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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1191화 (1,188/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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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나는 여동빈의 말에 눈앞이 캄캄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올 게 왔나…!!’

아무래도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볼 때 내가 [매듭]에서 싸웠던 그 짧은 시간 동안에 현실세계는 시간이 많이 흘러있었던 모양이었다. 혹은 창힐이 마지막에 외쳤던 저주의 말이 현실로 돌아오는데 영향을 끼쳤을지도 모른다.

그럼 난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상황은 생각도 못했기에 조금 당황스러웠다. 왜냐하면 항아의 배신에 대처할 때는 그저 [매듭]을 끊느냐 마느냐에 집중했으며 살아나더라도 곧장 항우의 손에 죽으리라 생각했기에 생에 대한 집착이 없었다. 그러나 난데없이 [종말]을 맞닥뜨렸으니, 나는 진심으로 양자택일을 고심하게 되었다.

죽느냐 사느냐!

‘지금까지 그토록 고대했던 [종말]을 직접 볼 수 있다는 걸 생각하면 일분일초라도 더 질기게 살아야겠지만….’

내가 껄끄럽게 여기는 것은 바로 황제 공손헌원의 존재였다.

그 자는 인과율을 읽는 존재.

어쩌면 내가 이 시간에 되돌아올 것까지 예측해서 모든 계교를 짜놓은 건 아니었을까?

자칫 [종말]을 보려고 노력하다가 그의 흉계에 휘말려서 두 번 다시 전생할 수 없게 되는 지경에 처하지는 않을까?

“…….”

내가 고민하고 있을 때 여동빈이 말했다.

“어디에 갔다왔는지는 묻지 않겠다. 그러나 지금 이 시점에 그대가 고려해야 할 것은 단 하나다.”

“그게 무엇입니까?”

“동료.”

“……!!”

“그대를 위해 평생을 싸워온 자들을 위해 검을 들 수 없다면, 그대는 협의(俠義)를 말할 수 없으리라.”

나는 머리에 둔한 충격을 맞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지금 죽는 게 안전한 방법이라고 하더라도 어찌됐든 이 시대에 날 기다린 동료들이 남아 있다! 종말을 막든 막지 못하든 그들을 위해서 싸우는 것 또한 중요한 것이다. 나는 여동빈의 말에 일단 이 시대를 헤쳐나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여동빈에게 말했다.

“여동빈. 내 동료들이 향한 천공의 흉성이란 어딜 말하는 겁니까?”

“달을 봐라.”

휙 하고 시선을 달이 있는 쪽으로 돌리자 나는 흠칫하고 놀랐다.

“저, 저건?”

어둠 속에서 달은 어느 새 평소의 몇 배나 거대해져 있었으며 그 달의 뒤편에는 달보다 더더욱 커다란 적황색의 둥그런 별이 떠올라 있었다. 그 자체로 섬뜩할 정도였는데 내가 잘 깨닫지 못한 게 이상할 정도였다.

아마도 달 뒤편의 별이 흉성이리라.

“저 적황색 별은 무엇이란 말입니까?”

“그대의 동료들은 목성(木星)이라고 했다.”

“……!!”

뭐라고?!

목성이 저렇게 지구에 가까이 왔단 말인가?!

내가 입을 다물지 못하고 경악하고 있자 여동빈이 말을 이었다.

“목성이 가까이 다가옴으로써 생기는 천지재해는 환신 천우진이 막아내고 있으나 저 별에서 쉴새없이 마(魔)가 쏟아져오고 있다. 그래서 수십억 마리의 마물이 소환되는 목성으로 그대들의 동료들이 갔다.”

“으음….”

나는 침음성을 냈다.

‘제길…. [종말]이 이제야 시작된 걸텐데 시작부터 목성에서 마물이 쏟아진단 말인가?’

문제는 이게 시작일 뿐이란 것이다. 첫 날 부터 이 지경이라면 계속해서 대재앙이 쏟아질 경우 감당조차 되지 않는다. 승산이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는다는 걸 실감했으나 나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

“여동빈. 절 도와 주십시오. 목성으로 가서 재앙을 제거하겠습니다.”

“거절한다.”

“네?!”

뜻밖의 말에 내가 놀라자 여동빈이 말했다.

