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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1167화 (1,164/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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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쪼르륵…

태허천존이 술을 따르자 나는 거침 없이 받았다. 그리고 그대로 들이켰다.

꿀꺽

나는 한 모금을 마신 후 말했다.

“목넘김이 좋군. 괜찮은 술이잖아.”

화끈한 느낌과 부드러운 느낌이 공존하면서 화주 특유의 불쾌한 따가움이 모조리 사라져 있고 기분좋은 향긋함이 맴돈다. 이 정도의 미주(美酒)는 대웅제국 황제 시절에도 별로 마셔본 적이 없는 것 같다.

태허천존이 빙긋 웃으며 대꾸했다.

“옥황상제를 위한 축주(祝酒)를 소홀히 할 순 없지 않겠소? 내가 가진 술 중 제일 좋은 술을 꺼냈소.”

“술의 이름은?”

“딱히 이름은 없으나 신농(神農)이 물질계에 내려와 처음으로 빚은 술이오.”

나는 그 말에 조금 놀랐다.

“신농이…? 그런 술을 네가 어떻게.”

“신농이 처음으로 빚은 술을 선물한 상대는 원시천존이었소. 그리고 원시천존이 보관하고 있던 이 술은 그가 소멸된 후 내가 가져갔지.”

”……”

내가 침묵하자 태허천존이 이번에는 다른 술병의 목을 잡아서 들었다.

“후후, 전륜성왕이 되는 걸 축하하고 싶으니 한 잔 더 받으시오.”

쪼르륵

나는 말없이 잔에 술을 받은 후 다시 한 번 거침없이 들이켰다.

꿀꺽

“…방금 전보다 꽤 독한 술이로군. 화주인가?”

“이건 은(殷)의 군주였던 주왕(分王)이 내게 공양한 술이오. 이름은 인두주(人頭酒).”

“……”

공양이라 하면 아마도 인신공양일까.

내 표정이 조금 일그러지자 태허천존이 말을 이었다.

“달기와 한창 재밌게 놀고 있던 그가 인간의 두개골 100개를 모아 발효시킨 후 착즙하여 만든 술이니 아주 독할 것이오. 아! 물론 독은 없소.”

참 고약한 기원을 가진 술이다.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옥황상제가 되는 축주는 천상의 미주인데 전륜성왕이 되는 축주는 저질 술을 줘버리는군. 겨우 이게 태허천존의 그릇인가?”

그러자 태허천존이 고개를 저었다.

“천만에. 인두주 또한 특급의 질을 지닌 명주요. 나는 전륜성왕에게 어울리는 술이라고 생각하여 헌상하였소.”

“전륜성왕에게 어울린다고? 왜?”

“죽음을 다루는 왕야가 되었으니 그대에겐 죽음으로 빚은 술이 어울리지 아니하겠소?”

“제멋대로 해석하는군.”

나는 흥 하고 콧김을 내뿜고는 인두주의 술병 목을 잡고는 내밀었다.

“됐고 너도 자작하지 말고 한 잔 받아라. 내가 한 잔 따라주마.“

“…좋소.”

태허천존은 묘한 표정을 지으며 술 잔을 내밀었고 나는 술을 따르기 시작했다.

쪼르륵…

나는 딱 표면에 아슬아슬하게 닿을 정도로 따라주었다. 조금만 움직여도 넘쳐버릴 듯한 술잔을 물끄러미 태허천존이 보고 있자 나는 내 잔에 술을 따르며 말했다.

“왜 안 마셔?”

“예의가 없구려. 이렇게 가득 따르는 건 술자리의 예법이 아닌데.”

“예법에 내 마음을 더해버리니 술잔이 가득 차 버렸군. 그래서 내 마음을 받지 않겠단 말이냐?“

”……”

“가득 넘치려는 내 마음을 무시하지 마라.”

태허천존이 황당하단 표정을 짓더니 이내 껄껄 웃었다.

“하하하! 좋소.”

