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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1120화 (1,117/1,615)

1120====================

사신지혼(四神之魂)

개똥이!

저 녀석은 분명히 내가 이름을 지어줬던 녀석이었다. 덩치가 엄청나게 커지긴 했어도 저 녀석은 틀림없이 개똥이다! 나는 과거의 기억을 되살릴 수 있었다.

[앞으로 무고한 동물이나 사람을 먹지 않겠다고 이름을 걸고 약속해. 그리고 중원에서 떠나서 변방의 인적없는 곳에서 평생 살아라.]

[난 내 이름을 모른다!! 내 이름을 지어준 자도 불러준 자도 없었다!]

[그럼 내가 이름을 지어줘도 되겠지?]

[개똥이…. 그래 개똥이로 하자.]

[개똥이라고…. 좋은 이름인가.]

[그, 그래 좋은 이름이라구.]

[좋다…. 나 개똥이는 두 번 다시 인간을 먹지 않으며 중원 바깥에서 조용히 살 것을 맹세하겠다.]

이번 28번째 생이 시작하자마자 나는 황궁의 대뢰옥에 가서 목갑을 비롯한 여러가지 보물들을 회수했는데, 이번에는 대뢰옥에 있던 거대두꺼비를 죽이지 않고 대신에 이름을 지어서 놓아보낸 적이 있었다. 나는 그 거대두꺼비의 이름을 개똥이라고 지었었는데 500년의 세월이 지나서 개똥이와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근데 왜 개똥이가 요괴왕이 되어있는 거지?

나는 의아해하면서도 개똥이에게 말했다.

“너 500년 동안 나랑 했던 약속은 지켰지? 사람 안 먹기로 했잖아.”

[…….]

개똥이가 나를 의혹어린 눈빛으로 쳐다보다가 대꾸했다.

[지켰다! 그런데 넌 어떻게 예전 그대로의 모습인가.]

“뭐 이런저런 사정이 있었지.”

나는 그렇게 말한 후 달기를 흘끔 보았다. 달기는 거대화한 후 뜻밖에 끼어든 요괴왕을 경계하는 듯 했고 지금은 잠시동안 전장에 정적이 찾아온 듯 했다. 나는 이 정적을 잘 이용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개똥이에게 말했다.

“개똥아! 얘기는 나중에 하고 달기를 때려잡는데 협력 좀 해 다오.”

개똥이의 힘도 상당하다. 기습이라지만 달기를 눕히고 정면에서 대등하게 싸울 수 있는 힘은 이미 마왕 수준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개똥이, 나, 사공린 셋이 힘을 합친다면 달기를 죽이지 않고 제압하는 게 가능할지도 모른다.

[웃기지 마라.]

“응?”

개똥이가 약간의 분노를 담은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렇게 치욕스러운 이름을 지어주고는 내 앞에서 무사할 거라고 생각했나!!]

화르륵

개똥이가 피부에서 뿜어낸 강대한 요력이 허공에서 불꽃의 파도처럼 변했다. 순식간에 그 파도는 아오키가하라 수해 심처에 있던 음양사 일족의 본거지의 천장을 부숴버렸고, 한 차례 괴물들의 격돌을 견뎌냈던 결계는 이번에야말로 부숴지고 말았다.

“으아악.”

“커헉.”

수백 명의 음양사와 주술사들이 피를 토하며 여기저기서 쓰러졌다. 경악스러운 건 이게 술수의 전조일 뿐이었고 아직 화염의 파도가 발산조차 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저 요력은 이미 대요괴 수준을 한참 넘어 있었고, 상위 마왕에 견줄 수도 있을 정도였다.

“……!!”

허억…. 진짜 쎄잖아?!

나는 괜히 개똥이가 달기를 상대할 수 있었던 게 아니었다는 것을 알아채고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는 황급히 말했다.

“그, 그 이름이 어때서 개똥아.”

[닥쳐라…. 그때 강자의 아량으로 날 살려보내며 조롱하려 했겠지만 용서하지 못한.]

퍼억!!

그 때 달기가 날듯이 뛰어들어서 개똥이의 목줄기를 물어버렸다.

[카학.]

[이것이.]

