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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옥황상제이자 전륜성왕?!
‘뭐, 뭐야! 이야기가 너무 급작스러워서 이해가….’
나는 당황하고 말았다. 망량이 갑자기 나타난 건 그렇다 치더라도 그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건지 이해가 잘 안되었기 때문이다. [기어오는 혼돈]의 관심을 돌리기 위한 계획이란 건 알겠는데 그게 어째서 내가 옥황상제이며 전륜성왕이 되는 것과 관계가 있단 말인가?
그러자 담뱃대를 쥐고 있던 복희가 망량을 슥하고 쳐다보며 말했다.
“자네의 마음이 급한가 보군. 사전설명은 하지 않고 큰 계획의 요체부터 말하는 걸 보면.”
망량이 그 말에 다소 지친 느낌으로 대꾸했다.
“오래 버틸 수 없습니다…. 힘이 남아있을 때 뭐라도 해야 합니다.”
“그렇겠군, 전륜성왕의 업(業)은 감당하기 만만치 않을 테니.”
뭐라고?
나는 망량을 향해 외쳤다.
“망량! 당신이 전륜성왕이란 말이오?”
그 말에 망량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나는 현재 전륜성왕, 명계의 지배자이자 칠보(七寶)의 주인이오!”
“……!!”
명계의 지배자!
나는 그 말에 망량이 지금까지 수상한 기척과 힘을 보였던 이유가 바로 그의 몸을 휘도는 황색 기운 때문이라는 걸 알아차렸고, 그 힘이 바로 그를 전륜성왕으로 만드는 것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하지만 전륜성왕이라는 개념 자체가 여태까지 확실한 게 아니었기에 나는 망량에게 질문했다.
“지금까지 전륜성왕이란 지옥시왕(地獄十王)을 다스리던 군주이자 명경의 주인이라는 것밖에 몰랐소. 그가 7계만다라의 함정을 방 전체에 깔고 온갖 보물을 봉인했다는 정도밖에…. 그런데 당신이 갑자기 전륜성왕이자 명계의 지배자가 되었다 하니 너무 갑작스럽구려.”
내 말에 망량이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더니 말했다.
“거기에 대해 이야기할 게 너무 많소…. 그걸 다 말하기에는 이 공간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이 짧소.”
“흠!”
“다만 지금 확실히 말해둘 수 있는 건, 전륜성왕의 자리는 매 전생마다 당연스럽게 취득할 수 있는 게 아니며 우연히 얻게 된 기연(奇緣)이었소. 또한 나는 이 전륜성왕의 힘을 시해지술을 이용해서 얻어냈으며, 이제 당신에게 넘겨줄 생각이오.”
“내게 전륜성왕의 힘을 넘겨준다고?”
망량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부터 그러려고 얻은 힘이오. 그럼 당신에게 계획을 설명해도 되겠소?”
“…말해주시오.”
망량의 태도로 보면 아무래도 이 복희의 봉인계에 머무를 시간은 한정되어 있는 모양이었다. 그 전에 결론을 내야하는 것 같으니 시간을 낭비할 수 없는 듯 하다. 내 대답에 망량이 말했다.
“당신이 산하사직도에서 돌아온 후 [기어오는 혼돈]의 도발이 이어지자 나는 여와에게 꾀를 내어 대답했었소. 오로지 전생자 백웅만이 해답이 될 수 있으며, 백웅을 천지인 삼계의 제왕으로 하여 온 우주의 관심을 받게 해야 한다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 천계의 탑의 시련을 이용하자고 말했소.”
“탑의 시련을 이용하자고?”
“본디 복희와 여와는 천계탐사대에게 큰 관심이 없었소. 다만 도전하는 게 신기해서 가능성 있어 보이는 무인에게 축복과 가호를 내린 정도였지. 당신이 귀환하기 전까지는 신들의 심심풀이에 불과했던 게 사실이오. 당신이 오지 않았다면 99층까지 그저그런 난이도의 시련만 반복되다가 적당히 통과했겠지.”
“…….”
“하지만 탑의 시련을 강화하고 강대한 시련관을 놓아두었다는 건, 그 반대급부인 보상 또한 막강하게 하사하는 게 가능하다는 뜻. 인과율의 법칙을 이용하기로 했던 것이오.”
나는 망량의 말에 뭔가를 눈치챘다.
