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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1162화 (1,159/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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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저벅!

나는 잠시 후 근처에서 신장이라기엔 다소 덩치가 작으며 법의(法衣)를 입고 있는 존재가 내 근처로 오는 걸 알 수 있었다. 또한 나는 저 법의를 입은 염라신장이 덩치는 작아도 다른 염라국 병사나 장수와는 비교할 수 없는 영력을 지닌 걸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최소한 대라신선 이상의 존재라는 게 느껴졌다.

‘고위존재인가?’

그 자가 내게 다시 한 번 크게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저는 염라대왕 휘하의 명판관(冥判官)이옵니다! 위대하신 전륜성왕 폐하를 뵈옵니다.]

“명판관….”

나는 상대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본디 저승의 위계에서 가장 높은 것은 전륜성왕이었고 그 다음으로는 지옥시왕과 삼존이라는 존재들이 있었으며, 그들을 보조하는 자가 바로 판관(判官)이었다. 즉 전륜성왕과 지옥시왕, 삼존이 모조리 실종된 현재 사실상 이 명계에서 가장 높은 존재가 명판관이었으며 그 자가 내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셈이었다.

나는 명판관에게 물었다.

“나는 옛 전륜성왕의 옥좌로 갈 것이다. 나를 호위할 수 있겠는가?”

[당연한 말씀이옵니다! 모든 힘을 다해 모시겠사옵니다!]

명판관이 크게 대답한 후 일어서서 사방의 염라귀와 신장들에게 호령했다.

[모두 길을 열어라! 성왕께서 행차하신다.]

우우우우

수십만의 옥귀와 괴물, 신장들이 일제히 좌우로 도열하여 지평선까지 길을 만들었다. 나는 그 장관을 보자 신기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저 자들은 분명히 나를 처음 볼 텐데도 완전히 전륜성왕으로서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삼백 리 정도면 경공을 다한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서 도착하리라. 나는 빠르게 뛰려고 했으나 그 순간 생각나는 게 있어서 명판관에게 말했다.

“명판관. 너는 염라대왕의 수하였지? 그렇다면 지옥시왕들은 지금 어디로 갔는지 알고 있느냐.”

그 동안 줄곧 궁금하던 지옥시왕들의 실종. 그 행방을 직계권속인 명판관이라면 알고있지 않을까? 그러자 명판관은 그저 고개를 숙인 채 대꾸했다.

[저 따위는 감히 그 분들의 행사를 추측할 수 없나이다!]

“어디 갔는지 모른다는 말인가?”

[하루한시에 모두 실종되어버린지라 행방을 알 수 없사옵니다.]

“…….”

왠지 이 의문은 전륜성왕의 힘으로 명계를 되살려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이곤 말했다.

“뛰어가기 귀찮은데 혹시 타고갈 것은 없느냐?”

[명계마(冥界馬)와 염라대왕이 쓰던 마차를 소환하겠나이다!]

명판관은 그렇게 말하고는 자신의 품에서 판관필 한 짝을 꺼내어서 허공에 휘둘렀다.

쿠구구구!!

잠시 후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마차가 모습을 드러냈다. 좌우로 오 장이나 되는 어마어마한 크기라서 마치 건물이 움직이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몸 크기가 삼 장에 이르는 거대한 흑마들이 그 마차를 이끄는 듯 했다. 나는 그 마차 위로 올라탔고, 잠시 후 명판관이 직접 마부역할을 하듯 흑마 위에 올라타서 외쳤다.

[출발하겠나이다!]

파바밧

잠시 후 허공에 거대한 암흑의 문이 생겼고 따그닥거리는 소리와 함께 명계마와 마차가 문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그리고 잠시동안 어둠 속의 공간을 유영하는 듯하더니, 마차가 바깥으로 빠져나와서 바퀴를 멈추었다.

쿠궁….

[도착했나이다!]

“…빠르군.”

나는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예전에 봤던 명계 최심부의 방이 눈앞에 보이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예전과 달리 근처에 산재해 있던 적의어린 명계 귀신이나 귀장들의 시선이 온데간데없으며, 도리어 나를 보자마자 고개를 박고 엎드리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명판관에게 말했다.

“기다릴 필요가 없으니 우선 물러가거라. 그리고 이 근처에 누구도 접근치 말게 해라.”

[명을 받들겠나이다!]

명판관들이 주변의 귀졸들을 통솔하여 물러나기 시작하자 나는 물끄러미 거대한 문을 쳐다보았다.

