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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1178화 (1,175/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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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

조디악 멤버들은 내 이야기를 허황된 말장난으로 듣는 모양인지 내 말에 별다른 동요가 없는 듯 했다. 베루스는 물론이고 나머지도 누구 하나 표정이 흐트러지지 않았다. 나는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오는 걸 느끼며 말을 이었다.

“칠요의 시련에 도전해봤자 세상을 구할 순 없단 말이오. 왜냐하면 그건 황제 공손헌원의 함정이기에.”

“믿을 수 없소. 당신이 그걸 어떻게 안단 말이오?”

“내가 해 봤소. 이미 칠요의 시련에 도전해서 마지막 순간까지 가 봤단 말이오.”

“…….”

“구원 같은 건 없었소.”

베루스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말했다.

“헛소리를 하는군. 칠요의 시련이 발동하는 조건을 알고는 있소?”

“나보다 잘 아는 사람이 있을까!”

나는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칠요를 다 모았을 때 일어나는 현상은 두 가지가 있지. 당신은 세상을 구한다면서 그 두 가지 중에서 한 가지밖에 모르고 있고, 그나마도 틀려먹은 길이니 도대체 뭘 하겠다는 것이오?”

“…두 가지?”

“하나는 인류의 왕이 되기 위해 공손헌원이 마련한 칠요의 왕선(王選)에 도전하는 것. 당신이 말한 건 이거고 또 하나는….”

그 순간 조디악 멤버들의 시선이 모조리 내게 쏠리는 걸 알아챘다. 왜냐하면 그들이 지금까지 전혀 모르고 있던 칠요의 정보가 나타나는 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나는 왠지 심술이 나서 씨익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치우의 [팔]에 대한 정보를 주면 가르쳐 주겠소.”

“…….”

베루스는 물론이고 상대측의 모든 간부들이 고뇌하는 기색이었다. 그들 중에서 한가운데에 앉아있던 호수의 마녀, 비비안이 입을 열었다.

“백웅. 당신의 말은 거짓이 아니군요.”

그러자 베루스는 물론이고 칼리오스트로, 하산, 바토리 등의 간부들이 움찔했다. 특히 베루스가 자신의 표정변화를 숨기지 못하고 일그러진 얼굴로 말했다.

“그럴 수가…. 수백 년 동안 우리 예수회의 간부들이 죽을힘을 다해서 칠요에 대한 정보를 모았거늘, 우리가 저 동방의 괴인보다도 무식했단 말입니까?”

“그래요. 저는 수호자님의 권능으로 [진실]을 판별하는 힘이 있으니, 저 자의 말이 사실임을 알 수 있습니다.”

“으음….”

비비안이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이해가 되지 않는 게 있군요. 백웅 당신은 그런 정보를 알고도 어째서 세상을 구하기 위해 움직이지 않는 것이죠?”

“…….”

“칠요의 시련이 함정이란 건 어떻게 알았는지도 말씀해 주세요.”

“당신이 나라면 말해주겠소? 이런 교섭자리에서 공짜로 상대한테 정보를 주는 건 바보짓이지. 당신들이 워낙 바보짓을 해서 놀릴 겸 몇 마디 해줄 순 있지만.”

“…….”

나는 유들유들한 말투로 말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금 전력으로 칠요의 시련에 도전한다고 해서 다 통과한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소. 도전하다가 전멸할 가능성도 높으니 주제파악을 좀 하는 게 좋겠소.”

“당신은 팔리아스의 마법사와 거신들의 힘을 알고 하는 이야기인가요? 그들은 고대부터 인간을 악한 자들에게서 지켜 온 상위존재입니다. 그들을 깨운다면 필경….”

나는 손을 내저었다.

“어림도 없지. 나는 인세에서 모을 수 있는 최강의 전력을 모아서 도전했었는데 죽을 위기를 셀 수 없이 넘겼소. 거신족인지 뭔지 몰라도 그 당시의 전력보다 절대 강하진 못할 것이오.”

