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1183화 (1,180/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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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나는 모처럼 시간이 남았다는 걸 느꼈다.

‘보통이라면 이럴 때 무공수련이라도 조금 더 하러 가겠지만….’

지난번에 장삼봉 진인과 목숨걸고 무쌍패를 겨루면서 느꼈다. 내 무공수련의 진전은 겨우 한두 달만에 진전을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물론 그렇다고 하지 않는다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시일이 촉박한 이런 시기에 무공을 수련해봤자 시간낭비에 가까울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천재나 기재였다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둔재에게 있어서는 수련의 기간을 최소한 수년에서 수십 년 단위로 잡아야 하는 셈이다.

그렇기에 나는 이전처럼 암야참과 선검술, 구궁파천뢰에 몰두하기보다는 다른 방면에서 좀 더 건질 게 없는지 생각해 보았다.

‘법술을 공부할까?’

옥황의를 이용해서 흑웅대신 술수를 운용할 수 있는 지금, 내 술법성취는 예전 지선 망량과 거의 같다고 봐도 된다. 물론 깊은 선법과 선술의 이해가 필요한 고도의 주문은 쓸 수 없었지만 힘만 있으면 구동할 수 있는 술법은 다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단순암기술을 이용해서 쓸 수 있는 술법의 가짓수를 늘리는 게 여차할 때 도움이 될 것이다.

아니다. 차라리 지금 좀 더 언령을 이용해서 흑웅을 되살리는 시간을 단축시키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이런저런 일 때문에 흑웅의 부활이 늦어졌지만 여전히 수련을 통해서 흑웅의 부활을 앞당길 수 있다는 상황은 그대로다.

그래서 흑웅의 수련을 하려고 앉아서 암경을 시작하려고 했으나, 왠지 집중이 되지 않아서 좌불안석하면서 세 시진을 보내다가 바위에 누워서 뒹굴거리기 시작했다.

왜 집중이 안 되지?

놀고 싶다….

‘음…. 아니다. 그냥 잠깐 기분전환이나 할까.’

사람이 늘 열심히 할 순 없는 노릇이지!

나는 스마트폰을 써서 주현성을 불러내었다. 그리고 주현성과 함께 예전에 갔었던 커피집이란 장소에 다시 갔고, 커피를 시켜서 마주앉게 되었다. 주현성이 말했다.

“폐하. 우리 요원들을 되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음…. 괜히 안 좋은 기억을 건드리는 것 같아서 미안해서 말을 안했었는데, 대체 왜 그렇게 다 죽어버린 거였냐?”

치우의 양완이 봉인된 해저의 신전. 그 곳에서 아수라를 대장으로 한 공략팀이 괴멸적인 피해를 입어버린 바람에 명계까지 가서 되살리려고 하는 모험을 또 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 덕에 주현성과 류오를 제외한 대부분의 전술무력요원들이 되살아나긴 했지만 나는 [옛 지배자] 촉룡신과 쓸데없는 드잡이질을 하게 되었었다.

그러자 주현성의 표정이 굳어지며 말했다.

“아수라 님의 [그림자]는 그분이 스스로 담당하셨지만 항아의 [그림자] 때문에 피해가 컸습니다.”

“뭐?”

“[그림자]는 요괴왕 때의 힘을 고스란히 보이면서 전황을 압도적으로 휘저었지만 정작 이쪽의 항아는 요괴왕의 힘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저 대라신선 수준의 법술을 쓰며 우리를 지원했지만 전력이 너무 심하게 밀렸지요. 그 힘을 쓰지 않은 건지 쓰지 못한 건지 모르겠지만…. 격으로 치자면 사도 달기에 못지않은 존재가 힘의 균형을 무너뜨렸기에 이쪽은 속수무책이었습니다.”

“그, 그랬다고? 왜 그 사실을 나한테 얘기 안했던 거냐?”

“제갈량 님의 지시였습니다. 항아 님과 백웅 폐하는 현재 복잡한 관계에 얽혀있기에 백웅 폐하께서 단순한 결론을 내리게 해선 안 된다고….”

“…….”

나는 표정이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항아….’