태허천존은 곧장 단숨에 술잔을 들이켜버렸다. 이걸로 서로 대충 잔을 교환한 셈이 되자 나는 태허천존에게 말했다.

“축하는 이걸로 됐고, 선물은 안주나?”

“……?”

태허천존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축주로 부족하다는 말이오?”

“선물을 안 받으면 축하받은 게 아니다.”

“흐음. 어떤 선물이 좋을까…”

“내가 받고 싶은 선물은 일단 한 개가 있는데.”

나는 씩 웃으며 태허천존에게 말했다.

“[기어오는 혼돈]을 부활시키지 마. 기왕이면 그 선물을 주면 좋겠군.”

”……”

쪼르륵

태허천존은 대꾸를 하지 않은 채 자신의 잔에 신농의 명주를 따랐다. 그리고는 말했다.

“기껏 재밌어지려고 했는데 또 정해진 틀 안으로 들어가버리니 재미가 없구려.”

“무슨 말이지?”

“다 예상하던 범위 내란 말이지.”

태허천존이 문득 한숨을 쉬더니 말을 이었다.

“내가 화신으로 각성하여 내 본체를 깨우려 함이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겠소? 이게 우연히 벌어진 일이라 생각하는 것이오, 옥황상제?“

“……?”

“모든 것이 유도된 인과율이며 나비효과라는 말이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는데.”

그가 묘한 표정을 지으며 설명했다.

“내가 1년 내에 외신을 깨우겠다는 발언과 행동을 함으로써 저 옆에 있는 복희와 여와의 몸이 달았지. 그리고 본디 그대에게 주지 않았을 권능과 권리를 주는 결과가 생겼으며, 그대는 나를 즐겁게 해주고자 최선을 다하는 상태가 되었어. 이 모든 게 유도된 결론이오.”

“……!!”

“뭐, 나 스스로는 그다지 생각지않은 결론이지만…”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잘 이해가 안 되는데. 니가 그 악랄한 계획을 세운 장본인이 아니란 소리냐?”

“그렇소. 나는 그 존재의 무의식에 의해 유도되었을 뿐.”

“웃기지 마. 여기까지 와서 날 속이려고…”

태허천존이 쓴웃음을 짓더니 말했다.

“정말이오. 나는 여전히 태허천존이지만 그저 [기어오는 혼돈]의 화신으로 선택되었을 뿐이오. 초월적 자아가 강림해있지만 여전히 나는 태허천존이기도 하지.”

”……”

“당신들은 잘 이해하지 못할 것이오. 그 존재는 화신과 가면을 나누어서 운용하는데 전 우주를 통틀어 이런 방식으로 자아를 분열시키는 건 [기어오는 혼돈] 뿐이니까 신조차도 그를 이해하지 못하오.”

“진짜 이해를 못하겠는걸…”

나는 신경질적으로 인상을 찌푸리며 태허천존에게 말했다.

“그래서 어쩌자고? 내가 듣고싶은 건 네가 내 부탁을 들어줄 수 있는 지 어떤지야.”

“들어줄 수 없소.”

“결국 기어오는 뭐시기를 부활시키겠단 소리냐?”

“당신이 재미없는 짓만 한다면 말이지.”

“…아까부터 재미 재미 하는데 재밌는 게 대체 뭔데? 왜 남이 널 재밌게 해 주기를 바라는 거야?“

내 반문에 태허천존의 가면이 갑자기 크게 비틀렸다.

뚜둑!

뚜두둑!!

마치 관절이 꺾이는 듯한 기괴한 소리와 함께 그의 얼굴을 뒤덮고 있던 수백 개의 가면이 시계방향으로 회전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 모습을 옆에서 보고 있던 제갈량은 안색이 파리해져서 창백해지는 듯 했고, 복희조차도 불쾌감을 느끼는지 인상을 찡그렸다.

태허천존이 말했다.

“재미의 본질이란 경(驚)이기 때문이지. 경인 이상 내가 아무리 지혜로운 존재라 해도 재미는 타인에게서 찾을 수밖에 없소.”

“경? 놀라움이란 말이냐?”

