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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1111화 (1,108/1,615)

1111====================

사신지혼(四神之魂)

전욱에게 한 칼을 먹이라구?

나 혼자서?

“쳐돌았….”

나는 원시천존에게 뭐라고 하려다가 입을 웅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상대는 천계의 창립자이며 삼청의 일인인 원시천존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아서 힘겹게 원시천존에게 항변하듯 말했다.

“아, 아니 제가 어떻게 저런 강력한 존재와 싸웁니까!”

“하면 될 것일세.”

“무슨….”

원시천존이 담담하게 말했다.

“사불상을 빌려주지. 해 보게.”

우웅

다음 순간, 나는 어느새 사불상 위에 올라타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원시천존과 태상노군은 더 이상 나와 말을 하지 않고 빛줄기로 변신해서 혼돈 속에 몸을 숨기고 있는 제곡을 향해 날아갔다. 그들의 외침이 신어(神語)가 되어 울려퍼졌다.

[제곡이여!]

[물러나시오!]

제곡이 화답하듯 대꾸하는 게 들려왔다.

[복희의 제자들인가. 너희가 날 이길 수 있을 것 같으냐?]

제곡이 있는 것으로 추측되는 장소에서 오색광(五色光)이 휘말려 올라서 소용돌이를 만들어 내었고, 소용돌이 속으로 삼청의 빛이 빨려들어가는 게 보였다. 그리고 잠깐 적막이 일어난 후 눈을 에리게 할 정도의 섬광이 일어났다.

번쩍!!

쿠구구궁….

광대한 소우주의 균열이 일어나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분명히 근처일 텐데도 제곡과 삼청 둘의 충돌은 별빛이 흐르는 어둠의 우주를 진동시키는 듯 했다. 그리고 아마 이 느낌은 착각까진 아닐 것이다. 너무 강력한 존재들이 충돌하기에 시공간이 무한히 확장되며 진동이 울리는 것이리라.

그리고 나는 그 상황에서 침을 꿀꺽 삼키며 전욱을 바라보았다.

[크크…. 좋은 구원군이 와 주셨군, 신농.]

[부른 적 없다.]

[그런가? 하여간 벌레 따위가 구하러 오다니 거신의 체면이 말이 아니시군.]

쿠드득

비웃듯 말하는 전욱은 여전히 신농의 옆구리에 박아 넣은 암창에 더욱 힘을 주어 신농을 찢어발기려 하고 있었고 신농은 부상을 입은 상태로도 전욱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다.

“…….”

도대체 저 괴물을 상대로 어떻게 신농을 구출해야 하지?

‘제길… 전욱을 어떻게….’

솔직히 자신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너무나 힘의 차이가 현격하다. 내가 아무리 절대지경이고 막강한 잠재력이 있다 하더라도 상대는 진짜로 전우주를 주름잡는 상위신격 중 하나다. 내가 동료들과 함께 다 함께 전욱에게 덤벼든다 해도 생채기 하나 낼 수 있을지 의문인데 나 혼자서 전욱을 쳐야한다니?

그나마 전욱을 상대로 승산을 점칠 수가 있다면 사대신기를 쓰는 것뿐이다. 그러나 사대신기 중 바람의 바유는 나를 미래로 보낸다고 힘을 다 썼고, 불의 아그니 또한 천우진의 봉인을 풀어주는데 힘을 소모했으며, 뇌전의 바즈라도 [별을 뒤트는 자]를 없앨 때 써 버렸다.

결국 사대신기 중에서 남은 것은 물의 바루나 뿐.

나는 잠시 머릿속 정신세계에서 물의 바루나를 떠올려서 살펴보았다. 마치 깃발처럼 생긴 바루나의 힘은 미지수이지만 사대신기의 격을 생각하면 전욱에게도 먹힐 가능성은 있으리라.

하지만….

[작은 굴레]를 맘대로 조작할 수 있는 상대에게 무슨 수로 사대신기를 적중시킬 수 있을까?

‘강대한 신성인 전욱에게 속도는 무의미해. 적중당했다는 인과를 바꿔버릴 수도 있고, 시간을 정지시킬 수도 있고, 시간을 되돌려버릴 수도 있어….’

[작은 굴레]를 자유자재로 조작할 수 있는 신에게 시공간의 제약은 없다시피 하다. 즉 신을 상대로 무술(武術)의 모든 초식이나 속도는 무의미해지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기습공격이 통하지 않는다는 뜻이었으므로 나는 골치아픔을 느꼈다.

