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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나는 촉룡과의 이야기가 끝난 후 도로 명계로 갔다. 일단 제갈량의 영혼에게 지금 상태를 물어볼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내가 명계의 옥좌에 도착하자 그들보다도 염라대왕을 비롯한 지옥시왕들이 내 앞에 와서 기다리고 있는 게 보였다.
“아니, 당신들….”
제일 선두에 있던 염라대왕이 부복하며 말했다.
[전륜성왕이여. 비상상황이오. 혼의 과밀(過密) 현상이 일어나 버렸소.]
“…….”
[우리가 담당하는 지옥에 최대한 거두려 하여도 현재 풀려나와 있는 영혼의 절반도 거둘 수 없소. 전륜성왕의 대책이 필요하오.]
아무래도 촉룡신이 내뿜은 영혼들이 너무 많은 탓에 지옥시왕의 수용한계를 넘어버린 모양이었다. 나는 상황을 파악하고는 그에게 반문했다.
“어찌하면 좋겠소? 뭔가 조언이 필요하오.”
[그대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소…. 바로 생사부에 저 영혼들을 수용하는 것이오.]
“음?!”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대책!
내가 흠칫 놀라자 염라대왕이 말했다.
[우선 생사부를 꺼내어 보시오.]
촤락
내가 염라대왕의 말대로 생사부를 꺼내자 그의 말이 이어졌다.
[생사부는 본디 전투용이 아니라 명계를 다스리는 가장 중대한 보물…. 그 생사부로 타인의 이름을 새겨넣어 죽이는 것뿐만이 아니라 담아놓는 것도 가능하오.]
“어떻게 담아놓으란 말이오?”
[삼안(三眼)을 떠서 생사부에 비추면 생사부에게 영혼의 이름을 자동으로 적어서 넣어두도록 할 수 있소.]
“음….”
나는 그 말을 듣고는 삼안을 떠 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역시나 권능이 바닥이라서인지 아무리 용을 써도 삼안이 생성되지 않았고, 나는 별 수 없이 염라대왕에게 말했다.
“안 되는데.”
[어쩔 수 없군…. 그러하다면 이 방법뿐이오.]
“응?”
그리고 잠시 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푸콱!!
“허억.”
염라대왕이 갑자기 자신의 이마에 있던 삼안을 손으로 뽑아버린 것이다! 내가 깜짝 놀라자 염라대왕이 피가 철철 나는 걸 아랑곳하지 않고 피투성이 삼안을 내게 건네며 말했다.
[긴급상황이니 내 눈을 쓰시오.]
“괘, 괘, 괜찮소?! 눈을 뽑다니….”
[그대와 나의 근원은 같을지니…. 걱정하지 마시오.]
“…….”
나는 침착한 염라대왕의 말에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고는 삼안을 들어서 생사부를 향했다. 그러자 삼안에서 회색빛이 뿜어져나오기 시작했고, 위잉하는 소리와 함께 엄청난 속도로 생사부에 무수한 이름이 적히기 시작했다.
촤좌좌좍
촤좌좌좍!!
그렇게 한참동안 이름이 적히는 동안, 하늘에서 무수한 영혼덩어리들이 날아와서 생사부에 내려꽂히는 게 보였다.
우오오오오 - !!
마치 빛의 기둥이 쉴 새 없이 생사부를 뒤덮는 듯한 상황!
생사부에서 손을 떼고 그 광경을 지켜보자 염라대왕이 자신의 눈을 돌려달라는 동작을 취했고, 내가 삼안을 그에게 건네자 염라대왕이 자신의 이마에 삼안을 끼워넣으며 말했다.
[이로써 생사부가 잠시동안 꽉 차게 되어 사용불가능 상태가 되었소.]
“쓸 수 없단 말이오?”
[그렇소. 영혼을 담아두는 저장고 역할을 할 수 있으나 대신 병기로서 쓸 수 없게 되지.]
“으음…. 그건 안 되는데.”
[조금 기다리시오. 우리 지옥시왕이 영혼의 윤회를 빠르게 처리하면서 명계를 재정비하게 되면 생사부에서 다시 혼을 빼낼 수 있을 것이오.]
