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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1171화 (1,168/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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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파앗

치우의 유적을 다같이 나온 후 나는 동료들에게 내가 방금 전 겪었던 일을 상세히 이야기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인가?

그 존재는 대체 무엇이고 왜 나만 그걸 감지한 거지?

제갈량이 눈을 감고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 존재가 백웅 너에게만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낼 의사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 종류의 술법이나 권능을 썼다고 여길 수 있겠지.”

“대체 뭐하는 놈이지?”

“…….”

제갈량은 말을 아끼는 모습이었다. 그러더니 말했다.

“…지금은 할 수 있는 일을 해라. 이 일에 너무 생각을 사로잡히지 마라.”

“직감이 왔어. 지금 누군가의 계략대로 움직이고 있다는 직감이! 어떻게 생각을 안 할 수가 있냐고.”

“계속 생각한다 해서 해결책이 생기는 일인가? 그리고 그 존재가 일부러 자기의 존재를 노출시킨 거라면 그 자체가 계략일 수도 있는 것이다. 네 심리를 이용해 조종하려는 의도일 수 있지.”

“윽….”

“아무리 뛰어난 책사나 영웅이라도 적의 계책에 걸릴 때가 있다. 중요한 건 상대의 계책에 휘말려도 자신의 주관을 잃지 않고 냉정하게 필요한 수만 두는 것이지.”

그렇게 말한 제갈량이 힐끔 서문혜를 보며 말했다.

“당장 전투를 해야할 일이 없다면 그대가 이 봉인지에 주둔하여 봉인을 감시하는 게 어떨까 싶군. 그대 말고는 할 사람이 없어.”

“그리 하겠습니다.”

나는 서문혜에게 미안해져서 말했다.

“…잘 부탁하오.”

“괜찮습니다. 그보다 아버님을 잘 부탁드립니다.”

“알았소.”

파앗

우리는 대웅제국 황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제갈량이 대뜸 대기하고 있던 다른 동료들 중에서 한 명을 백우선으로 지목하며 말했다.

“거기 나오시게.”

머리 가운데에 은색 꽁지머리처럼 염색을 해놓은 20대 청년이 대꾸했다.

“저 말입니까?”

“그렇네. 정도령(鄭道令).”

저벅

단(檀)의 일족이자 십이율의 삼족오(三足烏) 클랜의 부길마인 율천(律天) 정도령. 천계 공략에도 함께 참여했다가 탑의 시련이 마무리되자 우리와 함께 지상으로 내려온 자였다. 탑의 시련에서 눈에 띄는 활약은 하지 않았으나 어쨌든 끝까지 같이 했으니 동료라고 할 수 있었다.

정도령을 불러낸 제갈량이 서늘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일이 화급하여 제대로 캐어묻지 못했으나 이제 그대는 십이율과 단의 일족에 대해 아는 걸 이 자리에서 모두 말해야 하네. 여동빈에게도 묻고 싶었으나 그는 천계의 시련이 끝나자마자 실종되었으니 도리가 없지.”

“…….”

“일종의 심문이지만, 스스로 응하겠다고 했으니 불만은 없겠지?”

정도령이 빙긋 웃었다.

“물론이지요. 아는 것을 모두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십이율주는 어디서 뭘 하고 있지?”

정도령은 간단히 대답했다.

“신단수에 들어가서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어째서지?”

“글쎄요….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신단수의 핵을 이용해서 뭔가 할 생각인 듯 싶더군요. 그걸 위해서 단의 일족조차 신단수 내부에는 출입시키지 않고 있습니다. 여동빈과 대련할 때만 아주 가끔씩 나왔습니다.”

“단의 일족씩이나 되면서 십이율주의 계획을 모른다고 주장할 셈인가? 숨기는 걸로 느껴지는군.”

정도령이 어깨를 으쓱했다.

“모르는 건 모르는 겁니다. 애초에 나는 계룡산 클랜을 이끌면서 십이율과 싸우다가 십이율주에게 패배해서 그의 밑에 들어갔던지라.”

“그렇다고 치지. 다만 이번 질문은 최대한 아는대로 정확히 대답해야 할 걸세.”

