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1136화 (1,133/1,615)

1136====================

사신지혼(四神之魂)

해내겠다.

장삼봉 진인과 무쌍패로 겨룬다!

태극권의 자세를 잡고 내가 무쌍패의 준비를 한 채 그를 노려보았다.

스윽

장삼봉 진인은 도리어 태극권의 자세를 풀어버리고는 자연체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중이었다. 나는 그 허허로운 눈빛에 잔뜩 긴장했다.

‘으음. 역시….’

저 허허로움을 보면서 왜 저런 기운이 나올 수 있는지 궁금할 때가 있었다. 언뜻 아무 힘도 없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저 허허로움은 공허가 아니라 세상의 흐름을 읽고 있기에 두려움이 없는 호연지기(浩然之氣)이며 수양의 결과라는 걸 알고 있다. 장삼봉 진인은 결코 정신적으로 동요하지 않으리라.

그렇게 약 반 각 정도 서로 말없이 대치상태가 흘렀다.

“…….”

나는 바보가 아니다. 이대로 서로 무쌍패의 자세만 잡고 있으면 반격기끼리 마주보고 있는 셈이므로 승부가 나지 않는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그러나 이 자리에 서기 전, 망량이나 검마 등 동료들과 함께 장삼봉에 대적하기 위한 훈련을 할 때 미리 생각해 둔 것이 있었기에 우선은 탐색부터 하려는 것 뿐이다.

‘요점은 무중생유(無中生有).’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공략은 이미 세워져 있으나 그걸 실행할 수 있냐는 다른 문제였다.

‘하지만 검마가 미리 길을 보여주었다….’

안 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내가 각오를 굳히고 있던 중 장삼봉 진인이 나를 응시하다가 말했다.

“백웅이여….”

“왜 그러십니까?”

“생각이 많아보이는구려. 한 걸음을 내딛기가 힘든 것이 당연할 것이오.”

“…….”

내가 침묵하자 장삼봉이 말했다.

“들어오시게.”

알고 있다. 이것조차 심리전이라는 사실을.

장삼봉 진인이 나를 부추겨서 동요시키려 한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알고 있는데도 나는 섣불리 선공을 가하려는 결심이 들지 않는다. 정말로 어려운 가시밭길이다.

‘과연 어떻게 될까?’

무쌍패의 원리는 육대절학의 패도가 모이게 되면 그 강력한 힘을 무위전변시켜서 상대의 힘을 무화시키는 것이다. 그렇다면 패도가 결성되는 단계에서 서로의 힘이 충돌하게 될까?

나는 다소 긴장하면서도 장삼봉을 응시했다.

침묵이 흐른다.

‘언제 무쌍패를 쓸까….’

서로가 절대지경의 고수이므로 언제든 공격할 수 있다. 이렇게 지근거리라면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가까이에 있는 장삼봉을 보고서도 무쌍패를 펼치려는 생각이 잘 들지 않았다.

“…….”

크윽….

나는 언제든 대결을 시작할 수 있는데도 감히 무쌍패를 쓰지 못하고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장 진인의 눈이 너무 투명하고 허허로워서 마치 내 적의마저 빨려들어가는 기분이 든 것이다. 진다는 보장은 없는데도 내 마음 자체가 패배를 인정하려는 기분이었다.

‘어쩔 수 없군.’

심력의 수양이 아직은 장 진인에게 미치지 못한다.

여기서는 일단 첫 공격을 시도해 보자.

‘무쌍패를 끌어낼 수 있도록 치명적인 공격을…!!’

무량단은 전혀 의외성을 줄 수 없다. 무조건 무쌍패를 써서 막아야 하는 공격이겠지만 어쨌든 막히는 건 같다. 500년 후의 장삼봉 진인은 투선을 훨씬 초월한 존재이다.

그럼 첫 공격은 이것 뿐이다!

만상지투(萬象之偸)

촤앗

기습적인 수법을 통해 가볍게 만상지투가 떨쳐지는 순간 나는 장삼봉과의 [공간]을 훔치려 했다.

바깥과 공간을 뒤바꾼다!

공간을 훔쳐서 장삼봉의 장외패를 노리려는 속셈이었다. 그러나 찰나의 순간 장삼봉 진인의 얼굴에 약간 노한 기색이 떠올랐다.

우웅

그리고 장삼봉 진인은 만상지투가 날아들자 곧장 무쌍패를 썼다. 무쌍패가 전개되자 내가 뻗어낸 형이상학적인 의념의 손이 잠시동안 태극 앞에 닿이는 듯 했고, 공간을 훔치려는 시도가 완벽히 차단되었음을 알아챘다.

‘쳇, 역시. 그렇다면!’

아직 만상지투에 변화를 줄 가능성이 있다. 나는 의념을 집중해서 만상지투에 의지를 불어넣었다.

시도해본 적은 없지만 -

‘공간을 훔칠 수 없다면 무쌍패의 태극을 훔쳐보겠어!’

만상지투가 무쌍패의 태극을 쥐듯이 뻗어진 순간이었다.

흔들!

일렁거리는 듯한 어지럼증이 느껴지고 눈 앞의 시야가 크게 흔들린다. 나는 동시에 손끝과 발끝의 감각이 동시에 사라짐을 알아챘고 몸을 가누기 힘들어졌다.

“……?!”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내가 정신을 차리고 뒤로 급히 두 걸음을 물러나자 장삼봉 진인은 어느 새 무쌍패의 전개를 마친 후였다. 그는 고요한 눈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접어줄 때 그만하시는 게 좋소. 한 번만 더 그 기술을 쓴다면…. 봐주지 않을 것이오.”

오싹!

