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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나는 월궁항아의 위치를 찾아내기 위해서 이번에는 천계로 가 보기로 했다.
‘이런 일에 대해서 제일 쉽게 대답해줄 수 있는 건 구천현녀겠지.’
우웅
나는 천제단을 통해 천계로 이동했다. 그리고 구천현녀에게로 찾아가서 바로 도봉을 보여준 후 말했다.
“구천현녀. 후예의 약점인 도봉을 얻었습니다.”
[과연…. 어디서 얻은 것인가요?]
“지상을 탐색하던 중 위치를 알아냈습니다.”
나는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도봉에 이어서 후예의 또 다른 약점인 월궁항아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그녀는 과거에 서왕모에 의해 유폐되었다고 들었는데 지금 어디있는지 혹시 아십니까?”
[…….]
“서왕모가 여와에게 소멸된 지금, 그 행방을 알고있는 자는 거의 없습니다. 현재 천계를 다스리시는 구천현녀께서 말해주십시오.”
그러자 구천현녀가 말했다.
[월궁항아가 유폐된 사건에 대해서 설명해야겠군요.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월궁항아와 후예가 함께 불사약을 먹으려다가 서왕모의 진노를 사서 항아가 달의 광한궁(廣寒宮)에 유폐됐다는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불사약 사건이 일어난 직후 항아는 서왕모의 손에 의해 그녀의 창조주인 제곡에게로 인도되었습니다. 그 이후 월궁항아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아는 것은 제곡 뿐입니다. 저 또한 그녀가 제곡의 궁전 중 하나인 광한궁 어딘가에 갇혔으며 제곡에 의해 두꺼비가 되는 저주를 받았다는 것밖에 모릅니다.]
나는 그 순간 뭔가 이상함을 깨닫고는 눈썹을 꿈틀거렸다.
“제곡…? 그 저주를 내린 게 서왕모가 아닌 삼황오제 제곡이었단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두꺼비의 저주는 서왕모가 한 게 아니에요. 그녀는 항아를 무척 아꼈으나 제곡이 자신의 체면을 더럽힌 항아에게 크게 분노하고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넘겼던 겁니다.]
“…….”
의외다. 그 잔인하고 폭급한 서왕모가 항아를 아꼈다고? 다른 누구도 아닌 구천현녀가 한 말이니까 믿을 수밖에 없다. 구천현녀가 말을 이었다.
[그대가 후예의 약점으로 월궁항아를 얻으려 한다면 먼저 반왕전에서 광한궁의 그녀를 찾아내는 게 맞을 듯 합니다.]
“…그것 때문에 말입니다만.”
[또 궁금한 게 있나요?]
나는 생각을 정리하고는 진짜 의문에 대해서 구천현녀에게 말했다.
“제가 알기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달은 렙틸리언이라는 외계세력에 점령당하고 반왕전은 사라졌으며 벌인간들도 렙틸리언의 노예가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가 보니 반왕전은 건재하고 벌인간들도 어느샌가 돌아와 있었으며 사비시신과 오색조도 있더군요.”
[흐음….]
“이게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알고 계십니까? 반왕전이 어째서 소리소문없이 귀환해 있는건지.”
[백웅이여. 반왕전이 달에 회귀한 이유는 아마 렙틸리언이라는 외계인 세력이 소멸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또 하나의 중대한 사실을 의미합니다….]
구천현녀는 생각에 잠긴 듯 했다. 그러더니 말했다.
[백웅이여. 혹시 이미 반왕전과 접촉한 건가요? 도봉을 얻은 걸 보면 그렇게 짐작이 됩니다만….]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반왕전 측은 별로 자신들의 존재를 숨길 생각도 없어보이는군요. 종말이 얼마 남지 않았다 생각하기 때문이겠죠.]
그렇게 말한 구천현녀가 내게로 손을 뻗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좋습니다. 제가 천계의 대표로 가서 반왕전과 교섭을 하지요.]
“교섭을? 무슨 교섭 말입니까.”
[당신이 여와와 복희에게 도달하는 건 세계의 운명이 걸린 일. 탑의 시련을 돌파하는 일에 손을 걷어붙이고 나설 수밖에요. 그러니 반왕전과 교섭하여 그 곳에 유폐된 월궁항아를 건네받도록 하겠습니다.]
“……!!”
뭐지?! 구천현녀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서준다고!
나는 뜻밖에 적극적인 태도에 다행이라고 여기면서도 일말의 의심을 품으며 구천현녀에게 말했다.
“괜찮겠습니까? 이런 행동이 인과율에 혹시 저촉되는 건 아닌지….”
