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4====================
사신지혼(四神之魂)
전욱과 소호가 먼저 복희에게 덤벼들었다. 본디 그들의 본체 크기는 태룡 복희에 미치지 못하겠지만, 이 옥좌의 공간에서 신성의 크기는 거신족 같은 수준으로 비슷해져 있었다. 전욱은 어느 새 자신의 손에서 암창을 뿜어내어 던지고 있었고 소호의 은빛 깃털이 복희의 전신으로 쇄도했다.
복희는 소호의 공격을 먼저 막아내었다. 복희의 권능이 순식간에 수십만 개나 되는 태극과 팔괘의 난진(亂陣)을 만들어내었고 무수한 날개덩어리가 팔괘에 얽혀서 스러졌다. 동시에 시공간의 법칙이 일그러지며 복희의 전신이 일순간 희뿌옇게 변했고, 이윽고 한 번의 포효가 터져나왔다.
쿠화아악
소호는 자신을 향해 날아온 복희의 반격에 정면으로 맞서지 않고 피했다. 제곡이 섣불리 정면에서 대항하려다가 외우주로 추방되었으므로 당연한 행동이었다. 그리고 복희가 반격을 하려고 권능을 쓴 틈을 타서 전욱이 자신의 암창과 함께 돌격해 왔다.
투쾅!
돌격창 형태로 바뀐 전욱의 암창에 그의 권능이 잔뜩 실렸는지 복희의 팔괘방어진도 크게 뒤흔들렸다. 복희는 자신을 향해 정면으로 덤비는 전욱을 쳐다보며 말했다.
[망설이고 있군, 전욱.]
[흥….]
쐐액!
전욱은 대꾸하지 않고 이번엔 어둠을 도리깨 형태로 바꿔들어서 전력을 다해 복희의 머리를 향해 휘둘렀다. 나는 이번에도 복희가 흔들리지 않고 막을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복희는 전욱의 공격을 피하며 더욱 멀리로 공간이동했다.
‘역시 전욱은 강하군…!!’
전욱은 본디 삼황오제 중에서 손꼽히는 호전성을 지닌 무투파. 지금의 복희라 해도 전욱의 파상공세를 맨몸으로 견디는 건 지난한 일이기 때문이리라.
[네 상대는 나다!]
그리고 한 차례의 공방이 오가자 여와가 뛰어들어 소호를 추격했다.
슈슉
여와의 손바닥에서 어둠의 기운이 청은빛과 섞여서 소호의 전신을 둘러싸는 빛의 막을 만들어냈다. 소호가 당황스럽다는 듯 말했다.
[저번에 할망구라고 놀렸다고 이러기요?]
[그 입 닥쳐라!]
쿠쿵!!
또한 어느 새 염제 신농이 은빛의 거검(巨劍)을 소환해서 전욱에게 덤볐다. 전욱의 도리깨와 정면으로 맞부딪히자 두 거신이 서로 무기를 가운데에 두고 대치하는 상태가 되었다. 둘의 힘은 막상막하인 듯 했으나 이윽고 신농의 거검이 전욱을 짓누르기 시작했고, 전욱의 도리깨가 그의 어깨 근처까지 내려왔다.
꾸구국….
손쉽게 우세를 점한 신농이 훗하고 웃었다.
[나라고 해도 너희가 여럿 덤비면 힘들지만, 일대일로 제대로 싸우면 결국 이렇게 되지 않겠나?]
끼기긱
전욱이 양 손에 힘을 주어 약간 도리깨의 사슬을 위로 들어올리며 퉁명스레 대꾸했다.
[승패가 난 것도 아닌데 기고만장하지 마시오.]
[하하. 방금 전의 빚을 갚아 주지.]
콰광!!
이윽고 신농과 전욱이 다시금 무기를 휘둘러 일초를 나누었고, 그 여파로 청염(靑炎)의 폭풍이 일어나 시야를 가득 메웠다.
“으윽…!!”
아까부터 어떻게든 화안금정을 써서 시력을 보호하며 관찰하고는 있지만 번쩍거리며 터지는 것밖에 안 보여! 현실세계였다면 행성이 몇 개나 멸하고도 남을 충돌이 이미 일어나고 있었기에 나는 싸움의 규모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젠장…. 저런 놈들을 나중에 쓰러뜨려야 한다고!’
