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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1138화 (1,135/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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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나는 검마의 말에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검령이?’

특이점이니 뭐니 하는 건 무슨 말이란 말인가?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아서 검마에게 말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검령에 어떤 비밀이 있다는 말입니까.”

“…….”

검마가 잠시 침묵하다가 말을 이었다.

“사실 나는 자네에게 흑요석을 받은 후 줄곧 과거회차의 검마가 얻었던 성취를 따라하고 싶었네. [작은 굴레]를 극복하는 능력을 지니게 되면 마왕급 적을 상대로도 충분히 싸워이길 수 있다는 게 증명된 거였기 때문이지. 그래서 늘 태허를 인식하려 노력했지만 도저히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더군.”

그가 먼 하늘을 보았다.

“다행히 그 수련 자체는 절대지경에 오르는 데 도움이 되었어. 그리고 천계에 오게 된 후에도 수련을 빼먹지 않았는데 그러던 중 이상한 일이 벌어졌네.”

“이상한 일?”

“우리가 복희의 탐사를 하던 중 첫 번째 시련이 대해(大海)의 공략이라고 들었을 걸세.”

“네. 큰 바다에 떠 있는 여러 개의 섬을 옮겨다니면서 출구를 찾는 시련이었다고….”

검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에 비하면 그리 어렵지 않은 시련이었네만, 그 당시는 초창기였고 아군전력도 절대지경의 초입 이상은 없었지. 그래서 종종 등장했던 강대한 적들을 상대로 전멸위기에 처한 적도 꽤 있었네. 그러던 중에 정말로 다 죽을 뻔한 적이 한 번 있었는데…. 그게 바로 일차시련의 최종적수였네.”

그가 과거를 회상하듯 말했다.

“검령은 그 때 각성했던 것일세. 검령을 각성한 덕에 간신히 이겼지. 지금 생각해보면 최소한 투선급의 강함을 지닌 적이었어.”

“그렇군요. 그런데 그것과 지금 얘기가 무슨 상관입니까?”

잘은 모르겠지만 검마가 계속 말하기를 주저하는 느낌이었다. 언뜻 내게 정보를 말해주는 것 같아도 말을 빙빙 돌린다는 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러자 검마가 뭔가 각오한 듯한 표정으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검령을 각성하던 그 때, 나는 마치 과거의 검마가 [작은 굴레]를 느꼈던 것 같은 초월감을 일시적으로 느꼈네. 하, 하지만 그 때 나는 동시에 보았어.”

검마가 무겁게 말했다.

“도야한 정신능력으로 인지되는 그 거대한 시공(時空)…. 형용할 수 없는 아득히 깊은 시공의 저편에서, 내가 딸을 베어죽이는 장면을 보고 말았네.”

“……!!”

“마치…. 내 미래의 편린을 들여다본 느낌이었지.”

나는 황당했다.

‘검마가 딸 서문혜를 베어죽인다고?’

그런 미래가 있을 수가 있을까?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아서 검마에게 말했다.

“뛰어난 고수가 깨달음의 경지에서 홀황을 느끼는 경우 가끔씩 환영을 볼 때도 있습니다. 환영은 대개 무의식의 반영일 뿐인 경우가 많죠. 그 환영에 너무 큰 의미를 두고 계신 건 아닙니까?”

“당연히 나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지. 그렇게 황당한 일을 내가 어찌 진실이라고 쉽게받아들이겠나. 허나…. 보겠나?”

우웅

검마가 검령을 떠올렸다. 반투명한 검의 영기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떠오르자, 그가 검날을 내 쪽으로 향하며 말했다.

“한 번 검령을 만져보게.”

나는 망설임없이 검령에 손을 대었다. 그러자 갑자기 눈앞의 풍경이 뒤바뀌었다.

인식이 빨려들어간다.

자아(自我)가 잠시 멈춰버리고 그저 관찰자 그 자체인 시점으로 변화한 세계 - 그리고 그 세계의 한가운데에는 하나의 사건이 벌어지고 있었다.

별이 떨어지고 우주의 푸른 빛이 대륙을 휩싸고 있는 종말의 참상!

모든 생명이 비탄에 빠진 그 순간에 극도로 분노한 표정의 검마 서문대룡이 허공답보를 써서 마치 날아가듯이 어디론가 돌격하고 있었다. 그는 분노한 채 사자후를 터뜨렸다.

[죽어라!!]

푸욱

이내 그의 가공할 검기는 깔끔하게 날아가서 하나의 수급을 날린다.

