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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1123화 (1,120/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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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나는 선검을 덧씌운 채로 그대로 검격을 바위에 날렸다.

까앙!

“…음!”

나는 침음성을 흘렸다. 지금 수행에 쓰는 건 칠요가 아닌 보통의 철검이니, 철검과 바위가 부딪히면 이런 소리가 나는 건 사실 당연한 일이다. 검으로 바위를 베는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최소한 검기를 쓸 수 있는 수준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상한 일이다. 나는 선검을 이용해서 일시적으로 의념을 없앤 상태가 되었으나, 의념을 제외한 기(氣)는 여전히 검에 맴돌고 있다. 비록 검기처럼 정련된 기세는 아니지만 이만한 기력을 머금고도 바위를 베지 못하다니?

내가 의혹어린 눈을 하고 있자 옆에서 보고 있던 아수라가 말했다.

“보다시피 의념을 ‘없앤’ 상태에서는 무력(無力) 그자체가 된다. 기도 의념도 못 쓰는 평범한 칼이 되는 거지. 이 상태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암야참을 제대로 쓰기 위해서는 하나의 과정이 더 필요해.”

“의념을 없앤 걸로 끝이 아니라고?”

“그래.”

“설마 없앤 후 다시 의념을 생성해서 의념을 증폭시키는 건가!”

내가 나름대로의 추측을 하자 아수라가 머리를 긁적였다.

“의념은 좀 잊어버려. 그렇게 할 거면 뭐하려고 삽질을 하면서 의념을 없앴겠냐고. 처음부터 그 범주를 벗어나야 한다.”

“…그럼?”

“‘고리’ 그 자체를 역으로 돌리는 거지. 처음부터 역륜(逆輪)이라고 말했잖냐.”

“……?”

“다시 한 번 보여주지. 잘 봐.”

즈으응 -

아수라가 검을 새까맣게 만들었다. 그리고는 아무런 감정 없는 투명한 눈으로 말을 이었다.

“원래는 ‘고리’를 인식해야 한다. 근데 넌 선검을 이용한 편법으로 의념을 없앴잖냐. 그래서 이 설명을 해봤자 지금 네가 알아먹지는 못할 테지만 어쨌든 중요한 건 그거야. ‘고리’를 인식하고, 그 굴레를 역으로 돌리는 것.”

스윽

아수라는 잠시동안 호흡을 멈추었다. 그리고 호흡을 멈춘 사이에 그의 신체가 완전한 조화를 이루었으며 더할 나위없이 완벽한 자세를 갖췄다. 무(武)를 수천 년간 연마해온 자의 경험이 그대로 배여나오는 그 자세에 나도 모르게 경탄했고, 다음 순간 아수라가 일참을 날렸다.

“합.”

스겅

바위는 마치 절단면이 유리처럼 베여나갔다. 웬만한 고수라면 대개 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아수라가 지금 내게 물리적인 파괴력을 보여주려고 시연한 건 아닌 듯 했다. 아수라는 차분하게 검을 수발하며 말했다.

“상대가 팔부신중급 마왕의 본체라면 본디 바위를 베는 검강 따위로는 모기물린 상처도 낼 수 없지. 대충 온라인게임처럼 비유하자면 검강의 공격력이 500이라면 마왕의 방어력은 최소한 1천을 넘고 체력은 1만이 넘거든. 우주적으로 강력한 마왕이나 사도라면 그것보다 몇 배는 강할 때도 있지. 맨몸조차 어찌할 수 없어.”

“흠.”

“절대지경의 의념천주를 이용한 절기라면 쉽게 방어력을 넘어서 상당한 체력을 없앨 수 있겠지만 마왕에게 치명상을 입히기 전에 의념소모가 심해서 본인이 먼저 죽기 일쑤다. 인간과 마왕 사이에 체급의 차이가 너무 크니까. 그리고 재수없게 마왕의 특성이 철벽방어나 반격 쪽이라면 절대지경조차 벌레처럼 죽기도 한다.”

나는 머리를 벅벅 긁었다.

“…게임이라. 난 게임을 안 해서 잘 와닿지가 않아.”

“아, 그렇겠군. 난 게임 좋아해. 큭큭.”

아수라가 히죽 웃었다.

‘뭐 그래도 대충 그런 느낌이지.’