정말 무(武)로 방법이 있긴 한 걸까? 나는 새삼 회의감이 몰아쳤지만 이내 잡생각을 멀리하고 관찰에 집중했다. 지금 나는 이 전장에서 한낱 티끌에 지나지 않지만, 끼어들 틈을 잘 잡는다면 뜻밖의 이득을 얻을 수도 있다.
그리고 내가 살피기에 지금 가장 중대한 전투는 바로 복희와 황제의 대결이었다. 전욱과 소호가 복희에게 덤벼든 것도, 그리고 그런 둘을 여와와 신농이 떼어놓은 것도 바로 복희야말로 황제에게 대적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모든 승패는 복희와 황제의 일대일 대결으로 결정된다.
고오오오
아니나 다를까, 복희와 황제는 서로 마주본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황제는 황금의 기운을 가득 끌어모은 채 뭔가를 준비하고 있었고, 복희 또한 그에 대항하여 진언(眞言)을 외우는 중이었다.
‘한방 싸움인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저 둘은 이미 전투상태에 들어가 있다. 수많은 생사결을 보아왔던 경험에 따르면 이런 류의 대결은 순식간에 결판이 나게끔 되어 있다. 그때까지의 오랜 기다림이 허망할 정도로 순식간에, 그리고 압도적으로 끝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한 번의 격돌에 서로가 걸어놓은 게 많기 때문에 결과도 큰 폭으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내가 해야하는 일은 뻔하다.
복희를 돕는다!
‘복희가 이겨야 내가 무사할 수 있어!’
만일 황제와 복희의 힘이 백중세라고 한다면 내가 사소한 도움만 줄 수 있어도 복희가 압승할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아무리 황제 공손헌원이 상대라고 하더라도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으면 그의 집중력을 흐트리는 게 가능했다. 나는 복희를 도울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경험으로 알고 있다. 이런 싸움에서 사소한 변수가 크나큰 영향력을 미치지만, 자칫했다가는 끼어든 놈만 피를 볼 수도 있다. 어설프게 하면 벌레처럼 죽을 게 뻔했기에 나는 황제에게 결정적인 한 방을 먹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그 때였다.
[백웅. 끼어들지 말아라.]
[네?!]
복희가 뜻밖에 내게 영언을 전달했다. 그 내용에 나는 믿기지 않아서 반문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제가 최선을 다하면 황제라 해도 엿먹일 수 있….]
[아마 그렇겠지. 네게 그 정도 능력이 있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그래도 안 된다.]
[왜입니까?]
복희가 말을 이었다.
[간단히 설명해주마. 이 세계가 너의 말대로 거짓이라면, ‘현실’의 역사에서 나는 황제에게 패배한 것이다. 즉 이 세계에서 승패가 어떻게 나든간에 무의미하다는 이야기다. 그렇지 않은가?]
[…….]
[결국 지금의 사투에서 승리해 평화를 쟁취한다 해봤자 자기위안일 뿐이지.]
신랄하게 말한 복희가 말했다.
[내가 무리해서 황제에게 도전한 것은 다른 걸 얻기 위해서다. 네가 지금 얻어야 하는 것은 자기위안용 승리가 아니다.]
[그렇다면 얻어야 하는 게 무엇입니까?]
[너는 끝까지 자기의 존재를 숨기고 묻어가라. 그리고 황제가 숨기고 있는 패를 보고 가라!]
복희가 당부하듯 말을 부연했다.
[네 말대로라면 현실세계에서 내가 패배한 건 또 다른 이유가 있다는 뜻이다. 황제가 스스로 그 변수를 드러낼 때까지 너는 더 이상 주목을 받는 건 피해야만 한다.]
[…알겠습니다.]
[이기든 지든, 너는 그 결과에 순응해라. 그게 최선이다.]
나는 복희의 말대로 해야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일회용 승리를 얻어봤자 큰 흐름에서는 도움이 되지 않기에 끝까지 전생자로서 이득을 챙기는 전략! 생각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대단하구나.’
나는 그저 이 자리에서 승리하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아야 한다 생각했지만 복희는 그런 내 짧은 생각을 뛰어넘어서 모든 상황을 고려하고 있었다. 이렇게 똑똑한 존재는 거의 본 적이 없었기에 내가 찬탄하고 있을 때였다.
황제가 문득 복희에게 말을 걸었다.
[복희여. 다시 생각하는 게 어떤가?]
격돌 직전에 뜬금없이 말을 걸어오는 황제의 의도가 수상했다. 그래서인지 복희는 그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계속해서 진언을 준비했지만 황제는 재차 복희에게 말했다.
