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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무슨 소리야?
나는 항아의 갑작스러운 말에 뭐라 해야할지 모르고 굳어버리고 말았다. 다행히도 굳어버린 건 나 뿐만이 아닌지 예 또한 그저 영혼이 없는 듯한 얼굴로 입을 벌리고만 있을 뿐이었다. 그나마 정신을 차리고 있었던 것은 검마였는지 그가 침착한 얼굴로 말했다.
“항아여. 그 말은 이제부터 백웅이 당신의 남편이란 말인가?”
그 말에 항아는 살며시 눈을 내리깔며 대꾸했다.
[주인님이 원하시는 대로….]
“…….”
검마도 뭐라고 해야할지 모르는 상태가 된 듯 입을 닫아버리고 말았고, 독고성이 자못 흥미롭다는 듯 팔짱을 끼곤 외쳤다.
“백웅, 너는 참 인생 재밌게 사는구나!”
아니 전혀 재밌지 않아 이 인간아!
나는 머리가 지끈거리는 걸 억지로 정신을 차려야만 했다. 그리고는 항아에게 말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항아 당신은 후예의 아내일 텐데. 갑자기 나보고 주인이라고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내….]
잠시 중얼거리던 항아가 말했다.
[그럼 이혼하지요.]
“……!!”
[저는 주인님의 것이 되고 싶습니다.]
[으아아아!!]
그 순간, 멍하니 있던 후예가 더 이상 버티지 못한 듯 휘청거리며 한쪽 무릎을 꿇는 게 보였다. 그는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마치 홀린 듯 항아에게 말했다.
[마, 말도 안 돼. 이럴 수는 없어…. 당신은 저 놈한테 세뇌당한 거야.]
[가까이 오지 마세요.]
[항아!!]
우웅
갑자기 후예의 신형이 항아의 손목을 붙잡은 형태가 되었고 나는 후예가 어떻게 해서 그렇게 움직였는지 전혀 볼 수가 없었다.
‘[작은 굴레]가 움직였어!’
하지만 그 움직임에 검마와 독고성은 반응한 듯 출검(出劍)해서 후예의 일척 거리에서 검을 겨누고 있었다. [작은 굴레]에 저항하는 힘이 생겼다는 건 정말인 듯 했다. 그리고 긴장이 가득한 상태에서 항아가 한없이 싸늘한 눈빛으로 후예를 쳐다보자, 후예가 그녀의 섬섬옥수를 꼭 붙잡고는 고개를 숙였다.
[내게는 당신 말고는 아무것도 없어. 처음부터 그랬어. 당신을 위해서라면 삼황오제와도 싸울 수 있다고 결의했었고, 모든 걸 바치기로 생각했어….]
[…….]
[부탁이오. 정신을 차리시오. 나는 그대의 남편이고, 그대는 나의 하나뿐인 아내요….]
침묵이 이어졌다. 그리고 잠시 후 항아가 말했다.
[좋아요.]
[항아.]
[정 미련을 끊지 않는다면 어쩔 수가 없죠.]
[……?!]
항아가 말에 힘을 담아서 강하게 선언했다.
[항아의 이름을 걸고 말하노니, 그 옛날 달의 영혼에 걸었던 혼인의 언약을 없던 것으로 하노라!]
치링
그 순간 맑은 방울소리가 울렸고, 우리의 육안으로도 항아와 후예 사이에 이어져있는 오색의 실을 볼 수가 있었다. 그리고 항아의 말이 끝나자마자 오색의 실은 툭하고 끊어져버리고 말았다.
풀썩
그러자 항아는 힘없이 쓰러져버렸고 덩달아서 항아의 손목을 잡고 있던 후예마저 힘을 잃은 듯 저절로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리고 말았다. 후예는 흐느끼듯 비통한 목소리로 크게 외쳤다.
[안돼애애애!!]
삽시간에 벌어진 일인지라 어떻게 된 건지 상황을 알 수 없었지만, 나는 화안금정으로 후예의 신력이 아직 힘을 잃지 않은 걸 보고 짐작할 수 있었다.