[반왕전이나 천계나 현재 물질계와는 상당히 격리되어 있습니다. 이 정도의 행동이 인과율에 영향을 주긴 힘들겠지요.]
“음…. 부탁합니다.”
우웅
구천현녀가 대궁에서 갑자기 신령스러운 빛과 함께 모습을 감추었다. 나는 그녀가 아마 반왕전으로 갔으리라고 생각하며 생각했다.
‘뭐지? 항아를 찾으려면 또 한참 고생할거라 생각했는데 의외군.’
구천현녀가 적극적으로 나서는 까닭이 뭘까? 단순히 여와에게 빨리 도달하게 하려고 모든 협력을 하는 것 뿐인가? 원래라면 그냥 그렇게 생각해도 되겠지만 나는 상황을 단순하게 생각하기 힘들었다.
왜냐하면 과거에 칠요의 시련때문에 삽질하게 되면서 구천현녀의 진짜 정체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구천현녀는 일요의 수호자!
원초의 정령왕!
그녀에게 숨겨진 또 하나의 신분때문에 종말을 앞두고 무엇을 노리고 있는지를 경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현재로서는 구천현녀의 도움을 받아야하는 처지였기에 일단은 그녀가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기로 했다.
‘…어차피 지금은 서로가 서로를 이용하는 처지일 테니까.’
내가 한참을 기다리고 있자 구천현녀가 잠시 후 궁궐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리고는 말했다.
[백웅이여. 월궁항아는 두꺼비의 저주를 받은 후 인간세계에 소환술로 불려갔다고 하는군요.]
“네? 확실합니까?”
[오색조가 해준 말이니 확실합니다.]
그렇게 말한 구천현녀가 내 손을 잡았다. 그러자 내 손에 은은한 황금빛이 맴돌더니 조그마한 고대의 문양으로 자리잡았고, 내가 그 문양을 힐끔 바라보자 구천현녀가 말했다.
[그 문양은 제곡의 황후인 오색조의 술법으로써, 항아를 찾을 수 있게 하는 옥토(玉兎)의 문양. 그 문양이 인과율에 따라 자연스럽게 그대를 항아에게로 인도할 것입니다.]
“이 문양에 의지해서 지상에서 찾아내라는 거군요.”
[지금으로서는 그 방법뿐입니다. 그 방법을 얻어내기 위하여 천계 측에서 상당한 양보를 해서 반왕전과 동맹을 맺었습니다.]
“알겠습니다. 도와줘서 고맙습니다. 다시 지상으로 보내 주십시오.”
나는 구천현녀에게 감사를 표하고는 곧장 지상으로 또 내려갔다.
파앗
웅웅웅
‘옥토의 문양이 길을 보여준다.’
애매한 표현이 아니라 정말로 문양에서 흘러나오는 금빛이 실선으로 허공에 길을 만들어서 나를 인도해주고 있었다. 나는 문양을 따라서 빠르게 이동하기 시작했고, 내 경공이라면 설령 이 지구를 한 바퀴 돈다고 해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타다다닷
산을 넘고 물을 건넜다. 나는 모든 내공을 동원해서 쉬지 않고 계속 옥토의 문양을 따라서 갔는데, 가도가도 거리가 줄어들지 않는 기분이 들었다. 기분 탓이라고 생각하며 만 하루동안 계속 뛰었는데, 나중이 되자 이상함을 느꼈다.
“……?!”
이상하다. 내 경공으로 하루내내 뛰었으면 지구를 반바퀴 돌고도 남았다. 그런데 아직도 항아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다는 게 말이 되는 것인가? 나는 혹시나 해서 반나절을 더 뛰어보았으나 그래도 황금의 문양은 계속해서 남은 길을 지평선 너머로 드리울 뿐 줄어들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는 이상함을 느끼고는 일단 대웅제국의 황궁으로 귀환했다. 그리고 사공린에게 이 일에 대해서 상담하자, 사공린이 듣고 있다가 말했다.
“백웅. 제가 그 옥토의 문양에 공명(共鳴)을 해봐도 될까요?”
“공명? 그게 뭔데?”
“제 신력을 감응시키면 문양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
우웅
사공린의 섬섬옥수가 내 손등 위에 얹어졌다. 한동안 눈을 감고 있던 사공린이 침음성을 흘렸다.
“으음…. 그랬군요.”
“뭐가?”
“백웅. 거리가 줄어들지 않는 이유는…. 문양의 목표인 월궁항아가 지구상을 쉬지 않고 이동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당신이 움직이는 만큼 월궁항아도 쉴 새 없이 돌아다니고 있기 때문에 그 동안 거리가 안 줄어든 겁니다.”