제갈량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단의 일족이란 무엇이지?”

“…….”

정도령은 잠시 생각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대답했다.

“제 기준으로 말하자면 환생(還生)을 해서 다른 몸으로 태어나는 겁니다. 다만 모든 단의 일족이 그렇진 않고 특수한 경우가 있지요.”

“……!!”

환생!!

‘다른 몸으로 태어난다고?’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환생자는 극히 드물다고 알려져 있었는데 설마 인위적으로 인간을 환생시킬 수 있다는 말인가?! 뜻밖의 말에 좌중에서 놀라는 기색이 느껴졌다. 제갈량은 어느 정도 짐작했다는 듯 차분히 말했다.

“일전에 그대의 나이가 33세라고 했었지. 자연사로 죽기엔 너무 젊은 나이이며 보아하니 무공의 고수이기에 노쇠로 인한 환생은 있을 수 없는 법. 신체의 상태에는 상관없이 환생하여 다른 몸으로 태어날 수 있다는 말인가?”

제갈량의 말대로다. 저 정도령이라는 자는 초상능력자로 알려져 있었지만 천계 탑의 시련에서 항우와 싸우는 걸 잠시 봤던 걸로는 뛰어난 무공실력 또한 지니고 있었고 내공 또한 출중했다. 내가 볼 때도 내공이 출중할 정도라면 인간수준에서는 최상급이라 할 수 있으리라.

정도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단의 일족이 되어 이 몸을 얻게 된 건 지금부터 4년 전의 일입니다. 단의 일족이 되기 전이나 지금이나 육체적 나이는 별 차이가 없지요.”

“그렇다면 단의 일족의 환생은 생식행위나 인간여성의 자궁을 빌려서 하는 게 아니란 소리겠군. 그런 방식으로 4년 만에 그 육체로 성장하는 건 불가능한 일일 테니까. 어떤 식으로 환생하는 건지 말하게.”

“후후…. 다 알고 질문하시는 겁니까? 다 꿰고 있으시니 말하기가 두려울 정도군요.”

제갈량의 말에 정도령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 말대로입니다. 단의 일족이 되려는 자는 제단(祭檀)으로 올라가서 의식을 치르게 되는데, 그 때 낡은 육체가 바쳐지고 새로운 육체를 얻게 됩니다.”

“제단이라고?”

“저는 마니산(摩尼山)의 참성단(塹星壇)에서 했습니다.”

나는 옆에서 듣고 있다가 눈썹을 꿈틀거리며 말에 끼어들었다.

“거긴 월요의 봉인지일텐데…. 거기가 단의 일족이 되는 장소였단 말인가?”

정도령은 말에 끼어든 나를 힐끔 보면서 말했다.

“월요의 봉인지라는 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만, 단의 일족이 되는 의식은 굳이 참성단에서만 해야하는 건 아닙니다.”

“다른 곳에서 해도 된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단군(檀君)이 제사를 지내던 유적이기만 하면 되니 한반도 곳곳에서 치를 수 있지요.”

“……?”

단군?

나는 어리둥절해서 말했다.

“…잘 몰라서 묻는 건데 그 단군이란 게 구체적으로 무엇이오? 십이율주가 현재 단군이며 한민족의 수장이라는 건 알고 있는데 그 직책이 혹여 다른 의미가 있는 것인가?”

정말 모르겠다. 고려에 오래 있어보았으나 고려의 무문이나 술문들도 단군의 정체를 정확히 아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단지 십이율주가 내세우는 한반도 왕의 직책이겠거니 했는데 단순히 그런게 아니라 좀 더 깊은 의미가 있는 듯 했다.

적어도 십이율에 있어서 단군이란 의미가 다르다는 게 느껴진다. 이건 좀 캐어봐야 할 필요가 느껴졌다.

“음…. 혹시 단군신화(檀君神話)를 아십니까?”

“들어는 봤소. 단군이라는 신적 존재가 삼사와 함께 태백산 신단수에 내려왔다는 신화 아니오. 그게 단군이라는 군왕의 탄생설화같은게 아니었소?”

“…으음. 단군이 위대한 이유는 환인(桓因)의 후계자이기 때문입니다.”