이래서는 대라멸진을 써봤자다. 대라멸진을 써서 수십 배 빠르고 강한 공격을 하면 뭐하는가? 필멸자나 마왕 수준이라면 몰라도 신한테는 그런 식으로 타격을 줄 수 없다.

순간 머릿속에 무사시가 떠올랐다. 신살참을 썼는데도 처절하게 전욱에게 농락당하고 벌레죽이기를 당했던 무사시. 이젠 무사시와 싸워도 충분히 이길 수 있으나 그 무사시와 내 실력차가 그렇게 크다고 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하물며 그 때의 전욱은 사도인 내 몸에 강신한 것뿐이었지만 지금은 전욱 본체를 상대로 하는 것이니 더더욱 가능성이 낮다.

‘젠장….’

바루나를 소환해야할지 말아야할지 갈등하며 머뭇거리고 있을 때였다. 문득 나를 태우고 있던 사불상이 퉁명스럽게 내게 말했다.

[우유부단한 녀석이군. 지금 어쩌고싶은 것이냐?]

“공격은 해야겠는데 맞춘다는 보장이 없어.”

[뭐냐. 굉장히 당연한 얘기를 너무 진지하게 하는군. 싸움이 다 그런 게 아니냐?]

촤라락

사불상이 자신의 용린을 곧추세우며 사슴같은 뿔을 크게 앞으로 내밀자 뿔에 강렬한 전류가 감돌았다. 전신이 흰 빛으로 빛나던 사불상이 외쳤다.

[준제도인 나와라!]

파직 하는 소리와 함께 사불상의 뿔에서 전류가 치솟더니 전방에 기이한 흑백옷을 입은 한 명의 도인이 소환되었다.

[전욱한테 덤벼라.]

그 도인이 소환되자마자 사불상이 뿔을 까딱거렸고, 그 신호에 맞춰서 도인이 자신의 손에 들려있는 어린아이 크기만한 거대염주를 들고 전방으로 돌진했다.

쿠콰콰쾅

도인이 돌격하자 보이지 않게 쳐져있던 반투명한 보호막에서 충돌이 일어났고, 준제도인은 자신의 거대염주를 알알이 분리하더니 팔괘진을 만들며 보호막을 뚫으려 했다.

“……?!”

나는 황당해서 사불상에게 말했다.

“저건 무슨 술법이냐!”

[내 고유능력이다. 나는 가상의 도인 한 마리를 현실에 만들어낼 수 있다!]

“뭐?!”

사불상이 슬쩍 자랑스러운듯 자신의 등 한가운데에 박혀있는 새하얀 비늘을 내게 보여주며 말했다.

[보이느냐? 복희님의 용린이다. 복희님께서 내게 특별히 하사하셨지! 저 도인은 용린의 힘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복희의 비늘인가.”

나는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저건 특정한 술법이나 신술같은 게 아니라 복희가 사불상에게 내려준 가호나 다름없는 것이다. 복희의 비늘을 매개로 하여 가상의 신선을 만들어내어 조종할 수 있는 능력!

‘근데 왜 미래의 사불상은 저 능력을 못 썼지?’

그러고보니 저 하얀 비늘, 미래의 사불상한테서는 못 봤던 거 같은데?

내가 의문을 품고 있을 때였다.

전욱이 성가시다는 듯 한 번 준제도인을 노려보았고, 준제도인이 그대로 폭발해 버렸다.

퍼버벙!

“앗!”

[흠, 터졌군.]

“뭘 그리 담담하게 얘기하고 앉았냐. 큰 손해 아냐?”

[또 만들어보겠다.]

파앗

사불상의 뿔이 번쩍하자 또다시 준제도인이 소환되어 있었다. 언제 터졌냐는 듯 상처하나 없어 보였다.

“…이, 이거 무한소환 가능하냐?”

[그렇다! 한마리 이상은 못 소환하지만!]

사기능력이잖아!

나는 황당해했지만 사불상이 으르렁거렸다.

[이 멍청한 놈. 언제까지 전욱을 공격하는 걸 망설일 셈이냐? 원시천존과 태상노군이라 해도 만신전의 제곡을 상대로 오랫동안은 못 버틴단 말이다.]

“윽. 그들은 뇌신을 상대로도 버텼잖아.”

[태극도와 원시천반이 강력하다 해도 이 장소는 만신전이다. 제곡에게 있어서는 자기집 앞마당이나 다름없으니 평소보다 더욱 강력한 것이다. 자칫하다가는 그들 모두가 소멸당하고 만다.]