“…….”
뭔 개소리야?!
나는 어이가 없어서 사공린에게 말했다.
“두꺼비가 된 월궁항아가 쉴새없이 싸돌아다닌다고?! 그런 게 어딨어! 말도 안 되는….”
“…백웅. 짐작가는 게 딱 하나 있습니다. 제 추측일 뿐이지만 아마 항아의 정체는 제가 생각한 대로일 겁니다.”
“그게 뭔데!”
“그건….”
이윽고 사공린의 ‘추측’을 듣자 나는 눈을 부릅떴다.
개소리잖아!
하지만 사공린의 눈이 너무 진지했기에 나는 진지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만에 하나 그녀의 추측대로라면, ‘진실’이 너무 어이가 없는 것이었다. 나는 머리가 아파서 머리통을 꾹 누르며 말했다.
“말도 안 돼…. 그럴 리가 없어.”
“백웅. 저 또한 당신의 전생기억 대부분을 얻었습니다. 그 기억에서 추리해볼 때 해답은 그것 뿐이에요. 그래서 후예는 당신을 싫어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
“미호가 없는 지금 지상계에서 단독으로 그 존재를 제압할 자는 없습니다. 그래서 이번 일에는 저도 당신을 따라가서 도와드리지요.”
“알았어. 아무튼 빨리 해결하고싶군.”
슈슉
잠시 후 나는 문양과 공명한 사공린과 함께 옥토의 문양이 가리키는 최후의 위치를 향해 순간이동했다. 사공린의 힘을 빌린 셈이었는데, 문제는 순간이동하는 순간에도 목표물이 계속 움직이고 있어서 딱 위치에 맞게 도달하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촤아악
나타난 곳은 대양(大洋)의 상공이었다. 사공린은 전자기기를 꺼내들며 중얼거렸다.
“여긴 대서양의 군도 지역이군요. 저 앞에 보여요.”
“…정말로 저게… 월궁항아냐?”
“그래요. 우선 대화를 해 보세요.”
“으으으윽.”
나는 이빨을 꽉 악물고는 파천일보를 써서 앞으로 튀어나갔다. 그리고 수상비의 경공이 가미되어서 그 존재에게 접근하자, 그 존재가 무의식적으로 휘감고 있는 해양의 호풍환우가 엄청난 기세로 몰아치는 걸 알 수 있었다. 말 그대로 자연의 태풍이었으며 맑은 바다에 거대한 어둠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콰과과과
나는 태풍의 어둠을 뚫고 그 존재에게로 근접해 들어갔다. 내가 지근거리까지 오자 그 존재가 나를 힐끔 보더니 잠시 이동을 멈추었고, 이내 노성을 내었다.
[감히 네놈이 또 내게 시비를 걸러 왔느냐!]
쿠구구구
어마어마한 압박감! 저 녀석에게서 뿜어져나오는 영기가 막대했기에 나는 잠시 숨도 쉬기 힘들 정도였다. 나는 그 기세를 대해방 칠요를 이용해서 버텨내면서 악을 지르듯이 소리쳤다.
“잠깐 할 말이 있다! 싸우러 온 거 아니야!”
[닥쳐라. 이대로 죽여 주마….]
“기다려 보라고! 나는 네 진짜 정체를 알고 있으니까!”
멈칫
막 거대한 폭풍의 입김을 내뿜으려던 그 존재가 멈칫했다. 태산보다 거대해보이는 그 존재가 주변에 소용돌이 수십 개를 띄운 채 나를 내려다보는 건 차라리 공포스러운 광경이었다. 놈이 말했다.
[내 진짜 정체를 알고 있다고?]
“그래. 넌 지금 2대 요괴왕이라고 자칭하고 있지만…. 사실 너 자신도 정체를 모르고 있잖아.”
[백웅…. 네놈도 내 정체를 몰라서 아무렇게나 이름을 지었잖은가. 그것도 쓰레기같은 이름을 줘 놓고는 감히….]
엄청난 살기가 흘러들어왔지만 나는 움찔하면서도 힘겹게 말했다.
“원래 몰랐지만 이제 알았어. 그래서 알려주러 온 거다, 개똥… 아니 요괴왕 월아(月娥).”
[호오… 재밌는 말을 하는군.]
월아가 크게 안광을 폭사하며 외쳤다.
[내 정체를 말해봐라! 그 정체가 거짓이라면 네놈을 없애버리리라.]
“크으으윽….”
