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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나는 사공린의 말에 의아해서 말했다.
“복희? 복희에게는 왜.”
여와의 조각인 미호의 정체성 문제를 복희가 고쳐줄 수 있다는 말인가? 내 의문에 사공린이 대답했다.
“복희와 여와는 남매입니다. 또한 위대한 술법의 종사이니 뭔가 방법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흠.”
“그리고, 지금 은거하고 있는 서왕모를 찾아가려면 어차피 천계에는 한 번 들러야 하지요. 그녀를 만나서 직접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겁니다.”
“천계 탐사대에 참가하는 건 필수라는 거군.”
“그래요.”
사공린이 힐끔 미호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천계라면 지상보다 체류하는데 인과율이 덜 소모될 테니 미호 님과 함께 가도 좋겠지요.”
“미호, 괜찮겠어?”
나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미호를 봤다.
“흉신의 저주 때문에 서왕모의 힘이 크게 약해졌다고 해도 그래도 서왕모는 서왕모이고 여와의 가장 강력한 화신이야. 그런 녀석과 직접 대면하는 건….”
“가겠다.”
미호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앞으로도 영영 네 동료가 될 수는 없을 터이니, 이번 생의 내 목숨을 아낄 수는 없느니라.”
“…알았어.”
우웅
잠시 후 미호의 신형이 흐려지기 시작했고, 그녀가 내 손에 하나의 곡옥을 쥐어주었다. 내가 손바닥 위의 곡옥을 쳐다보자 미호가 말했다.
“지상에 오래 머물기에는 인과율이 부족하니, 내 증표이자 화신인 곡옥을 네게 주겠다. 거기에 신력이나 제물을 바치면 다시 소환될 것이다.”
“이제 광증은 괜찮은 거지?”
“그래. 달기는 심층으로 가라앉았으니 당분간은 괜찮다…. 나중에 천계에서 보자꾸나.”
파앗!
말이 끝나자 미호의 모습이 사라졌다. 나는 그녀가 사라지자 사공린에게 말했다.
“사공린! 정말 천계로 가면 방법이 있겠나?”
“무리죠.”
“……!!”
왜 말이 달라?! 사공린은 그렇게 말하고는 손짓을 했는데 그러자 사방에 황금빛이 은은하게 퍼져나갔고, 사방에 파괴되어 있던 지형지물들이 서서히 원상복귀되었다. 또한 부상을 입은 자들도 상처가 회복되는 게 육안으로 보였다.
‘굉장하군.’
신이나 다름없는 그 힘에 내가 놀라고 있을 때 사공린이 말을 이었다.
“백웅. 전에 들어서 상황은 알고 있지요? 흉신이 삼황오제에게 저주를 내려 공멸한 이후 오제 모두가 행적이 묘연해지거나 소멸되었고, 삼황 또한 큰 피해를 입은 걸로 보입니다. 그 누구도 자기 상황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여와의 화신인 서왕모는 전성기의 무한한 힘을 잃고 구천현녀에게 크게 밀릴 정도로 약화되었죠.”
“그 얘기는 들었어.”
내가 실종된 후 구천현녀가 서왕모를 설득하여 은거시킬 수 있었던 이유. 그것은 본디 구천현녀가 전력을 다해도 이기기 힘든 서왕모의 강대한 힘이 크게 줄어서 절반 이하가 되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서왕모가 소멸하지 않은 걸로 보아 여와가 흉신의 저주에 소멸한 건 아니지만 굉장히 큰 피해를 입었다는 뜻인 것이다. 그리고 약화된 서왕모는 어쩔 수 없이 천계의 지배권을 구천현녀에게 넘기고 천계의 궁에 은거하게 된 것이었다.
“서왕모는 약화된 후 그 어떠한 대외활동도 하지 않고 칩거중입니다. 구천현녀 정도 되는 존재가 아니면 서왕모가 만들어낸 결계 안으로 누구도 못 들어가기에, 방금 전에는 서왕모를 만나보면 되겠다 말했지만 만나줄지는 의문입니다.”