원래라면 염라부에서 그냥 염라대왕의 옥좌 옆에 있는 쇠막대를 쓰면 공간을 압축시켜서 바로 전륜성왕의 방에 도착할 수 있지만 명판관이 정말로 내 편인지 시험하려고 일부러 물리적인 거리를 이동해서 온 상태. 명판관과 옥졸들이 함정을 판 게 아니라 정말로 내게 복종한다는 걸 확인한 것도 소득이다.

‘이 안으로 들어가면 명경의 방이 있다….’

명경의 방이자 전륜성왕의 방 안.

망량은 이미 지난 500년간 명경의 방 내부를 모두 탐색해서 모든 유물을 얻어내고 가장 귀중한 보물인 명경을 구천현녀에게 주었다. 왜 구천현녀에게 주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명경이야말로 가장 핵심이었기 때문에 이제 와서 명경의 방으로 들어가는 건 별다른 의미가 없는 일이다. 더 이상 얻을 수 있는 보물은 아마 없으리라.

하지만 망량이 전해준 전륜성왕의 힘과 함께 기본적인 명계부활법 또한 내 머릿속에 들어온 상태이다. 그리고 그 부활법은 이 방 안으로 들어가야만 시행할 수 있다.

‘…내가 할 수 있을까.’

꽤나 복잡하다. 나는 정신을 집중할 필요성을 느끼고는 크게 심호흡하며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전륜성왕의 방 문이 끼익하고 열렸다.

쿠궁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오자, 나는 의식적으로 입 밖으로 주문을 외듯 공략법을 외우기 시작했다. 이것은 바로 망량이 넣어준 공략법의 기억이다.

“전륜성왕을 상징하는 황금색 불화(佛畵)가 나타나야만 성공이다. 황금색 불화를 나타나게 하기 위해서는 지옥시왕을 상징하는 열 개의 보석이 나타나게끔 해야 하고 그 보석을 정해진 규칙에 따라 건드려야 한다. 그리고 열 개의 보석이 나타나는 공식은….”

나는 나 스스로 되뇌이다가 어이가 없어서 입을 다물었다.

“…….”

아니… 망량…. 당신은 이걸 어떻게 깼소…?

망량은 이미 한 번 공략법을 알아내고 실천해서 황금색 불화를 한 번 드러나게 했으나 그가 직접 명계를 부활시키게 되면 내게 전륜성왕의 힘을 온전히 넘겨줄 수가 없었으므로 포기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이 공략 자체가 너무나 어려워 보였으며 대체 무슨 수로 알아냈는지조차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아 제기랄…. 저번에 했던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거 같은데….’

이게 전륜성왕의 방에 숨겨진 마지막 공략이기 때문일까? 나는 이 공략을 하나도 틀리지 않고 성공해낼 자신이 없었지만 주먹을 꾸욱 말아쥐었다.

“제기라알!! 해내고 만다!!”

이제 와서 이런 게 어렵다고 죽는 소리를 할 수는 없지!

웅얼웅얼

나는 모든 집중력을 동원하여 한동안 그 자리에 서서 공략을 내 입으로 되뇌이며 계속 외웠다. 그리고 약 스무 번 정도 외운 후 공략을 시작했다.

나는 먼저 남동으로 파랑 빨강 초록 자색 자색 파랑 파랑 초록, 그리고 북동쪽으로 다섯 걸음을 갔다. 다섯 걸음을 가고 난 다음에는 북북서로 자색 자색 자색 초록 초록 빨강 빨강 파랑 의 순서로 다시 향했다.

위잉

그러자 전체 발판의 색깔이 완전히 혼돈스럽게 뒤섞여서 바뀌는 현상이 눈에 보였다. 나는 즉시 동서남북으로 한 번씩 발판을 밟았는데 그러자 공략대로 혼돈스럽게 바뀌던 발판이 원래대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서쪽으로 열 걸음을 가자 위잉하는 소리와 함께 주황색 발판이 떠올랐다.

위잉!

대각선으로 여섯 개의 발판을 밟고 나자 바닥의 발판이 갑자기 전부 용의 그림으로 뒤바뀌었다. 나는 지금이 중대한 시점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재빨리 방어태세를 취했다.

쿠콰콰쾅

사방 동서남북에서 한 번씩 발사되는 용의 입김! 신선도 소멸시킬 정도로 막강하지만 미리 오는 방향쪽으로 서 있으면 자동으로 발판의 면에서 방어막이 소환되어서 막아주게 되어 있었다. 오는 순서도 동서남북이었으므로 나는 한 번씩 용의 입김을 막아준 후 바닥의 변화를 살폈다.