요괴왕 월아였다가 [이름]을 각성한 지금은 천암비서와 연결된 무언가로 화한 존재!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매듭]에 있어서 가장 큰 연관이 있는 존재라는 건 틀림없다. 달리 말하자면 현재 이 생이 유지되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 항아를 섣불리 도발해선 좋지 않다고 판단했기에 제갈량이 항아의 실책을 내게 보고하지 말라고 지시했던 듯 싶었다.

‘으음…. 직접 물어볼 필요가 있겠군.’

나는 고심하다가 주현성에게 말했다.

“근데 그럼 어떻게 이긴 거야? 이긴 게 신기할 정돈데 그럼.”

“아수라 님이 스스로의 [그림자]를 빠르게 쓰러뜨린 후 나머지를 쓸어버리셨습니다. 그 분이 아니었다면 전멸했을 겁니다.”

“진짜?!”

“네. 그 분은 제 생명의 은인입니다.”

나는 약간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 말대로라면 아수라는 자기자신과 동일한 힘을 지닌 놈을 손쉽게 쓰러뜨렸단 소리인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천우진의 말대로라면 그 때 나왔던 [거울]의 시련은 완벽하게 본체와 동일한 힘을 지닌 자들이 출현하게끔 되어 있었다. 그래서 자신이 가진 힘의 크기가 크면 클수록 더욱 낭패를 겪을 수도 있었다.

자기와 같은 힘을 지닌 자를 쓰러뜨리는 건 아무리 승률을 좋게 잡아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기려면 힘의 크기가 아닌 전술전략과 그 때의 운에 맡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최상위급의 난이도인 것이다.

그런데 아수라는 그런 통상적인 상식의 범주를 깼다는 것인가!

주현성이 말했다.

“제가 봤던 걸로는 아수라 님이 썼던 귀일암야참이란 기술을 [거울]의 존재는 따라서 쓰지 못했습니다. 다른 검기와 의념절기는 모두 따라했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양패구상할 것 처럼 보였으나 압도적으로 쓰러뜨리신 거겠지요.”

“……!!”

“[거울]에게도 뭔가 제약이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뭐?!

‘이…이건 혹시 굉장히 중요한 사실이 아닐까?’

나는 전생자의 직감으로 이게 굉장히 중요하다는 걸 알아차렸다.

다만 어째서 중요한건지는 확실히 이성적으로 이해하기 힘들었다. 귀일암야참이 엄청 세다는 것만 이해했을 뿐이다.

‘에라이. 일단 기억해두면 나중에 써먹을 때가 있겠지.’

나는 일단 넘겨두고는 주현성에게 말했다.

“그건 그렇고 세상을 떠돌면서 무사수행을 한 것 같은데 좀 성과는 있었나?”

“불민합니다. 절대지경에 오르긴 했으나 세상에는 너무 강자가 많아서….”

“…쳇.”

“왜 그러십니까?”

난 주현성의 말에 불만어린 얼굴로 커피를 쭈욱 빨아먹었다. 왜냐하면 내가 죽을 고생을 다해서 도달했던 절대지경에 너무 쉽게 도달한 걸 보니 배가 아픈 걸 어쩔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천부적인 재능에 구궁파천뢰의 수련, 거기다 내 도움이 있었다고 해도 이렇게 빨리….’

그래도 진소청보다는 덜하다는 게 다행이겠지?

언제까지 이런 걸로 마음고생할 수도 없는 노릇이기에 나는 빠르게 마음을 다잡고는 주현성에게 말했다.

“알았어. 다시 아수라한테 돌아가 봐. 나는 항아랑 얘기할 테니까.”

“넵.”

나는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하고는 인적없는 커피집의 한켠에서 항아를 불렀다.

“항아. 나와.”

후웅

다음 순간, 항아가 내 앞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천계 제일의 미인 중 하나로 꼽히는 환상적인 미모를 지니고 있기 때문인지 지상계에서는 무척이나 눈에 띄는 것 같았다. 항아가 방긋 웃으며 말했다.

“너무 절 쉽게 생각하시는 게 아닌가요? 다음부터는 이렇게 부른다고 바로 오진 않을 거예요.”

“…개소리 말아.”

나는 떫은 목소리로 항아를 노려보며 말했다.

“왜 치우의 양팔을 공략할 때 요괴왕으로 변신하지 않았지? 내가 전륜성왕이 아니었다면 거기서 내 동료들이 거의 다 전멸해서 부활할 수 없었을 거야.”