달기가 지금까지 틈을 보고 있다가 덮친 모양이었고, 개똥이는 불의의 습격에 화염의 파도를 하강시켜서 달기를 향해 날렸다. 그러자 달기는 곧장 꼬리를 빛나게 하더니 마주 거대한 청색 화염을 끌어올렸다.

콰앙!!

두 개의 화염이 부딪히자 서로 상쇄된 모양이었다. 그리고 달기와 개똥이는 서로 얽혀서 몇 바퀴나 굴렀고 그 동안에 서로 초근접거리에서 몸싸움을 계속 하는 듯싶었다. 나는 거대 괴수들의 몸싸움을 멀리서 보면서 멍하니 있었는데, 어느 새 내 곁에 사공린이 다가와서 말했다.

“백웅. 그렇다면 저 두꺼비 괴물은 황궁 대뢰옥의 지하에 있던 그 마물입니까?”

“…그래. 어째서 500년 동안 요괴왕이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둘이 얽혀있는 틈이 기회입니다. 제가 달기를 칠 테니 그 틈에 그녀에게 아마테라스의 기운을 불어넣으세요.”

“알았어!”

파밧

사공린의 신형이 금빛 섬광과 함께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 사공린이 모습을 드러냈을 때, 그녀는 수도(手刀)를 써서 달기의 팔죽지를 내리치고 있었다.

츠앗

마치 달기의 모든 방어력을 무시하듯 내려친 무형의 일도(一刀)! 형태는 보이지 않았지만 무시무시할 정도로 정제된 황금의 힘이 달기의 팔을 손쉽게 잘라내었고, 달기가 이윽고 비명을 터뜨렸다.

[카핫!!]

그러나 그것은 고통의 비명만은 아니었다. 달기의 비명이 터지는 순간 사공린은 잠시 주춤거렸고, 달기의 몸이 갑작스럽게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시간이 멈추는 기분이 들었다.

우웅

‘어… 뭐지….’

나는 속이 울렁거리는 걸 느꼈다. 그리고 잠시 후, 내가 멍때린 채 한참 전장에 떨어진 곳에 서 있음을 알아차렸다.

“엥?”

콰과광

저만치에서 사공린, 달기, 개똥이가 얽혀서 삼파전을 벌이는 게 보였다. 엄청난 힘의 충돌인지 이미 지형이 남아나지 않았지만 나는 지금 상황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부터 집중하기로 했다. 그리고 잠시 후, 내가 무엇을 당했는지 알아차렸다.

‘달기가 사라진 게 아냐…. 내가 [과거]로 이동한 거야!’

[작은 굴레]!

달기의 몸을 살펴보니 어느 새 사공린에게 잘려나간 팔이 완전히 되돌아와 있었다. 아마 달기는 [작은 굴레]를 돌려서 일대의 시간을 모조리 과거로 돌린 것이리라! 하지만 시간역행 능력은 나를 포함한 필멸자들에게만 먹혔고 저 자리에서 싸우고 있는 사공린이나 개똥이에게는 통하지 않았기에 그저 회복효과만 누린 채 계속 피터지게 막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상황을 파악하자 곤란함을 느꼈다.

‘젠장! 사공린이라면 달기에게 부상을 입혀서 빈틈을 만들어줄 수 있겠지만…. 일정수준 이상 치명적인 공격을 하면 달기는 바로 시간을 되돌려서 자기 체력을 회복해버리고 주변의 시간을 과거로 보내버리잖아! 이러면 접근을 하기가 너무 힘든데.’

사공린 혼자서 싸우고 목적이 달기를 처치하는 거라면 문제될 일이 아니다. 사공린은 [작은 굴레]의 조작을 무시할 수 있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달기에게 치명상을 입혀버리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달기를 처치하기 보다는 아마테라스의 기운을 불어넣어 그녀의 정신을 되돌리려 하고 있었기에 치명상을 입힐 수 없다는 게 문제였다.

나는 경험적으로 이런 경우에 시도를 여러번 하면 무조건 실패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기회는 무조건 한 번일 것이고 그 일격에 무조건 달기에게 아마테라스의 기운을 꽂아넣어야 한다!

스으으

나는 섣불리 저 전장에 접근하지 않고 눈을 반개한 채 집중했다. 일선에서 싸우고 있는 사공린과의 의견조율 따위는 하나도 없는 상황이지만 그런 건 일일이 신경쓰지 않았다. 사공린이라면 어떻게든 해 줄 테니, 나는 그녀를 믿고 일격을 날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거리는 중요하지 않다….