“북극에서 솟아오른 [옛 지배자]가 있다. 그 자가 세계파멸의 진언을 외우고 있으니 한 시진 내에 처치하지 않으면 이 지구가 멸망할 것이다. 그 일은 내가 하겠노라.”

“…….”

“가라. 더 이상 이야기를 나눌 시간은 없으리라.”

파아앗!

여동빈은 그 말을 끝으로 어검비행술을 써서 지평선으로 사라졌다. 나는 황망하게 그 뒷모습을 보며 절망이 마음속에 덮쳐오는 걸 알 수 있었다.

‘미친…. 이렇게까지 최악일 수가.’

여동빈이 [옛 지배자]를 상대할 수 있는지 없는지 따질 여유조차 없다. 전 세계를 멸망시킬 재앙이 수십 개씩 터지는 게 바로 [종말]인 것이다.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잠시 마음을 다잡은 후 외쳤다.

“옥황상제의 옥좌로!”

목성으로 바로 가기보다는 우선 천계로 가야겠다. 그리고 천계에서 지원군을 불러와서 같이 싸워야 한다! 그게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

우웅

내가 옥황상제의 권능을 써서 천계의 옥좌로 갔을 때였다.

“……?”

뭔가 분위기가 이상한데?

옥좌의 모습은 그대로였으나 옥황상제가 거처하는 궁에는 청록색의 가시덩굴이 벽에 가득 붙어 있었다. 그리고 늘 맑은 기운이 떠돌며 오색구름이 흐르던 것도 사라지고 통로 너머에는 으스스한 어둠이 가득해 있었다.

나는 크게 소리를 쳤다.

“거기 누구 없느냐! 옥황상제의 명을 받들라!”

그러자 어두운 목소리가 통로 저편에서 들려왔다.

[이상하군. 너 같은 놈이 있다는 이야기는 주군께 듣지 못했는데….]

쿠웅

쿠웅

거대하게 발을 구르는 소리와 함께 맞은편의 어둠에서 거대한 일 장 크기의 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괴물의 모습은 등에 박쥐날개가 달려있고 몸은 닮게 생겼으나 얼굴이 흑표범처럼 생겨있었다. 한 손에 대검을 들고 있던 그 괴물이 다른 손에 들고 있던 것을 내게 휙하고 내던졌다.

퍼벅

바닥에 내동댕이쳐서 핏덩어리가 된 것은 옥황의 궁궐에서 일하던 천계의 지선으로 보였다. 신선을 내던진 괴물이 말했다.

[주군께서 직접 천계에 오셨으니 너희는 더 이상 반항하지 말아라. 네 목을 순순히 내놓거라!]

후와악

흑표범 괴물이 다음 순간 날개를 뻗으며 어마어마한 속도로 대검을 휘둘렀다. 절대지경 고수에 못지 않은 속도와 힘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공격을 삼보절기로 회피하며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냐? 천계에 네 [주군]이란 놈이 쳐들어왔다는 거냐?”

[크르르…. 크와아악!!]

쿠쿵!!

흑표범 괴물이 입에서 칠흑의 광선을 뿜어내었다. 가공할 마력이 깃들어 있었기에 맨몸으로는 막을 수 없을 듯 해서 급히 피했고, 나는 그 마력량에서 한 가지 사실을 눈치챌 수 있었다.

‘저 놈도 마왕급 존재!’

그렇다면 저 놈이 말하는 [주군]이라는 건 설마…?

나는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더 이상 저 놈과 드잡이질을 할 시간이 없다는 위기감을 느끼며 즉시 생사부를 소환했다.

슈슈슉

나는 흑표범이 달려들기 직전에 생사부에 놈의 이름을 썼다. 그러자 흑표범의 눈에서 빠르게 빛이 꺼지더니 그대로 옥황궁에 나동그라졌다.

쿠쿵

“다행히 전륜성왕의 권능은 통하는가….”

이게 [현실]인데도 통한다는 건 다행스러운 일이다. 나는 딱 봐도 무투파 마왕인 저 놈을 정면승부로 쉽게 이기기 힘들다는 걸 알았기에, 손쉽게 처리할 수 있는 생사부라는 수단을 갖고있다는 게 다행으로 여겨진 것이다.