“엄청난 확신이군요….”

비비안이 나를 광오한 자처럼 쳐다보고 있었지만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그 당시 나는 금오도의 교주이자 최강의 술법사인 신공표, 망량선사의 제자 천우진, 제천대성 등과 함께 절대지경의 동료 여럿까지 동원해서 도전했었다. 심지어 그들은 칠요의 공명까지 이용해서 싸웠어. 그런데도….’

목요의 시련과 토요의 시련에서 사실상 억지처럼 이겼다. 이겼다기 보다는 목요의 시련에서는 절대지경의 무인들이 기적을 일으켰던 것이고 정석으로는 절대 못이길 상대였다. 또한 토요도 내게 호감도가 높았기에 엄청나게 봐줬던 것이고 토요의 정령 또한 정석으로는 공략이 불가능한 상대에 가까웠다.

심지어 마지막 일요의 시련에 나타나는 수호자의 정체….

‘제길. 떠올리니까 또 기분이 뭣같아지는군…. 깨라고 만든 게 아니었어.’

그걸 알고 있다면 고작 팔리아스의 거신족과 마법사 따위로 칠요의 시련을 공략할 수 있다는 자신은 결코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을 다 모은다 해서 그 당시의 신공표나 제천대성, 천우진에 비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거기까지 과거의 일을 떠올리고는 비비안에게 말했다.

“당신들 또한 인간을 위해 싸우는 진영이니 완력으로 거친 수를 쓰고 싶지는 않소. 그러니 내 제안대로, 나는 당신들에게 칠요의 시련에 관한 모든 걸 알려줄 터이니 당신들은 내게 치우의 [팔]에 대해 알려주시오. 내게서 정보를 들은 후에 도전할지 여부를 결정해도 되지 않겠소?”

“당신에게 칠요의 시련에 대해 듣는다 해도 정작 당신들이 칠요를 넘겨주지 않으면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정보지요.”

“상관있소? 어차피 도전해봤자 깰 수도 없는 시련인데.”

쿠구구

잠시동안 서방 예수회측과 우리쪽 사이에 심상치 않은 공기가 감돌았다. 그리고 비비안이 잠시 후 말했다.

“그 전에 한 가지 말해주신다면 당신의 제안을 받아들이지요.”

“뭘 말하라는 거요?”

“당신의 목적은 무엇인가요? 대웅제국의 설립 때부터 당신의 행보는 수수께끼 그 자체였으며 그 의도도 알 수가 없었습니다. 목숨을 걸고 해신을 물리친 대영웅의 위업을 인정하지만 정녕 당신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려주십시오.”

“…….”

“부탁드립니다. 우리에겐 더 이상 여유가 없습니다.”

비비안은 진정성을 담은 눈으로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힐끔 제갈량과 사공린을 한 번씩 쳐다보았고, 그들도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귀찮게시리 더 이상 서로의 속을 재는 것도 무의미하군. 그럴 만큼 적대적인 상대도 아니야. 그냥 여기서는 흑요석을 쓰자.’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내 목적은 진공가향(眞空家鄕)이오.”

“진공가향이라면…?”

“이거나 받으시오. 암기(暗氣)가 있으니 조심하고.”

나는 비비안에게 내 기억을 담은 흑요석을 던져주었다. 비비안이 받자마자 나는 바로 기억을 전송했다.

우우웅!

비비안은 내 기억을 받고는 크게 동요한 듯 한동안 멍한 표정으로 홀린 듯 허공만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더니 잠시 후 말했다.

“이럴… 수가….”

“이제 내가 당신들에게 했던 말의 의미를 알겠소?”

“…알겠습니다.”

비비안은 다소 체념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는 나직이 말을 이었다.

“조건없이 당신들에게 치우의 [팔]이 있는 장소를 알려드리겠습니다.”

벌떡!