[우리끼리 이렇게 싸워도 흉신(凶神)만 어부지리를 얻을 뿐. 나를 믿으라곤 하지 않겠지만 이런 소모적인 싸움은 해선 안 된다.]
[황제여. 신뢰를 잃은 상태에서 뭐라고 지껄여봐야 그대의 입만 아플 뿐이라 생각지 않는가?]
[방금 전 그대는 내가 종말의 진실을 알고 있다고 추측했지. 그 말이 맞다.]
황제가 이윽고 충격적인 말을 했다.
[그건 흉신도 마찬가지다.]
[뭐?]
뜻밖의 말이었기 때문일까? 복희가 처음으로 흐트러지는 모습을 보였다. 그를 만난 후 처음 본 모습이었다. 그리고 황제가 서서히 말을 이었다.
[그 자와 나는 경쟁관계. 다른 점이 있다면 나는 포석(布石)에 집중했고 그 자는 수순(手順)에 집중했다. 누가 이길지는 종말이 되어봐야 알겠지만, 승자는 하나뿐이란 건 사실이다.]
[…….]
[앞으로 더 이상 감추지 않기로 하겠다. 원점으로 돌아가자.]
[무슨 뜻이지?]
[다 공개하겠다는 말이다.]
황제가 대범하게 자신의 양 팔을 벌렸다.
[이 무의미한 싸움을 멈춘다면 그대들 모두에게 종말의 진실을 공개하지. 그리고 우리 각자가 종말에 도전하는 자가 되어서 흉신과 맞서싸우는 것이다.]
[음….]
[승천에 올라서는 자가 누가 될지는 그때 가서 따로 경쟁하는 걸로…. 다만 흉신이 강력한 적수이니 그 자를 쓰러뜨릴 때까지는 임의로 협력하는 게 어떤가? 나로서는 경쟁자가 대폭 늘어나니 힘든 결정이 되겠군.]
뜻밖의 제안!
복희는 별다른 변화가 없는데 그 대화를 보고 있던 내가 도리어 속이 타들어갔다.
‘그, 그거만 알 수 있으면 좋겠다!’
종말 이후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대충 현상으로는 알고 있지만 어째서 왜 그렇게 되는지는 알지 못한다. 그걸 명확하게 황제가 알려주기만 한다면 굉장한 이득이다!
‘복희님 제발!’
나는 당연히 복희가 나를 위해서 저 제안에 동의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이어진 복희의 대답은 의외였다.
[거절한다.]
[어째서지? 나쁜 제안은 아닌 것 같은데.]
복희가 코웃음을 쳤다.
[가면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안했잖은가? 그 말의 진실성을 논하려면 지금 당장 계약을 해제하고 우리 모두에게 씌운 가면부터 벗겨라.]
[…….]
복희의 말에 황제가 대답을 하지 않았다. 나는 그제서야 번뜩하고 정신을 차렸다.
‘헉! 그, 그러고보니.’
복희가 순식간에 중대한 요소인 가면에 대해 간파하고 추궁하자 황제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저 제안조차도 기만이었단 말인가? 황제의 제안에 혹했다가 복희덕에 찬물을 맞은 듯 정신을 차린 기분이 든다.
황제가 웃었다.
[후후…. 아쉽군. 네가 적이란 게 아깝군.]
[닥치고 이거나 받거라.]
우웅
복희의 입에 새하얀 여의주가 소환되어 있었다.
‘저것은 아까 소모된 오행신옥?!’
설마 아까 옥좌의 벽을 뚫을 때 소모된 게 아니라 복희가 자유자재로 만들어낼 수 있게끔 흡수된 거였단 말인가?
내가 놀라고 있을 때 복희가 진노한 목소리로 외쳤다.
[태초의 질서로 돌아가라!]
반고지혼(盤古之魂)
개벽(開闢)
여의주가 빛났다. 그리고 한 순간 복희의 뒤편에 거신(巨神) 반고의 환영이 덧씌워진 것처럼 보였다. 반고의 손이 서서히 황제의 머리 위로 올라갔고, 황제는 그 손을 거부하듯 마주 손을 갖다대었다. 황제가 비웃듯 중얼거렸다.
[이 세계에 종말이 존재하는 한 혼돈과 질서의 승패는 정해져 있거늘…. 무의미하도다!]