“환인?”

환인이라…. 어디서 들어본 단어인데 어디서 들었지? 잠깐 스쳐지나가서 바로 생각 안 나는 건가?

내 반문에 정도령이 대답했다.

“한민족에게 있어서 가장 위대한 신이면서 동시에 만신(萬神)의 근원이 되는 어버이를 뜻합니다. 모든 신이 환인에게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십이율 단의 일족 모두가 믿고 있지요. 그렇기에 환인의 후계자인 단군이라는 존재는 한반도 모든 왕조를 불문하고 정신적 지도자로 군림해 왔으며 모든 지킴이들이 단군을 섬겼습니다.”

“…….”

정도령은 왠지 썩은 듯한 미소를 비직 짓는 듯 했다.

“…본디 단군은 환웅이어야 할텐데 좀 이상하긴 하지요.”

나는 황당해서 정도령에게 말했다.

“모든 신의 어버이라고? 그런 말도 안 되는…. 환인이 그런 존재라면 내가 들어보지 못했을 리가 없소!”

“사실 인격신으로 취급하진 않습니다. 우주의 섭리라고 보지요. 그리고 우리가 환인과 단군의 존재를 진정으로 믿는 이유는 바로 삼사(三師) 때문입니다.”

“……?”

“삼사는 본디 이 세상의 존재가 아닌데 일부러 이 세상에 내려와서 단군을 보좌하고 있으며, 그들이 단군에게 충성하는 한 정통성이 입증됩니다.”

“흐음.”

알 것 같으면서 모르겠다. 겨우 그게 단군이라는 존재에게 왕조를 불문하고 모든 한반도인이 그 존재를 경애할 이유가 된다는 말인가? 내가 곤혹스러워 할 때 듣고 있던 제갈량이 말했다.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샜군. 아무튼 단의 일족이 되려고 제사를 지낼 때 의식을 주도하는 건 십이율주인건가?”

“그렇습니다. 십이율주만이 단의 일족이 되는 의식을 시행할 수 있습니다.”

“단의 일족이 되어 환생하면 어떤 이득이 있지? 그대는 본래도 꽤 강한 인간이었을 것 같은데 굳이 원래 육신을 버린 데는 그만한 이득이 있기 때문이었겠지.”

“굉장히 큰 이득이 있지요.”

정도령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첫 번째로 불로불사(不老不死)가 됩니다. 절대 자연사하지 않으며 나이를 먹지도 않고 모든 부상이 엄청나게 빨리 낫고 재생됩니다. 내공없는 기본 신체능력또한 초인적으로 향상됩니다. 그리고 죽는다 하더라도 조건부로 부활할 수도 있지요.”

“…부활?”

뜻밖의 말을 들은 듯 제갈량의 검미가 꿈틀거렸다. 정도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부활한 자를 본 적은 없지만 십이율주가 몇 번인가 부활시킨 적이 있다고 합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하지? 그 자만의 권능인가?”

“그건 모르겠습니다. 여하튼 그게 첫 번째 이득이고, 두 번째 이득은 바로 내공과 혈맥입니다. 단의 일족이 되면 희귀혈맥과 봉인술법을 인위적으로 취득할 수 있으며 내공을 축적하는 속도도 상식을 초월할 정도로 빨라지지요. 저는 단의 일족으로 환생한지 1년만에 이전의 내공을 가볍게 뛰어넘었습니다.”

“……!!”

“세 번째 이득은 마(魔)와 초상능력에 대한 저항력을 얻게 됩니다. 웬만한 이족의 마법은 의식하지 않아도 무효화시킬 수 있고, 아예 그 쪽으로 특화한 능력을 가진 자도 있을 정도지요. 저주 또한 나누어서 효과를 감소시킬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제갈량이 질린 기색으로 말했다.

“또 있나?”

“네 번째 이득은 단의 일족끼리 경험의 공유입니다.”

“경험의 공유라는 건 흑요석처럼 서로 기억을 전송한다는 말인가.”

제갈량의 물음에 정도령이 고개를 선선히 저었다.

