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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1112화 (1,109/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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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신농이 대뜸 가면을 벗겨달라고 하자 나는 당황했다.

‘씨발!’

뭐가 이렇게 꼬인다냐?

정말 가면을 벗길 거라는 생각은 별로 안 했다고! 그냥 죽기 아니면 살기로 계속 질러본 것뿐이었는데 이런 상황까지 오게 되다니!

‘하, 할 수 있을려나? 근데….’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일단은 아마 할 수 있을 것 같다. 왜냐하면 나는 이미 ‘신’으로 추측되는 놈의 가면을 벗긴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기어오는 혼돈].’

추측이긴 하지만 거의 확실할 것이다. 외우주에서 달마가 희생해서 진공가향을 이루었을 때 신투지존을 따라온 괴인의 가면을 벗긴 적이 있었다. 그 놈 또한 신적 존재였으니 만상지투로 신적 존재의 가면을 벗길 수 있는 건 아마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그 때는 엄청난 집중력과 나 자신을 초월한 역량이 발현된 상황이었다. 마치 천뢰신무를 썼을 때 처럼 두 번 하라면 할 수 있을지 장담을 못 하는 것이다. 신투지존의 비참한 최후에 격분했던 감정이 그 때의 성공을 이끌어냈기에, 아무것도 없는 맨바닥에서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심지어 그 때는 신투지존이 2천년이나 쌓아왔던 신역절기 일수탈혼의 인과율을 전해받지 않았던가? 그것도 없는 상태에서 무작정 신의 가면을 훔치려 해 봐야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나는 급히 말을 돌렸다.

“신농님! 가면을 지금 벗기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여긴 황제의 본거지이니 섣부른 행동을 했다가는 어떤 일이 생길지….”

[상관없다. 가면을 쓰면 황제에게 당할 수 있으니, 도리어 벗길 수 있다면 당장 벗기고 싶다.]

“네? 당하다니….”

[네 입으로 말하지 않았는가? 가면을 쓰는 건 나쁜 일이라고. 나는 네 말을 믿어보기로 했을 뿐이다.]

“…….”

[서둘러라. 여와와 복희라면 충분히 버틸 수 있겠지만 지체해선 안 된다.]

신농이 재촉하자 나는 말돌리기로 빠져나갈 수 없는 상황임을 알아챘다. 신농은 그저 충동적으로 내게 요구하는 게 아니라 가면을 벗기는 게 자신에게 큰 이득이라고 진심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삼황 신농이 집중하고 있다면 내가 어떤 계책을 써도 먹히지 않는다.

‘윽… 제기랄…. 시도할 수는 있는데 실패하면 어쩌지?!’

그러면 당장 신농은 나를 거짓말쟁이라 생각할 것이고, 가면을 벗길 수 있다는 명분으로 복희의 제자가 된 내 신변이 무척 위태로워질 것이다. 뿐만 아니라 복희를 기만한 셈도 되기 때문에 복희의 손에 당할 수도 있으리라.

방금 전 전욱이 앞에 있을 때보다 더욱 위기상황이었기에 나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외통수였다.

할 수밖에 없어.

다만 이대로 가면벗기기를 시도했다가 실패해서 죽게 되면 억울했기에 나는 일단 정보를 좀 더 얻어내기로 마음먹었다.

“신농 님. 그럼 신농 님이 가면을 벗으셔도 미치거나 폭주하지 않으신단 말입니까? 사실 그게 염려되었습니다.”

[미친다고? 왜?]

“아…. 그게 가면이란 게 인간의 모습과 인격을 위장할 수 있게 하는 거니까 그게 사라진다면 당연히….”

나는 미래에 복희가 미쳐서 태고의 용으로 돌변하게 된다는 걸 알고 있기에 그렇게 말했지만 신농은 말도 안된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가면이 인간처럼 보이기에 편한 건 사실이지만 진짜 용도는 성향의 조작과 인과율의 우선권이다. 우선은 전욱이나 제곡같은 혼돈태생의 [지배자]들이 마치 우리들 질서의 신처럼 우주의 균형을 조작할 수 있지. 그리고 가면을 쓰고 있는 동안에는 우리가 무조건 이 지구에서 인과율에서 우선권을 얻게 되는 것이다.]

“네?”

[미친다라…. 확실히 우리가 신성으로서의 본질만 행사하고 살아가는 게 너희 인간의 눈에는 미쳤다고 볼 수도 있겠지. 허나 신에게 윤리나 도덕의 관념은 따로 존재치 않는다.]