의념(意念)이 활성화되면서 거대한 의지의 기둥이 천지간을 관통했다. 확실하게 절대지경의 집중력을 모은 나는 몸을 움직여서 달기에게 가야한다는 생각 자체를 잊어버렸다. 사공린 정도 되는 상대에게는 공격당할 수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달기의 위력은 절대지경 고수조차 장난처럼 찢어버릴 정도로 막강하기에, 어설프게 접근하면 무조건 막힐 것이다.

그렇다면 한 방의 위력에 집중한다.

그것도 단순한 무량단만으로는 안 된다. 아수라는 내 무량단이 지극히 단순하면서도 직관적이고 빠르다 했지만, 달리 말하면 일점돌파가 막히면 크게 위력이 줄어든다는 뜻도 될 것이다.

‘더…. 더욱 강한 힘이 필요하다.’

위력에 자신은 있다. 대해방 칠요, 화요천염 검신지세의 힘을 싣는다면 여태까지의 무량단보다 더욱 강하게 일격을 먹일 자신이 있다.

하지만.

무량단과 화요의 힘이 과연 서로 부딪히지 않을 것인가?

심지어 화요에는 아마테라스의 신력까지 싣는데?

지금까지도 약간이지만 느꼈다. 무(武)와 강대한 무구의 힘을 동시에 쓸 경우 확실히 위력이 강해지긴 하지만 좀 따로 노는 기분이었다. 합연산이라도 되면 다행이었지만 의념의 영역과 영기가 잘 맞물리지 않았다. 여태까지는 그 부딪힘을 무시해도 될 정도였지만, 지금은 왠지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

무량단도, 화요천염 대해방도 여태껏 내가 키워왔던 각자의 영역에서 최대치라고 할 수 있는 힘. 그 힘이 서로 마찰을 일으키면 어쩐지 이도저도 아닌 결과가 나올 거라는 직감이 들었다.

나는 절대지경 고수의 직감으로 한 쪽을 다른 쪽에 맞춰야 한다는 걸 알아차렸다. 두 개의 영역을 모두 끌어올릴 경우 상충하게 되리라.

‘무량단에 화요천염을 맞추나? 아니면 화요천염에 무량단을?’

어느 쪽이든 아슬아슬하게 감각으로 가능할 것 같긴 하다. 그리고 내 사고가 비교적 합리적으로 돌아갔다.

‘좋아! 후자로 간다.’

나는 당연히 화요천염의 위력에 무량단을 맞춰야 한다는 생각을 하며 검에 의념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조화(造化)를 추구하며 절대지경의 의념천주를 조정하는 과정이 고요하게 흘러갔다.

멈칫

‘음…. 아냐. 이건 뭔가….’

어째서일까? 나는 화요천염의 영기에 맞춰 무량단을 펼치려다가 뭔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삼황오제가 직접 강화시킨 대해방 칠요가 훨씬 더 강할 텐데 왜 이런 기분이 드는 걸까?

콰과과광

그 때 전방에서 격렬한 폭음이 연신 들려왔고 후폭풍에 주변의 인간들이 쓸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곁에 있던 아베노 일족의 음양사 간부가 피흘리며 쓰러진 채 신음성을 내어 말했다.

“으으…. 황제시여! 아오키가하라 수해의 결계가 아직 저들을 막고 있지만... 곧 완전히 붕괴되면 괴물들의 힘이 현실세계에 직접 영향력을 미칩니다…. 본디 행성도 초토화시킬 괴물들인데 지금은 비교적 힘이 억제되어 있습니다….”

“…….”

“그 때는 지금의 열 배 이상의 파괴력이 지상을 파괴할 것입니다….”

제길. 망설일 때가 아니군.

나는 어쩔 수 없이 이를 악물고는 눈을 번쩍 뜨며 발검(拔劍)했다.

화요천염(火曜天炎)

대해방(大解放)

검신지세(劍神之勢)

류종(流從) 무량단(無量斷)!