“그러면 천계탐사대와 함께 복희를 찾는 것도?”
“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가는 거죠.”
“…….”
“하지만 희망을 버리기는 이르겠죠. 어쩌면 서왕모가 미호에게 반응해서 이야기를 하려 들지도 모르고.”
나는 해결된 게 아직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미호의 광증은 제압했지만, 그 원흉이 되는 건 달기와 미호의 상하관계. 영혼의 인과율 그 자체를 끊어내는 능력이 없다면 미호는 앞으로 내 전생동료가 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답답한 마음에 한숨을 쉰 후 말했다.
“알았어. 그럼 조금 준비할 시간을 줘. 천계로 가기 전에 좀 더 대비를 해야겠어.”
“그렇게 하십시오. 이곳은 제가 정리할 테니 마음대로 움직이시길.”
“고마워.”
파앗
나는 바로 비등을 써서 드라큘라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드라큘라에게 가서 질문했다.
“드라큘라! 물어볼 게 있다.”
자스민 차를 마시고 있던 드라큘라가 대꾸했다.
“또 뭐냐?”
“만일에, 본체와 꼬리의 종속관계인 상태에서 꼬리가 본체를 먹는 게 여의치 않다면 무슨 방법이 있겠냐?”
드라큘라가 눈에 이채를 띄었다.
“…이건 또 흥미로운 얘기를 갖고 왔군. 말해 봐라.”
나는 드라큘라에게 미호의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이야기를 끝까지 들은 드라큘라가 자스민 차의 마지막 한 모금을 쭉 들이키더니 말했다.
“내가 오랜 시간 [옛 지배자]의 사도로 있었기에 혹시나 비슷한 경험이나 지식이 있는지 물어보러 온 거군.”
“그래.”
뽕 하는 소리와 함께 드라큘라가 옆에 있던 와인의 병을 땄다. 와인을 유리잔에 따른 드라큘라가 다시 한 모금을 마셨다.
“흐음. 미호의 상황은 내가 들어봤던 것 중 제일 재밌어. 이건 마치 우로보로스의 뱀같은 상황이야.”
“우로보로스의 뱀?”
그건 또 뭣이다냐?
내가 어리둥절해서 놈을 쳐다보자 드라큘라가 말했다.
“[미드가르드의 뱀]이라고 불리는 신화시대의 마수(魔獸)가 자기자신의 꼬리를 물고 있는 형상을 그렇게 부른다. 그 마수는 뱀의 형태인데 자기의 꼬리를 물고 있으니, 동그랗게 말린 형상이 되지.”
“…….”
“상상해봐라. 과연 뱀이 자기 꼬리를 다 삼키면 어떻게 되겠나?”
뭐, 뭐야. 그런 경우도 있나? 뱀이 자기 꼬리를 삼킨다고?
나는 황당한 이야기에 잠시 고민했다. 그리고는 말했다.
“다 못 삼키잖아….”
“왜?”
“그…. 꼬리도 자기자신이니까.”
드라큘라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런 이야기다. 꼬리와 본체의 관계란 바로 그런 것이야. 머리가 꼬리를 먹으려 해도 절대로 다 못 먹게 되어 있는데, 하물며 꼬리가 머리를 먹는 게 가능하겠나?”
“으음!”
“그래서 미호가 달기를 온전히 흡수하는 건 불가능했고 또한 달기가 미호의 정신을 몰아내버렸던 거다. 왜냐하면 머리가 꼬리를 지배하는 게 순리이기에.”
나는 바로 이해가 되었다. 역시 사도이기 때문인지 제일 직관적인 이해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드라큘라에게 말했다.
“그래도 뭔가 방법이 없겠나?”
“즉 내게 꼬리가 머리를 먹을 방법을 알려달라는 거군. 그렇다면 가장 간단한 방법은 하나다.”
“뭐지?”
“미호가 머리로 인정받으면 돼. 여와라는 창조주에게 미호가 달기와 대등한 존재라는 걸 인정받는 것이다. 아마 미호나 사공린도 그걸 염두에 둔 거겠지. 꼬리는 머리를 먹을 수 없어도 머리는 머리를 먹을 수도 있으니.”