잠시동안 하늘을 날던 수급이 천천히 떨어져내리며 나와 눈이 마주쳤다.

서문혜는 웃고 있었다.

“……!!”

나는 갑작스레 현실세계로 인식이 되돌아오며 아찔한 기분이 들었다. 너무 생생한 기분이 들어서 이게 도저히 가짜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였다.

이게 정말로 일어날 일이라고?!

나는 믿기지가 않아서 검마에게 말했다.

“검마. 저는 살면서 무수한 환영과 예언을 봐 왔습니다. 이게 그리 쉽게 부정할 환영은 아니지만…. 술법사의 수준이 높으면 이 정도 수준의 환시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습니다. 너무 단정지을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환상이란 인간의 감각을 가볍게 초월해 버린다. 나는 원래 내 오감(五感)이 멀쩡하면 얼마든지 환상을 인지할 수 있다 생각했지만, 여러 번 전생하면서 천우진의 환영을 보면서 그런 믿음은 깡그리 사라져 버렸다. 진정한 환술사는 오감은커녕 인간의 이성이나 시간감각조차 가볍게 조작해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 환각이 아무리 생생하다고 한들 미래라고 쉽게 단정짓는 건 위험한 짓이다.

검마가 씁쓸하게 말했다.

“단순히 환영이었다면 내가 알아차렸을 걸세. 그러나 나는 검령을 소유하고 휘두르는 동안에 점차 이 검령에 내 영혼이 끌려가는 기분을 느끼고 있다네.”

“영혼이 끌려간다고요?”

그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이 환영에서 보여주는 미래는 단순하지가 않네. 지금은 한 순간을 보여줬지만 때로는 약간 앞이나 미래 시점, 혹은 타인의 시점도 보여줬지. 그러는 동안에 나는 [미래의 경험]을 약간 얻었다네.”

“……?!”

“내가 탐사대 중에 최강이 된 건 바로 그 덕분일세. 대신에 그 경험을 받아들일수록 내 몸과 영혼이 점차 그 미래를 향해 가까워지는 실감이 들지.”

미래의 경험?!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아서 검마에게 말했다.

“무슨 말입니까? 미래의 경험을 얻었다는 건 설마 방금 봤던 게 진짜 미래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그렇게 생각하고 싶진 않지만 점차 그리 되더군.”

“말도 안 되는….”

“그 이후부터 내가 수련하지도 않았던 경험이 무작위로 내게 흡수되었네. 자네도 알다시피 절대지경의 고수 또한 수련해서 더 경지를 올릴 수 있으나 최소 수십 년 단위의 고련이 필요하지. 그런데 그런 고련이 있어야만 얻을 수 있는 검기(劍技)가 뜬금없이 영감처럼 떠오르는 일이 잦았단 말일세.”

“…….”

“이런 경험의 수득이 없었다면 태허수련을 위해 명상으로 낭비했던 시간의 격차를 뒤엎고 더욱 강해지진 못했네. 이 탐사대에 모인 자들 중 달인천재가 아닌 이가 없는데 아무리 내가 생전에 사파제일인이었다 해도 가능한 일이 아닐세!”

“음.”

검마가 저렇게 말할 정도라면 저건 진짜다.

진짜로 검마는 미래의 경험을 얻은 것이리라. 나는 장삼봉이 검마가 탐사대 최강이라고 인정해줬던 걸 기억하고 있었기에 검마의 말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믿기지가 않는군요.”

“나는 이 상황을 딱히 논의할 사람이 없었네. 천계에서 내려간 일도 거의 없었고 사실 망량을 의심하고 있기에 그에게도 털어놓지 못했어. 그러던 중 내 스스로 결론을 내렸는데, 이게 바로 나의 [특이점]이라는 결론이었네.”

특이점.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과거 검마의 기억이 생각났다.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말했다.

“과거의 검마는 정신능력을 상승시켜 [작은 굴레]의 특이점을 목격했었죠. 검령이 그런 특이점이란 말씀이십니까?”

“그래. 난 그리 생각하네. 특이점이 그 때와는 다른 형태로 발현된 거겠지.”

“아무런 증거도 없습니다만….”

“허나 그게 아니면 내가 미래의 경험을 얻었다는 걸 설명할 수가 없어.”

검마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아마 나는 [작은 굴레]를 초월할 수 있는 경지에는 이르지 못했으나, 간접적으로 검령을 통해 미래에 걸쳐있는 게 아닌가 싶네. 미래 또한 [작은 굴레]의 일부라고 생각하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

“음….”

