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1188화 (1,185/1,615)

1188====================

사신지혼(四神之魂)

“하아아아아!!”

나는 곧장 내 양손에 들고 있는 수요와 화요, 그리고 허공에 떠 있는 월요와 토요의 힘을 끌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곧바로 외쳤다.

“칠요공명!!!”

쿠구구궁!!

그와 동시에 네 개의 칠요가 동시에 빛나더니 은은한 빛과 함께 거대한 파장이 울리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순간 나는 내심 미소를 지었다.

‘역시 그렇군!!’

칠요공명에 쓰인 칠요가 무려 네 개! 이만큼이나 하면 내게 무리가 가는 게 보통이었으리라. 하지만 무리따위는 느껴지지 않았고 내력이나 기력조차 전혀 소모되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쿠콰콰쾅

내가 날린 칠요공명의 파장은 여태껏 보았던 그 어떤 공명보다도 장엄한 기세로 날아가서 천녀의 형상을 한 항아를 때렸다. 구름바다 전체가 부숴지는 듯한 파괴음과 함께 후폭풍이 휘날렸고, 나는 신중을 기하기 위해 뒤로 십여 장을 뛰어서 대비했다. 왠지 한 방에 죽을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후우우우 -

아니나 다를까, 항아는 거센 후폭풍 속에서 연기를 흘리면서 멀쩡하게 모습을 드러내었다. 항아가 내게 말했다.

[이게 꿈 안에서의 싸움이란 걸 어느 정도 이해한 모양이군요.]

“당연하지.”

나는 수요를 놈에게 겨누며 말했다.

“꿈이니까 칠요공명의 반동같은 거 알 게 뭐야? 당연히 내가 소환한 칠요라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되겠지!”

[꿈]속이기에 가능한 특권!

꿈이니까 현실의 제약은 의미가 없다는 것!

제갈사가 일부러 의자나 아이스티, 궐련 따위를 소환했던 건 할 짓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바로 내게 이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생각하는 모든 것을 소환할 수 있을 뿐만이 아니라 그 제약을 모두 무시한 채 싸울 수 있다는 의미였으리라!

항아가 자신의 손을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하지만 중요한 걸 아직 모르고 있군요….]

“뭐?”

파지지직

항아의 손바닥에서 번개덩어리가 가득 튀면서 구체를 만들어내었다.

[여기서 진짜 승패를 결정짓는 게 무엇인지를.]

번쩍!!

그 순간 번개가 날아오더니 나는 그대로 전신이 번개구이가 되며 몸통째 날아갔다는 걸 느꼈다.

“……?!”

이…이게 뭐지? 어떻게 이런 일이!

절대지경의 감각으로도 전혀 포착할 수 없었어!

설령 뇌신지혼이라도 해도 조금 늦게라도 대응할 수 있는데 이건 번개보다 더 빠르다는 소리인가?! 아니면 시공간을 조작한 건가?! 시공간을 조작했다고 하더라도 지금 나는 옥황상제의 권능이 있으니까 틀림없이 [작은 굴레]의 조작에도 대응할 수 있을 텐데….

머릿속에 무수한 생각이 스쳐지나갔지만 나는 의식이 사라져가면서 더 이상 잡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그 대신에 찰나의 직감으로 강하게 염원했다.

웃기지 마!!

파앗

다음 순간, 나는 조금 떨어진 공간에 전신이 원래대로 돌아온 채 나타나 있었다. 표현이 이상하지만 방금 전 번개구이가 되었을 때 뇌까지 몽땅 타버렸지만 그와는 별개로 내 의식이 다른 장소에 존재해서 3인칭으로 상황을 바라보았던 느낌이었다. 그리고 방금 전 강하게 염원을 하자 뜻밖에도 몸을 원상복구시킬 수 있었다.

지끈

“큭….”

머리가 아프다. 내가 관자놀이를 꾹 누르자 멀리에 있던 항아의 말이 들려 왔다.