500이나 1000이니 하는 숫자에는 그다지 공신력이 없어보이지만 체감적으로는 대충 아수라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여태껏 봐 왔던 절대지경과 마왕의 전투는 대강 그런 느낌이었던 것이다. 내가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아수라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암야참이라면….”

후웅!

그 순간 알 수 없는 위압감이 아수라의 전신에 몰아쳤고 나는 그 위압감에 나도 모르게 움찔하고 말았다. 나조차도 압도할 정도의 가공할 기백과 살기가 아수라의 일검에 맺혀 있어서 그 검극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마왕이나 사도의 방어력을 완전히 무시하고 피해를 줄 수 있다.”

뜻밖의 말에 나는 눈을 둥그렇게 떴다.

“뭐?! 그게 가능하냐.”

“그래. 심지어 마왕의 속성이나 상황에 따라서는 웬만한 절대지경 절기보다 더 심한 추가피해를 줄 수도 있지. 암야참은 ‘그런’ 기술이니까.”

“……!!”

엄청나다!

그 동안 절대무인들이 마(魔)와 맞서 싸우면서 처절한 사투를 벌이는 걸 보아왔던 나로써는 아수라의 말에 흥분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주먹을 불끈 쥐며 외쳤다.

“그, 그렇다면 암야참이 최강의 절대지경 절기가 아니냐! 마왕에게 그 정도 피해를 줄 수 있다면!”

아수라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전혀 그렇지 않아.”

“엉?”

“백웅. 이해를 잘 못했나 본데….”

자신의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던 아수라가 한숨을 쉬었다.

“암야참을 절대지경과의 전투에서 써 봐야 그리 강하지가 않아. 칠대절학이나 팔선신공 하나하나랑 비교해도 비기는 게 고작일걸. 절대지경 독고성의 검뢰를 상대로도 질 확률이 높다.”

“뭐라고? 대체 왜….”

“이건 혼돈과 태허의 속성을 파고든 기술이기 때문이다. 같은 무(武)의 영역에서는 당연히 최강을 논하기엔 절대적으로 무리가 있지. 아니 좀 쳐질지도….”

“…….”

“뭐 아무튼 나중에 암야참을 제대로 쓸 수 있게 되면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될 거다. 딱 까고 말해서 이건 어떤 의미로 무(武)를 제멋대로 해석한 거니까.”

나는 아수라의 말에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왠지 나중으로 다 떠넘겨 버리는 것 같은데. 그냥 지금 가르쳐주면 안 되냐.”

“지금 가르쳐줘도 모르잖아.”

“아니 그게….”

아수라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럼 뭐라고 말할까? 그게 아니면 네 재능이 병신같다고 타박하는 소리밖에 할 말이 없다구. 나 좀 친절하다고 생각했는데.”

“…….”

“가끔은 널 가르치는 스승 입장도 좀 생각해 줘라. 성장시키려고 다 생각하고 있으니까 스승 좀 믿어 봐.”

왠지 할 말이 없다….

“암야참은 최강의 절기도 최고의 절기도 아냐. 단지 특수한 상황에 맞춰서 쓸 수 있는 기술(技術)이다. 그 점을 잊지 말고 암야참에만 의존하지 않도록 해.”

“아, 알았어.”

“좀 더 알아먹기 쉽게 요체를 설명해 주지. ‘고리’라는 건 의념이 존재하는 한 역회전시킬 수가 없는 성질이 있다.”

나는 아수라의 설명에 뭔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 그래서 일단 의념을 없애는 건가?”

“그렇지. 이해했군.”

“근데 왜 그런 성질이 있는데?”

“나도 몰라~ 난 수련하는 도중에 우연히 그 고리를 역회전시킬 때 재밌는 현상이 나오는 걸 발견한 거다.”

“…….”

“그걸 알면 난 이미 신이라도 베고 있겠지.”

조소하듯 중얼거린 아수라가 말을 이었다.

“고리를 역회전시킬 때 모든 혼돈을 허무(虛無)의 영역까지 되돌리는 ‘끈’이 생겨난다. 암야참이란 건 그 한 순간에 집중해서 적에게 일참(一斬)을 때려박는 기술이야. 이제 좀 이해가 됐냐?”

“그 ‘끈’이라는 게 나처럼 선검(仙劍)을 덧씌운 상태에서도 만들 수 있는 건가?”