“그렇소.”

태허천존이 손깍지를 끼고 술상에 양손을 올린 채 말을 이었다.

“놀라움이란 미지(未知)를 대하는 모든 의지있는 존재들의 공통적인 반응. 달리 말하자면 인과율의 확장이며 우주의 멸(滅)을 향해 나아가는 한 단계. 그렇기에 외신 [기어오는 혼돈]은 늘 경이를 접하고 싶어 하고, 그것이 또한 그 존재의 행동 양식이자 즐거움이 되는 것…”

”……”

“존재란 [굴레]를 따라가며 경인(驚人)하여 즐거움을 찾을 수도 있으며, 공포를 느낄 수도 있으며, 지적 충족을 누릴 수도 있지. 그 과정에서 굳이 즐거움만이 남는 건 아니지만 모든 화학반응이 ‘재미‘의 여러가지 양태를 만들어내는 것이오. 왜냐하면 굴레에 속한 모든 존재는 본질적으로 위대한 [아버지]로의 회귀에 갈망을 지니고 있고, 그것이 경으로 드러나는 것이니까…”

나는 태허천존의 말이 너무 어려워서 소리를 버럭 질렀다.

“씨발!! 하나도 모르겠다! 빨리 그거 다 마시고 술 받아라.”

“어… 알겠소.”

떨떠름한 표정의 태허천존이 잔을 비우자마자 나는 바로 평면이 되도록 술을 따랐다.

쪼르륵

“아니, 또 가득 따라버리다니… 이런 양아치같은.”

“너도 그러던가.”

“알겠소.”

태허천존이 술을 가득 따르자 나는 태허천존에게 외쳤다.

”개소리하지 말고 일단 건배!”

”건배!”

째앵

나는 태허천존과 동시에 술을 들이켰다.

”크으.”

내공으로 취기를 몰아낼 수도 있었지만 일부러 그러지 않고 약간 취기에 몸을 맡겼다. 그리고 조금 얼굴이 빨개지자 나는 태허천존에게 거칠게 말했다.

”그래서 내 행동이 재미가 없으니까 부탁을 못 들어주시겠다?”

”바로 그거요.”

”씨발새끼야. 내가 니 쫄따구냐? 왜 널 웃겨줘야 하냐고. 니가 내 쫄따구지.”

그 말에 태허천존의 얼굴이 굳더니 흠칫했다.

”난 당신 쫄따구가 아니오. 운좋게 옥황상제 자리를 거머쥐었지만 본디 당신은 내게 미치지 못하는 필멸자에 불과하지 않았소? 그리고 난 천계를 벗어났으며 외신의 화신이 되었으니...”

”아 그래서 어쩌라고~.”

나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재미니 뭐니 씨부리는데 니는 결국 관심을 구걸하는 것 뿐이잖아. 관심을 얻고싶으니까 별의별 짓을 다 하는데 힘이 쎄서 막아설 사람이 없을 뿐이잖아. 그런데 뭘 그렇게 거창하게 포장하고 앉아있는거냐?“

”……”

“그리고 씨발, 니가 화신이 되었으면 뭐 어쩌라는 거냐? 어차피 재미있는 행동밖에 할 수 없다면 니가 아무리 쎄도 여기서 힘자랑을 할 순 없을 텐데? 그건 재밌는 행동이 될 수 없을 테니까.”

“…취한 척 하면서 본질은 다 꿰고 있구려. 그 말대로요.”

태허천존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나는 당신에게 날 어떻게 재밌게 해줄지 듣기 위해 왔소. 그 대답만 해 준다면 외신의 본체를 깨우지 않을수도 있다 이 소리요.“

“지랄하네… 깨울거면 깨워라.”

”……”

태허천존이 당황하는 표정을 지었다.

콰앙

나는 상당히 빡쳐서는 쾅 하고 술병을 탁자에 쳤다.

“난 내 맘대로 할거다! 나한테 재밌는 행동을 하라고 강요하는 것 자체가 재미없는 행동 아니냐? 니 스스로 아가리를 틀어먹고 앉아있어도 모자랄 판인데!”