[둔재라고 알고 있었는데 오랜 실전경험 덕에 전투본능이 영혼에 새겨진 것 같군요. 그래봤자 이 공간에서는 내가 압도적으로 유리하지만.]

“제기랄! 설마 이 공간에서는….”

[바본가요? 친절하게 그런 걸 설명해 줄 것 같나요? 한 번 더 죽으시죠.]

번쩍!!

다시 한 번 멀리 떨어진 항아의 손바닥에서 뇌구(雷球)가 번쩍였고 그 순간 뇌신지혼보다 더 빠르게 날아온 번개에 전신에 수백 개의 구멍이 뚫렸다. 나는 일순간에 치명상을 입었다는 사실이 어이가 없었지만 다시 한 번 머릿속에 하나의 염원을 떠올렸다.

괜찮아!

스아앗

몸은 바로 정상으로 되돌아왔지만 두통은 더욱 강해졌다는 걸 느꼈다. 나는 그제서야 이게 무슨 상황인지를 알 수 있었다.

‘항아는 [작은 굴레]를 굴리는 게 아냐. 난 신력으로 몸을 회복하지 않았어. 그렇다면 이건….’

나는 상황을 파악하자마자 곧장 전신의 자세를 바로 잡고는 모든 생각을 비운 무념(無念)의 상태에서 항아에게 일참(一斬)을 내려그었다.

무량단(無量斷)!

푸콱

[크으윽….]

그러자 본디 무량단이 닿을 거리가 아닌, 수백 장 밖이었는데도 마치 즉시 도달한 것처럼 항아의 몸이 일직선으로 동강나 버리고 말았다.

슈슈슈슉….

그리고 마치 연기가 피어오르듯 쩍 갈라진 항아의 몸이 이윽고 원상복구되고 말았다. 내가 회복한 방법과 똑같았기에 나는 딱딱하게 굳은 얼굴으로 말했다.

“상상이 모조리 현실이 되는 건가. 그렇다면 의지력의 강함이 바로….”

[맞아요.]

항아가 이번에는 양 손에 뇌구를 띄우며 말했다.

[정신력이 존재하는 한 무한의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게 바로 이 꿈의 세계. 의지력만 있다면 그 어떤 공격에도 죽지 않죠.]

“흥. 어처구니 없는… 나와 정신력을 겨룰 셈이냐?”

나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난 27번이나 죽고 죽고 또 죽었어! 그리고 절대지경에 이르러 의념 하나는 자신이 있다! 나하고 정신력으로 싸워서 이길 수 있겠냐!”

[그러신가요? 어디 한 번 주고받아보도록 하죠….]

“해 봐!”

기분나쁠 정도로 자신감 넘치는 항아가 신경쓰였지만 나도 자신이 있었다.

절대지경의 의념천주!

그것은 바로 정신력의 극대화 그 자체였으며 세계를 의지로 움직이는 경지라고도 할 수 있었다. 이렇게 정신력 하나로 결판이 난다는 법칙 하에서는 당연히 내가 유리하지 않겠는가!

콰과과광

퍼버버벅

다음 순간부터 나와 항아는 서로 몸이 터져나가며 난타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시공간의 거리 따위는 상관없이 상대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면 즉시 거기에 공격을 날려서 대항불가의 필살공격을 꽂아 넣었고, 그 공격을 받아서 몸이 부숴지면 염원하여 몸을 재생성시키는 방식이었다.

“크아아아악.”

[하아앗.]

나는 주로 무량단과 칠요의 공능을 이용해서 공격을 반복했고 항아는 아까 사용했던 뇌구를 이용해서 내 몸을 지지는 듯 했다.

콰콰콰쾅

그렇게 약 백 수십 번이나 공방을 반복했을까? 나는 아까부터 느껴지던 두통이 극심해진 것을 느끼고는 잠시 비틀거리고 말았다.

‘아차.’

빈틈을 보이고 만 건가!

나는 크나큰 위기감을 느꼈으나 다행히 항아는 그 빈틈을 공격해 오지 않았다. 대신에 마치 비웃듯이 내게 말했다.

