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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1190화 (1,187/1,615)

1190====================

사신지혼(四神之魂)

두 명의 진소청이 성큼 다가섰다. 창힐은 그 자리에서 유령처럼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었으며, 그 뒤에 있던 항아는 몸을 떨고 있었다.

[이럴…수는….]

술법사 진소청이 나직이 말했다.

“기회는 줬소. 당신은 더 이상 자비를 구하지 마시오.”

[…….]

“파(破)!”

파앗

진소청이 다시 한 번 두 손가락을 내밀며 파괴의 진언을 외치자, 창힐의 몸 전면에 마치 반투명한 막이 생겨나서 그 진언을 막아낸 듯 했다.

일렁….

술법이 창힐에게 별다른 타격을 주지 못하자 이번에는 방금 전 요순을 끝장냈던 무(武)의 진소청이 달려들어 창힐에게 정면으로 주먹을 날렸다.

‘저건 뇌신권(雷神拳)?’

꽈앙

진소청의 일권은 즉시 창힐의 방어막을 뚫고 가슴팍까지 한 번에 꿰뚫어 버렸다. 상상을 초월하는 잠재력이 실려있기 때문이었을까? 창힐이 방어 한 번 해보지 못하고 죽어버리는 걸 보자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였다.

“……!!”

“음?”

그러나 정작 창힐을 해치운 진소청의 표정이 별로 좋지 않았다. 그는 즉시 자신의 주먹을 몸 쪽으로 끌어당긴 후 창을 들었다. 처음으로 주먹을 거두고 창을 들었다는 건 누가 보아도 진심이 되었다는 소리였다.

진천(振天)

굉섬(轟殲)

쿠르르릉!!

마치 우주가 한 점에 끌려들어가듯 진소청의 창에 방금 전보다 훨씬 더 거대한 힘이 실렸다.

그래, 힘이다.

[힘]이라는 한 마디로밖에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의념이라는 힘이 저렇게까지 단순하면서도 아름답게 강력해질 수 있다는 걸 내 눈으로 확인하고 나니 그저 경외심밖에 들지 않았다. 은빛의 나선이 진소청의 창끝에 맴돌았고 잠시 후 은색의 구가 형태를 이루는 순간 진소청이 초수를 발현했다.

경(驚)

뇌신류 창술의 고급 응용기!

진소청의 창은 찰(札)처럼 빠르게 뻗어나가는 듯 했으나 이윽고 알 수 없는 힘 때문에 빙글 하고 창대째로 왜곡되는 게 보였다. 그러나 진소청은 마치 예상이라도 한 듯 그 흐름을 거스르지 않은 채 힘을 실어 창대의 중심을 아래로 했고, 곧이어 바늘귀를 뚫듯 정밀한 일섬이 재차 창힐의 미간을 찔렀다.

투콱

“헉!”

나는 그냥 심장을 주먹으로 꿰뚫었을 때 승부가 끝난 줄 알았는데 어째서 진소청이 경의 수법까지 쓰며 공격하는지 의아했다. 하지만 지금 눈앞의 광경을 보니 왜 그런 판단을 했는지 즉시 알 수 있었다.

쨍강! 쨍강! 쨍강!!

연속으로 수십 개의 거울이 깨어지는 듯한 소리가 나면서 창힐이 서 있던 시공간 전채가 유리처럼 깨어져나갔다. 그리고 진소청의 오의, 굉섬 경으로 뻗어낸 일섬이 거울 뒤편에 서 있는 창힐의 미간을 꿰뚫어 있었다.

창힐의 시공간 왜곡!

그걸 간파한 진소청!

오로지 강대한 신성만이 쓸 수 있는 저 권능의 빈틈을 찰나지간에 간파해서 간결한 무예수법으로 일격에 쓰러뜨리다니.

‘대단하다!’

방금 전 요순을 쓰러뜨릴 때의 압도적인 힘과는 별개로 그의 무술조예가 신의 영역에 도달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신의 권능이란 도저히 인간의 육감으로 따라잡을 수 없는 것이기에 무술로 상대하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는데, 그조차도 정밀한 의념으로 권능을 따라잡아 파해한 것이기 때문이다.