“설마 맨입으로는 내려줄 수 없는 보상을 아무 소모없이 우리에게 넘겨주기 위해서 시련의 난이도를 높였단 말이오?”
“바로 그거요. 아무리 여와와 복희가 창세신이며 삼황이라 해도 인과율을 무시할 순 없소. 강력한 가호나 힘을 내려줄수록 그만큼 인과율이 소모되오. 하지만 그나마 질서의 명맥을 수호하는 그들이 인과율을 과도하게 소모하면 세계의 멸망만 앞당기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지. 이렇게나 쪼들리는 상황에서 제 살 깎아먹기는 할 수 없었소.”
망량의 눈빛이 더 강렬해졌다.
“당신이 마주쳤던 후예나 항우의 시련은 더할 나위없이 어려웠겠지만 그 난이도만큼 당신에게 부담없이 강력한 힘을 대가없이 넘겨줄 수 있게 된 것이오. 여와가 항우의 시련에서 과하게 개입하며 집착했던 이유가 바로 그것이오.”
“…어렴풋이 이해는 되오만, 여와는 어째서 항우의 시련을 편법으로 통과할 때 그토록 화를 낸 것이오? 모로 가도 도착만 하면 되는 것이거늘.”
“똑같은 원리요. 결국 당신은 시련을 정당하게 통과한 게 아니기 때문에 그만큼 인과율의 보상도 줄어들게 되는 것이오. 히든피스를 이용해서 다중우주의 시공간을 소환하여 통과한 건 절묘한 책략이었으나, 그만큼 당신에게 대가없이 넘겨줄 수 있는 힘의 범위도 줄어든 것이오.”
“…….”
“물론 지금 넘겨줄 힘과 가호만으로도 당신이 삼계의 지배자가 되는 건 무리가 없소. 그러나 여와의 입장에서는 자기자신과 복희의 운명까지 당신에게 맡기는 판에 줄 수 있는 가호의 범위가 크게 줄어든다는 건 불안하기 그지없는 요소였을 것이오. 자기 운명을 걸고있는 최강의 말에게 모든 걸 몰아줄 수 없다는 불안감.”
“그런가….”
여와 특유의 완벽주의 때문에 신경질을 냈었단 말인가?
알 것 같기도 해서 내가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때 복희가 쓴웃음을 지었다.
“이해해 주게, 백웅. 여와는 날 위해서 황제와 거래했을 정도로 우리의 처지에 신경을 쓰고 있었으니까.”
“네?”
“자네의 동료인 무후 제갈량이 갖고있는 저주인 음부경(陰符經)의 저주 말일세.”
“……!!”
내가 흠칫하자 복희의 말이 이어졌다.
“음부경을 지은 것은 바로 황제의 수하이자 만신전의 일원인 광성자. 그 자는 강력한 술법이 기록된 비서 음부경을 남기면서 그걸 수련한 자가 내게 육신과 영혼을 뜯어먹히게끔 인과율을 걸어두었다. 그건 여와의 요청에 따른 것이었지.”
“제가 알고있는 사실과 같군요. 그런데 여와가 왜 그런 짓을….”
“나는 이 봉인계에 갇히면서 세계와의 모든 연결이 끊어졌고 동시에 세계에서 아무런 힘도 지원도 받을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달리 말하자면 먹을 게 없어서 굶어죽을 처지가 되었던 것이지. 아무리 내가 강력한 신성이라도 먹을 게 없으면 자멸하게 된다.”
“…….”
“여와는 그 때문에 천계에서 신선을 몰래 빼돌려 잡아먹어서 내게 신선들의 영육을 보내주곤 했다. 그걸로도 내 연명을 위한 영력이 크게 부족했기에 황제와 거래하여 주술사들의 영혼까지 공급하려 했던 것이다. 음부경에 수록된 황제의 술수를 익혀서 강력해진 술법사들의 영혼도 충분히 먹을 만 했으니까.”
“그, 그럴수가.”
“모든 건 혈육인 나를 살리기 위해서였지.”
나는 순식간에 지금까지 궁금했던 점 두 가지가 해결된 걸 알 수 있었다.
여와의 화신 서왕모의 식선(食仙) 살육.
음부경에 새겨진 복희의 용린(龍鱗) 저주.
그 두 가지는 모두 봉인계에 봉인된 복희가 굶어죽지 않고 연명하게 하려는 여와의 계획이었던 것이다. 나는 머리를 망치로 맞은 듯한 느낌 때문에 멍하니 있다가 문득 정신을 차리곤 말했다.