콰과광

' 마지막 북쪽의 공격이 끝났군.'

치리링

그러자 이번에는 사방에 불규칙적으로 악귀와 성자가 그려져 있는 발판이 생겨났다. 나는 악귀와 성자를 한 번씩 교대로 밟아야 한다는 법칙을 알고 있었으므로 천천히 흐름에 따라서 밟아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망량의 공략대로 나는 도로 정중앙으로 되돌아오게 되었으며, 전체 발판은 다시 원래대로 채홍의 7색깔으로 되돌아갔다.

그리고 나는 동쪽으로 빨강 빨강 초록 초록 자색 자색 빨강 파랑 주황으로 움직였고, 그러자 사방의 방 구석에 갑자기 아까 출현했던 거대한 용의 아가리 모양 동상이 다시 소환되는 걸 알 수 있었다.

우우우

‘1다경 내에 저 용의 아가리를 전부 닫아야 해!’

타닷

나는 재빨리 뛰어서 용의 아가리를 힘을 주어서 닫았다. 그리 큰 힘은 필요하지 않았고 적당한 힘만 있으면 닫을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순서는 상관없었기에 여유롭게 다 닫고 나자, 1다경 후 용의 동상이 빨갛게 타오르더니 터져버리고 말았다.

콰쾅

1다경 내에 닫지 않으면 하나하나의 동상에서 이 전륜성왕의 방 전체를 뒤덮는 신의 불꽃이 내뿜어지게 되어 있었으나 아가리를 닫아서 자멸한 셈이었다. 나는 여기까지 잘 해냈다고 생각하며 한숨을 쓸어내렸다.

“휴…. 어억?!”

두쿵

갑작스럽게 모든 바닥이 사라지고 무저갱이 나타났기에 나는 비명을 지르며 놀랐다. 하지만 당황하다보니 나는 이 내용도 원래 망량의 공략 내에 있었다는 걸 깨달았고 급히 옥황의를 전개해서 하늘에 둥둥 떴다.

우웅

‘맞다…. 한 번 바닥이 꺼져버리는데 문제는 여기서 기를 이용한 허공답보나 체공술을 못 쓴다는 거였어! 하지만 옥황상제의 전용보패인 옥황의를 쓰면 하늘을 뜰 수 있기에 버틸 수 있다는 거군….’

쿠르르르

잠시 후 무저갱으로 변했던 바닥이 원래대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동시에 십방(十方)에 열 개의 보석이 나타나며 보석 하나하나의 위에 제관을 쓴 고대의 왕의 환영이 떠오른 것을 알 수 있었다.

‘왔다!’

지금이 제일 중요한 시점!

‘열 개의 보석 위에 떠올라 있는 지옥시왕(地獄十王)의 환영! 저걸 보고 순서대로 열 개의 보석을 만져야 해!’

지옥시왕의 순서대로 해야 한다!

시작은 당연히 제 1지옥인 진광대왕부터였고, 나는 망량의 공략법 속에서 진광대왕의 특징을 찾아내어서 첫 보석을 만졌다.

우웅

‘다음은 제 2지옥인 초광대왕….’

우웅

나는 순서대로 지옥시왕의 특징을 찾아내어서 보석을 만졌다. 진광, 초광, 송제, 오관, 염라의 순서까지는 아무런 문제없이 진행했으나 나는 문득 염라대왕의 보석 앞에서 멈칫했다.

“……?”

제 5지옥 염라대왕의 환영이라고 하는데 왜 이렇게 이상하게 생겼지?

다른 대왕들은 다 제관을 쓴 엄숙한 고대제왕의 모습인데 염라대왕만큼은 달랐다. 그는 인간의 형태를 하고 있긴 하지만 삼안(三眼)을 지니고 있었으며 흉흉한 어둠 속에서 마치 양손을 뻗고 무언가 기도를 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또한 알 수 없는 머나먼 세계의 힘이 염라대왕의 전신을 감싸고 있었는데 마치 죽음 그 자체인 듯 물결치고 있었다.

‘뭔가 특이하군….’

나는 어리둥절해 하면서도 계속해서 보석을 만져나갔다. 이어서 변성, 태산, 평등, 도시대왕까지 접촉하고 나자 마지막 오도전륜대왕의 보석이 남았고 나는 거침없이 손을 뻗었다.

치리링!!

그 순간이었다. 열 개의 보석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전륜성왕의 방 중앙에 모였고, 그 빛이 바닥으로 스며들자 바닥의 발판구분이 없어지고 거대한 황금빛 불화가 모습을 드러내는 게 아닌가?

“오오…!!”