[후후…. 거기까진가요?]

“…내가 이 정도로 포기할 줄 아냐!”

몸이 수백 번 찢어져도 난 싸울 수 있어!

[좋아요, 아주 좋아요. 끝까지 해 보도록 해요, 후후후….]

“오냐 그럼 어디 한번….”

그 순간이었다.

“큭.”

갑자기 몸 속에 있던 뇌혼(雷魂)이 빠직 하는 소리와 함께 뒤틀리는 느낌과 격통을 내게 주었고, 나는 다시 한 번 고통 때문에 멈출 수밖에 없었다. 어째서 구궁파천뢰의 뇌혼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인 건지 알 수 없어할 때,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오는 게 느껴졌다.

[백웅. 급하게 끼어들게 되었으니 내 말을 잘 들으시오.]

나는 그 목소리의 정체를 깨닫고는 흠칫하고 놀랐다.

‘…진소청!!’

이 목소리는 분명히 진소청이다!

뜻밖의 등장인물 때문에 내가 놀라고 있을 때 그의 말이 나직이 들려왔다.

[항아는 지금껏 당신이 만났던 [지배자]들과는 달리 교만함을 버리고 있으며 당신을 기만하려 노력하고 있소. 또한 이곳에는 항아만이 알고 있는 또 다른 법칙이 있으니 계속 싸우는 건 위험하오.]

‘또 다른 법칙?’

[상대의 흐름대로 끌려가지 말고 냉정하게 싸우시오. 단 한 번만이라도 항아에게 제대로 된 일격을 먹일 수 있다면 이 [매듭]에서 당신을 빼내겠소.]

‘지금까지 수백 번을 찢었는데 그게 유효한 타격이 아니었단 말인가?!’

[현실과 꿈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걸 조심….]

진소청의 목소리는 끊겼다. 나는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상황이 어찌된 것인지 알 수가 있었다.

‘망량선사의 이름을 부른 덕에 진소청이 이 공간을 감지하고 접근해준 거구나!’

하지만 항아가 막고 있어서 망량선사조차 이 [매듭]을 강제로 해제하는 건 힘든 상태! 그렇기에 [꿈]에 관여하는 능력을 지닌 진소청이 내게 접촉한 것이리라. 진소청의 말대로라면 항아에게 제대로 한방만 먹이면 여기서 탈출할 수 있으리라.

나는 방금 전까지 달아올랐던 정신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며 생각했다.

‘…난타전을 하면 안 돼!!’

항아의 반응이나 진소청의 말로 볼 때 그건 패착이다! 서로가 무한공격과 무한재생이 되는 상태인데도 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대로 공수교환을 반복하게 되면 나만 불리해지는 듯 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곧장 외쳤다.

“생사부!!”

후웅

내 외침에 응한 생사부가 곧장 소환되어서 내 손에 잡혔다. 사실 무량단이나 칠요공명만 날려도 바로 항아의 몸을 찢어버릴 수 있었기에 지금까지 소환하지 않았지만 좀 더 공격을 다변화할 필요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생사부를 본 항아가 훗하고 웃으며 말했다.

[생사부.]

후웅

그러자 항아의 손에도 생사부가 소환되어 버렸다. 본디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여기서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이건 [내가 상상한 생사부]이며 저건 [항아가 상상한 생사부]이기 때문이다.

나와 항아가 서로 노려본 후 동시에 생사부에 손가락을 뻗었다.

파바박

“컥.”

[으윽….]

다음 순간 서로의 이름이 생사부에 적혔고 거의 동시에 나와 항아가 뒤로 넘어가면서 숨이 끊기고 말았다. 서로 생사부에 내성이 없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는데, 다음 순간 또다시 나와 항아가 벌떡하고 그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허탈해져서 중얼거렸다.

“제기랄… 죽음의 지배자라는 게 꿈에서는 아무런 의미도 없군!”

어차피 꿈인데 이름을 적으면 죽는다는 능력이 무슨 의미일까?

