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1140화 (1,137/1,615)

1140====================

사신지혼(四神之魂)

어?

심장이 뚫리는 순간 나는 비현실적인 감각에 눈을 둥그렇게 떴다. 아무런 전조도 없이 닥쳐온 치명상은 감각으로 느낄 수 있는 영역을 벗어나 있었다. 나는 이게 무엇인지 빠르게 알아차렸다.

‘인과조작!’

내가 반응조차 못하고 당했다면 그것뿐이다! 아마도 맞추었다는 결과부터 실현시켰기 때문에 물리적으로는 무슨 수를 써도 피하거나 막지 못하는 공격이다.

‘제길. 그래도 심장만 뚫린 거라면 어떻게든.’

보통이라면 치명상이겠지만 지금 내게는 신력이 있다. 신력을 격발시켜서 활성화시키면 어떻게든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신력을 크게 일으키려 하는 순간이었다.

쿨럭

“억… 커헉….”

나는 비틀거리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입에서 쉴 새 없이 선혈이 흘러내렸고 끔찍한 고통이 대뇌를 자극하는 감각이 들었다.

‘안 돼. 아무 소용이 없어.’

진짜?

정말로 여기서 이렇게 죽나?

나는 믿기지가 않았다. 이번 생에 여러 번 죽을 뻔한 위기가 있었지만 절묘할 정도로 잘 피해가거나 대처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어이없게 한 방에 죽는다고? 그럴 리가 없는데….

내 의식이 점차 흐려지고 있을 때 옆에서 손길이 느껴졌다. 그리고 망량이 나직이 말했다.

“급급여율령.”

촤악!

갑자기 시간이 되돌아가는 듯한 환영이 내 눈앞에 겹쳐보였다. 나는 몸을 덮쳐오던 고통이 잠시 사라지더니 이내 뻥 뚫려있던 가슴이 원래대로 돌아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내가 겨우 정신을 차리자 맞은편에 있던 예가 말하는 게 들려왔다.

[시해지술이군.]

“예 님. 신성(神聖)에 직접 피해를 주고 무력화시키는 그 궁술(弓術)은 상고시대 이래로 봉인되셨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어찌 쓰실 수 있습니까?”

[굳이 내 대답을 듣고 싶나? 이미 답은 네가 짐작하고 있을 텐데.]

예의 퉁명스러운 대꾸에 망량이 침음성을 흘렸다.

“음…. 역시 여와가 해금시켜주었습니까.”

[그렇다.]

“능력은 잘 보았습니다. 그럼 이만….”

망량이 내 어깨에 손을 짚고 그대로 도주하려는 듯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곧장 공간이 이동되면서 이 자리를 벗어나는 듯 했으나, 갑자기 예가 호통치는 게 들렸다.

[백웅을 놔 줄 것 같으냐?]

투웅

적궁백시의 화살이 날아온다. 방금 전 내 심장을 관통할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정상적인 화살으로 보였고 인과역전 능력은 아닌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막 공간을 이동하던 망량은 얼굴이 딱딱하게 굳는 듯 했다.

“이 정도일 줄이야….”

콰앙!!

강렬한 폭음이 울렸고 다음 순간 망량의 팔이 피칠갑이 되어서 뒤로 뜯겨 날아갔다. 그 뿐만이 아니라 나는 망량과 함께 날려가서 바닥에 널부러졌다. 나는 낙법도 취하지 못하고 땅에 떨어진 채 머리를 박았다.

“크윽…. 젠장.”

이대로 죽을 순 없어! 칼을 들고 뭐라도 해 봐야겠다!

아무리 예가 강하다 해도 지금의 내 힘이라면 제대로 싸우면 물러나게 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나는 대해방 칠요를 목갑에서 뽑아서 양 손에 잡았다. 처음에는 기습 때문에 당했다 하더라도 이젠 제대로 싸워보겠어!

“……?”

힘이 안 난다…?