‘후예는 기력을 잃은 것 뿐 멀쩡해. 그럼 항아가 위험한 건가!’
나는 급히 항아를 붙잡아서 일으켰다. 항아는 핏기없는 얼굴로 잠들듯 눈을 감고 있었는데 너무나 가벼워서 마치 비단 한 장을 들고있는 듯 했다. 후예와는 달리 신력이 극히 미약해져서 존재감이 없었기에 무언가 큰 일이 벌어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의원의 지식을 살려서 항아의 상태를 살폈지만 상세를 알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항아가 순수한 신족의 몸인 탓에 내가 알고 있는 인간의 몸에 대한 지식은 거의 쓸모가 없는 듯 했다. 나는 한동안 시진을 하며 기운을 혈도에 불어넣다가 소용이 없자 급히 후예에게 외쳤다.
“이봐! 항아가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
후예는 대답하지 않고 텅 빈 눈으로 바닥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젠장 왜 그러는 거냐? 시련관이라면서 그딴 식으로….”
내가 열받아서 외치려 할 때 옆에 있던 독고성이 말했다.
“백웅. 바로 지금이다.”
“응?”
“도봉을 꺼내서 저 놈 뒤통수를….”
흠?
나는 잠깐 솔깃했지만 이내 신경질적으로 외쳤다.
“아 좀 가만 있어보십쇼!!”
확실히 지금이 기운잃은 후예를 때려죽이기에는 적절한 순간이다. 지금의 후예는 투지는 커녕 삶의 의지를 잃어버린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면 안 될 거라는 직감또한 들었다. 그건 사람으로서의 도리에 좀 더 가까운 생각이었다.
“후예. 항아가 어떻게 된 거냐고.”
후예는 한참 침묵하다가 마치 당장이라도 죽을 것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와 걸었던 혼인의 언약…. 그걸 마음대로 깨었기에…. 인과율에 따라 달의 영혼이 그녀에게 저주를 걸었다.]
“달의 영혼? 월요를 말하는 것인가?”
[칠요 따위일 리가…. 달의 영혼이란 서왕모를 통해 연결했던 진정한 신의 영혼을 뜻하는 것이니…. 결국 여와의 저주이다.]
“…….”
여와의 저주라고?!
그럼 풀 수가 없잖아!
나는 황당해져서 후예에게 말했다.
“항아가 너와 이혼한 탓에 여와에게 저주를 받았다고? 그런 말도 안 되는….”
[모를 리가 없을 텐데…. 어째서….]
“저주를 해제할 방법은 없냐?”
[항아….]
후예가 더 이상 대화에 응하지 않고 바닥에 주저앉은 채 삶의 의욕을 잃은 듯 했다.
‘아 그냥 독고성 말대로 편하게... 아니다.’
나는 그런 후예의 모습을 보자 당장 도봉으로 후려갈겨 죽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일단 한 번 참기로 했다. 상황으로 봐서 후예가 억울해보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후예에게 말했다.
“후예. 만일 내가 항아를 살려준다면 내 부하가 되어라.”
후예는 대꾸도 하지 않았다. 어이없는 말이라고 생각해서일까?
나는 힘을 주어서 다시 한 번 후예에게 말했다.
“내 이름을 걸고 말하지. 항아를 반드시 살려내겠다! 그 대신 너는 평생 내 부하가 되겠냐고 물었다, 후예!”
[말도 안 되는 소리…. 여와의 저주를 인간인 너 따위가 어찌 해제한단 말이냐.]
“일단 약속해! 밑져야 본전이잖아.”
나는 후예에게 다가가서 멱살을 붙잡고는 외쳤다.
“혼인을 했든 아니든 저 여자를 사랑하는 거 아니었냐? 진짜 사랑한다면 일단 살려야 하잖아! 평생 내 부하가 되는 것쯤은 감수할 수 있는 게 아니냐고!”
[……!!]
“마지막 기회다! 항아를 살리고 내 부하가 될 테냐, 아니면 이대로 둘이 같이 죽을 테냐?”
후예는 내게 멱살이 잡힌 채 텅 빈 눈으로 한동안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러더니 한참 후에 입을 열었다.
