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1170화 (1,167/1,615)

1170====================

사신지혼(四神之魂)

요동에 존재하는 [신의 무덤]!!

나는 옆에 있던 천우진에게 물었다.

“그게 치우의 심장이라는 건 구천현녀가 확인을 해 주었지. 그런데 봉인을 풀면 힘이 넘쳐나서 세상이 망하는 현상은 어떻게 할 수 없을까?”

그 누구보다도 오랫동안 [신의 무덤]을 관리하고 있었던 게 천우진이었기에 그의 의견이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자 천우진은 굉장히 신중한 안색이 되었다.

“…심장이라는 게 문제라고 생각한다.”

“무슨 뜻이지?”

“오제는 서로 나누어서 치우의 신체부위를 봉인했다. 그 중에서 북방의 전욱이 봉인한 게 바로 치우의 심장. 그러나 심장은 가장 강렬한 생(生)의 기운을 품고 있는 부위이며 강대한 힘의 원천이다. 모든 부위 중에서 가장 강력하다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천우진이 말을 이었다.

“그러므로 심장부터 깨울 경우 힘의 폭주는 피할 수 없다. 하지만 다른 신체부위를 먼저 봉인해제한다면 방법이 생길 수 있지.”

“방법? 어떻게?”

우웅

천우진이 허공에 실처럼 생긴 빛의 기운을 띄워 인체를 그렸다. 사람의 모습에 각각 동그라미가 쳐지더니 두상, 손, 발, 심장을 각각 표시했다. 알기 쉽게 신체봉인을 그려놓은 것이다.

“전욱이 심장, 즉 몸통이나 다름없는 부위를 맡았다면 나머지 3명이 남은 신체부위를 담당한다. 아마도 한 명이 양수(兩手), 한 명이 양족(兩足), 나머지 한 명이 두상(頭上)을 맡고 있겠지. 그렇게 해야 제의의 법칙에 어긋나지 않으니까. 여기까지는 이해가 되었나?”

“음.”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천우진이 말을 이었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두상의 봉인을 푸는 것이다. 두상은 확실하게 심장의 힘을 제어할 수 있으니까.”

“어째서?”

“심장에서 생성한 피와 산소는 뇌에 공급된다. 두상의 봉인을 풀어서 얻은 치우의 신체(神體)를 심장의 봉인에 갖다 대면 아마 확실하게 힘의 폭주를 흡수할 수 있겠지.”

“오호!”

치우의 몸 또한 인체의 법칙에 따른다는 말인가!

‘뇌는 심장의 힘을 흡수한다…. 치우의 머리를 얻는 게 제일 중요하단 말이군!’

이해가 잘 되었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질문했다.

“그럼 양수나 양족의 봉인은?”

“양수의 경우 손으로 심장을 움켜잡을 수 있으니 어느 정도 제어효과는 있겠으나 두상만큼은 아니다. 그리고 양족은 제일 효과가 떨어지겠지.”

“으음…. 뭐야. 다리나 발은 제일 쓸데가 없단 건가?”

“너무 단순하게 생각하지 마라…. 순전히 심장의 봉인을 푸는 중요도 순이다. 치우의 봉인이라면 양족 또한 우리가 상상치 못할 특수한 권능이 깃들어 있겠지.”

“아, 이해했어. 그러면 두상의 봉인은 어디 있지?”

천우진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걸 알아내기 위해 내가 지난 세월동안 봉인을 관리하며 무수한 책을 읽고 대웅제국과도 협력했으나 결국 알아내지 못했다.”

“…….”

“그건 이제부터 알아내야 하는 거지.”

그런 건가….

단번에 문제가 해결된 것 같지는 않았지만 나는 제갈량에게 말했다.

“제갈량. 이 말대로라면 지금 봉인을 풀어봤자 할 것도 없는데 요동에 있는 치우의 심장에 갈 필요는 없는 게 아닌가?”

그러자 제갈량은 선선히 고개를 저었다.

“내가 그걸 몰라서 말한 게 아니다. 천우진의 이야기대로라면 이미 치우의 심장 근처는 이계화된 지 오래 됐지.”

“아.”

