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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뭐라고!
사공린의 말에 좌중이 잠시 얼어붙었다. 그리고 제갈량이 훗하고 웃으며 대꾸했다.
[눈치가 빠르군. 그 말대로 할 생각이다.]
“어처구니가 없군요. 제가 그 계책에 따를 이유는 딱히 없다는 것도 알고 계시겠죠.”
[넌 따라야 할 거다. 네가 백웅의 동료라고 주장하고 싶다면.]
“…….”
사공린은 눈을 감고 뭔가를 생각하는 듯 했다. 나는 그들의 대치를 보다가 황급히 말했다.
“잠깐!! 지금 둘이서 무슨 소리 하는 겁니까? 사공린을 이용해서 황제를 소환하다니! 그런 말도 안되는 짓이 가능하다고?”
[안 될 이유가 있나?]
제갈량은 차분하게 설명했다.
[사공린은 황제 공손헌원이 세상에 내놓은 최강의 패인 천마(天魔)다. 당연히 이 세상에서 가장 황제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사도’라고 할 수 있지. 그렇다면 사공린을 제물로 바치면 어떻게 될까.]
“……!!”
[황제는 당연히 나온다. 황제를 소환하는데 있어서 이 세상에 천마 사공린 이상의 제물은 존재치 않아. 그리고 황제는 삼황 여와가 전력을 다해도 쓰러뜨릴 수 있는 몇 안되는 존재 중 하나지. 여와를 이겨야 하는 이 상황에선 지극히 합리적이지 않은가.]
제물?!
생각지도 못한 발상이었다. 나는 큰 거부감을 느끼며 외쳤다.
“웃기지 마십쇼! 아무리 제갈무후라 해도 동료를 제물로 바친다는 소리는 용납할 수 없습니다.”
[제물로 바쳤던 게 없었던 일이 된다면?]
“……?”
제갈량의 눈이 한 줌의 감정도 없이 지혜의 빛으로 번득였다.
[네가 만들어놓은 ‘매듭’이란 건 [작은 굴레]가 아닌 [큰 굴레]를 굴리는 게 확정되었다. 즉 매듭을 반복하면 이전에 있었던 사건은 모두 없었던 게 된다는 뜻이지. 그렇다면 딱 한 번만 항우의 관문을 통과해서 99층에 가기만 하면 되지 않겠나?]
“뭐….”
[항우의 태도를 잘 생각해 봐라. 그 자는 네가 ‘왕의 운명’을 걸고 99층의 시련관이 누구인지 알아맞추면 널 인정해서 통과시켜준다고 했다. 즉 99층의 시련관만 알아내면 항우와 싸울 필요가 없지.]
“…….”
[황제 공손헌원을 소환해버린 후환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공손헌원도 [큰 굴레]를 초월할 수 있는 존재는 아니다. 그 자가 어떤 깽판을 치든 간에 다음 매듭에선 그 자의 횡포가 없었던 게 되어버리지.]
제갈량이 새하얀 우선을 팔랑거리며 느긋하게 말했다.
[딱 하나 문제가 있다면 아무리 사공린이라는 최고의 제물이 준비되어 있더라도 황제를 부를만한 역량을 지닌 대마도사가 이 자리에 존재치 않는다는 것이지. 하지만 그건 이 자리에 없는 진소청을 부를 수 있다면 해결된다.]
나는 제갈량의 말에서 뭔가를 알아차렸다.
“진소청을 시켜서 사공린을 제물로 황제를 소환한다는 건가?”
[충분히 가능한 일. 그의 술법역량이 신적인 수준이라면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겠지.]
“말도 안 되는 소리. 나는 동료를 제물로 바칠 생각이 없고, 무엇보다도 진소청 또한 그런 인신공양을 받아들일 자가 아니야!!”
제갈량이 한없이 무감정한 눈빛으로 나를 보았다.
[어떻게 확신하나?]
“뭐….”
[네 이야기를 듣던 중 지금의 진소청이 중요시하는 가치가 너희 일행과는 다른 거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 자에게 있어서 [매듭]이란 굉장히 위험한 양날의 검으로 인식되어 있고, 한시바삐 벗어나야 한다는 사실에 동의하고 있다. 전생자가 매듭에 갇히는 걸 보느니 차라리 빨리 벗어날 기책에 협력할 가능성이 높지.]
“진소청은 그럴 사람이 아닙니다.”
[500년동안 한 번도 안 봤던 인간을 어찌 그리 잘 안다고 단정지을 수 있지?]
제갈량의 시선이 사공린을 향했다.