“여와가 음부경을 이용해 황제와 거래했다면 위험한 거 아닙니까? 황제가 그 계약을 빌미로 개입할수도….”
“황제는 그런 사소한 계약으로 용렬한 수를 쓸만큼 통이 작은 자가 아니야. 그건 패배한 과거의 호적수에게 보내는 조롱섞인 자비에 가까웠지. 내 먹이가 되는 인간술법사 따위는 그에게 벌레나 다름없는 거지.”
“…….”
“아무튼 그러하네. 너무 여와를 나쁘게 보지 말아줬으면 하네.”
나는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어찌되었든 여와는 다른 존재를 살육하고 당신에게 인신공양한 게 아닙니까? 인간의 관점으로는 어떻게 보아도 악감정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흐음. 그렇겠구만. 그럼 계속 싫어하게나.”
“…….”
“어차피 불완전한 이상 다른 존재를 약탈하고 살육하는 것이 존재의 업. 여와 스스로가 자네에게 용서받는 수밖에 없겠군.”
초탈한 듯한 복희의 말에 내가 도리어 독기가 빠질 지경이었다. 이제 보니 복희는 그저 혈육으로써 한 마디 해줬을 뿐 내게 자신의 의지를 강요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용서는 제가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당연히 그렇지 않겠나? 그럼 이야기를 계속하지.”
복희는 당연히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화제를 돌렸다. 그러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망량이 입을 열었다.
“백웅. 어찌되었든 내가 당신에게 전륜성왕의 힘을 넘기고, 이어서 복희와 여와가 당신에게 쌍둥이 신의 가호를 내리게 되면 당신은 즉시 천계의 옥황상제가 될 것이오. 구천현녀와는 미리 이야기가 되어있으니 그녀도 절대 반대하지 않을 것이오.”
“음.”
“그리고 삼계의 지배자가 되는 즉시 당신은 명계로 가서 윤회(輪回)를 되살리시오.”
“윤회를 되살린다고?”
내 반문에 망량이 대답했다.
“당신도 알다시피 현재 이 세계는 명계가 망가져버려서 인간의 혼이 윤회하지 않고 [옛 지배자]의 뱃속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소. 하지만 당신이 새로운 전륜성왕이 되어 명계를 되살리면 윤회체계 또한 부활하게 되오. 그렇게 되면 불행하게 소멸하는 인간의 운명이 크게 선순환하게 될 것이며, 또한 강대한 영력(靈力)이 인간계에 고이게 될 것이오.”
“……!!”
“윤회란 고리이니 삼계(三界)가 원융회통(圓融會通)하는 흐름이 되살아나면 삼계에 속한 존재들은 모두 이전까지보다 강력한 힘과 인과율을 갖출 수 있게 되오. 결과적으로 당신은 역대 최강의 세력을 휘하에 거느리게 되는 셈이지.”
“그, 그런데.”
나는 망량의 말에 크게 솔깃했지만 조심스럽게 딴지를 걸었다.
“그 인위적으로 망가진 윤회의 체계는 삼황오제와 모종의 [옛 지배자]의 계약으로 유지되는거라고 하지 않았소? 그 자의 뱃속으로 모든 영혼이 들어가는 대신에 삼황오제가 새롭게 혼을 만들어서 세계에 공급하는 거라고 했었는데.”
“그렇소. 하지만 현재 그 계약의 주체인 삼황오제는 거의 모두가 부재상태요.”
“응?”
“오제 중에서 사제가 실종되었고 삼황 모두가 은거상태. 계약의 효력은 거의 상실되었다는 걸 이미 확인했고, 만일 삼황 모두가 사후계약의 연장을 반대하고 철폐에 찬성하게 된다면 저절로 계약은 폐기될 것이오. 왜냐하면 과반수의 동의가 있으니까.”
“오오!”
“신농을 설득하는 게 일이긴 하지만 여와가 우리 편을 들어주기로 한 이상 신농의 봉인을 푸는 건 일도 아니오. 또한 신농이라면 당연히 지금 상황에서 우리 손을 들어줄 것이오.”
“그렇겠군.”
신농의 봉인중 대부분은 여와가 큰 지분을 갖고 있는 상태이다. 지금껏 여와를 처리할 방법이 없어서 신농을 깨우기 힘들었는데, 여와가 아군이 된다면 전혀 문젯거리가 아니었다.