꿈에서 죽어봤자 안 죽었다고 생각하면 그만인 것이리라. 예상은 했지만 전륜성왕의 힘은 여기선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듯 했다.

지끈!

“큭.”

또 다시 두통이 격심해져 온다. 나는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난 죽었다 살아날 때마다 머리가 아픈데 저 놈은 왜 그런 기색이 없지?’

아까부터 서로 주는 피해는 비슷한 것 같은데 대체 무슨 차이야?

나는 이 수수께끼를 해결해야만 진소청이 말한대로 제대로 된 일격을 먹일 수 있게 된다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

‘공방의 소모를 피해야 해. 그렇게 하려면….’

나는 머리를 굴리다가 곧장 외쳤다.

“황룡마신!! 너는 무엇이든 막는 갑옷이 되리라!”

콰칭!!

다음 순간 내 몸에 황룡마신이 소환되어 덧씌워졌다. 황룡마신의 갑옷을 입은 것을 본 항아가 재차 뇌구를 띄워서 내게 번개를 날렸으나, 그 공격은 황룡마신의 외갑에 닿자마자 튕겨나가버리고 말았다.

카앙!

항아가 흠칫하고 놀랐다.

[……!! 제법 머리를 굴렸군요.]

“…….”

[꿈 속에서 무엇이든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한 황룡마신은 무적의 갑옷이 된다 그거군요?]

그렇다. 지금 나는 모든 의념을 [황룡마신은 무적의 갑옷]이라는 생각 하나에 쏟고 있는 것이다!

‘쉽지 않을걸!’

황룡마신은 원래도 갑옷이었기에 이런 상상력을 발휘하는데 훨씬 정신력이 적게 든다! 게다가 내가 평소에 황룡마신의 성능에 대해 갖고있었던 신뢰 덕분에 의념의 힘이 더더욱 강력하게 작용하리라.

“헹. 칭찬해주는 척 하지 마. 속으로는 날 찢어죽이고 싶은 주제에.”

[물론 뚫을 방법은 있죠.]

스아아아!

항아의 한쪽 손 위에 거대한 뇌창(雷槍)이 떠올랐다. 나는 그 뇌창을 보자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고, 항아가 말했다.

[당신은 이 뇌창을 알고 있을 거예요.]

“…….”

모를 리가 없다.

외우주에 갔을 때 혼신의 힘을 다했던 저 일격을.

[삼황오제에 버금가는 힘을 지닌 달마에게 일격을 먹인 당신의 투창. 그 위력을 당신 스스로 인지하고 있겠죠.]

“웃기지 마. 그런 수엔 안 속아.”

[당신의 기억 속에서 이 뇌창이야말로 평생 펼쳤던 무(武)중에서 가장 자신하는 일격 중 하나. 어디 막아보시길.]

항아가 자세를 잡는 게 보였다. 완벽한 뇌신류의 자세였기에 나는 경악했다.

뇌신류(雷神流)

투창술(投槍術)

관천일뢰(貫天一雷)의 태세!

쐐액 -

번개가 찢어진다. 지금의 내 무예수준이라면 크게 대단할 것도 없을 뇌신류 투창술이지만 - 그 투창의 속도는 아까처럼 뇌신지혼을 크게 상회하는 듯 했다. 말 그대로 시공간을 꿰뚫는 그 어마어마한 뇌창의 위력에 나는 전율했다.

‘씨발…!!’

당했다!

내가 ‘강력하다’라고 인지하고 있을 수록 이 공간 내에서 그 위력은 한도끝도없이 증폭하는 것이다! 게다가 이 황룡마신이 무적이라고 인지하고 있더라도 깊은 내면의 마음은 저 투창술의 위력에 알게모르게 약해져 있기에 결국은 -

투확!!

“커헉… 끄륵….”

가슴에 수박만한 구멍이 뚫려버렸다. 황룡마신은 처참하게 뚫려버린 상태였고 나는 상처부위에서 전신으로 퍼져나가는 개미 갉는듯한 고통에 정신이 나가버릴 것 같았다. 하지만 수많은 죽음을 경험해보았던 덕일까? 고통에 빠르게 적응한 후 나는 즉시 몸을 회복시켰다.