“정확한 실정은 한 번쯤 살펴볼 필요가 있다. 어쩌면 우리가 봉인을 풀지 않더라도 그 봉인 자체가 말세에 다가올 하나의 재액이 되어버릴 수도 있다. 또한 거기서 다른 치우의 신체부위를 찾을 단서를 얻을 수도 있고.”

“그렇군. 그럼 당장 가 보자!”

파앗

나는 일행과 함께 과거 [신의 무덤]이던 장소로 갔다. 그리고 도착했을 때, 거대한 암운(暗雲)이 둘러싸고 있는 암흑의 장벽이 시야를 가득 채우는 걸 볼 수 있었다. 나는 그걸 보고는 중얼거렸다.

“암흑의 구체로 둘러싸인 것 같군…. 얼마나 넓은 거지?”

내 의문에 대답한 것은 같이 따라온 사공린이었다.

“작년에 마지막으로 대웅제국 토지조사관이 보고한 바로는 2620.5 헥타르에 이릅니다.”

“그게 얼마나 넓은 거야?”

“몇 개의 산과 거기에 속한 대지를 합친 것만큼 넓다고 보면 될 거예요. 물론 대웅제국의 영토 중에서 이 정도는 별로 넓은 것도 아닙니다만….”

사공린이 암흑의 장막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처음에는 집 한 채 정도 크기였던 봉인지의 범위가 수백 년에 걸쳐 계속 넓어져 온 결과가 이겁니다. 매년 넓어졌죠. 그나마도 천우진과 서문혜가 없었다면 이 봉인지는 말세에 지금보다 수십 배 이상 넓어졌을지도.”

“음…. 인명피해는 없었나?”

“급속하게 범위가 불어난 적도 있었지만 다행히 우리가 이 봉인지를 인지하고 있었기에 이 일대를 출입금지구역으로 지정해서 피해는 없었습니다.”

“진입할 수는 없나?”

“서문혜가 직접 여기를 봉인할 때는 단시간이라면 가능했었습니다만…. 심상치 않은 기운이 맴돌고 있어서 오래 탐사하지 못했습니다. 내부는 그저 암흑의 안개가 가득하고, 중앙으로 가려고 해도 갈 수 없게끔 기이한 힘이 결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과연 그렇군. 상황설명을 들은 내가 곰곰이 생각하고 있을 때 제갈량이 입을 열었다.

“내 생각에는 한 번 더 들어가서 탐사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과거에 검마가 탐사했을 때의 기억으로는 유적 내부에 진입해서 나선형 층계참을 따라 내려가서 거대한 다섯 개의 암창이 심장을 찌르고 있었지. 그 암창은 아마 틀림없이 전욱의 것이리라 생각한다.”

제갈량이 말을 이었다.

“다른 봉인을 찾아서 심장부위의 봉인을 안정적으로 해제하는 걸 도모하는 것도 좋지만, 지금은 전욱의 힘으로 봉인이 잘 고정되어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만일에 다섯 개의 암창이 제대로 고정되어 있지 않다면 재고정시키는 작업도 해야만 하겠지.”

“심장이 갑작스럽게 폭주할 수 있기 때문인가?”

“그렇다. 그리고 또 하나, 확인해야 할 게 있기도 하다.”

“확인해야 할 것?”

“지금까지의 모든 상황에는 굉장한 모순이 존재하지. 어쩌면 이 유적의 탐사는 그 모순의 정체를 알려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이어진 제갈량의 설명을 듣자 탐사의 필요성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말했다.

“좋아. 내친 김에 당장 탐사를 하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게 인간계 최강 전력이니 시간 낭비할 필요가 없겠어.”

스으으으 -

제일 선두에 서문혜가 섰다. 서문혜는 천천히 어둠의 장막으로 손을 뻗었고, 그 순간 어둠의 장막이 마치 벌벌 떠는 것처럼 크게 진동했다. 그리고는 확 하고 엄청난 속도로 줄어들기 시작했다.

후와아악!!

갑자기 장막이 수십 장이나 후퇴하는 게 육안으로 보였다. 장막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계속 후진을 거듭했으며, 잠시 후 원래 크기의 절반까지 줄어드는 것처럼 보였다.

“……!!”

서문혜가 그저 손만 댔는데 장막이 저렇게 작아진다는 말인가? 놀라서 서문혜를 쳐다보자 그녀가 말했다.

