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1====================
사신지혼(四神之魂)
우우우우!!
복희의 말이 끝나는 순간 나는 내 이마에 음양의 문양이 새겨지는 느낌과 함께 선연히 떠오르는 게 느껴졌다. 잠시동안 울려퍼지던 문양의 파동은 잠시 후 가라앉았고 이마를 슥하고 만져보아도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내 이마에 뭔가 새겨졌다는 실감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또한 나는 어느새 내 옷이 선계전설에서나 보았던 옥황상제의 의복으로 변해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다소 치렁치렁해보이는 청은빛의 비단옷!! 내가 의복을 만져보니 이건 물질이 아니라 특수한 영력으로 짜여진 옷이라는 걸 알 수가 있었다.
“이건…!!”
“옥황상제의 옥황의(玉皇衣)다. 천계에서 가장 뛰어난 재질로 만들어진 의복이자 보패지.”
“옥황상제는 그저 요순의 화신 아니었습니까? 이런 게 따로 있었을 줄은….”
“화신이라 해서 보패를 두르지 말란 법은 없지. 그리고 요순의 화신이 부재할 때 옥황의 권위를 상징할만한 물건이 따로 존재할 필요도 있었고. 그래야 대리 옥상황제가 서 있을 때 남이 덜 의심하지 않겠는가.”
“…….”
“괜찮은 물건이다. 적어도 의복형 보패 중에서는 세 손가락 내에 들 것이다.”
우웅!
“…그래 보이는군요.”
복희가 괜찮다고 할 정도면 옥황의는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대단한 보패에 속하리라. 나는 황룡마신이 없는 상태에서 좋은 방어구를 손에 넣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아예 무게가 느껴지지 않아서 불편하지도 않았다.
나는 믿겨지지 않아서 복희에게 물었다.
“제가 정말 옥황상제가 된 겁니까?”
“그렇네. 이제 천계의 지배자가 된 셈이지.”
그 때 옆에서 피기침을 토하던 망량이 파리한 안색으로 일어서서는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내 양손을 잡으며 말했다.
“거기서 만족할 때가 아니오. 이제 전륜성왕의 자리도 받으시오….”
나는 불안해져서 망량에게 물었다.
“…망량. 혹시해서 묻는 거지만 이 힘을 내게 주면 당신은 설마 죽거나 소멸하는 거요?”
“…….”
“대답해 주시오.”
망량은 대답하지 않고 내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 눈에는 어딘지 모를 회한과 체념같은 게 깃들어 있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말했다.
“일전에 당신이 처음 천계에 올라왔을 때 내게 물었었소. 내가 그 동안 잘 지냈냐고….”
“기억나오.”
“그 때 말했듯, 나는 나로서 지내오고 있었소. 제갈현이 아닌 망량으로서.”
“……?”
“나는 처음부터 그렇게 살 운명이었지…. 아마도 당신과 처음 마주친 그 날 부터….”
무슨 뜻일까?
제갈현이 아닌 망량이라는 말에 무슨 의미가 있지?
파아아앗!!
그 말이 끝나는 순간 망량의 몸에서 빛이 나더니 흑황빛의 기운이 내게 흘러들어왔다. 나는 흑황색의 기류가 쉴 새 없이 퍼져 나오는 가운데에서 점차 망량의 모습에서 윤곽이 흐려지는 걸 알아챘고, 급히 손을 놓으려 했다.
“……!!”
역시 이건 위험해! 망량은 이 힘을 다 넘겨주게 되면 위험해지는 게 분명해!
하지만 내가 온 힘을 다해서 손을 놓으려 했지만 내 괴력에도 불구하고 망량의 손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망량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소용없소. 당신의 기력이 충천하여 그 힘이 산을 뒤집을 정도라 하더라도…. 명계의 지배자 전륜성왕의 힘은 그 정도에 흔들릴 게 아니오.”
“망량!! 당신이 소멸하면서까지 이럴 필요는 없소! 그냥 당신이 이 힘을 써서 날 도와주면 되잖소!”
“필요가 있소…. 난 이 힘을 오랫동안 다루지 못하오. 또한 이게 바로 당신에 대한 나의 속죄요. 이러니 저러니 해도 내가 당신에게 책사로써 큰 배신을 한 건 사실.”