“…….”

[자, 싸울 준비를 해라. 내가 준제도인에게 명령해서 널 돕게 하겠다.]

사불상의 경고에 나는 신농이 쉽게 위기에 몰린 이유를 눈치챌 수 있었다.

‘지금 오제(五帝)의 본거지는 만신전이니 그들은 이 장소에서 싸우면 훨씬 강해지는 거구나! 그래서 삼황인 신농이 전욱과 제곡의 합공에 쉽게 당한 거였어.’

그렇다면 지금 만신전에 있는 전욱은 내가 알고있던 그 어느 때의 전욱보다 강력하단 얘기가 되나?

‘…그 삼황 신농을 상대로 옆구리에 암창을 박을 수 있을 정도란 거잖아. 제기랄…. 진짜 죽겠는데.’

하지만 내가 지금 나서지 않으면 신농이 전욱에게 당할 것이고 삼황이 이번 전쟁에서 패배하게 되면 당연히 나 또한 죽은 목숨이다. 이 세계에서 끝까지 살아서 정보를 얻어가기 위해서는 선택지가 없는 것이다. 나는 이를 악물면서 정신세계에서 물의 바루나를 가져오려고 했다.

그 순간이었다. 내 머릿속에는 다른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어. 이렇게 하면 안 될려나?’

굳이 안 싸워도 될 것 같기도…?

사불상이 나를 재촉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빨리. 싸우러 나가라!]

나는 자꾸 재촉하는 사불상이 짜증나서 버럭 외쳤다.

“아 좀 있어봐 사슴새끼야!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나는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재빨리 앞으로 튀어나갔다. 그리고는 전욱을 향해 외쳤다.

“위대한 전욱이시여!”

내 외침에 전욱은 사납게 대꾸했다.

[아가리 닥치거라! 백웅 네 녀석은 특별히 팔다리를 하나하나 떼서 죽여주마.]

“…….”

[네 머릿고기를 삶아서 궁궐의 귀신들에게 먹여주리라.]

와, 정말 나를 싫어하는 것 같다…!!

지금까지 전생 중에서 가장 부정적이고 살기넘치는 전욱의 태도였기에 나는 나도 모르게 움찔하고 말았다. 지금까지도 날 싫어하는 태도는 있었지만 그건 대부분 하찮은 존재가 자신을 귀찮게 하는 짜증 정도였는데, 지금의 전욱은 명백히 강한 적대감을 내비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직감했다. 지금의 전욱을 상대로 말 한 마디만 잘못해도 그냥 바로 죽는다! 나는 다음 한 마디를 잘못 꺼낸다면 그 순간 전욱의 손에 살해당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도리어 마음이 차분해짐을 느꼈다.

그리고 악을 쓰듯이 외쳤다.

“황제가 씌운 가면 벗겨드립니다아아악!!”

멈칫

그 순간 전욱의 시선이 확하고 내 쪽으로 쏠리는 게 느껴졌다. 심지어는 전욱과 죽기살기로 암창을 두고 힘을 겨루던 신농까지 내게 주의를 쏟았다. 일순간에 두 거신이 나를 바라보자, 나는 움찔하고 위축되었다.

전욱이 분노를 담은, 하지만 숨길 수 없는 호기심을 내비친 목소리로 말했다.

[…가면이라니 무슨 소리냐?]

찌르르 하고 전신이 울린다. 전신에 퍼져있는 신력이 전욱의 살기에 공명하자 제정신을 유지하기 힘들 정도다. 내 신력도 만만치 않을 텐데 이런 기분이 든다는 건, 아무리 그래도 전욱 본체의 힘에 비하면 아직 많이 멀었다는 뜻이리라.

“저, 전 복희 님의 가면을 벗겨드린다는 조건으로 복희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소호님의 사도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전욱님과 꼭 적이라고 할 수도 없고…. 화 좀 가라앉히십시오.”

[복희의 가면을 벗긴다고?]

“네.”

갑자기 전욱이 호통을 쳤다.

[그럼 네 스승인 복희의 이름을 걸고 말할 수 있나! 넌 가면을 벗길 수 있나!]

“네!”

[…정말인가.]

전욱이 갑작스레 분노를 가라앉힌 목소리로 변했다. 그리고 그 순간 전욱의 손에서 약간 힘이 빠졌는지, 신농의 한쪽 팔에서 은염이 넘실거리며 타올랐다.

[이런!]

[늦었다, 전욱.]