아무런 살기도 없지만 그게 더 무섭다. 장삼봉 진인이 자기가 말한대로 행할 게 분명하다는 게 무인의 직감으로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달리 말하자면 방금 전 장삼봉 진인이 내게 반격하려 했다면 얼마든지 가능했다는 뜻이었다.

나는 만상지투를 장삼봉 진인과의 대결에서 계속 쓰면 피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직감했고 내심 이를 악물었다.

‘젠장…. 무중생유. 거 참 계획대로 안 되는군.’

계획대로 하려면 적어도 장삼봉 진인이 무쌍패를 쓰게 하고 그 직후에 내게도 여력이 남아야 하는데 이번엔 작전대로 되지 않았다. 나는 실망하지 않고 다시 몸을 추스려서 이 초 째에 돌입했다.

만상지투로 안 된다면 이번에는 위력을 올려서 가 볼까.

쿠구궁!!

나는 곧장 양손에 대해방 칠요를 들고 온 힘을 끌어올렸다. 그러자 양 손의 칠요가 서로 공명(共鳴)하며 강렬한 진동을 일으켰고, 삽시간에 조용하던 도관 전체가 바닥의 나뭇바닥이 뜯겨나갈 정도가 되었다. 그저 힘의 발산에 집중하자 전에 없이 강대한 기파가 퍼져나왔고, 그 기파가 내가 원래 갖고 있던 내공의 위력을 더더욱 강화시키는 듯 했다.

치지직

딱히 대라멸진을 쓰지도 않았는데도 최소한 그 절반에 이르는 기력의 충족감이 전신을 감쌌다. 나는 대해방 칠요의 힘을 제대로 다 끌어내보는 건 산하사직도 이후 이번이 처음이었기에 꽤나 놀랐다.

‘이 정도나 되는 힘이었나.’

산하사직도에서는 비교대상이 삼황오제였기에 딱히 강력함을 느끼지 못했지만 지금은 피부로 똑똑히 느껴진다. 대해방 칠요 두 개를 공명시키고 있는 지금, 단순히 힘의 잠재력만이라면 내가 이 자리에서 두말할 여지없는 최강이다!

장삼봉 진인이 나를 응시하며 무쌍패의 자세를 잡았다. 나는 훗하고 웃으며 말했다.

“장 진인. 신외지물의 힘을 빌리면 설마 시련에서 탈락입니까?”

“설마. 그런 이야기는 이 시련이 시작하기 전 한 마디도 하지 않았잖소.”

장삼봉 진인은 여전히 태극권의 기본자세를 잡으며 주먹을 꾸욱 말아쥐었다.

“그대가 작전을 짜고 실행한다는 게 느껴지는구려. 끝까지 뜻대로 해 보시오.”

이 힘을 마주하고도 아무런 동요가 없다니….

나는 장삼봉 진인의 수양이 정말로 인간으로서는 다다를 수 없는 경지에 올랐다는 걸 실감했다. 하긴 저 정도나 되니까 [옛 지배자]를 상대로도 버틸 수 있는 것이리라. 그리고 [옛 지배자]에 비해서 쌍요공명이 더 강하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만상지투가 통하지 않는다면 이 방법뿐이지.’

검마와 마찬가지다. 장삼봉 진인을 마주하고 있으니 이 태산같은 자를 상대로 안이한 마음따윈 먹을 수 없었다. 나는 눈을 빛내며 수요를 앞으로 뻗고서 이도류의 기수식을 잡았다.

뇌신류의 검술은 아니다. 수요와 화요를 갖고서는 이도류나 쌍검술밖에 쓸 수 없는데 뇌신류의 쌍검술을 제대로 수련한 적은 없으며 장기로 삼을 정도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일도류의 요령을 살려서 병기의 힘을 살리는 선택에 맞춘 편의주의적 검술이다. 뇌신류의 검술을 기본으로 다른 한 자루가 힘을 보탤 뿐, 쌍검의 장점은 아직 못 살린다.

그래도 의념을 제대로 담아서 의념천주로 위력을 발현한다면 충분하다. 나는 이윽고 모든 정신을 집중하여 일참을 날렸다.

무량단(無量斷)!

쩌엉!

수요를 중단으로 내려치며 극강의 참격이 먼저 떨쳐졌다. 무의식의 영역에서 만들어진 내 무학경험의 결정체가 한 번에 모여서 의형(意形)을 만들었고 삽시간에 장삼봉의 방어영역에 도달했다. 그리고 장삼봉은 어느 새 무쌍패의 무위전변을 전개하는 중이었고, 나는 한 호흡 늦게 돌격하며 화요의 힘을 극대로 끌어올렸다.

연속 - 무량단!!

두 개의 대해방 칠요가 허공에서 십자로 교차한다. 그저 무량단을 연속으로 펼칠 뿐이었고 본디 이런 식이면 두 번 다 무쌍패에 막혀서 흩어질 뿐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칠요의 날이 교차하는 순간 쌍요가 공명하는 걸 알 수 있었다.

쌍요공명(雙曜共鳴) -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에도 해신에게 유효한 타격을 먹였을 정도의 공격! 그게 지금 대해방 칠요로 각성한 상태에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공격력을 보이고 있었고, 장삼봉 진인의 무쌍패가 만들어낸 태극이 공명의 광채(光彩)에 휘말리는 게 보였다.

쿠구구구

거대한 빛의 파도가 장삼봉과 태극을 함께 감싼다. 차라리 자연재해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의 어마어마한 힘 그 자체! 나는 이런 위력의 쌍요공명을 펼쳐본 적이 없었기에 나 스스로가 전율할 정도였다.

‘어, 어쩌면 힘만으로…?’