“이상한 소리를 하시는 군요.”

짤랑….

주문을 시키지도 않았는데 얼음이 든 아이스티 컵을 들고 있던 항아가 한 모금을 마시고는 대꾸했다.

“[매듭]에서 ‘만약’이란 존재하지 않아요. 당신은 그렇게 움직일 운명이었던 거죠.”

“무슨 개소리야.”

“탐사대의 피해가 적었다면 당신은 굳이 명계를 들락거리지 않았겠죠? 그리고 촉룡과의 만남도 뒤로 미뤄졌을 테죠. 하지만 충분한 피해가 있었던 덕에 당신이 촉룡과 만나게 되었죠.”

“…….”

“이후에 만났다면 마음이 변한 촉룡 때문에 더 큰 우환이 다가왔을 수도 있죠. 결과적으로는 순탄한 [흐름]이 된 거예요. 누군가의 의도로.”

내가 아무리 바보라도 이 정도 들으면 눈치챌 수 있다. 나는 즉시 항아를 노려보며 말했다.

“일부러 네가 힘을 쓰지 않고 탐사대를 전멸까지 몰아갔다는 말이냐? 이런 개같은….”

“아뇨. 일부러는 아니에요. 정말로 지금 저는 요괴왕의 힘을 쓸 수 없어요. 항우의 시련 때도 쓰지 않았던 게 아니라 못했던 거죠. 저는 중립이며, 운명을 조율하는 능력이 있는 게 아니라 흐름의 일부일 뿐이랍니다.”

“웃기지 마. 중립이라고? 그럼 왜 [거울]은 요괴왕 월아의 힘을 쓸 수 있었나?”

항아는 그 질문에는 약간 당황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건 제곡이 친히 만들어 낸 저주예요. 본질을 비추는 거울의 저주…. 항아는 제곡의 직계후손인 만큼 그 저주에 비춰지면 더 강화된 환영이 나타나는 거죠. 예상치 못한 사태였죠.”

“변명일 뿐이야. 넌 내 적인 것 같군.”

스릉

나는 단호하게 말하며 검을 뽑아 순식간에 항아의 목에 들이대었다. 조금만 움직여도 항아의 목을 벨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항아는 전혀 겁나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

“저를 없애는 것도 당신의 뜻대로…. 어차피 이 모든 건 [매듭]의 일부일 뿐이에요.”

“다 안다는 것처럼 얘기하지 마. 죽어도 [매듭]이 끝나면 되살아나니까 겁날 게 없단 거냐?”

“잘 이해하고 있네요. 적어도 이 매듭 속에서 저는 전생자인 당신과 동급이에요. 평소에 목숨 아까운줄 모르고 나대던 당신을 대하던 적들의 기분을 체험할 수 있게 되니 좋겠군요.”

“…….”

“하지만 이번 일은 관찰자인 제 실책이니 당신에게 단서 정도는 드리죠.”

“단서?”

“듣고싶다면 먼저 검부터 치워주시겠어요? 아이스티를 마시고 싶네요.”

뭐 이런….

배짱이 너무 두둑해서 할 말이 없어졌다. 내가 검을 다시 검집에 집어넣자 항아가 아이스티를 한모금 마신 후 말했다.

“당신은 무조건 [종말]을 보아야 한다는 전제 하에 행동하고 있어요. 그래야 [다음 전생]에서 이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것 자체가 누군가의 노림수라면….”

“뭐?”

“단서는 여기서 끝. 더 이상은 서(書)가 용납하지 않는군요.”

“누군가? 그 누군가가 누군데?”

“당신의 숙적 중 하나겠지요…? 멍청하게 그런 질문은 하지 말아요. 하긴 숙적이 너무 많아서 짐작이 가지 않겠지요.”

“…….”

“당신의 책사들이 지혜를 모아 이 단서를 풀어낼 수 있을지 기대되는군요. 그럼 이만….”

파앗

“항아!!”

나는 크게 소리를 쳤지만 항아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아무래도 나를 성가시게 여겨서 더 이상은 대화를 하지 않으려는 속셈 같았다. 나는 묘하게 가시가 박혀있는 항아의 말투 때문에 속이 상했지만 그와 동시에 한 가지를 알아챌 수 있었다.