그러나 대해방 수요와 화요를 손에 잡는 순간 내 몸에 웅혼한 기운이 전혀 흐르지 않았다. 본디 신기해방때문에 내 힘이 몇 배나 강해지는 기분이 들었는데 마치 지금의 대해방 수요와 화요는 그냥 평범한 칼처럼 느껴졌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원래 호법사자와 비견될 정도로 막대하기 그지없는 내 무진장한 내공마저도 마치 전신의 경락이 끊긴 것처럼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심지어 방금 전에 망량이 치료해 준 심장쪽도 아직까지 계속 바늘로 찌르는 듯 욱신거리는 고통이 이어졌다.

불행중 다행으로 내 의념천주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지만 평소에 쓰던 다른 힘이 모조리 봉쇄되자 내 힘이 급격히 약화되었다는 게 금방 느껴졌다.

“어, 어떻게 된 거지?”

내가 당황하고 있을 때 어느 새 우리들의 오십여 보 앞에 도달해 있던 투신 예가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네놈은 정제되지 않은 엄청난 신력을 갖고 있더군. 갖고 있는 그 무기도 아마 칠요신기겠지? 하지만 나는 사냥꾼…. 신화시대에 무수한 신족을 잡아죽인 세계 최강의 사냥꾼이다!]

“무슨 말을 하는 거냐! 내게 무슨 짓을 했지?!”

[방금 전에는 시해지술때문에 실패했지만.]

내 외침에 예가 싸늘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네놈에게 제곡의 십양(十陽)을 다 합친만큼의 힘이 없다면 이 자리에서 죽을 것이다.]

스윽

예가 활을 내게 정면으로 겨누는 순간 나는 벼락처럼 그에게 달려들었다.

예를 상대로 거리를 좁히기도 굉장히 어려울 텐데 이런 기회를 놓치는 건 절대 안 될 일이었다.

고작 오십 보의 거리!

‘궁사면서 내 앞에 이렇게 가까이 오다니!’

절대지경

무량단(無量斷)

가공할 수요의 참격이 예의 정면을 내리쳤다. 무량단은 단순할 정도로 정직한 일격이지만 그런 만큼 상대가 정면으로 막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고, 나보다 경지가 높은 아수라조차도 한 번 받아내려면 여러가지 비기를 이용해서 미리 흐름을 읽거나 흘려내야 했다. 내가 걱정하는 건 무량단이 기세를 타기 전에 미리 읽어내고 흘리는 거였지만 다행히도 예는 무량단이 그의 한치 앞에 도달할 때까지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다.

이 정도면 이겼다. 설령 아수라라고 하더라도 무량단을 상대로 이 정도 여유를 두면 결코 멀쩡할 수 없다!

퓨퓨퓩

“……?!”

그러나 그 순간 나는 내 두 손이 거세게 뒤편을 향해 날아가고 수요가 허공을 훨훨 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내가 무량단으로 베어버리려는 그 순간에 예의 적궁백시 두 발이 각각 내 오른손과 왼손을 관통해서 아예 초식 자체를 무효화시켰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투웅

나는 화살 두 개에 손바닥을 꿰여서 뒤로 날아가는 상태에서 눈을 부릅떴고 그 찰나의 순간에 예가 다시 화살에 시위를 매기는 걸 볼 수 있었다.

뭐… 뭐지?

‘세 번 행동했다?!’

예는 어떻게 저렇게 빨리 움직일 수 있는 거지?

아니 움직임이 빠르다는 정도가 아니다! 내가 한 번 행동할 때 예는 두 번 세 번씩 행동하고 있는 거다!

아예 내가 생각하는 시간감각을 무시하고 행동하고 있잖아!

찰나의 순간에 예의 안광이 빛났다.

[제곡에게 봉인되었던 내 역량을 모조리 되찾았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려주마!]

투신지무(鬪神之武)

절예(絶藝)

필중(必中)의 신궁(神弓)

퓨퓨퓩

“크아악.”