거리는 무려 십여 리 이상 떨어져 있었다. 그러나 화요천염이 검집을 나가는 순간 신검 화요 간장은 즉시 폭발하듯 광검(光劍)으로 변화했고, 마치 불사조가 홰를 치듯이 어마어마한 속도로 전방을 향해 쭉 날아갔다. 그리고 화요천염이 지근거리에 도달한 순간 무량단의 의념이 그대로 달기의 가슴팍을 관통했다!

퍼벅

‘먹혔어!’

아니나 다를까, 먼 거리였음에도 달기의 외마디 비명소리가 내 귓전까지 들려올 정도로 쩌렁쩌렁 울렸다.

[카악!!]

손맛이 좋았다. 나는 달기의 가슴팍에 화요가 꽂혔다는 걸 어검기(御劍氣)의 연결으로 알아챘고, 곧장 그 연결을 통해서 아마테라스의 신력을 강하게 불어넣었다. 이 찰나동안에 달기가 근육에 힘을 주어 화요를 빼내려 했으나, 어느 새 달기에게 접근한 사공린이 화요의 손잡이를 잡아서 더 강하게 박아넣었다.

후오오오!!

사공린의 전신이 갑작스럽게 엄청난 염광(炎光)을 일으켰다. 염제 신농의 것을 연상시키는 가공할 은염이 터져나오는 바람에 나는 그만 집중력을 놓을 뻔 한 것이다.

화아악

“……!!”

사공린을 삼킨 화요의 불꽃이 마치 수백 장 크기나 다름없을 정도로 번지는 탓에 불꽃의 강이 흐르는 느낌이었다.

‘왜?!’

화요가 어째서 사공린을 공격한 거지?! 저건 아무리 봐도 거부반응인데! 아무리 칠요의 주인이 아니라지만 손잡이를 잡았다는 이유만으로 화요의 정령이 저렇게까지 할 이유가….

‘제길! 집중!’

나는 사공린의 걱정을 접기로 했다. 저걸로 죽을 사공린이 아닐 것이다! 대신에 아마테라스의 신력을 최대한 달기의 내면에 불어넣기 시작했다.

웅웅웅

[크어어….]

달기의 버둥거림이 점차 멎더니 눈가에 맺혀 있던 혈광이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대한 본체가 빠른 속도로 작아지기 시작했고, 이윽고 본래의 반인반요(半人半妖) 미호의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미호의 가슴팍에는 여전히 화요가 꽂혀 있었고 그 앞에서는 거대한 불길이 일어나고 있었다. 미호는 눈을 감고 있다가 두 손가락으로 화요를 잡아서 천천히 뽑기 시작했다.

쑤욱

찔린 자국이 남았으나 이윽고 미호의 몸뚱이는 흔적도 없이 치료되었다. 두 손가락으로 화요의 검신을 잡고 있던 미호가 말했다.

“사공린…. 맞느냐?”

정상적인 미호의 말투. 잠시 후 화륵 하는 소리와 함께 화요의 거부반응이 멎었고, 불꽃 한가운데에서 사공린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놀랍게도 그녀는 다치기는커녕 흰색 무복이 그을린 기색조차 없었다. 사공린은 화요의 손잡이를 놓으며 대꾸했다.

“미호. 이제 정신이 좀 드나요?”

“상황은 다 보고 있었다. 민폐를 끼쳐서 미안하구나.”

그렇게 말한 미호가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으니….”

그 때였다.

[죽어라!]

방금 전까지 삼파전을 벌이고 있던 요괴왕 개똥이가 갑작스럽게 요력의 입김을 내뿜은 것이다! 달기의 입김과 맞먹는 공격이니 뜻밖의 기습에 사공린과 미호가 동시에 당할 것 같았다.

미호의 눈이 빛났다.

그리고 시간이 되돌아갔다.

우우웅

“……!!”

[작은 굴레]가 되돌아갔어! 역시 미호 본인도 시간을 조작할 수 있는 거구나!

“대단하군요.”

사공린이 놀란 듯 말했다.

미호의 [작은 굴레] 조작이 달기가 행한 것과 다른 점은 이번에는 사공린과 요괴왕도 저항하지 못하고 시간역행에 따라 시공간을 이동했다는 점이었다. 명백히 미호가 달기 때보다 권능이 더욱 강하다는 증거였다.

미호는 엉거주춤 서 있는 요괴왕 개똥이를 보며 말했다.

