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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나는 검마의 말을 듣고서 한참이나 서 있다가 문득 정신을 차렸다.
‘그래도 이렇게 보내선 안 돼.’
내게 있어서 망량은 그저 말 한마디로 떠나 보낼만한 존재가 아니다. 나는 급히 탐사대가 제각기 지니고 있는 귀환의 돌을 꺼내서 발동시켰다. 이것은 천계의 대라신선들이 만들어준 이동 전용의 보패로, 지금까지 천계의 시련을 탐사하는 동안에 일시후퇴를 가능하게 해주는 공간이동능력이 있었다.
파앗
나는 팔괘궁으로 돌아온 후 급히 통로 바깥으로 나갔다. 그리고 곧장 현허궁으로 향했는데, 현허궁 안으로 들어가려 하자 갑자기 신선 두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멈추시오.]
나는 그들의 제지에 멈춰섰고 좌측에 서 있던 자색날개의 신선이 내게 말했다.
[현허궁주께선 현재 자리를 비우셨으니 나중에 다시 오시길 바라오.]
“망량은 바로 방금 전에 팔괘궁을 나섰소. 그런데 당신들이 어떻게….”
[잠시 들르셔서 현허궁의 경비를 맡기셨소. 부재중에는 출입불가요.]
“안에 망량이 있는 건 아니오?”
[그렇지 않소.]
나는 신선 둘을 노려보았고 그들 또한 냉막하게 내 시선을 받았다. 나는 손이 근질거려서 칠요의 손잡이를 잡았으나 이내 포기하고 손에 힘을 풀었다.
‘이깟 신선놈들 베어버릴 수 있겠지…. 하지만 정말로 안에 망량이 없다면 무의미한 일이다.’
게다가 설령 망량이 안에 있다고 해도, 탐사대장 검마가 망량을 쫓아낸 모양새이니 한층 더 꼴이 추해지지 않겠는가? 나머지 탐사대가 공략에 전력을 다하는 걸 생각하면 내가 이런 사고를 쳐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나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다시 오겠소.”
나는 현허궁을 등지고 한동안 천계의 거리를 걸었다. 많은 신선들이 여기저기에 보였고 그들은 더러 내게 호기심을 보이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무관심한 태도였다. 나는 이렇게 보니 신선도 인간과 크게 다를 건 없다고 생각했다.
‘제길. 생각이 정리가 되질 않는군….’
망량은 왜 그런 짓을 했던 걸까? 검마의 말이 전부 다 옳아서 사실은 지금 이렇게 쫓아나올 필요도 없었다. 나는 평소의 현명한 망량답지 않은 행동이 왜 일어난 건지 이유를 알 수가 없어서 계속해서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그 때였다.
“이야! 백웅 너 여기 있었냐!”
“……?!”
“우연이네 이거.”
익숙한 목소리. 나는 그 목소리의 주인을 알아채고는 황당해서 외쳤다.
“제천대성!!”
그렇다!
제천대성이 어깨에 여의봉을 올린 채 나를 응시하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예전에 해신토벌 때 그에게 조력을 요청했었고 거의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 있었던 존재다. 그래서 천계에서 만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뜬금없이 여기서 만날 줄은 몰랐다. 제천대성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너 인간 아니었냐? 오백 년 지났는데도 전혀 안늙었구만. 장수의 술법이라도 쓴 거냐?”
“아 그게….”
제천대성은 왠지 내가 미래로 도약한 상황을 모르는 것 같다. 내가 우물쭈물하자 제천대성이 말했다.
“뭐 됐고 지금 바쁘냐?”
“아, 혹시 현허궁주 망량을 못 보셨습니까?”
“그 놈 찾으러 나온 거였군. 난 못 봤다.”
“음….”
나는 곤란해져서 침음성을 흘렸다. 멍해져서 그 자리에 서 있자 물끄러미 나를 보던 제천대성이 말했다.
“꼭 집잃은 개같은 표정이군. 망량과 싸웠냐?”
“…….”
“나한테 말해봐라. 얘기 정도는 들어주지.”