실로 신기(神技)!

[커허…허어….]

타닷

진소청은 기이한 숨을 몰아쉬는 창힐의 미간에서 창을 뽑아서 세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는 술법사 진소청에게 말했다.

“저 창힐은 유난히 강하군.”

아무래도 진소청이 지금 한 방 먹인 것도 치명타까지는 아니었기에 잠시 물러난 듯 싶었다. 미간에 창이 꽂히고도 아직까지 멀쩡한 창힐은 분명 만만한 상대가 아닌 것처럼 보였다.

“그 역량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봉인된 거니까.”

그 때였다. 순간 무한의 혼돈으로 가득 찬 창힐의 얼굴 속에서 무언가 살아있는 살덩어리같은 게 뭉글거리며 올라왔고, 그 기괴한 변화와 함께 창힐이 울부짖었다.

[오오오오오.]

츄와아아악!!

차마 쳐다보기도 끔찍한 촉수덩어리들이 창힐의 육공에서 뿜어져나오는 모습! 진저리쳐질 정도로 끔찍한 그 모습을 본 나는 나도 모르게 주춤거렸고, 그런 창힐의 뒤에 있던 항아가 당황한 듯 했다.

[어째서? 내 말을 들어! 넌 이미 소멸한 존재인데….]

츄와아악

[아악.]

다음 순간에 일어난 일은 더욱 끔찍했다. 창힐에게서 뻗어나간 촉수가 항아의 몸을 덥썩 잡아채더니 허공으로 들어올렸고, 항아가 발버둥을 치자 마치 그 반응을 즐기듯 잠시 멈추었다. 그리고는 창힐의 얼굴을 뒤덮던 끔찍한 맨살덩어리들이 뻗어나가서는 항아를 그대로 잡아먹어버렸다.

쿠와악

덥썩!

마치 목구멍으로 삼키듯, 기괴한 창힐의 살덩어리에 빨려들어간 항아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실로 공포스러운 광경이었지만 술법사 진소청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말했다.

“창힐이 자아를 회복해 버렸군.”

“무슨 소리지? 그게 가능한가?”

“…항아가 무모한 소환을 자행한 대가를 치렀다는 거요.”

후우우오오

잠시 후 창힐로 보이던 살덩어리가 끔찍한 촉수들을 몸 안으로 빨아들이기 시작했고, 회색 빛의 후광이 그의 머리 뒤편에 일어났다. 불길한 빛을 내뿜던 그 후광 속의 창힐은 점차 얼굴이 인간의 그것으로 바뀌는가 싶더니 이윽고 얼굴 한가운데에 원형의 혼돈이 맺혀서 구슬처럼 변하는 게 보였다.

지잉

혼돈의 구슬이 한 차례 녹아내리더니 잠시 후 창힐의 진짜 얼굴을 만들어 내었다. 그것은 생전 처음 보는 얼굴이었는데, 괴물의 것이 아닌 온전한 장년 사내의 것이었다. 아마도 저게 사황 창힐이 생전이 지니고 있던 얼굴이리라.

창힐이 입을 열었다.

[반갑다…. 내가 천암비서의 단말 자리를 이어받은 창힐이다.]

“…….”

황당하다. 이렇게 황당할 수가 있을까?

방금 전까지 항아와 죽기살기로 싸우고 있었는데 뜬금없이 항아가 소환했던 창힐이 항아를 잡아먹고는 부활해서는 자기가 단말이 되었다니!

전혀 상황이 파악되지 않아서 내가 황망해하고 있자 술법사 진소청이 말했다.

“항아가 썼던 [최초의 문자]의 권능. 그건 역시 창힐 당신의 힘을 빌려 쓰는 거였군.”

최초의 문자?

‘…아!!’

내 팔을 날려버렸던 그 기이한 문자의 공격!

그게 [최초의 문자]였단 말인가?

그 말에 창힐이 담담하게 대꾸하는 게 들렸다.