“요괴왕이여. 그대의 영토에 침입해서 미안하다. 허나 내 안의 흉성은 잠들었으니 잠시동안 이 땅에 머물 유예를 줄 수 있겠는가?”

상당한 위엄과 권능이 깃든 말!

지금까지의 미호와는 명백히 달라 보였다.

[…….]

개똥이는 미호의 말에 홱하고 고개를 돌려서 나를 보았다. 그리고는 내게 말했다.

[백웅!! 네놈이 한 가지를 약속한다면 이 자리에서 물러나주겠다!]

“엉?”

[개명(改名)!]

개똥이가 엄청난 분노가 서린 안광으로 나를 쏘아보며 말했다.

[네놈이 지은 이름이 너무 창피하여 나는 부하들에게도 진짜 이름을 밝히지 못했다! 당장 개똥이라는 이름을 고쳐라!]

“…….”

[당장!!]

나는 살짝 고민했다. 그리고는 사공린에게 전음을 보냈다.

[미호랑 다같이 덤벼서 개똥이를 패면 안될까?]

사공린이 곤란하다는 듯 말했다.

[미호가 이 자리를 유하게 넘기려는 건 이유가 있습니다. 저만한 존재와 부딪혀서 상처없이 끝날 순 없어요. 이길 순 있겠지만 미호의 인과율이 소모되어서 손해만 볼 것이기에 저 자의 요청을 들어주는 게 좋습니다.]

[하지만….]

[그냥 이름을 바꿔주는 게 어떻겠습니까?]

으음….

개명시켜줘야 하나?

근데… 근데 좀… 그래….

나는 소심하게 머리를 긁적이며 개똥이에게 말했다.

“개똥아. 이름 괜찮지…않아? 내 나름 고민해서 지었….”

개똥이가 포효했다.

[닥쳐라!! 동네 똥개이름과 뭐가 다르단 말이냐.]

“…….”

[설마 그딴 작명에 자부심이라도 갖고 있단 말이냐!]

그 순간 셋 모두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미호는 설마 하는 눈빛이었고 사공린은 의아하다는 눈빛, 그리고 개똥이는 여전히 분노 그 자체를 품고 있었다.

문제는 개똥이의 말이 내 정곡을 찔렀다는 사실이다.

“…….”

개똥이가 뭐가 어때서 그래!

정감가잖아!

나는 하는 수 없이 개똥이에게 말했다.

“야! 저번에 내가 살려준 빚도 있잖아. 그냥 물러나면 안 되냐?”

[웃기지 마라. 널 때려죽이기 직전까지 패대기치고 목숨만은 살려줘도 빚은 갚은 셈으로 칠 수 있다.]

“그게 무슨 억지냐고!”

[나야말로 네 억지를 이해하지 못하겠다. 이름 한 번 바꿔주는 게 그리 어렵냐!]

“으윽….”

보다못한 미호가 내게 말했다.

“백웅. 바꿔주거라. 별로 좋은 이름도 아닌데.”

“쳇!”

나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왜 이 녀석도 저 녀석도 내 작명능력을 구리다고 하는 거냐! 내 나름 이름은 잘 지어주는 편인데!

별 수 없이 나는 입을 열었다.

“…그럼 네 이름은…. 흠….”

그러고보니 저 녀석 출신이 달에서 온 거였나? 나는 잠깐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월아(月娥)라고 하자.”

아(娥)는 예쁘다는 뜻이니까 저 기괴한 놈을 좀 순하게 만들 수 있을려나?

[…어쩐지 그리운 이름이군….]

“이름 괜찮냐?”

[이제 좀 낫군. 그 이름으로 바꾸겠다!]

쿠구구구….

[더러운 놈! 두 번 다시 보지말자!]

대답이 끝나자마자 요괴왕 개똥이, 아니 월아는 가공할 영기를 피워내더니 잠시 후 공간이동으로 사라져버렸다. 나는 월아가 사라진 장소를 멍하니 보다가 미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미호. 상황이 너무 정신이 없는데…. 지금 어떻게 된 거야? 이젠 광기를 제어해서 원래대로 된 건가?”

“그래.”

미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아직 문제가 남았다. 네가 불어넣어준 아마테라스의 힘 덕에 달기를 억제할 수 있었지만 오래가지 못해.”

