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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뭔가 불러오고 있다고?
대부분의 경우 ‘소환’이란 불길함을 상징했기 때문에 나는 급히 말했다.
“그럼 지금 당장 죽여버리는 게 낫겠습니다!”
슈욱!!
그러자 복희가 나를 공간이동으로 데려와서 자신의 곁에 소환했다. 그리고 복희의 근처에는 거대한 태극의 막이 둘러져 있었다.
[서두르지 않아도 지금 나와 여와는 전력을 다하고 있다. 그 어떤 존재도 저 안에서 무사할 수는 없다.]
복희가 전방에서 눈을 떼지 않으며 말을 이었다.
[허나 한 가지 알아두고 싶은 게 있군. 외부는 물론 너와 계약한 오제에게도 이야기는 들리지 않을 테니 솔직히 말해봐라.]
“네?”
[백웅. 너는 처음 만났던 이래로 네 목표가 뭔지 내게 정확히 말하지 않았다. 그렇지 않느냐?]
“…….”
[종말에 대비하기 위해서 수련을 하고자 산하사직도에 들어갔다가 우연히 이 세계로 오게 되었다...는게 너의 설명이었지. 하지만 단순히 수련을 하기 위해 들어왔다기에는 너의 모든 언행과 행동이 위화감이 있다.]
“별로 다른 목적은 없습니다….”
나는 기어들어가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지만 잠시 후 복희가 단호하게 말했다.
[넌 모든 신을 죽이고 싶어하는구나.]
“……!!”
[아마 그것이 너의 최종 목표일 것이다.]
뭐?! 어떻게 안 거지?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나는 최대한 표정을 관리하려 했지만 복희의 말이 이어졌다.
[너는 종말에 대비한다고 했으나 단순히 인류만을 대피시켜 안정을 도모하기 위한 목적은 그다지 없어보였다. 종말이 닥치기 전에 인류를 피신시키거나 인류를 지킬 신을 만들어내려는 노력에 대해선 언급조차 하지 않았지. 너는 종말을 맞이하는 걸 기정사실로 여기고 있었다.]
“…….”
[모순이로구나. 구원의 노력이 없는 구원자라는 건. 그리고 내 추측대로 네가 죽으면 다시 시작하는 존재라고 한다면…. 네게 있어서 최종승리조건은 인류의 구원이 아니다. 도리어 종말을 직시하는 한이 있어도 모든 정보를 얻어내어서 궁극적으로 인류에게 해가 되는 모든 존재, 즉 만신(萬神)을 말살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복희의 얼굴이 서서히 내 앞으로 다가왔다. 그의 현묘한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자 우주적인 위압감이 느껴졌다.
[몇 번을 반복해서라도.]
다 들킨 것 같다.
복희가 말했다.
[고민하고 있다.]
“뭘 말입니까?”
[네 목표가 그저 인류의 구원 정도라면 네게 전적으로 협력할 수 있겠지. 하지만 생각할수록 너는 혼돈과 질서를 가리지 않고 세계를 멸망시킬 존재가 되리라는 확신이 든다. 질서의 직계로써 세계를 멸망시킬 자를 돕는 게 옳은 것인가?]
“…….”
[솔직히 말하자면 너를 이 세계에 영겁토록 봉인시키는 게 옳겠지. 지금 너의 힘은 미약하지만 미래에는 한없이 강대해질 터이니. 굴레를 뛰어넘는 존재가 그 작업을 반복한다면 수천 번 수만 번이 쌓인 후 삼황오제를 뛰어넘는 건 당연해질 것이다.]
“그, 그건 모르는 일….”
[넌 이미 전욱의 사도가 된 적이 있더군. 내가 알기로 네가 이 산하사직도 내에서 얻은 힘만 하더라도 이미 지상의 패주가 되기에 모자람이 없구나.]
으으윽.
내가 위협을 느끼고 주춤거리자 복희가 말했다.
[그러니 대답하라, 전생자(轉生者)여.]
이미 복희는 내 삶의 궤도가 전생이라고 칭해지는 걸 추측한 듯 했다.
“무엇을 말입니까?”
[그대는 삼라만상 모든 것을 멸망시킬 기회가 온다면 그대로 실행할 것인가, 아니면 인류의 보존과 존속, 그리고 평화를 전제로 타협할 것인가?]
“……!!”
[결국 그대의 미래는 이 선택이 전부가 될 터…. 나 태룡 복희는 그 대답을 듣고 싶다.]