“내면의 혈맥이 날뛰던 게 완전히 사라졌기 때문에 본래의 힘을 낼 수 있게 되었어요. 그리고 이 봉인은 제 힘의 근원과 동일하기 때문에 쉽게 약화시킬 수 있어요.”

“과연…!!”

슈아아악

서문혜는 두세 번이나 더 치우의 심장 봉인을 쪼그라들게 만들었다. 그렇게 한참을 전진하자 마침내 암흑의 구체는 지평선을 뒤덮던 수준에서 줄어들어 약 이십여 장 정도의 크기로 변해 있었다. 원래 크기가 가로세로로 십여 리를 훨씬 넘을 정도로 거대했었으니 굉장히 쪼그라든 셈이었다.

서문혜가 재차 봉인에 손을 댔으나 이제 더 이상은 쪼그라들지 않았다. 대신에 서문혜가 손을 댄 부위가 새빨갛게 달아오르는 것처럼 보였다. 서문혜는 봉인에서 손을 떼며 말했다.

“힘을 많이 억제시켰지만 여기서부터는 심장이 머금고 있는 근원적인 힘의 밀도가 너무 높아요. 더 이상은 힘들겠어요.”

“진입할 수 있을까?”

“제가 문을 열면 가능할 테지만…. 약한 자는 들어가면 보호해줄 수가 없어요. 숨을 세 번 쉬기 전에 죽게 될 겁니다. 뛰어난 강자만 들어갈 수 있어요.”

“강자라….”

나는 좌중의 일행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사공린이나 아수라, 천우진 정도면 당연히 괜찮으리라고 생각했는데 뜻밖에 제갈량이 곤란하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흠…. 내가 그냥 들어가면 소멸당하겠군.”

“뭐?! 제갈량 당신 대라신선급 술사잖….”

“대라신선급 능력으로 이 정도의 우주적 결계 앞에서 버텨낼 수 있겠나? 나는 객관적으로 봤을 때 이 일행 중에서 제일 약한 편에 속한다. 내가 알고 있는 모든 방어술수가 찢겨버리겠지.”

“…….”

제갈량의 술수능력도 굉장한 편인데 지금 일행의 전반적인 수준이 너무 높은 것일까? 한탄하던 제갈량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나는 꼭 들어가 봐야겠다. 그러니 백웅 네가 나를 보호해 줘야겠다.”

“응? 어떻게 보호하지.”

“옥황의를 이용해서 술수를 부릴 수 있게 되었으니 방어술수를 할 수 있는 만큼 내게 중첩해 다오.”

“그걸로 될까.”

“해 보면 알 거다. 네 능력이 얼마나 강해졌는지.”

나는 지선 망량의 술수 중에서 가장 강력한 방어술수를 기억을 뒤져서 찾아보았다. 그리고 적당한 술수를 찾아내었다.

“혼원지순(混元之盾)!”

카앙

그 순간 방패모양의 무형의 기운이 제갈량의 몸을 둘러싸는 게 보였다.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걸로 됐나?”

“…할 수 있는 만큼 하랬잖나. 계속 해라.”

“뭐? 그래도 되나?”

“아두같은 놈….”

제갈량이 한숨을 쉬자 나는 더 이상 따져묻지 않고 또 다시 술법을 전개했다.

“혼원지순!”

카앙

“……?!”

허억!

방금 전 혼원지순을 처음 사용했을 때보다 술력이 10배는 더 빠져나가는 느낌이다! 갑작스러운 큰 소모도 때문에 내가 놀라자 제갈량이 말했다.

“술법의 법칙이다. 방어술수든 공격술수든 중첩해서 시전할 경우 위력이 배가되는 대신에 소모도는 그 위력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급증하지. 그래서 아무리 뛰어난 술사라도 2중첩이나 3중첩 술법까지가 한계다. 위대한 천계의 투선이나 천선들은 4중첩 이상을 시전하거나 보패를 이용해서 중첩을 초월한 위용을 보이지만….”

제갈량이 훗하고 웃었다.

“네 녀석은 신이나 다름없는 음신지력을 계속해서 옥황의를 통해서 술법력으로 전환할 수 있는 상태…. 그 한계는 필멸자의 수준에선 상상하기 힘들다.”

