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1133화 (1,130/1,615)

1133====================

사신지혼(四神之魂)

독고성의 칼날이 장삼봉의 목을 가르는 순간 - 장삼봉 진인이 엷게 변한 것처럼 보였다. 아주 잠깐동안의 일이었지만 완벽하게 목을 갈랐던 뇌섬(雷殲)은 무위로 돌아가서 장삼봉을 투과해 버렸다. 장삼봉 진인의 몸이 일 장 뒤에 나타나자 독고성은 씨익 웃었다.

“역시 그렇군. 대충 알겠다.”

“허허…. 과연 독고성. 눈치챘나보구려.”

“비장의 한 수가 빗나간 건 좀 뼈아프다만 그래도 얻어낸 게 있지. 이제부터 세계베기는 쓰지 않겠다.”

“허허. 왜 그러시오.”

“그런 기술이랑 뇌신검무는 상성이 안 맞거든. 그러니까 단순하게 간다.”

독고성은 무슨 말을 하는 것일까?

스윽

독고성이 첫 공격을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만만하게 뇌신검무의 기수식을 잡으며 눈을 번득였다.

“정말로 세 수나 양보해도 괜찮겠나? 그 전에 따라잡힐 텐데.”

“흐음…. 조금 위험하겠구려. 하지만 본도는 한번 했던 말을 뒤집을 수 없소.”

“어디 해보자!”

치링!

독고성의 뇌검은 이번에는 단 한 줄기의 찌르기로 전환했다. 그러나 그 찌르기를 보는 순간 나는 흠칫했다.

‘뇌속(雷速)!’

마치 뇌신지혼을 검으로 구현해낸 것 같은 그 모습에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독고성과 나는 검뢰(劍雷)가 주특기인데, 검뢰는 강대한 번개의 기를 덧씌우는 의념절기이긴 하지만 번개 그 자체라곤 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검뢰가 빠르긴 해도 번개속성의 도움을 많이 받을 뿐 검속에서 독보적인 절기는 아니었는데, 지금 독고성의 찌르기는 내가 생각하던 검뢰의 차원을 완전히 넘어서 있었다.

무량단이 번개의 패도(覇道)를 구현한 절기라면, 저건 번개의 뇌성(雷性)을 구현한 듯한 절기 -

파앙!

잠시동안 희뿌연 장삼봉의 쌍장(雙掌)과 독고성의 뇌검이 부딪혔다. 부딪혔다고 표현한 것은 찰나지간에 쌍장과 뇌검 사이에 보이지 않는 막 같은 게 잠시 생겨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저건 무쌍패인가?’

아니, 아니다. 무쌍패는 천하에서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는 절기 중 하나다. 무쌍패는 절대 저런 식으로는 패도를 발현하지 않는다. 방금 전 무언가 다른 기술이 독고성의 뇌검을 막았다는 걸 알아차린 나는 그게 뭔지 발을 동동 굴렀지만 잘 알 수가 없었다.

“하아….”

독고성이 뇌검을 수발하는 순간 길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가 발검자세를 취하자 마치 천지의 공간이 독고성의 검에 빨려들어가는 듯한 착각이 들었고, 그것은 독고성의 의념천주가 더없이 강대하게 자신의 의념을 떨쳐내며 주변의 현실을 변화시키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3초 째도 찌르기.

목표는 장삼봉의 목!

독고성의 초식은 조금의 변화도 없이 2초 때와 완벽히 똑같은 궤적과 속도로 장삼봉을 찔렀다. 그 찌르기는 뇌신류의 무공이라기에는 유파를 판별할 수 없을 정도로 정직했고, 단지 유파를 알 수 없는 만큼 자세와 위력 또한 막강했다. 단 한 줌의 군더더기도 없는 완벽한 찌르기란 저런 걸 보고 하는 말이리라.

치리링 - !!

