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1119화 (1,116/1,615)

1119====================

사신지혼(四神之魂)

나는 바깥으로 나오자마자 천우진에게 말했다.

“야! 시간 얼마나 지났냐?”

그러자 천우진이 성난 얼굴을 간신히 눌러참는 듯 대답했다.

“다섯 시진 지났다.”

“흠. 대충 그 정도인가.”

그렇다면 미호가 이 세계로 귀환할 때까지는 아직까지 일곱 시진 정도 남은 셈이었다. 예상대로 안에서 보낸 시간에 비해 바깥의 시간이 좀 더 흘러 있었지만, 도리어 이 정도면 시간이 꽤 남은 셈이었다. 나는 다소 안심을 하면서 천우진에게 말했다.

“산하사직도 안에서 복희와 망량선사를 만났어.”

“……?!”

천우진이 화난 걸 잊어버릴 정도로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으르렁거렸다.

“이 새끼. 수련 하나도 못하고 헛소리 하는거면 절대 가만 안둔다.”

“…….”

너, 너무 화가 난 거 아닌가?

하지만 천우진 입장에서는 휴가도중에 찾아와서 내가 도와달라고 한 상황에서 너무 황당한 소리를 하고 있으니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수도 있으리라. 나는 손사래를 치면서 천우진에게 말했다.

“아니 진짜야! 그러니까….”

나는 천우진에게 산하사직도 안에서 겪었던 일을 비교적 간략하게 설명했다. 신중하게 내 이야기를 끝까지 다 들은 천우진이 말했다.

“정말 어이가 없군. 산하사직도에 세계(世界)가 봉인되어 있다는 사실을 내게 믿으라는 말이냐?”

“믿든말든 진짜야! 그 증거로 이거 봐라.”

우웅!

나는 수요와 화요를 꺼내서 해방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대해방의 형상을 하자 내 팔이 칠요의 힘을 머금고 부풀어 올랐고, 그 영기를 마주한 천우진이 놀란 듯 입을 벌렸다.

“허어….”

보통 천우진이 저런 표정을 짓는 일은 없는데 정말 놀란 듯 했다.

“어때?”

“…그럼 눈으로 파괴광선을 쏴 봐라.”

“좋지!”

나는 눈알에 힘을 모으면서 이를 악물고 외쳤다.

“광 - 선!!”

콰아아앙

“……!!”

광선이 눈 앞에 있던 조그마한 계곡을 통째로 날려버리고 길을 만들자, 천우진이 황당한 듯 했다. 그는 한참이나 그 빈 자리를 쳐다보다가 말했다.

“그래서 흑웅은?”

“아.”

아 맞다!

나는 천우진의 말을 듣고서야 뭔가 이상함을 깨달았다. 애시당초 흑웅을 부활시키기 위해 산하사직도에서 수련을 하러 들어간 건데, 정작 그 흑웅에 대해서는 지금껏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었다. 천우진이 내게 말했다.

“네 이야기대로라면 지금 흑웅이 부활할 가능성은 애매하다. 정말로 사이탄이 부활하여 아마테라스가 그를 제압하려 공멸(共滅)한 것이라면, 사이탄이 남긴 언령의 효과가 남아있을지 모르겠군. 다만 네 신력이 줄어든 만큼 신력을 통제할 확률은 올라갔다.”

“으음.”

“하지만 굳이 흑웅이 부활하지 않더라도…. 지금 네 힘은 그럴 필요도 없을 정도로 향상되어 있군.”

나는 뜻밖의 말에 눈이 동그래졌다.

“정말이냐?”

“백웅. 일단 확인을 해 봐야 하니 사이탄의 언령을 외워봐라.”

나는 시키는대로 언령을 외웠다. 그리고 끝까지 다 외웠을 때, 조금씩 영력이 혼돈의 흐름에서 내 통제에 따르는 게 느껴졌다.

우웅!

비록 몇 가닥이긴 했지만 확실히 통제력이 돌아온 것이었기에 나는 놀랐다.

“이건….”

이전까지는 신력을 다루려 하면 마치 태풍이 몰아치는 바다 위에서 일엽편주를 몰고 있던 듯한 기분이었다. 도저히 신력을 내 뜻대로 움직이는 게 불가능했던 것이다. 산하사직도에 들어가기 직전까지만 해도 조금 통제력이 향상되곤 있었지만 여전히 언발에 오줌누기 같은 느낌이었다.