나는 복희의 이 질문이 굉장히 중대하다는 걸 깨달았다. 이 대답 한 번에 모든 것이 결판날 게 틀림없다. 나는 잠시동안 눈을 꿈벅이며 생각했고, 나는 이미 이 질문에 대답을 갖고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다만 이걸 말하기 위해서 필요한 건 논리보다는 용기였다.
나는 이윽고 이를 악물고 대답했다.
“복희 님. 복희 님께서 말하는 ‘모든 것의 멸망’을 저는 진공가향(眞空家鄕)이라고 부릅니다.”
[이름이 정해져 있는 걸 보면 이미 누군가가 먼저 시도했던 일인가?]
“그렇습니다. 달마라는 존재가 이후에 시도했습니다. 실패했지만.”
나는 말을 이었다.
“저는 그 달마의 뜻을 이어받아 진정한 진공가향을 이루려고 전생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진공가향이란 무엇이지?]
“[굴레]의 바깥에 존재하는 외신(外神)마저도 없애는 세계멸망입니다. 달마는 일단 진공가향 자체에는 성공했지만 외신을 없앨 방법이 없어서 실패했고 그 유지를 제게 남겼습니다.”
[…….]
뜻밖의 이야기인지 복희가 약간 눈을 크게 뜨고 나를 주시했다. 나는 이제 말 한마디만 잘못하면 그대로 소멸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용기를 내서 말을 이었다.
“아직…. 그걸 어떻게 해야할지 구체적인 방법은 모릅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이루고 말 것입니다.”
[정말 터무니없는 이야기군. 굴레 바깥의 존재들을 어찌 멸한다는 거지? 그 자들은 나의 어버이와 동격에 존재하는 초월자들…. 흠…. 허나 어떤 점에서 본다면 그대 또한 굴레를 초월한 자이니 가능할지도.]
“네. 전 타협하지 않고 언젠가 제 목표를 이루기 위해 달려나갈 겁니다. 사실은 이미 누군가가 제게 그런 제안을 했으나 거절한 적도 있습니다.”
500년 후의 세계에서 꿈을 꿨을 때, 망량선사가 마련했던 그 자리.
인류의 향후 번영과 종말의 유예를 약속하는 대신에 누군가에게 승천의 권리를 넘기라고 했던 제안. 나는 그 달콤한 제안을 걷어차 버렸고,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는다는 답을 골랐다.
다시 생각해보면 끝내주게 멍청한 선택이었지만 나는 내 선택에 후회하지 않았다. 이미 무언가와 타협하기엔 너무 멀리 와버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 의지를 확인한 복희가 말했다.
[좋다. 그러면 그대가 모든 걸 멸망시키려는 이유는 무엇이지? 어째서 행복한 눈 앞의 현실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지 않지? 인류 천년왕국의 제왕이 되어 무수한 행복을 누릴 수 있을 터. 또한 그대의 동료들도 행복해질 수 있을 텐데.]
“간단합니다.”
나는 혼탁해진 눈으로 진심을 피력했다.
“결국 신이 존재하는 한 그런 건 의미가 없으니까요…. 이 세계 그 자체를 없애지 않는 한 아무것도 끝나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끝나지 않는다고….]
“이 세계를 죽여버릴 겁니다. 누군가가 세계를 갖고놀며 조롱하는 꼴을 보느니 오기로라도 다 때려부숴버리겠습니다.”
밑바닥에서 기어올라가는 자의 증오.
그 마음은 아직도 내 심장에서 이글거리며 타오르고 있다.
이런 마음이 있기에, 나는 왕과 어울리지 않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진공가향으로 모든 게 멸망한 후 새로이 뭔가 시작된다는 보장도 없는데 말인가?]
“네.”
과거 제갈사의 죽음에서 느꼈던 것.
그리고 달마의 유지에서 느꼈던 것.
그 모든 것이 이 대답에 함축되었다.
[…….]
복희는 나를 고요히 응시했다.
[백웅. 진실된 마음을 이야기하면 내가 널 봉인시키려 할 건 예상했을 텐데 그래도 솔직하게 이야기한 이유가 있느냐?]
“복희 님이 그렇게 하신다면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그만한 은혜는 입었으니까요.”
복희에게 비록 흑요석을 건네주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복희에게 큰 은혜를 입었기에 모든 걸 각오하고 내 마음을 이야기했다. 그것이 도리라고 생각했고, 이제 복희가 날 영겁토록 봉인한다 해도 각오할 수밖에 없다.