정말 내가 해냈어!!

이 엿같이 복잡한 걸 정말로 내가!!

아니, 사실 정상적으로 했으면 헷갈렸을 테지만 망량의 기억에만 의존하며 진행하자 마치 망량이 옆에서 내 손을 거들어준 듯한 착각이 들었다. 마치 이미 해본 걸 또 하는 듯한 기시감 덕분에 크게 당황하지 않고 진행한 것이리라.

‘고맙소 망량!’

우웅

황금색 불화가 떠오르자 내 귓가에 알 수 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의 뒤를 잇는 새로운 전륜성왕이여…. 이전에 시련을 한 번 해결했으나 아무런 선택도 하지 않고 떠나간 자여…. 이제 선택할 각오가 되었는가?]

“아… 저기….”

[…음…. 잘 보니 그 때와 다른 인물이군…. 설마 그대에게 새로이 자리를 넘겼는가….]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 목소리에게 대꾸했다.

“혹시 당신이 전대의 전륜성왕입니까?”

[…….]

목소리는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아니…. 나는 소멸해버린 그 자의 잔류사념…. 전륜성왕은 이미 그대의 몸 안에 있을지어다.]

“내 몸 안에 있다고요?”

[그 힘 자체가 바로 명계의 지배자인 전륜성왕이지….]

“……!!”

[우주의 죽음을 다스리는 법리(法理)로써 태어난 존재…. 또한 황제(黃帝)에게 거역한 죄로 숙청당한 위대한 왕…. 그러나 그 왕의 힘은 명계의 유물과 함께 봉인되어 그대에게 이어졌노라.]

뜻밖의 말에 나는 잔류사념에게 눈을 부릅뜨곤 외쳤다.

“황제?! 전륜성왕이 황제 공손헌원에게 숙청당했다고요?! 어째서….”

[그 자에게 윤회를 부숴야 할 이유가 있었던 거겠지…. 그 이유는 자세히 알 수 없다. 그러나 본디 잘 운영되던 명계에 어느날 갑자기 다수의 [지배자]들과 함께 황제 공손헌원이 친히 찾아와 전륜성왕을 없앴다….]

“…….”

[그 때 지옥시왕도 모두 소멸당했지…. 그들도 만만찮은 존재들이었으나… 황제의 힘은 너무나 강했다….]

그렇게 된 거였나.

나는 잔류사념의 말을 듣자 고대의 진실을 어렴풋이 알 수 있게 되었다. 잘 굴러가던 윤회가 왜 망가졌나 했는데 황제 공손헌원의 짓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왜?’

그럴 이유가 대체 뭐지?

윤회가 사라지고 명계가 망가지면 인간의 영혼이 [옛 지배자]에게 먹히는 결말밖에 남지 않는데 그게 황제 공손헌원에게 무슨 득이 된다는 건가?

인과관계를 알 수 없어서 내가 혼란스러워하고 있을 때 잔류사념이 말했다.

[허나 그대는 결국 고대의 저주를 이용해 지옥시왕의 인정을 받고…. 마침내 전륜성왕의 힘을 부활시켰다…. 지금의 그대라면 명계를 부활시킬 수 있노라….]

“물어볼 게 있습니다.”

[물어보라.]

“명계를 부활시키면 지금 내가 갖고 있는 전륜성왕의 권능인 칠보전륜(七寶轉輪)은 더 이상 못 쓰게 되는 겁니까?”

명계의 부활에는 굉장한 힘이 소모된다. 망량이 처음부터 시도하지 않았던 이유도 바로 그것 때문이다. 내가 볼 때 칠보전륜은 [옛 지배자]에게도 먹히는 막강한 권능이기 때문에 왠지 버리기 아깝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러자 잔류사념이 대답했다.

[그대는 칠보전륜의 진짜 정체를 모르고 있군…. 명계가 부활하면 일시적으로 그대가 가진 전륜성왕의 모든 힘이 사라질 테지만…. 윤회가 부활하여 고리가 제자리를 찾게 되면 칠보는 다른 형태로 부활하여 그대에게 회귀하게 되리라.]

“칠보가 다른 형태로 부활한다고? 칠보는 일곱 개의 보물이 아닙니까?”

[…칠보란 사실 전륜성왕의 진정한 신하…. 전륜성왕이 힘으로 굴복시킨 지옥시왕보다 더욱 강고한 유대관계로 묶여진 태초의 존재들! 임의로 바퀴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진정한 힘과 정체를 되찾으면 더욱 강력해지리라.]

“으음….”

나는 헷갈렸지만 일단 상대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 수 있었다.

