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1143화 (1,140/1,615)

1143====================

사신지혼(四神之魂)

제곡 입장에서 강력한 투신 예를 통제하기 위해서 만든 약점인 도봉…. 그 도봉을 보관한다면 당연히 제곡 본인의 보물창고에 놔둘 것이리라. 그리고 나는 그 보물창고가 제곡의 궁궐인 반왕전 심처에 있다는 걸 알고 있었으며 심지어 가본 적도 있었다.

나는 아수라에게 말했다.

“사공린이 말하기를 달에 있던 반왕전이 망하고 벌인간들이 렙틸리언들의 노예가 되었다고 했었는데?”

“그랬지.”

나는 비등을 꺼내들며 아수라에게 말했다.

“그럼 완전히 무주공산이겠군. 당장 들어가 봐도 될까?”

“그렇다 해도 반왕전으로 바로 들어가면 안 된다. 제곡이 사라졌다곤 하지만 반왕전의 결계가 비등 하나로 들어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로군. 자칫하다가는 차원결계에 걸려서 몸이 분해될 것이다.”

“으음, 그렇다면 역시 반왕전 근처까지는 직접 이동해야겠군….”

“잘 가라.”

파앗

나는 비등으로 달의 반왕전 근처로 이동했다. 예전에 반왕전으로 이동했을 때 처음으로 쓴 방법은 구천현녀의 도움을 받은 것이었고, 그 다음에는 마물의 도움을 받았으므로 비등으로 이동해보기는 처음이었다. 하지만 현재 구천현녀의 도움을 받기 힘들며 마물을 소환하는 게 꽤 몸에 부담이 가는지라 편하게 비등을 쓰는 편이 낫다고 생각된 것이다.

“우웁.”

괴롭다.

‘공기가 없다….’

나는 달에 오자마자 공기가 없다는 점에 이상함을 느꼈다.  예전에 왔을 때는 시해지술로 절대생존능력이 생겼던 적이 있었고 그 다음번에도 대충 지구처럼 숨쉴 공기가 있었다. 그런데 어째서 이번에는 공기가 무척 희박해서 숨이 잘 안 쉬어지는 것일까?

‘아니…. 공기가 없는 게 정상인가?’

…뭔가 이상한데…. 지금 이 사실 중에서 뭐가 이상한거지….

아 모르겠다.

아무튼 숨을 못 쉬면 죽으므로 나는 가사상태에 이르면서도 활동을 유지할 수 있는 뇌신류 비전의 호흡법으로 몸을 관리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호신강기로 기막을 펼치자 조금 버틸만 해 졌다. 그래도 너무 오래는 못 버틸 것 같았기에 나는 마음이 조급해졌다.

‘아 맞다!’

이럴 때 쓸만한 보패를 갖고있었지!

위잉!

나는 즉시 황룡마신(黃龍魔神)을 꺼내서 착용했다. 그러자 황룡마신의 마스크에서 굳이 호흡법을 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호흡할 수 있게끔 공기가 나오는 게 느껴졌다. 호흡의 걱정을 덜자 몸이 한결 가벼워진 걸 느낄 수 있었다.

스슷

공기가 없어서인지 소리도 나지 않았다. 나는 최대한 예전에 기억하고 있던 반왕전 근처로 왔기에 머지않아 반왕전으로 보이는 장소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인간이 만들지 않은, 이형(異形) 그 자체인 도시가 눈에 들어왔으며 저 장소에 벌 인간 종족들이 제곡의 노예종족으로 살고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도시 근처에 접근했는데도 경비병의 기척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잠복하고 있을지도 몰랐으므로 나는 기를 이용해서 주변의 존재를 감지했고, 일백 장마다 아무것도 없다는 걸 확인했다. 그리고 성문 내부로 들어올 때까지도 아무 것도 없음을 확인하자 의아해졌다.

뭐지?

자세히 보니 도시의 중심부, 반왕전의 입구라 할 수 있는 거대건물에 벌인간들이 모여있는 게 보였다. 모여있다기 보다는 뭔가를 열심히 심고 있었는데, 그것은 꽃으로 보았다. 예전에도 벌인간들이 저 꽃을 잔뜩 따 가는 걸 보았었는데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자 호기심이 생겼다.

