상을 찌푸리자 검마가 말했다.

“백웅. 우리가 공격할 때 무리해서 끼어들지 말게. 더 위험해질 걸세.”

“알겠습니다.”

파앗!!

우리는 동시에 날아서 머나먼 하늘에서 교전중인 파괴신과 항우, 서왕모의 전장으로 향했다. 날아가는 도중에 여기저기서 파괴신의 부하들이 끼어들어서 공격해 왔지만, 그들이 날리는 주술과 술법은 대부분 내 혼원지순 중첩에 별다른 타격을 주지 못했다. 종종 강한 놈들이 날리는 공격이 혼원지순에 균열을 만들었지만, 그 때 진국준이 나서서 눈을 빛내며 발차기를 날렸다.

테카(脚)

쿠콰콰쾅

[꾸워어억.]

그 발차기 한 방에 마치 소처럼 생긴 육 장 크기의 마물이 찢겨서 육편이 되었다. 마치 조그마한 언덕이 날려가는 듯한 육중한 광경! 실로 가공스러운 발차기의 위력이었고, 나는 그 발차기에 담긴 의념이 예전보다 더욱 강해진 것 같았기에 흠칫 놀랐다.

‘저 정도면 나도 정면에서 못 막겠어…. 과연. 그 동안 수련을 열심히 했나 보군….’

어찌보면 파괴신을 쓰러뜨리러 절대지경 고수들이 간다는 게 본디 어불성설이었지만 검마와 다른 동료들에게는 알 수 없는 자신감이 있었다. 나는 그 자신감에 모든 걸 걸기로 하며 계속 전진했다.

잠시 후 눈 앞에 항우와 서왕모가 보였다. 천공의 구름을 휩싸며 강대한 힘을 뿜어내는 그들은 전력을 다하고 있는 듯 악귀의 손을 상대로 보이지 않는 속도로 움직이며 공격하고 있었다. 저 싸움에 끼어들 수는 없을 듯 했기에 내가 주춤거리자 검마가 옆에서 사자후로 외쳤다.

[항우!! 우리가 틈을 만들겠소! 그걸 놓치지 마시오!]

그 말에 항우가 힐끔 이쪽을 바라보는 게 느껴졌다. 알아들은건지 아닌건지 알 수 없는 모습이었지만, 그걸 개의치 않고 검마는 그대로 검을 들어서 악귀의 거대한 손을 향해 겨누었다.

우우우우

검마의 좌우에 무영검제와 진국준이 섰다. 나는 그들이 삼재(三才)의 방위를 잡고 서서 의념을 강하게 집중하는 걸 보자 묘한 기시감이 들었다.

‘어라? 저건 어디서 본 것 같은….’

내가 어리둥절하자 검마가 내게 말했다.

“이 전투에서 살아남는다면 천우진을 찾아가게. 이젠 복희도 여와도 의존할 수 없어. 다른 자는 아무도 믿지 말게.”

“검마. 불길한 소리는 그만….”

“하아아압!!”

셋의 몸에서 동시에 충천하는 의념이 솟아올랐다. 그리고 동시에 그들이 천공의 한 점을 향해 달려들었는데, 그건 악귀의 손이 있는 곳이 아니라 아무 상관도 없어보이는 텅 빈 하늘이었다. 그리고 검마의 검이 황금의 빛을 뿜어내며 회전하기 시작했다.

삼재관천(三才貫天)!

투웅 -

마치 격렬하게 회전하던 추가 튕겨져서 날아가는 듯 했다. 검마의 의념을 정점으로 하여 무영검제와 진국준의 의념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회전하며 검마의 검령을 에워쌌다. 그리고 마침내 천공을 꿰뚫고 우주로 날아가는 순간, 검마의 몸 또한 황금의 빛으로 변해서 하늘을 갈랐다.

‘합체기!!’

절대지경의 합체기를 그 동안 연마해왔던 건가!

쩌억

콰칭!!

“……!!”

저, 저게 뭐지?!

삼재관천의 오의가 허공의 한 점을 꿰뚫은 순간, 마치 시공간이 유리처럼 깨어지며 그 뒤편에서 거대한 어둠의 우주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우주 너머에 존재하는 초절하게 거대한 ‘무언가’가 보였는데, 그것은 실로 무시무시하게 거대했다.

마치 복희의 본체를 연상시킬 정도의 거대한 천축의 거인!!

그러나 거신족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고 마치 우주의 중앙에서 피어오르는 연꽃에 앉아있는 신성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연꽃의 옥좌에 앉아있던 그 거대한 존재는 이마에 있는 보석을 붉게 물들이더니 훗하고 웃었다.