“아니 그건…!!”
“백웅….”
어두운 기류 때문에 망량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의 얼굴 하관과 입만이 보였고, 꾹 다문 망량의 입에서 그의 복잡한 심경을 읽을 수 있었다. 잠시 후 망량의 입이 열렸다.
“당신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가 정말 많지만…. 후후…. 지금 할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라오.”
그는 잠시 허탈하게 웃더니 말했다.
“백웅. 내가 그러했듯…. 당신 또한 자기자신으로서 살아가야 할 날이 오게 될 것이오…. 그렇다 하더라도 포기하면 아니되오. 이 힘은…. 그런 당신을 위해 주는 선물이오.”
파아아앗
잠시 후 - 망량의 모습과 흑황색 기류가 동시에 사라졌다. 그리고 눈앞에 있던 망량은 어디서도 찾을 수가 없게 되었고, 나는 마치 거짓말 같아서 눈을 꿈벅거렸다.
“…망량?”
사라졌다.
정말로 망량은 소멸했단 말인가?
털썩
나는 새롭게 얻은 힘을 실감할 생각도 들지 않아서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설마했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어버릴 줄이야!
‘망량이… 이런 식으로….’
방금 전까지 나를 배신했다고 생각해서 망량에게 내심 화가 나 있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막상 눈앞에서 내게 힘을 넘겨주고 소멸해버린 걸 보자 그런 감정이 완전히 사라져 버리고, 대신에 마치 아까 망량의 눈에서 봤던 것 같은 회한이 내 마음속에서 차오르는 걸 느꼈다.
아무리 그렇다지만…. 망량이 정말로 사라져야만 했던 것일까?
“안돼…. 이건….”
내가 멍하니 중얼거리고 있을 때였다. 옆의 난간에 앉아서 태연하게 담배를 뻑뻑 피고 있던 복희가 먼 산의 운무를 바라보며 말했다.
“전생의 횟수가 쌓이면서 몇 번이고 망량의 죽음을 보는 기분은 어떤가? 그래도 자네의 정신은 버틸 수 있는가?”
부릅!
나는 그 순간 울컥하는 마음이 들어서 눈을 치켜뜨고 복희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이를 악물고 걸어가서 복희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그 입 닥치십쇼.”
“흐음. 냉혈한처럼 들렸나 보군.”
복희는 내게 멱살이 잡힌 상태에서 아무런 감정없는 눈으로 나를 응시했다. 그 눈빛은 지독할 정도로 무감정했기에 나는 흠칫하고 말았다. 눈앞에 있는 게 인간처럼 생겼고 인간의 말을 하지만 근본적으로 인간을 초월한 신성이라는 게 여실히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인간을 잘 이해하고 있어도 복희는 인간이 아니었다.
“…….”
내가 멱살을 잡은 힘이 약간 풀어지자 복희는 여전히 무감정한 눈으로 나를 응시하며 말했다.
“어차피 이번 생에 자네가 전생의 완결을 보는 건 불가능한 일이야. 이대로 최선을 다해 살아가다가 29번째 삶이 시작되면 또다시 29번째 망량을 만나겠지. 그건 재회라고 할 수 없는 건가?”
“미친 소리 하지 마십시오. 그렇다고 해서 이번에 동료가 죽은 게 슬프지 않은 건 아닙니다!! 무의미한 일도 아니고요!!”
내가 버럭 소리를 치자 복희가 말했다.
“무의미하지 않다는 게 문제야. 지금까지 28번째까지는 인간성이 견명하게 살아있으나 더 횟수가 쌓이면 어쩔 셈이지? 그 모든 비극이 유의미하다면 그건 차라리 참극에 가깝지 않을까 싶군.”
“그, 그건….”
“자네는 너무 인간적이라서 비인간적인 것 같군. 내가 보아왔던 모든 인간들 중에서 가장 기이해…. 초월자들은 이런 모순이 성립하기 전에 신의 정신을 갖추거나 미쳐버리거나 둘 중 하나인데 말일세.”
알 수 없는 소리를 하던 복희가 말을 이었다.