신농이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말했다.

[이를테면 내가 본체의 힘을 쓰면 지구따위는 눈깜짝할 사이에 구워버릴 수 있다. 그 위의 모든 생명을 죽일 수 있지. 그런 일이 생기면 너는 나를 미쳤다 할 것이냐?]

“그, 그렇겠지요. 미친 짓 아닙니까. 왜 그런 짓을….”

[하고 싶으니까. 그리고 너희는 벌레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건 신의 성질에 충실한 것 뿐, 전혀 미친 게 아니다. 너희는 개미집을 밟은 사람에게 극악무도하다고 악인의 고리를 쉽사리 씌울 수 있느냐? 인간의 도덕률에서 개미를 죽인 게 큰 죄인가?]

“……!!”

[물론 본황 또한 복희처럼 인간을 긍휼히 여기므로 그럴 일은 없다…. 그러나 이는 혼돈이든 질서든 변하지 않는 우주의 법칙이다. 너희가 이 우주에서 너무나 하찮은 존재이기에 감수할 수밖에 없는 일.]

나는 신농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하다가 말했다.

“즉…. 가면을 쓸 때보다 좀 더 본성에 솔직해지고 힘을 맘대로 휘두르게 된다는 건 사실이군요.”

[그렇지. 잘 이해했군.]

“오제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까?”

[오제?]

“아, 그게…. 저는 삼황오제라고 부릅니다.”

내가 삼황오제라고 묶어부르는 걸 간단히 설명하자 신농은 이해하고는 대꾸했다.

[우린 원래부터 파괴와 폭력을 즐기지 않았으니 큰 차이가 없겠지만 네가 오제라 칭하는 자들은 좀 다르지. 아마 우리보다 더욱 극적인 변화가 있을 것이다.]

“극적인 변화라면 어떤…?”

[그들이 태초부터 취하고 있던 모습으로 되돌아가며 가면을 쓰며 봉인되었던 몇 가지 혼돈의 권능도 부활하겠지.]

“……!! 네? 오제의 힘이 봉인되었다고요?”

이게 무슨 말인가? 뜻밖의 정보에 내가 눈을 둥그렇게 뜨자 신농이 말했다.

[황제가 그들에게 가면을 씌우며 생긴 제약이지. 본래 놈들은 좀 더 강력한 자들이다.]

“무, 무슨. 지금도 엄청 강합니다만.”

[네가 오제라 칭하는 자들은 전 우주에서 손꼽히던 악명높은 혼돈들 중에서도 최강이라 불리던 놈들이었다. 힘만으로 줄을 세우면 최상위에 서 있던 절대자들. 그런 놈들을 모아서 지구에 온 황제의 의도가 여실히 보였지. 흐흐.]

신농이 씹어뱉듯 중얼거렸지만 나는 그 순간 과거의 일이 떠올랐다.

[바라던 바요. 어차피 힘이 부족하지는 않은 터. 우리는 이 가면이 싫은 거요.]

[그 가면에 장점도 있을 터인데.]

[유희는 끝이오.]

과거 22번째 죽음 당시, 전욱이 삼황오제의 집회에서 했었던 말이 기억난다.

[내가 정말로 그 행동 하나때문에 인세를 멸하려 한다 생각하느냐?]

[…네?]

[이건 기회다. 이 가면을 벗고 내가 자유를 되찾을 기회…. 그간 줄곧 원해왔으나 이루지 못했던 일이다. 언제가 되었든 나는 너를 지배해서 내 뜻을 이루었을 터! 네 행동은 하나의 계기였을 뿐이니 자책하지 말거라, 백웅.]

나는 그 때 이후로 줄곧 오제 전욱이 어째서 그렇게까지 가면을 벗는 일에 집착하는지 의아했었다. 본인한테 물어봤자 제대로 대답해줄 일이 아니라서 이런저런 추측만 했을 뿐 확실한 답안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 이유가 좀 더 확실해졌다.

그 자들은 가면을 쓰고 이 지구의 쟁탈전에서 다른 [옛 지배자]들보다 인과율에서 최우선권을 지니는 대신, 본래 우주급 혼돈이 사역하던 권능 중 일부를 봉인당했던 것이다! 당연히 힘을 가진 절대자 입장에서는 가면을 벗고 예전에 부리던 강력한 힘을 되찾고 싶을 것이리라.

“…….”

