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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1184화 (1,181/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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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언젠가는 나타날 줄 알고 있었다.

제갈사는 어느 순간부터 대웅제국에서 거리를 두더니 시몬 마구스와의 대화 이후로는 이따금씩 출몰하는 존재가 되었고, 그가 아이테눔 문디에 있는 법문조각의 소재를 동료들에게 알려줬던 것이다. 그 이후로는 실종되었으므로 그의 행방은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법문쟁탈전 당시의 정황으로 제갈사가 마왕(魔王)이라고 불리는 존재가 되었다는 건 확실해졌다. 또한 제갈사가 그때 천우진에게 저주를 걸어버리는 바람에 천우진은 내가 도착해서 사대신기 아그니로 저주를 풀 때까지 역량을 봉인당한 처지였던 것이다.

나는 재차 반가움에 제갈사에게 외쳤다.

“제갈사! 돌아왔구나!!”

[…….]

잠시 침묵하던 제갈사는 인간의 형상을 한 상태인데도 왜인지 영적인 존재 특유의 언어로 내게 말했다.

[백웅. 오랜만에 본 김에 부탁 하나만 할까.]

“응? 무슨 부탁?”

[들어준다 약속해 준다면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모두 이야기해 주지.]

나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라면 들어주겠어.”

그러자 제갈사가 실쭉 사악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당장 죽어다오.]

“…….”

응?

뭐, 뭐라고?

잘못 들은 것 같은데….

콰칭!!

그 순간 기이한 형태의 인피(人皮) 계약서가 허공에 출현하며 울리는 소리를 내었다. 그 계약서는 표지에 괴물의 눈이 박혀 있었으며 파라락 하며 펼쳐져서는 두 장의 공간을 내게 들이대듯 보여주었다. 거기에는 방금 전에 내가 했던 말이 적혀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라면 들어주겠어

내가 멍하니 그 글자를 보고 있자 제갈사가 킬킬 웃으며 말했다.

[기억하고 있나? 내가 가르쳐 준 자살법이 몇 개인지 말해 봐.]

“…21개.”

[너처럼 자살법을 많이 알고 있는 놈도 세상에 드물겠지. 자살이라면 당연히 [백웅이 할 수 있는 범위 내]라고 할 수 있겠지?]

“자, 자, 잠깐만…. 왜 이러는 거야!!”

나는 기겁을 해서 외쳤다.

왜 500년만에 만난 제갈사가 내게 자살을 종용한다는 말인가?! 영문을 알 수 없어서 제갈사에게서 주춤거리며 멀어지자 그가 말했다.

[왜냐니. 전생자에게 죽음은 일상이 아니었던가? 심심하면 죽었던 주제에 이제와서 겁을 먹다니.]

“아니, 그야 그렇지만, 너무 갑작스럽잖아! 난 지금 죽을 수 없어!”

[이유는?]

“[종말]을 봐야하고, 그 전까지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다 얻어야 하고, 그리고….”

두쿵!!

그 순간 나는 심장이 크게 뒤틀리는 격렬한 고통과 함께 풀썩 하고 주저앉았다. 제갈사의 손가락이 나를 향하고 있었다.

“……!!”

시꺼먼 피가 입 밖으로 비어져 나온다. 너무 아파서 어지간한 고통에는 내성이 있다고 생각한 나조차도 잠시동안 의식이 새하얗게 비는 것 같았다. 이것이 바로 사악한 주술계약의 고통인 것이다.

제갈사의 입에서 싸늘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원래 계획은 이게 아니었는데 다 틀려먹었어. 어지간해서는 나올 생각이 없었지만 이젠 내가 끼어들 수밖에 없을 정도로.]

“크, 크윽, 무슨…. 뭐가 틀렸단… 거야….”

나는 시꺼먼 피를 토하면서 외쳤다.

“[종말]을 제대로 본 적은 한 번도 없어! 이렇게 된 이상 [계시]에 무슨 일이 생기는지 확인하고 죽는 게 당연히 이득이잖아!”

[나도 그렇게 생각했지.]

“그러면 왜!!”

[너무 상황이 잘 풀려가고 있거든. 그게 문제야.]

“……?!”

[자, 더 이상 말을 섞어봤자 구차할 뿐이니 슬슬 이쯤에서 한 번 죽어봐라.]

우드득

제갈사가 주먹을 쥐자 나는 눈 앞이 빙글 도는 걸 느꼈다. 파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입고 있던 옥황의가 그대로 터져나가는 게 느껴졌고, 이어서 옥황의 밑에 껴입고 있던 황룡마신이 발동하는 게 느껴졌다.

파지지직!!

황룡마신 덕분일까? 나는 어마어마한 압력에도 잠시동안 몸의 형체와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제갈사는 그 모습에 다소 놀란 듯 했다.

[내 힘에 저항하다니 그 갑옷은 진짜 물건이군. 아직도 해방되지 않은 힘이 남아있을 줄이야.]