나는 다음 순간 예가 발사한 무형의 화살이 내 손가락마디 스무 개를 동시에 관통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정확하게 마디 중간을 관통했기에 노리고 발사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더 버티지 못하고 크게 고개를 앞으로 꺾었고, 휘청거리는 나를 쳐다보던 예가 망량에게 말했다.

[왜 그러지? 친구 따라서 덤빌 줄 알았는데.]

“…….”

망량은 백우선을 든 채 그저 방어를 하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망량이 내게 전음을 보내는 게 느껴졌다.

[백웅. 저 자가 당신에게 원한이 깊은 게 불행 중 다행이오. 괴롭히다 죽이려고 하다보니, 이번에 죽일 수 있는데도 한 번의 기회를 줬구려.]

무슨 말인 걸까?

망량이 말을 이었다.

[한 번은 목숨걸고 버텨보겠소. 도망갈 기회가 날 것 같소.]

저벅

망량이 쓰러져있는 내 앞을 가로막았다. 예가 웃었다.

[가진 힘의 잠재력은 제법이지만 불안정하구나. 그 정도 힘으로 날 막을 수 있겠나, 현허궁주.]

“우릴 놔 주시오. 이런다고 당신의 소원은 이뤄지지 않소.”

[내 소원이 뭔지 아는 양 이야기하는군.]

“당신의 아내인 월궁항아를 본래 모습으로 되돌리고 다시 만나는 거겠지.”

[…….]

정확히 맞췄는지 투신 예가 움찔했다. 망량이 말을 이었다.

“그러나 단언하겠소. 이제와서 그런다고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소. 당신은 예전보다 더한 절망을 느끼게 될 것이오.”

[웃기는 소리…. 네게 원한은 없기에 적당히 혼내주고 말 생각이었는데 끝까지 백웅을 싸고 돈다면 어쩔 수가 없군.]

예가 활시위를 매기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이번 일격으로 끝장내 주마.]

투웅!

예가 화살을 발사했다. 망량은 그 순간 전신에 황색의 기운을 가득 일으키며 동시에 시해지술의 기운을 끌어올렸는데, 그 두 개의 기운이 허공에서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고 강한 영기를 발휘했다.

[소용없다.]

예의 화살은 망량의 기운에 막히는 듯하다가 갑작스럽게 관통해서 망량의 명치를 꿰뚫었다.

“…컥….”

망량은 화살에 맞아 비틀거리는 사이에 촥하고 백우선을 휘둘렀고, 그 순간 허공에서 균열이 일어나더니 거대한 흰색의 여우가 뛰쳐나와서 예의 목을 물어뜯었다.

푸콱!

여우는 예의 목을 물어뜯어서 확 모가지까지 뜯어내버릴 기세였는데, 이윽고 여우의 입에서 진한 선혈이 흐르는 게 보였다. 그것은 예가 찰나의 순간에 자신을 물고 있는 여우의 입에 화살을 끼워넣었기에 일어난 일이었다. 예는 그 화살을 이용해서 여우의 물어뜯기에서 버티며 말했다.

[모르겠느냐? 너는 이번 시련에 원래 끼어들 수 없다. 그것이 여와의 뜻이다!]

[크르르….]

[억지 부리지 말고 물러나라.]

예 또한 여우를 쉽게 어찌할 수 없는지 으름장만 놓는 기색이었다. 나는 여우의 정체를 바로 눈치채고는 외쳤다.

“미호!!”

어째서인지 93층으로 올라올 때 미호의 모습이 안 보인다 했는데 망량이 공간을 여는 술법을 써서야 여기로 올라올 수 있었던 건가?! 대체 왜?!

미호가 내게 영언을 외쳤다.

[백웅, 후퇴해라!]

“크윽. 같이 싸우면 이길 수 있….”