[미력한 자들이여! 어디까지 반항할 생각이더냐?]

“죽어라!!”

쿠콰콰쾅!!

그 순간, 본체가 드러난 틈을 놓치지 않고 항우가 혈광을 뿜어내며 돌격해서 연꽃의 좌에 앉은 존재를 타격했다. 그리고 항우의 일격은 그로서도 무시할 수 없는지, 처음으로 손을 제대로 들어서 항우의 공격을 방어한 듯 했다.

연꽃의 좌에 앉은 자는 불쾌하다는 듯 말했다.

[몇 놈 살려둘 생각이었거늘 마음이 바뀌었다! 천계에 존재하는 모든 걸 없애겠노라.]

“웃기지 마라!! 네놈이 뭔데.”

무영검제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그 존재가 담담하게 자기소개를 했다.

[나는 [파괴하는 법칙] 시바. 종말에 내 손에 죽는 걸 영광으로 알거라!]

파괴신 시바가 잠시 후 서서히 연꽃의 옥좌에서 일어섰다.

그러자 시바의 가사같은 옷이 사라지면서 그의 팔이 무려 10개로 불어났고, 얼굴이 4개로 변했다. 동시에 이마에 박혀 있던 시뻘건 보석이 눈으로 돌변하며 삼안이 되었으며 그의 왼손에는 염주가 소환되었다.

우우우우

신체(神體)가 진짜 모습을 드러낸 그 순간 - 암울한 파동이 세상에 퍼져나갔다. 그리고 검마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세상에 이런 놈이….”

후와악

시바의 몸에서 검은 파동이 물결치며 뻗어나간 순간.

사방의 모든 인기척이 소멸되어버렸다. 그리고 나는 뒤늦게 내게 파동이 덮쳐오며 어디론가 끝도 없이 튕겨나가는 걸 알 수 있었다.

쿠콰쾅

“으아아아악.”

나는 혼원지순이 통째로 뭉개지며 전신의 뼈가 박살났다는 걸 깨달았다. 파괴의 파동이 너무 강력해서 도저히 감당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나는 이 가벼운 일격만으로 전투불능에 빠지자 시바가 어느 정도 격에 존재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삼황오제와 대등한 힘을 지닌 존재!!

저런 자가 만신전에 광성자 말고도 또 있었단 말인가?!

‘빌어먹을…. 전투는 시작도 안했는데 벌써 죽을 거 같다니!’

나는 이를 악물고 신력을 가득 모아서 치유의 힘을 증폭시켰다. 그러자 잠시 후 부숴진 몸이 원래대로 돌아오기 시작했으나 땅에 떨어지자 전신이 박살나는 기분이 들었다.

쿠구궁….

“쿨럭! 쿨럭! 쿨럭….”

나는 피기침을 토해내었다. 하지만 어떻게든 줄어드는 생명의 기운만큼 회복해서 버텨낸 모양이었다.

“헉… 죽…죽을 것 같다….”

왠지 신들과 싸우면서 맷집만 계속 늘어나는 기분이라서 정말 짜증이 난다. 나는 지체하지 않고 곧장 생사부를 소환했다.

“생사부!! 시바의 이름을 써라!!”

우웅

금성의 마신들조차 생사부에 적히면 소멸을 피할 수 없었다. 아무리 시바라고 하더라도 여기에 당하면 타격은 피할 수 없겠지!

시바의 이름이 적히자 생사부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생사부가 빛나는 동안에 시바의 목소리가 내 귓전에 울려퍼졌다.

[크으으으…. 감히… 뒤틀어진 인과율로 감히 내 이름을 멸하려 드느냐? 내가 그리 우스워 보이느냐? 어림도 없는 소리!!]

퍼엉!

생사부가 폭발해 버렸다. 종이가 흩날리며 그 자리에는 잔해가 펄럭거리며 떨어졌다.

“……!!”

아니 뭐엇?!

생사부가 어째서?!

‘목소리가 고통스러운 걸 봐서는 타격은 입은 것 같지만….’

생사부가 터질 이유가 도저히 짐작이 되지 않는다. 나는 멍하니 서 있다가 문득 정신을 차리고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제기랄!! 그래도 싸운다!!”

이 자리에서 목숨을 걸기로 하지 않았는가! 다른 정보를 얻고 말고 하다가는 더 안좋은 결과만 나올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 이 자리에서 시바에게 한 방 먹이고 죽을 것이다!

“지선, 비행의 술법!”

파앗

나는 다시금 하늘로 날아가서 전장에 도착했다. 그리고 전장에 도착했을 때 나타난 광경이 내 마음을 암울하게 만들었다.

퍼억!! 퍼억!!