나는 나도 모르게 제천대성에게 시련의 탑을 오르다가 망량과 분열하게 된 일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한참 이야기를 듣고 있던 제천대성이 말했다.
“검마 말이 맞구만. 왜 자기 발로 나간 놈을 찾아다니냐?”
“…그게.”
“꼬락서니를 보아하니 막상 만나봤자 중언부언이나 하겠구만.”
“…….”
그럴 것 같다. 정곡을 찔린 느낌때문에 움찔하자 제천대성이 히죽 웃었다.
“임마 따라와 봐. 얘기 좀 하자.”
우웅
나는 제천대성과 근두운을 타고 어디론가 향했다. 그리고 한참 후에 어딘가 험준한 산에 도착했는데 제천대성은 그 산의 계곡에 내린 후 시원한 물에 자신의 발을 담그며 말했다.
“난 그때 네 녀석이 죽은 줄 알았는데 인간들은 네가 살아있다고 믿고있더군. 그래서 반신반의하고 있었는데 정말 나타날 줄이야.”
“사정이 있었습니다.”
“뭐 아무래도 좋아. 해신을 까고 전욱이랑 소통하는 놈이 오백년 살아있다고 뭐가 놀랄 일이겠냐.”
첨벙 하는 소리와 함께 제천대성이 두 발을 계곡물에 담궜다. 그리고는 말을 이었다.
“너희가 탑을 공략하는 이유는 대충 알고 있어. 복희를 만난다면서?”
“네.”
“근데 만나서 뭐할지는 안 알려주던데 왜 만나는 거냐.”
“종말을 유예할 방법이 있는지 찾아보려는 겁니다.”
제천대성이라면 알려줘도 될 듯 하다. 그러자 제천대성이 말했다.
“그런데 여와 아줌마가 너희를 쎄게 막은 거고 말이지.”
“…그렇죠.”
나는 이야기하다가 문득 의아함을 느껴서 제천대성에게 말했다.
“93층에는 투신 예가 전성기의 힘을 갖고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혹시나 제천대성께서도 시련관으로 나타날지도 모른다고 걱정했었는데, 여와의 제안이 오지 않았던 겁니까?”
“아니 왔었어. 근데 거절했지.”
“아.”
제천대성이 큰 바위에 상체를 벌렁 눕히며 하늘을 쳐다보았다.
“이제 와서 내가 그 아줌마 도움을 받아서 이루고 싶은 소원까지 있겠냐? 화과산도 구천현녀가 마련해준 마당인데.”
“화과산요?”
“여기가 화과산이야. 예전 내 부하들도 다 있다.”
“……!!”
화과산!
그 곳은 제천대성의 출생지이자 본디 원숭이들이 살아가던 신묘한 산이라고 들었었다. 나는 뜻밖의 장소를 알게 되자 놀랐고 제천대성이 말을 이었다.
“옛날에 내가 천계랑 싸우다가 화과산이 터졌었거든. 그래서 내 부하들한테 그동안 미안했었는데 구천현녀가 통 크게 화과산을 만들어줬잖냐.”
천계랑 싸웠다는 말이 보통은 허세로 들려야 하는데 제천대성이니까 허세가 아닌 것 같다. 나는 제천대성에게 말했다.
“어쨌든 다행이군요.”
“내가 시련에 안 나와서?”
“네.”
제천대성은 피식 웃었다.
“짜식 운 좋은 줄 알아라.”
제천대성이 시련으로 나오면 도저히 이길 자신이 없다. 이건 진심이다.
그러자 제천대성이 머리를 긁적였다.
“음, 근데 항우는 나올 거다.”
……?
나는 순간 잘못 들었나 싶어서 눈을 둥그렇게 떴다. 그리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뭐, 뭐라고요. 대체 무슨….”
“나랑 항우가 팔씨름하고 있을 때 여와의 환영이 나타났었거든. 나는 거절했는데 항우는 그 제안을 받아들이더라고.”
“몇 층에 나타나는 겁니까?”
“몰라 그런 거. 니가 여와라면 나한테 말해주겠냐.”
“…….”