“우선 궁을 빠져나가야….”

번쩍!

[죽어라!]

그 때 갑자기 쓰러졌던 흑표범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재차 나를 공격했다. 내가 급히 놈의 습격을 회피하자 놈이 분노한 듯 말했다.

[크아아아아…. 동료들이여! 여기 강한 놈이 있다! 날 도와다오!]

쿠구구구….

“…제길!!”

나는 순식간에 놈의 외침과 함께 사방에서 강대한 마력이 몰려드는 걸 느끼자 이를 악물었다. 대체 저 놈은 어떻게 생사부에 당하고도 바로 일어선 거야?! 설마 생사부가 안 통하는 놈이란 말인가?

꾸오오오

쿠와악!!

내가 흑표범을 피해서 궁 밖으로 멸혼보를 써서 나오자 사방에서 온갖 동물 형상을 한 마왕들이 나타나서 나를 포위했다. 나는 놈들 하나하나가 마왕이라 불릴만한 존재라는 걸 깨닫자 기가 막혔다.

‘뭐 이런!!’

지금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죽여라!!]

[저 놈이 옥황상제라고 한다!]

콰과과광

사방팔방에서 공격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나는 그 공격 하나하나가 엄청난 공격력을 지니고 있으나 투박하다는 걸 깨닫고 삼보절기로 여유있게 피하면서 우선 그 구역을 빠져나왔다. 내가 한창 뛰고 있을 때 나는 기이한 빛이 천공에서 번득이는 걸 깨닫고는 하늘을 보았다.

우우우….

은빛의 섬광과 함께 두 개의 형상이 허공에 떠올라서 회전하는 게 보였다. 그리고 그 두 개의 형상 앞으로 거대한 악귀(惡鬼)의 손이 내려와서 붙잡으려는 듯 했고, 두 개의 형상은 거기에 반발하듯 빛을 내뿜으며 싸우고 있었다.

나는 안력을 더 강화해서 그 광경을 보았는데, 다음 순간 그 정체를 알아채고는 흠칫 놀랐다.

‘…항우!! 그리고 저건…. 서왕모?!’

놀랍게도 천계에서 가장 강력한 존재들이 힘을 합쳐서 싸우고 있는 것이다!

서왕모는 예전만큼의 힘을 보이고 있지 못한 듯 시원치 않다는 게 역력해 보였고, 전방에서 악귀의 손과 제대로 싸우는 것은 항우였다. 그리고 좀 더 자세히 보니, 저 싸움터를 둘러싸고 무수한 투선과 신선들이 하늘에 떠서 온갖 마물들과 전투를 벌이는 게 보였다.

콰과광

항우의 일격이 손을 가격하자 거대한 악귀의 손가락이 부러진 듯 뿌득거렸다. 그러더니 하늘 저편에서 놀랍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인간인 줄 알았더니 [지배자]에 가까운 존재였군…. 과연 공손헌원이 내게 쉬운 임무를 주진 않았구나.]

항우의 전신에서 가공할 혈광이 뻗치고 있었다. 그는 어마어마한 살기를 내뿜으며 외쳤다.

“죽어라.”

[크하하하하…. 재미있구나!!]

투웅!!

다음 순간 악귀의 손가락이 항우를 찌르는 듯 했고 항우는 그 공격을 아무렇지도 않게 정면으로 응수했다. 힘은 대등해 보였으나, 아무래도 저 하늘 너머의 존재는 그다지 전력을 다하고 있지 않다는 게 느껴졌다.

‘도대체 저건?’

천하의 항우가 저렇게 어렵게 상대할 존재라는 건….

“과연 되돌아왔군, 백웅.”

그 때 나는 귓전에 들리는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상대의 정체를 확인하자 흠칫 놀랐다.

“검마!”

나타난 것은 검마였다. 그리고 그의 뒤에는 독고성과 명룡자, 무영검제 세 명이 서 있었다. 나는 오랜만에 그들을 보자 반가운 마음이 들었으나 네 명 모두 결연한 표정을 지은 걸 보자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검마가 말했다.

“어딜 갔었는가?”

“음 그게….”

검마는 이해한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말하지 못하면 됐네. 시간이 없으니.”

“……?”

뭔가 이상한데?