[저기 있는 사공린도 500년 전의 그녀와는 아예 다른 인물이라고 봐도 좋은데, 하물며 500년동안 술법으로 신의 경지에 오른 진소청이 어떤 자인지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
[선택은 백웅 너의 몫이지만, 지금으로써 제시할 수 있는 가장 빠르고 쉬운 책략은 바로 이것이다. 헌책(獻策)은 끝났다.]
“웃기….”
나는 말도 안 된다고 계속 항변하고 싶었지만 다음 순간 들려온 사공린의 말에 멈칫하고 굳어버렸다.
“백웅. 내가 제물이 되어도 좋아요.”
“사공린!”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을 이었다.
“정말로 그걸로 백웅 당신이 탑의 시련을 통과하고 고난을 돌파할 수 있다면, 이 목숨 따윈 아깝지 않아요. 마음껏 제물로 써 줘요. 단….”
사공린이 크나큰 슬픔과 체념을 담은 눈빛으로 내 손을 섬섬옥수로 잡으며 말했다.
“이 [매듭]에서 제가 희생한 것으로…. 제가 당신의 동료라는 걸 인정해 줘요.”
“그게 무슨 소리야. 난 당연히 널 동료로….”
“하지만 황제의 꼭두각시인 천마라고 여기는 것도 사실이죠.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아수라와 전뇌자의 의견대로 제게 정보를 숨기지 않았나요?”
“…그건.”
“전 당신에게 진정한 신뢰를 얻고 싶어요. 왜냐하면….”
꾸욱
그녀가 양손으로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제게는 당신밖에 없습니다. 500년 내내…. 당신만을 기다렸기 때문에.”
“…….”
뭐라고 해야할지 모르겠다.
사공린의 절절한 감정이 느껴져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동시에 내가 그녀에게 진실을 숨기고 있었던 게 얼마나 섭섭하게 느껴졌을지 알게 되자 미안한 감정이 울컥 솟아난다.
그 때 제갈량이 말했다.
[꼭 제물이 아니어도 돼. 어쩌면 그녀의 몸 자체에 황제를 강림시키는 형식도 가능하겠지.]
“그것도 결국 사공린의 자아가 살해되는 일. 뭐가 다르단 말입니까!”
[또 하나의 이득을 생각할 수 있지. 정말로 그녀가 꼭두각시인지 아니면 황제와 별개의 자아로 저항할 수 있는지…. 만일 후자라면 그녀가 원하는 대로 너는 그녀를 진정한 동료로 받아들일 수 있지 않겠나? 지금까지처럼 어정쩡한 상태로 머무는 게 아니라.]
“……!!”
[사공린이 받아들인 건 그런 의미지. 그녀도 네게 신뢰받기 위해 도박수에 응한 것이다.]
나는 제갈량의 말이 논리적으로 다 옳다는 걸 이해할 수 있었지만 동시에 원망스러워서 그를 쏘아보며 말했다.
“제갈무후!! 박대정심한 책략을 쓰는 정명한 책사라고 들었거늘 무슨…. 전설이 모두 허명이었단 말입니까?”
제갈량은 흰 우선을 부치며 짜증난다는 듯 말했다.
[후! 아두같은 소리를 하는구나!]
“뭐?”
[누가 그러는가? 책략에 선악이 어딨나. 정정당당한 책략을 쓰면 적을 잔인하게 죽이는 게 더 정의로워지기라도 하는가. 그렇게 생각했다면 나는 팔진도에서 육손을 잡아죽이거나 남만의 등갑병 10만을 몰살시키는 일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
[책략가의 선악을 만드는 것은 오로지 주군의 의지. 결과적으로 네가 선이 되면 책사도 선이 되는 것이고,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책사는 주군의 의지를 실현시키는 도구일 뿐이니 도구에게 선악을 묻지 말라.]
나는 제갈량의 말을 듣는 순간, 지금까지 접했던 제갈세가의 책사들이 머릿속에 스쳐지나갔다. 그리고 대부분은 지금 제갈량이 생각하는 것과 전혀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딱히 사악해진 게 아니라 제갈가의 책사들은 원래 저랬던 것일 뿐 내가 마음대로 곡해했을 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제갈량의 책략대로 하는 게 가장 효율적이고 간단할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입술을 으득 깨물며 말했다.
“…아뇨. 난 그렇게 하지 않을 겁니다. 절대 동료를 희생시키지 않겠습니다.”
[어리석군. [큰 굴레]가 돌아가면 없던 일이 되지 않나? 양심의 가책을 받을 게 뭐가 있단 말이지? 심지어 본인도 동의하지 않나.]