끼기긱

그러나 장삼봉 진인이 뒤로 밀린 건 딱 두 걸음이었다. 원의 끄트머리 바로 앞에서 멈춘 장삼봉 진인의 발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고, 그는 이윽고 절기를 발휘했다.

능어일념(能於一念)

무쌍패!

전방에서 쌍요공명의 맹진을 막던 무쌍패에 살포시 또 한 겹의 태극(太極)이 역으로 회전하며 겹쳐지는 게 보였다. 그리고 무쌍패가 겹쳐지는 순간, 나는 수요와 화요의 정령이 내면에서 외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오오…. 혼돈의 대극이 느껴진다.]

[세상에 이런 기술이 있을 줄이야.]

파앙!!

그리고 설마설마 했으나 장삼봉 진인의 쌍장은 그대로 멈췄고 내 쌍요공명조차도 무쌍패에 무화(無化)되며 짧은 잔영을 남겼다. 명백히 장삼봉 진인의 무쌍패가 승리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제야 작전대로다.

그 순간 나는 대해방 칠요를 모두 손에서 놓아버리고 말았다. 최대의 무기를 손에서 놓아버릴 줄은 몰랐는지 장삼봉 진인의 움직임이 잠깐 흐트러졌고, 나는 그 빈틈을 타서 모든 집중력을 모았다.

육합이 한데 모이는 형이상학적인 변화가 흘렀고, 나는 순식간에 패력이 집합된 것을 느꼈다. 내 몸의 전면에 무쌍패의 태극이 생겨난 것도 느껴졌다.

‘무위전변으로 무화시킬 대상은 정해져있지.’

상대의 무쌍패 그 자체를 무효화시킨다!

무효화의 무효화!

처음부터 이게 승산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고 내가 무쌍패의 패력은 물론이고 무효화까지 싸잡아서 내 무효화의 범위에 넣고자 의념천주를 강하게 명동시켰을 때였다.

스스스

그 순간 나는 기이한 기분을 느꼈다. 허무의 광대한 우주 속에서 두 개의 태극이 부딪히는 환영이 눈앞에 스쳐지나갔다. 그리고 나는 마치 홀리듯이 태극장(太極掌)의 초식을 펼쳐서 장저(掌底)를 내뻗었고 그 일 장은 어느 새 장삼봉 진인의 손바닥과 맞닿아 있었다.

음(陰)이 양(陽)을 빨아들이고 양(陽)은 음(陰)를 태운다.

각자가 보유한 태극이 서로의 음양을 택하여 상쇄되었다. 그 순간 나는 내가 펼친 무쌍패와 장삼봉 진인의 무쌍패가 동시에 소멸되는 걸 느꼈고, 장력을 비틀어서 전진횡운장(全眞橫雲掌)으로 여력을 이어나갔다. 그러나 장 진인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전진교의 유산인 칠성권(七星拳) 비룡적심(飛龍績心)으로 내 초식을 받아쳤고, 다시 한 번 허공에서 약속이라도 한 듯 우리 둘의 쌍장(雙掌)이 맞부딪혔다.

투웅!!

마치 내공대결이라도 하려는 듯 양인(兩人)의 쌍장이 마주쳤다.

푸욱

그리고 뒤이어 대해방 칠요 두 자루가 허공에서 내 등 뒤의 땅에 떨어져 꽂혔다.

나는 길고 긴 이 초식의 충돌이 마무리됨과 동시에 내 예상이 맞았다는 걸 알아채곤 씨익 웃었다.

“삼 초. 이제부터 시작이지요.”

이 쌍장이 떨어지는 순간 진짜 싸움이 시작된다. 장삼봉 진인이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았다.

“어찌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소?”

“무중생유(無中生有)가 아닙니까, 장 진인.”

“과연.”

체력소모가 꽤 있다. 나는 숨을 고르며 말했다.

“명룡자가 말해줬습니다.”

본디 무중생유는 허실을 뒤섞어서 상대를 혼란시키라는 뜻이다. 그래서 나는 처음에는 명룡자의 공략 조언이 무슨 말인지 몰랐으나, 나중에 검마의 설명을 듣고서야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었다.

말 그대로 무 속에 유가 있다는 뜻!

장 진인의 전투방식은 기본적으로 무쌍패를 이용해 적의 절기를 받아내어 확실히 전술적 우위를 차지하여 이기는 것이다. 그리고 그 무효화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기 위해서는 장 진인의 반격능력이 관건이 된다. 아무리 무쌍패가 대단해도 반격을 하나도 할 수 없다면 그저 고기방패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즉 무쌍패 사용자를 상대할 때는 도리어 무효화 직후의(無中) 반격(生有) 그 자체를 조심해야 하는 법이었다. 명룡자는 그 점에 착안해서 장삼봉 진인이 무쌍패 직후에 시전하는 반격을 다시 한 번 반격하거나 맞찌르기를 할 수 있다면 그와 상대하여 이길 수 있다는 은유를 담아 무중생유라는 조언을 해준 것이다. 일부러 태극혜검을 보여준 이유도 무쌍패를 상대할 때 이런 대비책이 있으면 훨씬 나으리라는 의미였다.

그러나 검마는 이 조언의 속뜻을 깨달았음에도 정면으로 도전해서 깨어버리려 했다. 그의 무인으로서의 자존심이 있을 뿐만 아니라 그가 희생해서라도 장삼봉 진인이 은연중에 숨기는 비밀무기가 있는지 알아보려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검마가 예상했던 대로 장삼봉 진인은 능어일념을 숨기고 있었고, 나는 능어일념의 존재를 인지한 채 장삼봉 진인에게 도전할 수 있었으니 공략성공률이 크게 올라간 것이다.