‘저 녀석들 외계인의 노예가 되었다고 했었는데 왜 꿀을 따고 있는 거야?’

분위기가 이상하다. 나는 좀 더 살펴볼 필요를 느꼈다.

샤아아앗

잠시 후 깊게 심어져 있는 외계의 꽃에서 은은한 빛이 안개처럼 흘러나왔다. 나는 그 안개빛이 천천히 제곡의 궁궐 안으로 흘러들어가는 걸 볼 수 있었다.

‘궁궐의 유지에 필요한 영기를 공급하는 건가?’

나는 잠시 상황을 지켜보았다.

‘내 기억으로 이 근처는 제곡의 사도인 사비시신이 순찰을 돌고 있었어. 벌인간들이 건재하다면 사비시신도 아마 감독역할로 맴돌고 있겠지.’

나는 최대한 숨과 기척을 죽이고 근처의 건물에 숨어서 궁궐을 관찰했다.

‘제곡이 죽을 때 사도인 사비시신도 같이 죽었던 것 같지만…. 벌인간이 방금 보였으니 속단할 수는 없지. 혹시 살아있을지도 모르니 조심해서 움직이자.’

나는 인내심 있게 기다렸다. 그리고 약 두 시진이 지나서 모여있던 벌인간들이 꽃심기를 마치고 해산하기 시작했고 광장이 텅텅 비었다. 그 때까지도 사비시신이 전혀 나타나지 않았기에 나는 움직이기로 했다.

‘죽은 거 맞나보네. 들어가 볼까!’

타닷

누가 보면 성급하다 하겠지만 두 시진이면 참을만큼 참았다. 사비시신이 이 근처를 감독하는 것 같지 않다는 내적 확신이 생겼기에 나는 도리어 지금이 기회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나는 날듯이 뛰어서 곧장 궁궐 내부로 침투했다.

우우웅 -

나는 예전과 같이 거대한 어전에 도착했음을 알 수 있었다. 바로 이 곳이 반왕전인 것이다. 그리고 예고없이 침투했는데도 나를 막는 기색은 없었으며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최대한 신중하게 기척을 숨기면서 기둥 뒤쪽으로 숨어다니며 천천히 전진했다.

파밧

‘음….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데…. 아, 아닌가?’

쿠구구

나는 멀리에 있는 어전 중심에서 큰 그림자가 맥동하는 걸 발견하자 흠칫하고 놀랐다. 저 그림자의 형상이 점차 가까워졌고 일렁이는 불빛 뒤편에서 무언가가 살짝 부유해서 돌아다니는 게 느껴졌다.

스르륵

사람의 얼굴에 개의 귀, 그리고 알 수 없는 짐승의 몸!

‘제곡의 사도 사비시신!’

제곡이 소멸되었는데도 저 놈은 멀쩡하단 말인가?

‘대체 뭐야! 제곡의 반왕전은 완전 망한 줄 알았는데 사비시신도 있고 반왕전도 멀쩡하고….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지?’

알고 있던 정보와 다르다!

나는 사비시신이 뜬금없이 모습을 드러내자 재빨리 모습을 숨겨야 한다고 생각하고 최대한 기척을 숨겼다. 그러자 사비시신이 불빛을 등지고는 노호성을 내었다.

[필멸자의 냄새가 나는구나. 어떤 쥐새끼가 숨어들었느냐?]

내가 가만히 숨어있자 사비시신이 개의 귀를 쫑긋거리며 다시 한 번 외쳤다.

[죽어라!!]

두쿵

나는 그 순간 내 심장이 크게 내려앉으며 전신이 찌릿거리는 걸 느꼈다. 전신의 힘이 빠지고 저절로 기력이 소모되는 게 느껴졌고 죽음의 절망이 코앞까지 시큰거렸다. 나는 이게 무엇인지를 깨닫고는 눈을 부릅떴다.

‘언령(言靈)이다!’

필멸자를 없애는 죽음의 언령! 대상자가 딱히 없어도 범위로 시전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눈이 튀어나올 듯한 압박과 함께 심장이 일 초에 여섯 번씩 뛰면서 몸이 망가지는 게 실시간으로 느껴졌다.