“윤회를 부활시킨 후에는….”
망량이 계획을 계속 설명하려는 그 때였다.
쿠구구궁!!
갑자기 이 육각정자 전체가 뒤흔들렸다. 그러자 복희와 망량의 표정이 동시에 좋지 않게 변했다. 복희가 중얼거렸다.
“예상보다 훨씬 빠르군. 벌써 암살자를 보내올 줄이야.”
나는 그 말에 눈을 둥그렇게 떴다.
“암살자? 무슨 말입니까.”
“황제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게. 인과율을 읽을 수 있는 그 자가 과연 우리의 다음 수를 읽지 못했을까? 우리가 윤회를 부활시키고 자네를 전면에 내세우려 한다는 걸 알고 있다면 그 계획을 막을 제일 간단한 방법이란….”
그가 새하얀 손가락으로 자기자신을 지목했다.
“바로 나를 제거하는 거지. 날 없애버리는 게 제일 간단할 뿐만 아니라 모든 계획을 무용지물로 만들 수 있는 급소니까.”
“……!!”
“자네나 망량은 인과율을 읽는 그로써도 어떻게 튈지 모르는 존재이므로 건드리기 쉽지 않지만 나는 모든 신성을 잃은 거대한 용에 불과하니까. 부하 하나만 보내도 손쉽게 없앨 수 있지.”
나는 황당해서 외쳤다.
“그렇게 담담하게 말할 때입니까?! 당장 여와를 불러와서 막아야….”
“흠, 와 버렸군.”
쿠구구구!!
갑자기 운무로 가득하던 공간에서 어두운 차원문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 차원문에서 무언가가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하나의 거대한 거인(巨人) 그 자체였다.
전신이 청염으로 가득 물든 거인.
거인의 눈빛이 육각정자에 몸을 걸친 복희에게 향했다.
[복희여…. 이런 곳에 있었소?]
복희는 그 눈빛을 피하지 않고 담배를 뻐끔 피우곤 대꾸했다.
“오랜만이군. 옛 얼굴을 많이 보는 날이야.”
[…….]
우우웅
청색 불꽃이 뱀의 혀처럼 날름거렸다. 가공할만한 청염의 채찍을 들고 있으며 압도적인 염력(炎力)을 뿜어내는 그 존재는 내가 익히 본 적이 있었기에 나는 크게 외쳤다.
“…축융(祝融)?!”
틀림없다. 저건 바로 거신 축융!
만귀전의 2인자인 거신 려(黎)이자 본디 거신족 출신이었던 그 존재가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왜?!’
축융은 전욱이 흉신의 저주로 소멸하면서 실종되었다고 알고 있었는데 왜 하필 이 자리에서 나타나는 것인가?! 만귀전의 2인자가 황제의 암살자가 되어 나타나는 상황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나는 이내 정신을 차리곤 말했다.
“복희님! 아무리 축융이라 해도 여와에겐 상대가 안 될 겁니다. 당장 여와를 불러서 격퇴하십시오.”
복희의 원래 능력이라면 여와를 부를 필요도 없겠지만 어쨌든 이 공간에 여와도 올 수 있는 게 아닌가? 여와의 힘이라면 아무리 축융이 막강해도 손쉽게 물리칠 수 있으리라!
그러자 복희가 말했다.
“여와는 아까 전부터 우리가 대화하는 이 장소에 와 있었네. 보이지 않는 화신을 만들어놓았지. 하지만 지금 기척이 사라져 버린 듯 하군.”
“네?”
“아무래도…. 축융보다 더 강력한 존재를 도우미로 보내온 듯 싶어. 그렇지 않은가, 축융?”
복희의 말에 허공에 둥둥 떠 있던 축융이 대답했다.
[그렇소, 복희여. 여와의 개입을 막기 위해 광성자(廣成子)가 나섰소. 지금 봉인계의 경계에서 여와와 권능을 겨루고 있지.]
“……!!”
[아무리 여와라도 그를 상대로는 쉽지 않을 것이오. 나는 광성자가 여와를 붙잡는 동안에 당신을 갈기갈기 찢어버릴 것이오.]
쿠구구구
축융의 청색 채찍이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거렸다. 나는 저 청색 채찍을 보자 침을 꿀꺽 삼켰다.
‘제기랄…. 정말로 저 놈을 물리쳐야 하나?’