그건 그렇다. 제천대성이 계곡물을 발로 첨벙거리며 말을 이었다.
“거기까지 알게 되니까 널 한번 찾아가볼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그래서 근처를 어슬렁대고 있는데 널 봤지.”
“으으윽….”
나는 머리에 쥐가 나는 기분이 들었다.
설마 항우가 정말로 시련으로 출현하는 게 확정되었다니!
당장 예만 하더라도 엄청나게 어려운 시련인데 도대체 어떻게 해야한단 말인가? 내가 암울한 표정을 짓자 제천대성이 말했다.
“여와한테 뭐 미움산 거 있냐? 내가 봐도 깨라고 만든 난이도가 아닌 거같은데.”
“…저도 모릅니다. 그냥 여와는 제게 뭔가를 기대하고 있는 것 같아서.”
“그래서 어떻게 깰 거냐?”
“네?”
“항우는 그렇다 치고 예 아저씨가 전성기의 힘을 되찾았다면서. 그럼 내가 목숨 걸고 싸워도 이긴단 보장이 없겠는데.”
“음 그게 좀….”
“어떻게 싸웠는지 나한테 말해 봐라.”
나는 난감한 표정으로 예가 보여줬던 무위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그 기억을 들은 제천대성이 명쾌하게 말했다.
“그 아저씨 겁나 세졌구만~ 너는 절대 못 이기겠다.”
“…….”
“그 정도면 니 친구들이랑 다구리 쳐도 안 먹힐 거같은데 결국 무쌍패를 써야 희망이 보이겠다.”
“그건 그렇습니다만 무쌍패는 단시간에 익힐 무공이 아니라서….”
“크크크.”
갑자기 제천대성이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의아해서 그를 쳐다보자 그는 히죽대는 표정으로 말했다.
“왜 여와 뜻대로 다 맞춰주냐? 그게 원래 니가 싸우는 방법이야?”
“무슨 말입니까?”
“차라리 망량이란 놈이 좀 더 머리가 트였구만.”
그는 여의봉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
“종말까지 십수 년 남았다면서. 그럼 너희가 정식수련으로는 때려죽여도 그 탑의 시련에 있는 놈들을 못 이겨. 하나같이 악랄하게 세보이잖아. 장삼봉이 너희를 훈련시켜줘도 언 발에 오줌누기일 뿐 힘의 격차는 명백하거든. 결국 여와는 너희에게 신급(神級) 적을 상대로 어떻게 대응할지를 보고싶은 거 아니겠냐.”
“그건 그렇죠. 예든 항우든 지금으로서는 확실히 신적 존재니까….”
“불가능을 강요하는데도 끝까지 정공법을 고수하는 게 과연 너희에게 여와가 원하는 해답일까? 기적을 일으키는 것만이 해답이냐?”
“……?”
“망량이란 놈은 그걸 깨달았기 때문에 희한한 짓을 했을지도 모르겠군.”
그렇게 중얼거린 제천대성이 말을 이었다.
“야, 싸움이란 게 뭐냐? 싸움은 왜 하냐.”
“이길려고 하는 거죠.”
“바로 그거지. 이기면 장땡이야. 넌 그걸 여와한테 보여줘야 해. 단지 그 아줌마한테 기대감을 줄 수 있는 방식으로.”
“……!!”
나는 그 말을 들은 순간 뭔가를 깨달은 느낌이 들었다.
‘잠깐… 그렇다면….’
지금까지 내가 뭔가 잘못 생각했다는 말인가? 내가 혼란스러워하자 제천대성이 슥하고 바위에서 일어섰다.
“보아하니 니가 모르는 곳에서 여러 명이 뭔가를 꾸미는 상황같군. 그럼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니가 하던 대로 해. 그게 제일 옳은 길일 거다.”
“고, 고맙습니다.”
내가 감사인사를 하자 제천대성이 대꾸했다.
“나중에 술 사라. 좋은 걸로.”
“네.”
“진짜 좋은 거.”