‘컥…. 진짜… 쎄다….’

나는 사도의 언령에 제대로 걸리자 그대로 죽을 것만 같았지만 그 때 갑자기 황룡마신의 투구 쪽에서 기계음이 들려왔다.

[사용자의 파워를 디바인 레지스턴스로 전환합니다.]

치잉 -

갑자기 숨쉬기가 편해졌고 심장이 터질 듯이 부풀어있던 게 원상복구되는 게 느껴졌다. 나는 그 덕에 다시 한 번 기척을 없앨 수 있었고 아슬아슬하게 은신술을 유지할 수가 있었다. 잠시동안 두리번거리던 사비시신이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중얼거렸다.

[진짜 쥐새끼였나….]

설마 자신의 언령을 필멸자가 버텼으리라고는 생각 못해서일까? 사비시신은 어디론가 가 버리고 말았고 나는 드넓은 궁전의 어둠 속에 숨어서 숨을 천천히 몰아쉬었다.

“헉… 헉….”

사도의 언령에 당했는데 내가 어떻게 살아남은 거지? 내 힘으론 당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도대체 어떻게….

나는 황룡마신의 투구를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렸다.

“네가 한 거냐?”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하지만 왜인지 황룡마신의 숨겨진 기능이 나를 방금 전에 살려준 느낌이었다. 나는 내심 고마움을 느끼면서 사비시신의 움직임을 살피며 궁궐 내부로 더욱 깊숙히 들어갔다.

‘예전의 기억대로라면….’

예전에 찾아왔을 때는 제곡의 옥좌에 앉았을 때 오색조(五色鳥)가 나타나서 내게 보물창고의 위치를 알려준 바가 있었다. 나는 그 때의 기억을 더듬었다.

[종언이 닥쳐왔으나 아직도 살아있는 인간이 있을 줄이야…. 그리고 옥좌에 있던 십양(十陽)의 봉인을 풀다니 그대는 보통 존재가 아니구나.]

[푸른빛이 세 번 교차한 장소에서 노란빛을 따라가라. 그 곳에 제곡이 모았던 모든 보물이 있을 것이다.]

우연히 제곡의 옥좌에 앉았을 때 음신지력이 발동해서 십양의 봉인을 풀었었고 동시에 오색조도 불러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렇게 할 필요가 없었으므로 기억이 나는대로 푸른빛이 세 번 교차한 장소를 찾아서 뛰어가기 시작했다.

타닷

나는 보물창고가 있는 궁궐의 안쪽 방에 도착해서 문을 벌컥 열려고 했다. 그러나 두툼한 중압감 때문에 문은 열리지 않았고 나는 당황했다.

“엥?!”

이거 뭐야? 제곡이 소멸했으면 이건 당연히 열려야 하는 거 아냐? 이거 왜 안 열려?

보물창고 방이 안 열리는 상황은 생각지도 않았기에 나는 크게 당황했다. 그리고 그 때 황룡마신의 투구 안쪽에서 다시 기계음이 들려왔다.

[레벨 12의 디바인 실(Divine Seal)을 감지. 얼럿 시그널(alert signal)의 발산을 차단했습니다.]

“……!!”

[해킹을 시도하시겠습니까?]

“무, 무슨 소리야? 지금 네가 말을 건 거냐?”

[해킹을 시도하시겠습니까?]

“…….”

아무래도 인공보패 황룡마신에게 자기 의지가 있는 것 같다. 나는 잘은 모르겠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시도해.”

[사용자의 허가에 의해 파워를 디바인 해킹으로 전환합니다.]

스스스스 -

그와 동시에 내 몸에 있던 신력이 황룡마신의 두툼한 철갑수에 집중되어 빨려가는 게 느껴졌다. 나는 황룡마신이 신력을 감지해서 자유자재로 이동시킬 수 있다는 걸 알아차렸고, 이윽고 황룡마신의 철갑수가 황금빛으로 강렬하게 빛나는 걸 알아차렸다.

치지징!