[반면에 우리 질서측은 가면을 써서 그다지 얻은 건 없었다. 인과율의 최우선권을 얻은 건 좋았지만 결국 황제와 찝찝한 계약을 하게 된 셈이었으니까. 허나 종말과 계시 때문에 수백 마리의 [옛 지배자]가 지구에 드글거리며 몰려온 상황에선 다른 선택지가 없었노라.]

“그래서 가면을 벗으시려는 거군요.”

[그렇다. 황제가 어떤 장난질을 쳐놨을지 모르는 이 가면을 빨리 벗고 싶구나. 하물며 이리도 중대한 결전을 앞둔 상황에선 더더욱!]

신농이 나를 뚫어져라 보며 말했다.

[설마 그리도 호언장담해 놓고 벗기지 못하는 것이냐?]

“어….”

[네 얼굴가죽을 벗겨버릴 수도 있다.]

“아, 아닙니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럼 해라.]

나는 신농의 재촉에 사면초가 상황이란 걸 느낄 수 있었다. 여기까지 왔으면 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리라.

‘에라이. 많은 걸 알았으니 죽어도 여한은 없다!’

나는 그렇게 내심 중얼거리며 서서히 만상지투를 발동시키기 시작했다.

스스스 -

나는 만상지투의 요결, [훔칠 것을 떠올린다]를 시전했다. 우선 훔치고 싶은 걸 심상으로 확실히 만들어놓는다면 그것이 신의 혼이라 해도 훔칠 수 있다 - 그것이 바로 만상지투! 그리고 나는 신농의 가면을 [훔칠 것]으로 생각하며 벗기려 했다.

하지만 -

“……?”

어라…. 가면이 어디 있지?

은염의 거인의 얼굴이 들이대져 있지만 가면따위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만상지투를 써 보려고 해도 [신의 혼]을 이혼대법으로 움직이고 구현화시켰을 때와는 달리 가면은 구현화되지 않았다.

‘왜지?’

뭔가 안 되는 이유가 있는 건가?

나는 이내 마음속에 뭔가 짚이는 게 있었다.

‘…역시 신역절기 정도의 도움이 없으면 곧장 신의 가면에 도달할 수는 없는 건가.’

조건이 맞지 않았기에 나는 어쩔 수 없이 신농에게 말했다.

“신농 님…. 가면이 안 보입니다. 죄송하지만 보이게 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가면이란 본디 형체가 있는 게 아니다. 신의 계약에 의해 얽매여진 인과율이라고도 할 수 있다. 나와 계약의 당사자인 황제끼리라면 가능하겠지만, 그런 이유로 지금 네가 말하는 요구는 들어줄 수 없다.]

“…….”

[가면을 볼 능력이 없다는 말인가?]

“이, 있습니다. 그게….”

전시안을 쓰면 되나?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전시안을 발동시키려 했지만 문득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아! 전국옥새를 소호한테 바쳐버렸다….’

전시안은 전국옥새를 매개체로 발동하는 능력이라서 그게 없으면 쓸 수 없다!

‘그렇다면.’

나는 난감함을 느꼈지만 이내 다른 방법도 있다는 걸 알았다.

[이 주문은 상대의 가면을 직시하고, 눈을 뜨게 만드는 능력이 있다. 주문이 숙련되면 점점 상대의 배후에 존재하는 가면을 시각화해서 볼 수 있을 것이고, 그 가면이 눈을 뜨는 장면을 보게 될 것이다.]

신투지존이 가르쳐준, 천면공자 수련의 2단계!

정확히는 108자의 진언을 외운다면 상대의 심연을 눈뜨게 할 수 있으며 가면을 훔칠 수가 있다! 다만 이게 삼황오제 정도의 상대에게도 통할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일단은 해 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웅얼웅얼….

나는 서서히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주문이 이어지는 동안 신농은 불쾌한 기색을 보였다.

[네 녀석…. 그 주문은 대체 뭐냐.]

명백히 느껴지는 강력한 불쾌감에, 나는 주문을 외다말고 급히 중단하고 대답했다.

“처, 천면공자의 2단계입니다. 상대의 가면을 눈뜨게 하는….”

[뭐…? 가면을 눈뜨게 한다고? 무슨 뜻이냐.]

나는 천면공자의 2단계에 대해 신농에게 설명했다. 내 설명을 들은 신농이 묵묵히 듣고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됐다! 그런 거라면 벗기지 않아도 좋다!]

갑작스러운 태세변환!

나는 방금 전까지 나를 을러대며 가면벗기기를 요구하던 신농이었기에 의아한 생각이 들어서 그를 쳐다보았다.