[전생자를 꺾으려 모든 것을 건 자의 최후다. 모든 걸 걸어버렸던 덕분에 소환물인 내가 계약을 역행해 항아를 먹어치울 수 있었다.]

“끝까지 해 보자는 건가.”

[아니. 다른 장소도 아니고 [경계]에서 제망량의 제자와 싸울 정도의 바보는 아니다. 남의 싸움을 이어받았다는 게 억울하지만 패배했다는 건 인정하지.]

스윽

“누구 맘대로 싸움이 끝났다는 거지?”

창을 든 진소청이 한발짝 앞으로 걸어왔다. 그를 본 창힐이 움찔하며 크게 뒷걸음질 쳤고, 두려움을 이기지 못한 말투로 말했다.

[그, 그만둬라. 괴물같은 놈. 항아의 반역은 이미 끝났는데 나를 없애서 어쩌겠다는 것이냐?]

“웃기는구나.”

진소청이 눈에 서릿발 같은 살기를 띄우며 말했다.

“항아보다 몇 배는 간교한 사갈(蛇蝎)을 내버려두고 이대로 끝났다 할 수는 없지. 널 내버려두면 항아와 똑같은 짓을 할 것이다.”

[크으으…. 감히 네놈이… 삼황오제를 쓰러뜨렸던 나와 싸워보겠다는 것이냐!]

창힐이 다소 분노하며 어마어마한 마력을 터뜨렸다.

쿠와아악!!

“……!!”

방금 전 항아의 꼭두각시일 때보다 몇 배는 더 강력하다! 나는 그 마력의 수위가 말도 안 된다는 걸 깨닫고는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분명, 24번째 생에서 내 몸을 빼앗았던 창힐. 저 놈은 단신으로 전욱이나 제곡을 상대하여 이길 정도로 강력했다!’

항아를 기껏 쓰러뜨렸다 싶었더니 각성하여 본래 힘을 되찾은 창힐이 나타나다니 완전히 첩첩산중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창힐의 힘이 지나치게 강하다고 생각하며 옆에 있던 술법사 진소청에게 조심스레 말했다.

“꼭 싸워야 하겠나…?”

“불문가지(不問可知). 나도 [나] 자신의 의견에 동의하오.”

“응?!”

“이건 모두 천암비서의 장난질. 일개 천녀였던 항아조차도 마음만 먹으면 그대를 끝없는 함정으로 빠뜨릴 정도로 위험했는데 저 사황 창힐이 흉계를 꾸민다면 어느 정도일지 상상이 되시오?”

“헉!”

내가 상황을 깨닫고 얼굴이 굳자 술법사 진소청 또한 성큼 걸어서 앞으로 나아가며 말했다.

“이 전투는 피할 수 없소. 이 자리에서 반드시 없애버리는 수밖에!”

쿠구구구….

두 명의 진소청이 힘을 끌어모아서 창힐과 대치했다. 창힐은 그 둘의 압력을 정면으로 버티려 했으나, 이윽고 창을 들고 있는 진소청이 앞으로 크게 진각을 내딛었다.

진천(振天)

꾸웅!

백열의 일보! 진소청이 한 발을 구른 것만으로 창힐의 자세와 위엄이 무너졌다.

비틀…!!

[컥…. 더… 더 강해졌다고?!]

창힐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외쳤다. 그것은 진소청의 힘과 격이 한 차례 진보하면서 창힐과의 힘겨루기에서 승세를 얻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진소청은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고 창을 앞으로 내밀어서 창힐의 다섯 치 앞에서 그의 목젖을 노리는 자세를 취했으며 창힐은 재차 버티지 못해서 세 걸음을 뒷걸음질치고 말았다.

[계속 강해지는가…!!]

창힐이 주춤거릴 때 상황을 지켜보던 술법사 진소청이 눈을 빛내며 술수를 시전했다.

“무위(無爲)의 끌개!”

스아앗

일렁이는 칠흑의 끈이 동시에 우리 세 명을 감싸는 게 보였다. 나는 이게 어떤 술법인지 단번에 눈치챌 수 있었다.