황금빛으로 빛나던 손이 문에 정면으로 닿고 이윽고 거대한 문짝에 황금빛이 장심을 통해서 실핏줄처럼 퍼져나갔다. 찌직거리며 황금의 힘이 흘러들어가자 잠시 후 황룡마신의 투구가 기계음을 내었다.

[해킹 완료. 디바인 파워의 환원은 불가능합니다.]

위잉 -

덜컹!

그 말이 끝나자마자 보물창고의 문이 크게 열렸다. 아무래도 디바인 해킹이란 게 성공해서 문이 열린 모양이었다. 나는 크게 놀랐다.

“……!!”

이런 게 가능한가?!

나는 문득 사공린이 얼마 전에 금성에서 했던 말이 떠올랐다.

[사실 황룡마신의 코어에는 아틀란티스의 최고기술이 도입된 의문의 코어가 그대로 끼워넣어졌어요. 총독부의 최심처에 있던 코어였고, 지금 드린 총독의 심장과 함께 놓여있었던 물건입니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어떤 잠재력이 있는지는 본국의 연구자들도 미지수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당신이라면 왠지 황룡마신의 잠재력을 끌어낼 수 있을 것 같군요….]

설마 지금 황룡마신의 잠재력이 나타나서 아틀란티스 코어의 힘이 발현되었단 말인가? 나는 신기하게 여기면서 보물창고 안으로 들어갔고, 창고 가득히 쌓여있는 보물들을 쳐다보며 흡족하게 웃었다.

“뭐 아무렴 어때. 열었으면 됐지.”

제곡의 보물창고는 산더미같은 금은보화가 쌓여있고 온갖 보물이 넘쳐났고 지평선을 이룰 정도였다. 나는 예전이었다면 전시안을 써서 이 중에서 상등품 보패를 감별해서 가져갔겠지만 지금은 전국옥새가 없었기에 곤란함을 느꼈다.

‘흠. 화안금정을 한 번 써볼까….’

화르륵!

눈에서 불이 밝혀지며 화안금정이 발동했지만 아쉽게도 전시안처럼 정확하게 영기를 감별할 수는 없었다. 애초에 그런 용도로 쓰는 게 아닌지 몇몇 특출난 보패는 감지할 수 있었지만 전시안처럼 세부적으로 파악하는 건 불가능한 듯 했다.

‘쳇. 거의 보이지 않는군. 건지기 용도로 쓰긴 힘들어.’

나는 일단은 화안금정으로 감지한 귀중한 보물을 집어넣으며 보물창고 내부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도봉을 찾아야 하는데 어디 있지?’

복숭아나무로 된 방망이를 찾아야 한다. 나는 신중하게 도봉의 위치를 찾아다녔지만 이 수많은 보물 중에 비슷하게라도 생긴 건 찾아볼 수가 없었다. 나는 반 시진 가까이 드넓은 보물창고를 걸어다녔지만 아무것도 찾지 못하고 털썩 주저앉았다.

“제길…. 이걸 죄다 목갑에 넣을 수도 없고 어쩐다.”

아무리 목갑의 내부공간이 넓더라도 이렇게 많은 양은 무리다. 자칫하다가는 도봉만 빼고 다 가져갈 확률도 높았다. 일단 귀해보이는 건 몇 개 챙겨서 넣어두었지만 왠지 좀 쓸데없어보이는 금은보화가 많아보이기에 쓸어담지는 못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도봉에 대한 정보를 찾아본 다음에 올 걸 그랬나? 성급했나 싶어서 후회하고 있을 때였다.

위이이이!!

‘이 소리는?’

위험하다!

나는 급히 백변신투 비급 속 벽호공(壁虎功)의 하나인 공자왈(孔子曰)을 써서 보물창고 내의 커다란 기둥 위로 기어올라갔다. 기둥이 충분히 크고 넓어서 보물 속에 숨는 것보다는 훨씬 더 숨기좋은 장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잠시 후 보물창고 안으로 무언가가 뛰어들어왔다.

그것은 개였다. 오색이 만발하는 휘황찬란한 빛을 내는 거대한 개는 몸 크기가 일 장 정도였으며 강렬한 영기를 내뿜고 있었는데, 그 영기의 강력함은 사비시신에 뒤지지 않는 듯 했다.