[전성기의 예가 여와의 권능까지 받았으면 신(神)이나 다름없다. 제곡조차도 지금의 예를 쉽게 여기지 못할 것이다! 물러나서 동료들과 다시 오거라.]

슈슈슉

나는 나와 망량의 몸이 갑작스럽게 공간이동되는 걸 느꼈다. 미호가 아마 힘을 써서 우리를 밑의 층으로 보내는 듯 했다.

[내 걱정은 말아라….]

파앗

다음 순간, 나는 망량과 함께 동료들이 다같이 수련하는 평야에 나타나 있었다. 다른 동료들은 열심히 명상을 하며 무한의 원을 깨우치려 하다가 피칠갑이 되어서 나타난 우리를 보고 깜짝 놀랐다.

“백웅! 망량!”

“이게 어찌된 일인가?”

전방에서 수련의 교두 역할을 하던 장삼봉 진인이 가까이 와서 나와 망량의 상태를 보더니 눈썹을 꿈틀거렸다.

“허어…. 적궁백시에 당했구려…. 역시 예가 시련을 담당하러 나왔군.”

나는 스무 개의 손가락 마디가 꿰뚫린 격통을 간신히 참으며 장삼봉 진인에게 말했다.

“진인. 예의 화살에 당했는데 그 자의 화살에 맞으니 신력과 기력이 써지지 않았습니다.”

“말을 아끼시오. 백웅 그대와 망량의 상세는 상당히 위중하니….”

그렇게 대꾸한 장삼봉 진인이 내게 가까이 다가오더니 갑자기 손가락에 자신의 손을 갖다대고는 뭔가를 세게 뽑았다.

푸슛!

“크아아아악.”

너, 너무 아프다!!

보이지 않는 투명한 화살이 손가락 마디에서 뽑히자 전신의 경락이 찔려서 소용돌이치는 고통이 느껴졌다. 미세한 살갗을 벗겨내는 듯한 격통이었고 차라리 채찍을 맞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내가 고통에 몸부림치자 장삼봉이 말했다.

“고통을 없애는 혈을 누르거나 가사상태가 되는 게 나을 것이오.”

나는 장삼봉 진인의 말대로 했다. 그리고 잠시 기절했다가 깨어나 보니 나와 망량에게 꽂혀있던 적궁백시는 다 뽑혀 있었고, 망량 또한 정신을 차리고 시해지술로 나를 치유하는 중이었다. 겨우 죽었다 살아난 상황에서 나는 급히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미호가 예와 싸우고 있습니다. 위험하니 당장 구하러 가야 합니다.”

내 외침에 망량이 대꾸했다.

“그럴 필요는 없소. 미호는 애시당초 예와 목숨걸고 싸울 처지가 아니니 적당히 싸우다가 내려올 거요.”

“그건 무슨 말이오?”

“우리가 93층으로 올라갔을 때 미호도 동행했으나 바로 나타나지 않았소. 나는 예가 출현했을 때 그 사실을 이상하게 여겼는데, 탑 자체가 미호가 탑을 오르는 걸 허용치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소. 그래서 시해지술을 써서 억지로 탑의 차원을 열어서 차원의 틈에 갇혀있던 미호를 불러냈던 거요.”

“…어째서? 왜 미호가 탑을 오를 수 없는 거요.”

“91층의 주후총은 연습운동같은 거였고, 92층의 장삼봉 진인은 자발적으로 우리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나타난 존재지만 93층부터는 진짜 신적 존재들이 포진하는 것이오. 그리고 여와의 목적은 이미 신의 힘을 얻은 미호의 위용을 보는 게 아니라 우리 인간들의 힘을 시험하고 싶은 것이리라 생각되오.”

“으음.”

“그렇기에 미호는 무사할 거요. 그녀가 전력을 다하면 예라고 해도 무사하지 못하겠지만, 그녀가 그렇게까지 어리석진 않을 테니…. 괜히 여와의 뜻을 거스르려 하진 않을 거요.”