“…그 말도 맞소만, 내가 이대로 은거하고 있다가 1년 후에 외신의 본체를 깨우면 당신들만 손해를 볼 게 아니오?”

“그래서 특별히 기회를 주려고 왔다고? 개뿔이… 그냥 관심 받으려고 온 거잖아.”

“……”

나는 술 취하니까 아무소리나 술술 나오는걸 알 수 있었다.

“넌 인생이 왜 그러냐? 맨날 역사 뒤편에서 음모만 꾸미다가 어느 날 갑자기 위대한 존재가 되니까 기쁘냐? 내가 너라면 가면일 뿐 진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개같은 기분일 텐데.”

정말 아무런 생각 없이 내뱉은 한 마디였다. 하지만 그 한 마디가 굉장히 큰 반향을 가져올 줄은 나도 알지 못했다.

쩌저적!!

그 순간 태허천존의 얼굴에 씌워져 있던 수백 개의 가면이 동시에 금이 가며 쪼개지는 듯 했다. 그리고 파캉 하는 소리와 함께 가면이 깨져나갔고 잠시동안이지만 태허천존의 맨 얼굴이 현실에 드러난 듯 했다.

경악!

태허천존의 맨얼굴에 떠오른 것은 바로 그런 감정이었다. 그러더니 태허천존의 말이 갑작스럽게 신령스러운 영언으로 바뀌었다.

[화신으로 각성한 나의 자아를 되돌리다니…!! 이, 이럴 수가. 당신은 대체 어떤 존재…]

“응?”

설마 저건… 삼청 태허천존의 인격이 되살아났다는 뜻인가?!

[아… 아아… 이것이 [가면]의 숙명인 줄 알고 있었으나… 고통스럽구나! 화신이 되어도 결국 그 존재의 노리갯감에 지나지 않는 것을… 태허천존으로서의 [나는 도대체 무어란 말인가…]

“이봐 정신차려!!“

[아니, 아니지. 잘 들으시오. [기어오는 혼돈]은 어쨌든 자력으로 대결계의 봉인을 깰 순 없소. 망량선사는 만만한 존재가 아니니 종말까지 기다려야만 하지. 그는 바로 당신을 이용해서 대결계를 빨리 깨려는…]

후와아악

그 때 깨져있던 가면들의 균열이 도로 붙기 시작했다. 그리고 태허천존의 얼굴을 겹겹이 둘러싸는 느낌으로 가면들이 달라붙기 시작했고, 태허천존은 순식간에 숨이 막히는 표정을 지었다.

[크흑!! 자, 잘 들으시오… 화신이 되어 [그]의 기억에 접속한 나만이 줄 수 있는… 정보…]

태허천존이 고통스러워하면서도 말을 이었다.

[아… 아아… [제약]… 제약이 있소… 당신 같은 전생자와 [기어오는 혼돈] 사이에는 아주 오래전부터 제약이 붙어있… 외신과의 결투에서 이길 뻔한 전생자 [마도황제]에 의해 붙은 그 제약…]

“……?”

[그렇기에… 설령 나와 같은 화신이나 가면을 앞둔다 하여도 그 자는 당신을 찾아낸 것으로 판정할 수가 없소… 그 자 또한 당신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수많은 단서만 모으는 중… 그리고… 설령 본체가 부활한다 하여도… 당신의 전생을 끝내기 위해서는 수많은 조건이 붙어 있으니…]

”……!!”

[위, 위협. 협박에 불과하오. 절대 굴하지 마시…!!]

투콱!!

다음 순간 태허천존의 얼굴에 완전히 가면이 달라붙었고, 그는 덜컹거리더니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잠시 후 생명력 없는 움직임으로 서서히 자세를 다잡더니 술상 앞에 단정히 앉았다.

태허천존은 자연스럽게 웃으면서 말했다.

“거짓말이오.”

”……”

그게 거짓말이겠지.