그 순간 자리에서 두 명이 일어섰다. 한 명은 금빛 갑옷에 비단망토를 두른 젊은 청년 기사(騎士)였고, 또 한 명은 베루스였다. 금빛 갑옷의 청년기사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

“아무리 비비안 님의 결정이라 해도 승복할 수 없습니다. 어찌 세상의 종말이 걸린 일에 이토록 무력할 수 있단 말입니까?”

“내 의견도 같소. 우리가 백웅 황제의 세치 혀에 무릎 꿇는 건 치욕이오.”

그들이 강경한 입장을 보이자 비비안이 말했다.

“그만두세요. 지금 모든 걸 알게 되었습니다. 방해꾼은 우리이며, 도리어 백웅을 돕는 것만이 우리의 유일한 구원이라는 걸.”

“……!!”

그러나 황금빛 갑옷의 청년기사가 철그렁 거리는 소리와 함께 앞으로 걸어 나왔고, 이윽고 내게 은광(銀光)을 내뿜는 대검(大劍)을 한 손으로 겨누며 말했다.

“승복할 수 없다. 우리 예수회가 인류를 구원하는 행보가 어찌 이런 장난 같은 말 몇 마디로 막힌단 말이냐!”

나는 대검의 끝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말했다.

“승복할 수 없다면 어쩌겠다는 거지?”

“그대가 황제라면 나 또한 일국의 제왕이었다. 격은 맞을 터, 결투를 신청한다!”

“결투라… 재밌겠군.”

나는 옆에 있던 베루스를 슥하고 쳐다보고는 말했다.

“그쪽도 그쪽 나름대로 불만이 많아 보이는데 함께 덤비는 게 어떤가?”

베루스는 팔짱을 낀 채 서 있다가 말했다.

“…그만두지. 나는 비비안 님의 의견을 존중하겠다.”

“그래? 그러면 나는 이 금발 녀석만 해치우면 되는 거군.”

스윽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는 말했다.

“나는 백웅이다. 네 이름은?”

쿠우우우!!

금갑의 청년기사가 전신에서 강력한 영기(靈氣)를 일으키며 양손으로 대검을 잡고 자세를 취했다.

“나는 조디악 멤버의 1인, 원탁의 왕 아서 펜드레건(Arthur Pendragon)! 이 자리에서 엑스칼리버의 힘으로 네게 결투를 청하노라!”

아서 펜드레건?

어디서 들어본 이름인데….

‘확실히 강한 놈인 것 같군.’

놈이 뿜어내는 기세만 하더라도 중원의 초절정고수를 상회하는 것으로 보였다. 순수한 무술 역량은 어떨지 몰라도 저 자가 장비하고 있는 금색 갑옷과 은광의 대검이 지니고 있는 힘이 상승효과를 불어넣어 강대한 힘의 근원이 되고 있었다. 과연 서방 최대의 비밀결사의 간부답다고 할 수 있었지만 나는 부드럽게 검을 뽑으며 아무런 긴장도 없이 말했다.

“선공해라.”

“명령하지 마라!!”

츠아악 -

그 순간 그의 엑스칼리버가 은빛을 내뿜으며 나를 공격해 왔다. 그리고 그 공격이 순수한 속도가 아닌 참격(斬擊)이라는 걸 깨달은 나는 순간적으로 삼보절기 외에는 회피방법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촤악!

옥황의의 끝단 소매자락이 찢겨 있었다. 나는 소매자락을 힐끔 보고는 중얼거렸다.

“차원을 베는 검이군.”

의념으로 저 놈의 엑스칼리버란 검이 물질계를 뛰어넘어 다른 차원까지 이동했다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차원 째로 적을 베는 걸 느낄 수가 있었다. 아마 이런 무기와 상대해본 경험이 없는 자라면 예기치 못한 기습을 당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나는 차원을 조작하는 공격에 대해서 상대해본 경험이 많았기에 일단 가볍게 피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엑스칼리버는 세계 최강의 검! 무기 또한 무인의 실력이니 비겁하다고 욕하지 마라.”