“그렇게 치면 나는 ‘매듭’ 뿐만 아니라 모든 전생에서 마음대로 동료들을 인신공양해도 상관없지 않습니까.”
[그거야 그렇지. 도리어 지금까지 왜 안 그랬나 싶군.]
“…완전히 제갈사같은 행동이군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백 번 죽었다 살아나는 한이 있어도 나는 그렇겐 하지 않습니다. 인신공양은 절대 하지 않습니다. 그게 내 신념입니다.”
제갈량이 냉소했다.
[웃기는구나. 너 하나만 죽으면 끝인가? 네가 백 번 죽었다 살아난다는 건 네 주변사람들도 함께 백번 죽는다는 소리 아닌가? 너 뿐만 아니라 동료들이 죽는 횟수를 줄이려고 최대효율으로 책략을 짰는데 그딴 소리를 해? 위선자같은 놈….]
“…….”
[…후, 이런 느낌도 오랜만이군. 내 주군과도 이런 대화를 자주 했었는데.]
문득 제갈량이 쓴웃음을 지으며 그립다는 듯 하늘을 쳐다보았다.
[그러고보니 너는 그를 닮은 것 같기도 하군….]
“……?”
[좋다. 그렇게까지 거부감이 느껴진다면 차선책을 제시해주지. 이걸로 됐나?]
차선책!!
나는 급히 말했다.
“말해주십시오!”
[아쉬운대로 항우에게 선제공격을 해서 일격필살하는 거다. 솔직히 승산이 별로 없을 것 같지만 차선책이라곤 이것뿐이군.]
나는 제갈량의 말에 이전에 들었던 게 떠올라서 말했다.
“아 설마 타신편을 이용해서….”
[그래. 이미 들어서 알고 있겠지.]
“하지만 그거 한 방으로 항우를 이긴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타격은 주겠지만.”
[그래서 이쪽도 아군을 잔뜩 끌고가는 게 낫지. 우선은 원시천반에서 시작하는 것으로.]
제갈량이 말을 이었다.
[오늘이 끝나기까지 열 시진 정도 남았군. 두 시진 내에 원시천반의 혈주를 공략하고 남은 두 시진 사이에 전투준비를 끝내고 항우에게 도전한다. 그걸로 이번 매듭의 공략은 준비가 끝이다.]
파앗
우리는 다같이 원시천반의 봉인, 무릉도원으로 향했다. 그리고 내가 신력을 뿜어내서 궁의 결계를 거두자 무릉도원의 입구인 팔괘봉인이 모습을 드러냈고, 제갈량이 그 봉인으로 손을 뻗어서 문을 열었다.
과거 봉신방을 소환할 때 구천현녀에 의해 일시적으로 혈주의 봉인이 풀린 적이 있었으나 태공망 등의 선인들이 갇혀있는 영혼들을 위험하다고 판단하여 재봉인 된 것이었다. 다만 봉인 자체는 완화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우웅
무릉도원 내부로 들어가자 우리는 곧장 궁기를 만날 수가 있었다. 궁기는 무릉도원에 함께 갇혀있는 고대의 흉수였는데 우리를 보자 크르륵거리며 말했다.
[네놈들은 누구냐.]
제갈량이 볼 것도 없다는 듯 말했다.
[저런 잡졸은 다같이 덤벼서 잡아버리자. 시간낭비다.]
[뭐라고, 네놈들…. 헉.]
파바밧
나를 비롯한 천계 탐사대 전원과 아수라, 사공린, 후예가 동시에 궁기에게 덤벼들었다. 궁기는 최대한 저항하는 듯 했으나 삼 초 내에 육편이 되어서 사망하고 말았다. 제갈량이 말했다.
[저 놈의 몸뚱이는 제물로 쓸 수 있으니 주워서 목갑에 넣어라.]
궁기의 몸뚱이를 수습한 후 우리는 곧장 혈주로 가서 봉인을 풀었다. 가장 큰 수호자인 태공망이 없는 상태인지라 그렇게 어렵지는 않을 듯 했다.
우우우
나는 예전처럼 혈주 남극선옹의 가면을 벗겨서 썼다. 그리고 남극선옹의 의식으로 덮어씌워지자, 나는 처음에는 정신이 어지러움을 느꼈지만 이내 자아를 인식하고 스스로 가면을 뗄 수가 있었다.
‘좀 더 가면술이 숙련된 건가?’
