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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장삼봉은 내 말에 대답했다.
“당연히 싸우러 왔소. 이 탑의 수문장으로 왔다는 건 그런 뜻이 아니겠소?”
“……!!”
나는 그 말에 역시 싸워야하냐고 생각하며 나도 모르게 무기에 손을 갖다대었지만 뜻밖에 장삼봉은 살기를 전혀 발휘하지 않고 단지 옆에 있던 조그마한 소년도사에게 손짓했다. 그러자 소년도사는 어디에선가 따뜻한 차를 가져오더니 내게 내밀었다.
내가 찻잔을 받아들자 장삼봉이 말했다.
“단지 싸우기 전에 백웅 그대와 몇 마디 대화를 하고싶구려.”
“나와? 무슨 말을 하고 싶단 말입니까.”
“백웅이여. 음양(陰陽)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으시오?”
나는 장삼봉의 질문에 아무렇지도 않게 대꾸했다.
“알만큼은 알고 있습니다.”
“그럴 것이오…. 그렇지 않다면 무쌍패를 쓰지 못할 터.”
나는 눈을 꿈틀거렸다.
“어떻게 그 사실을 알고 있으십니까?”
“나는 그 동안 탐사대와 더불어 복희에게로 향하는 비밀통로인 쌍성계를 숱하게 드나들었소. 도움을 준 적도 적지 않으며 그들에게 무예를 종종 지도해준 적도 있소. 그 와중에 알게 되었소.”
“음….”
“본디 그대들과 함께 탑을 오르고 있어도 이상하진 않겠지. 허나 이유가 있어 그대들의 앞을 가로막게 되었소. 정확히는 그대 때문에.”
그렇게 말한 장삼봉이 심원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무쌍패를 만들었던 이유에 대해 알고 있소?”
“음…. 그건 무신에게 내놓은 무(武)의 극한, 그 질문의 대답이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무쌍패는 신역절기가 아니라고 생각하오?”
“……?”
응?
뜻밖의 이야기가 나오자 나는 눈을 둥그렇게 떴다. 전혀 예상치도 못한 화두가 나왔기 때문이었다. 내 최대의 관심사 또한 신역절기인 지금 상태에서 절대 무시할 수는 없는 질문이었다. 하물며 그걸 질문한게 장삼봉이라면!
‘생각도 못해봤네….’
무쌍패의 효과가 너무 좋아서 그렇게까지 깊게는 생각해보지 못했다. 나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말했다.
“신(神)의 영역에는 발을 들이지 못했기 때문…이겠습니까?”
과거 신투지존의 이공간에서 신역절기에 대해 들은 정보이다. 신투지존이 그 당시에 내게 말할 때는 무슨 뜻인지 잘 와닿지 않았지만 왠지 이게 장삼봉의 지금 질문에 대한 정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장삼봉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그대의 유한한 집중력과 체력이 받쳐주는 한 무쌍패는 원하는만큼 시전할 수 있지. 실패하면 죽는다는 건 별개로 치더라도 그건 그저 ‘기술’일 뿐이오. 그리고 인과율(因果律)을 소모하지도 않는다는 것이오.”
“…….”
“만일 무쌍패를 신역절기로 쓸 수 있게 된다면 지금의 일반적인 무쌍패와 어떤 차이가 생기겠소?”
“어… 그건….”
어떤 차이가 생기지? 나는 현재의 무쌍패에 존재하는 한계를 생각해보다가 말했다.
“지금도 웬만한 신격(神格)의 권능을 무효화시킬 수 있습니다만 최상위 신에게는 통하지 않는 것 같으니…. 절대적인 존재에게도 무쌍방어가 통한다는 이야기입니까?”
“허허허.”
장삼봉이 문득 웃음을 터뜨렸다.
“그대의 말은, 마치 이미 무쌍패를 최상위 신을 상대로 써본 적이 있는 것 같은 말이구려…. 허허! 아주 흥미롭소.”
“…….”
“허허허허.”
산하사직도의 세계에서 뇌신(雷神)을 상대로 써 봤다가 무쌍패가 처참하게 깨졌단 이야기를 굳이 할 필요가 있을까? 더욱이 장삼봉은 더 이상 대답을 하지 않았으니 신역절기 무쌍패의 명확한 효과에 대해 언급을 하지 않는 듯 했다.