“네? 108자만 외우면 가면이 눈을 뜹니다만….”

[네 녀석은 자기가 말하고도 그게 무슨 뜻인지 모르느냐? 가면이 눈을 뜬다는 게 얼마나 극악한 흉행(凶行)인지를 모르는 것인가?]

“……?”

[사악하고, 사악하여, 사악하도다…. 세상에서 가장 사악한 주문 중 하나로구나.]

한탄마저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신농은 진심으로 주문의 사악함에 치를 떠는 듯 침묵하다가 말했다.

[그 주문의 창안자는 짐작이 가는군. 그 주문을 써서 가면을 벗길 바에는 차라리 하지 않겠노라. 내 가면이 눈을 뜨면 어떤 참사가 일어날지 짐작도 가지 않는다.]

씹어뱉듯 중얼거린 신농이 내게 경고하듯 말했다.

[백웅이여. 앞으로도 그 능력은 쓰지 말거라! 절대로!]

“……?! 네?! 어째서.”

[파멸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혼돈이라면 상관없겠으나, 너같은 일개 인간이 그 주문의 대가를 책임질 수 있을 것 같지는 않군. 내 경고를 새겨 듣거라.]

“아, 알겠습니다.”

신농이 너무 과민반응하는 게 아닌가?

‘뭐, 지금 당장 안 죽었으면 됐지 뭐….’

나는 의아한 기분이 들었지만 어쨌든 이 상황은 넘겼으니 상관없다. 잠시 후 신농이 차원의 문을 열며 사라지며 말을 남겼다.

[길을 열어둘 테니 뒤따라오라.]

파앗!

신농이 사라진 차원문이 열려있는 채로 백색의 빛을 내뿜고 있었다. 길을 열어둔다 한 것은 아마도 저 차원문이야말로 이 혼돈스러운 만신전에서 길을 잃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되었다는 뜻이리라.

“좋았어. 가 봅시다, 사형들.”

“…….”

“사형들?”

나는 원시천존과 태상노군을 쳐다보았지만 그들의 얼굴이 납처럼 굳어져 있었다.

왜 저러지?

잠시 후 원시천존이 먼저 입을 열었다.

“사제. 우린 여기까지일세.”

“네?”

“신성(神聖)이 너무 강력하여 저 차원문을 넘는 순간 우리는 분해되고 말 것일세. 신성이 존재하지 않는 자는 저 문턱을 넘을 수 없어. 아마도 황제가 격하(格下)의 존재들이 내전(內殿)에 침입할 수 없게끔 제약을 걸어둔 것 같군.”

“사형들은 반인반신이잖습니까. 신성이 없단 말입니까?”

“그건 표현일 뿐일세. 우리가 진정으로 궁극의 신화(神化)을 이루어 초월존재가 된 건 아니지.”

“…….”

“하지만 사제는 어마어마한 신력을 지니고 있으니 저 문을 넘을 수 있을 것이네.”

스윽

그렇게 말한 원시천존이 자신의 원시천반을 손바닥만하게 만들어서 내게 건네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자 얼굴이 구겨졌다.

“윽. 설마….”

“최초의 보패 원시천반을 받게. 그리고 들어가서 스승님을 돕게.”

“이런 걸 받을 수는 없습니다. 뭣보다 전 원시천반을 쓰는 방법을 전혀 모릅니다.”

내 말에 원시천존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잘 모르면 신력을 넣고 던져버리게. 그걸로 족할 것이네.”

“…….”

원시천반같은 최초의 신급 보패를 그렇게 단순무식하게 써도 되나?

내가 어이없어하고 있을 때 옆에 있던 태상노군이 천천히 내게로 다가오더니 말했다.

“손을 내밀라.”

우웅!!

손을 내밀자 태상노군이 나와 손을 마주쳤고, 기이한 소리와 함께 내 손바닥 위에 조그마한 태극이 새겨졌다. 태상노군은 손을 떼며 말했다.

“내 술력을 소모해서 네가 신술 태극도를 쓸 수 있게 했다.”

“네?! 그게 가능합니까?!”

“딱 한번 뿐이지만.”

“…….”

“한 번의 기회를 잘 활용해라.”

“알겠습니다.”

아무래도 천계의 삼청이 내게 기대를 걸고 있는 듯 했다. 나는 결연한 눈으로 사형들을 쳐다본 후 말했다.

“황제 면상이나 보고 오겠습니다!”

파앗!