‘할만 해!’

다만 이제는 적어도 대여섯 명은 넉넉히 탈 수 있는, 지붕도 닻도 있는 중간정도 크기의 배를 몰게 된 느낌이었다. 태풍이라 할 수 있는 거대한 흐름은 통제하지 못하지만 최소한의 방향키는 잡을 수 있게 된 듯 했다.

“예상대로군. 이걸 전화위복이라 해야할지 새옹지마라 해야할지.”

“무슨 일이 일어난 거냐?”

“백웅, 본디 창조주를 잃어버린 언령, 그것도 인과율이 이어져있던 언령은 그 순간 효력을 잃어버리고 사어(死語)로 전락한다. 신성이 소멸한 순간 그 자와 연결되어 있던 모든 주문체계가 소멸하거나 힘을 잃는 건 그 때문이야. 사이탄의 언령은 사이탄과 아마테라스가 공멸한 순간부터 쓸 수 없어야 정상이었어. 하지만 너와 사이탄의 관계는 단순하지 않았다는 게 중요한 거겠지.”

천우진의 설명이 이어졌다.

“넌 사이탄의 이름을 받는 대신에 놈에게 선악과를 찾아주기로 했다. 그러나 이 계약관계는 완전히 청산되지 않았지. 즉 선악과의 업(業)이 남은 채 한쪽이 소멸했다는 건데 너는 이 업만큼의 힘을 언령에서 사용할 수 있는 거다. 심지어 이름을 세 번 부르기까지 했으니….”

“…뭐? 잘 이해가 안 되는데.”

“쉽게 말하자면, 네가 선악과를 찾는 순간 사이탄의 언령은 효과가 끝난다는 거다. 그러나 찾기 전까지는 업에 상응하는 언령의 힘을 계속해서 쓸 수 있어. [선악과를 찾기위한 힘은 계속해서 부여된다]는 말이지.”

“…….”

나는 황당해서 반문했다.

“사이탄은 소멸했는데 그 힘은 대체 누가 준다는 거야? 힘을 부여하는 주체가 없잖아.”

“모든 계약을 관장하는 우주의 법칙이라고 해 둘까. 허공록이라고 보면 된다.”

“흠.”

“미미하긴 하지만 사이탄은 본디 [옛 지배자]였던 존재. 그 자와의 업이 체결되어 있으니 네 신력의 통제력도 상당히 강력해진 것이다. 게다가 마지막에는 네 덕에 잠시동안 사이탄이 본체의 힘을 되찾았으니 더 효과가 강하게 부여되었을 테지.”

그런 구조란 말인가?

나는 이제야 이해가 되어서 고개를 주억거렸다. 천우진이 약간 아쉽다는 듯 말했다.

“다만, 산하사직도 내의 세계에서는 그 효과가 강하게 남아있었던 모양이지만 지금은 별로인 것 같군…. 그렇지 않나?”

“음. 좀 약해진 것 같아.”

아닌 게 아니라 음신지력의 용을 형성했을 때의 그 강대한 통제력이 지금은 느껴지지 않는다. 아무래도 산하사직도 내부와 바깥 현실세계는 언령의 위력에 좀 차이가 있는 듯 했다.

“지금이라면 원리가 복잡하지 않은 술법 정도는 신력을 이용해서 쓸 수 있을 거다.”

다행이다. 나는 좀 더 술법을 쓸 수 있게 되었기에 나중에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천우진에게 말했다.

“그럼 흑웅은 지금 부활시킬 수 있을까?”

“…….”

“왜?”

“그걸 나도 모르겠다. 사실 이론적으로는 부활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인데 너 스스로 느낌이 오지 않는 거냐? 기본 통제력도 생겼고 신력의 절대량도 줄어서 저절로 부활해도 좋은 상황인데.”

“안 오는데….”

천우진은 팔짱을 끼고 고민하는 듯 했다. 그리고는 말했다.

“좀 더 자세한 정황을 알아봐야겠군. 네가 말로 하는 건 한계가 있으니까 나한테 흑요석을 줘.”