나는 찌릿거리는 엄청난 영기 때문에 죽을 맛이었다. 대해방 칠요를 들고있는데도 이런 압박감이라니, 역시 제천대성에 이어 2대 요괴왕을 자처할 만 했다. 어떻게 이렇게 세졌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지금의 요괴왕 월아는 천지의 균형을 가를 정도로 강대한 존재인 게 틀림없었다. 그래서 더더욱 천마 사공린의 추측이 믿겨지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눈을 질끈 감으며 외쳤다.
“너, 너는 말이지…. 전설의 선녀(仙女)인 월궁 항아란 말이다!!”
[…….]
휘이이잉
휘이이이잉
침묵과 함께 어마어마한 폭풍이 사방에 몰아친다.
태산보다 거대한 두꺼비가 소용돌이 한가운데에서 가공할 중압감으로 나를 쳐다보는 게 느껴진다. 이 어색한 침묵 속에서 나는 꼿꼿이 고개를 들고 월아를 쳐다보았고, 월아가 이내 말했다.
[내가 달에서 왔다는 희미한 기억이 있긴 하다. 하지만 월궁항아라는 추측은 너무나 말도 안 되는 구나.]
“나도 사실 안 믿기거든! 그래도 이 문양을 봐라.”
나는 손을 내밀어서 옥토의 문양을 보여주었다.
“오색조가 준 이 옥토의 문양은 월궁항아에게만 반응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 지금 네가 문양의 종착점이지 않느냐.”
[…….]
“알겠냐 너는 선녀다!”
[…….]
“아 무슨 말이라도 좀 해 봐!! 사람 어색하게!”
내가 소리를 빽 하고 지르자 월아가 말했다.
[내가 월궁항아라고 치지. 그런데 지금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
“뭐?”
[그 기억은 내게 없고 월궁항아의 힘과 모습을 되찾을 방법도 현재 없다. 네놈은 사람을 농락하려고 여기까지 온 것만 같구나.]
“아니! 되찾을 방법 있어! 그러니까 말 좀 들어봐.”
나는 근성을 다해서 월아에게 말했다.
“천계에 있는 네 연인, 후예한테 가서 대면해보면 잃어버린 기억이 돌아올 것이다!”
[확실하느냐?]
“그… 그래!”
사실 확실한 건 없고 그냥 약점이나 잡으려고 데려가는 거지만!
가서 후예를 협박하거나, 그가 당황하면 이득본다는 생각으로 데려가는 거지만!
[…그 문양에서 낯익은 느낌이 드는군…. 기억이 조금….]
월아는 뜻밖에도 조금 혼란스러워하는 기색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자신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호풍환우의 전개를 멈추며 말했다.
[좋다. 한 번 백웅 네놈에게 속아 주마.]
“정말이냐?”
[만일 네가 틀렸을 경우 조건이 있다.]
“뭔데.”
[네 모든 힘과 목숨과 이름을 모조리 내게 내놓아라. 네가 자신있다면 이 제안을 받아들이겠지?]
“…….”
어… 그건 좀….
후예의 약점 하나 잡으려고 다 내놓기는 좀 그렇지 않나…?
‘내가 손핸데….’
내가 선뜻 대답을 못 하고 있을 때 어느 새 옆에 와 있던 사공린이 외쳤다.
“백웅은 받아들인다고 한다.”
[정말이냐?]
“그렇다.”
[좋아…. 천계에 따라가지.]
츠아아앗
잠시 후 월아의 모습이 치렁치렁한 흑발의 절세미녀의 모습으로 변했다. 다만 선녀의 모습이 아니라 마치 시중의 망나니와 같이 찢어진 옷을 걸치고 있었으며 그녀의 심상을 반영하듯 핏빛으로 가득한 복장이었다. 요력을 이용해서 변신술을 쓴 월아가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기필코 네 모든 것을 받아내겠다….]
아주 원망이 그득한 눈이다.
“…….”
나는 원망스러운 눈으로 천마 사공린을 쳐다보았지만 그녀가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잘 될 거예요.”
“그래야겠는데….”
“백웅. 잘 들어요. 이론대로라면 월아에게 적용되어 있는 건 삼황오제의 저주이니 그 저주를 해제하려면 본디 그와 동급의 힘이 필요해요. 저라고 해도 지금 그런 저주를 해제할 순 없어요.”
“그럼?”
“딱 한 가지 방법이….”
나는 사공린에게 방법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까지 온 이상 사공린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다.
“이, 일단 목갑 안에 들어가 있어라. 예와 대면할 때 내보내 주겠다.”
[나는 이깟 마도구 따위 언제든 부수고 나올 수 있다. 나를 봉인하려 하면 네놈이 죽을 것이다.]
“알았다고….”