‘제길. 초조하군.’
대체 우리 앞길을 막고 뭘 하자는 거야? 의도가 도저히 읽히지 않아.
나는 고민하다가 장삼봉에게 말했다.
“자꾸 이야기가 돌아가는 듯합니다. 저는 머리가 나쁘니, 제게 깨달음을 주고 싶으시다면 단도직입적으로 말씀해 주십시오.”
“앞서 말했듯 그대가 무쌍패를 쓸 수 있음은 음양의 이치를 깨우쳤다는 뜻. 그렇다면 음양의 이치로 인과율을 설명할 수 있겠소?”
“으으으윽.”
너무 어려운 개념적인 질문이라 머리에 쥐가 난다. 내가 말문이 막히자 옆에 있던 망량이 차분히 입을 열었다.
“인과란 인(因)이 있으니 과(果)가 있다는 뜻. 그러므로 인과의 인(因)이란 발산이며 시작이니 양(陽)일 것이며 과(果)는 결과이며 수용이니 음(陰)이 아니겠습니까? 음과 양은 천하만물의 이원론(二元論)이니 설명하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청산유수같은 설명이었다. 장삼봉은 그 이야기를 듣자 잠시 침묵하다가 대답했다.
“과연 과거 천하제일의 식자(識者) 다운 대답이구려. 이론상으로는 흠잡을 것이 없소.”
“이론이 아닌 실제로는 인과율을 음양으로 설명할 수 없단 말입니까?”
“그러하오. 그렇기에 본디 음양은 상호보완이며 무한의 힘을 품고있음에도 인과율의 소모를 대체할 수가 없소. 나는 좌(座)에 오른 후에야 그 사실을 알 수 있었소.”
“…….”
“다른 신역절기와 차별화되는 점이 없는 것이지.”
망량은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그러더니 말했다.
“음양이란 결국 신이 만들어낸 하위이치일 뿐이기에 한계가 있다…. 그 말을 하고 싶으신 거군.”
“그러하오.”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는?”
“나를 공략할 단서를 주기 위해서요.”
그 말에 망량은 눈을 감고는 한숨을 쉬었다.
“정녕 까다로운 분이로군….”
하위이치?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과거 뇌신과 싸웠을 때의 일이 생각났다.
[감히 천상천하를 불태우는 이 몸 앞에서 하찮은 태극 따위의 리(理)로 맞섰단 말인가? 갈기갈기 찢어죽여 주마!]
나는 나를 공격해 온 뇌신의 공격을 무쌍패로 막으려 했으나 뇌신은 아무렇지도 않게 무쌍패를 관통해서 내게 공격을 적중시켰다. 심지어 무쌍패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이야기를 했기에 그 당시에 꽤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나는 그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자 장삼봉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싶은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태극은 복희가 만든 이치이고 태극이 곧 음양. 즉… 태극은 삼황(三皇)과 대등하거나 그 이상의 존재들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는 것이다.’
그럼 태극 이상의 상위이치를 담은 무(武)가 필요하다는 것인가?
하지만 상위이치란 게 대체 뭐지?
스윽
내가 장삼봉의 말을 곰곰이 생각하고 있을 때 장삼봉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는 수련장 한가운데에 허허로운 기색으로 서서 말했다.
“백웅이여. 내기를 하겠소?”
“내기라니요?”
꾸웅
장삼봉이 마치 도발을 하듯 진각을 한 번 찼고, 짧은 진동과 함께 장삼봉을 중심으로 일 장 크기의 원이 바닥에 그려졌다.
“지금부터 모두 한 명씩 덤비시오. 단, 나는 이 자리에서 세 걸음 이상 움직이지 않으며 그대들의 공격을 방어할 것이오. 내게 일격이라도 먹인다면 그대들의 승리요.”
이어진 말에 좌중이 크게 흔들렸다.
“또한 무조건 도전자에게 세 수를 접어주지.”
“……!!”
“할 수 있겠소? 그렇지 않다면 그대들은 탑의 공략을 포기하고 되돌아가시오. 영원히.”
우우우우!!
그 순간 장내에 있던 모든 탐사대들이 가공할 기운을 뿜어내었다. 나는 그들의 기세를 느끼자 섬짓한 기분이 들었다.
하나하나가 수백 년간 절대지경의 무예를 연마해온 절세고수들!