“좋아! 계속 해보겠어!”

나는 손을 내뻗으며 음신지력을 술법력으로 전환시켰다. 그러자 방금 전 소모되었던 술력이 감쪽같이 회복되었고, 다시금 외쳤다.

“혼원지순!”

카앙

“혼원지순! 혼원지순! 혼원지순! 혼원지순! 혼원지순! 혼원지순! 혼원지순! 혼원지순! 혼원지순!”

쿠구구구….

이윽고 제갈량의 몸을 뒤덮은 방어의 기운은 유형화되어 눈에 보일 정도가 되었다. 그 정도가 되자 제갈량이 급히 손을 내저었다.

“그, 그만!! 그만해라. 이미 충분하다.”

“응? 더 안 해도 되나?”

제갈량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 그럴 리가. 한계가 안 느껴지나? 최상위 방어술 12중첩이라면 이젠 소모되는 술력이 대라신선 여러 명의 힘을 다 합쳐도 한번에 고갈될 정도, 아니 그보다 더할 터….”

나는 어리둥절해서 말했다.

“전혀….”

“…….”

“할 때까지 하라길래 계속 할려고 했지.”

제갈량은 물론이고 옆에 있던 천우진까지 질린 표정을 지었다. 제갈량이 뭔가 허탈한 듯 중얼거렸다.

“이게…. 바로 신과 인간의 격차인가. 이래서야 벌레취급해도 어쩔 수 없겠지. 정녕 상상할 수 없는 역량의 차이가 있구나.”

“이봐. 난 신이 아니라고.”

“멍청한 소리를. 네가 가진 그 힘 자체가 위대한 고대의 신격인데 그런 소리가 의미가 있는가.”

제갈량은 이윽고 쓴웃음을 머금고는 말했다.

“옥황의 자체가 위대한 보패이니 너 자신에게는 두세 번만 방어술을 걸어도 될 거다.”

“알았어.”

우웅

이윽고 내가 다른 동료들에게도 방어술을 걸어준 후 봉인 내부로 걸어들어갔다.

슈욱….

거대한 층계참이 드러났다. 나선형으로 이어지는 층계참을 따라서 우리는 말없이 밑으로 내려갔고, 사방에 드리워져 있는 암흑과 촉수들이 음침한 분위기 속에서 꿈틀거리는 게 위압적이었다.

츠칵

더러 몇 개의 촉수들이 우리의 기운에 반응했는지 공격을 해 왔지만, 내가 걸어둔 혼원지순의 술법에 그대로 튕겨나가 버렸다. 혼원지순은 지선의 술법이긴 하지만 사실상 천선들도 그 이상가는 방어술을 거의 알지 못할 정도로 뛰어난 방어술이기 때문이리라. 게다가 중첩까지 걸어두었으니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모든 공격을 막아주고 있었다.

촤악

아수라는 혼원지순을 별로 신경쓰지 않고 촉수보다 더 빨리 베어버리는 식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아수라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더러운 화장실 같은 느낌이군. 어찌 혼돈의 기운이 이리도 짙은가?”

“별일이군요, 아수라. 당신은 혼돈 그 자체인 마왕이지 않습니까?”

사공린이 말을 걸자 아수라가 코웃음을 쳤다.

“나 스스로의 이름을 걸고 모든 혼돈을 봉인한 채 수백 년을 살아온 내게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너보다는 더 인간에 가깝다, 황제의 애완동물아.”

“…….”

헉!!

나는 뜬금없이 아수라와 사공린 사이에 살벌한 기운이 맴돌자 놀라서 돌아보았다. 여기서 아수라가 사공린을 도발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러자 사공린이 웃으며 대꾸했다.

“불안해 보이는군요. 내가 배신할 게 그리도 걱정되나요?”

아수라는 아무런 표정 없이 독설을 내뱉었다.

“솔직히 말해 주지. 동료로써 네 역할은 백웅이 귀환할 때까지 대웅제국을 지키는 것까지였다. 이제 넌 역할을 다 했으니 죽어도 좋아.”

나는 크게 외쳤다.

“아수라!! 그만해!”

“…….”