“우선 정신을 차리게. 슬픔은 가라앉히고 내 말을 잘 들어. 지금부터 할 말은 옥황상제 자리보다 훨씬 중요하니 말일세.”
“…알았습니다.”
나는 복희의 말에 동의했다. 망량을 잃은 슬픔이 치솟아 올랐지만 어쨌든 지금은 넋놓고 있을 때가 아니다. 바깥에선 여전히 막강한 힘을 가진 광성자가 여와를 몰아붙이는 상태이기에 빨리 사태를 수습하려면 내가 뭔가 해야했다.
복희가 말했다.
“이제 자네는 탑의 공략을 끝내고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할 수 있지. 그럼 이제부터 ‘매듭’을 어떻게 할 생각이지?”
나는 움찔하고 놀랐다.
“매듭을 어떻게 알고 계신 겁니까?”
복희는 여태껏 이 봉인에만 박혀있었을 뿐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최근에 일어난 매듭의 사건을 알고 있다는 사실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여와는 처음부터 끝까지 쌍성계에 존재하는 모든 시공간을 관조하고 있었네. 당연히 자네 일행들이 대화하는 것 정도는 다 듣고 있었고, 여와가 보고들은 건 나도 알 수 있었지. 매듭에 대해 굳이 내게 설명할 필요는 없다네.”
“아.”
“질문을 잘못했군. 질문을 바꿔서, 자네는 아직도 자네가 내일 죽으리라 생각하는가?”
“…모르겠군요 정말로.”
나는 솔직히 대답했다.
“본디 영귀의 예언대로라면 저는 내일 죽게 되어있지만, 이번에 택한 ‘매듭’에서는 영귀의 예언을 듣지 않고 기린과의 모의전을 택했습니다. 그래서 예언을 듣지 않았는데….”
“과연 그렇군. 예언을 ‘듣지 않았으니’ 내일 죽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건가?”
“조금은 기대하고 있습니다….”
사실 그랬으면 좋겠다. 회피할 수 없는 죽음의 예언이라 하지만 어쩌면 그걸 들었기 때문에 죽는 게 아닐까? 나는 그 예언을 처음부터 듣지 않았으니 그 결과도 무효가 되는 게 아닐까?
그러자 복희가 담뱃대를 난간에 통통 두드리곤 말했다.
“예언이란 그런 게 아닐세. 예언의 결과에 맞춰서 원인이 생기는 게 아니야. 그런 식으로 원인과 결과가 상보적이라면 그건 예언이 아니라 처음부터 저주인 것일세. 하지만 영귀는 그런 식으로 점을 치지 않았으니, 예정된 결과를 읽은 것뿐이지.”
“그 말씀은….”
“그런 허술한 방법으로 우주적 예언의 결과는 회피할 수 없어. 어린아이 마냥 귀를 막고 있으면 악담이 들리지 않는다는 것과 다를 게 뭔가? 귀를 막고 있더라도 어쨌든 악담은 행해진 것이고 그 사실이 없어진 것도 아니잖은가.”
“…….”
“자네가 내일 죽는 건 확정적이야. 아마 지금 몇 시진 남지 않았겠지.”
“이 봉인계의 시공간을 조종해서 시간을 늘릴 수 있지 않을까요?”
“지금 내겐 그럴 만한 힘도 없을 뿐더러 바깥에서 광성자가 공격해대는 상황에 내부 시공간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건 자살행위지. 여와에게 부담만 줄 것이네.”
“크윽….”
내가 암울한 목소리를 내뱉자 복희의 말이 이어졌다.
“하지만…. 망량은 자네의 매듭을 알게 된 직후에 그것까지 계산했지. 그러니 자네는 ‘매듭’을 반복할지 아닐지를 지금 선택할 수 있어.”
“…무슨 말입니까?”
뜻밖의 말에 내가 눈이 번쩍 뜨여서 그를 바라보자, 복희가 말했다.
“지금 자네에게 부여된 전륜성왕의 직위란 무엇인가? 명계의 지배자이지.”
“그렇죠…. 아!”
내가 뭔가를 깨닫자 복희가 훗하고 웃었다.