그리고 막상 내가 무쌍패끼리의 대결에서 벌어지는 무중무(無中無)의 모순을 상상하고 허우적댈 때 망량이 내게 조언해준 것이다.

무를 소유할 수 있는가?

그것은 무쌍패를 써서 공격하는 게 불가능하지만, 소유하지 않음에도 허무는 무 그 자체다. 어쨌든 간에 내가 무쌍패를 쓸 수 있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즉 장삼봉이 어떤 대응을 하던 간에 나는 그저 무쌍패를 견지하며 맞대응하며 빈틈이 보이면 공략할 기회를 보는 것 - 그것이 바로 장삼봉을 압도할 순 없더라도 그를 상대로 대등하게 치고받을 수 있는 유일한 전략이다!

능어일념과 무쌍패를 같이 쓰더라도 같은 무쌍패를 상대로는 별 의미 없다는 게 판명되었으니까!

장삼봉 진인은 삼 초의 양보가 끝났음에도 나를 연거푸 공격하지 않고 투명한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연구는 많이 했으나 이제부터 어쩔 것이오. 이미 한 번 무쌍패를 시전한 그대가 이제부터 무쌍패를 시전하는 건 한없는 도박의 연속.”

“…….”

“한 번이라도 실패하면 그대는 죽소. 허나 나는 앞으로 백 번은 여유롭지. 이 격차를 극복할 수 있겠소?”

“안 해보고 어찌 압니까.”

우웅!

나는 전신에 공력을 모으며 말했다.

“한 번이든 백 번이든 해 봐야죠. 죽기밖에 더하겠습니까?”

“좋소. 간만에 가슴이 뛰는 구려….”

장삼봉이 훗하고 웃으며 안광을 빛냈다.

“결판을 내 보시오!”

다음 순간.

선공을 가한 것은 바로 장삼봉이었다. 그의 왼손이 뒤에서 경력을 모았다가 이내 백룡(白龍)을 연상시키는 강기를 뿜어내며 내 가슴팍으로 돌진한 것이다.

소천신룡수(燒天神龍手)

압도적인 위력의 수공(手功)! 저건 내가 처음 보는 것이었다. 아마도 오백여 년의 세월 동안 만들어낸 또다른 절학일 것이리라.

‘엄청난 위력…!! 구궁천라십단금을 뛰어넘는다!’

나는 그 수공을 정면으로 상대할 방법이 무량단 혹은 무쌍패 뿐이란 걸 알았으나 바로 무쌍패로 받아치는 게 곤란하다는 걸 알아챘다.

‘내가 먼저 무쌍패를 쓰면 이번엔 저쪽에서 무쌍패로 내 무쌍패를 무화시킨다.’

사실 무쌍패의 연속대결은 무조건 후발선제다. 무쌍패끼리 대결하면 웬만하면 동시에 충돌하게 되지만, 뒤에 시전하는 쪽이 조금 더 유리했다. 상대는 무효화당한 충격이 조금 남아서 빈틈을 노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방금 전 장삼봉 진인의 빈틈을 타서 한 방을 먹이려 했지만 막혔기에 아쉬웠다.

‘만일 이번에 내가 버텨내고 다시 한 번 후공의 빈틈을 잡을 수 있다면 이번엔 만상지투로 필살의 일격을….’

하지만 왠지 껄끄럽다. 아까 장삼봉 진인이 괜히 경고한 게 아니지 않을까?

나는 망설임이 느껴졌지만 이내 지금의 공격부터 처리해야한다는 걸 깨닫고는 정신을 집중해서 무쌍패를 시전했다.

우웅

육합패도와 무위전변이 이어져서 소천신룡수를 무효화시키는 순간 - 장삼봉 진인의 미간에 조그마한 태극이 떠오르더니 나의 태극을 통째로 감싸는 빛을 발사했다. 저건 아마 펼치는 방식은 차이가 있겠지만 똑같은 무쌍패이리라.

내 무쌍패가 무쌍패로 곧장 상쇄되었을 때 이번엔 장삼봉 진인이 후공의 빈틈을 잡고 나를 공격해 왔다. 하지만 나는 이내 눈을 부릅떴다.

‘윽?!’

고오오오

장 진인의 양손이 빛나더니 구궁천라십단금(九宮天羅十段錦)과 삼절무적장(三絶無敵掌)이 동시에 날아온다?!

삽시간에 장삼봉의 합체절기를 두 개나 맞이하게 되자 당황스러웠다.

‘나는 한순간의 빈틈밖에 찌를 수 없어서 큰 초식은 못 썼는데!’

어떻게 저 정도의 여유가….

나는 당황하던 중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능어일념(能於一念)!’

한 번에 두 개의 절기를 쓸 수 있도록 해주는 저 절대지경의 절기는 이런 찰나의 빈틈조차도 시전자가 여유롭게 필살기를 쓸 수 있도록 간극을 늘려주는 묘용이 있는 것이다! 나는 능어일념이 있는 이상 이런 방식으로 장삼봉 진인과 치받더라도 내가 두 배 이상 불리하다는 걸 단숨에 알아차렸다.

‘이런 제기랄….’

무쌍패를 동시에 쓰는 절대방어보다 이게 더 무서운 활용법 아닌가?!

쓔웅

나는 내심 큰일났다 생각해서 급히 어검술(御劍術)을 써서 급한 대로 대해방 칠요로 합체절기를 맞이했다. 순수한 잠재력의 측면에서 하나하나로 못 막을 이유는 없을 듯 했다. 아니나 다를까, 칠요 두 자루의 검극이 무형의 의념에 부딪히자 장 진인의 공격은 일시적으로 힘을 잃었다. 충분히 상쇄되는 걸 보자 나는 내심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이내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끼깅

‘균열음?! 설마….’