나는 어쩔 수 없이 월아를 목갑 안에 집어넣고는 천계로 다시 올라왔다. 그리고 구천현녀를 다시 만나러 갔는데, 구천현녀는 뜻밖에 자리에 없었다. 구천현녀를 수행하던 다른 대라신선들에게 질문하자 그들이 말했다.
[구천현녀께서는 위중한 볼일이 있으셔서 계시지 않습니다.]
“언제 돌아오시지?”
[기약이 없으십니다.]
또 무슨 일이야.
나는 미심쩍게 여겼지만 일단 내버려두고는 92층의 수련장으로 갔다. 그리고 장삼봉 밑에서 수련하던 무인들은 다같이 오늘도 무한의 원에 숨겨진 힘을 깨닫기 위해 수련을 하는 걸로 보였다.
나는 지금까지의 기억 중 아수라를 만난 기억을 제외하고 검마에게 공유했다. 검마는 내 기억을 보더니 말했다.
“조금 어이가 없군. 그 요괴왕이 천상천하 제일의 미모를 지니고 있다는 전설의 선녀인 월궁항아라니….”
“…….”
“그냥 놈과의 약속을 취소하고 요괴왕을 지상으로 내려보내게. 그 요괴왕을 굳이 인질로 잡는 건 너무나 무리한 계책같네. 솔직히 우스꽝스러울 지경이야.”
“으윽.”
검마의 말이 너무 이치에 맞았기에 나는 할 말이 없었다. 내가 얼마나 무리한 수를 두고 있는지를 실감한 것이다.
‘그럼 도봉 하나만으로 후예에게 맞서야 하는데.’
정말로 약점 하나만 갖고서 후예에게 이길 수 있을까?
왠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잠시동안 곰곰이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오. 그래도 일단 뜻대로 해 보겠습니다.”
“진심인가? 요괴왕 월아에게 모든 걸 빼앗긴다는 건 이번 자네의 전생이 끝이란 말일세. 종말도 보지 못하고 이대로 이번 회차를 넘겨도 좋다는 건가.”
“제가 봤던 후예의 강함은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가 [작은 굴레]에 저항하는 법을 터득한다 해서 정공법으로 이길 상대가 아닌 것 같습니다.”
순수한 강함만으로 치면 제천대성보다 강할지도 모른다. 내 말에 검마가 불쾌감을 느낀 듯 눈썹을 꿈틀거렸다.
“흠. 너무 빨리 포기하는군.”
무(武)의 가능성을 믿지 않고 꼼수만 써서 통과하려는 데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나는 그 마음을 알고 있었지만 이미 마음이 굳혀졌기에 말을 이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전 어떻게 해서든 복희에게 가는 게 우선입니다. 제게 있어서 우선순위는 다릅니다.”
“망량이 사라진 후 갑자기 마음이 급해졌나 보군. 지금이라도 마음을 되돌리게. 10년이 걸리더라도 우린 후예를 이기기만 하면 그만이야.”
마침내 나도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고 외쳤다.
“후예 다음에는 항우가 있습니다. 우리가 항우를 이기려면 몇 년 수련해야 할까요? 10년? 20년? 100년? 기약이 없습니다.”
“…….”
“이대로는 안 됩니다. 탑의 시련은 정공법으로 깨라고 만든 게 아니란 말입니다.”
“진심인가?”
“네. 제게도 생각이 있습니다. 탐사대장으로써 저를 따라와 주십시오.”
그러자 검마는 포기한 듯 눈을 감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하지만 나도 양보할 수 없는 게 하나 있네.”
“무엇입니까?”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중 한 명이 [작은 굴레]에 저항하는 힘을 획득할 듯 싶네. 누가 먼저일지는 모르지만…. 그 때까지만 기다려 주게.”
“알겠습니다. 저도 함께 수련하지요.”
그리고 장삼봉 밑에서 수련을 거듭하기 시작했다. 나는 장삼봉의 신역 무쌍패에 저항하는 수련을 함께 하려 했지만 장삼봉이 나를 제지했다.
“백웅이여. 그대는 본디 선검술의 수련을 하고 있었을 테지.”
“그렇습니다만.”
“그러면 이 수행에 억지로 참여하는 건 의미가 없네. 여동빈에게 배운대로만 수양하시게.”
“…….”
여동빈한테 배운대로?
나는 그 말이 뜻하는 걸 바로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
‘원을 그리는 수련!’
그 단순하면서도 의미불명의 수련이 가장 내게 맞는 것이란 말인가? 잘 이해는 되지 않았지만 어쨌든 그 말이 수련진도가 다르다는 것으로 들려왔다. 나는 장삼봉의 말대로 따로 떨어져서 매일같이 선검술의 일환으로 원을 그리기 시작했다.