장삼봉은 뇌속의 찌르기를 맞이해서 잠시동안 태극권의 번앙벽루(繁鴦闢婁)의 자세로 맞이했으나 이내 포기한 듯 자세를 바꾸었다.

무쌍패(無雙覇)!

마침내 음양의 힘이 교차하더니 무적의 패도가 무위전변을 거쳐 독고성의 찌르기를 무마시켰다.

꾸웅!

진각 소리와 함께 잠시 초식교환이 멈췄다.

장삼봉의 목젖에서 고작해야 한 치를 남겨두고 독고성의 검극이 멈춰 있었고, 일순간에 장삼봉과 독고성은 서로가 공멸(共滅)할 수 있는 대치상태로 변해 있었다. 독고성은 장삼봉의 목을 겨누고 있으며 장삼봉의 주먹이 독고성의 명치 앞에 머물러 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공멸의 대치에서 끝장을 보는 건 고수가 아닌 바보일 뿐이다. 둘은 그 자세를 잠시 유지하다가 약속이라도 한듯 각자 육 척 정도의 거리를 두고 물러섰고, 다시금 얼어붙을 듯한 견제상태로 되돌아갔다.

의외로 먼저 입을 연 것은 장삼봉 진인이었다.

“뇌신류 검술에 그런 초식은 없었을 터. 그 초식의 이름은 무엇이오?”

“없다!”

독고성은 단호하게 대꾸했다.

“아직 연구중이라서 말이다.”

“과연…. 훌륭하오. 섣불리 이름을 붙이기에는 아직도 성장할 여지가 있다는 거구려.”

“뭐 맘대로 생각해라. 난 네놈의 잔재주를 파악했다. 그러니….”

히쭉 웃은 독고성이 말했다.

“이제 넌 내 공격을 무쌍패로 막는 것 외에는 할 수 없을 것이다!”

파밧

독고성은 또다시 예의 찌르기로 장삼봉을 공격했다. 한 번 시전될 때마다 말 그대로 번개의 속도로 쾌섬이 발출되자 장삼봉은 그 말대로 무쌍패를 펼쳐서 계속 무마시켰고, 초수가 한 번 무효화된 후에는 독고성이 재차 발검자세로 힘을 모아서 또 공격하기를 반복했다.

투두두둥

무예를 모르는 문외한의 눈에는 그저 장삼봉의 몸 주위가 희뿌연 안개로 둘러싸여 있고 독고성의 허리춤에서 번개광선이 뻗어나가는 듯한 광경일 것이다. 그러나 그 일초 일초가 천하제일을 논할 수 있는 초고수들의 격돌이었으며, 독고성의 압도적인 공세인 것이다.

나는 지켜보다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도, 독고성이 이길 수 있겠어!’

이건 괜히 한 생각이 아니다. 나도 무쌍패의 시전자라서 무쌍패의 단점은 손에 잡힐 듯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무쌍패는 압도적인 체력과 기력, 집중력의 소모를 동반하기 때문에 한 번이라도 실패하면 시전자가 자멸한다. 뿐만 아니라 중첩되는 집중력 소모때문에 두 번에서 세 번만 연속시전을 하더라도 실패율이 급증한다. 십수년 이상 수련을 한 나라고 해도 도저히 두세번 이상은 쓸 엄두를 못 낼 정도로 도박성이 짙은 기술인 것이다.

그러나 독고성의 뇌섬은 전혀 무쌍패만큼의 기력을 소모하는 게 아닌 듯하다. 공격에 최적화된 절기이기 때문에 무쌍패같은 방어형 절기에 비하면 당연히 소모가 적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무쌍패는 뭐든 막을 수 있는 대신에 공격자가 시전하는 게 약한 절기든 강한 절기든 평등하게 집중력을 소모한다는 게 아쉬운 점이다. 이대로 횟수가 쌓여가게 된다면 한 번쯤은 장삼봉의 무쌍패가 실패하는 걸 기대할 수 있을지도 모르리라.