어쩔 수 없는 일로 보였다. 하긴 수천 년 동안 죽었던 필멸자와 생명체들의 모든 영혼이니 그 양이 어지간하겠는가! 생사부로 임시땜빵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일 지경이었다. 하지만 나는 확실히 해둘 게 있어서 염라대왕에게 말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제갈량을 제외한 내 동료들은 일단 되살리고 싶소만.”
그러자 염라대왕은 잠시 하늘을 쳐다보더니 놀란 듯 말했다.
[[옛 지배자]의 결계가 사라졌군…. 어떻게 된 것이오?]
나는 촉룡신과 있었던 일을 그에게 말했다. 염라대왕은 이야기를 듣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충분히 가능한 일. 바로 부활시켜 드리겠소.]
슈슈슝
염라대왕의 뒤편에 있던 조그마한 빛덩어리들이 하늘으로 치솟는 게 보였다. 아무래도 긴급상황이 벌어지자 염라대왕이 내 동료의 영혼들을 임시로 보호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나는 제갈량의 영혼에게 현재 상황을 설명했고, 제갈량이 놀라워했다.
[과연…. 촉룡의 신이 진짜 존재하는 것이었군. 그저 신화일 뿐인 줄 알았건만.]
“이제 어떻게 해야하지?”
[해야할 일은 변하지 않았다. 나는 계속 저승에서 비사를 조사할 테니 너는 지상으로 가라.]
파앗
나는 현세로 되돌아갔다. 그리고 눈앞을 보자, 과연 죽었던 자들이 멀쩡히 부활해 있는 게 눈에 보였다. 전술무력요원들은 믿기지 않는지 자기자신의 몸을 더듬으며 경악하는 기색이었다.
“저, 정말 죽었는데 되살아나다니….”
“초대황제폐하는 정녕 신이 되셨구나.”
나는 훗하고 웃으며 말했다.
“너무 자주 죽지는 마. 염라대왕 말로는 되살릴 때마다 내가 전륜성왕의 힘을 회복하는 속도가 늦어진다는 것 같으니까.”
“존명!”
나는 천우진, 아수라 등 동료들을 다시 집결시켰다. 회의에는 사공린이 참가하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사공린과 치우의 몸은 거부반응이 있는 것 같아. 그녀는 먼 곳에서 지켜보겠지.’
나는 이번에 얻은 성과인 치우의 팔을 모두 앞에서 내놓으며 말했다.
“이게 치우의 팔인데 말이야. 어떻게 생각해?”
치우의 팔을 만지거나 살펴보아도 딱히 공격하지 않는 것 같았기에 나는 서슴없이 동료들에게 한 번씩 돌려보게 했다. 그리고 한 번씩 모두가 만져본 후 제일 먼저 의견을 내놓은 것은 바로 아수라였다.
“혼돈의 권능에 휩싸여있긴 하지만 그냥 보통 인간의 팔 같다.”
“음…. 그럴 수가.”
천우진 또한 입을 열었다.
“내 생각도 마찬가지다. 이건 거인족의 팔이 아닌 것 같군.”
나는 탁자를 쾅 치며 황당해했다.
“말이 돼?! 치우는 염제 신농 직계의 거인족이었는데 거인이 아니라고?! 말도 안 되잖아!!”
천우진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나한테 그걸 따져봤자 할 말이 없군. 내가 그걸 어떻게 아냐 씨발놈아.”
“…….”
“다만 거신족의 신체라면 영체(靈體)도 포함되어 있을 텐데 이 팔은 순수한 물질로만 이뤄져 있다. 혼혈이라 친다면 무척이나 피가 옅은 경우만 이럴 가능성이 있지.”
“이해가 가지 않는군…. 역대 최강의 존재인 치우가 그토록 강했던 이유가 거신족이었기 때문이 아니란 말인가?”
나는 혼란스러웠다.
치우가 거신족이 아니라니!
그렇다면 그 어마어마한 힘은 어디서 비롯된 거란 말인가?