붕붕붕
나는 선검술로 원을 그리며 생각했다.
‘여동빈이 마지막으로 내게 내어 준 과제는 ‘심어검을 볼 수 있는 능력’을 지니는 것이다.’
심검과 심인의 차이를 알아보려 하다가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서 여동빈에게 사정사정해서 얻어낸 단서. 결국 이것조차 해결하지 못하면 여동빈도 내게 가르쳐줄 수 있는 게 없으리라. 나는 여동빈이 말했던대로 심어검을 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깨달으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그렇게 시간이 꽤 흘러갔다. 약 두어 달쯤 시간이 흘렀을 때였다.
쩌엉!
“과연. 훌륭하오.”
장삼봉 진인이 무쌍패의 전개를 멈추고는 감탄했다.
“검마. 그리고 독고성…. 당신들 둘이 가장 먼저 [작은 굴레]에 저항하는 법을 터득했구려.”
그들은 신역 무쌍패에 대항해서 전혀 넘어지지 않고 끝까지 중심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기이하게도 그들의 몸 주변에는 새하얀 원이 떠올라 있었는데 처음과 끝이 하나도 흐트러짐 없이 이어져 있는 게 눈에 보였다.
“후…. 그저 기술의 영역일 뿐 진정으로 발을 내딛지는 못했소.”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것이오.”
“후후….”
검마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신역 무쌍패라는 극상의 수련이 아니었다면…. 우리 스스로는 백 년을 수행해도 깨닫지 못했을 거외다.”
“허허. 스스로를 폄하할 필요는….”
“폄하가 아니오. 본디 좌(座)에 선택받지 못한 우리가 깨달을 수 없는 경지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 진인께서 인과율을 소모하여 알려주신 것이오.”
“…….”
“이 은혜는 반드시 갚겠소.”
장삼봉 진인은 그저 푸근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나도 [작은 굴레]에 저항하는 경지에 오를 수 있을지 생각해 봤지만, 역시나 나는 지금까지 계속 수련했는데도 아무것도 깨닫는 게 없었다.
그리고 나는 새삼 암담한 현실을 깨달았다.
‘…편법이라도 쓰는 게 옳았어.’
설령 지상으로 내려가는 시간까지 아껴서 장삼봉 밑에서 수련을 몇 년이나 하더라도 나는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리라. 그것이 바로 내 재능이다. 나는 앞으로 도대체 몇 년이나 수련해야 저런 경지에 오를지를 생각해 봤지만 이내 무의미하다는 걸 깨달았다.
내게 찰나의 깨달음은 없다.
나는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검마. 약속대로 이제는 한 번 93층의 후예에게 도전해 봅시다.”
“정말 괜찮겠는가? 오늘이 자네의 마지막 날이 될지도 모르네. 더 나중에 해도 될 것을.”
“…해 봐야죠. 그리고 더 이상 해봤자 시간낭비일 뿐입니다.”
“왜 그리 생각하지?”
“어쩐지…. 심어검을 보는 능력을 얻는 건 좀 더 특출난 계기가 있어야 할 것 같아서요.”
여동빈조차도 내게 그 단서를 알려주며 그다지 기대하지 않는 기색이었다. 정상적인 수련으로 얻을 수 있는 경지가 아니란 뜻이다. 그저 매일매일 갈고닦는 것만으로 수 년 만에 얻는다는 보장이 없고 수백 년의 수련이 최소한 뒷받침되어야 한다면, 지금은 그 수련 자체가 시간낭비이리라.
이번 회차의 죽음을 각오하고 빨리 뚫어버린다!
이딴 시련은 더 이상은 시간끌기밖에 되지 않아!
내 의지를 확인한 검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 자네 말대로라면 후예 앞에서 사람수가 많아봤자 무의미할터…. [작은 굴레]에 저항할 수 있게 된 우리 둘만이 그대와 동행하겠네.”
“좋습니다.”
파앗!
우리는 93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올라가자마자 맞은편에 서 있는 후예의 모습을 발견할 수가 있었다.
후예는 잔뜩 살기등등한 눈빛으로 우리를 노려보더니 말했다.
[네놈들 전부 오지 않고 고작 그 숫자로 왔다는 거냐? 나를 얕보는 것이냐?]
“그럴 리가. 이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좋다…. 네놈의 모든 모공을 화살로 메워주마.]
끼기긱
후예가 천천히 적궁백시에 화살을 매기기 시작했다.
나는 그 순간 재빨리 목갑을 꺼내서 열었다.
“후예! 월궁항아는 여기에 있다!”