‘독고성…. 정말 강해졌구나.’

원래도 강한 고수였는데 지난 수백 년 동안 완전히 투선급으로 올라섰다는 게 피부로 느껴졌다. 지금의 독고성이라면 500년 전의 세계에서는 단연 천하제일의 고수라 할 수 있으리라.

실제로 독고성이 발출하는 저 뇌섬은 내가 쓰는 무량단과 왠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런 잡념없는 강대한 의념천주의 일격이 단순무식하지만 엄청난 위력을 보이는데, 내 경우는 참격이고 독고성은 첨격(尖擊)이라는 차이였다.

문득 나는 저 자리에 서 있는 게 독고성이 아닌 나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나는 확하고 피부로 느낄 수가 있었다.

내가 저 자리에 있었다 해도 독고성과 똑같은 전략을 썼겠지.

무량단으로 몰아붙이며 장삼봉의 자멸을 유도하는 것이 최선이리라.

“…….”

내가 상념에 잠겨있을 때 옆에 있던 검마가 말했다.

“백웅. 이상한 걸 느끼지 못했나?”

“무엇을 말입니까?”

“벌써 독고성이 공격한지 오십 초가 넘었어. 그러나 장삼봉은….”

이어진 검마의 말에 나는 흠칫했다.

“저 원 내에서 한 발짝 이상 움직이지 않았네.”

“……!!”

뭐?!

나는 그제서야 장삼봉의 움직임이 극히 적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독고성의 공격을 모조리 막아내면서도 보법을 따로 쓰지 않았으며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적어도 원 밖으로 움직이도록 유도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게 전혀 되지 않는다!

‘어, 어떻게?’

아무리 무쌍패라도 그게 가능한가?

더욱이 장삼봉은 지금껏 오십 번 이상 연달아서 무쌍패를 썼는데도 전혀 지치거나 쇠한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장삼봉의 의연하면서도 굳은 기도를 보자 그만 경외심이란 걸 느끼고 말았다.

저게 되나?

무쌍패 한 번만 성공시켜도 촘촘한 구멍에 간신히 바늘을 찔러넣은 성취감과 탈력감이 드는데 오십 번 이상 펼치면서 전혀 흐트러지지 않는다고? 아무리 백전연마의 달인이라지만 저런 집중력과 오연함이 가능한가? 그것도 무량단에 버금가는 뇌섬을 상대로!

투두두둥

“으음….”

독고성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더더욱 공격의 흐름을 빠르게 했다. 여태껏 막아내는 장삼봉의 역량에 그 또한 놀라면서 초조해하고 있다는 게 보고 있는 자들에게 여실히 느껴졌다. 그리고 약 칠십여 초를 넘어갔을 때, 장삼봉의 육합전성이 차분하게 울려퍼졌다.

[독고성 그대의 검은 실전(實戰)의 굴레에 갇혀버렸으니 초월의 진경을 상대할 수 없으리라…. 그대가 지치지 않을지를 먼저 걱정해야 할 것이오.]

실전의 굴레?

“닥쳐라!”

독고성은 버럭 소리를 지른 후 갑자기 지금까지 연속공격하던 뇌섬을 거두고는 중단세로 검을 거머쥐었다. 몸의 중심에서 한 치도 떨어지지 않은 바른 자세로 장삼봉을 겨누던 독고성이 눈을 번득였다.

만승어검(萬乘御劍)

축어뢰(蹴御雷)

치지직!

독고성의 검결이 만승검결으로 바뀌며 창연한 뇌광이 검에 머물렀다. 어검술을 잘 쓰지 않는 독고성이었으나 이번에는 결판을 내려고 하는 듯 의념천주의 모든 의념을 검에 집중하는 게 느껴졌다. 잠시 후 독고성의 몸이 한 줄기 번개처럼 변하며 어검뢰와 함께 전방의 장삼봉에게 쏘아져 나갔다.