“나는 너처럼 선검을 써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만, 일단 시도해보지 그래?”

“…….”

아수라에게도 미지의 영역이란 거군.

‘차라리 이게 낫지.’

스승한테 다 배우는 게 아니라 나 혼자서 뭔가 알아가는 것 또한 재밌으리라. 나는 약간 기대와 호기심을 품은 채 다시금 선검을 덧씌워서 검을 새까맣게 만들어서 의념을 없앴다. 그리고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해서 ‘고리’를 인식하려고 했다.

‘고리… 고리라는 게 있냐….’

어.

희미하게 느껴진다.

정신세계 머나먼 곳에서 잠시동안 둥그런 원 같은 게 비쳐보인 듯 했다. 나는 그 원이 아마 륜(輪)일거라고 생각해서 정신을 집중해서 고리를 거꾸로 돌리려고 했다.

우우웅!!

아주 미세하게나마 움직인다. 그리고 나는 그 바퀴가 거꾸로 돌아가면서 점차 내 검에 덧씌워져 있는 선검의 기운이 바퀴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현상을 목격했다. 한참동안 그렇게 바퀴가 거꾸로 돌아가다가 선검의 기운이 완전히 다 빨려들어갔을 때, 갑작스럽게 바퀴가 빛났다!

쩌엉

다음 순간 나는 정신집중이 풀리고 현실세계로 돌아온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내 앞에 있던 바위가 세로로 쩍 갈라진 것을 알 수 있었다.

옆에서 보고 있던 아수라가 손뼉을 쳤다.

“잘 했다. 암야참을 처음으로 썼군.”

“…이, 이게 암야참?”

“그래.”

“너무 별 거 없는데….”

나는 다소 실망스러워서 중얼거리다가 뭔가 깨닫고 말했다.

“그, 그리고 네가 말했던 ‘끈’같은 건 느껴지지 않았어. 그냥 선검의 힘이 ‘고리’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것만 느껴졌다고.”

“흐음. 역시 그런가.”

“역시? 뭔가 알고 있는 거냐.”

“아까 말했던 것의 연속이지. 넌 선검의 인과율을 이용해서 억지로 ‘고리’를 인식한 후 역회전시킨 거다. 그래서 끈을 인식하지 않아도 암야참을 쓸 수 있는 거고.”

“오….”

아수라가 왠지 투덜거렸다.

“참 선검이란 건 대단하군. 난 ‘고리’를 움직인다고 수십 년 동안 개고생했는데 그런 편법이 가능하다니.”

그런 건가?

내가 신기해하고 있을 때 아수라가 충격적인 말을 했다.

“뭐 그럼 암야참 수련은 여기까지 하자. 그 동안 수고했으니 이만 하산(下山)하도록.”

“……!?”

“사공린 찾아가서 천계나 가 봐. 나는 그럼 하던 일 하러….”

나는 당황해서 아수라에게 외쳤다.

“잠깐!”

“왜 그래?”

“이제 본격적인 수련 아니냐?! 여기서 무슨 수련 끝이야!”

어이가 없다. 수련흐름상 여기서 좀 더 빡세게 지옥훈련을 해야하는 거 아닌가?! 그러자 아수라가 흠, 하고 자신의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치만 수련을 더 하면 할수록 넌 암야참을 쓰기 힘들어지잖아. 수련은 지금 해 봤자 해만 된다.”

“응?!”

“진짜 이해를 못 했군. 선검을 이용한 편법으로 암야참을 쓸 수 있다는 건, 달리 말하자면 선검이 다 소모되면 넌 암야참을 못 쓴다는 거야. 그렇다고 해서 지금 당장 네가 하루이틀의 수련으로 암야참을 정식으로 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당장 미호의 사정은 하루가 급한 상황 아니냐?”

“…….”

“이 상황에서 억지로 훈련한답시고 암야참 사용횟수를 줄이는 건 멍청한 짓이지.”

맞는 말 같았다.

‘뭐 어쨌든 편법으로나마 암야참을 쓸 수 있게 된 게 성과인가….’

이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럼 천계에 갔다오면 제대로 수련시켜 주는 건가?”

아수라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일단 살아서 갔다와라.”

“알았어!”

“아 그리고 원을 그리는 수련은 계속 하고, 선검을 아껴라. 천계에서 암야참을 쓸 수 있는 횟수는 제한되어 있다는 거 잊지 말고.”