[크하하하하!!]

“……!!”

항우와 시바가 난타전을 벌이고 있었다. 서로가 방어를 도외시하며 닥치고 주먹으로 얼굴을 때리는 상황! 그리고 그 난타전 동안 시바는 광소를 터뜨리고 있었으며 항우는 묵묵히 난타에 참여하지만 그의 얼굴에는 이미 피멍이 들어 있었다.

‘저대로라면 항우가 죽어!’

누가 보아도 항우가 깨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멈춰라!!]

그 때 뒤편에서 서왕모가 끼어들어서 강대한 술법의 감옥으로 시바를 멈추려는 듯 했다. 그러나 시바는 술법에 당하자 잠시 주춤했을 뿐, 이내 한 손에 있던 뱀을 튕기듯 서왕모 쪽으로 날렸다.

콰직

[크으으윽.]

어깨를 시바의 뱀에 물린 서왕모가 고통스러워하며 주저앉는 게 보였다. 시바가 잠시 염주를 휘둘러 항우를 떨쳐내며 조롱하듯 서왕모에게 말했다.

[듣던 대로 전성기의 힘은 이미 잃어버렸나보구나, 여와. 게다가 그 화신 또한 한 번 거둬들인 탓에 본래의 성능을 절반도 내지 못하는군. 설마 천지를 떨게 했던 음천의 여신이 이토록 약해졌을 줄이야.]

[닥쳐라, 만신전의 개야!]

[후후. 비슈누가 직접 오고싶어했던 이유를 알 것 같군….]

웃고 있던 시바가 항우에게 말했다.

[지배자에 가깝다 하여 네가 지배자인 건 아니다. 격차를 보여줄테니 어서 덤벼라.]

“죽인다…!!”

꽈광

항우가 재차 시바에게 주먹을 날리자 시바는 이번에는 반격하지 않고 항우의 주먹을 그대로 맞았다. 그러나 시바의 얼굴에는 한 줌의 생채기조차 나지 않았다!

“……!!”

[하하하…. 삼황오제와 고대에 드잡이질하던 나다. 전 우주에서 날 힘으로 이길 자는 몇 되지 않지. 놀아주니 재밌었느냐?]

“이 놈…!!”

[지배자의 재능은 넘치지만 네놈에겐 시간이 부족했구나.]

퍼억!!

다음 순간, 항우의 가슴팍 한가운데에 시바의 수도(手刀)가 박혔다. 항우는 혈광을 뿜어내면서 그걸 무시하고 재반격하려는 듯 했으나, 시바의 수도가 그대로 치솟아올라서 항우의 몸을 절단해 버렸다.

[그래도 제법 센 놈이었다는 건 인정해주마.]

풀썩

시바의 한 마디와 함께 항우의 몸이 반쪽나서 그대로 뒤로 엎어졌다. 시바는 이어서 서왕모 쪽으로 시선을 돌리더니 이번에는 염주를 휘둘렀다.

콰과광

서왕모는 그 일격에 흔적조차 남기지 못하고 바스라지고 말았다. 나는 일련의 광경이 순식간에 끝나는 걸 보면서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

천계 최강자들을 저렇게 쉽게 박살내다니.

저렇게 강한 신화적 존재가 삼황오제 말고도 또 있었단 말인가….

‘아니…. 저런 괴물조차도…. 황제 공손헌원의 부하이자 장기말일뿐이라는 게….’

이제서야 실감이 난다.

황제의 승리는 이미 결정되었으며, 만신전의 세력이 역대 최강이라는 말이.

파괴신 시바나 광성자만으로도 압도적인데 응룡이나 다른 존재들을 합치면 이미 전성기의 삼황오제에 버금가는 놈들이다. 그리고 정작 삼황오제는 거의 다 소멸하여 대항조차 할 수 없다.

이것이 말세.

끝없는 절망인가….

시바는 날 발견하고는 웃으며 다가왔다.

[내 부하들이 재밌는 얘길 하더군. 네가 옥황상제라고 자칭했다고…. 너는 뭐 하는 놈이냐?]

“…….”

상대는 내 정체를 아직은 모르는 것 같다. 그러나 여기서 어떤 식으로 가든간에 결국 죽거나 납치당하는 걸 피할 수는 없으리라. 각오했던 최악의 결말이 다가오자 나는 이를 악물었다.

‘제길. 끝까지 간다….’

내가 입을 열어서 시바에게 대답하려는 그 순간이었다.

삐이이이 -

[…음?]

기이한 울음소리.

그 울음소리가 퍼져나오면서 시바가 약간 긴장하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잠시 후 바로 내 앞에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스스스스….