“그래….”

나는 천우진의 말에 머리를 긁적이며 [기어오는 혼돈]을 만났던 기억만 빼놓고 천우진에게 주었다. 왠지 직접 대면했던 기억을 지금의 천우진에게 주면 미쳐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천우진은 흑요석의 기억을 읽다가 말했다.

“아무래도 전욱과 소호의 조종을 받을 때 신력이 한층 더 혼잡해진 모양이군….”

“엥?”

“괴물에게 신력을 빨아 먹혔을 때 그들이 불어넣은 신력이 대부분 빠져나갔지만 중핵(重核)이라고 할 수 있는 잔재는 네 몸 안에 잠력(潛力)으로 남았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잠재력이 더 향상되었고, 흑웅이 구현화되는 최소한의 문턱이 더 높아진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데?”

천우진이 훗하고 웃었다.

“일전과 달리 답이 없는 상황은 아냐. 잔류한 사이탄의 언령을 이용해서 일조일석으로 수련만 반복하면 확실히 흑웅을 되찾을 수 있을 거다. 따지고 보면 산하사직도에 들어가기 전과 비슷한 상황으로 회귀했군.”

나는 ‘확실히’라는 말이 내 마음을 설레게 하는 걸 느꼈다. 천우진이 저런 표현을 쓰는 일이 자주 있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얼마나?”

“그건 나도 모르겠지만 오래 걸리진 않을 거다. 당장 내일은 아니지만.”

“그렇군.”

오래 걸리지 않는다는 건, 수련을 반복하면 길어도 일년 이내로 찾을 수 있다는 이야기일 가능성이 크다. 나는 큰 성취를 얻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문득 나는 정말 중요한게 뭔지를 깨닫고 천우진에게 말했다.

“…이 정도 힘이면 미호를 제압할 수 있겠지?!”

“내가 어떻게 아냐?”

퉁명스럽게 대꾸한 천우진이었지만 내가 빤히 쳐다보자 어쩔 수 없다는 듯 말을 이었다.

“파괴광선의 위력은 잘 모르겠지만, 칠요(七曜)를 어떻게 쓰느냐에 달려있을 거다. 특히 내가 보기에 그 쌍요신살기를 잘 쓰면 아무리 미호가 강력한 기신이 되었다 해도 일격에 제압할 수 있어. 대해방시 흘러나오는 영기를 보면 기신을 죽이기에 충분하고도 남겠군.”

“호오!”

“맞출 수 있을 때의 이야기지만. 틀림없이 그 정도로 강하다면 시간조작이든 공간조작이든 쓸 거다.”

“…….”

천우진이 진심으로 짜증나 죽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제길…. 휴가는 물건너갔군. 일단 네가 미호에게 쌍요신살을 맞출 틈을 내기 위해서는 술법의 연마가 필수적이다.”

“태상노군한테 받은 태극도가 있잖아. 그걸로 빈틈을 만들면 안 되냐?”

“부족하다. 미호 정도 되는 신격이라면 태극도를 상쇄할 권능 정도는 분명히 있을 테니까 또 하나의 무기가 필요해. 내가 들었던대로라면, 전성기의 태상노군이라 해도 지금의 미호보다 강하진 않을 거다.”

이 녀석, 가르쳐줄 마음이 들었군!

나는 천우진의 말에 솔깃해서 말했다.

“쓸만한 술법이 있어?”

“이 상황에 잡스러운 건 필요가 없어. 네가 집중해야 할 건 신술(神術)이다.”

“신술?”

천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지선 망량의 기억으로 얻은 구천현녀의 시해지술을 쓰는 게 제일 확실할 테지만 네 녀석은 어찌된 일인지 시해지술은 천 년이 지나도 못 쓸 거 같고…. 내가 추천할 수 있는 건 바로 남극선옹의 신술 창천대신광(蒼天大神光)이다. 창천대신광을 쓰면 미호를 상대로 크게 유용할 것이다.”

“그거! 쓸 줄은 알아.”

“뭘 쓸 줄은 안다는 거냐. 제대로 된 주문을 외우지도 못하고 신력으로 마구잡이로 밀어서 쓰는 주제에.”

“…….”