축융은 삼황에 비하면 손색이 있으나 절대 만만치 않은 존재다. 예전에 마왕 팔부신중을 상대로 혼자서 몰아쳤던 괴물같은 놈이었으며 격으로 따지면 상위 투신이라고 할 수 있었다. 전욱 다음가는 신격이라는 점에서 이미 [옛 지배자]의 일원이라고 볼 수도 있었다. 필멸자 수준에서 상대하는 건 무리다.
나는 앞으로 나서서 축융에게 외쳤다.
“축융!! 당신은 전욱의 충실한 수하가 아니오?! 어째서 황제의 명령을 듣는 것이오!”
[…네가 말로만 들었던 전생자 백웅인가?]
“그렇소!”
축융은 나를 힐끔 보더니 말했다.
[황제는 내 주군의 부활을 약속하셨다. 복희를 해치워야만 주군께서 되살아나실 수 있다는 말이다.]
“……?!”
[원한은 없으나 너흰 모두 죽어줘야겠다…!!]
우우웅!!
잠시 후 축융의 시퍼런 채찍이 크게 허공을 유영했고, [작은 굴레]가 휘돌면서 아무런 인과관계도 없이 우리 쪽을 향해 날아들었다.
‘빌어먹을! 또 신족 특유의 인과조작….’
나는 [작은 굴레]를 조작하는 공격이란 걸 알아도 현재 대비할 방법이 하나도 없었기에 그저 코앞에서 공격이 날아오는 걸 볼 수밖에 없었다. 물질계의 무인에게는 악몽과도 같은 공격이었다.
‘복희는 아마 아무런 힘도 못 쓸 것이다. 그럼 내가 막아야 해.’
우우우우!!
이 자리에서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직감이 들었고, 나는 즉시 전신의 힘을 폭주시켜서 대라멸진을 시전하려고 했다. 대라멸진에 모든 칠요의 힘을 사용한다면 축융을 상대로도 어느 정도 싸울 수 있을 것이다!
‘대라멸진으로 전력을 증폭시키면 어떻게든….’
죽으면 어쩔 수 없지만 다음 매듭을 노리는 수밖에 없으리라.
하지만 그 순간이었다.
[관두시오, 백웅.]
망량에게서 기이한 힘이 흘러들어오더니 대라멸진을 해방하려는 내 움직임을 멈추었고, 동시에 망량의 손이 앞으로 뻗어지면서 크게 낚아채는 동작을 취했다.
콰드득!!
[…아니?!]
축융이 당황한 목소리를 내었다. 왜냐하면 흑황의 의복을 입은 망량의 손아귀에 그의 청색 채찍이 붙잡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망량은 양 손에 채찍의 줄기를 하나씩 잡은 채 무표정하게 서 있었다.
망량이 천천히 말했다. 어느새 그의 목소리는 육성이 아닌 영언으로 변해 있었다.
[저런 잡졸을 상대로 목숨을 낭비하지 마시오.]
뜻밖의 상황에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설마 지금 상황에서 망량이 축융의 일격을 막아낼 것이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다만 처음부터 끝까지 태연한 표정인 것은 복희였고, 그는 마치 예상했다는 표정으로 흔들림이 없었다.
뿌드득
축융이 채찍을 잡아끄는 동작을 취했으나 망량의 손에 잡힌 채찍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축융이 극히 대노한 듯 전신에 청염을 이글거리며 태웠다.
[잡졸이라고? 건방진….]
후와악!!
축융의 채찍에서 거대한 청염이 일어났다. 그 청염은 삽시간에 채찍을 붙잡고 있던 망량의 전신을 불태웠고, 마치 이 운무 가득한 세계 전체가 불꽃에 불타는 느낌이 들었다.
망량의 신형은 청염 때문에 보이지 않을 지경이 되었고 축융이 광소를 터뜨렸다.
[크하하하!! 과거 대신격에 맞먹었던 공공도 이 일격은 막아내지 못했다! 세계를 불태우는 채찍을 어찌 막을 것이냐!!]
슈르르르
슈르르르륵
[……?!]
천천히 사방팔방의 청염이 망량의 몸 속으로 빨려들어가고 있었다. 전 세계를 불태우던 청염은 이 육각정자 내부에 있는 우리 셋에게 전혀 피해를 입히지 못했고, 망량의 몸에서 기묘한 흑황(黑黃)색의 기운이 그저 불꽃을 빨아들이고만 있을 뿐이었다.