쌍장(雙掌)이 부딪힌 순간 황제의 몸이 빛에 휩싸였다.
쿠우우우우…!!
“크윽!”
아무것도 안 보여!
나는 승패를 전혀 알 수가 없어서 이를 악물었다. 지금 죽지 않고 버틸 수 있는 게 신기할 지경이었지만 이내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구우웅
“팔괘….”
어느 새 내 몸을 둘러싼 거대한 팔괘의 방어막이 있었다. 복희가 내가 죽지 않게끔 신경써준 듯 했다. 나는 천지간에 빛이 가득한 가운데 오로지 이 방어막에만 의지해서 버텨야 했고, 언제 이 싸움이 끝날지도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언제 끝나지? 대체 누가 이기고 있는 거지?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백웅.]
들려온 것은 복희의 목소리가 아닌 전욱의 목소리였다. 나는 뜻밖이란 생각을 하면서도 그 말에 대답했다.
“전욱님. 무슨 일이십니까?”
[네게 힘을 주마.]
뭐?
후우우우우욱!!
내가 뜻밖의 말에 반응하기도 전에 내 몸에 강렬한 힘이 깃드는 게 느껴졌다. 신력이긴 했으되 완벽하게 정제된 힘이었기에, 평상시에 강신할때마다 잔류하는 신력과는 차원이 다른 힘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이내 이 신력의 정체를 알아채고는 깜짝 놀랐다.
‘이건 전욱의 본체에 있는 힘을 그대로 넘긴 것이다!’
어느 정도의 힘을 옮긴 건지는 몰라도 이건 사도에게 선심쓰듯이 내려주는 힘의 수준이 아니다. 말 그대로 삼황오제가 자신의 힘을 잃을 각오로 넘기지 않는다면 이런 순도를 지닌 신력은 줄 수 없다.
나는 삽시간에 거대한 힘을 얻고는 얼떨떨했지만 이내 전욱이 말을 이었다.
[곧 결판이 날 것이다. 그 힘을 이용해서 기습해라.]
올 게 왔구나.
이 정도 힘을 넘겨준 건 이유가 있었어.
나는 각오를 하고는 이를 꽉물었다.
“…죄송합니다. 그럴 순 없습니다.”
[그럴 순 없다니?]
“스승인 복희님을 배신할 순 없습니다!”
[호오. 빌려준 힘일 뿐인데 그 힘을 믿고 배짱을 부리느냐?]
“아닙니다. 힘과는 상관없습니다. 이는 제자로서의 의리니까 이해해 주십시오!”
전욱이 별다른 감정 없이 툭 내뱉었다.
[아까랑 말이 다르군…. 박쥐같은 놈.]
“죄, 죄송합니다. 하지만….”
전욱이 무슨 짓을 하든 복희의 방어막이 있으면 어떻게든 버텨질 것이다! 여기서는 전욱의 말을 따르는 체 하는 걸로는 대충 넘어갈 수 없을 것이다. 무리해서라도 입장을 밝히는 게 옳다는 생각이 들었다.
[…….]
전욱이 잠시동안 침묵했다. 그러더니 말했다.
[그렇군…. 아주 좋아. 복희가 아니라면 괜찮다 이 말이겠지.]
응?
무슨 말이지?
그 말이 끝나는 순간 사방을 가득 채우던 빛이 사라졌다. 황제와 복희의 대결에 약간 숨돌릴 틈이 찾아왔는지 황제의 뒤편에 환영처럼 떠올라 있던 천마(天魔)의 형상이 거대하게 부풀어 올라 있었고, 복희의 여의주가 계속해서 불꽃을 내뿜는 중이었다. 용호상박의 결투가 진행중인지 두 거대한 존재들은 어마어마한 신력을 내뿜고 있었고, 나는 내가 지닌 신력에도 불구하고 질식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복희, 제법이구나. 내가 전력을 다할 줄은.]
[허세부리지 마라.]
완전한 백중세로 보인다.
투화학
우주의 한켠이 부숴지며 균열과 함께 혼돈의 비명소리가 울려퍼진다.
거대한 우주의 구멍 속으로 온갖 물체가 빨려들어가고, 성단(星團)이 조그맣게 변해서 모래알처럼 날아다녔다.
“……!!”
괴물들이다.