본디 투선(鬪仙)에도 못지않을 그들에게 장삼봉의 내기 제안은 엄청나게 자존심을 건드린 셈이었다.
망량이 곤란하다는 듯 말했다.
“이런…. 무인의 자존심을 자극해 버렸군. 이로써 합공은 하기 힘들어졌소.”
“…….”
망량의 말대로다. 나조차도 방금 전 장삼봉의 말을 듣자 일대일로 장삼봉을 쓰러뜨리고 싶다는 생각이 치솟아 올랐는데 어련하겠는가? 하물며 절대지경 고수들이 이 정도로 자존심을 자극당하면 절대로 합공을 할 수가 없으리라.
‘으윽. 그래도 탑 공략인데 합공을 안 하는 건 바보짓이야….’
그렇기에 나는 혹시해서 옆에 있던 검마에게 말했다.
“검마. 그냥 우리가 모두 장삼봉 진인을 합공한다면 이 층을 지나갈 수 있을 텐데….”
아무리 여와의 신력을 얻었다 해도 장삼봉 하나를 이 전력으로 쓰러뜨리지 못할 것 같진 않다. 그러자 검마가 단호하게 말했다.
“아니될 말. 합공을 강요할 수도 없을 뿐더러 강요했다가는 이들이 더 이상 백웅 그대를 따르려하지 않을 것이네.”
“…….”
나는 뒤쪽 무인들의 눈빛을 보았다. 하나같이 호승심에 불타서 이글거리고 있었다. 검마가 중얼거렸다.
“자존심 문제는 어찌할 수 없군. 이들 모두가 내심 장 진인을 꺾고 싶어하는 것이네.”
“어째서….”
“가까이 지내왔던 만큼 그의 강함을 선망하기 때문이지.”
크윽….
나는 왠지 장삼봉이 이 탐사대의 약점을 정곡으로 찔렀다는 생각에 우울해졌다. 그냥 괴물들과 싸울 때는 아무런 약점이 아니지만, 이렇게 무인 대 무인으로 싸우는 도발을 받게 된다면 더 이상 통제력이 먹히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정말로 탐사대가 다 덤비면 장삼봉의 무쌍패를 한 번이라도 뚫을 수 있을까?
나 스스로도 궁금해질 정도다. 이렇게 많은 절대지경의 기예가 있는데 못 뚫을 리 없다는 생각과, 한편으로는 무쌍패의 절대적인 위력을 알고 있기에 암담함을 느끼는 내 자신이 있었다.
나는 망량을 쳐다보았지만 망량은 고개를 선선히 저으며 내게 영언을 보냈다.
[무인이 아닌 내가 섣불리 그들을 권위로 겁박하면 엄청난 반발만 있을 것이오. 여기선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소.]
너무 옳은 말이라서 더 이상 꼼수를 쓸 여지가 없었다. 나는 일대일 결투를 강요하는 탑의 수문장을 만날줄은 생각지도 못했기에 무척이나 떫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는 수 없군. 장 진인, 대신에 연속으로 덤비지는 않겠습니다. 충분히 당신의 무공을 연구해서 덤빌 시간을 주십시오.”
내가 탐사대의 수장으로 작전을 짤 수 있는 건 이 정도다. 장 진인은 고개를 흔쾌히 끄덕였다.
“마음대로 하시오. 어차피 급한 것은 그대들이지 내가 아니니.”
나는 이 답답한 상황에 그만 한숨을 쉬었다.
“하아…. 종말이 얼마 남지 않은 걸 아실 텐데 왜 이렇게 어깃장을 놓으시는 겁니까? 이 시련에 실패하면 종말에 대비할 수단이 사라지는 셈인 걸 모르시는지.”
“백웅이여. 시련이 꼭 나쁘다고 생각하오?”
“네?”
“시련이 늘 나쁜 것은 아니오. 시련을 겪은 자는 성장하게 마련이지.”
장삼봉 진인이 도호를 한 번 외운 후 차분히 말했다.
“여와는 지금 아무 생각 없이 그대들을 시험하는 게 아니오. 나는 여와의 제안을 받았을 때 그녀의 내면에서 숨길 수 없는 의지의 격동을 느꼈소.”
“…….”