[약속하겠다. 대신 거짓이라면…. 너희 모두를 종말이 찾아오는 그 날까지 매일마다 화살과녁으로 삼겠다.]
“하! 괜히 협박하면 없어 보이니까 닥쳐. 내가 살면서 목숨의 협박을 몇 번 들었는 줄 알기나 해?”
[…….]
“근데 항아를 살리기 전에 한 가지 확인하고 싶은 게 하나 있는데 말이야.”
내 질문을 들은 후예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한 일이다.]
“좋았어. 그럼 망설임없이 해 볼까.”
그리고 항아에게 다가갔는데, 옆에 있던 검마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백웅. 정말 방법이 있는 건가?”
“사실 저도 너무 갑작스러워서 어째야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대충 생각난 대로 해 볼 생각입니다.”
“어떻게?”
“가불해 보죠 뭐….”
“…가불?”
나는 잠시 후 하늘을 쳐다보며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외쳤다.
“여와!! 지금 내 말 듣고 있냐아아!! 시련이랍시고 다 듣고 있는 거 다 알고 있어!!!”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지만 나는 연속으로 외쳤다.
“항아에게 걸린 네 저주를 풀어서 그녀를 살려내! 그러면 그 댓가로 나중에 네가 원하는 소원을 뭐든지 하나 들어주지!!”
여와의 저주라고 했는데 이 장소는 바로 그 여와가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시련장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여와가 모든 걸 보고듣는 중일 것이고, 저주의 인과율에 걸려있는 당사자인 여와가 스스로 저주를 해제하게 만들면 그만이야!
“……!!”
그러자 검마가 기겁을 하며 외쳤다.
“백웅!! 말도 안 되는 소리!! 당장 취소하게!”
“왜요?”
“이, 이건 자네가 예전에 망량선사를 통해 특이점을 강화시켰던 것과 같은 거래일세! 여와가 대체 자네에게 뭘 요구할 줄 알고 그런 거래를 함부로 하는가?!”
“…….”
“우리는 자네의 도구일세! 그리고 저 자들의 운명은 스스로가 결정한 것! 자네가 거기에 책임을 느끼거나 업(業)을 짊어지는 건 안될 말일세!”
검마의 말이 옳았다. 지금 내가 항아를 위해서 여와의 소원을 하나 들어준다고 하는 건 굉장히 내가 손해 보는 일인 것이다. 차라리 기력을 잃은 후예를 합공해서 어떻게든 썰어죽이고 다음 층으로 가는 게 훨씬 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아뇨! 저는 이 선택을 취소하지 않겠습니다.”
“어째서인가?”
“이유가 어찌됐든 항아가 자멸하는 선택을 한 건 저 때문입니다. 저는 항아에게 이름을 지어준 자로써 책임을 져야하기 때문입니다.”
“그 책임을 회피한다고 자네를 비난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네. 그런데도 굳이 짐을 지겠다는 말인가?”
“그렇게만 살아간다면 결국 피할 수 없는 때가 오고 말 겁니다. 저는 제가 원하는 대로 선택하겠습니다.”
“…….”
검마는 멍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허탈하게 웃었다.
“…모든 것이 걸려있는 이런 선택에서 옳은 도리를 택할 수 있다니.”
“…….”
“그렇군…. 그것이 바로 자네만이 누릴 수 있는 오만이자, 자유인 것인가. 오늘에서야…. 자네가 우리의 왕인 이유를 제대로 실감한 느낌일세.”
“뭐라 하든 상관없습니다. 전 그럼 계속 진행하겠습니다!”
나는 하늘을 향해 다시금 외쳤다.
“여와!! 내 의지는 전했다. 대답해!”
쿠르르릉
그러자 하늘이 갑자기 어두워지며 시꺼먼 구름 사이에 은은한 달빛이 내려쬐는 듯 했다. 그리고 여와의 목소리가 서서히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게 들렸다.
[그 제안을 받아들이겠다….]
파앗!