그러자 잠시동안 치우심장의 봉인을 유지해두고 이 자리에 참석한 서문혜가 말했다.
“제게 다시 한 번 치우의 팔을 주세요.”
“응?”
“짚이는 게 있어요.”
치우의 팔을 넘겨받은 서문혜는 한동안 눈을 감고 팔을 만지며 뭔가를 느끼는 듯 했다. 한동안 그러던 서문혜가 이윽고 눈을 뜨며 말했다.
“기억을 읽어보니, 이 양완(兩腕)에는 본디 무수한 [힘] 그 자체가 달라붙어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그 모든 것들이 사라졌기에 본질만 남은 거예요. 그래서 고대 치우가 사용했던 팔의 모습과 지금 두 팔의 모습은 다르다고 생각해요.”
“……?”
무슨 말이지?
나는 잘 못 알아들어서 고개를 갸우뚱했으나 천우진의 표정이 안 좋아졌다. 그는 손깍지를 끼며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어쩌면 치우는 무수한 신(神)을 쓰러뜨리며 그들의 힘을 흡수하는 자였을지도 모르겠군.”
“뭐?”
“…치우는 전투를 거듭하며 계속해서 강해졌으며 동두철액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지. 어쩌면 그건, 단순한 전설이 아니라 치우가 힘을 키운 방법 그 자체를 말하는 걸지도.”
“야.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어. 그러니까 치우는 쓰러뜨린 신의 힘을 먹을 수 있었다는 거야?”
“아마도.”
천우진이 문득 썩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불멸자의 지위에 오른 자가 또 적을 흡수해서 강해지다니…. 완전히 세상의 섭리를 벗어난 존재였던 것 같군.”
“…내 생각은 조금 다른데.”
아수라가 치우의 팔을 물끄러미 보며 말했다.
“그 팔에서는 초절무인(超絶武人)의 영혼이 느껴진다. 그 자는 무예수련 또한 열심히 했던 것 같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태초부터 절대적으로 강한 존재가 뭐하러 수련을 한단 말이냐? 그것도 치우쯤 되는 존재가 어째서 무(武)를.”
“할 수도 있지. 자기자신에게 부족함을 느낀다면 말이야.”
그렇게 대꾸한 아수라가 나를 보더니 말했다.
“백웅. 선택할 때가 된 것 같군.”
“응? 뭘 선택해?”
“이대로 치우의 양족(兩足)까지 마저 찾아내러 갈지, 아니면 치우의 양완을 이용해서 치우의 심장 봉인부터 풀어볼지를.”
“음….”
확실히 그렇군.
양완을 이용하면 심장의 봉인을 약화시키는 게 가능하고 안정적으로 풀 수도 있어.
‘하지만 그걸 지금 해야되느냐 말아야되느냐인가….’
나는 심도있게 고민했다. 그리고는 결정을 내렸다.
“치우의 양족을 찾자. 지금은 섣부른 모험을 하고싶지 않아.”
아무리 생각해도 심장에는 아직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가 있다. 대체 전욱의 암창을 뽑은 것은 누구인가? 그리고 심장의 봉인에서 내게 압박을 준 그 존재는 누구인가? 이런저런 수수께끼가 산재해 있는 지금, 양완을 이용해서 심장을 수월하게 풀어낼 수 있다 해도 모험을 해선 안 된다.
차라리 시간이 몇 년 걸리더라도 전륜성왕의 힘을 좀 회복해보는 게 나을 것이다. 그리고 그 시간을 보내는 김에 양족까지 찾아내는 편이 낫겠지.
회의가 끝난 후 천우진이 내게 와서 말했다.
“백웅. 네녀석 목갑이 부숴져서 임시로 주머니를 만들어두긴 했다만.”
쿠웅
무려 9개나 되는 주머니가 색깔별로 놓여져 있었다. 도저히 이걸 다 갖고다닐 순 없었기에 나는 당황해서 말했다.
“아, 아니 뭐이리 많아?! 분명 치우의 신전에서 가져갈 때는 주머니 하나에 다 갖고갔을 텐데….”