“명계란 바로 죽음을 지배하는 세계. 그리고 그곳의 지배자가 된다 함은, 자네는 진정한 의미에서 불사(不死)를 획득했다는 뜻일세. 어떤 식으로 죽음의 운명이 다가오더라도 죽음의 지배자를 또 죽일 순 없지 않은가?”
“……!!”
“우연인지 필연인지 몰라도 망량의 계획은 처음부터 끝까지 맞아들어가고 있군…. 마치 이렇게 될 것을 알고 있기라도 했던 것처럼….”
묘한 어투로 중얼거리던 복희가 말했다.
“아무튼 자네는 곧 죽음을 맞이하더라도 전륜성왕의 힘을 이용해서 죽음의 상태를 무효화시킬 수 있어. 하지만 원한다면 죽음에 순응하여 또 한 번 ‘매듭’을 반복할 수도 있지. 이제 이해가 되었나?”
“이해가 되었습니다.”
나는 자신있게 대답했다.
“제가 매듭을 반복할 리는 없습니다! 여기까지 오는데 어떤 고생을 치렀는데…. 그리고.”
“아마도 매듭 그 자체의 제약도 있겠지. 매듭이 있기 때문에 죽는 것일 수도 있고.”
복희가 무감정한 눈으로 나를 보더니 말했다.
“그럼 이제 자네가 해야할 일은 하나일세. 바로 망량이 제시했던 계획대로 명계로 가서 윤회를 되살리는 것일세. 아마 명계의 옥좌에 도착하면 저절로 방법을 알 수 있을 것이네.”
“당장 해야만 합니까?”
“그래야만 하고 말고. 왜냐하면 윤회를 되살리지 않는다면 자네는 죽음을 회피할 수 없거든.”
“…네? 아깐 전륜성왕의 권능으로 죽음이 무효화된다고….”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내가 황당한 눈으로 복희를 보자 복희가 말했다.
“방금 말했던 명계 지배자의 권능은 명계가 제대로 기능한다는 전제하에 발동하게 되어 있네. 즉 자네는 광성자의 포위공격에서 빠져나가 명계까지 가는 행로를 취하며 끝까지 살아남아야 하는 거지. 그리고 윤회를 되살린 후 매듭을 푸는 것일세.”
“…….”
“아마 이게 마지막 고비일 걸세. 자네를 마지막으로 위협하는 죽음의 고비일 게야. 마음 단단히 먹게나.”
제기랄!
세상 일 쉬운 게 하나도 없군!
좀 쉬운 게 있으면 어디 덧나냐!
“가능할까요? 광성자가 그렇게 강력한 존재라면 대신격 이상의 힘일 텐데…. 방법이….”
“못된 버릇이 있군. 조금만 막히면 타인에게 의지해 버리는가?”
“아니…. 그래도 저보다는 복희님이 현명할 테니…. 시간도 없고….”
“흠.”
복희는 담배를 뻐끔 피우더니 말했다.
“옥황의를 전개시켜서 두르고 전륜성왕의 칠보를 소환하게. 그리고 나와 함께 돌파하는 수밖에 없겠군.”
“알겠습니다.”
우우웅
나는 옥황의의 영력을 끌어내어서 두른 후 전륜성왕의 칠보를 소환했다.
칠보(七寶).
이것은 망량에게 받자마자 알게 된 능력으로써, 본디 명계를 구성하는 7개의 지보였으나 전륜성왕의 편의에 따라 보물의 형태로 굳어진 것이었다. 다만 이것은 보패가 아니었으며 도리어 하나하나가 권능이라고 하는데 지금으로써는 이게 무슨 차이인지 잘 알 수가 없었다.
일곱 개의 기이한 형상이 몸 주위를 원형으로 두르자 망량이 준 흑황색의 기운이 내 몸 전체를 둘러싸는 게 느껴졌다. 동시에 내 심장이 크게 찌릿하는 기분이 들었다.
“으윽…!!”
엄청나게 따끔하다. 내가 격통에 움찔하자 복희가 말했다.
“절대 자주 쓸 수 없는 능력일 걸세. 자네는 옥황상제의 권능을 지녔으니 옥황의와 그 영력으로 피해를 반감시키고 있으나 사실 지금 심장을 찌르고 있는 건 순수한 죽음의 기운 그 자체야.”
“네?!”