‘남극공략전 때 천우진이 사공린에게 걸어줬던 보호술법!’

망량선사가 특별히 전수한 술법으로 알고 있었는데 역시 500년이나 수행한 진소청에게도 알려줬던 것이다! 그러자 뒤늦게 창힐이 양손에 혼돈의 권능을 모아서는 허공에 [최초의 문자]를 띄웠고 그 문자들이 연속으로 폭발하며 이 시공간을 붕괴시켰다.

[죽어라!!]

쿠구구궁

우주가 통째로 일그러지고 시공간이 붕괴되는 가운데에서도 무위의 끌개를 얻은 우리들은 털끝하나 다치지 않았다. 창힐이 전력을 다한 공격에서도 무사할 수 있다니 무위의 끌개는 정말 대단한 술법이란 게 느껴졌고, 창힐이 공격하면서 빈틈이 생기자 창을 든 진소청이 곧장 나비처럼 날듯이 창힐에게 짓쳐들어갔다.

진천(振天)

찰(札)

단 한 번의 찌르기.

푸욱

그러나 이번의 찌르기는 정확하게 창힐의 목을 꿰뚫었고, 아까와는 달리 진소청은 자신의 창을 물러서 자리를 피하지 않았다. 창힐은 목을 꿰뚫리고도 괴력을 발휘해서 진소청에게 반격을 하려 했으나, 진소청의 전신을 둘러싼 우주적인 수준의 의념이 들끓어 오르는 게 보였다.

나(羅)

찌른 창끝이 그대로 누르듯이 창힐의 가슴팍을 내려베었다.

콰직!

[끅….]

신체(神體)가 동강나는 듯 했고 창힐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부들거리며 신혈을 뿜어내었다. 나는 마지막에 펼쳐질 진소청의 초식이 짐작되었기에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란(欄)….”

쿠구구구….

외전(外轉)하는 창날이 원형을 그리며 서서히 바깥으로 영역을 넓힌다. 진소청의 손목이 반 바퀴를 회전했을 때, 그 구심점에서부터 거대한 파괴가 일어났고 유성(流星)이 나선처럼 쐐기를 박는 환영이 보였다.

창힐은 끝내 비명을 터뜨렸다.

[크아아아아악!!]

푸콰콰콱

그것이 마신 창힐의 최후로 보였다. 기껏 부활한 창힐은 진소청이 란나찰을 역순으로 펼친 삼 초식을 견디지 못하고 전신이 갈려나가며 처참하게 죽은 것이었다. 창힐과 무언가 대화하거나 교섭할거라 생각했던 내게는 급작스러운 결말이었다.

누더기처럼 변해서 창힐의 육체가 허공으로 비산할 때 창힐의 외침이 울려퍼졌다.

[무의미하다!! 결국, 너희는, 현실로는 돌아가지 못해…. 나 창힐의 이름을 걸고… 희망이 무의미한 시공간으로 가게 되리라…!!]

창힐의 단말마가 끊겼을 때였다.

쿠구구구구구….

무수히 파괴되어서 총천연색과 어둠과 혼돈이 마치 물감을 뒤섞듯 섞여있는 혼탁한 시공간이 지진이 일어나듯 붕괴되는 소리가 들렸다.

파직….

“…아니!! 갑자기 왜 그러시오?”

뜻밖에도 무(武)의 진소청의 신형이 점차 번개를 튀기면서 안개이슬처럼 사라지는 게 보였다. 내가 당황하자 창을 든 진소청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했다.

“단말을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박살냈으니 경계의 시공간이 멀쩡할 리가 없지. 이 공간이 완전히 터지면서 경계가 사라질 거다.”

“음…. 그럼 어떻게 되는 거요?”

“글쎄. 술법을 안 배워서 그것까진 모르겠군.”

근데 왜 자연스럽게 나한테 반말을….

잡생각을 하고 있을 때 술법사 진소청이 말했다.

“도와줘서 고마웠네. 그럼 큰 굴레의 너머에서.”