“지금 이대로 그대들이 이 탑을 모두 올라 복희와 여와를 만난다 해도 그들이 원하는 기준을 충족시키기는 힘들 수도 있소. 아니, 남은 탑의 수문장을 이겨내지 못할지도 모르지. 그렇기에 더 이상 올라가기 전에 내가 그대들에게 더 높은 힘을 얻을 단서를 주려는 것이오.”
“무쌍패를 뚫으면 그게 가능하단 말입니까?”
“너무 말이 많았구려. 이미 시련은 시작되었소.”
불끈
장삼봉 진인이 마치 도발하듯 자신의 주먹을 힘줄이 보일 정도로 새빨갛게 말아쥐며 우리 쪽으로 들이밀었다.
“그대들이 무인이라면 자신의 무예로 말하시오!”
“……!!”
파밧!!
그 순간 장삼봉 진인에게로 번개처럼 달려든 것은 바로 한 줄기의 핏빛 번개였다.
절대지경
천광혈뢰(天光血雷)!
‘극호!’
제일 먼저 장삼봉에게 도전한 것은 바로 극호였다. 극호가 성취한 절대지경인 천광혈뢰는 뇌신지혼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고, 속도와 더불어 강대한 공격력을 품고 있는 경지였다. 핏빛 번개가 방천화극과 함께 뿜어져 나오면 기존의 뇌신지혼 시전자가 펼쳐내는 일격보다 훨씬 강한 공격을 하는 게 가능했다.
이른바 뇌신지혼의 속도보다는 조금 느리지만 공격력을 높인 절대지경!
느리다고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뇌신지혼을 감지할 수 있는 절대지경 기준에서 느리다는 것이지 어차피 초절정고수들은 극호의 뇌화속도에 대응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수백 년간 수련을 쌓아왔으니 현재의 극호는 단연 투선급이라고 해도 무방했다.
꽈과광!!
극호의 방천화극은 장삼봉 진인의 미간에서 고작 세 치 떨어진 곳에서 막혀 있었다. 방천화극을 막은 것은 장삼봉 진인의 쫙 펴진 일 장(掌)이었고, 극호가 눈썹을 꿈틀거리며 말했다.
“칠대절학 굴공참…? 아니 굴공장법인가. 무쌍패를 왜 쓰지 않았소?”
“아까 한 마디 하는 걸 잊었구려.”
장삼봉 진인이 아무렇지도 않게 한 말에 극호가 크게 분노한 표정이 되었다.
“이 조건에서 내 무쌍패도 끌어낼 수 없는 실력이라면 그냥 탑을 내려가는 게 나을 것이오.”
“뭣…!!”
파지직!!
철저한 도발에 극호는 갑작스럽게 전신을 크게 뇌화시켰다. 뇌신지혼 시전자가 쓰는 특유의 번개빛이 아닌, 완전히 피빛으로 물든 번개인간으로 변한 듯 했다. 나는 평소에도 극호가 싸우는 걸 봤는데 극호가 저렇게까지 붉게 물드는 건 처음 봤기에 관전하다가 중얼거렸다.
“저건 뭐지?”
“진원진기를 모두 끌어쓰는 천광혈뢰일세. 극호가 정말 위험할 때만 쓰는 거고, 나도 그와 함께 쌍성계를 공략하면서 한 번밖에 못 봤네. 동귀어진의 술수지.”
검마의 말에 나는 흠칫 놀랐다.
“뭐라고요? 그럼 생명이 위험….”
“그 정도 각오도 없이 이길 상대는 아니잖은가.”
검마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저걸 쓰면 본디 천광혈뢰가 뇌신지혼보다 느리다는 제약을 일시적으로 부술 수 있네. 이른바 강화된 뇌신지혼이지. 이번 대결을 잘 봐야할 걸세.”
끼잉 -
갑자기 극호의 몸이 기이한 소리와 함께 물결처럼 일렁이더니 완전히 사라졌다. 하지만 사라졌다는 건 그저 시각에서 사라진 것일 뿐 실제로는 의념천주로나 감지할 수 있는 극순의 세계에서 뇌신지혼을 연상시키는 속도로 움직이고 있는 중이었다.
‘맴돌고 있다.’
진짜 말 그대로 번개의 속도! 나는 긴장해서 손에 땀을 쥐고 쳐다보았다.
‘이제 들어가는가?’
번쩍!