나는 극한까지 예리한 감각으로 단숨에 알아챌 수 있었다. 보통 관찰력으론 알 수 없을 정도로 아주 미세하긴 하지만 수요와 화요의 손잡이에 조그맣게 금이 갔다! 새끼손가락 반 마디도 안 되는 미세한 균열이었으나 분명한 무기손상이었으므로 나는 경악했다.

‘지금 대해방 칠요의 검날은 자연지기로 변해 있어…. 손잡이라면 별 문제 아닐 수도 있지만 설마 지금 상황은.’

칠요에 깃든 신의 힘, 그 계약을 조금이지만 뛰어넘을 정도로 장 진인의 합체절기의 위력이 대단하단 건가?! 내가 직접 의념을 불어넣지 않고 어검으로만 충돌시키면 균열이 생길 정도로 합체절기가 강한 건가?

동시에 장 진인이 삼초 접어주기가 끝난 직후부터 나를 조금도 안 봐주고 있다는 걸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 대해방 칠요조차 타격을 입는 저 공격에 당하면 나는 말 그대로 뼛조각까지 분쇄되고 말리라!

입 안이 바싹바싹 마른다.

한 달 동안 장 진인에 대비해서 훈련할 때 망량의 경고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이론적으론 당신이 무쌍패로 무쌍패를 무효화시키면서 계속 치받다가 대해방 칠요의 파괴력을 살려서 한방에 몰아치는 게 유일한 승산. 장기전이 옳소. 하지만 아마도 장기전은 힘들 거요….]

[장기전을 해야한다면서 왜 장기전이 힘든 거요?]

[…현재의 장삼봉은 여동빈과 동급이오. 원래도 극강하던 자들이 500년간 계속 수련했지. 그 동안에 방어절기만 수련했을 리가 있겠소?]

[응? 무슨….]

[무신의 좌에 오른 자들은 자신의 힘으로 쓰러뜨리려는 자들. 당연히 신을 없앨 공격력도 연마하고 있을 터요. 우린 지금 장삼봉의 절대방어에만 집중하고 있으나.]

파앙!!

나는 안간힘을 써서 이번 공격을 버텨내며 다시 한 번 장삼봉과 쌍장을 허공에서 마주쳤다. 방금 전과 달리 이마는 물론이고 양손에 땀이 줄줄 흘렀다. 엄청난 압박감과 체력소모가 견딜 수 없게끔 했다.

과연 다음 일격을 맞받을 수 있을까.

치받아서 무쌍패 후공을 얻을 수 있을까….

[500년 동안 천계에서 신살을 위해 갈고닦은 장삼봉의 공격력은 전혀 계산에 넣고 있지 않소….]

그렇다.

장삼봉 진인의 무쌍패와 능어일념을 상대로는 같은 무쌍패 사용자가 무효화를 반복하며 장기전으로 버티는 것밖에 방법이 없지만, 역으로 삼 초를 접어주는 게 끝나는 순간 장삼봉의 공격력이 너무 막강해서 버티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경우가 있었다. 물론 이런 건 생각해봤자 무의미했기에 그냥 덤빌 수밖에 없었다.

그저 - 수준차.

그 뿐인 것이다.

나는 이를 악물며 안광을 폭사시켰다. 그리고 의념을 모아서 허공에 칠요를 목어검(目御劍)의 수법으로 띄운 후 그대로 쌍요공명시켰다. 쌍요공명을 연속 두 번이나 쓴다면 큰 기력과 체력이 소모되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다!

“으아아아!!”

키잉!

쌍요공명에 또다시 무쌍패가 펼쳐지며 위력을 무효화시킨다. 나는 장삼봉 진인이 이번에 능어일념을 응용한 무쌍패를 펼치자마자 곧장 무쌍패로 무효화를 시켜야 했다. 오늘 들어서 세 번째의 무쌍패이지만 집중력이 극한에 달한 상태라서인지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다. 그러나 몸에 슬슬 무리가 오는지 눈에 핏발이 서고 따가워지며 전신에 혈관이 오르는 듯 했다.

파앙

칠요공명씩이나 해서 얻어낸 찰나간의 빈틈. 나는 이 빈틈에 장삼봉 진인처럼 합체절기를 퍼붓는 짓은 도저히 할 수 없다. 해봤자 아까처럼 자잘한 초식 한 번을 꽂아넣을 틈밖에 없다. 그리고 그걸로는 아무리 찰나의 빈틈을 얻었다 해도 장삼봉 진인의 방어를 뚫을 수가 없다.

‘하지만…. 이게 아마 거의 마지막 기회….’

네 번째의 무쌍패가 가능할까?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지금부터는 순간순간이 죽음이다. 정신이 아득해지는 걸 한 번이라도 붙잡는데 실패하면 죽는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자 엄청난 유혹이 머릿속에 몰려드는 걸 느꼈다.

…만상지투.

만상지투를 써서 저 빈틈을 노려야 해.

공간을 뺏아서 장외패시키던가 아니면 중대한 빈틈을 계속 유발시킬 수 있는 걸 훔쳐버리면….

바로 그 때 머릿속에 예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것은 바로 과거에 여동빈을 만났을 때의 기억이었다.

“……!!”

제기랄!! 제길!!