“일곱 시진 정도 남았지. 남은 시간 동안에 네가 창천대신광을 좀 더 제대로 쓸 수 있도록 도와주마. 신력의 통제력은 지금으로 충분하니까 있는 능력을 다듬는 것에 집중하는 거다.”

“알았어.”

“신술의 기초이론만 좀 공부하면 효율성이 크게 늘어날 거다. 한 번 쓸 거 두 번 쓸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천우진의 도움을 받아서 신술 창천대신광을 연마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는 남극선옹의 지식이 있어도 제대로 쓸 수가 없었는데 천재인 천우진이 술법의 기초부터 풀어서 설명을 해 주기 시작한 것이다.

‘…어렵다.’

그러나 나는 술법의 재능이 없어서인지 천우진이 계속 가르쳐 주는데도 열 가지 중에 두 개도 알아먹지 못하는 기분이 들었다. 조금씩 신술에 대해 알아가는 기분은 들었지만 기분일 뿐이고 정작 중요한 요체는 알아듣지 못해서 마치 외계어를 듣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잠이 와서 꾸벅꾸벅 졸자 천우진이 내 뒤통수를 때렸다.

빠악

“이 개새끼야! 남 휴가 때 찾아와서 깽판 쳐놓고 졸 수 있냐?! 양심은 어디 팔아먹었냐!”

나는 졸음을 깨면서 말했다.

“헉…. 근데 어려워서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제기라아알!! 내가 처돌았지! 니가 신술을 이해할려면 최소한 오십 년은 수련해야 하는데.”

스스로 한탄하던 천우진이 뭔가 각오한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안 되겠다. 이론을 더 이해시키는 건 다음 생에 하자. 그냥 수요에 의존해!”

“엉?! 그게 되냐?”

“그래! 수요에 신술과 신력을 마구 먹이고 수요를 써서 창천대신광을 발사해라. 그냥 그게 낫겠다. 이거 잡아!”

천우진이 억세게 내 손을 붙잡아서 수요를 강하게 잡게 했다. 그리고는 뭔가 술수를 써서 내 손에 신술의 기운을 집중시켰고, 이윽고 손에 신술이 충만해지자 칼끝에서 새파란 창천대신광의 기운이 뻗어나갔다.

슈웅 - 콰아아앙!!

“헉!”

이게 되네!

신력소모는 그냥 음신지력을 써서 창천대신광을 쓸 때보다 훨씬 많아졌지만 위력과 정밀도는 훨씬 더 올라간 느낌이었다. 이 정도면 대충 감으로 쓸 때와는 달리 실전에서 충분히 쓸 수 있다!

천우진이 집중력을 많이 소모했는지 이마의 땀을 닦으면서 말했다.

“통상상태의 칠요로는 이런 게 안 될 거다. 하지만 지금의 수요는 지상최강의 무기 중 하나이니 이런 식으로 잠재력을 써먹는 게 낫겠다.”

산하사직도에 들어간 게 헛수고는 아니었던 건가? 천우진의 말대로라면 삼황오제의 직접간섭으로 수요가 대해방되면서 지금까지와는 격이 다른 무기로 승급한 모양이었다.

“흠. 근데 신력이 많이 소모되는데….”

“그건 니가 알아서 해라. 제대로 한두 번이라도 써먹을 수 있으면 충분히 빈틈을 만들 거다.”

“알았다.”

그리고 나는 천우진에게 간략하게 수요에 신술의 주문을 집중시키는 요령을 배웠다. 이건 술법재능과는 달리 신력의 이동요령에 가까웠기에 그럭저럭 배울만 했다. 천우진이 어떻게 이런 방법을 알고 있는지 궁금했지만 천우진의 대답은 간단했다.

“이런 건 굳이 안 배워도 대충 다 느낌으로 알아.”

“…….”

역시 천재라는 건가?

천우진에게 창천대신광을 수요로 시전하는 법을 배운 후 나는 천우진에게 말했다.

“그래도 시간이 세 시진 정도는 남은 느낌인데 이젠 어쩌지?”

“뭔 개소리야. 네 몸에 남은 아마테라스의 신력만 따로 속성을 구분해서 끌어올려야지.”

“아.”

“세이메이의 말은 뻘로 들었냐? 아마테라스의 힘을 불어넣어야 미호가 정신을 차린다고 했었잖나.”