쿠콰콰쾅

전신전령을 다한 일격! 그러나 불빛이 번쩍인 후 나타난 결과는 혼절해 있는 독고성과 그의 멱살을 잡고 있는 장삼봉 진인의 모습이었다.

방금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가?

장삼봉 진인이 중얼거렸다.

“구궁천라십단금을 맞아서 경맥이 박살났는데도 검을 쥐고 있는가? 과연 검객의 귀감이군.”

장삼봉 진인은 혼절한 독고성을 잠시 쳐다보다가 우리 쪽으로 휙하고 던졌다. 내가 어기지력을 써서 독고성을 받아들자 장삼봉 진인이 뒷짐을 지며 말했다.

“나는 여와의 신력을 받은 덕에 무한의 체력과 기력이 유지되오. 그러니 본도의 걱정은 하지 말고 열심히 덤벼보시오.”

“…….”

그러나 장삼봉에게 바로 덤비는 자는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극호도 독고성도 이 자리에 모인 자들 중에서 최강급 고수라 할 수 있었는데 그들이 어이없게 무너져버렸기 때문이었다. 저 무쌍패를 깰 자신이 없다면 괜히 덤벼봐야 장삼봉에게 처절하게 패할 뿐이었다.

그러자 검마가 입을 열었다.

“백웅. 후퇴하세.”

“네? 무슨….”

“그대가 제안한대로 연속으로 장 진인에게 도전하지 않아도 된다는 규칙이 있지. 그럼 이 탑을 내려가서 충분히 쉬고 재정비하고 도전해도 된다는 뜻이 아니겠나.”

그렇게 말한 검마가 슬며시 장 진인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장 진인이 엷은 웃음을 띄며 말했다.

“작전상 후퇴도 환영하오. 언제든 다시 덤비시게.”

“후후. 너무 여유로워서 짜증나는구려….”

쓴웃음을 지은 검마가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어쩔 수 없음을 알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돌아갑시다.”

아무런 대책도 없이 무쌍패에 들이박는 건 절대로 대책이 될 수 없다. 본디 투선일 뿐인 장삼봉을 상대로라면 집중력 기력소모를 유도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여와의 도움으로 무한의 힘을 유지하는 중. 그렇다면 그의 무쌍패를 연구해서 한 번에 몰아서 통과하는 게 나을 것이다.

파앗

우리는 돌아와서 부상을 입은 극호와 독고성을 침상에 눕히고 천하오대의원들을 불러 치료하게 했다. 나는 고민하며 말했다.

“장 진인의 무쌍패는 완전무결하오. 현재로서는 뚫을 가망이 없군.”

그가 시전하는 무쌍패는 내가 쓰는 것과 비교할 수가 없다. 기술의 미진함이 전혀 남아있지 않고 모든 뇌섬에 완벽하게 반응해서 무효화시켰으며 무위전변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다. 나는 도저히 그런 경지의 무쌍패를 시전할 자신이 없었다. 무량단을 써도 아마 막힐 것이며, 내가 도전할 경우 독고성과 똑같은 양상으로 패배하게 되리라.

검마가 말했다.

“마지막에 독고성이 왜 뇌섬을 더 쓰지 않고 축어뢰를 써서 뇌신지혼을 흉내내어 덤볐다 생각하는가?”

“아마 독고성 본인이 한계였을 겁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검마의 물음에 나는 무겁게 대꾸했다.

“무쌍패보다야 시전부담이 덜하지만 어쨌든 전력을 다해서 쓰는 절기니까요. 내가 무량단을 연속으로 쓴것과 다름없다 생각하니 그의 행동이 이해가 됩니다.”

장삼봉이 계속 수비로만 일관했지만 그는 틈만 나면 독고성에게 반격을 할 틈을 노리고 있었다. 뇌섬의 흐름이 한 번이라도 끊겼다면 곧장 장삼봉이 굴공장으로 공간을 끌어들여 구궁천라십단금으로 독고성을 아작냈을 것이다.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독고성은 기력이 다하기 전에 마지막 발악으로 축어뢰를 시도해서 무쌍패를 뚫어보려 했으나 무참하게 패배한 것이다.