“그건 임시술법이라서 반영구적으로 담아둘 수는 없다. 적재용 술법도구로 담아두려고 해도 칠요 같은 건 하나 담는데 하나의 주머니가 무조건 필요하지. 그래서 칠요를 다 따로 담고, 그에 준하는 기물도 위험을 피하려고 따로 담으니 9개가 되더군.”
“…….”
나는 황당해서 천우진에게 말했다.
“아 뭐가 이래! 마도구 목갑으로는 다 담아낼 수 있는데 술법은 고작 이거야? 마법에 비해서 술법이 너무 딸리는 거 아니냐고!”
“이건 내 전공이 아닌데 대체 뭘 바라는 거냐? 아무리 내가 천재라도 적재용 술법은 살면서 다뤄보지도 않았던 거다. 목갑은 그래뵈도 마도구 중에서도 최상급이었고.”
“…….”
“아무튼 너 알아서 해라. 나는 그럼 이만.”
“야 잠깐! 일 좀 제대로….”
그러자 천우진이 진심으로 분노한 목소리로 외쳤다.
“닥쳐! 유급휴가인데 계속 나와준 걸 고맙게 여겨라!!”
파앗
천우진이 사라지자 나는 난처해져서 9개의 주머니를 쳐다보았다. 하나하나가 등에 메는 가방의 절반만한 크기였으므로 도저히 평소에 다 들고 다닐 순 없었다. 큰 보따리에 한번에 몰아넣자 그럭저럭 등에 지고 다닐 만 했으나 역시 정말로 불편했다.
‘목갑이 이리도 소중한 거였다니….’
이게 다 치우의 팔 때문이다!
내가 치우의 팔을 들고 노려보고 있자 옆에 있던 서문혜가 말했다.
“백웅 님. 차라리 천계에 가시는 게 어떨까요?”
“천계에 가라고?”
“네. 이유는….”
나는 서문혜의 말을 듣자 머리가 번쩍 뜨이는 것 같았다. 그리고는 황당해서 말했다.
“아니, 왜 제갈량이나 천우진 아수라는 그런 계책을 내게 말해주지 않은 거지?”
“…그, 그게….”
“이유를 알고 있는 거요? 말해주시오!”
내가 다급히 캐묻자 서문혜가 머뭇거리며 말했다.
“그 정도는 다 알거라고 생각해서 아니었을지요….”
“…….”
아무래도 머리가 아파왔기에 나는 일단 서문혜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한 후 바로 천계의 옥황상제 옥좌로 이동했다. 그리고는 천계의 관리를 불렀다.
“여봐라! 곤륜십이대선을 다 불러라!”
[알겠사옵니다.]
이윽고 천계 회의장에 곤륜십이대선들이 모이자, 나는 주머니 아홉 개를 그들 앞에 내어놓으며 말했다.
“난 최대한 많은 것을 담을 수 있는 보패가 필요하오! 이걸 다 담고도 용량이 백 배는 남는 최고의 적재용 보패를 만들어내시오!”
바로 이거다!
목갑이 부서졌다면 그걸 대신할 것을 새로 만들면 된다!
그것도 천계의 힘을 빌려서!
[…….]
[…….]
곤륜십이대선들이 무척이나 당혹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특히 장내에서 최고로 뛰어난 보패제작자인 연등도인의 얼굴은 마치 죽을 쓴 듯 우거지상이 되어 있었다. 나는 슬며시 연등도인을 쳐다보며 말했다.
“설마 옥황상제의 명령을 무시하지는 않겠지…?”
[폐하…. 혹시 그 안에 들어있는 건 칠요가 아닌지….]
“그렇소!”
[음…. 만들 수 있을 터이지만 꽤 많은 예산이 드오…. 예산을 주신다면야…. 내가 다른 선인들과 협력하여 만들겠소.]
“아, 그리고 한가지 더 주문사항이 있소.”
[무엇이오?]
나는 번쩍 하고 치우의 양팔을 들고는 말했다.
“이것도 같이 넣을 수 있어야 하오!”
[그것이 무엇일진대….]
“치우의 양팔이오!”