“끙…. 하지만 그건….”
“힘들겠지. 그래서 그 외의 방법은 없을지 고민하다 날 찾아온 것인가?”
“그래. 정석적인 방법 말고 다른 건 없겠어?”
“정말로 극단적인 방법이라면 또 하나 있긴 한데.”
“있다고?”
나는 그 말에 솔깃해서 드라큘라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이어진 말에 눈을 크게 떴다.
“사도로써의 의견이다. 방법은 미호가 서왕모도 죽여서 흡수하는 거다.”
“……!!”
“차라리 이게 나아보이는 걸.”
나는 버럭하고 화를 냈다.
“미친소리! 그게 무슨 방법이야?! 달기도 흡수하지 못해서 그 사단이 났는데 어떻게 서왕모를….”
“다르지. 왜냐하면 여와는 태초에 자신의 음신인 달기를 떼어내서 버린 셈이고, 그 이후에 새롭게 만든 화신이 바로 서왕모다. 즉 힘은 서왕모가 달기보다 강할지 몰라도 미호와 달리 인과에는 종속성이 없다.”
“…….”
“그러므로 서왕모를 죽여서 그 힘을 기신 미호가 흡수할 경우, 완전히 새로운 힘으로써 흡수되기 때문에 도리어 달기를 완벽하게 제압할만한 균형의 추가 된다는 거다.”
흠 그런가?
“하지만 그런다고 사태해결이 완전히 되진 않잖아.”
“그래. [우로보로스의 뱀]이라 할 수 있는 종속관계는 해결되지 않으나 억지로 저울추를 올려서 달기를 찍어누르는 것이다. 불안요소가 없진 않겠지만 이번처럼 미호가 반격당하는 일은 거의 없지 않겠는가.”
“흐음….”
“서왕모가 죽는다 해도 여와는 절대 전면에 나서지 못하겠지. 도리어 강력한 화신을 잃어버린 부담으로 더더욱 약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나는 드라큘라의 말을 듣고 있자니 점차 빠져드는 걸 느꼈다.
‘그래…. 서왕모를 살려둘 필요는 없잖아? 그것도 미호의 부담을 감수하면서.’
서왕모가 내게 소중한 동료도 아니고, 여태껏 전생하면서 어깃장이나 잔뜩 놓은데다가 주는 것 없이 날 미워하기만 하는 놈이다. 서왕모를 죽이는 데 있어서 내게 양심의 가책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드라큘라가 훗하고 웃으며 말했다.
“미호의 반감을 억누르고 설득해서 창조주인 서왕모를 죽이는 선택. 기신 미호의 현재 힘에다가 너와 사공린의 힘을 합치면 그리 불가능한 것도 아니겠지.”
“…….”
“선택은 그대의 몫이지만 나중에 천계 서왕모의 앞에 간다면 이 선택지도 있다는 걸 알아두시길.”
어째서일까?
전생자의 직감인지는 몰라도, 이 순간 내게 새로운 선택지가 생겼다는 게 여실히 느껴졌다.
“…알았다. 상담 고마워.”
“그럼 나중에 보지.”
파앗
나는 아수라에게 갔다. 그리고 아수라에게 흑요석을 주었고 아수라는 이번에 있었던 일을 모두 살펴본 후 말했다.
“이번엔 천계에 가서 복희를 찾는 여정이 되겠군. 사실 그게 주가 될 것이고 미호의 일은 곁가지가 될 것이다.”
“뭔 소리야. 미호의 일도 중요해.”
“…….”
아수라는 대꾸하지 않고 뭔가를 신중하게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더니 말했다.
“백웅. 뭔가 세계의 흐름이 달라진 게 느껴진다…. 너는 그게 느껴지지 않나?”
“엉? 뭔 소리냐.”
“네가 산하사직도에 들어가기 전에는 거역할 수 없는 장대한 흐름같은 게 이 세상을 꽉 틀어쥐고 있었다. 나나 전뇌자는 그 흐름을 인식했으나 거스를 방법이 없어서 너만 기다리고 있었지. 그리고 산하사직도에 들어갔다 나온 후 무언가 흐름에 균열이 생긴 것처럼 느껴진다.”