파아앗
목갑에서 월아가 해방되어 튀어나왔다. 그리고 흑발의 미녀인 월아를 본 후예가 화살시위를 매기다 말고 멈칫했다. 나는 연속으로 외쳤다.
“네 소원을 이룰 필요는 없어! 여기에 네 아내인 항아가 있으니 그냥 물러가 버려라!”
[뭐라고….]
“여와가 네게 제안한 건 항아를 되살려주겠단 말 아니었나? 항아가 있으면 네가 우리에게 분노를 품을 이유도 싸울 이유도 없다!”
[…….]
후예의 표정이 크게 흔들리는 게 눈에 보였다.
좋았어!
여와의 제안으로 소원을 이룰 필요가 사라진다면 후예 또한 우리와 싸울 이유가 없겠지!
잠시 후 월아와 후예의 시선이 마주쳤다.
이제 수천 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부부의 감동적인 만남이 이어질 듯 했다.
[…….]
[…….]
한참동안이나 그들 둘은 서로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러더니 동시에 입을 열었다.
[이 녀석 누구지?]
[누구냐?]
“…….”
…어?
이게 아닌데?
내가 경직되어서 멈칫거리고 있을 때 후예가 짜증난다는 듯 말했다.
[내 아내인 항아는 훨씬 더 아름답고 고귀하다. 비슷하게는 생겼지만 결국 저건 요괴가 아닌가? 저딴 걸 감히 항아라고 데려다 놓다니….]
그러자 월아가 눈에 쌍심지를 켜며 대꾸했다.
[처음 보는 새끼가 왜 남의 외모를 평가하느냐? 네놈이 뭐라고.]
[천신이자 투신인 후예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단 말이냐? 하찮은 요괴놈아.]
[웃기는구나. 네놈같은 남편이 있느니 차라리 메주덩어리를 남편으로 삼겠다.]
그러자 후예의 자존심이 긁힌 표정이 되었다.
[뭐라고? 감히 요괴가 나를 능멸하는 것이냐.]
월아는 가운데 손가락을 내밀었다.
[능멸 뿐이겠느냐? 별로 잘나보이지도 않는 놈인데 되지도 않는 자부심은 집어치고 세상이 망할때까지 궁상맞게 벽이나 긁고 살거라.]
[크으으으으…. 네가 감히.]
“…….”
나는 월아와 후예가 서로 분노를 극대화시키는 걸 보자 얼굴이 새하얗게 되고 말았다.
‘뭔가 잘못됐다….’
분명히 옥토의 문양은 월아를 가리켰으니, 월아는 분명히 월궁항아임에 분명하다. 나도 긴가민가했지만 모든 증거가 그 진실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러나 설마 천하제일의 원앙부부인 저 둘이 서로를 알아보지 못할 줄이야!
‘설마 삼황오제 제곡이 내린 두꺼비의 저주가 너무 강력해서 그런 것인가?’
이럴 줄 알았다면 항아의 저주를 해제할 방법부터 미리 생각해놓을 걸 그랬는데…!!
아니나 다를까 홱하고 월아가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백웅, 네놈이 틀렸구나. 약속대로 네놈의 모든 힘과 이름을 받아가겠다!]
“자, 잠깐만! 아직이야!”
[구질구질하게 목숨구걸을 하려 드는 것이냐?]
“그게 아니라…. 잠깐만….”
나는 그 순간 사공린이 해 줬던 말이 생각났다.
그래서 외쳤다.
“나는 월아 너의 이름을 지어준 자. 그런 내가 네 이름을 항아(姮娥)로 되돌리겠다! 그래도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때야말로 인정하겠다! 어떠냐?”
[이름]을 지어준 자의 권한이라면 영적인 서열에 있어서 삼황오제의 권위를 넘어설지도 모른다는 게 바로 사공린의 예측이었다. 나는 그런 사공린의 말에 한 번 따라가 볼 수밖에 없었다.
[…좋다. 이게 마지막 기회다.]
월아가 팔짱을 낀 채 황당하다는 듯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설마 그럴 리는 없겠지만 어디 해 봐라. 내가 정말 항아일 리가 있겠느냐?]
심지어 후예도 싸우려는 의지가 사라졌는지 멍하니 구경만 하고 있었다.
[…너희 지금 뭐하는 짓이냐. 바보들이냐?]
[조용히 좀 해 봐라.]
[참나….]
후예는 핀잔을 들었는데도 화를 내긴 커녕 그냥 고개를 돌릴 뿐이었다. 우리가 너무 황당한 짓을 하고 있어서 의욕도 사라진 모양이었다. 싸우면 자기가 반드시 이긴다는 자신감 또한 저런 태도에 한 몫 하는 것이리라.