전욱이 급히 힘을 주어 암창을 유지하려 했으나 신농이 암창을 자신의 옆구리에서 빼내어 버렸다.

투확

신혈이 뿜어져나옴과 동시에 신농이 암창을 휘둘러 전욱을 찔렀고, 전욱은 급히 피해냈다. 그리고 신농의 위세에 전욱이 뒤로 물러서자 신농은 암창의 창대를 쥐어서 부숴버리며 말했다.

[그 얘기는 본황 또한 처음 듣는군. 백웅이란 자여, 너는 대체 어떤 존재냐?]

“어… 그러니까….”

[어떻게 가면의 존재를 알고 있으며 그걸 벗길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있는 거지?]

전욱과 신농 사이에 묘한 정전의 기류가 흘렀다. 그들은 방금 전까지 죽기살기로 싸우고 있었지만 싸우는 것보다 내 입에서 나오는 정보가 더 중요하다 판단했기에 잠정적으로 싸우는 걸 보류하기로 한 것이다.

‘으으. 자꾸만 꼬이는군….’

나는 본의 아니게 전투를 피해서 원시천존과 태상노군이 맡긴 일을 해내는 데 성공했지만 기쁨을 느낄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 이상으로 귀찮은 관심거리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골치아픔을 느꼈지만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어, 그 뭐냐, 가면은 사실 황제가 나중에 나쁜짓 할려고 만든 겁니다! 제가 가면으로 나쁜 짓 하기 전에 벗겨드릴….”

[무슨 뜻이지? 나쁜 짓이라니?]

[빨리 말해라!]

신농과 전욱이 동시에 나를 다그치자 나는 신력의 파장때문에 정신이 혼미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삼황오제 둘이 나에게 윽박지르는 상황 자체를 상상해본 적 없었던 나는 급히 손을 휘휘 저었다.

“음…. 잘은 모르겠지만 좀 나쁜 짓인데…. 생각 좀!!”

급한대로 질렀지만 머리가 잘 안 돌아간다.

가면이 나쁜 건 아는데 막상 왜 나쁜지 설명하려니까 말문이 막힌 것이다.

[…….]

[…….]

신농과 전욱이 어이없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들이 오래 기다려주지 않을 거란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가면 나쁜건데 음 왜 나쁘지? 어… 제길… 머리가 빈다….’

나는 당황해서 결국 마구 내뱉고 말았다.

“당신들이 가면을 쓰면 황제가 가면의 주인이 되잖습니까!! 그러니까 황제가 가면 쓴 사람들을 자기 맘대로 할 수 있겠죠!”

아 제기랄 내가 무슨 소리 한 거야? 나도 모르겠다!

이대로 죽는 건가?

나는 너무 대충 내뱉었기에 후회하며 순식간에 머릿속에 죽음이라는 두 글자를 떠올렸지만 반응은 뜻밖이었다.

[가면의… 주인….]

전욱은 내가 한 말을 되뇌이며 뭔가 생각하는 기색이 되었다. 그리고 신농은 팔짱을 끼며 날카롭게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군! 허나 그 관계는 일방적이지 못하다. 우리도 나름대로 그에게 가면으로 조종당하지 않을 방도를 만들었지. 신의 힘으로 맺은 계약이라 파기할 수 없는데 그래도 백웅 너는 황제가 우리를 이용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냐?]

“…어, 거시기, 그렇겠죠….”

신농이 뭔 말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아무튼 가면씌운 게 황제만 유리한 일이 아니고 계약으로 보호받고 있다는 거겠지? 나는 그래도 일단 고개를 끄덕이면서 영혼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계약을 파기할 방법이라도 갖고있는 거 아닐깝쇼….”

내가 뭔 소리 하는 거지.

일단 아님 말고 식으로 말하고는 있지만 손발에 피가 마른다.

아무 생각도 없이 그때그때 감으로 말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

신농은 흠칫하는 기색이었고 전욱은 뭔가 마음을 굳힌 듯한 표정이 되었다.

‘뭐야. 아무 생각없이 말하면 다 먹히나? 그렇다면….’

나는 혹시하는 생각에 약간 긴장이 풀어져서 분위기를 풀 겸 가벼운 농담을 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파기(破器)가 아니라 파기(破棄)니까 헷갈리지 마십쇼~ 하하하.”

[…….]

어 뭐지? 이번엔 진짜 뭔가 잘못 말한 것 같은데….

“그, 그러니까 발음이 비슷한데 글자가 달라서…. 그릇이 깨진다는 뜻으로 웃긴 농담인데….”