처음에는 남극선옹과 나의 자아를 구분할 수 없을 정도였는데 이번에는 명확히 분간이 가능하다. 그리고 남극선옹의 혈주를 풀고 나서 두 번째 혈주로 가자, 이번에는 사공린이 나서서 황금빛 기운을 뿜어내어서 혈주에 불어넣고 있었다.
파앙!
천마의 권능 앞에 혈주의 봉인은 무용지물로 보였다. 두 번째 혈주까지 해제되자 이제 마지막 세 번째의 혈주가 남았다. 하지만 이 마지막의 혈주에는 당연히 신술(神術)을 시전할 수 있는 자들이 대거 몰려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까다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용길공주, 남극선옹, 도덕천존…. 하나같이 고대의 신선들이며 신술사용자들이다. 그들 하나하나의 역량은 십이대선인을 훨씬 뛰어넘어. 태공망이 없어서 전보다는 쉽겠지만 그래도 피해없이 이길 수 있을지는 모르겠는데.’
후예가 나선다면 어떻게든 되겠지만 신술의 가능성은 미지수이다. 예전에도 항우라는 말도 안 되는 조력자의 힘으로 어거지로 밀어붙였지만 정공법으로 싸운다면 까다로운 상대들이 분명했다.
제갈량에게 일단 이 혈주의 시련에 대해서 자세히 사전에 설명해두긴 했지만 어떻게 공략할지는 모르겠다. 내가 그를 힐끔 쳐다보자 제갈량이 말했다.
[굳이 힘을 빼서 싸울 필요도 없지.]
“네?”
[내가 그들과 교섭하겠다. 따라와라.]
파앗
우리는 마지막 혈주의 봉인이 있는 곳으로 갔고, 예상대로 세 명의 고대선인들이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제갈량이 그들 앞으로 나아가서 말했다.
[고대의 선인들이여! 그대들은 제갈유룡과 협정을 맺었을 터다.]
그 말에 용길공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정해진 종말이 다가오기 직전에 이 원시천반의 봉인을 풀겠다는 협정이었지. 그런데 이런 식으로 너희가 와서 난장판을 치다니 어찌 이럴 수가 있느냐?]
[…….]
[이렇게 억지로 풀지 않아도 우린 때가 되면 봉인을 풀 생각이었다.]
어? 정말?
제갈유룡이 정말로 미리 여기에 와서 협정을 맺었다고?
[사정이 달라졌다. 당장 오늘 종말이 찾아온다. 세상이 망하게 생겼다.]
[뭐, 뭐라고….]
세 선인이 아연해하자 제갈량이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혈주들이여. 이 혈주의 봉인이 고대인의 혼돈의 재능을 봉인하는 것이라면, 역으로 봉인계를 뒤틀어서 한 사람에게 봉인을 몰아넣는 것도 가능하겠지. 수백 명의 고대인에게 원래 적용되어야 할 봉인을 집중시키는 식으로,]
[가능하겠지만…. 그런 식으로 작동한 예는 없다. 어째서 그렇게 해야 하느냐?]
[항우 때문이다.]
[항우?]
[잔말말고 내가 시키는 대로 하라. 여와가 마침내 미쳐버려서 이 세계를 멸망시키기로 했으니, 그녀의 수족이 되어버린 항우를 제압해야 한다. 허나 만일에 이 3번째 혈주까지 풀어버리면 항우의 성좌력은 하늘을 꿰뚫을 정도가 되겠지. 그래서 역으로 이쪽에서 봉인을 걸어야만 한다.]
[음…. 설마… 그 항우라는 자에게 혈주의 봉인을 집중시키란 말이냐?]
[그렇다.]
세 명의 선인은 서로 쑥덕거리는 듯 했다. 그리고는 말했다.
[좋다. 시도해본 적이 없는 일이지만, 우리가 그 항우라는 자 근처에서 혈주의 주문을 외울 시간이 있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잘 생각했다. 그러면 이제 우리를 따라오도록.]
[알았다.]
유려하게 세 명의 고대선인들을 아군으로 만든 제갈량이 곧장 내게 말했다.
[그리고 백웅. 이 무릉도원에 있는 고대인들을 모아서 개중 가장 힘이 센 자들을 추천받아라.]
“고대인들도 항우와 싸우게 하려는 건가?”
[당연한 거 아닌가? 그 자들도 항우보다 약할 뿐 그들의 힘도 성좌다. 성좌의 힘이 잔뜩 몰려 있으면 당연히 그들 중에서 특별한 재능을 각성한 자도 존재할 터. 네 과거의 전생에서는 너를 경계하여 두각을 드러내지 않았겠지만 세상이 망한다는 빌미를 삼으면 당연히 자기 재능을 드러내는 자가 있겠지.]