‘항아는 스스로 간섭하지 않는 관찰자를 자처하고 있다. 내 일에도 직접 관여하지 않으려고 해.’

그렇기 때문에 내게 [단서]를 준 것이리라. 본의 아니게 제곡의 저주 때문에 내 일에 크게 끼어들었고, 그게 누군가의 의도를 부추겼기 때문이다. 내게 불리한 일을 해 버렸으니 중용을 지키기 위해서 내게도 단서라고 하는 이득을 준 것인 걸까?

나는 빠르게 머리가 돌아갔지만 동시에 의문이 또다시 생겨났다.

‘…정향의 인과율은 이미 끝났단 말이야.’

요즘들어서 모든 게 너무나 순탄하게 풀리고 있었다. 항우의 시련을 깰 때까지만 해도 산재해있는 난관이 너무 많아서 과연 종말까지 살아남을지 걱정될 정도였는데 이제는 치우의 유적까지 전광석화처럼 탐사하고 있는 것이다.

정향의 인과율은 끝났다.

더 이상 세상 자체가 내게 호의적이진 않다. 지금까지처럼 어딘가에서 갑작스럽게 꼬여서 세계멸망의 위기가 와도 이상하진 않다. 그런데도 잘 풀리고 있다는 현실이 분명히 존재한다.

…이게 혹시 누군가의 함정이라면?

“…….”

이건 간과할 일이 아닌 것 같다. 나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서 제갈량에게 가려고 했다.

바로 그 때였다.

쿠구구궁!!

사방에서 지진이 일어나며 땅이 흔들렸다. 커피가게와 건물이 크게 뒤흔들렸고, 난데없는 지진에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다.

“아아악.”

“무슨 일이야!!”

나는 지진이라는 게 본질적으로 대지의 지각변동과 진동 때문에 일어나는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어디 한 번….’

그래서 우선 지진을 멈춰보기 위해서 발에 전신의 내공을 끌어모았다. 특정한 무공초식은 아니었지만 오랜 시간동안 뇌신류의 내가기공을 다스리며 깨달은 모든 요령을 담은 일축(一蹴)!

“하아아압!!”

전력전개(全力全開)

태산압정보(泰山壓丁步)

쿠콰콰콰쾅

그 순간 대지의 깊은 곳까지 내 전력을 실은 내공과 의념이 쏘아져 갔고, 용맥(龍脈)에 도달한 순간 크게 공명하여 울리는 게 느껴졌다. 나는 그 울림이 터지면서 내 내공이 퍼져나가는 걸 느꼈고, 용맥을 더더욱 자극하면서 현재 지축이 울리는 공명과 반대 방향으로 유도했다.

쿠르릉…

잠시 후 진동파와 진동파가 땅 깊은 곳에서 부딪히면서 점차 지축의 변동이 사그라드는 게 느껴졌다. 나는 지진이 가라앉자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내공의 절반쯤 소모한 것 같지만 어쨌든 지진을 멈추는 데 성공했군!

띠리리링

그 때 스마트폰으로 전뇌자가 나타났다. 홀로그램의 형태로 나타난 전뇌자가 내게 말했다.

[백웅.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대형 지진이 일어났어. 평균 진도는 6.2…. 대도시에도 상당한 피해가 있어.]

“대체 무슨 일이야? 또 렙틸리언 같은 외계인들이 지랄한 건가?”

[아니. 강대한 마력(魔力)이 세상을 휩쓸면서 천재지변을 일으킨 것 같아. 무언가가 남극에서 눈을 떴어.]

“……?!”

남극에서?!

이제 곧 찾으러 갈 치우의 양족은 북극에 있었으니 영 반대편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나는 기억을 더듬거리다가 말했다.

“남극이라면 분명 아이테눔 문디가 있던 장소잖아.”

[사공린이 거기에 대해서 할 말이 있는 것 같아. 빨리 대웅제국 황궁으로 와 줘.]

파앗

나는 곧장 호출에 대웅제국 황궁으로 갔다. 거기에 도착하자 사공린이 혼자서 기다리고 있었고, 나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아직 오지 않았어요. 하지만 당신만 알고 있어도 충분하죠.”

“무슨 일이 생긴 건지 알고 있는 건가?”