천우진이 차분하게 말했다.

“아마테라스의 힘은 양(陽)의 속성이니 이건 화요의 도움을 받아서 쓰는 게 좋을 거다.”

나는 천우진에게 신력을 통제해서 아마테라스의 힘만 구분해서 끌어올리는 연습도 했다. 한참을 낑낑댄 결과 어느 정도 요체만 끌어올릴 정도가 되자 천우진이 말했다.

“이제 사공린한테나 가 봐라. 사공린이 주력이 되어서 싸울 텐데 작전이라던가 그녀와 의논해야하지 않겠냐.”

“그렇겠군. 아무튼 고맙다.”

“흥.”

천우진이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

“충고해두지. 전투가 어떻게 흘러가든, 지금의 미호가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듣지 마라.”

“뭐? 무슨 말이냐?”

“네 마음 자체에만 귀를 기울여라.”

스르륵

천우진은 그 말을 끝으로 사라져 버렸다.

‘아무래도 저 녀석은 이번 일에 정말 관여하기 싫은가보군.’

휴가라는 핑계를 댔지만 사실 미호가 이 세계로 침략해오는 문제는 팔부신중에 못지않게 중대한 일이라서 나와서 싸울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천우진은 그 선택을 하는 게 자기의 몫이 아니라 내 몫이라고 생각하는 듯 했고, 어찌보면 녀석 나름대로 내 역량을 시험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천우진의 행동에 숨겨져 있는 뜻을 약간이지만 알 수 있었다.

‘천마가 된 사공린의 도움까지 받고도 기신 미호 하나 감당해내지 못한다면 앞으로 종말이 다가와도 결과가 뻔하다는 건가….’

좋아.

미호가 이렇게 된 게 내 업(業)이라면 내가 감당해내겠어!

반드시 미호를 정신차리게 하겠다!

나는 마음속으로 강하게 결의를 하고는 사공린에게로 갔다.

파앗

사공린은 이미 내전에 전술무력요원들을 모두 모아둔 상태였다. 그리고 나는 사공린이 입고있는 옷을 보고는 말했다.

“백의(白衣)로군.”

“옛날 생각이 나서요.”

사공린의 옷은 오백여년 전, 처음 그녀를 봤을 때와 같은 고대의 흰색 무복이었다. 나는 그녀가 굳이 그 옷을 꺼내입은 이유를 생각하며 말했다.

“미호를 과거의 동료로 되돌리겠다는 의지인가?”

“…너무 좋게만 생각하지 말아요, 백웅.”

사공린은 아무 감정없는 눈으로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황제의 옷을 입고 그녀를 상대할 경우 살심(殺心)이 강해질 것 같아서예요.”

“어째서지?”

“황제의 옷을 입는다는 건 황제의 업을 짊어진다는 뜻. 결국 팔황구주의 천명(天命)…. 대웅제국의 명운을 짊어진다는 게 아니겠습니까.”

“…….”

“그 업을 짊어지고도 미호에게 무르게 대할 자신은 없어요.”

나는 씨익 웃었다.

“뭐야. 어렵게 말할 거 없이 미호를 살리고싶단 얘기잖아.”

“가능하다면.”

“좋아! 그럼 미호를 상대하러 가자.”

“준비는 다 되었나 보군요.”

“물론.”

사공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죠.”

우우웅

이윽고 우리는 아오키가하라 수해로 향했다. 그 곳에는 미호가 귀환할 차원문 근처에 이미 동영 전역의 모든 음양사와 술법사들이 모여있었다. 음양사들이 일제히 내게 무릎을 꿇었고, 나는 그들에게 물었다.

“상황은?”

“아까 전부터 계속해서 여우신이 차원문의 막을 건드리고 있습니다.”

“으음.”

“세이메이님의 결계로 계속 막고 있지만 아마 반 시진 후에는 뚫릴 것 같습니다.”

“생각보다 더 빨리 오는군.”

여유 부렸다간 큰일날뻔 했다.

‘아마 미호의 현재 힘이 세이메이가 상정한 것보다 훨씬 강하다는 뜻이겠지.’

나는 내심 각오를 하며 말했다.

“미호가 나오는 순간 전투가 시작될 거다. 다들 결계에 전력을 다해라.”