나는 가망도 없는데도 만상지투를 쓰는 걸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콰악

그리고 대신에 억지로 허공에 떠 있던 수요를 붙잡아서 완전히 의념이 모이지 않은 무량단을 펼쳐서 장삼봉을 공격했다. 찰나의 순간에 보법도 호흡도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의념만 모았기에 위력은 평소와 달리 낮은 편이었다. 그래서인지 장삼봉 진인은 굳이 대단한 수법을 쓰지 않고 간단하게 삼보절기를 이용해서 흘려버리고 말았다.

‘천추같은 기회를 날려버렸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어….

파앙!!

다시 장삼봉 진인과 진기를 담지 않은 쌍장이 부딪힌다. 나는 숨이 턱끝까지 차올라서 헉헉대고 있었고 장삼봉 진인은 땀 하나 흘리지 않은 채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입을 열었다.

“만상지투를 쓰려다 참은 이유가 있소?”

“…….”

눈치챘나. 나는 이를 악물고는 대꾸했다.

“검선 여동빈은… 500년 전에도 만상지투를 벨 수 있었습니다.”

“흐음.”

“당신도 아마 가능하겠지요.”

여동빈은 심검으로 만상지투를 쳐낸 적 있다. 그때는 그저 쳐내기만 했지만 아마 마음만 먹는다면 내 손목을 자를 수도 있었으리라.

…그게 아마 신투지존이 검선을 두려워했던 이유 중 하나겠지. 이른바 상성관계다.

그리고 그건 아마도 장삼봉 또한 마찬가지이리라.

순간을 지나고 나니 명백히 머릿속에 가정이 떠오른다.

장삼봉 진인을 만상지투로 공격한다. 그러자 만능이나 다름없었던 만상지투는 이윽고 장삼봉의 수도(手刀)에 속절없이 부숴져 나간다. 상하단으로 강하게 내려치는 무당파 칠성권(七星拳) 비룡고굉(飛龍高轟)의 절초에 나는 회피하려 들지만 장삼봉 진인은 끝까지 따라붙었으리라. 그리고 존재하지 않는 신투(神偸)의 손목 위에 마치 망나니의 칼날처럼 수도가 내리쳐진 결과는 대도(大盜)의 몰락….

장삼봉 진인이 투명한 눈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선재(善哉)로다. 허나 봐줄 생각은 없소.”

“봐달라 한 적 없습니다.”

“일 푼의 승산조차 없는 지금 상황, 그대가 과연 기적을 일으킬 수 있을지…. 그걸 보고 싶소. 그 운(運)이 바로 이 세계의 명운을 결정지을 것이오!”

투웅!

쌍장이 떨어진다. 나는 장 진인의 양손에 아까와 다른 절학이 맺히는 걸 목격하고는 눈을 질끈 감고 싶어졌다. 쌍요를 다시 충돌시키는 것밖에 방법이 없지만, 왠지 이번에는 아까보다 더 절망적인 상황이 되리라는 무인의 직감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승산 한 푼 없이 패배로만 내몰리는 익숙한 절망의 느낌이 내 전신을 올올이 감싸안았다.

던지고 싶다. 빨리 죽어서 편해지고 싶을 정도다. 하지만 나는 이를 악물며 방금 전처럼 칠요를 충돌시켰고 이번에도 장 진인의 합체절기가 저돌적으로 날아오다가 칠요에 부딪히는 듯 했다.

위이이잉!

‘부딪히지 않아?!’

파바밧

[무기를 뺏겠소.]

부딪히려 할 때 갑자기 장 진인의 양손이 손목을 두고 교차했다. 그리고 역음양(易陰陽)이 허공에 떠올랐는데 그것은 무쌍패의 태극이 아니었다. 그리고 음의 기운이 화요를 휩싸듯 말아올렸고 양의 기운이 수요를 내리누르는 게 보였다. 나는 그걸 보자 머리를 크게 한 방 맞은 기분이 들었다.

‘건곤교호(建坤交互)의 리(理)!’

장 진인 또한 이번에는 반격을 하지 않았다. 그저 태극으로 건곤을 조종해서 칠요를 내 통제권에서 뺏으려는 것이다! 아무리 칠요라 해도 건곤의 이치로 힘의 방향 자체를 뒤틀어버리면 이치에 순응하게 되리라. 너무 완벽한 태극의 달인다운 운용이었다.

나는 급히 어검의 의념을 강화시켜서 건곤교호에 저항하려 했으나 어디까지나 우선권은 장 진인에게 있었다. 장 진인은 간단하게 내 의념을 떨쳐버리고는 굴공장의 원리로 칠요를 자신 쪽으로 당겨왔다.

별다른 충돌이 없자 또다시 무쌍패를 쓸 필요는 없었지만 나는 크나큰 탈력감을 느꼈다. 칠요가 저 쪽으로 가버리다니! 물론 그렇다 해서 장 진인에게 소유권이 넘어간 건 아니지만 어쨌든 장 진인의 의념 때문에 내 의념이 닿지 않는다면 다음번 반격 때는 장 진인의 재반격을 막을 도리가 없다!

쩌엉!

게다가 장 진인이 마치 틈새를 공략하듯 가볍게 수도로 의념의 일참을 날리자 나는 급한 대로 무토도리를 써서 흘려내기까지 했다. 의념이 실시간으로 소모되는 감각에 정신이 아찔해졌다.

파앙

육 초 째. 나는 장 진인과 쌍장을 부딪히며 내가 왜 여기에 서 있는지 고민했다.

‘바닥에 땀 웅덩이가 고였군….’

전부 내 땀이다. 이미 체력도 한계에 도달했다.

절대 못 이기게 되어버렸다….

처음부터 못 이기는 싸움이 아니었을까?