아수라는 내 옆을 휙 지나쳐가며 말했다.

“백웅. 천마가 배신할 경우 나나 전뇌자는 저 녀석을 막을 수 없다. 지금 네가 얼마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지 이해했으면 좋겠다.”

나는 아수라가 빠르게 내려가자 급히 사공린에게 말했다.

“괜찮아? 저 녀석도 본의는 아닐 테니….”

“억지로 위로해줄 필요는 없어요, 백웅.”

“아니….”

“그의 말대로예요. 저는 천마. 황제에게 예속되어있는 존재일지도 모르죠.”

저벅

사공린도 천천히 층계참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제게 자유의지가 있다는 걸 믿어 주세요. 백웅.”

그리고 정적이 감돌았다. 나는 그들을 뒤따라서 층계참을 내려가며 복잡한 상념에 휩싸였다.

‘제길…. 아수라와 사공린을 만나게 한 건 실수였나.’

아무리 항우라는 시련을 넘기 위해서였지만 아무래도 만나선 안 될 자들이 만나버린 느낌이다. 어떻게 해야 이 깊은 골을 해결하고 동료들이 화합하게 할 수 있을까? 내가 끙끙대고 있자 옆에서 함께 걷던 제갈량이 말했다.

“백웅. 합쳐지지 않는 자들을 억지로 합치게 하는 건 화합이 아니다. 그건 폭정이며, 뛰어난 군주의 자질도 아니지.”

“제갈량.”

“네가 늘 인지해야 하는 것은 네가 왕이라는 사실뿐이다. 나는 네가 그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의리와 군주의 덕목을 헷갈려 버린다면 결국 나중에는….”

제갈량은 옛 생각을 하듯 잠시 눈을 감았다.

“…의리를 위해 천하의 대계를, 모든 걸 내던져버리는 멍청한 짓을 하게 되지. 넌 그렇게 하면 안 된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나는 고개를 갸웃했지만 어쨌든 제갈량 나름대로 나를 위로해주는 게 느껴졌기에 씩 웃었다.

“장담은 못 해. 나는 과정을 포기하느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거니까.”

“…….”

제갈량이 순간 뭔가 낯선 것을 보는 듯한 눈빛이 되었다.

“너….”

그리고는 한숨을 쉬었다.

“후우! 넌 가끔 다른 인간처럼 느껴지는군…. 유비와도 다르다니.”

저벅

저벅

마침내 우리는 층계참의 끝인 바닥에 도착했다. 아수라와 사공린은 먼저 도착해 있었고 뒤따라서 우리가 도착했다.

“암창은 어떻지?”

“좋지 않군….”

아수라의 안색이 약간 창백해져 있었다.

“세 개의 암창이 사라졌다. 두 개만 남았어.”

“…….”

그 말대로다. 본디 다섯 개의 암창이 심장을 찔러서 봉인을 하는 중인데 어째서인지 세 개의 암창이 사라져 있었고 두 개의 암창만이 심장을 찌르고 있었다. 과반수의 암창이 사라졌으니 봉인이 절반이상 해제되었다 볼 수 있었다. 나는 당황해서 말했다.

“뭐, 뭐야? 왜 암창이 사라진 거지? 누군가가 여기 출입해서 전욱의 암창을 뽑아갔단 말인가?”

큰일이다! 이대로라면 봉인을 가만 놔둘 경우 우리가 아무것도 안 해도 심장이 알아서 봉인해제되어서 세계를 멸망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소리가 아닌가!

그러자 서문혜가 심장의 근처로 다가가서 암창과 심장을 동시에 살피는 듯 했다. 한참동안이나 심장을 살피던 서문혜가 입을 열었다.

“기억을 읽어보니 암창은 [부름]에 따라 역소환되었습니다. 상당한 기간을 두고, 봉인의 수호자인 천우진도 눈치채지 못하게끔….”

“…….”

그 말에 천우진과 제갈량의 안색이 크게 뒤바뀌었다. 그들은 거의 같은 것을 예감한 것처럼 보였다. 제갈량이 이를 악물었다.

“최악의 가정이 맞아들어갔군….”

“제갈량! 설마 정말로 네 말대로….”

내가 혹시해서 말하자 제갈량은 고개를 끄덕였다.