나는 망량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미호가 안전하리라는 전망에는 일리가 있었다.

‘여와는 미호가 탑의 시련에 끼어드는 걸 별로 원하지 않아. 앞으로 93층 이후에서 미호의 힘을 빌리는 건 안 되겠군….’

상황은 이해했다. 하지만 나는 납득이 되지 않아서 이번에는 망량을 노려보며 말했다.

“망량! 아까는 그냥 넘어갔지만 지금은 대답을 들어야겠소. 당신은 왜 고집을 부려서 93층으로 단독행동을 하러 간 것이오? 따지자면 당신의 행동이 모두를 위험에 노출시킨 거나 마찬가지요.”

“…….”

“대답해주시오.”

내 질문에 망량이 나를 빤히 쳐다보다가 말했다.

“난이도를 가늠해보고 싶었소.”

“무슨 소리요?”

“만일 우리가 그냥 93층에 올라가서 예를 맞닥뜨렸다면 최소한 여기 탐사대의 절반은 전멸할 거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소?”

“그야…. 그렇겠지.”

예의 말도 안 되는 궁술은 상식을 초월한 수준이다. 만일에 예가 그 궁술과 적궁백시를 써서 거리를 벌리며 우리를 저격한다면 속수무책으로 전멸당할 가능성이 높다. 내가 대꾸하자 망량이 말을 이었다.

“문제는 93층의 예보다 더 강한 존재가 수문장이면 앞으로는 답이 없다는 것이오. 적어도 아무 정보도 없이 마주치면 안 된다는 거요.”

“…그거랑 당신이 단독행동을 한 게 무슨 상관이 있단 거요?”

“나는 93층이 아니라 99층까지 혼자서 가 볼 생각이었소. 그리고 하나하나의 시련을 간략하게 접해보고 그 정보를 가지고 되돌아오려 했지.”

“……?!”

이게 무슨 말이야?

내가 황당해서 망량을 쳐다보자 옆에서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장 진인이 말했다.

“망량이여. 그 고대의 힘에 한계가 있다는 걸 모르지 않을 터…. 설마 그 힘의 근원에게 자아를 뺏기는 것은 아니오?”

“나는 멀쩡하오, 장 진인.”

“말도 안 되는 시도요.”

“나는 가능하오.”

“…….”

나는 기가 질려서 망량을 쳐다보았다.

‘망량…. 대체 왜 이런 억지를 부리지? 설령 그게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행동하는 건 내가 아는 망량이 아니야.’

마치 망량처럼 생긴 다른 인간을 대하는 듯한 위화감이 들었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따져도 망량에 대한 골만 깊어질 뿐 망량이 뭔가 이야기하진 않을 것 같았기에 나는 더 이상 추궁하지 못했다. 그렇다기보다는 더 이상 입을 열었다가는 망량에 대한 신뢰가 깨질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기에 입을 열지 못한 것이다.

좌중에 침묵이 가득하자 장 진인이 말했다.

“아무튼 살아돌아와서 다행이구려. 그럼 다시 수련을 하시오.”

“장 진인. 사실은….”

나는 장 진인은 물론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위에서 맞닥뜨렸던 투신 예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나는 설명을 마치고 나서 장 진인에게 말했다.

“예 그 자는 어찌 그리 강할까요? 원래 제천대성도 못 이기는 쓰레기 아니었습니까?”

“으음…. 말이 심하구려.”

“어… 그게.”

“침착하시오. 원한을 앞세우면 상대의 힘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없소.”

장삼봉 진인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백웅이여. 예는 본디 신이었으며 투선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신화의 영웅이었소. 그러나 예의 무공을 경계한 제곡이 그의 본디 힘을 봉인하는 대신에 그를 자신의 휘하에서 보호하는 조건을 내걸었던 것이오. 인위적으로 삼황오제에 의해 격하(格下)된 존재.”