“존명.”

우리는 미호가 빠져나올 차원문 근처에서 대기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반 시진이 거의 다 되어가고 있을 때 사공린이 말했다.

“백웅. 무언가 강력한 존재가 이 근처에서 맴돌고 있군요.”

내가 기를 읽는 범위 내에서는 뭔가 느껴지지 않았기에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강력한 존재?”

“정체를 모르겠지만 아마 이번 전투에 변수가 될 것 같습니다.”

“이쪽에서 먼저 치면 안될까?”

사공린이 기운을 읽는 허공을 응시하다가 말했다.

“그 존재를 일격에 없앨 자신이 없습니다. 그냥 놔두는 게 좋겠군요.”

“……!!”

“전투가 시작되면 전술무력요원들에게 견제하도록 시키겠습니다.”

나는 그 말에 약간 놀라서 사공린을 쳐다보았다.

천마의 위력은 익히 알고 있는데 지금의 사공린이 일격에 없앨 자신이 없다니?

예상 이상의 거물이 와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불안해졌다.

‘젠장. 대체 어떤 놈이….’

그리고 마침내 약속한 시간이 되었을 때였다.

후우웅!!

차원문이 서서히 깨어지더니 그 안에서 청록빛의 바람이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서히 깨어진 차원의 틈에서 하나의 신형이 걸어나왔다.

“미호!!!”

나는 그 모습이 영락없이 미호였기에 그녀의 이름을 불러 외쳤다. 그러자 미호는 내 쪽을 쳐다보더니 빙긋 웃었다.

“백웅. 마중나와줬어?”

“…지금 정신은 말짱해?”

“세이메이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겠네.”

“…….”

내가 침묵하자 미호가 말했다.

“백웅. 종말을 어떻게 막을 생각이야?”

나는 미호의 질문에 대꾸했다.

“천계에서 복희를 찾아낼 거야. 그리고 그를 깨워서 삼황오제의 힘으로 종말을 유예할 방법을 물어볼 생각이다.”

“그렇네. 세이메이의 예측대로네.”

“…미호. 미안하지만 아마테라스의 힘을 너에게 불어넣고싶어.”

철컹

미호가 말없이 나를 응시하자 나는 쌍요를 검집에 집어넣고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미호의 한 걸음 앞까지 왔을 때 입을 열었다.

“이제 네 광증(狂症)을 억제할 유일한 방법이야.”

미호는 살포시 웃었다.

“흐응. 광증…. 너는 내가 미쳤다고 생각해?”

“세이메이의 말로는 그렇….”

“난 미친 게 아냐. 지극히 정상이지.”

그 순간, 나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평소의 미호와는 뭔가가 달랐다.

‘…서, 설마?’

말투가 다르다.

미호 특유의 말투가 전혀 아니야.

세월이 지나서 미호의 말투가 달라졌을 수도 있지만 그런 것과는 전혀 다른 뭔가가….

그리고 내가 그 위화감을 막 눈치채고 쌍요를 뽑으려고 할 때 미호의 눈이 새빨갛게 빛났다.

“내 꼬리를 되찾았을 뿐이다, 백웅.”

콰과광!!

거대한 꼬리의 힘이 내 전신을 덮쳐오는 순간 나는 절대지경의 의념으로 쌍요를 동시에 뽑아서 허공에서 교차시켜서 막았다. 그러나 단순한 꼬리치기 한 방이었음에도 나는 팔이 부숴지는 듯한 격통을 느꼈다.

“……!!”

엄청난 힘이다!

절대지경이 아니었다면 감지조차 하지 못하고 당했을 정도의 힘과 속도!

나는 이런 공격을 예전에 본 적이 있었기에 상대의 정체를 알아채고는 외쳤다.

“달기!”

설마….

그동안 미쳤다고 했던 건 사실 미호의 인격이 달기에게 먹혔던 것인가!

후우웅…!!

다음 순간, 미호의 몸뚱이가 거대해지더니 익숙한 달기의 모습으로 변화했다!

거대화한 달기가 포효했다.

[어디 한 번 싸워보자, 전생자여!!]