“제, 제갈사. 그만해. 너와 싸우고 싶지 않다.”

나는 비척거리며 이를 악물었다. 반격하려면 몇 번이라도 할 수 있었지만 상대가 제갈사이기 때문에 섣불리 반격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진짜로 할 수밖에 없다.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죽으란 말이야!! 도저히 납득 못 해!”

[그래? 그럼 내가 죽으라는 말을 하면 어쩌려고 섣불리 약속을 해 버렸나. 너무 경솔하기 짝이 없군, 나의 주군이여.]

“제기랄…. 어떻게 그런 걸 예상하냐고! 너흰 당연히 내 동료니까….”

제갈사가 비웃듯 말했다.

[전생동료니까 당연히 무조건 네게 이득이 되는 일만 한다고? 너는 지금까지 그렇게 생각하고 무한한 신뢰를 보냈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건 신뢰가 아니지. 그저 전생자의 오만으로 우리가 너를 배신해봤자 어쩔거냐면서 태만했던 것 뿐.]

“…….”

갑자기 말문이 막혀서 내가 멍해지자 제갈사가 빙긋 웃었다.

[넌 옛날과 달라진 게 하나도 없어, 멍청아.]

“제갈사….”

퍼버벅

그 말을 끝으로 나는 의식이 사라지는 걸 느꼈다. 제갈사의 주먹이 쥐어지면서 그대로 내 머리통이 폭발해버렸기 때문이었다.

슈슈슈슉!!

그 순간, 나는 내 의식이 어느 새 전륜성왕의 옥좌 바로 위에 둥둥 떠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어느 새 물질계에서 명계로 이동해 온 것이다.

그리고 내 눈 앞에는 염라대왕이 서 있었다. 염라대왕은 판관복을 입은 채 내게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그대는 지금 죽음을 맞이하셨소.]

[염라대왕.]

내가 입을 열자 영언으로 튀어나왔고, 나는 내가 제갈사에게 죽었다는 걸 실감할 수가 있었다.

대체 이게 무슨?!

내가 너무 갑작스러운 상황변화 때문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을 때 염라대왕이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원하신다면 지금 당장 부활시켜드리겠소.]

[부, 부활? 가능한 거야?]

[죽음의 지배자가 죽는다는 게 어불성설. 본디 있을 수도 없는 일. 그대가 특이하게도 인간으로 부활했기에 빚어진 모순일 뿐이오. 당연히 죽음은 인정되지 않소.]

나는 그 순간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전륜성왕은 명계의 지배자!

당연히 나는 죽을래야 죽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 순간 나는 복희가 예전에 했던 말이 머릿속에서 이해가 되었다.

[아무튼 자네는 곧 죽음을 맞이하더라도 전륜성왕의 힘을 이용해서 죽음의 상태를 무효화시킬 수 있어. 하지만 원한다면 죽음에 순응하여 또 한 번 ‘매듭’을 반복할 수도 있지. 이제 이해가 되었나?]

그 때 복희는 이미 내가 죽을 경우 이런 상태가 될 것을 예상하고 있었던 것이리라. 전륜성왕이 된 순간 이미 내게 죽음이 무의미하다는 걸 예측했으리라. 나는 제갈사 때문에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알았….]

슈와아악

그 때였다. 흑풍이 몰아치면서 다시 한 번 내 앞에 제갈사의 모습이 나타났다. 염라대왕과 나 사이에 출현한 제갈사가 히쭉 웃으며 말했다.

[전륜성왕이라, 예상은 했지만 더 골치아프군. 망량의 계책이 전생자를 이렇게까지 약하게 만들어버리다니.]

나는 제갈사를 본 순간 극히 분노해서는 외쳤다.

[제갈사아아아!! 너 미쳤냐!! 왜 나를 죽여!]

[500년 전에 이미 미쳐있었지. 칠계(七界)의 대마왕(大魔王)이 된 지금은 오죽할까?]

나는 화를 더 내려다가 뜻밖의 말에 흠칫하고 놀랐다.

[대…대마왕?]

이게 또 무슨 소리야?

내가 생각을 정리할 틈도 없이 제갈사의 언변이 내게 몰아쳐 왔다.

[백웅. 날 안 믿어도 좋다. 다만 아까 했던 말 중에서 한 가지만 믿어라. 내가 네 동료인 이상 네게 도움이 되는 행동만 한다는 걸.]

나는 황당해서 말했다.

[또라이같은!! 방금 전에 내 머리를 터뜨려 죽여놓고 무슨 개같은 소리야! 지금 내가 네 말을 믿을 수 있을 것 같아?!]

[못 믿으면 할 수 없고. 하지만 너는 믿을걸.]

[뭐라고….]

제갈사가 더할 나위없이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자아. 날 믿고 죽어라. 전륜성왕의 부활능력을 포기하고 그냥 순순히 죽으란 말이다. 나를 믿는다면 할 수 있겠지, 백웅…?]

[…….]

[네가 부활하고자 한다면 나는 더 이상 막을 수 없다.]