“무슨 말이냐? 상황을 좀 설명해 줘. 세이메이도 네 상태에 대해선 자세히 몰랐다고. 그 동안 광증때문에 미쳐서 온갖 차원계를 돌아다니며 학살했다며?”

내 질문에 미호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건 광증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금오도에서 의식을 치르면서 달기를 다 잡아먹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달기가 내게 당해준 척 하고 무의식에서 나를 조종하다가 내 정신을 빼앗았던 것이다. 그 때문에 달기에게 네가 전생자라는 정보가 흘러들어가 버렸구나….”

“……!!”

“달기가 나를 조종하는 동안에 학살을 마구잡이로 일으켰고 학살을 이용해서 음(陰)의 신력을 엄청나게 쌓았다. 그 덕에 신으로써의 힘은 강력해졌지만 도저히 달기에게서 내 몸의 통제력을 되찾을 수가 없었지….”

“그런데 아마테라스의 힘 덕에 제정신이 된 거군.”

나는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미호가 말을 이었다.

“그렇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달기의 지배를 벗어나진 못했어.”

“무슨 말이야? 오백 년 동안이나 달기를 역으로 잡아먹으려 했는데 그게 불가능했다는 말인가?”

저 말이 사실이라면 앞으로 전생에서 미호의 힘을 향상시키기는 굉장히 곤란해진다. 말 그대로 할 건 다 했는데도 미호가 결국 상위존재에게 지배당한다는 뜻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내 얼굴이 흙빛이 되자 미호가 말했다.

“구조의 문제였느니라. 달기의 단순한 요력은 잡아먹을 수 있었지만 결국 나는 달기의 ‘꼬리’. 근원 자체가 종속되는 한 아무리 내가 신의 영역으로 올라선다 한들 도로 달기의 음(陰)에 먹혀버리는 구조였느니라. 그것을 나도 세이메이도 간과하고 그저 힘만 빨아먹을 수 있다 생각했던 것이다.”

“…….”

“이대로라면 언제고 또 다시 음양의 이치에 따라 지배받고 말 것이다. 이것은 달기와 나 사이에 존재하는 영혼의 인과율이니, 내 신격이 높고 낮음과는 상관이 없구나.”

“해결할 방법이 없는 건가?”

“딱 하나 있느니라.”

내가 그 말에 솔깃해서 미호를 바라보자, 그녀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여와(女媧)에게 진정한 삼황의 후계자로 인정받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나는 달기를 완전히 지배할 뿐만 아니라 더욱 강해질 수 있다.”

“…….”

나는 황당해서 입을 크게 벌렸다. 그리고는 말했다.

“그, 그건 불가능해. 그 성질 더러운 여와가 널 인정해줄 리가 없어.”

안 봐도 뻔한 일이다. 달기조차도 여와가 자신에게 더러운 음(陰)의 기운을 떨쳐낸 조각에 불과한데, 그 달기의 꼬리인 미호를 어찌 인정하겠는가? 그것도 자존광대한 여와가!

“그렇겠지….”

미호는 씁쓸한 눈으로 고개를 떨구었다. 그리고는 내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백웅…. 차라리 이 자리에서 날 죽여 주겠느냐?”

“…….”

“난 더 이상 네 전생동료로 쓸모가 없다…. 오백 년 동안 그토록 노력했는데도 결과가 이 모양이라니…. 앞으로는 날 무시하고 내버려두거라.”

“그건….”

“아무리 내 힘을 키워봤자 결국 달기나 여와에 종속되는 신세. 더 이상은 함께 할 자신이 없다.”

미호의 말투에서는 그 동안의 자신감이나 요사스러움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미 모든 희망을 잃고 체념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말투에 도리어 울컥함을 느끼면서 이를 악물었다.

“아니! 방법은 내가 찾아보겠어! 포기하지 마!”

“어떤 방법을 쓰겠다는 것이냐? 여와 이외의 그 어떤 방법이 나와 달기 사이의 인과율을 해소할 수 있단 말이냐.”

“…….”

내가 말문이 막혀 있을 때였다.

“방법은 딱 하나군요.”

끼어든 것은 사공린이었다. 나와 미호의 시선이 사공린에게 쏠리자, 그녀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지금 당장 천계로 가서 복희(伏羲)를 찾는 것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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