“네.”

사공린이 고개를 끄덕이곤 말했다.

“남극에 발푸르기스의 밤이 열렸습니다.”

“……?!”

무슨 말이야?!

나는 문득 과거에 있었던 파우스트의 말을 떠올렸다.

[그대는 발푸르기스의 밤을 알고 있소?]

[본디 내 고향에서 행하던 봄철의 축제를 뜻하오. 마녀와 악마들이 몰린다는 연회이지. 나는 그 축제에서 착안하여 ‘종말’에 일어나는 현상을 [발푸르기스의 밤]이라고 부르기로 한 거요.]

[즉, 종말 직전에는 물질계에 지옥문이 열리게 되어 있소. 그게 바로 [발푸르기스의 밤]이오.]

[인간계의 생명을 제물로 삼아서 자신들의 존재를 격상시키기 위해서요. 그 자들도 [계시]에 끼어들어서 이득을 챙기려는 것. [옛 지배자]들과 교섭하려고 한다고 보면 될 것이오.]

[종말 직전에 [발푸르기스의 밤]은 반드시 일어나오. 셀 수 없는 악마들이 인간세상을 침공할 터…. 그대가 인간을 구할 셈이라면 이 사실을 꼭 유념해 두시오.]

나는 기억을 더듬고는 지금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 알 수 있었다.

“…음차원의 악마들이 이 세상에 쳐들어왔다는 소리인가?”

“그렇습니다. 전뇌자. 남극의 상황을 보여주세요.”

사공린의 부름에 전뇌자가 홀로그램에서 손을 저었고, 잠시 후 허공에 지구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잠시 후 남극 일대의 지형이 확대되어서 보였고, 거기에는 수많은 악마(惡魔)나 악귀(惡鬼)들이 마치 시꺼먼 구름떼처럼 소환되어 있는 게 보였다.

“……!!”

뭐가 저리 많아?!

이미 수십만 마리는 되겠는데!!

문제는 저게 끝이 아니라 남극 한가운데 있는 시꺼먼 구멍에서 마치 벌레처럼 계속 기어나오고 있다는 점이었다.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저 구멍은 뭐지?”

“발푸르기스의 밤을 초래한 거대 차원문입니다. 저 차원문이 소환된 여파로 방금 전에 전 세계에 지진이 일어난 거죠.”

“거대 차원문이라고? 일반 차원문과 다른 건가?”

“네. 저런 건 필멸자가 만들 수 없습니다. 하나의 문두스(mundus)의 주인정도가 아니라면 절대…. 엄청난 재앙이에요.”

“…누가 저 거대 차원문을 만든 거지?”

“아직은 확실하지 않지만 짐작가는 존재는 있어요.”

사공린은 골치아프다는 듯 고운 아미를 찌푸렸다. 그리고는 말했다.

“급히 주술사 부대를 파견해서 저 일대에 결계를 치게 했으나 임시방편. 차원문이 열린 이상 저 악마떼를 모두 격파하고 차원문을 닫는 것 이외에 사태를 수습할 방법은 없습니다.”

“큭…. 가 보자고. 먼저 천계에 있는 칠요 좀 가져올게.”

내가 주먹을 불끈 쥘 때 전뇌자가 말했다.

[백웅. 방금 전 악마대군 측에서 우리에게 전언을 보냈어.]

“뭐? 어떤?”

[백웅 혼자서만 남극의 아이테눔 문디로 오라고 하네. 그러면 차원문을 닫겠다고 해.]

“…….”

엄청나게 수상쩍다.

나는 황당해서 말했다.

“미쳤어? 그냥 사공린이 천마의 힘으로 다 때려부수면 될 거잖아. 내가 뭐하려고 위험하게스리….”

“제 생각도 같습니다. 백웅을 위험에 노출시킬 수는 없어요.”

사공린이 말을 이었다.

“백웅 당신은 가만히 있으세요. 제가 남극의 환란을 해결하고 오겠습니다.”

“아 잠깐….”

“아이테눔 문디의 위치는 알고 있습니다. 그 자와 싸워서 끝장을 보고 오죠.”

파앗!!

잠시 후 사공린이 황금의 빛과 함께 사라졌다. 아무래도 내 말대로 혼자서 악마세력과 담판을 지으러 간 모양이었다.