“그건 원래 필멸자가 지닐 수 없는 능력이네. 죽음에서 태어난 죽음 그 자체인 전륜성왕만이 자연스레 쓸 수 있었지. 망량은 극한에 달한 시해지술의 능력으로 최대한 죽음의 기운을 중화시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내 버티지 못한 셈.”
“…….”
“옥황상제의 힘으로도 그걸 완전히 중화시키는 건 무리일세. 우주의 죽음을 다루는 권능이니까. 자네는 앞으로 그 권능을 해갈시킬 방법을 찾아야 할 걸세.”
“…알겠습니다.”
생각보다 골치아픈 걸 받아버린 느낌이다. 잠시 후 복희가 담뱃대를 털고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그럼 가 보지.”
우우우우우!!
쿠와앗
잠시 후 전방의 운무가 가득한 광경이 송두리째 사라지고 눈앞에는 그저 거대한 암천의 하늘만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나는 어느 새 거대한 비늘이 가득 펼쳐진 평원에 서 있었고 전방에는 거대한 산 같은 게 두 개 보였다.
‘저건?!’
복희는 어디 간 거지?
내가 의아해하고 있을 때 복희의 영언이 머릿속으로 들려왔다.
[나는 본체로 되돌아왔고 자네는 내 머리 위에 있네.]
“헉!”
그 말은, 저 두 개의 거대한 산은 복희의 뿔이란 말인가?!
내가 경악하고 있을 때 복희가 말했다.
[최대한 뚫어볼 터이지만 광성자의 공격은 내가 다 막을 수 없을 것일세. 자네가 칠보를 이용해서 그의 공격을 막아내야만 하네.]
“해 보겠습니다!”
[그럼 간다.]
쿠오오오
잠시 후 복희의 본체가 승천하기 시작했다. 거룡이 비상하기 시작하자 차원 전체가 비틀려서 깨지는 듯 했고, 이내 거대한 성운과 어둠이 가득한 대우주의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리고 대우주의 전면에서는 여와의 본체가 떠올라서 ‘무언가’와 싸우고 있는 중이었다.
‘저게 광성자?!’
과거에 봤던 모습과는 확연히 다르다.
보는 것만으로도 필멸자에게 어마어마한 공포를 줄 것만 같은 우주적인 존재!
저게 광성자의 본체였단 말인가?
고오오오
쿠궁
여와의 양손에서 은빛의 섬창이 발사되어 빛무리로 가득한 ‘무언가’를 공격했으나 상대는 무한대에 가까운 별빛을 소환하여 그 섬창을 막아내는 듯 했다. 그리고 빛무리가 나와 복희를 인식한 듯 영언을 보내왔다.
[오오…. 스스로 우리에서 나왔구려, 복희여. 그 오욕으로 점철된 세월을 내가 마무리해 주겠소.]
피피핑
순식간에 셀 수 없을 정도의 별빛이 마치 은하수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언뜻 느려 보였으나 그게 사실 하나하나가 신급 권능이 담겨있는 공격이란 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여와가 노호성을 터뜨리며 외쳤다.
[황제의 개여!! 복희에겐 손댈 수 없다!!]
위잉!!
여와의 권능이 치솟아 오르며 나와 복희 주변에 거대한 방어막을 만들어내었다. 그러자 빛무리로 가득한 ‘무언가’가 웃음을 짓는 듯 했다.
[나 [유지하는 자]로서 우주의 질서에 명한다. 위대한 지배자의 시간을 메울 지어다.]
카앙 -
[으으….]
[내 최고의 술법 중 하나. 아무리 당신이라도 그걸 깨긴 쉽지 않을 것이오, 여와.]
[잔재주를.]
그 언령이 떨쳐지는 순간 여와는 갑자기 뻣뻣하게 굳어버리는 듯 했다. 나는 그 광경에 묘한 기시감을 느꼈고, 다음 순간 어떻게 된 일인지를 깨달았다.
‘과거에 광성자가 서왕모를 제약했던 그 술법과 똑같아!!’
그 때도 서왕모를 제약하는 걸 보고 대단한 술수라고 생각했는데 설마 여와 본체에게도 통한단 말인가?! 그러자 여와가 힘을 써서 풀어내는 듯 했고 빛무리가 그 틈을 타서 우리를 향해 적의를 방출했다.