“그러나 그 대가로…. 미래의 가지 중에서 그 미래에 갈수록 가까워져 가는 게 아닌가 생각하네.”

나는 검마의 말을 이해하자 섬짓한 기분이 들었다.

“미래가 과거를 끌어당긴단 말씀이십니까.”

“그야말로 인과율이지. 그것도 역전된 인과율.”

“하지만 그게 사실이라면 검령을 쓰지 않으시는 게….”

내가 당혹스러워서 반문하자 검마가 쓴웃음을 지었다.

“자네가 실종된 후 500년간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네. 천계에서도 검령이 없었다면 절대 버틸 수 없었을 걸세. 자네의 꿈이 무너지는 건 내 개인사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중대한 일이 아닌가.”

“그런 말 마십시오.”

“…….”

검마는 그 답지 않게 약간 텅 빈 눈으로 나를 응시하다가 말했다.

“이 일을 만일 다른 자들이 알게 되면 내 검령을 악용하려 할지도 모르네. 혹은 내게 검령을 자주 쓰도록 유도해서 파멸의 길로 빠르게 몰아갈지도 몰라. 그래서 자네에게만 말해두고 싶었네.”

확실히 이건 검마와 서문혜에게 위험이 될 수도 있는 정보다. 나는 검마가 탈혼검령에 대해 숨기기 위해 검으로 시공간을 일그러뜨린 이유를 이해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절대 비밀로 하겠습니다.”

“훗…. 자네에게 털어놓으니 속이 좀 시원해지는군.”

“그런 결말이 오지 않도록 제가 노력하지요.”

검마는 싱긋 웃었다. 그리고는 말했다.

“또 하나. 자네가 앞서나갈 수 있는 정보를 준다고 했었지.”

“그랬었죠.”

“끝과 시작을 잇는 것…. 자네가 감을 잡지 못한 듯하여 말해주도록 하지.”

검마가 천천히 자신의 검으로 원을 그렸다.

그 동작을 보자마자 나는 탄성을 터뜨렸다.

“…아!!”

어째서 내가 저걸 깨닫지 못했던 거지?

나는 멍해서 중얼거렸다.

“선의 끝과 시작을 이으면 끝이 사라지고 원이 되는 건가…!!”

여동빈 밑에서 선검술을 수련하면서 그렇게 죽어라 원을 그렸는데 어째서?!

나 스스로도 황당해서 멍해져 있자 검마가 말했다.

“아무래도 자네가 직선의 고정관념에 갇혀서 사고를 확장시키지 못한 듯하더군. 종종 있는 실수이니 이해할 수 있네. 설령 자네가 아니라 똑똑한 자라고 하더라도 그런 실수는 하지.”

“알려줘서 감사합니다.”

검마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직 끝이 아닐세. 장삼봉 진인의 주문은 그저 끝과 시작이 원이라고 머리로 이해하는 걸로 끝이 아니야.”

“네?”

“수수께끼 풀이만으로 경지가 진보할 리가 있겠나? 그게 된다면 우린 검을 잡을 게 아니라 묘수풀이집을 공부했어야 해.”

검마가 검을 고쳐잡으며 자세를 잡았다.

“망량에게도 그가 말했잖은가. 이건 머리로만 이해해서는 될 수련이 아니라고.”

스윽

검마가 계속해서 원을 그렸고, 그 원은 허공에 반투명한 실선으로 잔흔을 남겼다. 그렇게 약 다섯 개 정도의 원을 그린 검마는 내게 말했다.

“백웅. 자네가 전에 보여준 기억에서는 선검술을 수련할 때 원을 계속 그리더군. 그렇게나 원을 수련한 자네에게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원이란 무엇이 좋은가?”

“원이 왜 좋냐고요?”

검마가 말없이 나를 응시하자 나는 곰곰이 생각했다.

그리고는 말했다.

“모가 나지 않은 게 좋습니다만….”

“왜?”

“둥그니까요….”

“그렇군…. 정말 단순하게 이해하고 있군. 하지만 오래 선검술을 수련한 만큼 수련의 요체는 짚고 있으니 신기한 일일세.”

“…….”

저건 칭찬일까 아닐까….

내가 고민하고 있을 때 검마가 말했다.

“잘 듣게. 원(圓)이란 무한(無限)을 상징한다네.”

“무한요?”

“한계가 없지. 시작과 끝이 같으니 한계가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내 말이 틀렸는가?”

덜컹

검마의 말을 들은 그 순간, 나는 과거에 내가 느꼈던 그 감흥이 머릿속에 펼쳐졌다.

‘…그래…!!’

원은 둥글다!