파밧

그와 동시에 뒤편에 있던 사공린과 전술무력요원들이 일제히 움직여서 달기에게 달려들었다. 나는 산을 일격에 무너뜨리는 달기의 꼬리공격을 쌍요의 힘으로 크게 떨쳐내며 달기에게 반격절초를 쓰려고 했다.

‘젠장!! 어디 해 보자고!’

달기와의 사투가 시작되려는 그 순간이었다.

꽈앙!!

[끄아악.]

달기가 갑자기 외마디 비명소리를 내며 얻어맞아서 날아갔다. 나는 막 쌍요를 휘둘러서 공명하려다가 멍청한 소리를 냈다.

“……엥?”

그리고 달기를 습격한 의문의 거대한 생물체가 어느 새 장내에 출현해 있었다.

그 생물체는 달기만큼이나 거대했는데, 육중한 몸뚱이를 움직이며 영언을 흘렸다.

[감히 요괴왕(妖怪王)의 영토에 침입하는 놈이 네년이냐?]

쿠구구구….

나타난 것은 두꺼비였다.

그것도 마치 산처럼 거대하다!

‘우와 뭐 저렇게 커?!’

나는 그 두꺼비가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걸 보자 깜짝 놀랐지만 이윽고 그 모습이 낯이 익다는 생각을 했다.

‘어? 저 녀석 어디서 본 것 같….’

구오오오

[받아라.]

거대 두꺼비가 어마어마한 요력을 내뿜어내며 입을 크게 벌렸고, 입에서 강대한 요력의 기운이 발사되었다.

[카아악.]

그러자 요력의 입김에 달기 또한 마주 입김으로 대항했고, 두 거대 괴물들의 기운이 부딪히자 엄청난 기운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쿠콰콰콰콰쾅

“으윽….”

“핵폭발보다 더 강하….”

뒤따라 공격하던 전술무력요원들이 경악하며 저마다 인공보패의 방어력으로 버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폭풍에 휘날려서 날아갔다. 멀쩡한 건 나와 사공린뿐이었고, 사공린은 황금빛 기운의 방어막을 소환한 채 흥미롭다는 눈으로 전방을 주시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대결이 한 차례 상쇄되자마자 어떻게 해야할지 혼란에 빠졌다.

저 두꺼비가 뭐길래 갑자기 끼어든 거야?!

‘어… 잠깐… 저거 설마….’

낯이 익다.

어?! 맞다!!

내 기억대로라면 저 녀석은 분명!!

“잠깐만!!”

나는 잠시 후 두꺼비의 형상에서 그 정체를 알아채고는 하늘로 뛰어올랐다. 그리고 두 거대 괴물의 시선이 내게로 향하자, 나는 두꺼비 괴물 쪽으로 뛰듯이 허공답보로 날아가며 외쳤다.

“너….”

[방해된다, 인간!!]

쿠콰콰콰!!

두꺼비 괴물이 다시 한 번 입김을 내뿜었다. 일격에 수백 리를 초토화시킬 수 있는 어마어마한 요력을 지닌 공격이 날아오자 나는 기가 질려서 즉시 대해방 수요를 꺼내서 무량단을 시전했다.

키잉 -

뇌전의 절대참격이 한 차례 괴물의 입김을 상쇄했지만 그러고도 맹진을 막지 못해서 내 몸을 뒤덮듯이 날아오고 있었다. 나는 괴물의 잠력이 생각보다 엄청난 걸 느꼈지만 이제 와서 딱히 막을 방법이 생각나지 않아서 초조해졌다.

“에라이! 광 - 선!!”

쿠콰쾅!!

남은 요력의 입김이 내 눈알에서 발사된 광선에 상쇄되어서 사라지는 게 눈에 보였다. 다행히도 두꺼비 괴물의 공격을 막아내자 두꺼비 괴물이 꽤 놀라는 듯 했다.

[아니, 일개 인간이 어떻게 요괴왕인 이 몸의….]

나는 급히 내 얼굴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외쳤다.

“야! 나 모르겠냐?! 나야 나!”

[뭐라고…. 네가 누구….]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두꺼비 괴물이 내 모습을 확인하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서…설마 넌….]

“그래!!”

나는 두 팔 벌려서 간만에 만나는 옛 인연에게 아는 척을 시전했다.

“오랜만이다 개똥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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