“[부름]을 통해 자신의 소환물을 뽑아갈 수 있는 건 그 자신밖에 없지. 의도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말도 안 돼.”

내가 아연실색하자 제갈량이 말했다.

“삼황오제 전욱은 소멸하지 않았다. 달의 반왕전이 아직까지 건재한 것과 같은 맥락…. 전욱 뿐만 아니라 오제의 대부분은 어딘가에 살아남아 있다!”

“……!!”

미친!

말도 안 돼!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아서 제갈량에게 외쳤다.

“있을 수 없어! 흉신의 저주가 그 때 오제를 모조리 녹여버리는 걸 내가 직접 보았단 말이야! 그만한 저주를 받고 어떻게 살 수 있단 말이냐고.”

“그것까진 알 수 없다. 흉신의 저주가 녹록치 않은 것인 건 확실하지. 모두 소멸했어야 정상이겠지. 이 경우는 흉신의 저주가 약했다기보단 다른 걸로 보인다.”

제갈량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오제(五帝)라 불리는 그 존재들에게 우리가 모르는 또 다른 비밀이 있는 게 틀림없어.”

“…….”

말도 안 돼…. 정말로 전욱이나 소호, 제곡이 어딘가 살아있단 건가?

내가 멍하니 있을 때 서문혜가 말했다.

“백웅 님. 암창이 사라졌어도 제 힘으로 이 봉인을 강화할 수 있습니다.”

“서문혜! 그 대가로 당신이 또다시 봉인된다면 허가하지 않겠어.”

내가 급히 말하자 그녀가 살포시 웃었다.

“걱정 말아요. 신농 님이 제게 가호를 주셨으니까.”

“가호?”

우우웅!!

서문혜가 심장에 손을 뻗자, 사람보다 훨씬 거대한 크기로 팽창해 있던 심장이 갑자기 줄어들었다. 그리고는 고작해야 오 척 정도의 크기로 줄어들어 땅에 떨어졌다. 서문혜가 말했다.

“신농 님의 가호 덕분에 전 이제 혈맥의 힘을 제 뜻대로 제어할 수 있게 되었어요. 치우의 봉인에 한해서는 암창보다 더한 강제력을 행사할 수 있지요.”

“……!!”

“설령 전욱이든 누구든 간에 암창이 다 뽑힌다 해도 심장은 바로 폭주하지 않을 거에요.”

다행이다…!!

서문혜 덕에 큰 고비를 넘긴 셈인가!

천우진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가 말했다.

“빨리 돌아가자. 이곳에 오래 있어서 좋을 건 없고 할 일은 쌓여있다.”

“그러지.”

그 때였다.

두근

갑자기 내 심장이 덜컹거렸고, 나는 갑작스러운 끌림 때문에 저만치에 있는 심장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심장에서 무언가 [목소리]가 들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고맙…다…. 여기까지… 잘 이끌어왔군….]

뭐…?

[곧… 나도… 돌아온다….]

순간 거대한 어둠의 형상이 심장 위에 덧씌워지는 게 보였고, 나는 그 형상에 오싹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너무 엄청난 마력 때문에 나는 내가 가진 신력이 송두리째 부정당해 위압당한 것 같았다.

이, 이 힘은 대체…

엄청난 패력(覇力)….

“쿨럭!”

나는 그만 그 자리에 꿇어앉아 피를 토하고 말았다. 너무 강대한 힘 때문에 전신에서 핏물이 흐르는 느낌이었다.

“백웅!!”

“왜 그러나?”

동료들이 놀라서 나를 쳐다보았고, 나는 황당해져서 그들을 쳐다보았다.

“……?! 이게 안 느껴져?!”

“무슨 말이냐.”

비, 빌어먹을…. 지금의 나 따위는 한손으로 으스러뜨릴 것 같은 힘인데….

왜 나만 이 힘에 반응하는 거지?!

다른 동료들은 아무런 것도 못 느끼는 표정이잖아!!

슈욱

이윽고 압력이 사라졌다. 나는 입가의 피를 닦아내었고, 다음 순간 뭔가를 직감할 수 있었다.

뭔가가 잘못됐다.

이미….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누군가의 계략에 말려들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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