잠시 빛 그자체가 돌풍을 일으키는 것 같더니 기하학적으로 꺾인 번개의 선이 먼저 시야에 나타나고 뒤늦게 소리와 결과가 눈앞에 나타났다. 마침내 극호가 극대화된 천광혈뢰를 써서 장삼봉에게 일격을 가한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기이했다. 장삼봉의 몸과 극호의 몸 주변에 한 순간 교차하는 듯하더니 서로 투과하듯 스쳐 지나갔다. 장삼봉이 나직이 2초라고 하는 말이 들렸고, 다시 한 번 극호가 천광혈뢰로 장삼봉의 심장을 노렸다.
방천화극이 진동한다. 그리고 그 진동의 끝이 장삼봉의 심장 바로 앞까지 도달했으나 어째서인지 더 이상 나아가지 못했다. 장삼봉의 눈이 빛났다.
“접어주는 건 끝났소.”
콰과광!!
“커헉…!!”
수련장의 벽에 극호가 날아가서 처박혔다. 그 찰나의 순간에 장삼봉 진인이 시전한 칠대절학의 합체기(合體技)인 삼절무극장(三絶無極掌)에 반격당한 것이었다. 너무 완벽한 반격이라서 극호는 삼절무극장에 일격을 맞은 순간 그대로 기절한 것으로 보였고 힘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장삼봉 진인이 손을 털며 말했다.
“죽일 생각으로 손을 썼는데 살아있다니 과연 극호의 실력은 뛰어나구려.”
“…….”
나는 그 광경을 보며 멍하니 서 있다가 중얼거렸다.
“이럴수가….”
“백웅. 그대도 알아챘나?”
“말도 안 돼.”
나는 앞으로 한 걸음을 성큼 걸어간 후 장삼봉 진인에게 외쳤다.
“장 진인!! 설마 절대지경을 또 하나 성취했단 말입니까!”
틀림없다. 방금 전 무쌍패도 쓰지 않고 그냥 일반 기술로 극호를 격퇴한 것처럼 보였지만 지금의 내 안목은 그게 아니란 걸 간파한 것이다. 장 진인은 그 순간 모종의 권능과도 같은 새로운 절대지경의 기술을 사용해서 극호의 뇌속을 완벽하게 반격하는데 성공한 게 분명했다.
그러자 장삼봉 진인이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건 없소. 잡스러운 절대지경으로 뇌신지혼을 타파할 수 없음은 알고 있을 것이오.”
“방금 분명히 의념천주가 이어졌습니다. 그게 무쌍패가 아니라면 다른 기술을 쓴 게 분명….”
“그럼 백웅 그대는 내가 어찌 반격했는지 원리를 알고 있소?”
“큭, 그건….”
사실 뭔가 있었다는 건 알았지만 그 원리까진 일견에 살필 수 없었다. 내가 낭패스러워하자 장삼봉 진인이 태극권의 기본자세를 잡으며 말했다.
“자아, 성이 풀릴 때까지 덤벼 보시오. 그걸 알아내는 것 또한 재미일 것이오.”
“…….”
그 때였다.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탐사대 중 한 명이 불쑥 입을 열었다.
“태극(太極)이다, 백웅.”
“응?”
“의념부터 봐라. 무공의 위력만 보고 있으면 저 놈의 진짜 실력을 못 본다.”
장내의 시선이 그에게로 쏠렸다. 등 뒤에 한 자루의 검을 빗겨 차고 있던 자가 말했다.
“장삼봉, 네가 나보다 고수인 건 인정하지만 너무 잘난체하는군. 여동빈은 안 그랬다.”
장삼봉 진인은 그와 구면인지 허허로운 웃음을 지으며 대꾸했다.
“이번에는 그대가 덤벼볼 것이오?”
“당연하지.”
우웅 -
그가 검을 서서히 뽑자, 검의 날이 새하얀 번개로 뒤덮여 있었다. 강철이 사라지고 오로지 번개 그 자체인 뇌검이 손에 들려있는 듯 했다. 그는 장삼봉의 일 장 거리까지 와서 장삼봉에게 검을 겨누며 말했다.
“내 검이 뇌신지혼보다 빠르다는 걸 증명할 기회니까.”
뇌신검무(雷神劍舞)
세계베기(世界斬)
다음 순간 -
독고성(獨孤星)의 일검이 장삼봉의 목줄기를 갈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