‘명계를 부활시키면 일시적으로 전륜성왕의 모든 힘을 잃게 된다는 거군…. 죽음을 완전히 무시하는 전륜성왕의 권능은 남지만 칠보전륜을 공격용으로 쓰진 못하게 될 거야.’

좀 아깝긴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망량이 즉시 윤회를 부활시키란 이유가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명계와 윤회를 부활시키겠소. 그게 나의 선택이오!”

[좋다…. 새로운 전륜성왕이여…. 그대의 뜻이 이뤄질 것이리라!]

파아아아앗

목소리의 외침과 함께 전륜성왕의 방 전체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닥에 있던 황금빛 불화가 서서히 일어나면서 마치 허공에 와불이 일어서는 듯한 기분이 들었고, 그 부처는 내가 알고 있던 일반적인 형태가 아니라 마치 고대의 원초적인 신적 존재가 눈을 뜬 듯한 삼안의 부처였다.

부처가 손으로 인(印)을 맺는 순간 - 내 정신이 어딘가 머나먼 곳으로 빨려드는 게 느껴졌다.

후와아악

두근! 두근!

심장이 마구 뛴다. 나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머나먼 허공의 암천(暗天)에 내팽개쳐진 기분이 들었고, 황금빛 부처의 모습이 서서히 변화하는 게 보였다.

후두둑

후두두둑

마치 조각상에서 가루가 떨어지는 듯, 무수한 풍화가 일어나며 세월 속에서 변해가는 듯한 변화!

부처는 점차 괴물에 가까운 형상으로 바뀌는 듯 했으나 그 기본적인 자세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도리어 대자대비한 가부좌의 형상 속에서 계속해서 인자한 미소를 띄고 있었으며, 나는 그 모습이 점차 [무언가]를 연상시킨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저것은 미소가 아니다.

인간의 인지를 초월한 [현상]이 미소로 해석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점차 부처의 형상이 찢겨지고 부숴지더니, 허공에서 우주가 더더욱 넓어지기 시작했다. 성천(星天)을 멸하는 어둠의 바람과 태초의 빛이 혼란스럽게 엉키기를 반복하였으나 부처의 미소와 같은 기운은 계속해서 남으며 대우주의 확장 속에서 그 존재감을 더해가고 있었다.

쩌엉

마침내 우주의 저편, 질서가 파양된 지점까지 도착한다 싶을 때 - 한 순간이지만 어떤 [광경]이 내 눈에 비치는 게 느껴졌다.

눈멀고 우둔한 존재 -

그 ‘무언가’의 주변을 춤추고 있는 자들 속에서 그가 꿈을 꾸고 있었다.

어째서인지 그 광경은 부처의 미소와 겹쳐지게 느껴졌다.

파앗!!

“……!!”

다음 순간 내 정신이 현실로 되돌아와 있었다.

나는 전신에 땀이 주룩거리며 흘러내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전륜성왕이 어째서 우주의 ‘죽음’ 그 자체를 다룰 수 있는 존재였는지를 알게 된 것 같았다.

전륜성왕이란 바로 근원적인 절망에서 비롯된 존재.

또한 [현상]에서 비롯된 특이한 [지배자]!

그렇기에 그는 태초부터 고대신이나 [옛 지배자] 어느 쪽으로도 분류되지 않았으리라.

누구나 느낄 수 있는 만물의 멸망에 대한 예감 - [아버지]의 존재를 무의식에서 느끼는 자들로부터 파생된 존재!

그 모든 존재들은 형언할 수 없는 압도적인 공포와 허무 속에서 그 현상 자체를 자비로운 미소로 여기게 되었으며, 그것은 온갖 문명과 종교 속에서 이윽고 정교한 형태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렇기에 전륜성왕의 원형은 부처였으며, 그 부처의 미소란 결국 우주의 근원적 절망에 대한 염원과 공포가 만들어냈던 것 -

“…아아….”

부처야 말로 전륜성왕의 전신이며, 전륜성왕 또한 부처가 될 수밖에 없으리라.

그들의 근원은 필멸자가 이해할 수 없는, 불가해한 [저편]의 현상이었으니까.

뜻밖의 진실에 멍해져 있는 내 귀에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륜성왕이여…. 곧 이 명계에 수백억의 혼령이 쏟아져 들어올 터…. 현재의 명계는 그만한 혼령을 감당할 수 없다.]

이어진 말에 나는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눈앞의 옥좌에서 지옥시왕 또한 부활시키기를 바란다…. 그래야만 윤회의 고리를 유지할 수 있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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