후웅

“으으으윽….”

또 다시 항아에게 밀려버렸기 때문일까, 두통이 더욱 심해져 온다. 아까까지만 해도 참을 만 했는데 이젠 집중력에 크게 방해가 될 정도다. 항아가 여유로운 기색으로 말했다.

[당신도 뇌신류 투창술을 써요. 그렇게 하면 저도 막을 순 없을 거예요.]

“…거짓말….”

나는 이를 악물고는 눈을 빛냈다.

“니가 무슨 거짓말을 하고 있었는지 눈치챘다!!”

뭔가 말로는 설명할 수 없지만 몸으로 알아챘다!

이 나쁜 새끼!

파앗

나는 그대로 태극권의 자세를 잡았고, 내가 소환했던 사요(四曜)를 모조리 소멸시켰다. 심지어 내 몸을 방어해 줄 옥황의와 황룡마신까지 해제했기에 나는 말 그대로 칼 한 자루와 맨몸만으로 서 있는 거나 다름없었다. 생사부 또한 사라져 있었다.

모든 권능을 버린 것이다.

[…….]

하지만 항아는 방금 전보다 훨씬 약해져있을 내게 섣불리 공격하지 못하고 주춤거렸다. 나는 아직도 두통이 가시질 않았으나 내 생각이 맞아떨어진 걸 확인하자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가 잘못 생각했었어. 니가 적어도 싸울 때만은 진실될 거라고…. 하지만 죄다 기만일 뿐이었군. 너 같은 놈은 처음이다.”

[방어만 해서 이길 수 있으리라 생각하나요?]

“해 봐야 알지 않겠어.”

꾸욱

더 이상 권능으로 편하게 싸울 생각을 하면 안 된다.

그래서는 질 수밖에 없다는 직감이 든다.

그렇다면 이번 생에서 내게 가장 강렬한 무예경험을 안겨준 이 기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나는 주먹을 세게 말아쥐며 항아에게 말했다.

“들어와.”

잠시 정적이 흘렀다.

빠직!

그리고 항아가 갑자기 양손에서 뇌창을 동시에 만들어내더니 내게 쏘았고, 본디 뇌신지혼보다 훨씬 빠르게 느껴질 그 공격은 단숨에 내 영역을 꿰뚫고 내 몸을 갈기갈기 찢을 것만 같았다.

후와아악

실제로 나는 그 말도 안 되는, 꿈의 세계에서나 가능한 초속(超速)에 의념이 따라가지 못해서 그대로 몸이 박살나는 걸 느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나는 기이한 경험을 할 수가 있었다.

중첩(重疊).

뇌창 두 자루에 사지가 갈려나간 나 자신의 모습.

뇌창을 무시하고 음양의 변환을 이루는 나 자신의 모습.

‘아니!’

말이 안 되지만 두 개의 상태가 동시에 내게 존재하는 게 느껴진 것이다. 두 개의 현실이 중첩되어서 마치 환영처럼 보였지만 나는 내가 이 두 개의 상태 중 하나를 고를 수 있다는 사실도 바로 이해할 수가 있었다.

마치 예전에 겪어봤던 것처럼.

무쌍패(無雙覇)!

쏴앗

내가 무쌍패의 전개상태를 황홀지경에서 선택한 순간, 뇌창은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내 몸을 투과해서 소멸되고 말았고 나는 음양의 균형을 무쌍패로 이루고 있었다. 무쌍패는 뇌창에서 파생된 잔류뇌전을 중화했으며 그 힘이 그대로 허공에 투명한 태극(太極)으로 드러나게 되었다.

파앙!

태극이 허공에서 완결되고는 소멸되었다. 단순한 한 차례의 공방이었지만 항아는 더 이상 나를 공격하지 못하고 주춤거렸다.

[……!!]

“이러니까 나만 불리한 거지. 뭔가 위화감이 들어서 이상했는데….”