다음 순간, 달빛이 항아를 내려쬤다. 그리고 창백한 얼굴로 눈을 감고 있던 항아는 서서히 눈을 뜨기 시작했고, 그런 항아를 보던 후예의 얼굴에 경악과 기쁨이 교차하는 게 눈에 보였다.
[아아…!! 이럴 수가!]
살아난 항아는 나를 쳐다보았다.
[주인님께서 저를 살려주신 건가요?]
“그런 셈이지.”
[감사합니다. 이제야 온전히 주인님의 것이 될 수 있겠군요.]
“…아니 나는 당신을 별로 갖고 싶지 않은데.”
역시 항아의 상태가 좀 이상하다. 후예와의 모든 기억과 감정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게 맹목적인 애정과 충성을 바치는 느낌이다.
‘이름을 지어줬기 때문인가?’
어찌되었든 간에 내게는 미호가 있기 때문에 설령 천계제일미녀인 항아가 유혹해도 내게는 무의미한 일이다. 나는 껄끄러운 얼굴로 턱을 긁으면서 후예를 쳐다보았다.
“후예. 약속은 지켜.”
[…….]
후예는 무척이나 복잡한 눈으로 나를 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만악의 근원이었지만 동시에 사랑하는 항아를 되살려준 자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윽고 후예는 내 앞에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좋다. 나 후예는 그대와의 약속을 지켜 평생 그대의 부하가 될 것이다!]
“그래. 그럼 지금 당장 너희 둘 다 나를 따라와.”
나는 훗하고 웃었다.
“예상과는 좀 달라졌지만 이렇게 된 이상 제대로 이용해 주지.”
파앗
우리는 94층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94층에 도착하자 강렬한 빛과 바람을 뿜어내며 시련관이 등장했다.
[설마 후예를 꺾고 올라올 줄이야! 나 94층의 시련관인 이랑진군이 그대들을 상대해주….]
삼첨창과 효천견을 데리고 나타난 천계의 투선 중 하나인 이랑진군!
고대 투선이자 굉장히 고명한 존재로써 지금껏 전생하면서 종종 마주친 자였다. 저 자 또한 상당한 강적이었다. 94층의 시련관으로 등장한 그는 말을 하다가 이마에 있는 세 번째 눈을 둥그렇게 뜨는 듯 했다.
[…어째서 항아와 후예가 그대들 탐사대와 같이 올라온 것인가?]
나는 그 말에 대꾸하지 않고 턱을 까닥이며 명령했다.
“항아. 후예.”
[예.]
[…….]
“이랑진군을 때려눕혀라!”
파앗
내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항아와 후예는 이랑진군에게 달려들었다. 항아의 손에서 그녀만의 고유한 보패인 월영고금(月影古琴)이 소환되었고 후예가 시위를 겨누자 무형의 화살이 맺혀서 이랑진군을 겨누었다.
[둘이 덤빈다 해서 쉽게 지진 않는다!]
이랑진군이 버럭 소리를 치며 삼첨창을 휘둘렀다.
까강!!
그러자 후예의 활시위에서 발사된 적궁백시의 화살 대부분이 삼첨창의 궤적에 휘말려서 튕겨져 나갔다. 그 모습을 관전하고 있던 독고성이 흥미롭다는 듯 중얼거렸다.
“역시. 둘 다 [작은 굴레]를 응용하는 신족의 무예를 쓴다면 저런 식으로 상쇄되어서 평범한 무술겨루기가 되는군.”
“상쇄라고요?”
“장삼봉한테서 [무한의 원]을 가르침받은 지금은 느껴진다. 저 자들이 다스리는 굴레의 영역이 허공에서 충돌하여 사라지는군. 허나 저 영역은 절대지경이라 해도 느낄 수 있는 흐름을 갖고있진 않다. [작은 굴레]이기 때문이지.”
“흠.”
“보아하니 저 이랑진군이란 자도 본래 신족이었거나 그 후예였겠군.”
그런가?
‘이랑진군과는 제대로 만날 일이 없었으니 저 자의 내력은 잘 몰라.’
그저 삼황오제 시대보다 훨씬 예전부터 존재했던 고대의 투선이라는 것밖에 몰랐고, 현 투선들 중에서 최고참이라는 것밖에 모른다.