[……!!]
웅성웅성
풀썩!
그러자 십이대선들이 경악해서 얼굴이 새하얘졌으며 개 중 몇몇은 경악을 이기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질 정도였다. 특히 연등도인은 못 믿을 수리를 들은 양 손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는데, 그는 잠시 후 정신을 차리고는 말했다.
[서, 설마 기존의 적재용 마도구가 부숴진 이유가 혹시 그 양팔을 넣어서?!]
“바로 그거요!”
[차원을 부수는 힘…!! 여, 역시 치우의 팔…!!]
연등도인이 벌벌 떨다가 갑자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되오!! 우리가 아무리 보패의 전문가라도 치우의 팔을 담을 보패는 만들 수가 없소!! 그런 건 [옛 지배자]도 만들 수 없을 것이오!]
“아니, 정말 내 말을 안 듣겠단 말이오?”
[그렇소! 옥황상제의 명령을 웬만하면 들어야 하겠지만 불가능한 일을 시키다니 이 무슨….]
“에잇. 시키면 할 것이지 이 놈들이….”
나는 신장들을 불러서 십이대선에게 곤장을 때릴지 말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 때였다.
쿠르르릉
갑자기 천계에 벽력과 뇌성이 몰아치더니 잠시동안 거대한 용의 형상이 회의장에 드리워지는 듯 했다. 그리고는 누군가의 준엄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 십 이 대 선 이 여 너 희 는 최 대 한 견 고 한 보 패 를 만 들 어 라 ]
이 목소리는?
나는 낯익은 목소리에 흠칫했다.
쿠르르릉….
그리고 이어진 운무(雲霧).
‘설마 여긴.’
나는 그 운무가 나타나자 길을 따라서 걸어갔다. 그리고 길의 끝에 익숙한 육각정자가 나타나는 걸 볼 수 있었고, 거기에 기다란 담뱃대를 든 절세미남이 앉아서 기다리고 있는 걸 볼 수가 있었다.
나는 그를 보자마자 외쳤다.
“복희 님!! 저를 여기로 불러오신 겁니까.”
“일단 거기 앉아보게.”
나를 순식간에 자기가 요양하는 이세계로 데려온 삼황 복희의 권유에 나는 쭈뼛거리며 육각정자에 앉았다. 복희는 앉자마자 내게 손을 내밀었고, 그게 치우의 팔을 보여달라는 뜻인 걸 알아차린 나는 그에게 건네주었다.
치우의 두 팔을 살펴보던 복희가 말했다.
“십이대선을 너무 괴롭히지 말게. 사실 이걸 담을 수 있는 보패나 마도구는 현재 이 우주에 존재치 않으니까.”
“무슨…. 지금은 본체도 아니고 막 봉인에서 풀려났으며 거신족의 팔도 아니지 않습니까? 어떻게 그런 일이.”
“치우니까. 치우의 몸이라는 것만으로 모든 게 설명되지.”
탄식하듯 중얼거리던 복희가 말을 이었다.
“만일 내가 [기어오는 혼돈]의 흉계에 걸리지 않았다면 치우가 나타났을 때 좀 더 다른 결말이 있었을 것이야. 그래서 나는 치우의 일을 생각하면 늘 아쉬운 마음이 드는군.”
“만일 그랬다면 치우를 도와서 황제와 싸우셨을 것 같군요.”
“그런 단순한 얘기는 아니지. 왜냐하면 치우는 처음부터 전쟁에서 승리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고, 그건 나나 여와가 돕든 말든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네. 문제는 그런 치우를 패배하게 만든 다른 요인이지.”
“……?”
“누군가가 치우의 운명에 끼어든 것일세.”
무슨 말이야?
내가 어리둥절해하자 복희가 말했다.
“잘 듣게. 이 팔의 소유주인 치우는… 지금 살아있으되 살아있지 않아.”
“봉인이 풀리면 되살아난다는 뜻입니까?”
“아니…. 이건 [기회]의 문제야. 과연 한 번 결말을 본 존재가 또 다시 판에 참여할 수 있는가, 하는 법칙의 문제이기도 하지. 위대한 [아버지]가 과연… 그걸 허용할지 모르겠군.”