[주접떨지 말고 묻는 말에나 대답해라.]

“네.”

[네놈이 이렇게까지 전쟁에 끼어들어 신들의 싸움을 막으려는 이유가 뭐냐? 결국 너는 황제의 계획을 방해하고 싶은 건가?]

나는 전욱의 물음에 약간 정신이 되돌아오며 주의를 환기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잠시 생각을 정리한 후 대답했다.

“네. 결국 황제가 자기 빼고 모두에게 엿을 먹이는 게 아닙니까? 그런건 두고볼 수 없지요.”

[단언할 수 있나? 황제와 우리는 우주의 끝까지 함께할 불멸의 신격이다. 황제가 그런 우리를 배신해서 얻을만한 게 대체 뭐란 소리냐.]

나는 전욱의 질문에서 뭔가 묘한 걸 느꼈다. 전욱의 질문에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느껴졌고, 그 의도가 언뜻 읽히지가 않는다.

‘…맞아. 옛날에 대명에 반역을 일으킬 때였던가? 이광이 망량에게 질문할 때 이런 느낌이었…. 아!’

나는 과거의 사건 중 하나가 지금의 상황과 뭔가 비슷한다는 걸 육감적으로 알아챘고, 그 순간 전욱의 의도를 알 수가 있었다. 뜬금없이 정답을 찾아냈다는 기분에 들떴으나 나는 표정을 관리하며 히죽 웃었다.

“당연히 끝까지 함께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거겠지요. 그리고 우주의 끝이 생각보다 빨리 다가와 있을 수도 있는 거고.”

[…그래?]

전욱은 확실히 살의를 거둔 듯 팔짱을 끼고 곰곰이 생각하는 기색이었다. 그리고 그런 전욱을 지켜보고 있던 신농은 전욱을 공격할 수 있는데도 끝까지 인내심있게 지켜보는 듯 했다.

한참 후 전욱이 내게 말했다.

[네놈이 어떤 경과로 내 힘을 취득했는지는 묻지 않겠다. 대신에 백웅 너를 내 사도로 인정해 주겠다.]

“고맙습니다.”

[어차피 인과율은 이어져 있으니 따로 사도의 계약을 맺을 필욘 없겠지.]

그러더니 전욱이 크게 외쳐서 불렀다.

[제곡!! 그만두고 이리 와라.]

파앗!!

그 외침과 함께 오색광이 현란한 저편의 전장에서 제곡으로 보이는 새하얀 거인이 튀어나와서 전욱의 바로 앞으로 왔다. 그리고 제곡이 날아오자 전욱이 말했다.

[물러나자.]

[황제가 이곳을 사수하라고 말했다. 승산도 높은데 무슨 소리냐, 전욱.]

[아니.]

전욱은 신농과 나를 한 번씩 응시하다가 등 뒤편에 차원문을 열고는 서서히 사라졌다.

[우리가 싸울 곳은 여기가 아닌 것 같군.]

슈욱!

전욱의 신형이 사라지자 제곡은 뜻밖의 상황에 당황한 듯 했다. 그는 신농을 한 번 쳐다보다가 뒤따라서 차원문을 열고 사라져 버렸다.

파밧….

갑자기 적들이 퇴각해서 소강상태에 접어들자 나는 한숨을 쉬었다.

“휴우.”

파앗

옆에서 어느 새 원시천존과 태상노군이 다가와 있었다. 그들은 신농에게 공손히 예를 갖춘 후 말했다.

“신농이시여. 저들이 물러났다 하더라도 결국 만신전의 가장 깊은 옥좌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이옵니다.”

[그렇겠지. 복희와 여와가 먼저 그들과 맞닥뜨릴 것이다.]

“이제 거신족의 강자들을 이 만신전에 소환하여 싸울 때가 되지 않았사옵니까? 그들의 조력이 있다면 승기를 잡을 수 있을지언저.”

[아니. 무의미하다. 이 만신전은 황제의 뱃속과 같으니, 필멸자들의 힘으론 도움이 안 돼. 설령 수억 명의 거신족 군대가 있어도 황제의 손가락에 몰살당하리라.]

그렇게 대꾸한 신농은 내게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백웅. 그럼 지금 즉시 부탁 좀 하지.]

“네?”

신농이 스윽하고 자신의 거대한 몸체를 내 쪽으로 미는 듯 했다. 그리고 내 코앞까지 신농의 얼굴이 다가왔을 때, 은염의 거신이 내게 말했다.

[가면, 벗겨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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