안개로 몸을 둘러싼 그 존재는 번개를 파직거리며 뿔을 지니고 있었다. 아직 모습을 온전히 드러내지 않은 그 신이한 존재가 시바에게 말했다.

[관둬라.]

[크크크…. 뜬금없이 나타나서는 뭐하자는 건가? 오랫만에 보는군.]

[이 놈은 내가 데려가겠다.]

[말세에 감히 파괴신인 나와 교섭하겠다고? 그게 될 것 같으냐.]

[네놈도 계시를 노리고 있을 텐데 나와 싸워서 뒷자리에서 골골대고 싶은가.]

[…….]

시바는 곤란한듯 뭔가 생각하는 기색이었다. 그러더니 염주를 강하게 쥐며 말했다.

[그냥 둘 다 여기서 죽여주마.]

후와악!!

시바가 돌진하며 공격해왔다. 그러자 내 앞을 가로막은 존재가 갑자기 전신에서 뇌광을 뿜어내었고, 시바는 그 뇌광에 닿이자 마치 불에 덴 듯 화들짝 놀라서 뒤로 물러섰다.

[크윽!! 이건….]

이른바 소멸의 영역!

나는 어디선가 저 기술을 본 것 같았다.

화륵

[이…이런.]

뇌광에 닿인 시바의 손 한 쪽이 모조리 사라져 있었다. 시바가 곤란한 듯 주춤거리고 있을 때, 어디선가 어검(御劍)이 날아와서 시바를 공격하는 게 보였다.

꾸웅!!

어검에 실린 역도가 강력하기 때문인지 시바가 흠칫하고 몸을 떨었다. 그리고는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하찮아서 놔뒀는데 감히 인간따위가 날 공격해?]

어검이 날아온 곳에는 검마와 무영검제, 진국준이 서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무언가 각오한 표정을 짓고 있었으며 또 다시 삼재의 방위로 서 있는 게 보였다. 나는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아까 느꼈던 기시감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저…저건….’

기억난다!

칠요의 시련.

목요의 시련에서 목숨을 다했던 그들의….

“우리의 역할은 여기까지일세.”

검마가 문득 내 쪽을 보더니 웃었다.

“혜아를 잘 부탁하네….”

아신역(亞神域)

절기(絶技)

태허합진(太虛合陣)

한 차례의 섬광이 일어난다. 그리고 한없이 시간이 축소되는 그 순간 - 정말 아주 작은 미세한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작은 것보다 더욱 작은 것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동안에 나는 마지막에 [끈]처럼 생긴 게 눈동자에 비치는 걸 깨달았다.

삼재가 붕괴한다.

검마와 무영검제, 진국준의 몸이 통째로 사라진다.

가장 작은 것의 단위로.

…예전에 같은 일이 있었을 때는 보지 못했던… 절대지경 고수들의 죽음이 느리게 펼쳐진다.

[우오…. 오오오오…!! 내가 황제에게서 얻은 혼돈의 힘이… 나를 해치는가…. 이… 이런 기술이 있을 수가….]

빠지직

시바가 울부짖는 듯한 소리와 함께 그의 살갗이 갈라지는 게 눈에 보였다. 시바의 갈라진 살갗 사이로 신혈이 흘러나왔고 그는 광란에 빠진듯 정신없이 움직였다.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이 느껴지는지 시바가 광분했다.

[크아아아아아!! 인간 따위가!!!]

퍼어어억!!

시바의 신체가 크게 폭발하며 육혈이 비산했다. 인간으로 쳐도 심상치 않은 치명상이었고 시바는 잠시동안 멈춰서 움직이지 못했다.

슈르르르...

시바는 잠시 후 모래먼지가 되어서 사라지고 말았다.

“…해치웠…나?”

내가 더듬거리며 말하고 있을 때 내 앞을 가로막고 있던 존재가 힐끔 내 쪽을 보더니 말했다.

[성가신 힘이군…. 나까지 쫓아낼 줄은… 태허의 권능인가….]

“…….”

그 존재가 살벌한 기운을 뿜어내며 나를 노려보는 게 느껴졌다.

[증오스러운 종말의 원흉이여…. 기억해 둬라…. 다시 널 데리러 오겠다….]

파앗!

신비한 뿔달린 존재 또한 그 자리에서 사라져 버렸다.

‘저놈은 대체?’

아군인지 적군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나는 갑작스러운 상황전개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도대체 이 순식간에 무슨 일이 벌어져버린 것인가?

하지만 해야할 일은 명확하다.

나는 주먹을 꾹 쥐며 중얼거렸다.

“가야지.”

천우진에게 가야 한다.

그게 검마의 유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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