확실히 대단한 검이긴 하다. 공격력에 한정한다면 칠요에 버금가거나 그 이상이 아닐까? 하지만 나는 도리어 이죽거렸다.

“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까 무기 때문에 비겁하다고 욕했던 놈들이 많았던 모양이군?”

“…….”

아서 왕은 찔렸는지 움찔했다.

“걱정 마라.”

나는 훗하고 웃으며 뇌신류의 자세를 잡았다.

“그런 거라도 들지 않으면 너와 나의 실력차는 절대 메울 수 없을 테니까.”

“건방진 놈!”

쐐액

다시 한 번 아서왕이 중단세로 나를 베어왔으나 나는 그 순간 의념을 집중해서 아서왕의 차원참(次元斬)이 날아오는 방향과 위치를 감지했다. 그리고 정확히 엑스칼리버의 무게중심에 맞춰서 검날을 갖다대어 화경(化經)으로 힘을 흘려내고, 삼보절기를 이용해서 일 보(一步)로 접근하고 이 보로 역습을 가했다.

카앙!

아서 왕은 본무기를 비스듬히 들어서 내 역습에 패링(Parrying)이라고 하는 튕기기로 맞서는 듯 했다. 그 와중에도 괜히 아서의 무예에 약점이 보여서 잡생각이 들었다.

‘흥. 여기선 차라리 상단으로 일자막기가 좋았을 텐데.’

나는 아라사에서 싸웠을 때의 경험으로 서방기사들의 무예도 잘 알고 있었으므로 삼 보(三步)에서 몸을 빙글 돌리면서 패링의 사각지대로 뒤돌려 올려차기를 날렸다. 약점이 뻔히 보여서 때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쿠쾅!!

“크아악.”

아서 왕의 얼굴이 발차기에 맞고는 그대로 공중으로 튕겨서 날아갔다. 내 전 공력을 담은 발차기였기에 원래라면 흔적도 없이 머리가 터져야 정상이었으나 그는 턱뼈가 부숴지고 얼굴이 피칠갑이 된 것으로 끝난 듯, 잠시 후 땅에 떨어져서 데굴데굴 구르더니 의식을 잃었다.

털썩

아서왕의 손이 바닥에 떨어지자 나는 검을 검집에 집어넣으며 말했다.

“베루스와 함께 덤볐으면 어찌 됐을지 몰랐는데 아쉽게 됐군?”

“조롱하지 마시오.”

관전하던 베루스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말했다.

“그대도 신의 힘을 갖고 있으나 무술만으로 싸운 걸 알고 있소. 그렇다 해도 체술만으로 아서를 순식간에 쓰러뜨릴 수 있다니…. 정녕 무서운 자로구려.”

“흠. 내 실력을 파악했다고 말할 생각인가?”

“적어도 자신의 말에 책임질 수 있는 자라고 생각한 것 뿐.”

베루스는 그 말을 끝으로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저 녀석은 역시 보통이 아니군.’

아서와 베루스가 함께 덤볐다면 단숨에 생사부를 소환해서 다 죽여버릴 생각이었는데 왠지 저 놈은 그런 낌새까지 알아챈 듯 했다. 진정한 강자이기 때문에 상대의 잠재력을 알아본다는 것일까? 베루스가 사실상 서방 예수회의 모든 무력을 책임지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위잉!

일련의 결투가 끝나자 비비안이 내게 지도를 소환해서 건네주었다. 비비안이 말했다.

“그 지도는 환계(幻界) 불사계(athanaton mundi)의 지도입니다. 지도 중앙에 표시된 유적에 치우의 팔이 있습니다.”

나는 비비안의 말에 흠칫 놀랐다.

“뭐? 환계라고? 치우의 몸은 인간계에 있는 게 아니었소?”