파앗

나는 아수라의 비밀기지에서 나와서 주현성 등이 있는 수련지로 향했다. 천계에 가기 전에 일단 만날 수 있는 사람은 다 만나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잠깐 들렀다 갈까.’

이번에도 전뇌자가 수를 썼는지 그들은 내가 그 동안 자리를 비웠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했다. 나는 주현성에게 말했다.

“새삼스러운 질문인데….”

“네?”

“이번에 미호와 싸우면서 좀 다쳤을 텐데 부상은 괜찮나? 겉보기는 멀쩡한데 내상은 없나.”

아닌 게 아니라 주현성이 미호와 요괴왕의 전투에 휘말렸을 때 수십 리를 날아갔고 그 때 꽤 부상을 입었으리라. 그러자 창술을 수련하고 있던 주현성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폐하께서 치료해주신 덕에 다 나았습니다. 하지만 인공보패 마룡쇄가 다 부숴져서 수리를 하는 중입니다.”

“고칠 수 있겠어?”

“글쎄요. 더 강력하게 개조해준다고 하기에 기대하는 중입니다.”

그렇게 말한 주현성이 뜬금없는 말을 했다.

“괜찮으시다면 류하와 한 번 만나주실 수 있겠습니까?”

“류하를? 왜?”

“그 녀석이 어느 날 수련장에 찾아와서 제게 부탁을 하더군요. 폐하에게 꼭 직접 하고싶은 말이 있다고….”

“흠, 류하는 어딨는데?”

“소림사 대웅전에….”

타닷

나는 주현성이 알려준 곳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수련장을 벗어나서 이윽고 소림사의 대웅전까지 들어왔고, 거대한 기둥이 가득한 불전의 한가운데까지 오게 되었다. 기이한 것은 이렇게 넓은 대웅전인데 인기척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 때였다.

“오효효효~ 초대황제님 오셨네~.”

류하의 발랄한 목소리와 함께 맞은 편에서 안경을 낀 류하가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팔짱을 끼며 말했다.

“류하. 뭐 하러 귀찮게 소림사의 심장부까지 와서 만나자고 한 거냐? 무슨 중대한 할 말이 있어서 수련하는 나를 귀찮게….”

류하가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우후후~ 땡땡이 치셨으면서.”

“…….”

그 말에 나는 약간 머리털이 쭈뼛 서는 걸 느꼈다. 말에 뼈가 들어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이 녀석 전뇌자의 기술을 간파한 건가?’

스읏

그리고 류하가 입을 열자,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갑자기 내 눈 앞에 반투명한 창이 뜨면서 류하의 말이 글자로 보였다.

[양자전정(量子剪定, Quantum pruning)으로 만들어낸 가지치기(pruning)는 초상기인인 저한테는 다 시각화(visualization)되어서 보임다~ 초상기인한테는 그 기술이 안 통함다.]

“……!!”

[저번에 수련장 찾아갔을 때 알아챘슴다~]

이, 이 녀석은 내가 몰래 아수라 밑에서 수련을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는 건가?

그렇다면 류하가 이미 천마 사공린에게 보고를 했다는 건가?!

내가 애써 표정을 관리하려고 할 때 류하가 마치 내 마음을 읽은 듯 다시 한 번 글자를 띄웠다.

[폐하나 대장한테는 아무 말도 안 했으니 걱정 마시란 검다~]

“너는….”

[혹시 도청이나 감시당하고 있을까봐 일부러 레이필드 VR기술로 보여드리고 있슴다~ 원격 VR 기능을 적용할테니 생각을 글자로 써보는 검다~]

이윽고 나는 내가 생각한 걸 상태창에 글자로 쓸 수 있다는 걸 알아챘다. 류하의 방법은 설령 전음조차 읽을 수 있는 자가 이 자리에 있다고 해도 도청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육합전성을 읽을 수 있는 존재라 해도 이런 방식으로 의사를 교환하는 건 절대로 알 수 없으리라.

[류하. 원하는 게 뭐냐? 왜 내가 자리를 비운 걸 사공린에게 보고하지 않은 거지?]

[그거야….]

내 질문에 류하가 아무렇지도 않게 대꾸했다.

[류진 때부터 대웅제국의 초상기인이 진짜 충성을 바치는 건 천마가 아니니까 말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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