“큰 굴레의 너머에서.”

스스스….

진소청이 완전히 사라지려고 할 때 나는 아차하는 마음이 생겨서 그에게 외쳤다.

“잠깐!! 당신은 신역절기를 얻은 것이오?”

진소청은 힐끔 나를 보더니 말했다.

“끝까지 그런 시시한 질문은 하지 않았으면 했는데. 시시콜콜 질문하는 버릇은 같이 무당파에 갔을 때와 달라진 게 없구나.”

“…….”

응?

무슨 말이야?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니 단서 하나쯤은 줄까.”

“단서?”

500년동안 무예를 수련한 진소청이 장난기어린 미소를 지었다.

“무혼(武魂)은 분명히 있어, 사제.”

그 순간 - 어째서인지 나는 기시감이 들었다.

나는 저 미소를 본 적이 있다.

저건 내가 만난 적이 있는 진소청이다. 나는 나도 모르게 그의 팔이 붙어있는 걸 확인하며 외쳤다.

“…사형?”

파앗!!

다음 순간 진소청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내가 멍하니 그가 사라진 곳을 보고 있을 때, 술법사 진소청이 내 쪽으로 다가와서는 말했다.

“이럴 때가 아니오. 이대로면 특이점이 폭발해서 우주의 분화가 일어날 것이오. 삼황오제 이상으로 강력한 존재들이 너무 많이 부딪힌 탓에 경계가 누더기가 되어버렸소.”

“응?! 그럼 어떻게 되오. 현실로 돌아가는 거요?”

“속 편한 소리군. 경계의 우주가 폭발하게 되면 그 안에 있던 우리는 우주를 수백 번 가로질러도 되돌아갈 수 없게 되는 것이오. 대우주의 미아가 되는 거지.”

“……!!”

“어딘지도 모르는 다중우주에 가게 될 가능성도 높소.”

헉!!

그럼 안 되는데!

내 안색이 창백해지자 진소청은 침묵했다.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알고 있소? 당신이 항아의 계략을 깨달은 다음부터 겪었던 모든 시련들이 모두 자비없을 정도로 가혹했다는 걸. 그리고 그 모든 것은 내가 조력자로 오지 않았다면 당신 혼자서 뚫을 수 없었던 거였지.”

“고맙게 생각하고 있소.”

하지만 진소청이 듣고 싶었던 것은 칭찬이 아니었던 듯 그가 말을 이었다.

“아니오. 이게 모두 안배였던 것이오. 스승님께서 처음 나를 제자로 받아들이셨을 때부터 지금 이 순간을 읽고 계셨던 것. 처음부터 관측하셨던 것이오.”

“……?! 그럴 리가?!”

“나는 딱 맞는 미래의 조각이 되었소. 즉, 여기까지가 이번 생에 내가 할 일이었던 것이오….”

나는 그의 말투에서 불안함을 느끼곤 말했다.

“잠깐! 살아 돌아갈 거면 같이 갑시다. 신이 되었다면서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않겠소!”

“…이럴 땐 눈치가 빠르구려. 훗.”

진소청은 쓴웃음을 짓더니 양손에 수인을 맺었다.

“나는 [경계]를 여노라. 위대한 나의 스승이시여. 제가 이뤄낸 업적의 인과율은 사형께 이어주십시오….”

파아아앗

나는 시야가 새하얗게 변하면서 내 몸이 둥실 떠서 하늘로 올라가는 걸 느꼈다. 진소청의 모습이 점차 멀어지자 나는 나쁜 예감이 적중했다는 걸 알 수가 있었다. 나는 멀어지는 진소청을 향해서 외쳤다.

“잠깐!! 이러지 마!!”

멀어져서 깨알처럼 작게 보이는 진소청이 영언으로 내게 말했다.

[백웅. 이미 천암비서가 다시 관여하기 시작했소. 난 당신이 안전하게 전생의 궤도로 돌아가도록 끝까지 막는 역할이오.]

뭉글….