나는 무쌍패의 자세를 다잡으며 이를 악물었다.

“이 꿈 속에서는 현실을 선택할 수 있는 거였군.”

자세한 원리는 모르겠지만, [공격을 받은 상태]와 [공격을 받지 않은 상태] 중에서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듯 하다. 그리고 나는 아까부터 이런 걸 전혀 알아차리지 못해서 그냥 상상력으로 복원하는 능력만 썼지만, 그건 아마도 쓸 때마다 뭔가 내 상상력같은 걸 소모하는 듯 했다.

하지만 항아는 현실을 선택하는 요령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내 공격을 받은 척 하면서 실제로는 자신의 염상능력을 하나도 소모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리라. 아까 항아의 뇌창 공격을 받았을 때 그 묘한 위화감 속에서 깨달을 수가 있었다.

부들….

그러자 항아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몸을 떨면서 말했다.

[말도 안 돼…. 어떻게 ‘그걸’ 할 수 있는 거지?]

“뭐? 니가 할 수 있으면 당연히 나도….”

항아는 평정심을 잃었는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있을 수 없는 일!! 그 어떤 천재도 할 수 없어! 이건 천암비서에 새겨진 위대한 전지자(全知者)의 권능이다! 오로지 단말로 선택된 나만이 여기서만 할 수 있는 것인데 네가 어떻게…!!]

“……?”

[말도 안 돼!! 신조차도 알아차릴 수 없는 ‘그걸’ 어떻게 네가 한 번에….]

어찌된 일인지는 모르지만 내가 무쌍패를 활용해서 항아의 공격을 무효화시킨 게 녀석에게 크나큰 정신적 타격을 준 모양이었다.

‘기회는 지금이다!’

파밧

나는 멸혼보로 빠르게 항아에게 접근해서 그대로 무량단을 날렸고, 항아의 몸이 쩍 갈라지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게 항아의 속임수로써, 지금의 항아도 [중첩된 현실] 중 하나를 선택하는 중이라는 걸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 겉으로는 터지는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아무 피해 없이 무효화시키는 중이리라.

‘어림없지!’

나는 그대로 검의 손잡이를 놓으면서 바로 무쌍패의 자세로 전환했다. 그리고는 그대로 항아가 펼쳐내는 현실의 조작에 개입하듯 손을 뻗었고, 무쌍패 최대의 원리를 시전해 버렸다.

무위전변(無爲轉變)!

무(無)로 변해버려라!

촤악 -

그러자 항아의 [중첩된 현실]이 날아가 버리면서 방금 전 내가 꽂아넣었던 무량단의 참격이 고스란히 항아에게 현실로 닥치는 게 눈에 보였다. 항아는 이번에는 끔찍한 비명을 내질렀다.

[아아아아악!!]

퍼벅!

무량단의 참격이 핏덩이를 터뜨리자 항아에게 그대로 고통이 새겨졌는지 항아가 비틀거렸다. 방금 전까지 당한 척 연기를 했던 것과는 달리 이번에는 진짜 몸이 갈라지는 고통을 받은 것이리라.

‘좋아! 이대로 가면…!!’

항아를 조지는 방법을 깨달은 듯 했기에 내가 재차 수요를 소환해서 무량단을 쓰려고 할 때였다. 항아가 자신의 몸을 복원하며 찢어지는 비명을 내질렀다.

[안돼애애애애애!!!]

콰칭!

[[꿈]이여 폭발하라!!]

그 순간 눈앞의 모든 시공간이 마치 유리처럼 깨어지더니 총천연색으로 변한 의문의 공간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리고 수많은 거울로 이루어진 듯한 환상이 사방에 소환되면서 나는 잠시동안 허공으로 확하고 띄워져서 날아가고 말았다.

“으아악?!”

이대로는 거울에 부딪히잖아!

나는 용을 써서 벗어나려 했지만 그 어떠한 신법도 이 힘에는 소용이 없는 듯 했다.

쨍강!