지금 내가 가진 엄청난 잠재신력에 전욱이 준 힘까지 합쳐졌는데 이 공간에서 숨쉬는 것조차 힘들다…!! 그 말은 현재의 황제와 복희가 지닌 힘은 삼황오제 하나하나의 힘을 몇 배나 초월했다는 뜻이다!
‘제발…. 복희가 황제한테 이겨야 하는데!’
복희는 이 싸움의 승패가 의미없다고 했지만 내 생존확률엔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고! 가능하면 쉬운 길로 가고 싶어!
내가 간절히 소망하며 지켜보고 있을 때였다.
우우웅!!
갑자기 내 목갑이 빛나더니 내 손이 저절로 움직여서 목갑 안에서 수요와 화요를 꺼내버리고 말았다.
“엇?!”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일어난 일에 당황하고 있을 때였다. 전욱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들려왔다.
[제법 좋은 무기들이군. 특히 이 칼은 왜 내 권능이 깃들어 있지?]
“전욱 님!!”
사도의 인과율을 빌미로 전욱이 내 몸을 조종한 건가! 나는 전욱의 강제력을 이겨내려고 필사적으로 저항했고, 잠시동안 그의 영향력을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완전히 이기지는 못했는지 나는 억지로 수요와 화요를 양 손에 들어야 했다.
“이러지 마십시오! 저는 복희 님을 공격할 생각이 없….”
[그러니까 복희만 아니면 된다는 소리군. 같은 말을 몇 번이나 반복하는 것이냐?]
“어….”
무슨 말을 하고싶은 거야?
잠시 후 전욱이 즐기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기본재질은 쓸만하군. 조정해 볼까.]
쿠구구구!!
촤라라락
다음 순간 내 몸의 상중하단전에 전욱의 신력이 충천했고 신력이 저절로 신체능력을 개화시켰다. 개화시킨 능력은 마치 대라멸진을 해방할 때와 같은 강렬한 해방감을 선사해 주었고, 내 몸 안에 있던 무수한 신력조차 마치 흙탕물을 헤집듯 전욱이 억지로 훑어서 끌어올렸다. 온 몸의 칠공(七孔)에서 흘러나오는 신력을 감당하지 못해서 빛이 뿜어져나올 정도였다.
콰콰콰콰
수요와 화요에 강렬한 신기(神氣)가 뭉치더니 한 번 정제되어 조그맣게 변했다. 그리고 압축된 신기가 또 다시 압축된 후 다시 커졌다!
‘전욱이 신력을 대신 조작하고 있어!’
어이가 없어서 입을 쩍 벌리고 있을 때 소호금천의 목소리가 들렸다.
[전욱. 너만 갖고 놀지 마라. 그건 내 사도이기도 하다.]
[둘이서 조종하면 일이 꼬인다, 소호.]
[좋다. 백웅의 눈에서 파괴광선이 나가게 해 주마. 입에서도 나가면 재밌겠군.]
[넌 참 광선 좋아하는군.]
둘의 대화를 듣자 나는 기가 막혀서 입을 쩍 벌렸다.
“…….”
이 새끼들 내가 장난감인 줄 아냐!!
[자, 지금부터 네놈은 본좌의 칼이다. 조종해 줄 터이니 있는 힘을 다 해라.]
“잠깐만….”
[가라.]
타닷
다음 순간, 전욱이 억지로 내 몸을 전방으로 뛰어들게 했고 나는 그 명령에 저항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전욱 하나만이었다면 어느 정도 저항할 수 있었겠지만 소호금천까지 끼어들어서 내 몸의 통제력을 박탈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나는 모든 게 끝났다는 생각에 암담해졌다.
‘아! 내가 복희를 기습하게 되다니…!!’
본의아니게 복희를 배신하게 됐다는 생각에 암울해져 있었지만 이윽고 나는 내 몸이 복희를 지나쳤다는 걸 알아챘다.
파바밧!
그리고 어느 새 황제의 지근거리까지 와 있었고, 양 손에 들려있는 수요와 화요가 강하게 공명하기 시작했다.
황제 공손헌원의 용가면이 순간 나를 주목하는 게 느껴졌다.
‘…어?’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끼기도 전에 수요와 화요에 깃들어있는 힘이 불을 뿜기 시작했고 나는 전력을 다해서 칼을 휘두르고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크하하하하하!!]
전욱의 광소가 머릿속에 울려퍼졌다.
[백웅, 황제를 죽여라!]
쌍요공명(雙曜共鳴)
최초의 칠요신살기(七曜神殺技)가 펼쳐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