’…일순간 드러난 태허천존의 자아가 소멸했다. 그건, 화신과 본체는 결코 같은 존재가 아니란 것. 그리고 화신은 수많은 [가면]이 뭉쳐서 이루어진 존재.’

나는 순식간에 뭔가 지나갔으며 그게 굉장한 단서라는 걸 바로 눈치챌 수가 있었다. 그리고 이제 같은 수법은 통하지 않으리라는 걸 예감 할 수도 있었다.

아마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존재는 태허천존이지만 태허천존이 아니다.

좀 더 나를 경계하여 [기어오는 혼돈]이 보안을 강화하여 만든 새로운 인격일 것이리라. 그래서 나는 훗하고 웃으며 태허천존에게 말했다.

“축하는 이정도면 될 것 같군. 슬슬 술자리를 파할까 싶어.”

“허허, 그렇소? 내가 술에 뭔가 타지 않았을지 염려하지는 않소?“

“그럴 리가. 왠지 넌 그럴 놈은 아닐 것 같거든.”

“무슨 근거로?”

“최대한의 재미를 추구한다면, 태풍의 눈에 직접 관여하려 들지는 않겠지. 자기가 관여하지 않았을 때의 혼돈을 관찰하고 싶은 마음이 아니겠나?”

태허천존은 내 말에는 대답하지 않고 그저 웃었다. 그리고는 말했다.

“부디 이번 생은 건승하시길.”

파앗

태허천존의 모습이 사라졌다. 하지만 그가 소환한 술상은 사라지지 않았고, 그 때까지 육각정자에 앉아서 말없이 우리의 대화를 지켜보던 복희가 다가왔다. 복희는 두 병의 술을 차례로 집어들어서 냄새를 맡더니 말했다.

“사실이군. 신농의 술이 맞고 인두주인 것도 맞다.”

“어… 독은 안 들었겠죠?”

“아까는 그리 자신 있게 말해놓고 왜 굳이 되묻나? 후후.”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내가 머리를 긁적이자 복희가 말했다.

“아무래도 백웅 자네는 뭔가 특별한 존재인 것 같군. 설마 대화만으로 [가면]의 인격방어를 깰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네. 그것은 어떻게 가능한 일인지 술법의 종사인 나조차도 알 수가 없군.”

“저도 잘… 그냥 말하다보니까 알아서 발작하던데.”

“……”

복희는 한동안 감정없는 눈으로 인두주를 뚫어져라 바라보다가 말했다.

“우선 인간계로 돌아가는 게 좋겠군. 자네는 지금 천계나 명계에 있으면 안 돼.”

“네? 권능부터 회복해야 하는 게 아닌지… 어디로 갑니까?”

“낙양(洛陽)의 [대결계].”

복희가 휙 하고 손을 휘두르자 술상이 소멸했다. 그는 나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인간계에 가게. 그리고 자네가 가진 모든 능력과 인맥, 지력을 동원하여 [대결계]에 대한 정보를 모조리 긁어모으게. 우리 신들조차도 그 결계에 대해 모르는 점이 많으나, 인간계에는 그 정보가 엽편처럼 조각나서 퍼져있다네. 지구에 몰려든 [옛 지배자]들이 무수히 결계의 파괴를 시도하면서 알아냈던 정보들이지. 그러한 조각난 정보를 알아내야만 그대가 종말에 대적할 수 있을 것이네.”

“음… 귀찮을 것 같은데요. 그게 지금 제일 우선되는 일이란 말입니까? 옥황상제나 전륜성왕의 업무보다도?”

“그렇네.”

복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기어오는 혼돈]의 위협은 허세로 밝혀졌지만 마냥 허세는 아닐 것일세. 이제 그 존재는 탈출을 가늠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게 되었으니, 종말이 가까워질수록 더욱 큰 재앙으로 다가올 것이라네. 자네는 이제 전생자로서 대결계가 어떤 존재인지 조사할 때가 된 것이지.”

나는 복희의 말을 듣자마자 알 수 있었다.

지금까지 모아왔던 동료들의 힘을 총동원해야 하는 때가 왔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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