부웅
제천대성은 근두운을 타고 어디론가 가 버렸다. 그는 정말로 우리 일에는 별 관심이 없는 기색이었다. 그가 종말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는지 궁금했지만, 어쨌든 나는 제천대성의 말을 듣자마자 정신이 번쩍 드는 걸 느꼈다.
‘그래. 지금까지 나답지 않았어.’
왜 그랬던 걸까? 답답하게 꽉 막혀있던 생각이 풀려나서 미친듯이 요동친다. 내가 나답게 살아가는 게 언제나 가장 옳은 것일텐데 지금까지 나 이외의 일로 생각할 게 너무 많았을지도 모른다.
나는 곧장 92층에 있는 검마에게로 되돌아갔다. 그리고는 말했다.
“검마. 망량을 찾는 건 그만두겠습니다.”
“당연히 그래야지.”
“단지 93층을 공략하기 전에 지상에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마음대로 하게. 그런데 내려가는 법은 알고 있나?”
“망량한테서 미리 들어뒀습니다.”
“갔다오게.”
파앗
나는 구천현녀가 있는 대궁(大宮)으로 향했다. 이 대궁은 원래 없었던 궁궐이지만 구천현녀가 천계의 실권을 잡으며 새로이 지어진 장소였으며 실질적으로 천계 지배자의 공간이었다. 나는 구천현녀를 마주한 자리에서 말했다.
“망량이 여기 들르지 않았습니까?”
[들렀습니다.]
“지상으로 내려갔나 보군요.”
[그래요.]
망량이 추방당하자마자 현허궁에도 가지 않고 곧장 지상으로 갔다는 것.
그것은 왠지 망량이 이미 이렇게 될 거라는 걸 짐작하고 있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무언가 머릿속에서 가설이 떠올랐지만 아무런 확증이 없었기에 일단 머릿속에 넣어두고는 구천현녀에게 말했다.
“저를 지상에 보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파앗
나는 환한 빛과 함께 천제단으로 내려왔다. 나는 천제단의 주변을 둘러보며 밑으로 내려왔는데, 아무래도 내가 아는 천제단이 아니었다.
‘숭산의 천제단으로 올라왔었는데 여긴 거기가 아니군.’
숭산의 천제단이라면 늘 신승이 상주하고 있어야 하는데 아무런 인기척이 보이지 않는다. 기계실을 나와서 산야가 보이는 장소로 나오자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천계 측에서 갑자기 전송신호가 왔길래 급히 나왔건만…. 당신은 누구시오.”
등에 고검(古劍)을 중년인 한 명이 창노한 음성으로 말했다. 나는 그를 힐끔 쳐다보았는데 꽤나 단련되어 있는 무림고수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절대지경은 아니고 세간에서 말하는 절정고수 정도의 수준으로 보였다. 나는 그의 말에 대꾸했다.
“백웅이 내려왔다고 사공린에게 전하시오.”
“……?! 아, 알겠습니다. 설마 당신이….”
“내가 백웅이오.”
그러자 그 중년인은 급히 고개를 크게 숙이며 말했다.
“부디 무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저 하나의 실책이니 화산파에는 죄를 묻지 말아 주십시오.”
“당신은 화산파 사람이오?”
“현 화산파의 장문인인 차조흠이옵니다.”
화산파 장문인이었군.
‘정부의 통제를 받는 구파 장문인들에게는 대충 내 정체를 알려둔 건가? 하긴 뭐 이제 와서 큰 비밀로 할 일도 아니니까….’
나는 딱히 그의 이름을 기억할 필요도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속좁게 그런 짓 안 하오. 빨리 사공린한테 연락이나 하시오.”
“존명!”
잠시 후 나는 차조흠을 따라서 웬 홀로그램의 방으로 갔다. 그러자 홀로그램에 사공린의 얼굴이 떠올랐고 사공린이 내게 말했다.
[백웅. 나를 찾았나요?]
“혹시 망량이 당신에게 갔소?”
[…아니요. 무슨 일인가요.]
“망량이 탐사대에서 추방되었소.”
[…….]
뜻밖인 듯 사공린의 얼굴에 곤혹스러움이 떠올랐다. 그녀가 말했다.