[그렇군…. 잘 알았다.]
그렇게 말한 복희가 뜬금없이 말했다.
[백웅. 그대가 목표를 향해 최단기간으로 가는 방법은 바로 [만신을 파괴하는 자]를 부활시키는 것이다.]
“네?”
[그 존재를 부활시켜서 황제를 비롯한 모든 삼황오제를 없애고 그대가 진공가향의 의식을 치르는 동안 호법(護法)을 서게끔 만들어라. 그게 최선일 것이다.]
나는 뜻밖의 말에 눈을 꿈벅거리며 말했다.
“저를 봉인하지 않으시는 겁니까?”
복희가 훗하고 웃었다.
[처음부터 말했잖은가? 이 세계가 허구의 세계라면 이제 와서 내가 무슨 일을 하든 의미는 없다고…. 환상에 불과한 내가 바깥세계를 위해 이토록 약해빠진 전생자를 봉인시켜봤자 무슨 소용인가. 그것은 질서의 순리에 역행하는 일.]
“…….”
[도리어 네가 어줍잖은 변명이나 거짓말을 늘어놓았다면 실망하여 없애버렸을 것이다. 무의미할지언정 그런 얼간이에게 도움을 주고싶진 않으니.]
그 말에 나는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설마 죽기살기로 선택한 가망없는 답변이 도리어 정답이었다니!
나는 당황해서 말했다.
“하, 하지만 전 농담으로 말한 게 아닙니다. 언젠가 세상을 멸망시키긴 할건데….”
복희는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하하. 한 56억년 후에 말인가?]
“…….”
[보아하니 그대는 아직 전생을 시작한지 얼마 안되었나 보군.]
“네?”
[나는 내가 산하사직도 속의 기억일 뿐이라 인지하고도 별로 타격이 없다. 꿈 속의 존재일 뿐이라는 건 이미 신좌에서 태어날 때부터 어렴풋이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지. 내게 있어서는 꿈의 액자가 하나 더 늘어난 것에 지나지 않아.]
복희가 묘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이런 삶의 자세가 꼭 산하사직도 안의 존재에게만 적용되는 것이겠는가? 그대들에게도 액자가 존재하지 않겠는가? 남말할 일은 아냐.]
“……?”
뭔 소리야?
[언젠가…. 모든 존재가 진실을 직시해야 할 때가 찾아오겠지. 어쩌면 그게 진정한 종말일 수도 있을 것이다.]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하던 복희가 말을 이었다.
[그대에게 구구절절 말을 건 이유가 있다. 왜냐하면 내 힘으론 저 소환을 막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네?!”
소환을 못 막는다고?!
쿠구구구
복희의 말대로 팔괘와 월광에 갇힌 황제의 몸이 타들어가고는 있었지만 그 안에 스멀스멀 어둠의 연기가 계속 흘러나오는 중이었다. 황제가 자기 목숨을 걸고 뭔가를 소환중인 건 확실한 것이다. 내가 뻣뻣이 굳어서 눈 앞의 광경을 쳐다보고 있자 복희가 말했다.
[아무래도 저 자가 소환하는 건 외신(外神)인 듯 하군. 틀림없다.]
나는 그 말에 깜짝 놀랐다.
“외신!! 외신을 소환하는 게 가능합니까?!”
[…아무리 우리가 신이라 해도 보통은 불가능한 일이지. 설령 모든 소환조건을 맞춘다 하더라도 와주신다는 보장도 없다. 자기의 영혼만 바칠 뿐 그저 헛수고로 끝나버릴 수도 있으니 보통은 하지 않는 일.]
복희가 눈 앞을 노려보며 말했다.
[황제는 확신이 있는 것이다. 지금 불러오는 외신이 반드시 자신의 부름에 응할 것이고, 소환사인 자신을 해치지도 않는다는 확신이….]
“어떻게 그게 가능합니까?”
[딱 하나, 그게 가능한 경우가 있긴 하지….]
복희가 문득 여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나는 그 눈빛이 무슨 뜻인지 몰라서 어리둥절했지만 이내 복희가 본론을 꺼냈다.
[이쪽 또한 어버이 반고의 힘을 빌렸으니 쉽게 당하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외신의 소환이 기정사실이 된 이상 이미 이 싸움은 졌다고 볼 수 있다.]
“…….”
[백웅이여. 그대를 믿고 내 추리를 이야기하겠다. 이 산하사직도가 ‘누구’의 기억인지를.]