그걸 깨닫고 선검이 반백반흑으로 변했을 때, 나는 내가 왜 그걸 깨달았는지 그게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고 그저 기뻐하기만 했다. 그래서 선검술의 수련이 되는둥 마는둥이라고 여겼지만 지금 이 순간 뭔가 그 깨달음이 성큼 내 머릿속으로 걸어오는 느낌이 들었다!

왜냐하면 ‘왜’ 둥글다는 사실에 기뻐했는지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인(因)과 과(果)가 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 하나가 된다는 걸 느꼈었지. 설마 이건…!!’

나는 나도 모르게 입밖으로 외쳤다.

“인과율이 하나가 되는 게 바로 원인 겁니까!!”

“……!!”

“그래서 선검은 인과율을 모을 수 있는 거고요!”

원을 그리는 이유가 그것 때문이었나!

내 외침에 검마가 도리어 놀란 듯 눈을 둥그렇게 떴다. 그리고는 말했다.

“설마 더 설명해줄 필요도 없이 깨닫다니.”

“하핫.”

“흠. 어쩌면 예전에 이미 깨달았지만 이제야 체화(體化)의 경지에 이른 것일지도 모르겠군.”

그렇게 중얼거린 검마가 말했다.

“그 말대로일세. 유한 속에서 무한이 실현되며, 분할된 인과율의 인과가 한 점에 모여서 구분되지 않는 것이 바로 원일세. 그렇기에 궁극적인 무예의 형태는 원을 지향할 수밖에 없는 것일세!”

“음. 알 것 같기도 합니다.”

“허나…. [작은 굴레]에 저항하기 위해서는 또 하나의 과제가 아마 존재할 것일세.”

검마가 말을 이었다.

“그럼 슬슬 돌아가 보세. 이 정도면 자네가 아마 다른 자들에 비해 앞서나갈 수 있겠지.”

우리는 함께 장삼봉 진인에게로 돌아갔다. 그리고 장삼봉 진인에게 내가 깨달은 바를 이야기하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선재로다. 과연 여동빈에게 직접 전수를 받은 자답소.”

“하핫. 제가 제일 먼저 [작은 굴레]에 저항하는 능력을 얻지 않겠습니까.”

“허면 연자여. 이건 생각해 보았소?”

나는 간만에 기분이 좋아져서 낄낄거렸으나 이어진 장삼봉 진인의 말에 얼굴이 굳었다.

“원을 그리고자 하면 한 점에서 우선 시작을 해야하오. 그 점이 존재하는 한 원은 무한이라고 할 수 없지 않겠소?”

“……?! 네? 왜 그렇죠?”

“왜냐하면 그 처음의 점은 시작이자 인(因). 인이 존재하면 과(果)도 생기는 법. 그게 존재하는 이상 아무리 원이 다 그려지더라도 진정한 무한을 상징할 수는 없지 않겠소.”

“…….”

“선후(先後)의 비대칭은 피할 수가 없소. 그러므로 원은 불완전한 무한인 것이오.”

이, 이게 검마가 말했던 ‘또 하나의 과제’인가?

‘하지만 그것까지 어떻게 극복을 해? 처음에 아무것도 없으면 당연히 점에서 시작해서 직선이 이어져서 원을 만드는 거 아냐?’

시초의 점이 없는데 어떻게 원이 그려진단 말인가!

나는 말도 안 된다고 느껴져서 장삼봉 진인에게 말했다.

“말도 안 됩니다! 그렇게 치면 완전한 무한이란 건 존재할 수가 없지 않습니까?”

“그렇소. 인간의 무공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모순(矛盾)이오.”

“네?”

뜻밖에 고개를 끄덕이는 장삼봉 진인의 태도에 내가 당황하자 그가 쓸쓸한 목소리로 말했다.

“무(無)이지만 동시에 유(有)가 존재하는 우주의 모순. 나도 여동빈도 그 모순은 극복하지 못했소. 해결되지 않은 난제를 그대에게 화두처럼 던져보았을 뿐이오.”

“무의미하지 않습니까? 그럼.”

“세상에 정말 무의미한 건 아무것도 없소.”

단호하게 말한 장삼봉 진인이 말했다.

“이 거대한 흐름 속에서… 불완전한 무한을 실감해 보시오!”

후웅!!

다음 순간 장삼봉 진인이 무쌍패를 시전했고 그가 펼쳐낸 반투명한 태극이 우리 모두를 뒤덮듯이 날아들었다. 그리고 태극에 둘러싸인 상태에서 장삼봉 진인이 서서히 춤을 추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태극권이면서도 태극권이 아닌 기묘한 움직임이었다.