무슨 이런 말도 안 되는….

보통 사람들에게 이런 상황이 펼쳐진다면 당연히 백 중 백이 모두가 제갈사의 말을 무시하고 그대로 부활을 선택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제갈사가 하는 말이다.

그는 나의 책사다.

지금도 그것만큼은 달라지지 않았다….

[…….]

나는 잠시동안 생각한 후, 내가 생각해도 어이없는 결정을 내리고 말았다.

[좋아. 부활하지 않고 죽겠어.]

그러자 뒤에서 듣고 있던 염라대왕이 크게 놀란 듯 외쳤다.

[이런 멍청한!! 진심이오, 전륜성왕?! 그대가 이번에 죽으면 두 번 다시 이 우주에 전륜성왕은 부활할 수 없소!!]

[어억?! 진짜?!]

[설마 멍청하게 그런 걸 생각지도 않고 죽겠다 한 것이오!]

늘 냉철하고 명징하던 염라대왕답지 않게 크게 경악한 기색이었다. 나도 사실 그런 마음이 없었던 게 아닌지라 찔끔하고 말았다.

하지만 나는 머뭇머뭇 망설이다가 다시 한 번 말했다.

[…죽지 뭐!! 죽을 거야!]

스르르륵

그것이 확실한 언령(言靈)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일까? 내 영체는 그대로 안개처럼 스러져서 우주의 모래로 변화하는 게 눈에 보였다. 그리고 점차 눈앞의 광경이 새하얗게 흐려져서 시야가 가려졌고, 새하얀 침묵 속에서 제갈사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크크크크…. 믿었다. 그래야 나의 주군이지!!]

파앗

다음 순간, 나는 또 다른 공간에 와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여기가 어디인지는 알고 있다.

한없는 어둠의 공간.

윤회(輪回)의 도정.

[백웅. 두 번째 ‘매듭’을 시작하신 걸 환영합니다.]

눈앞에는 항아가 미소를 지으며 서 있었다. 나는 항아의 얼굴을 보자 약간 기운이 빠지는 걸 느꼈고, 다소 힘없이 항아에게 말했다.

“제기랄. 다 잘 되고 있었던 것 같은데 이게 무슨 일이야….”

설마 이런 어이없는 상황으로 두 번째 매듭을 시작하게 될 줄이야.

또 다시 천계 탑의 시련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말인가?

내가 창백하게 굳어 있자 항아가 묘한 미소를 지었다.

[후후, 주인님. 다시 한 번 ‘매듭’에 대해서 설명을 해 드릴까요?]

“해 줘.”

[당신께서 기억을 추억하신다면 서(書)에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그리고 다시 시작한다고 하더라도 이미 시작된 매듭 때문에 다음 생에 액(厄)이 적층되는 건 피할 수가 없지요. 그래도 동의하신다면….]

그 때였다.

“그 얘기는 나도 들어봐야겠군. 크크크.”

갑작스럽게 어둠 속에서 들려온 목소리.

그 목소리는 너무 익숙했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그 쪽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항아의 얼굴은 어느 새 완전히 딱딱하게 굳어져 있었다.

저벅

“왜 그러지? 내가 나타난 게 의외인가?”

저벅

천천히 걸어오는 소리. 어둠 속에서 그 목소리의 형태가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자, 나는 나도 모르게 외쳤다.

“제갈사!!!”

나타난 것은 제갈사였다.

그것도 마왕 특유의 영언이 아닌, 온전히 인간의 것처럼 보이는 말을 하면서!

저게 정말로 제갈사란 말인가?!

나는 너무나 놀라서 입을 떡 벌리고 말았는데, 항아가 완전히 굳어버린 얼굴로 제갈사에게 말했다.

“어떻게 여기에 주인님 이외의 존재가 들어올 수가 있는지 모르겠군요.”

그러자 제갈사가 광소를 터뜨렸다.

“크크크. 그런 걸 [단말]일 뿐인 네가 알 필요가 있을까? 하긴 전생자의 눈과 귀를 막아놓고 차포 떼놓고 움직이고 있던 입장에선 꽤나 실망스럽겠군.”

“…….”

“하지만 뭐, 이런 일도 있을 거라고 예상하고 구궁파천뢰를 미리 남겨놨었단 얘기다.”

“교활한.”

항아가 뭔가 이를 갈듯 말하자 제갈사가 히죽거렸다.

“최고의 칭찬이군. 난 황제처럼 인과율은 읽을 수 없지만 나쁜 짓은 어떻게 할지 알고 있거든….”

구궁파천뢰?

제갈사는 어느 새 우리 근처에 다가와 있었다.

“자아, 다같이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고.”

우웅

어느 새 장내에는 의자 두 개가 마련되어 있었다. 개 중 하나에 풀썩 쓰러지듯이 앉은 제갈사가 내게 자리를 권유하듯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나 제갈사는 우리 주군이 언제부터 천암비서에게 사기당했는지 알아보러 왔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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