망량이 차분하게 말했다.
[광성자가 만든 결계의 빈틈으로 들어온 건가? 그렇다면 광성자가 직접 들어오기 전에 끝내야겠군. 당신부터 처리해 두면 광성자가 알아서 물러날 터.]
[미친… 필멸자 따위가 뭐라고 하는 거냐.]
고오오오
망량의 몸 주위에서 황색의 기운이 더욱 강해졌다.
[나 망량은 전륜성왕의 이름으로 명한다.]
망량은 자신의 한쪽 손을 들어올리며 축융을 가리켰다.
[칠보전륜(七寶轉輪). 저 자를 윤회의 고리에 가두어라!]
후웅!
그 순간 망량의 몸 주위를 떠 다니던 황색의 유물들이 동시에 축융의 몸 근처에 나타났다. 축융은 신력을 발휘해서 유물들을 파괴하려 했으나 축융의 공격이 다가오자 유물들은 하나하나가 거대한 바퀴(轉輪)처럼 변해버렸다.
[아니?]
그제서야 축융은 뭔가가 잘못 되었다는 걸 알아차린 듯 했으나 때는 늦었다. 망량의 손짓에 따라 거대한 바퀴가 축융의 사지(四枝)를 한 번씩 잘라버렸고, 수레바퀴가 허공에서 무한대로 늘어나면서 계속해서 축융의 몸을 갈아버렸다.
위이이이잉!!
축융은 이윽고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고깃조각이 되어버렸으며 그런 축융의 육신에서 새파란 혼이 펑하고 날듯이 터져나왔다. 망량은 그 혼을 그대로 바퀴에 고정시켜서 가둬버린 후 나직이 중얼거렸다.
[거신 축융. 명계의 지배자 전륜성왕의 권능으로 그대의 혼을 인간으로 강등한다. 종말 직전까지 최선을 다해 살아가도록 하라!]
파앗
그 혼은 이윽고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그게 소멸이 아니라는 건 바로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 나는 무시무시한 위력을 발휘한 망량을 바라보며 말했다.
“망량. 설마 방금 그 자는….”
“인간으로 환생시켰소…. 쿨룩!!”
다시 영언이 아니라 육성으로 말을 하는 망량은 입에서 피섞인 기침을 토해냈다. 망량은 자신의 피를 닦으며 말했다.
“미안하오. 절대 이 힘을 소모하지 않고 넘겨주려 했으나…. 축융을 퇴치하는데 상당한 힘을 써 버렸소…. 쿨룩.”
“…….”
나는 망량의 말을 듣고서 깨달을 수 있었다.
‘이게 바로 명계의 지배자, 전륜성왕의 힘…!!’
칠보전륜!
상대가 신이라 할지라도 강제로 강등시켜 윤회의 고리에 가두어 환생시키는 권능!
내가 경악하고 있자 복희가 말했다.
“바깥에서 여와가 고전하고 있는 듯 하네. 광성자가 지난 세월 동안 황제 덕에 인과율을 얻어 힘을 많이 키웠나 보군.”
“그런….”
“신전(神殿)과 인과율의 차이란 무시할 수 없지.”
광성자가 강력한 신성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 삼황을 고전시킬 정도로 강력해졌단 말인가?
“백웅. 자네의 각오와 선택만이 남았네.”
복희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 계획대로 하면 어떻게 하든간에 결국 [기어오는 혼돈]의 화신인 태허천존과 마주치게 될 것일세. 그 때 자네에게 어떤 고난이 닥쳐올지는 솔직히 예상을 못 하겠군. 그러나 그 고난을 감수하고서라도 끝까지 갈 각오가 되어 있는가?”
“…….”
“차라리 중간에 포기하고 자살하는 게 나을지도 몰라.”
나는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도 바닥에 엎드려서 피기침을 토하는 망량을 잠시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보다가 말했다.
“하겠습니다.”
여기까지 왔는데 어떻게 무를 수 있겠는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끝까지 가서 [기어오는 혼돈]의 엉덩이를 차줄 수밖에 없다!
“좋네.”
복희가 서서히 내게로 걸어왔다.
“전생자 백웅. 그대에게 지금부터 망량과 약속한 바에 따라 우리의 힘…. 반고소환(盤古召還)의 권능과 옥황상제의 직위를 양도하겠노라. 이는 [탑의 시련]을 달성한 인과율에 의해 별개의 소모가 필요없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