“……?”
“네가 산하사직도에 들어가서 모험을 하는 것만큼은 예상할 수 없었던 건가…?”
이놈은 또 뭔 헛소리야?
내가 고개를 갸웃하자 아수라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몇 년 정도는 좀 더 기초를 다듬으려 했는데 어쩔 수 없지. 좀 이른 감은 있지만 따라와라.”
“뭘 따라와?”
이어진 말에 나는 깜짝 놀랐다.
“암야참(暗夜斬)을 가르쳐 주마.”
“……!!”
정말인가?!
지금까지 군침만 흘렸던 아수라의 검술비기를 가르쳐 준다고?!
“가, 가고말고.”
그걸 배운다면 더 강해질 수 있겠지!
나는 부랴부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잠시 후 나는 아수라와 평소에 수련을 하던 장소에 도착했고, 아수라는 자신의 검을 들어서 나를 겨누며 말했다.
“백웅. 이미 알고 있겠지만 다시 한 번 말해둔다.”
“뭘?”
“암야참을 배운다 해서 네가 딱히 더 세진다는 보장은 없다. 다만 네가 가야할 길을 틔워주고 ‘앞’을 보여주는 역할을 하는 것뿐이다. 암야참은 본디 내가 강해지는 도중에 생겨난 부산물일 뿐이야.”
나는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이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암야참이란 기술 자체가 대단히 강하긴 하겠지만 사실 그 기술보다는 아수라 자체가 강한 것이다. 나는 그 사실을 예전부터 이해하고 있었기에 겸허하게 아수라에게 무예를 배우는 중이었다. 이미 나는 세계최강을 논할 수 있는 무예를 여럿 배우고 있었지만 아수라는 순수하게 지금의 나와는 격이 다른 무인인 것이다.
아수라는 내 대답에 만족한 듯 빙긋 웃고는 말했다.
“너한테 암야참을 지금 가르쳐주는 이유는 딱 하나야. 천계탐사 중에 암야참이 없으면 당해내지 못할 적이 틀림없이 나타날 것 같기 때문이다.”
“뭐? 뭔가 알고 있는 거냐?”
“흐음. 글쎄다.”
아수라는 말을 약간 흐리는 듯 했다. 그리고는 말을 돌렸다.
“아무튼 암야참의 정수는 단순해. 이렇게….”
즈응!
아수라가 검을 횡으로 들고는 서서히 검신을 손으로 쓸었다. 그러자 검날이 시꺼멓게 물들었고, 아수라는 새까매진 칼날에 계속해서 힘을 불어넣는 듯 했다. 한참동안 시야를 빨아들이는 듯한 어둠을 내뿜던 칼날은 잠시 후 어둠이 씻은 듯이 걷히더니 원래대로 되돌아왔다.
“역륜(逆輪)을 돌리는 거다.”
“역륜?”
“쉽게 말하자면 적멸무극의 반대 개념이다. 한 점에 절대지경을 모아서 터뜨리는 게 적멸무극이라면, 암야참은 모든 무리(武理)를 역회전시켜서 풀어버린다.”
“……?”
나는 그 이야기를 듣자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반문했다.
“왜 그렇게 하는 거지? 적멸무극은 모아서 터뜨리면 강하다는 게 확 이해가 되는데 뭐하러 바퀴를 거꾸로 돌리는 거야?”
“…….”
“무리를 풀어버린다는 건 달리 말하자면….”
나는 내가 말하고도 믿을 수가 없어서 황당해했다.
“의념(意念)을 유지할 수 없다는 말이잖아? 그게 무슨…!!”
“정확하게 봤군. 절대지경다워.”
“……!!”
서, 설마 진짜로….
내가 경악하고 있을 때 아수라의 얼굴이 냉막하게 변했다.
“의념이 무(無)가 될 때까지 역회전시키는 것, 그것이 바로 암야(暗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