‘흠. 뭐 사공린이라면 혼자서 [옛 지배자]와도 싸울 수 있을테니 걱정할 건 없겠지….’

나는 사공린이 다 해결해주겠거니 생각하면서 전뇌자에게 말했다.

“악마들이 아무리 세도 천마보다 강하진 않겠지. 나는 그냥 기다리면 되나?”

하지만 내 물음에 전뇌자는 답하지 않았다.

치직….

“……?”

이제 보니 스마트폰도 완전히 꺼져 있었고 전뇌자의 홀로그램도 사라져 있었다. 놀라서 보니 어느 새 전뇌자와의 연결은 끊겨 있었다.

“어?!”

후웅!

갑작스럽게 흑풍(黑風)이 몰아쳤다. 나는 그 흑풍이 내가 서 있는 근처를 휩쓸면서 사방을 시꺼멓게 물들여서 사위를 분간할 수 없게 한다는 걸 알아챘다. 나는 이게 강대한 주술이라는 걸 알아채고는 즉시 옥황의를 통해서 술수를 발동했다.

“파해(破解)!”

가장 간단한 해주(解呪) 주문이지만 힘을 담은 만큼 단순하게 힘이 증가하는 천계신선의 주술!

“파해! 파해! 파해! 파해! 파해!!”

나는 예전에 혼원지순을 중첩시켰을 때처럼 파해주술에 힘을 계속 중첩시켰다. 하지만 6중첩인데도 딱히 흑풍은 사라지지 않고 계속해서 내 주위를 맴돌았고, 도리어 내 신력이 흑풍에 흡수되는 기분마저 들었다.

스르르….

“…파해! 파해! 파해! 파… 케헥.”

나는 계속 힘을 중첩시켜보았지만 전혀 상황이 나아지지 않자 위기감을 느꼈다. 도리어 내 숨이 흑풍의 안개 때문에 막혀오기 시작한 것이다.

‘이, 이거 장난아니잖아!!’

이 주술은 최소한 대라신선을 능가하는 주술이다! 나는 상황을 눈치채자 급히 술법을 펼치기를 포기하고는 검을 들어서 손에 잡았다. 천계에 다른 보물은 임시로 놔두고 왔지만 화요와 수요는 가지고 왔으므로 양손에 쌍요를 잡은 채 교차시켜서 공명시켰다.

칠요공명!!

콰아아앙

그 순간 폭발이 일어나면서 흑풍이 잠시 걷히면서 뻥 뚫린 공간이 나타났다. 나는 급히 멸혼보로 달려나가서 구르듯이 빠져나갔고, 아슬아슬하게 흑풍의 결계를 통과할 수 있었다.

내가 튕기듯이 자리에서 일어서자, 눈앞에는 시꺼먼 바람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그 바람에서 엄청난 주력(呪力)을 느끼고는 오싹해졌다.

“……!!”

순수한 힘은 내가 만났던 지배자들에 비해 압도적인 게 아니다. 그러자 저 흑풍에서 느껴지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순수한 광기! 그리고 처절한 피의 냄새! 그것은 현실감있게 내게 공포라는 감정을 일으키기에 충분했으며, 내가 주춤거리고 있을 때 음침한 목소리가 흑풍에서 울려퍼졌다.

[사공린도 참 단순하군. 이런 유인책에 걸려들다니.]

“너… 넌 누구냐?”

[누굴까, 이 멍청한 놈아.]

마치 이죽거리듯이 말하는 흑풍의 존재!

나는 왠지 그 말투가 낯익어서 고개를 갸우뚱했다.

“어… 설마…?”

[큭큭큭….]

슈르르륵….

어둠의 안개 속에서 입자가 뭉치듯이 회백색 동상이 만들어진다. 그것은 잠시동안 비현실적인 차원의 경계에 있다가 현실감을 가지고 구현화되기 시작했고, 이윽고 익숙한 인간의 형상을 하기 시작했다.

모습을 드러낸 자는 눈에서 혈광(血光)을 일으키며 말했다.

[실로 오랜만이다….]

나는 그의 모습을 보자 그만 멍해지고 말았다.

수요와 화요를 든 양손에 힘이 빠지는 걸 느끼며,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상대를 불렀다.

“…제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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