그리고 거울에 등을 부딪히기 직전, 나는 그 거울에 웬 개탈을 쓴 자의 환영이 새겨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   *   *

“이(李)군. 듣고 있나?”

석양이 내려앉는 강의실.

[나]는 차분하게 교수의 말에 대꾸한다.

“교수님. 저는 대한제국 사령부에 들어간 후 그 이름을 버렸습니다. 개명했습니다만….”

“아, 그렇군. 그랬어. 옛 혈통은 마음에 안 들었나? 난 서양인이라 그런 건 잘 모르겠지만 동양인들은 그런 게 중요한 듯 하더군.”

“…….”

[나]는 강한 불쾌감을 느끼고 있는 듯 했다. 눈앞의 상대에 대한 불쾌함이 아니라 자기자신의 근원에 대한 강렬한 혐오감이었다.

“그럼 하(河)군이라고 부르지.”

“좋을 대로 하십시오.”

“그럼 어디까지 얘기했더라?”

“쿼크 이야기였지요.”

[교수]라고 불린 자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래 맞아. 세상은 전자와 쿼크로 이뤄져 있다는 이론이 약 50년 전에 나타났지. 하지만 쿼크보다 더욱 작은 입자가 존재하며 파형을 이루고 있다는 이론이 뒤이어 나타났고 세상에서 가장 작은 게 뭔지에 대한 의문이 쏟아졌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교수]의 말이 이어졌다.

“간만의 강의시간인데 별로 재미없어보이는군, 자네.”

“방금 전까지 외계인들과 싸우고 온 참이라서 피곤합니다. 기(氣)를 많이 소모해서.”

[나]의 몸에는 외계인들의 초록빛 피가 덕지덕지 묻어 있다. 그의 말은 과장도 허세도 아닌 현실이었고 방금 전까지 외계인의 모선에서 촉수덩어리 괴물을 수백 마리 도살하고 온 참이었다.

“후후. 이론만으로는 외계인과 싸울 수 없기에 실망스러운가?”

“그럴 리가요. 교수님의 이론 덕분에 태허(太虛)를 발견할 수 있었고, 그 힘을 이용해 외계인들의 침공을 물리치고 있는데 어찌 그렇겠습니까.”

“그래 맞아. 태허가 중요한 존재이지. 그 누가 생각이나 했겠나? 설마 고문(古文)에서 형이상학의 일환으로만 생각되던 태허가 실상은 기의 본질, 세상에서 가장 작은 것의 힘을 의미하고 있었다니….”

“…그 덕에 태허포도 만들었지요.”

“그래. 바로 그거야.”

[교수]가 다소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태허의 힘이 더욱 강해지면 우주를 넘을 수 있을 걸세. 내가 장담하지.”

“우주를요?”

“그래. 어차피 이 세상에 닥친 종말을 막을 수 없다면, 또 다른 세상으로 가서 인류의 명맥을 유지시키는 계획도 생각해봄직 하지. 강력히 권하도록 하겠네.”

“…….”

[나]는 놀란 듯 잠시 입을 벌리고 있다가 말했다.

“그랬으면 좋겠군요.”

“머지않아 환인계획도 현실이 될 걸세. 선악과만 찾아낸다면 말이야….”

“그게 정말 존재할까요?”

“존재해. 적어도 이 세상엔 분명히. 난 이 세상에 그걸 찾으러 왔거든.”

[교수]는 창밖을 힐끔 보다가 말했다.

“피곤해보이니 태허 수업은 내일 하도록 하지. 그럼 이만 돌아가게, 인류연합의 하은천(河銀天) 대령.”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고개를 숙여 [교수]에게 목례했다.

“감사합니다, 스승님.”

*   *   *

파앗!

나는 다음 순간 정신을 차리고는 눈을 떴다. 아직도 나는 총천연색의 혼돈 내부에서 떠돌고 있는 중이었고 주변에서 항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죽지는 않았나? 음….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모르겠군.’

그것보다 방금 전에 봤던 그 기억은 뭐지?

‘하은천의 기억?’

십이율주 하은천이 이 세상으로 넘어오기 전의 기억인 걸까?