예상보다 더한 실력차에 나는 당장이라도 전투를 포기하고 싶었다. 그냥 이번엔 진 걸로 하고 전생해버리고 다음에 실력을 더 쌓아서 장삼봉 진인에게 도전하라는 마음속의 외침이 들렸다.

포기하면 안 돼!

하지만 나는 다시 한 번 이를 악물었다.

내 눈빛을 본 장삼봉 진인이 처음으로 눈에 이채를 띄었다.

“포기하지 않는구려. 어째서?”

“이유 따위 물어서 무엇합니까? 난 이 탑의 끝에 올라서 복희 얼굴을 볼 겁니다. 당신이 방해한다고 포기할 일이 아닙니다.”

나는 악에 받치는 감정으로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당신들도 포기 안하는데 내가 왜 한단 말입니까.”

“당신들이라는 건 무신의 좌를 칭하는 것인가.”

나는 내상 때문에 목에서 끓어오던 피가래를 바닥에 퇫하고 뱉은 후 말했다.

“진심이잖습니까. 당신들 진심으로 신을 죽이려는 거잖습니까. 아닙니까?”

“…….”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버럭 소리를 쳤다.

“이 세상의 빌어먹을 신들을 싸그리 죽여버리려는 마음은 절대 당신들한테 지지 않아!! 절대로!!”

지금 이 순간만큼은 무신의 좌가 이후의 동료가 되든 안 되든 상관없다. 그들이 선한 존재든 아니든 이 대결을 얌전히 내어줄 순 없다.

어차피 각자의 신념을 걸고 이 자리에서 목숨걸고 겨루고 있는 게 아닌가?

여기서 실력이 안 된다고 얌전히 죽음을 인정하는 건 - 내게 지금껏 의지를 이어준 모든 이들에게, 그리고 신살을 맹세한 그 때의 나 자신에게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짓이다!!

나는 마지막 기운을 다해서 장삼봉을 노려보았다.

“죽고싶지 않으면 그쪽이나 전력을 다하십시오!!”

“…좋소.”

장삼봉 진인의 안광이 크게 일어났다.

“하다못해 그대 여정의 마무리는 본도의 손으로 지어주겠소이다!”

진심어린 살기.

나는 인생 최후의 일초가 다가옴을 느꼈고, 이윽고 씩 웃으며 먼저 쌍장에서 손을 뗐다.

파앙!

‘지금까지는 후공을 잡는 게 유리해서 장삼봉의 선공을 방치했지만 마지막 정도는….’

지금껏 도박이나 다름없어서 끝까지 쓰지 않았던 방법을 써야겠다.

이게 먹힐지 안 먹힐지는 전혀 검증된 바가 없기에 - 이 상황이 올 때까지는 가지고 있는 모든 걸 동원해서 싸워보려 했지만 어쨌든 지금은 하는 수밖에!

나는 먼저 무량단을 써서 장삼봉을 공격했다. 장삼봉은 아무렇지도 않게 무쌍패로 막아냈고, 나는 마주 화답하듯 무쌍패를 시전했다.

푸콱

‘커헉.’

몸이 한계에 가까워졌는지 눈과 귀에서 동시에 피가 철철 흘렀다. 몸의 혈관과 내장이 더 이상의 부담을 버틸 수 없다고 호소하는 것이다. 장삼봉급 고수와 마주하여 고작 오 초 정도를 전력으로 싸운 결과다. 연속 무쌍패 또한 말도 안 되는 정신적 부담을 주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나는 이를 악물고 무쌍패를 시전했다. 그리고 내 무쌍패가 상대와 상쇄되는 순간,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손을 내밀었다.

지금 내게는 무기가 없다.

그러나 - 가장 큰 무기는 이미 내 손에 있으리라.

‘기회는 한 번 뿐이다.’

우웅

선검(仙劍)이 손에 소환되었다. 선검을 목격한 장삼봉은 뜻밖의 상황에 놀란 듯 찰나의 순간에 반응했다.

[그게 어찌?]

나는 과거 아수라의 가르침을 기억해 냈다.

[역륜(逆輪)을 돌리는 거다.]

[무신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신을 벨 수 있는 방법을 생각했었지. 내 입장에선 당연하지 않겠냐.]

극한의 이단.

본디 무(武)의 극에 이르지 못할 존재가 무를 갈구하던 끝에 찾아낸 또 다른 길.

나는 그 존재를 이번 삶의 스승으로 삼았다.

[원래는 ‘고리’를 인식해야 한다. 근데 넌 선검을 이용한 편법으로 의념을 없앴잖냐. 그래서 이 설명을 해봤자 지금 네가 알아먹지는 못할 테지만 어쨌든 중요한 건 그거야. ‘고리’를 인식하고, 그 굴레를 역으로 돌리는 것.]

굴레를 역으로….

나는 ‘고리’라는 건 의념이 존재하는 한 역회전시킬 수가 없는 성질이 있다고 했던 아수라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의념이 소멸상태에 이르러야 비로소 발동시킬 수 있는 이단의 절기를 발동시켜야 하는 것이다. 나는 궁극의 집중상태에서 아수라의 가르침을 깨달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이내 실망했다.

‘후.’

이럴 때 보통 깨달음을 얻어야 하지 않나….

깨달음 같은 건 없다. 여전히 고리가 뭔지 모르겠다. 선검을 쓰지 않은 상태에선 절대 감지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수라의 가르침이 이 자리에서 유효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나는 재능이 없어서 이런 생사결전의 깨달음은 무리지만…. 적어도 배운 걸 배운대로 행하겠다!

치이이잉!!

선검에 집중하는 순간, ‘고리’가 인식된다. 그리고 그 륜(輪)이 거꾸로 돌아가며 선검의 기운이 빨려 들어갔고, 바퀴가 빛나는 게 정신세계에서 느껴졌다. 나는 그 순간 선검을 아무런 기교없이 장삼봉의 전면으로 베었다.