장삼봉 진인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는 신을 사냥하던 사냥꾼이니 그의 화살에는 모든 신력을 봉인하는 힘이 담겨있소. 또한 그는 대지의 가호를 받아 땅 위의 모든 것을 사냥하는 가호도 가지고 태어났기에 기(氣)또한 봉인할 수 있소. 거기에다가 인과율을 조작하는 권능으로 무조건 명중하는 화살을 쏠 수 있으니 사실상 투신인 것이오.”

“…….”

“제곡의 아들을 모조리 쏘아 떨어뜨렸던 전성기의 힘이 되돌아 왔으니, 굉장히 어려운 상대이리라 생각하오.”

지금까지 인위적으로 힘이 봉인되어 있었다고?

나는 황당해서 입을 벌리고 말았다. 지금까지 예의 가호를 수기공양에서 받을 수 있었는데도 안 받았던 이유는 예 자체의 힘이 투선 중에서 그리 특출나지 않다고 생각했으며 나와는 여러가지로 악연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은 본래 힘을 이것저것 다 봉인된 상태였고 본래는 투신이었다니?

투신 아르쥬나와 싸울 때 대웅제국의 초고수들이 얼마나 악전고투를 했는지 직접 본 적이 있었기에 나는 지금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 건지 알 수가 있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검마가 내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백웅. [작은 굴레]에 저항할 수 있게 되면 그 자를 쓰러뜨릴 수 있을 걸세. 그러니 이 수련에 집중하세나.”

“아… 네.”

“예의 화살이 인과를 조작해서 막을 수 없다는 게 위협적이지만 달리 말하면 그걸 봉쇄할 수 있다면 최소한의 승산이 있다는 뜻이지.”

그렇게 중얼거린 검마가 형형한 눈빛으로 망량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리고 망량.”

이어진 검마의 말에 장내의 분위기가 크게 굳었다.

“탐사대장으로써 명령하겠다. 그대는 이 탐사대에서 추방되었고 두 번 다시 우리 눈앞에 모습을 들이밀지 말라.”

망량이 무미건조한 얼굴로 대꾸했다.

“이유는?”

“단독행동으로 백웅을 위험에 처하게 만들었으며 앞으로도 우리를 위험하게 만들 게 뻔하기 때문이지. 그대같은 위험요소를 탐사대에 놔두는 대장은 없을 것이다.”

“싫다면?”

치링!

그 순간 검마의 검령이 소환되었고 그의 검이 순식간에 망량의 목 앞에 도달해 있었다.

검마에게서 진심어린 살기가 흘러나왔다.

“나가게.”

그러자 망량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잘 해보시오.”

그 말을 끝으로 망량은 홀연히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나는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멍해져 있었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는 검마에게 말했다.

“지, 지금 이게 무슨 일입니까? 망량이 잘못했긴 하지만 그렇다고 쫓아내다니….”

“나야말로 무슨 일인지 묻고 싶군. 망량이 저렇게 이상한 행동을 하는데도 어찌 남겨둘 수 있단 말이지? 이 시련이 애들 장난도 아니고 동료의 발목을 붙잡는 자를 놔둘 순 없네.”

“그를 추방했다는 건 결국 그와 평생 척지겠다는 말이잖습니까. 그건….”

“…백웅.”

잠시 후 검마가 안쓰럽다는 듯 말했다.

“동료는 서로 눈치를 보는 사이가 아닐세. 그렇지 않은가?”

“…….”

맞는 말이라서 할 말이 없다.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더 이상 망량과 검마가 뭉칠 일은 절대 없으리라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나는 내 판단이 틀렸다 생각지 않네. 내가 볼 때 지금의 망량은 너무나 위험한 존재야. 그러니 자네도 이번 기회에 곰곰이 생각해 보게나.”

그는 고개를 돌리고 뒤돌아서 걸어가며 말했다.

“망량을 다음 생에 동료로 받아들여도 될지를….”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