[그럴 수가…. 그렇다면 망량을 찾으러 내려오신 건가요?]
“아니오. 그를 찾으러 오진 않았소. 어차피 작정하고 떠났으니 찾을 수 있을 리도 없고.”
[무슨 일로 내려오신 거죠?]
“월요의 정령을 각성시키러.”
[…알겠습니다. 황궁으로 오십시오.]
통신이 끊어진 후 나는 곧장 사공린이 있는 황궁으로 갔다. 그리고는 그녀와 만나서 흑요석으로 간단하게 그동안 있었던 일을 보여주었고 사공린은 그 기억을 보자 곤혹스러워했다.
“확실히 망량답지 않군요. 어째서 그가 그런 일을….”
“아무튼 월요를 각성시킬 장소를 마련해주시오.”
“숭산의 천제단이 가장 좋습니다.”
“예전에 했던 곳이군.”
“오악 중에 가장 영기가 강한 곳이니까요. 저도 도우러 가겠습니다.”
우우웅
나는 정적에 휩싸인 천제단 내부에서 월요를 천천히 꺼내서 바닥에 놓았다. 내 곁에는 사공린이 와 있었다.
‘월요는 검, 곡옥, 거울 3가지로 이루어져 있다….’
수요와 화요의 경우와는 다를 수가 있다.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먼저 검에 신력을 대고 흘려 넣기 시작했다.
치지징
음신지력이 퍼부어지자 잠시 후 검에서 은빛이 흐르기 시작한다. 나는 가볍게 월요가 반응하는 걸 보면서 나머지 곡옥과 거울에도 차례로 균등하게 신력을 불어넣었다. 그리고 잠시 후 세 개의 월요가 공명하기 시작하며 진동이 울렸고, 나는 한 번에 신력을 크게 불어넣었다. 또한 사공린도 옆에서 신력을 보태는 게 느껴졌다.
쩌저적!!
수요가 각성할 때처럼 무언가 균열이 일어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잠시 후 환한 빛과 함께 월요가 은빛 광채로 변해서 떠있는 걸 볼 수 있었고, 그 앞에는 세 명의 인영이 서 있는 게 보였다.
[나는 월요의 검(劍)이다!]
[나는 월요의 령(鈴)이다!]
[나는 월요의 거울(鏡)이다!]
“……!!”
각각 거검, 주술문자, 거울을 소환한 은빛 머리칼의 존재들! 나는 놈들을 보자마자 과거의 기억이 떠올라서 머리가 쭈뼛하고 섰다.
“네 녀석들 그 때랑 똑같….”
칠요의 시련!
그 때 한 번 월요를 물리친 줄 알았을 때 세 명으로 분열되었던 월요의 형상 그대로다! 그러자 거검을 들고 있던 월요검령이 말했다.
[우리의 주인, 백웅이여! 그대가 우리를 각성시켰구나!]
월요의 나머지 두 영이 말을 이었다.
[우리를 너무 오래 내버려둔 게 아니었는가?]
[수요와 화요는 각성시켰으면서 왜 우리만 내버려뒀나!]
나는 놈들의 말에 머리를 긁적이며 어색하게 웃었다.
“아 그게….”
사실 수요와 화요를 각성시켜서 쓰고 있었지만 인간의 한계는 쌍요까지였고 그것도 각성상태를 다루다보니 종종 버겁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 상황에서 만일 월요까지 각성시켜서 들고 있으면 언젠가 위기상황에 삼요공명을 시도하려 할 테고, 그건 내 사망확률을 현저히 늘릴 수가 있었다. 그래서 여태껏 내버려뒀지만 이젠 상황이 달라져서 각성시키러 온 것이었다.
나는 말을 얼버무리며 말했다.
“아무튼 각성한 김에 너네들한테 좀 물어볼 게 있다!”
[무엇이 궁금한가?]
나는 눈을 빛냈다.
“혹시 후예의 약점을 알고 있냐?”
내 질문에 월요의 삼령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뭔가 생각하는 기색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동시에 말했다.
[두 가지가 있다!]