“[겹친] 세계입니다. 고대에 우연히 수호자께서 그 봉인지를 발견하시고 일부러 환계를 겹쳐씌워서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게 봉인하고 계셨습니다.”

“…….”

저 말대로라면 고대부터 치우의 팔은 서방 예수회에서 보관하고 있었다는 뜻이 되는 건가? 나는 지도를 유심히 보다가 뭔가를 깨닫고는 말했다.

“장소가 두 개로군. 이건 무슨 뜻이오.”

“치우의 좌완(左腕)과 우완(右腕)은 처음부터 따로 봉인되어 있었습니다. 쌍둥이 신전에서 말이지요.”

비비안의 말이 이어졌다.

“저희도 자세한 건 알지 못하지만, 하나의 신전에 들어가면 다른 하나의 신전은 사라져 버립니다. 그러므로 파해법이 따로 필요합니다.”

“사라져 버린다고?”

“네. 하나하나의 봉인에 걸린 결계가 그렇게 강한 건 아니지만 하나에 진입하면 다른 하나가 사라지는 현상이었습니다. 수호자님께서 걸어놓은 게 아니라 태초부터 그렇게 되어 있었지요.”

“…삼황오제 제곡의 짓인가.”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 말대로라면 두 개의 봉인신전에 동시에 진입해야 하는 걸까?’

자세한 파해법은 직접 가서 알아봐야 할 듯 하다. 나는 지도를 받아서 품속에 넣으며 말했다.

“아무튼 고맙소. 앞으로도 그대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으면 하는군.”

“물어볼 게 있습니다.”

“무엇을?”

비비안은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의 기억을 받고서 저는 감당할 수 없는 절망에 휩싸였습니다…. 칠요의 시련조차 답이 아니고, 당신도 이 세상의 인류가 진심으로 존속해야만 한다고 여기진 않습니다. 우리는 이제 희망이라는 이름의 꿈조차도 꿀 수 없는 처지가 되어버렸습니다….”

“…….”

“백웅이여. 정녕 인간의 존속을 위해 황제 공손헌원과 타협할 생각은 없으신지요?”

비비안의 목소리에는 간절함이 깃들어 있었다. 그녀는 공손헌원이 또 다시 그걸 미끼로 나를 유혹할 수도 있다고 여기는 듯 했다. 나는 한동안 침묵하다가 말했다.

“타협이란 건 결국 상대의 의도대로 내 것을 내어주는 행위요. 그것도 자기보다 강한 상대와의 타협은 늘 코에 꿴 것처럼 끌려 다니기 마련이지.”

나는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다.

“나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소. 다가오는 종말까지… 힘을 키워서 그 놈이 나와 타협을 하도록 만들겠소!”

나는 포기한 게 아니다.

인류가 멸망해도 좋으니까 멸망하라고 내버려두는 게 아니다.

그 때까지 최대한 힘과 단서를 모은다면, 도리어 황제 쪽에서 내게 무릎을 넙죽 꿇을 수도 있는 것! 나는 그 때 황제의 예상을 한 번 더 깨면서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낼 생각이었다.

그러자 비비안이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옆에 있던 베루스에게 말했다.

“베루스. 백웅 님을 따라가세요.”

“비비안 님.”

“수호자의 대리인으로써 명령합니다.”

“…알겠습니다.”

베루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의외라서 비비안을 바라보았다.

“베루스는 그대들의 최강 전력. 멀린의 의식을 수호해야하지 않소?”

“모든 걸 알았으니 무의미합니다. 차라리 그를 데리고 가서 당신의 힘으로 써 주십시오. 그것이 우리가 보여드릴 수 있는 성의입니다.”

“좋소.”

나는 교섭이 원만히 끝났음을 알 수 있었다.

치우의 [팔]이 있는 단서를 찾았을 뿐만 아니라 서방예수회의 베루스를 부하로 얻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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