투쾅
한 차례 격렬하게 충돌한 세 투신들이 여파를 남기고 거리를 두었다. 이랑진군은 자신의 팔이 욱신거리는지 잠시 떨다가 말했다.
[둘 다 여와의 권능을 받았으니 쉽게 승부가 나지 않겠군. 허나 항아의 신력 때문에 결국 내가 패하겠구나.]
그 말에 후예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재밌는 얘기를 하는군, 이랑진군. 그 말은 일대일이라면 너와 내 실력이 비슷하다고 말하고 싶은 건가?]
이랑진군이 태연하게 대꾸했다.
[왜. 틀린 얘기도 아니지 않은가? 예전부터 자네와 나는 대무하여 비슷한 전적을 내고 있었지.]
[크, 크하하하하하!!]
갑자기 후예가 앙천광소했다. 그러더니 살기를 잔뜩 담은 목소리로 말했다.
[마침 잘 됐구나. 기분도 엄청나게 더러웠던 참인데, 오늘 네 착각을 바로잡아 주마.]
[뭐?]
키이이이이잉
후예가 들고 있던 적궁백시가 기이한 소리를 내더니 혈광이 활에 잔뜩 모이기 시작했다. 혈광이 모인 적궁백시는 지금껏 내가 보아왔던 그 어떠한 형태와도 다른 것으로 모습이 변하기 시작했는데, 마치 귀신이 새겨진 듯한 형상이 강하게 양각된 듯 했다. 그 흉흉한 힘이 한 점에 모이자 후예가 출수했다.
절기(絶技)
후예사일(后羿射日)
투웅
아주 짧은 순간, 적궁백시에서 단 하나의 적시(赤矢)가 날아갔다. 나는 그 찰나를 파악하고는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적궁백시에서 발사되는 화살은 무조건 하얀색이었는데?
그리고 이랑진군은 마치 공간을 왜곡시키는 듯 자신의 삼첨창 주변에 기이한 기운을 두르고는 횡참을 휘둘러서 그 화살을 튕겨내려는 듯 했다. 이대로라면 아까처럼 [작은 굴레]를 서로 조작한 여파로 허망하게 화살이 튕겨나갈 듯 했다.
그러나 그 순간 -
퍼엉!!
“……!!”
그것이 바로 이랑진군의 최후였다. 이랑진군은 적시를 막으려 하는 순간 그의 무기인 삼첨창, 효천견과 함께 흔적도 없이 소멸되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적시는 갑자기 지평선 너머로 그대로 관통하여 날아가더니, 이윽고 굉음과 함께 폭발했다.
쿠콰콰콰쾅!!
휘우우오오오
이 시련의 탑을 에워싸고 있던 차원이 붕괴한 것일까? 부숴진 천공 너머로 무한한 우주와 같은 암야가 가득 비쳐보였다. 단 한 발의 적시가 만들어낸 무시무시한 참상을 냉막한 눈으로 쳐다보던 후예가 자신의 적궁백시를 아래로 늘어뜨리며 말했다.
[내가 제대로 하면 넌 한방에 끝난다, 이랑진군.]
“…….”
뭐 저런 위력이….
나는 황당해서 후예에게 말했다.
“후예! 방금 그 공격은 대체 어떻게 그런 위력을 낼 수 있었던 거냐?”
[…….]
“야! 충성을 다하기로 했으면 대답해.”
내가 재촉하자 후예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나는 최강의 궁사이자 사냥꾼이므로 적궁백시의 제약을 풀 수 있는 권능이 있다. 저 놈은 그걸 몰랐기에 한 방에 죽은 것이다.]
“제약? 무슨 제약 말이냐.”
[적궁백시는 한 발 쏠 때마다 위력이 4배 증가한다는 제약.]
“……!!”
엥?!
서, 설마?!
이어진 후예의 말에 나는 경악하고 말았다.
[제곡이 내게 걸어둔 힘의 봉인이 풀린 지금은 그 제약을 무시하고 처음부터 9발째의 위력으로 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나의 최종 절기이며, 이걸로 십양(十陽)을 사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