[과거의 당신은 위대한 존재였소. 허나 지금의 당신은 그저 덩치 큰 용에 지나지 않으니…. 이만 우주의 먼지가 되어 사라지시오, 복희!!]
후오오오오
마치 응룡이 우주의 바람을 소환했던 것처럼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광대한 범위에서 별빛이 쏟아지는 게 느껴졌다. 저 수많은 빛 하나하나에 천지를 궤멸시키는 힘이 있다면 도대체 어떻게 방어할 수가 있을까? 하물며 지금은 파천의 가호도 없는데!
내가 암담해져서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때 복희가 말했다.
[지금이 바로 칠보를 쓸 때다.]
“…해 보죠!”
나는 칠보를 소환하며 외쳤다.
“칠보여, 막아라!!”
위이이잉
내 외침이 떨어진 순간 무수한 수레바퀴가 떠올라서 사방에서 덮쳐오는 별빛을 막아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수레바퀴가 만들어내는 허공의 길을 따라 복희가 크게 날갯짓을 하며 날아가기 시작했고, 그 속도가 빛의 속도를 넘기 시작하자 나는 주변의 광경이 빛의 소용돌이처럼 바뀌는 걸 알 수 있었다.
파아아아앗
잠시 후 나는 복희의 비늘에서 몸이 튕겨져 나가서 하늘을 날기 시작했다는 걸 깨달았다. 어느 새 복희의 모습도, 여와의 모습도, 광성자의 모습도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나는 맑은 빛과 파장으로 가득한 공간을 부유하면서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어떻게 하지.
이제 명계로 어떻게 가야하는 거지?!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내 몸뚱이가 갑자기 빠르게 땅으로 떨어져내리기 시작했다.
쿠웅!!
“커헉….”
후두둑
나는 충격과 함께 돌더미에 깔려서 몸을 꿈틀거렸다. 대단한 충격이었지만 옥황의로 몸을 감싼 덕에 충격이 많이 감소한 듯 했다. 제대로 부딪혔으면 아무리 호신강기를 썼어도 몸이 터질 정도였는데 다행이었다.
나는 정신을 차리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곤 깨달았다.
“도착했군.”
명계(冥界).
그 중에서도 염라부(閻羅府)에 떨어져내린 것이었다. 이제 이곳에서 삼백 리 정도만 더 간다면 전륜성왕의 방이 나올 것이고, 나는 그곳에서 명계를 회생시키는 일을 진행해야 하리라.
하지만 주위에서 수백 개나 되는 기척이 갑자기 느껴졌다. 나는 급히 칠요를 뽑아들고 주위를 경계했는데, 잠시 후 염라부 궁궐의 사방에서 수많은 염라귀와 염라신장들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쿠우우우
우오오오….
염라귀들의 손에는 흉흉한 무기가 들려 있었고 염라신장들은 키가 삼 장을 넘는 체구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심지어 수백 마리로 끝이 아니었으며 사방에서 더더욱 몰려들자 수천 마리는 될 듯 했다.
꿀꺽
‘제길…. 싸워야 하나.’
내 힘으로 저 놈들을 다 죽일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겠다. 저래 봬도 저 놈들은 하나하나가 인간계 상급 무사조차 감당하기 힘든 영적 존재였고, 수천수만 마리가 몰려들 경우 힘을 크게 소진할 확률이 컸다. 내가 내심 각오를 다지고 있을 때였다.
풀썩!
갑자기 내 근처에 있던 염라귀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이며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그걸 시작으로 뒤에 있던 염라신장들도 무릎을 꿇으며 크게 외쳤다.
[대왕폐하 만세!!]
[대왕폐하 만세!!]
그걸 시작으로 수천 마리의 귀졸들과 염라신장들이 쩌렁쩌렁 외치며 내게 절을 하기 시작했고 그 기세는 마치 썰물과도 같았다.
[대왕폐하 만세!!!]
마침내 지평선까지 가득 메운 수만 마리의 염라국 병사와 장수들이 무릎을 꿇은 모습이 내 눈에 남게 되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구나.’
저 자들은 수천 년 동안 명계의 지배자 전륜성왕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