“이젠 저도 흑요석의 술법이 뭔지 알고 있으니 그건 아니라 말씀드릴 수 있겠군요. 흑요석의 술법보다 훨씬 낮은 수준이며 개념 또한 다릅니다.”

“설명해 보게.”

“흠…. 인터넷을 아십니까?”

“나도 알고 있네.”

“현대의 인터넷에는 저장을 위한 공간이 따로 존재하는데 그걸 클라우드 컴퓨팅(cloud computing)이라고 합니다. 딱 그거랑 비슷한 느낌이죠.”

제갈량은 내게서 받은 현대의 개념을 잠시 생각하는 듯 했다. 어쨌든 저것도 내가 사마령에게 배웠던 개념이기 때문일까? 제갈량은 즉시 이해한 듯 말했다.

“단의 일족이 어디선가 경험을 얻어서 공통저장공간에 업로드를 하면 다른 단의 일족이 그 경험과 술수를 가져갈 수 있다는 소리군.”

“그렇습니다. 하지만 흑요석의 술법만큼 편리하지 않고 기억전송이라기 보다는 객관적 지식의 편취에 가깝습니다. 누군가가 이미 공부하여 자세히 설명되어 있는 책이나 참고서를 받는 느낌이죠. 아주 기초적인 단계의 기억전송…. 아니 요령전송에 가깝군요.”

“그것만으로도 고대시대에는 굉장히 큰 이득이었겠지. 문명이 덜 발달하여 시공간의 제약이 있는 상황에서 타인과 경험과 지식을 공유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수준이 급격히 진보했을 것이다. 특히 무술인이나 술법사라면.”

“잘 이해하셨군요.”

제갈량이 잠시 침묵하다가 침음성을 흘렸다.

“굉장한 특권이로군…. 과연 달마의 제자가 혹할 만 해.”

“더 궁금한 건 없으십니까?”

“너희 단의 일족이 십이율주에게 배신하지 않는 이유는 단지 충성 때문인가? 너희를 제어하는 다른 장치가 있는지 이야기해라.”

“제어하는 다른 장치가 있다기 보다는 굳이 단의 일족을 나갈 필요가 없다는 쪽이 맞겠죠. 지금껏 단의 일족보다 더 강력한 문파이자 국가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으니 불로불사를 누리며 무한히 강해지는 재미로 살아오지 않았겠습니까. 또한 십이율주가 단의 일족에게 인위적인 제약을 가하는 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렇겠군.”

제갈량은 뭔가를 알아차린 듯 말했다.

“십이율의 만하령문(萬河靈門)이란 건 바로 단의 일족 그 자체를 뜻하는 거였겠군. 단의 일족으로 환생한 자들이 모여서 십이율주 하은천을 문주로 추종하는 문파였던 것인가.”

“…그런 셈이지요.”

순식간에 십이율과 단의 일족에 대해 많은 것을 알아낸 듯 했다. 제갈량의 심문은 굉장히 효과적이었기에 나는 나도 모르게 그들의 대화를 경청하고 있었고, 제갈량이 이윽고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백웅. 전륜성왕의 삼안(三眼)을 띄워서 정도령을 볼 수 있겠나?”

“음…. 삼안? 기다려 봐.”

나는 정신을 집중해서 명계에 있었을 때처럼 전륜성왕의 삼안을 띄우려고 노력해 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집중을 해도 삼안은 나타날 기색이 없었고, 나는 끙끙대다가 포기해 버렸다.

“안 돼….”

“…전륜성왕의 힘이 완전 고갈된건 사실인가 보군. 회복하려면 시간이 상당히 많이 걸리는가.”

“삼안은 뭣 때문에 꺼내보라고 한 거야?”

“확인해볼 게 있었다.”

제갈량이 눈 앞의 정도령을 지그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삼안이라면 저 자에게 망각의 인(印)이 박혀있는지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지.”

“……!!”

망각의 인!

나는 문득 과거 항우가 내 몸에 강림했었던 일을 떠올렸다.

[모든 정명자는 윤회의 고리에서 망각하게끔 각인이 영혼에 새겨져 있다. 다만 아주 가끔 그 각인이 사라져 버리거나 애초에 없는 놈이 있다. 그런 놈은 기억을 지닌 채 환생을 하게 되는 것이다.]