이것이 바로 암야참(暗夜斬)!

‘아수라, 믿는다!’

안 통할 것 같지만 좋든 싫든 이번 일격이 마지막이다. 써보고 죽는 게 어디냐!

파앗!

[어쩔 수 없구려!]

그리고 그 순간 장삼봉 진인이 선검을 지켜보더니 갑작스럽게 손 위에 웬 의념의 광검(光劍)을 띄웠고 곧장 능어일념으로 내게 반격해 왔다. 딱히 뭔가 초식이 있지는 않았지만 가공할만한 참격이었다.

나는 그 대응을 보자 눈을 둥그렇게 떴다.

‘응?’

저게 무슨 절기인지는 모르지만 이게 무슨 일이지?

당연히 선검조차도 무쌍패로 방어할 줄 알았는데 어째서 맞찌르기를 선택한 거지?

즈으으으

체감시간이 늘어난다.

어두운 우주에 내동댕이쳐진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이대로라면 내 선검과 장삼봉 진인의 광검은 서로를 동시에 베게 된다. 말 그대로 동귀어진(同歸於盡)이었고 여기에는 더 이상 무공절학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 더 이상 무쌍패든 삼보절기든 쓰지 못한다.

단지 동귀어진할 경우 두 검객은 서로 부상입고 끝낼 것인지 아니면 끝장을 볼 것인지 동시에 선택할 수 있는 ‘한 순간’이 주어진다.

그 찰나의 선택에서 나는 멍한 기분이 들었다. 내 자신을 허공에서 내려다보듯 붕 떠있는 기분에서 대결을 제 삼자의 시점에서 관찰하는 듯하다. 이대로 동귀어진 해봤자 남는 건 없으니 도중에 멈춰야 할 것이다. 그리고 서로 부상만 입고 끝나야 서로의 투지를 칭찬하며 무난하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으리라.

하지만.

지금 내 손끝에서 휘둘러지는 선검의 암야참(暗夜斬) 그 자체가 마치 의지가 있는 것처럼 살아서 내게 말을 거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대로 미적지근하게 끝낼 셈이냐?

안 끝내면 어쩔 건데…?

나는 그렇게 반문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되려 웃음이 지어지는 걸 느꼈다.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 아주 순수한 광기(狂氣)가 내 몸을 지배하는 걸 알아차렸다. 나는 이 광기에 몸을 맡기자 쾌락과는 다르지만 정신세계를 충족시켜주는 감각에 갈증을 느꼈다. 생사를 뛰어넘는 이 순간에만 매몰되고 싶다.

혼돈을 가르는 암야(暗夜)가 새벽을 갈랐다.

촤악!!!

격렬한 참격의 끝에서야 나는 간신히 제정신을 차릴 수가 있었다.

더 이상 손끝 하나도 움직일 수 없는 상태에서 장삼봉 진인이 내게서 훨씬 더 멀어져 있었다. 그는 어째서인지 평소보다 멀어보였고, 나는 이윽고 그게 착각이 아니라 진짜로 거리가 멀어졌다는 걸 알아챘다.

한 걸음.

장삼봉 진인은 정확히 원에서 한 걸음을 물러서 있었다. 그리고 장삼봉 진인은 한쪽 손을 가슴 앞에 갖다대며 조용히 말했다.

“선검에 담긴 무혼(武魂)이 광념(狂念)에 에워싸일 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으니…. 원에서 물러선 본도의 패배요.”

털썩.

한 박자 늦게 하늘에서 팔 한 짝이 떨어져 내렸다. 그것은 바로 장삼봉 진인의 팔이었다.

“……!!”

아마도 내 선검이 벤 것이 틀림없기에 믿기지 않아서 눈을 부릅떴지만, 이윽고 비슷한 둔탁한 소리가 내 등 뒤에서 울렸다.

투둑

뒤를 돌아보자 거기에는 내 팔이 떨어져 있었다. 집중상태에서 통증을 잊었기에 미처 깨닫지 못했으나 장삼봉 진인의 광검 또한 내 팔을 베어버린 것이리라. 그제서야 나는 방금 전 어떤 상황이 일어났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서로의 팔을 베었다!

장삼봉 진인은 선검을 떨어뜨리고자 내 팔죽지를 광검으로 노렸으나, 암야참이 그의 예상보다 훨씬 강력했기에 미처 그 또한 피할 방도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내 팔을 베는 것까지는 성공했으나 장삼봉 진인은 원에서 물러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었던 듯 했다.

양패구상!

뜻밖의 결과에 나는 나 스스로 믿기지 않아서 말했다.

“피할 수 없었습니까…? 어째서 무쌍패를 쓰지 않았습니까.”

“…….”

장삼봉 진인이 현묘한 눈으로 날 보며 대답했다.

“그 질문을 하는 걸 보니, 아직 제대로 윤회(輪回)를 깨닫진 못했구려.”

“무슨.”

그는 나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보았다.

“백웅이여. 그건 틀림없이 비장의 무기이지만 이치를 깨닫지 못한 채 더 이상 쓰다가는 진짜 위험에 처할 것이오. 설마 검귀(劍鬼)의 미소를 지을 줄이야.”

“…….”

“어찌되었든 본도를 이 조건으로 쓰러뜨린 이상, 본도도 인과율의 소모를 감수하겠소.”

이어진 장삼봉 진인의 말에 우리는 92층을 통과했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자, 모두들 본도를 따라오시오. 그대들에게 [작은 굴레]에 저항하는 법을 전수할 것이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