나는 흑요석을 주려다가 엉거주춤하며 말했다.

“[종말]이 시작됐다는 건 여동빈에게 들었습니다. 천계에서 지원군을 얻어 지상의 동료들을 도우려고 왔는데 지금 이게 무슨 일입니까?”

“포기하게. 지금 천계도 도울 수 있는 상황이 아닐세.”

“네?”

검마는 하늘에서 전투를 벌이는 항우측의 광경을 올려다보며 어두운 목소리로 말했다.

“복희께서 말씀하시길, 저 존재는 천축의 파괴신이라고 불리는 존재. 천축출신으로서 가장 호전적인 신격이라 했네. 즉… [옛 지배자]일세.”

“……!!”

예상이 맞았다!

[옛 지배자] 중에서도 강력한 존재가 나섰기 때문에 저렇게 항우를 상대로도 여유로울 수 있으리라!

“지금 천계 투선들과 싸우고 있는 건 파괴신이 소환한 종복들입니까?”

“그렇네. 저기 지면에 꽂힌 거대한 삼지창에서부터 차원문이 열려서 천계에 쏟아져 들어왔지.”

“으음.”

“백웅. 지금은 지상의 일보다 우리를 먼저 도와주게. 급히 가야할 곳이 있네.”

“무슨 일입니까?”

그러고보니 지금 당장이라도 투선들을 도와서 싸워야 할 판인데 천계에 올라간 절대지경 고수들이 여기에 있다. 뭔가 다른 일이 있다는 뜻이다. 검마가 말했다.

“복희 님이 유폐된 장소에 누군가가 침입했다고 하네. 여와가 급히 우리를 그리로 보내고 있었지.”

“……!! 복희를 누군가가 암살하려는 겁니까?”

“그래. 될지 안 될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그 분을 지키러 가던 중이었지. 도와주게.”

“알겠습니다.”

도와줘야겠지!

내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을 때였다.

“속지 말게!!”

검령(劍靈)

무영일섬(無影一殲)!

푸콰콰콱

“헉?!”

거친 목소리와 함께 날아온 하나의 의념!! 마치 황금빛 검처럼 휘광을 내뿜던 그 어검이 일격에 눈 앞에 있던 검마와 다른 동료들의 목을 날려버리고 말았다!!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내가 입을 딱 벌리고 있자 하늘에서 누군가가 떨어져내리며 말했다.

“백웅!! 설마 흑요석을 주진 않았겠지!”

그 거친 목소리에 나는 얼떨결에 대꾸했다.

“검마?! 어떻게 이런….”

눈앞에 서 있는 건 분명히 검마다.

검마가 두 명이라니!

“정신차리게! 저 놈들의 시체를 보게!”

주르르륵….

내가 쓰러져있던 검마와 동료들의 모습을 보자 이윽고 살점과 피륙이 검은 찰흙처럼 변해서 땅에 녹기 시작했다. 내가 크게 놀라자 검마가 말했다.

“자넨 진실과 거짓을 섞어 말하는 자들에게 약하군. 저 놈이 특수능력으로 내 형태를 복사하면서 내 기억을 읽은 건가?”

죽은 마물을 쏘아보던 검마가 말했다.

“아무튼 저 [옛 지배자]의 부하가 자네를 유혹하여 함정에 빠뜨리려 했던 것이야! 어쨌든 잘 돌아왔네!”

“거, 검마. 방금 저 가짜 검마가 말했던 건….”

“얘기는 나중에 합세! 일단 싸웁세!”

“…….”

내가 어정쩡하게 서 있자 검마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대충 맞는 말이지만 일단은 눈앞의 싸움을 도와주게! 이대로라면 항우도 제천대성도 머잖아 죽을 걸세! 너무 강력한 놈이 나타났어.”

“그 정도입니까?!”

“복희님을 우리가 걱정할 때도 아니고, 큰 그림 그릴 상황도 아니야!!”

검마가 저렇게 마음이 급해보이는 건 처음이다. 그만큼 골치아픈 상황이란 뜻인가?

나는 천공에 떠 있던 거대한 악귀의 손을 올려다보며 이를 악물었다.

“알겠습니다!!”

[종말]이 시작된지 한 시진도 안 되어서 [옛 지배자]와 싸우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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