그리고 뒤이어서 사비시신이 개와 함께 들어왔는데 그가 당황한듯 말했다.

[이럴 수가… 보물창고의 문이 열리다니. 반호(槃瓠)여, 어찌 알았는가?]

[커엉!]

반호라고 불린 개가 짖자 사비시신이 알아들은 듯 말했다.

[좋아…. 도둑놈의 냄새를 찾아라! 같이 잡아죽이자!]

[커컹!]

반호가 땅을 킁킁대며 냄새맡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비시신이 천천히 날개를 홰치면서 날아다니는 게 보였다.

……!!

으악! 저 개새끼는 대체 뭐야!

예전에 왔을 땐 전혀 본 적이 없는 놈인데?!

저 놈도 제곡의 사도란 말인가?

어쨌든 이대로라면 잡혀죽고 만다는 걸 깨달은 나는 긴장으로 몸이 바짝 굳었다.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방법이 딱히 없다는 걸 알아챘기 때문이다. 은신술 중에 내가 알고있는 조악한 환술로는 저런 강력한 사도들의 눈을 속이는 게 불가능했고, 그렇다고 무공 은신술 중에서 맹자왈 같은 걸로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 보통 내가 쓰는 은신술은 투명과 은신을 섞어 쓰는건데 인간들한테나 잘 통하고 저런 고위존재들에겐 통하지 않는 방법이다.

…정면돌파할까?

아니, 안 될 것이다. 사비시신 하나만 해도 목숨걸고 싸워서 이긴다는 보장이 없는데 저 반호라는 개새끼도 엄청 강해보인다. 싸우면 무조건 내가 죽을 것이다.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기둥에 매달려있다가 문득 다른 생각이 들었다.

‘그래…. 그거다…!!’

이런 상황에서 시도해본 적은 한 번도 없지만 어쨌든 해보는 거야!

나는 정신을 집중해서 비기를 시전했다.

천면공자(千面公子)

비기(秘技)

천면변태(千面變態)!

쉬아아앗

원래 천면공자로 변신할 수 있는 건 ‘인간’으로 한정된다. 그러나 신투지존에게서 배운 천면공자를 오랫동안 써 오면서, 나는 그 제약을 어느 정도 무시할 수 있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신투지존의 비기를 오랫동안 사용하면서 숙련도가 쌓인 덕분일 것이리라.

그것은 바로, 천면공자에다가 일자상전의 비기, 변태술(變態術)을 가미하는 것.

변태의 힘으로 이족으로도 변신이 가능하리라!

슈슈슈슉

내 몸이 실시간으로 변하는 게 느껴졌다. 나는 아직 그녀의 ‘가면’을 보고 느낀 적은 없지만, 한 번 만나본 적이 있다. 그 때 일견했던 기억만으로 그녀의 가면을 최대한 상상해서 변태술로 구현화한다!

…성공했다!

파앗

나는 하늘에서 날듯이 내려와서 당당하게 두 마리의 사도 앞에 내려앉았다. 두 사도들은 동시에 나를 쳐다보았고, 나는 최대한 감정을 억제하며 놈들에게 말했다.

[여기까지 무슨 일로 왔느냐?]

이 말을 하는 순간 나는 공격받을까봐 전전긍긍했다. 만일의 경우 첫 일격을 받아내고 곧장 파천일보로 뒤도 안돌아보고 도망치는 방법밖에 남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놈들은 나를 공격하지 않고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황후(皇后)시여…. 침입자가 있다 생각하여 왔나이다.]

[침입자라고?]

[반호가 냄새를 맡았사옵니다.]

[침입자같은 건 없다. 내가 보물을 찾아보고자 들어온 것이다.]

[그러셨군요….]

사비시신이 극상의 예를 표하듯 고개를 끝까지 들지 않으며 말했다.

[하긴 제곡님께서 실종되신 지금, 보물창고를 자유자재로 드나들 수 있는 건 오색조님 뿐이실진대…. 저희의 잘못이니 너무 심려치 마옵소서.]

그렇다.