쿠르르륵

어느 새 부숴지는 시공간 속에서 알 수 없는 어둠이 뭉쳐서 무언가 형태를 만들고 있었다. 저게 천암비서의 의지라는 걸 깨달은 내가 얼굴을 굳히자 진소청이 말했다.

[당신이 현실로 돌아가면 죽음과 삶 중에 하나를 택할 수 있을 것이오. 그 어떤 선택이든 후회하지 않기를….]

“잠깐…!!”

후와악

쨍강!!

쨍강!!

“크아아아악!!”

나는 그 순간 튕겨져나가듯 엄청난 힘으로 날아가며 등으로 유리창을 깨는 느낌이 들었다. 아까도 항아 때문에 겪었던 거였지만 무척이나 짜증나는 일이었다. 등짝에 유리조각이 박히는 것 같은 기분과 함께 격렬한 고통이 전신에 휘몰아쳤다.

이렇게 아프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고 생각할 때쯤이었다.

쨍강!!

털썩…….

마지막 유리창을 깨는 느낌과 함께 나는 쓰러져서 바닥에 굴렀다.

“끄으으으으….”

엄청 아프다.

차원을 깨며 경계를 맨몸으로 돌파하면 이 꼬라지가 되는 것일까?

동시에 나는 내가 [현실]로 돌아왔다는 생각이 들었고, 불현듯 현실의 상황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매듭]이 맺어지기 직전. 그건 바로 내가 항우의 시련에 도전해서 죽기 직전이 아닌가!’

좋게 생각하자면 영귀에게서 점을 쳤던 그 순간이지만 나쁘게 생각하면 항우에게 죽기 직전이리라. 그리고 항아가 나를 배신했던 정황을 생각한다면 좋은 경우일 가능성이 적어 보였다.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슬며시 고개를 들어서 눈앞을 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눈앞의 풍경을 확인하고 멍청하게 중얼거렸다.

“…어라?”

쿠궁

눈앞은 천계가 아니었다.

그저 모든 것이 유린되어 파괴된 지상세계.

악몽이 지나간 것 같은 절망의 하늘이 펼쳐져 있었고 그 하늘에는 [옛 지배자]로 보이는 흉측한 마(魔)가 구름과 함께 날아다니고 있었다.

바다는 시꺼먼 마력으로 물들어서 생명의 기척이 보이지 않고, 무수한 혼돈의 마물떼가 무리지어서 돌아다니는 게 보인다.

“…….”

내 동료들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나는 황야에 나 홀로 서 있을 뿐이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내가 생각한 그 어떠한 상황도 들어맞지 않자 나는 당황스러워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쓔웅!

‘누군가 온다!’

타닷

그리고 잠시 후, 내 앞에 누군가가 어검비행술을 써서 모습을 드러냈다.

“강력한 힘을 느끼고 와 봤는데 그대였던가. 죽지 않았었군.”

나는 그 익숙한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확인하고는 당혹스러워서 말했다.

“…여동빈.”

검선 여동빈의 옆에는 화룡진인이 서 있었다.

나는 간만에 본 여동빈을 반가워할 새도 없이 곤혹스러워서 말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천계의 시련은 어떻게 되고 지금 상황은 어찌 된 거죠? 여긴 현실입니까?”

“마치 어딘가 머나먼 곳으로 가버린 것 같은 이야기를 하는구나. 모두가 그대의 실종에 염려했었지.”

염려했었다…?

왜 과거형일까?

나는 불길함을 느끼고는 여동빈에게 말했다.

“세상이 어떻게 된 거죠?”

“어제까지는 멀쩡했던 세상이었다. 그러나 별의 운행이 뒤틀어지면서 절망이 뒤덮였노라. 모든 이들이 예견했던 대로….”

“네…?”

“그대의 동료들은 모두 사태를 해결하려고 천공의 흉성(凶星)으로 향해 전투에 나섰지만 행방이 묘연해졌군.”

“…….”

내가 불길한 예감에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리고 잠시 후 여동빈이 사태를 알려주는 결정적인 한 마디를 했다.

“[종말]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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