망각의 인이 지워진 자는 저승에 가지 않고 환생을 하게 된다. 십이율주는 과거에 삼사가 환생하고 있으며 일부러 신령의 힘으로 망각의 인을 지우고 있다는 언급을 하기도 했었다. 나는 망각의 인과 환생에 대해 기억을 떠올리다가 제갈량의 말 뜻을 알아채곤 말했다.

“십이율주는 망각의 인을 지우는 능력을 갖고있다는 말인가?!”

“틀림없지. 그렇지 않다면 단의 일족이 환생이라는 식으로 다시 태어날 순 없다. 그래서 직접 확인해보려 했지만 뭐 지금 삼안을 뜰 수 없다면 어쩔 수 없지.”

“……!!”

“하지만 이해가 가지 않는 건 바로 저 육체의 근원이다. 여성의 몸을 빌려 태어난 게 아니라 처음부터 완성된 몸을 받았다는 게 정녕 이상하군. 그것도 말도 안되는 여러가지 초인적 특권을 받은 몸을…. 이론적으로 단의 일족이 천 년 이상 살게 된다면 충분히 호법사자를 뛰어넘을 수 있어.”

제갈량은 팔짱을 낀 채 생각하다가 정도령에게 말했다.

“정도령. 네 목적은 뭐지? 단순히 흥미본위로 십이율주를 배신해서 우리에게 모든 정보를 준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

정도령이 잠시 표정이 굳더니 말했다.

“복수입니다.”

“복수?”

“예언에 따라 내가 본디 차지해야 할 십승지(十勝地)를 먼저 가져간 것도 모자라 날 패배시키고 계룡산 클랜을 와해시킨 십이율주가 싫습니다. 한번쯤 따끔한 맛을 보여주고 싶군요.”

뭔가 정도령도 사연이 있는 인물로 보였다.

“명분은 그런가.”

제갈량은 왠지 서늘한 눈으로 정도령을 보더니 말했다.

“생각을 잘 하는 게 좋을 걸세. 자네의 사소한 야망이 백웅에게 있어서는 한낱 시시한 농담밖에 되지 않을 테니까….”

“…겁주는 겁니까?”

“농담이라 생각하면 그것도 좋겠지. 현명하지 못하기에 백웅을 적대하는 게 아니겠나.”

“…….”

정도령이 입을 다물자 제갈량이 내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정도령에게서는 내가 좀 더 정보를 캐어보겠다. 너는 다른 일을 해라.”

“뭘 하면 되지?”

“지금 해야할 일은 크게 두 가지라고 할 수 있다. 종말이 다가오기 전까지 치우의 신체부위가 봉인된 장소를 찾거나, 아니면 대결계에 대한 정보를 찾아내야 한다. 다만 어느 쪽이든 네가 직접 나설일은 아니고 부하에게 시키는 작업이 필요하지. 당분간은 궁궐에서 쉬던가 천계에 가서 장삼봉에게 수련이나 받아라.”

그 말대로다. 이제부터는 대웅제국의 정보력에 의존해야 할 때인지라 내가 직접 돌아다니는 건 너무 효율이 떨어질 것이다. 게다가 거신족의 도서관으로 향하는 문 또한 열어주기만 하면 인간들끼리 출입가능하므로 내가 더 할 일은 없다.

“그래도 내가 직접 나서는 게 좀 더 빠를 거 같은데….”

제갈량이 무표정하게 나를 바라보았다.

“…정 그렇다면야 가 볼 곳을 추천해 주지. 지남거(指南車)를 찾아라.”

“지남거?”

“황제가 치우와 싸울 때 사용했던 그 신물(神物)은 탁록대전이 끝날 때 행방이 묘연해졌는데, 도인들은 지남거가 정확한 남쪽으로 가서 사라졌다는 전승을 듣곤 했다.”

이어진 제갈량의 말에 나는 어디로 가야할 지를 알 수 있었다.

“지남거는 치우의 신체를 봉인하기 위한 장소를 찾는 지침으로 쓰였을 가능성이 있어. 황제가 남긴 신물이라면 그럴 확률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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