나는 제곡의 황후인 오색조로 변신한 것이다! 오색조는 이 궁궐 내에서 제곡 다음으로 높은 지위이니 어떻게든 피할 수 있으리라는 예감이 맞아떨어진 듯 했다.

‘으갸갸갹… 몸 전체가 땡긴닷…!! 풀리겠다!’

인간으로 변신했을 때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부하가 몸에 걸리고 있었다. 인간으로 변신할 수 있는 시간이 몇 시진이나 된다면 오색조로 변신하는 건 반 각조차도 버거운 기분이었다. 나는 전신의 피부를 땡기는 고통에 잠시 몸서리를 쳤지만 여기서 풀려버리면 진짜 죽는단 생각에 이를 악물고 말했다.

[흥이 깨졌다. 나는 이만 가겠다.]

[살펴 가시옵소서….]

나는 오색조의 날개를 천천히 푸득거리며 보물창고를 나가려 했다. 그런데 내가 나가려 하자 반호라고 하는 개가 나를 따라왔는데, 나는 위기감을 느끼며 말했다.

[반호. 무슨 일이냐?]

그러자 옆에 있던 사비시신이 말했다.

[반호는 황후폐하의 애완견이지 않사옵니까. 함께 가시옵소서….]

[…….]

큰일났다…. 그런 거였나.

나는 당장이라도 변태가 풀릴 것 같아서 전신의 오금이 저렸지만 애써 태연하게 말했다.

[사비시신. 그럼 당장 도봉을 갖고와라. 난 사실 그걸 찾으러 왔다.]

[네? 무슨 일이신지….]

[후예가 일전에 내게 무례한 짓을 저지른 게 기억이 났다. 혹여 그 자를 만날 경우를 대비해서 도봉을 미리 꺼내두어야겠다.]

[알겠사옵니다. 당장 가져옵지요.]

휘잉

사비시신이 보물창고에 들어가더니 잠시 후 볼품없는 조그마한 몽둥이를 하나 꺼내왔다. 너무 볼품없어서 내가 발견하려고 했으면 도저히 알아챌 수 없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도봉은 여기 있사옵니다.]

나는 도봉을 받아들고는 사비시신에게 말했다.

[사비시신. 하는 김에 바깥 벌인간들을 불러서 일을 좀 더 시켜라. 요새 게을러보이는구나.]

[알겠사옵니다.]

파앗 -

사비시신이 곧장 그 자리에서 공간이동으로 사라졌다. 나는 귀찮은 놈을 떼놨다는 생각에 내심 안도의 한숨을 쉬며 반호에게 말했다.

[너도 네 자리로 되돌아가….]

그런데 뭔가 기척이 이상했다.

[크르르르!!]

냄새를 맡던 반호가 갑자기 눈에서 혈광을 내뿜더니 으르렁거리기 시작했고, 오색찬란한 털이 크게 부풀어오르며 일 장 크기의 몸뚱이가 순식간에 삼장이나 되는 거대한 마수처럼 변했다. 거대해진 반호가 나를 당장이라도 공격할 듯 발톱을 드러내자 나는 위기감을 느꼈다.

[왜, 왜 그러느냐? 나는 오색조….]

[가 아니겠지.]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뒤를 돌아보자 멀리 통로에서 오색의 빛을 지닌 날개가 펄럭거리며 이 쪽으로 오고 있었다. 그리고 이윽고 모습을 드러낸 존재가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놈은 어디의 변신술사인가? 설마 나로 변신해서 사비시신을 속일 수 있다니…. 다른 신의 수하인가?]

[…….]

진짜 제곡의 황후인 오색조였다.

‘큰일났다.’

나는 그 순간 천면변태도 한계에 도달했음을 깨달았고 어쩔 수 없이 변신을 풀 수밖에 없었다.

퍼엉

내 본모습이 드러나자 오색조가 눈에 이채를 띄었다.

[인간이었다니! 인간 따위가 그런 변신술을 쓸 수 있다니?]

나는 어쩔 수 없음을 알고 오색조에게 말했다.

“오색조시여! 저는 백웅이라 합니다.”

[호오. 그 이름 들어보았노라. 해신과 싸웠던 인간의 황제가 아닌가?]