“……?”
“그러므로 치우를 부활시킨다는 건 자네에게 있어서 결말이 하나 더 추가된다는 뜻일 수도 있네. 치우는 단순히 자네의 편으로 만들고 말고 할 존재가 아니라, 그 자체가 결말이라는 뜻이지.”
“죄, 죄송합니다. 제가 멍청해서 그런지 잘 이해가….”
“상관없네. 알든 모르든 달라질 건 없는 얘기니까. 어차피 치우의 봉인을 해제해봐야 알 수 있는 얘기기도 하고.”
후우 -
느긋하게 담배를 피운 복희가 약간 지친 듯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치우의 팔은 내게 맡겨두게. 우리가 힘을 합쳐서 최대한 이걸 넣어둘 수 있을만한 걸 만들어 보겠네.”
“가능하겠습니까?!”
“내 지혜와 여와의 힘을 빌린다면 아마도….”
복희가 말을 이었다.
“또 하나. 치우의 양족(兩足)은 북극(北極)에 있다고 하더군.”
“헉!! 어떻게 알아내신 겁니까?”
복희가 먼 하늘을 보며 말했다.
“양족을 봉인한 건 소호금천이었지. 그리고 소호금천은 물질계에 있을 때 새의 왕국을 만들어서 무수한 새를 거느렸는데 그 위치가 바로 북극에 존재했다네. 그 북극 새의 왕국을 일컬어 소호지국이라 하였다고 하더군. 확실하진 않으나 소호금천은 새답게 귀한 것을 자신의 왕국에 보관하는 취미가 있었으니 아마 그 곳에 있을 확률이 높다고 하더군.”
나는 복희의 말투에서 뭔가를 느끼곤 말했다.
“…누군가가 말해준 겁니까?”
“여와가 말해줬네.”
“……!!”
“그녀는 물질계에서 오랫동안 활동했고 천계의 배후 지배자였으며 오제와도 자주 교류했지. 그 정도 정보를 모를 이유는 없어.”
나는 황당해서 복희에게 말했다.
“설마, 여와는 치우 심장과 팔의 위치도 알고 있었던 게….”
“아마도 짐작은 했겠지.”
“아니 그럼 왜 우리한테 안 알려줬답니까?! 괜히 우리만 개고생하게!!”
내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복희가 다시 한 번 담배를 뻐끔하곤 말했다.
“그녀는 너희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지금도 치우의 봉인을 푸는 게 옳은지 아닌지 확실치 않잖은가.”
“…….”
“하지만 말했듯, 치우의 봉인을 푸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야. 그 이후에 일어날 일이 중요한 거지.”
이어진 복희의 은근한 말에 나는 마음이 크게 무거워짐을 느꼈다.
“치우의 부활이 하나의 결말이라면, 자네는 그 결말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 건가…?”
“…….”
대답할 수가 없다.
어차피 죽는 걸로 끝이 아닌가 생각했지만 왠지 치우의 부활은 그 이상의 의미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힘겹게 그의 말에 대답했다.
“감수해야죠.”
[종말]에 공손헌원과의 정면대결은 아마 승산이 희박할 것이다. 정말로 못 이길 것 같으면 그 때 차라리 치우를 부활시켜 버리는 전략으로 가야한다. 그걸 위해서라면 뒤가 없다는 건 감수할 수밖에 없으리라.
나는 복희에게서 정보를 얻은 후 동료들에게 그 정보를 알려주었다.
그러자 사공린이 말했다.
“백웅. 도전은 몇 달만 기다리시는 게 어떨까요?”
“아니, 왜?”
“일단 당신의 힘이 회복되기를 기다렸다 도전하는 게 좋은데다 또 하나는….”
사공린이 잠시 망설이다가 말을 이었다.
“천우진이 유급휴가가 끝날때까진 세상이 멸망해도 나오지 않겠다고 잠적했습니다….”
“…….”
“행방불명이에요.”
그 녀석 진심이었던 건가….
나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그럼 북극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모아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