하지만 정말 믿을 수가 없다.

오십 번, 아니 칠십 번 이상 무쌍패를 연속으로 완벽히 성공시킬 수 있다니….

도대체 장 진인과 나 사이에 무쌍패 숙련도가 얼마나 차이가 나는 거지?

내가 황망해져 있자 검마가 말했다.

“…내가 목숨걸고 도전해도 승산은 대략 3할 5푼 정도겠군. 정말 까다로워.”

“뚫을 수 있단 말입니까?”

“글쎄. 그냥 그렇게 생각만 할 뿐일세. 독고성 또한 도전하기 전에는 자기가 장삼봉에게 이긴다고 생각하지 않았겠는가? 모두 부딪혀봐야 아는 법이지.”

“…….”

말은 저렇게 하지만 왠지 검마는 장삼봉을 상대로 구체적인 승산을 꺼냈다는 게 느껴졌다. 관전하면서 장삼봉의 무쌍패 공략법을 생각했고 뭔가 빛이 보인 게 아닐까? 그러나 자기가 실패할 경우 부담이 크기에 망설이는 듯 했다. 검마가 잠시 후 말했다.

“백웅. 현실적인 공략법과 희망적인 공략법이 있는데 뭐부터 알고 싶은가?”

“현실적인 공략법부터 듣고 싶습니다.”

“당장 천계에서 내려가서 여동빈을 데려오면 될 걸세. 여동빈은 장삼봉과 동급의 고수이니 틀림없이 이 조건이라면 장삼봉을 쓰러뜨릴 수 있겠지. 전력을 다해도 모자랄 판인데 손발 다 묶고 여동빈을 상대할 순 없을 테니까.”

“…그, 그건.”

내가 머뭇거리자 검마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 안될 일이지. 이 방법을 쓰는 순간 탐사대 전원은 형편없이 사기가 꺾일 걸세. 그리고 더 이상 탑에 도전할 이유도 못 느끼게 되겠지. 장삼봉 하나 꺾지 못하고 편법을, 그것도 검선의 도움에 의존했다는 게 자존심을 박살낼 것이네.”

“그렇겠죠.”

“희망적인 공략법은 바로 그대가 장삼봉을 공략하는 것일세.”

“제가요?”

검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머지 탐사대는 모두 장삼봉의 빈틈을 찾기 위한 버림패로 쓰는 거지. 그리고 그들이 패배하는 동안에 자네가 무쌍패 공략법을 찾아내서 결국 장삼봉을 쓰러뜨리는 것일세. 간단하지 않은가?”

“…….”

나는 침묵하다가 말했다.

“그런 단순한 방법이라면 굳이 마지막 도전자가 제가 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저와 탐사대의 실력차이가 별로 나는 것도 아닌데.”

검마, 무영검제, 진국준 등의 실력은 결코 내게 뒤지지 않는다. 그들이 마지막 순번이자 공략자가 되어도 큰 상관은 없으리라. 그러자 검마는 고개를 저었다.

“우리와 자네는 큰 차이점이 있다네. 그건 바로 무쌍패를 쓸 수 있느냐 없느냐지.”

“……!!”

“자네라면 설혹 독고성과 같은 상황이 오더라도 장삼봉의 반격에 무쌍패로 재반격해서 무조건 한 번을 버티는 게 가능해. 우리에게는 그 정도의 방어기술이 없다네. 호신강기와 무쌍패는 천지차이지 않은가? 당연히 자네가 마지막 도전자가 될 수밖에.”

“흠.”

“실전에서 그 한 번을 버티느냐 마느냐는 크나큰 차이가 있으니.”

나는 검마의 말을 이해했지만 주저했다.