제갈량의 말대로였다. 무릉도원의 인물들을 통솔하던 건 바로 주나라의 왕인 희발(姬發)이었는데, 그가 말했다.
“귀인이시여. 우리 중에 가장 강한 자라면 당연히 무송(武松), 임충(林冲), 이규(李逵), 사진(史進) 이렇게 네 명입니다.”
“음.”
“세상이 망할 위기라 한다면 우리 모두가 나아갈 터. 송강(宋江), 공손승(公孫勝)도 큰 도움이 될 것이오.”
나는 그들 중의 인재를 추천받은 후 그들을 데리고 왔다. 그러자 제갈량이 말했다.
[좋아. 이제 봉인을 풀고 밖으로 나가자. 그리고 바로 원시천반으로 검선 여동빈을 찾아내라.]
파앗!
우리는 원시천반의 무릉도원을 거둔 후 밖으로 나왔다. 나는 원시천반을 발동시켜서 바로 여동빈의 위치를 찾아냈다.
‘여동빈. 저런 곳에 있나.’
여동빈은 뜻밖의 장소에 있었다.
[여동빈은 어디 있지?]
“그, 그게…. 백두산(白頭山)의 천지(天地)라는 연못 근처에 있는데.”
[…뭔가 문제가 되나?]
“거긴 십이율의 본거지나 다름없는 장소. 십이율의 결계 내부입니다.”
즉 지금의 여동빈은 십이율의 심장에 들어가 있다는 소리다.
들어가려 한다면 당연히 십이율과 일대전쟁을 치르게 되리라.
제갈량이 뚱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다.
[그래서…? 시간을 낭비할 이유가 있나.]
나는 문득 뭔가를 깨달았다.
그리고는 말했다.
“아뇨. 거치적거릴 게 없군요. 그럼 갑시다.”
파앗!!
나는 동료들과 다함께 십이율의 결계 바로 앞으로 이동했다. 이곳에는 늘 세계수의 결계가 쳐져 있었기에 본디 안으로 들어갈 수 없게 되어 있었다. 그러자 제갈량이 힐끔 용길공주에게 눈짓을 했고, 그녀가 알겠다는 듯 술법을 시전했다.
신술(神術)
억년빙하월(億年氷河月)
콰광
고대신선이자 신선의 공주인 용길공주가 시전한 신술은 대번에 신단수의 결계에 큰 피해를 주었다. 나는 그 균열을 감지하고는 곧장 쌍요를 공명시켜서 균열에 충돌시켰다.
쿠구구구…!!
신단수의 결계가 깨졌고 우리는 거침없이 앞으로 전진하기 시작했다.
“아니.”
“네놈들은 누구냐!”
“모두 막아라.”
우리 앞을 검은 양복을 입은 선글라스의 사내들이 수십 명이나 가로막기 시작했다. 그들은 하나하나가 초절정고수 수준으로 보였지만 우리 일행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들을 순식간에 쓰러뜨리며 전진했다.
투두두두
여기저기서 무수한 총알과 포탄이 날아오기 시작했지만 역시나 위협적이지 않았다. 미래의 과학기술이라지만 수준차이가 너무 나기 때문이었다. 후예가 성가시다는 듯 단숨에 수천 발의 무영시를 날렸다.
퍼버버벅!!
게다가 천계 탐사대의 고수들도 하나하나가 투선급이었기에 그 누구도 상처를 입지 않고 마음껏 십이율의 방어벽을 유린했다. 십이율의 고수들은 마치 악몽이라도 마주한 것처럼 경악했다.
“허, 허억.”
“괴물들….”
그렇다.
마치 어린애 팔을 비트는 것 같다.
본의아니게 절대적인 전력을 모아버린 지금 십이율에게 쫄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나는 도리어 씨익 웃었다.
‘십이율주가 눈앞에 나타나면 좋겠다.’
오늘 그냥 십이율을 멸망시켜 버릴까?
하지만 내 생각과는 다르게 백두산 천지에 도달할 때까지 십이율주는 나타나지 않았고, 대신 그 곳에는 검선 여동빈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두막 곁에 서 있던 검선 여동빈은 우리 일행을 차분한 눈으로 바라보더니 말했다.
[야단스럽구나.]
“…….”
하지만 나는 검선의 모습보다는 그의 옆에 서 있는 자의 모습에 흠칫하고 놀랐다.
왜냐하면 익히 아는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믿을 수 없어서 중얼거렸다.
“…화룡진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