복희의 말에 나는 흠칫 놀랐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말해주십시오.”
누구의 기억인지를 알아야 이 보패에서 나갈 수가 있다. 복희의 말에 내가 모든 집중력을 기울이자 복희가 말했다.
[이건 삼황오제의 기억이 아니다. 여와의 기억도, 내 기억도 아니지. 또한 오제라 할 수 있는 황제와 그 수하들의 기억또한 아니다.]
“…네? 말이 안 되는….”
[이 기억의 주인은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존재다. 나는 그게 누구인지 이미 알아차렸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요순이 소멸한 건 네 짓이지?]
“…아마도 그럴 겁니다.”
[역시 그랬군.]
단숨에 모순을 짚어낸 복희의 말에 내가 찔끔해서 대답하자 복희의 말이 이어졌다.
[잘은 모르겠지만 그런 식으로 요순이 소멸할 수 있는 경우는 존재의 동시성에 모순이 발생해서라고 본다. 네가 갖고 있는 술수, 혹은 강력한 도구가 갖고 있는 권능이겠지. 넌 아마 그 도구를 이용해서 요순을 소멸시킨 적이 있었을 테고 그 이후로 요순은 네가 존재하는 세계의 시공간에서는 무조건 소멸당하게끔 변했던 것이다.]
“…….”
정말…. 어떻게 이렇게 똑똑한 존재가 있을 수 있을까?
내가 기가 질려서 입을 벌리고 있자 복희가 말했다.
[하지만 요순에게 동시성의 모순이 발생하여 멸했음에도 오제 중 그 누구도 파생효과나 영향을 받지 않았다. 즉 요순은 절대 기억의 주인이 아니며, 요순과 연관된 오제 또한 마찬가지란 소리다. 왜냐하면 저들은 모두 만신전의 인과율으로 연결되어 있으니 누군가가 꿈의 주인이라면 파생효과 때문에 뭔가 이상행동을 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황제를 비롯해서 그 누구도 예상범주 이외의 행동을 하진 않았다.]
“전욱이 황제를 배신하지 않았습니까?”
[난 평소부터 그 자가 계기만 주면 그럴 줄 알고 있었다.]
“…그렇군요.”
[그리고 나와 여와가 기억의 주인이라면 꿈의 종막이 다가오는 이 상황까지 오는 동안 뭔가 전조가 느껴져야 했을 텐데 그것도 아니었다. 신농은 말할 것도 없지.]
“그럼 누구의 기억이란 말입니까?”
[뻔하지 않은가? 지금까지의 모든 진행은 전지적(全知的)에 가까운 시점이었다. 누군가의 관점이나 의지가 개입한 적이 없지. 그렇기에 나는 제 삼자라고 추측하는 것이고, 그 제 삼자는 단 하나밖에 없다.]
“음…. 그건 설마….”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외쳤다.
“뇌신(雷神)이군요! 그 자가 이 기억의 주인인 겁니다!”
[왜 그리 생각했지?]
“…어…. 산하사직도의 그림에는 복희님과 여와님, 그리고 뇌신이 그려져 있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셋 중 하나일 건데 복희님과 여와님이 아니라면 뇌신이 아니겠습니까!“
나는 나름대로 이 추리가 맞다고 생각해서 자신감이 있었다.
파직 파직
하지만 복희는 심드렁하게 눈 앞의 외신소환장면을 보며 대꾸했다.
[틀렸다.]
“…네?!”
[그 말대로라면 뇌신은 자기자신의 기억이니 우리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새롭게 접근해서 인과율을 만들어내고 사건을 만들어야 했다. 기억의 세계라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어. 하지만 뇌신은 나와 여와의 합공에 패퇴한 뒤 두 번 다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
“…….”
[백웅. 좀 더 잘 생각해 보거라. 산하사직도가 그림이라면 총 네 명의 인물이 존재하지 않느냐?]
“네 명이라고요? 분명히 세 명이었는데….”
분명히 여와, 복희, 뇌신 세 명만이 그려져 있었다. 그 외의 인물은 족자 내에 보이지 않았다. 나는 알쏭달쏭한 복희의 말에 전혀 알 수가 없어서 발을 동동 굴렀지만 복희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림에는 그려지지 않는 등장인물…. 그건 그 사건을 관찰하고 기억으로 남긴 존재가 아니겠느냐? 관찰자가 스스로를 족자에 그리진 않겠지. 자기 눈으로 본 거니까 자기자신까지 그릴 필요가 없잖느냐.]