“그건 그렇지만…. 그건 무쌍패를 깨는 방법이 아니라 그저 무쌍패를 마주 쓰면서 버티는 것밖에 안되잖습니까?”

“그것만으로 충분해.”

검마가 묘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어쩐지 자네라면….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분이 들어.”

“…….”

나를 기대어린 눈으로 보는 건 검마 뿐만이 아니었다. 회의장에 모인 절대지경 고수들이 약간은 의혹을 느끼지만 강한 기대감을 지닌 눈으로 날 보고 있었다. 그것은 아마도 나 또한 무쌍패를 쓸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리라.

‘으으….’

내가 정말 할 수 있을까? 분명 무쌍패를 마주 쓰면 최소한 지지는 않겠지만….

…지지 않는다?

‘음? 왠지 이게 중요한 것 같은데….’

나는 전생자의 감이 갑자기 느껴지는 걸 깨닫고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어째서 지지 않는다는 생각에 이렇게 촉이 오는 것일까? 의미는 모르겠지만 이게 왠지 장삼봉 공략에 중대한 단서가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할 수밖에요.”

“아. 그런데 잠깐 나 좀 보세. 저번에 그 일로 할 얘기가 있네.”

“네?”

“기억 안 나는가?”

그 일? 그게 뭐지?

“아 그거 말입니까….”

잘 모르겠지만 일단 아는 척 하자.

“기억해냈나 보군.”

나는 검마가 부르기에 그를 따라서 인적 없는 곳으로 향했다. 팔괘궁에서 한참 떨어진 곳으로 가자 검마가 입을 열었다.

“여기까지 왔으면 괜찮겠지.”

“할 말이 있으십니까?”

“…….”

검마가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다가 문득 육합전성을 보내왔다.

[망량이 이번 시련에 끼어들기 전에 자네가 무조건 정석적인 방법으로 장삼봉을 쓰러뜨려야 하네.]

[네? 갑자기 무슨….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육합전성을 쓰는 이유가 뭐….]

나는 대답하다말고 문득 이유를 눈치챘다. 검마가 아무렇지도 않게 육성으로 말했다.

“당연히 자네가 쓰는 무쌍패의 원리에 관한 것이지. 그걸 전에 알려주기로 했잖은가.”

“아….”

동시에 육성과는 완전히 다른 검마의 말이 육합전성으로 들려온다.

[망량은 새로운 힘을 손에 넣었네.]

나는 그의 연기에 맞춰주기로 했다. 혹시나 망량이 들을까봐 이렇게 번거로운 방법을 쓰는 게 틀림없었다.

“무쌍패의 요체는 무위전변입니다. 그건 음양의….”

나는 무쌍패를 설명하는 척하면서 반문했다.

[새로운 힘이라니 무슨 말입니까?]

검마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렇군…. 나도 무쌍패를 쓸 수 있겠나?”

[말 그대로일세. 현재의 망량은 대라신선이며 궁주이지만 평범한 대라신선이 아니야. 예전의 망량을 생각하면 큰일날 정도지.]

“우선 오랜 수행기간이 필요합니다.”

[평범하지 않다니 무슨 말입니까?]

“생각은 했지만 역시 단시간에 장삼봉을 꺾을 정도로 무쌍패를 연마하긴 힘들겠군….”

[지상에는 알려지지 않은 소식이지만 얼마 전 곤륜십이대선의 회합이 있었고 그 자리에서 곤륜십이대선 몇몇이 구천현녀에게 반역을 모의한 게 알려졌지. 그리고…….]

검마의 이어진 육합전성에 나는 얼굴이 딱딱하게 굳을 수밖에 없었다.

[그 회합 당시에 망량은 혼자서 네 명의 곤륜십이대선을 처형했네. 그들은 반항조차 변변히 하지 못했어. 망량의 그 힘을 쓰면 장삼봉의 시련을 통과할 수 있겠지만 장삼봉은 틀림없이 소멸할 것일세.]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