“…….”

이런 제길! 괜히 이름 말했나?

내 이름이 생각보다 유명했구만….

“제가 도봉을 빌리러 왔으나 딱 한 번만 봐주십시오! 이게 없으면 후예를 잡을 수가 없사옵니다.”

[웃기는구나. 도둑놈이…. 지금도 도망칠 생각만 하고 있으면서!]

큭… 들켰다….

나는 이를 악물고 오색조에게 말했다.

“도봉을 빌려주신다면 이걸 바치겠나이다!”

나는 품 속에서 휙하고 물건을 꺼내서 던졌다. 그 물건을 받아든 오색조가 찬찬히 들여다보다가 말했다.

[죽음의 운명을 왜곡하는 능력이 있는 신물이구나. 어디서 얻었느냐?]

“…[총독의 심장]이라 하옵니다. 그 물건 정도면 도봉을 빌릴 수 있지 않겠사옵니까?”

죽음의 운명을 왜곡해서 사용자를 한 번 살려주는 능력이 있는 아틀란티스의 유물.

여기서 쓴다는 건 좀 아깝지만 여기서 파천일보를 써서 개억지를 쓰면서 도망치는 건 엄청난 실책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도둑으로서의 감각에 가까웠다. 그래서 일단은 빌린다는 명목으로 오색조와 거래를 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총독의 심장을 들여다보던 오색조가 말했다.

[괜찮은 거래군. 그렇다면 이 대여계약에 네 이름을 걸어라.]

“알겠사옵니다.”

[기한은 후예를 쓰러뜨리는 즉시. 이 계약을 어기면 죽어서 우리의 노예가 되어 영겁토록 학대당할지어다.]

“…알겠사옵니다.”

[그럼 가 보거라.]

나는 오색조를 쳐다보며 말했다.

“정말 놔 주시는 겁니까? 저를 잡으시는 게 간단하실 텐데….”

[간단치 않다는 걸 모를 줄 아느냐? 네놈같은 신투(神偸)와 드잡이질하느니 빌려주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어쩐지 파천일보의 존재까지도 눈치챘다는 느낌이 든다. 오색조 또한 강대한 신적 존재일 것이다.

[대도(大盜)여. 약속은 지켜야만 할 것이다….]

오색조가 반호를 이끌고 서서히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오색조가 사라지자 물끄러미 그 자리를 쳐다보다가 바깥으로 나왔다. 그리고 밖으로 나오자 사비시신이 크게 분노한 눈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는데 그가 살벌한 눈으로 말했다.

[네놈! 황후의 명으로 오늘은 보내지만 다음에 보면 절대 가만두지 않겠다!]

“…….”

제길! 사비시신과 원수져 버린 건가?

나는 황급히 그 자리를 벗어나서 지상으로 되돌아갔다.

내가 도봉을 가져와서 아수라에게 기억을 보여주자, 아수라가 말했다.

“파천일보로 그냥 튀었어도 도망칠 확률이 6할은 되었을 텐데 굳이 거래를 택했구만.”

“그게…. 별로 안 좋은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

“뭐 그런 직감이 소중한 법이지. 어쨌든 간에 도봉은 얻어왔으니 잘 했다.”

심드렁하게 대꾸한 아수라가 말했다.

“그건 그렇고 네 녀석의 도둑질 실력이 더 향상된 것 같군. 설마 오색조로 변신할 수 있다니, 그런 변신술은 신선조차도 쓸 수 없는 건데.”

“젠장. 하면 몸이 땡겨서 죽을 것 같다고.”

“크큭…. 가면 갈수록 네 녀석 신투지존과 닮아간다고.”

“악담하지 마….”

“크크큭.”

아수라는 웃더니 말을 이었다.

“자, 도봉은 얻었겠다. 이제는 또 하나의 약점을 찾아야지.”

“또 하나의 약점?”

내 반문에 아수라가 눈을 빛냈다.

“월궁 항아. 그녀의 위치를 찾아내는 거다. 이건 도봉보다 더욱 커다란 약점이니까 이것까지 찾아낸다면 후예를 반드시 쓰러뜨릴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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