내가 방금 전에 보았던 것에 대해 머리를 굴리고 있을 때였다.

[더 이상 물러설 수 없어….]

항아의 목소리가 온 공간에 울려퍼지고 있었다.

그리고 항아의 모습이 서서히 어둠의 파장과 함께 불쑥 머리부터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는데, 나는 그 모습을 보자 흠칫 놀랐다.

“……!!”

제관을 쓰고 있으며 얼굴없는 존재!

거기에다가 기괴하게 생긴 수십 장의 날개와 흉측하게 생긴 갑각같은 팔과 다리를 보자 도저히 인간이라고 봐줄 수가 없을 정도였다. 방금 전까지는 그래도 천녀로서의 신적인 위엄이 남아 있었는데 지금은 말 그대로 [옛 지배자]를 연상시키고 있었다.

항아의 분노한 외침이 울려퍼졌다.

[이 힘을 쓰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전생자가 되고 말겠다!!]

우우우우우!!

항아의 앞에 기이한 형태의 글자가 소환되었다. 나는 그걸 보자 다시금 아까처럼 현실을 취사선택하려고 무쌍패의 준비를 했다.

‘다시 한 번 막고 나서 반격으로 간다!’

근데 어디서 본 글자 같은데….

내가 내심 의혹을 느끼고 있을 때 윙 하는 소리와 함께 유성을 연상시키는 듯 거대한 글자덩어리가 내게로 날아왔다. 나는 무쌍패를 시전해서 그 공격을 무효화시키려 했지만 그 순간 나는 뭔가 아니라는 걸 느꼈다.

‘어… 이건….’

퍼엉!!

“크으으윽!!”

나는 아슬아슬한 순간에 무쌍패의 자세를 풀고 순수하게 삼보절기와 멸혼보를 써서 회피했는데, 그러고도 피할 공간이 모자라서 글자에 손을 스치고 말았다. 그러자 그대로 팔이 통째로 날아가 버린 것이다.

‘회복되어라!’

…….

“어?!”

회복이 안 되잖아?!

꿈의 세계인데 어째서?!

내가 당황하고 있을 때 항아가 포효하듯 외쳤다.

[규칙은 달라졌다! 죽어라!!]

우웅

“……!!”

갑작스럽게 수백 개의 기이한 글자가 내 주변에 가득 떠오르자 나는 전율하고 말았다. 과연 이걸 다 피해낼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그래서 내심 불안한 마음을 없애기 위해 외쳤다.

“날 [매듭]에 넣는다 해서 끝이 아닐 텐데! 어차피 꿈의 세계인데 왜 그리 집착하는 거냐?”

[네놈이 알 필요 없다…. 얌전히 있었다면 호의호식했을 텐데, 이건 전부 네 탓이다!]

부우우웅

수백 개의 글자가 빛을 발하는 순간 나는 직감했다.

이건 막을 수 없어.

그렇게 생각한 순간, 사방에서 쏟아지는 빛덩어리 앞으로 누군가가 나타나는 게 보였다.

까강!!

[아니?]

항아는 그 존재가 창을 한 번 휘둘러서 모든 글자를 튕겨내는 걸 보자 경악했다. 그 자는 자신의 창을 아래로 내리면서 말했다.

“너무 늦어버렸군. 설마 천암비서의 단말에 불과한 존재가 이렇게까지 강할 줄은 몰랐소.”

나는 내 앞에 나타난 자를 보자 퉁명스럽게 말했다.

“좀 정확한 요령을 일러주던가 할 것이지 전부 애매모호하게 말하면 어떻게 안단 말인가. 저 녀석 까다롭게 굴어서 하마터면 끝장날 뻔 했는데.”

그가 미안하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내 실수요. 지금부터라도 만회해도 되겠소?”

나는 그 말에 씩 웃으며 말했다.

“천군만마(千軍萬馬)지.”

나는 더 이상 항아와의 승부에서 질 걱정이 들지 않았다.

500년동안 수련한 진소청이 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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