내가 차원문에 발을 딛자마자 나는 거대한 우주의 혼돈에 발을 들인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새하얀 굴곡과 나선 속으로 끊임없이 빨려들어가다가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광대무비한 우주에 적운(赤雲)이 피어있는 걸 볼 수 있었다.

아니, 이건 내가 알던 암천의 우주와 다르다. 마치 안개같은 성운이 가득한 측정불가의 공간. 무량대수의 공간이 무한히 뻗쳐있는 본격적인 무언가 -

그 머나먼 공간 속에서 나는 허공에 두 존재가 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태룡(太龍)과 여와!

고오오오오

복희는 자신의 거대한 본체를 드러낸 체 몸 주위에 수억 개나 되는 여의주(如意珠)를 만들어낸 상태였다. 그리고 여와는 그런 복희의 머리 위에 올라탄 채 다섯 개의 옥(玉)을 띄워서 힘을 모으고 있었다. 나는 그 상태를 보자마자 여와가 무엇을 소환했는지를 금방 눈치챌 수 있었다.

‘오행신옥(五行神玉)!’

창세신(創世神)의 업(業)!

과거 여와가 오제 중 세 명을 동시에 상대할 때 꺼냈던 오행의 근원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저것은 [법칙] 그 자체의 구현화라고 할 수 있었는데 엄청난 위력을 지니고 있었기에 오제들조차도 오행신옥을 다루는 여와를 두려워했을 정도였다.

피피핑

여와는 오행신옥을 한데 모아서 오망성을 만들어낸 후 전방으로 손을 뻗으며 공격했다.

쿠웅 -

성운의 한가운데에 고여있던 암천(暗天)을 타격한 오행의 빛줄기였으나 둔중한 파괴음이 울린 후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여와가 그 모습을 보며 말했다.

[황제여! 겁쟁이처럼 옥좌 뒤에 숨었느냐? 당장 나와라!!]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여와가 악에 받쳤는지 한층 더 강하게 말했다.

[이곳은 혼연(混然)이 가득한 거대한 우주의 가락이구나!! 무슨 속셈으로 이런 곳에 옥좌를 만들었는지 모르겠으나, 우리는 질서의 후예이니 혼연에서도 피해를 입지 않는다! 시간을 끌어봤자 무의미하다, 황제!]

혼연?

내가 그 말에 주변을 둘러보자 어쩐지 이곳에서 기시감이 느껴졌다. 내가 그 감각이 뭔가 생각하고 있을 때 여와를 머리 위에 태우고 있던 태룡 복희가 말했다.

[만신전의 우주가 더욱 넓어지는구나.]

후우우웅

그 말 한마디와 함께 나는 그들의 모습이 순식간에 점처럼 변해버렸으며 광대무비한 거리가 생겨났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갑작스럽게 내가 어디 있는지도 모를 정도가 되어버렸으며 우주의 미아가 된 듯 했다.

“……!!”

젠장! 다시 복희와 합류해야하는데 어떻게 하지?

골치아픔을 느끼고 있을 때 갑자기 우주 저편에서 복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자여 이리 오라.]

파앗!!

그 순간 나는 엄청난 거리를 뚫고 순식간에 복희의 곁에 올 수가 있었다. 내가 얼떨떨해서 머리를 긁고 있자 복희가 말했다.

[황제가 자신의 권능으로 성단(星團)을 계속 창조해서 우주를 넓히고 있구나. 우리를 뿔뿔이 흩어지게 하여 만신전의 옥좌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려는 계략이다.]

나는 입을 벌렸다.

“서… 성단? 아무리 황제라지만 그런 걸 창조할 수 있습니까?”

[여긴 실체우주가 아니니 가능하지. 이 곳은 황제가 만들어낸 세계다.]

복희가 중얼거렸다.

[황제라면 어쩌면 실체우주에서도 이런 짓이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그 때였다.

슈욱!!

신농이 마침 복희의 옆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신농 또한 자신의 본체를 크게 만들었는지 그 크기가 거룡 복희에 전혀 뒤지지 않았다. 신농은 팔짱을 낀 채 말했다.

[복희여! 저 옥좌 안으로 들어가야 황제를 토벌할 수 있을 것이다.]

[흐음, 좋아. 그럼 어디 간만에 해 볼까.]

복희가 나직이 여와에게 말했다.

[나의 쌍둥이 혈육, 여와여! 방법은 하나뿐이다.]

여와는 흠칫하며 대꾸했다.

[설마….]

[그 설마다.]

복희는 단언하듯 말했다.

[반고를 강신(降神)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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