“해보지 뭐!”
나는 잠시 후 월아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나 백웅이 그대의 이름을 바꾸노니 그대의 이름은 항아(姮娥)! 삼황오제 제곡의 자손이다!”
그 순간이었다.
쿠르르르르….
[우오오오오….]
월아의 전신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마치 단단한 껍질이 쩌적거리며 갈라지는 듯 했다. 엄청난 요기로 가득 뒤덮여 있던 월아의 몸에서 요기의 껍질이 줄기줄기 떨어져내리기 시작했고, 떨어진 껍질이 땅에 닿일 때마다 땅이 강대한 요기 때문에 오염되어서 늪처럼 출렁거렸다.
쿠구구
빛이 월아의 몸 내부에서 새어나온다. 한참동안이나 빛이 흘러나오더니 껍질의 균열이 갈수록 크고 넓어졌고, 종래에는 월아의 몸 전체가 빛으로 뒤덮였다. 그리고 한 순간, 마치 백광이 폭발하는 듯한 빛과 함께 하늘이 크게 터졌다.
콰과광
그 때였다. 내가 품에 지니고 있던 천암비서에서 알 수 없는 어둠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게 들렸다.
우 자 (愚 者) 여
서(書) 는 그 대 의 부 름 을 반 기 노 라
아주 잠깐동안 들려왔던 소리.
크으으으…
그와 동시에 잠깐 제관(帝冠)을 쓴 존재가 피눈물을 흘리는 환영이 보였다. 그 환영은 어딘가에 갇혀서 신음하는 듯 했으나 이윽고 무참하게 피빛으로 물들어서 사라져 버렸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이 소리를 들었나 싶어서 둘러보았지만 아무도 듣지 못한 기색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천암비서에서 의문의 시꺼먼 기운이 흘러나와서 부숴진 하늘 한가운데로 날아가는 게 보였다. 나는 그 기운에 손을 뻗어보았지만 나는 그 기운에 전혀 손도 댈 수 없었다.
‘뭐?! 이건….’
그리고 그 찰나의 순간이 끝났을 때 -
천지천상(天地天上)에 지고(至高)의 미(美)라고 할 수 있는 존재가 눈 앞에 서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그 동안 무수한 절세미녀를 봐 왔지만 그들 중 누구도 지금 눈 앞에 서 있는 존재보다 고결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할 수 없었다.
이것이 바로 - 항아.
신화시대부터 천하제일의 선녀로 이름높았던 존재이자 - 제곡의 직계후예.
“……!!”
털썩
그리고 동시에 맞은 편에 서 있던 투신 후예가 무릎을 꿇고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는 걸 볼 수 있었다. 후예는 믿기지 않는 듯 무릎을 꿇은 채 눈물을 흘리며 외쳤다.
[하… 항아!! 정녕 그대인 것이오!!]
[…….]
이윽고 후예는 비척거리는 발걸음으로 항아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나… 나는 그대를 되찾기 위해…. 무슨 일이든 했소. 제곡이 내 약점을 만들고 흔들어대는 와중에도 무엇이든 하며…. 내 힘이 봉인당하는 수모를 겪어도 끝까지 믿고 따랐소. 그렇지만….]
[…….]
[여와의 말에 따라야만 그대를 되찾을 수 있다 생각했건만…. 이렇게 쉽게 내 소원이 이뤄질 줄은.]
[…….]
[이젠 시련이고 뭐고 아무래도 좋소. 나와 함께 갑시다.]
그 말에 나는 내심 안도할 수 있었다.
‘휴, 다행이다.’
후예가 시련관이 되는 걸 포기한 듯 했다. 거지처럼 어려운 여와의 시련을 이렇게 날로 먹는것인가?
내가 기분이 좋아서 싱긋 웃고 있을 때였다.
[후예.]
후예가 지근거리까지 다가오자, 월궁항아는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가 천천히 그를 향해 주먹을 쥐었다.
[응?]
[이를 꽉 물어요.]
퍼억
[크허억.]
그대로 항아의 주먹이 후예에게로 내려꽂혔고 후예는 방비하지 못하고 맞아서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신력이 담긴 주먹인데다가 설마 자기를 공격할 줄은 몰랐던 모양이었다.
후예는 땅에 널부러져 있다가 당황해서 외쳤다.
[어, 어째서?]
[후예. 미안하지만 당신을 따라갈 수는 없어요.]
[뭐….]
항아가 천천히 내 곁으로 다가와서 섬섬옥수로 뺨을 쓰다듬었다.
이어진 말에 좌중이 완전히 굳어버리고 말았다.
[이 분께서 이제 저의 주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