“역시!”
나는 순간 쾌재를 불렀다. 생각대로 되었기 때문이다.
아까 제천대성의 말을 듣던 중 예전에 사공린이 했던 말이 문득 떠올랐었다.
[또 다른 이유는…. 우리 인간은 알지 못하는 신의 비밀을 칠요의 정령이 알고 있으리라는 기대감이 크기 때문입니다.]
[칠요의 정령은 기본적으로 억년을 살아온 신령입니다.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지지 않았으며 신들과 가장 가까이 존재해 왔죠. 만일 그들과 친해져서 그들에게서 비밀을 엿들을 수 있다면, 당신의 전생여정이 크게 축약되리라는 기대를 하는 겁니다.]
[어쩌면 삼황오제의 약점같은 걸 알아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
칠요의 정령을 각성시켜서 칠요 자체의 위력을 강화시킬 뿐만 아니라 녀석들이 혹시나 강적인 후예의 약점을 알고 있는지 물어볼 수 있는 것이다! 수요와 화요에게도 나중에 물어볼 생각이었지만 일단 월요를 각성시키는 김에 물어보았는데 딱 정답이 나온 느낌이었다.
“약점이 뭔데?”
거검을 들고 있던 월요의 정령이 말했다.
[첫 번째. 월궁항아이다.]
“응? 그게 무슨 약점이야.”
[월궁항아를 위해서라면 뭐든 바치는 게 후예이기 때문에 월궁항아를 찾아서 인질로 잡으면 뭐든 들어줄 것이다!]
“…….”
[항아를 살리고 싶으면 시련을 통과하게 하라고 말하면 되리라.]
이, 이 자식 치사한 소리를 태연하게 하는데.
내가 황당해하고 있을 때 거울의 정령이 말을 이었다.
[두 번째. 도봉(桃棒)이라는 고대의 보패에 인과율로 약점이 걸려 있다!]
“…도봉?”
처음 듣는 얘기다. 내가 그의 말에 관심을 집중하자 방울의 정령이 그 말을 받아서 이었다.
[후예는 고대에 제자의 손에 복숭아나무로 된 방망이로 머리가 깨져서 죽었다. 그 때 사망했던 인과율이 보패 자체에 매여서 그가 승천하여 천계로 간 후에도 약점이 되었다.]
“그럴 수도 있나?”
[원래는 안 되는 일이지만 삼황오제가 이 약점을 만드는 데 연관이 되었다. 그 이상 자세한 건 모른다.]
“으음…. 좋았어.”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고개를 끄덕였다.
“해야 할 일이 정해졌군.”
도봉이라는 보패를 찾아서 후예 공략에 써먹는다!
‘시련이라고?’
무(武) 그 자체를 수양해서 후예와 싸워 이기는 것도 멋있고 좋을 것이다.
하지만 무한의 원을 언제 깨닫는단 말인가?
아무런 기약도 없다.
심지어 나는 재능이 하나도 없다. 이건 현실이다. 내가 갑작스러운 깨달음을 얻을 가능성은 일푼조차 안 된다는 걸 장삼봉과의 무쌍패 결전에서 이미 깨달았다.
…노력하다가 안 되니 어쩔 수 없었다고 결말을 지어도 되긴 하겠지.
하지만 지금 나는 최선을 다했으니 그만이라는 걸로 만족할 수 없는 상태다. 내가 종말을 대비없이 맞이해서 죽는다는 건 결국, 나 이외의 동료들까지 함께 죽이는 길 - 내 어깨에는 동료들의 운명도 함께하고 있다. 보기좋은 길만 택할 수는 없다.
망량이 99층까지 탐색하려는 걸 너무 부정적으로 생각했었지만 그건 사실 원래 내 방식이 아니었던가? 시련이 눈앞에 있다면 온갖 편법을 저질러서라도 앞으로 나가야만 하는 게 바로 나의 길이다. 그리고 그 길은 무의식적으로 부정하고 있었지만 사실 여와가 바라는 방법과도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잘난척 하지 마라, 여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깨 주지!’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지금부터는 내 방식대로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