“…어.”
[관찰자는 네 이야기에서 미루어본다면 단 한 명 뿐이다. 그건 바로….]
두쿠쿠쿠쿠…!!
그 때였다.
어둠이 황제의 위에 내려앉았고, 그와 동시에 황제가 서서히 자신의 몸을 어둠의 안개 속으로 묻기 시작했다. 어둠에 먹히듯이 황제의 신형이 사라져가면서 황제가 말했다.
[복희…. 저주하겠다. 설마 너 때문에 종말의 때, 흉신에게 대적할 내 비장의 수단을 벌써 쓰게 되다니.]
[뭐?]
화르륵!
[위대한 혼돈이 강림하신다.]
황제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졌다. 그리고 팔괘와 월광에 둘러싸인 그 지역에는 오로지 시꺼먼 연기만이 남아서 불길한 침묵이 감돌았다. 복희와 여와를 비롯한 모든 신격들은 긴장해서 그 장소를 쳐다보았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지?
한참을 기다려도 뭔가가 나타나지는 않았다. 나는 긴장하고 있다가 아무런 일도 없자 휴 하고 한숨을 내쉬며 복희에게 말했다.
“복희 님. 별다른 일은 없는 것 같습니다.”
[…….]
“저 연기는 언제 사라지는 걸까요?”
[백웅.]
“네?”
[지금 당장 낙양으로 보내 주마. 넌 거기에서 ‘관찰자’를 찾아내어라.]
그렇게 말하는 복희의 목소리에는 긴장감이 가득했다. 그는 연기의 한가운데를 뚫어져라 주시하고 있었고, 약간이지만 [공포]를 느끼고 있는 듯 했다. 나는 어리둥절해서 복희에게 말했다.
“갑자기 무슨 말입니까? 외신이 이미 강림했단 말입니까?”
[…그래. 저기서 우리를 주시하고 있구나. 너는 이 힘이 느껴지지 않느냐?]
복희가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얼굴없는 혼돈…. 기어오는 혼돈이.]
우우웅
복희가 이내 내 몸 주위에 팔괘의 막을 띄웠다. 그리고 강제로 나를 공간이동시키며 말했다.
[반드시…. 관찰자를 찾아내라!! 그것 외엔 방법이 없다!]
파앗
다음 순간, 나는 웬 황무지같은 곳에 떨어져 있었다. 주변에는 선사시대의 원시인처럼 보이는 야만인들이 가득했고 그들이 나를 호기심어린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복희가 나를 지상세계로 돌려보낸 건가?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오오오오오.]
비통한 신의 외침과 함께 퍼석 하고 무언가 내 안에서 뒤틀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 이것은.’
사도의 계약으로 인한 연결이 사라진다?!
잠시 후 나는 하늘 너머에서 무언가가 툭하고 떨어지는 걸 볼 수 있었다. 광대한 밤하늘에서 어둡게 펼쳐진 신들의 전장(戰場)이 비치고 있었고, 그 전장에서 소호금천의 목이 뚝 떨어져서 날아가는 게 보였다.
푸콱
끔찍한 소리와 함께 또 한 번 사도의 연결이 끊기는 게 느껴졌다.
웬만해서는 느낄 수 없는 이 감각.
그리고 밤하늘에서 조각나서 흩어져가는 무언가의 잔영을 보고서, 나는 지금 무슨 일이 만신전에서 일어나고 있는지를 깨닫고는 전율했다.
저것은 전욱의 부러진 암창이다.
‘설마….’
슈슈슈슝
연이어서 밤하늘에서 신농의 거검이 날아가는 게 보였다. 그 거검을 쥐고 있는 팔은 맹수에게 당한 것마냥 갈가리 찢겨 있었다.
쿠구구구구구
[이대로는 당할 수 없다…. 하지만….]
[여와여. 그 동안 즐거웠다. 이제 마지막이구나.]
[복희…!! 이, 이럴 수는.]
여와와 복희가 누군가에 맞서서 오행신옥을 발휘하며 필사적으로 싸우고 있었으나 중과부적인지 계속 어둠에 피부가 뜯겨나가는 게 보였다. 그리고 잠시 후, 그들의 모습이 완전히 어둠에 먹혀서 사라졌다.
“…….”
나는 밤하늘을 쳐다보고 있다가 털썩 하고 주저앉았다.
삼황오제가 전멸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