‘저건 초식이 아냐.’

전투를 위해서 만들어진 움직임이 아니라 마치 의례용 무공인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오랜 세월 무당파의 무공을 배워온 나였지만 생전 처음 보는 동작이었다. 다만 왠지 모르게 보는 이의 시선을 빨아들이는 듯 했기에 그 권무에 어느 새 몰입하며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다.

장삼봉의 심어(心語)가 장내의 모든 이들에게 울려퍼진다.

[무릇 의념이란 강대한 힘이지만 한계가 존재하는 힘. 대자연 속에 우리의 의념천주는 한갓 흩날리는 갈대와도 같은 것이오. 그대들은 대자연을 이길 수 있소?]

누군가가 그 말에 항변하듯 외쳤다.

“할 수 있소. 나는 번개라 해도 의념으로 벨 수 있소!”

그러자 장삼봉이 노한 듯 외쳤다.

[오만하구려! 그 오만이 바로 인간의 한계를 만드는 것이오! 그것이 바로 [옛 지배자]에게 농락당하는 이유!]

우우우우

마치 이명(耳鳴)이 울려퍼지는 듯 했다. 그 이명은 고통을 주지는 않았지만 순식간에 내가 지닌 모든 힘이 파도에 휩쓸려서 뒤로 나자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실제로도 여기저기에서 침음성이 들려왔다.

“으음.”

“크윽….”

기우뚱거리며 이 자리에 있던 절세고수들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휘청거리고 있다. 그것은 장삼봉이 펼친 태극 속에서 우리 자신의 의념천주가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건 나 또한 마찬가지였기에 내심 경악했다.

‘의념천주가…. 의지의 기둥 그 자체가 휩쓸려가고 있어!’

얼마나 강력한 의념이 있어야 절대지경의 의념천주에 간섭할 수 있단 말인가?!

파바밧

내가 경악하고 있을 때 장삼봉이 갑자기 손을 한 번 원으로 휘저었다. 그러자 우리는 몸 전체가 거꾸로 휘둘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거대한 흐름은 말 그대로 대자연의 흐름처럼 느껴졌고 장내에서 대부분이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고꾸라졌다.

후웅!

털썩

털썩

하나둘씩 바닥에 엎어지는 가운데 나와 검마 둘만은 장삼봉의 엎어치기에 저항해서 다리를 후들거리고 있었다. 검마는 검령을 소환해서 장삼봉의 태극에 저항하고 있었고, 나는 선검으로 원을 그림으로써 왜인지 모르게 막을 수가 있었다. 그러나 우리도 오래는 막지 못하고 결국은 업어치기를 당하고 말았다.

털썩!

나는 낙법도 취하지 못하고 나동그라져 버렸다. 나는 내가 이렇게 무력하다는 걸 믿을 수 없어서 눈을 꿈벅거릴 수밖에 없었고, 다른 이들은 더더욱 충격이 커 보였다. 설마 장삼봉의 경지가 이 정도일 줄이야?

동영의 대검호 츠카하라 보쿠덴이 마치 울음소리같은 한탄을 흘렸다.

“내가 수백 년간 검을 연마했건만 이토록 아이취급을 받게 될 줄이야…. 이 수치를 이길 수 없으니, 자결하겠다!!”

까앙!

그가 스스로 목을 베어 자결하려는 순간 옆에 있던 카미이즈미 노부츠나가 그의 검을 튕겨서 자결을 막았다. 그리고는 나직이 말했다.

“제발 참게나, 친구여.”

“자네는 아무리 장삼봉이 진인이라 하더라도 이런 치욕을 참을 수 있단 말인가?! 세상이 멸망하든말든 상관없으니 이만 죽는 게 낫겠네!”

“신(神)의 경지에 당했거늘 수치로 여길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뭐라고?”

검성 카미이즈미 노부츠나는 침착한 눈으로 장삼봉 진인을 보며 말했다.

“장삼봉 진인. 그렇지 않소?”

모두의 시선이 장삼봉 진인에게로 향했다. 그러자 장삼봉 진인이 천천히 태극권의 기본자세를 다시금 취하며 말했다.

“바로 그렇소.”

이어진 장삼봉 진인의 말에 모두가 강렬한 긴장과 도전정신에 휩싸였다.

“이것이 바로 신역절기(神域絶技) 무쌍패(無雙覇)! 원의 무한을 깨닫고 이걸 이겨내는 자가 [작은 굴레]에 저항할 힘을 얻게 될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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