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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1108화 (1,105/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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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신농을 따라서 거대한 거신전의 궁궐 심처로 들어가자, 거기에는 일전에 보았던 조그마한 거신족이 있었다.

‘아니, 조그마한 거신족이 아니라 저 크기는 그냥 인간이군….’

기본적으로 몸뚱이가 최소한 일 장을 넘어가는 거신족들 사이에서 저 거신족은 너무나 작아 보였다. 그러나 인간의 기준으로는 그럭저럭 큰 편이었으며 육 척 정도의 장골로 보였다. 나는 슬쩍 그의 외모를 살폈는데, 외모는 밋밋하다고 할까 그다지 큰 특징이 없는 평범한 남성으로 보였다.

저 자가 바로 [만신을 파괴하는 자]인가?

그의 앞에 도착한 복희와 신농은 자세히 그를 살피는 듯 했다. 그러나 이윽고 신농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

[일전에는 이 녀석이 대단해질 거라 얘기했으나 그건 성장을 끝낸 후의 일이다. 지금으로서는 황제조차 두려워할 존재라곤 생각할 수 없다.]

“내 눈에는 엄청난 괴물로 보인다. 잠재능력이 대단한 건 사실이다.”

[엄청난 괴물 정도로는 우리를 없앨 수 없지. 정말로 압도적인 놈이라면 복희 네가 그렇게 유유자적하게 평가나 내리진 못할 게 아닌가?]

“…….”

[향후 우리를 뛰어넘을 가능성이 크다는 거지 지금으로선 별 거 아냐.]

복희는 신농의 말을 인정하는지 침묵했다.

[다만 이제 우리가 힘을 주어 각성한다면 황제의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 그 전모를 알 수 있을 것이다.]

“해 볼까.”

복희가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허공을 향해 태극 하나를 생성해서 흩뿌렸다.

촤아악 -

공간의 문이 열리더니 자연스럽게 여와의 본체가 이 공간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여와는 복희와 신농을 한 번씩 쳐다보고는 불쾌하게 말했다.

[복희! 또 쓸데없는 짓을 하려는 구나!]

“너무 그러지 마라, 여와. 늘 쓸데있는 짓만 하고 살 순 없지.”

[쓸데없는 짓이란 건 인정하는 거냐?]

“응.”

[…넌 늘 그런 식이냐. 언제 철이 들 셈이냐?]

기가 막히다는 듯 여와가 중얼거리자 복희는 훗하고 웃더니 대꾸했다.

“여와. 슬슬 귀찮지 않나? 황제한테 괜히 긴장해서 서로 수만 재어보기 귀찮아졌어. 그냥 우리 셋이 힘을 합쳐서 그 자를 끝장내 버리자.”

[…확실히 이길 수가 있나?]

“글쎄. 그런 승산이 있었다면 지금껏 우리가 머뭇거리진 않았겠지. 다름아닌 그 황제니까. 하지만 이젠 하느냐 하지 않느냐, 그것 뿐이다.”

[…….]

여와는 고민하는 듯 했다. 그러자 신농이 여와에게 말을 걸었다.

[여와. 이 녀석을 각성시킨다면 충분한 승산이….]

여와가 갑자기 크게 화를 냈다.

[닥쳐라 덩치만 큰 놈아! 누가 너더러 여에게 말을 걸라 하더냐!]

신농 또한 화가 났는지 그의 본체에서 은염이 확하고 솟아올랐다.

[뭐라고? 여기가 내 성이란 걸 잊은 것이냐!]

[어쩌란 말이냐! 네 성은 참 작고도 비루먹었구나!]

[백날 성질만 내는군! 뭐 잘못 처먹고 와서 본황의 성에서 행패를 부리다니 한심하구나 여와!]

[해볼테냐?]

[얼마든지.]

쿠구구구…

여와와 신농이 서로의 기세를 겨루자 거의 백중세였고 어마어마한 신력이 그들 사이에서 법칙을 왜곡시켰다. 내가 그 기세에 휘말리려 하자 복희가 가볍게 태극을 만들어서 나를 보호해 주었고, 이내 그들 사이에 선선한 바람같은 걸 몰아치게 만들었다.

후웅

[흠.]

[으음.]

정체를 알 수 없지만 저것 또한 신술(神術)인 듯 했다. 복희는 가볍게 두 사람의 주의를 환기시킨 후 말했다.

“여와. 네가 신농을 정말로 매우 싫어하는 건 알고 있지만 지금은 그런 마음을 접어두도록 해라. 지금 우리끼리 싸울 때는 아니다.”

[복희! 저 오만한 거인놈이 예전에 날 공격했던 걸 잊은 것이냐?]

여와의 말에 복희는 한숨을 쉬었다.

“이 이야기도 몇 번이나 하는 건지 모르겠군. 거신족을 이끌고 성단을 여행하던 중 오해로 공격했다고 하지 않았나.”

[그러나 신농 저 놈은 내게 한 번도 제대로 사과하지 않았다!]

여와가 크게 노해서 외쳤고, 신농은 그 말에 당당하게 팔짱을 꼈다.

[그렇다! 앞으로도 사과할 생각은 없노라! 오해했다고 설명했으면 되지 않았나?]

“…….”

복희는 허탈하게 웃으며 말했다.

“내가 태초 이래 너희를 화해시키려 수천 번을 노력했으나 너희의 자존심은 너무 자존광대하군. 더 이상의 노력은 소용없다는 생각도 들지만, 여하튼 오늘은 그런 자존심을 잠깐 접고 이성적인 대화를 하는 게 어떤가?”

[…….]

[음.]

복희의 허탈한 웃음을 보자 둘은 약간 진정하는 기색이었다. 원래부터 복희가 이런 역할을 맡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잠시 후 복희가 말했다.

“여와. 너도 느꼈겠지만 저 거신의 혼혈아는 대단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그 잠재력을 우리 셋의 힘으로 각성시켜서 황제를 치는 전력으로 만드는 작전이다.”

[대단한 힘을 갖고 있긴 하군. 하지만 저걸 각성시킨다고 황제를 쓰러뜨릴 수 있을까?]

여와가 약간 회의적인 기색으로 말을 이었다.

[황제의 부하는 그 네 마리뿐만이 아니다. 그 자는 끝을 알 수 없는 저력을 지니고 있으니, 우리와 동급의 적을 마주쳐도 이상하지 않다.]

“알고 있다. 강대한 놈들을 몇몇 끌어들인 것 같더군….”

무심하게 대꾸한 복희가 말했다.

“허나 우리 셋이 힘을 합치고, 거기에 잠재력을 지닌 자가 함께 한다면 그렇게까지 밀리진 않는다. 도리어 지금이 우리가 최대의 힘을 발휘하는 순간이라 할 수 있지 않은가?”

[흠….]

“어차피 황제가 인과율을 읽을 수 있는 자라면 시간을 끌수록 더 불리해질 뿐이다. 속전속결로 처리하자.”

[인과율을 읽을 수 있다고! 확실한가?]

여와도 신농도 다소 불신섞인 기색으로 복희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 모습을 보자, 이 시점에선 삼황중에서 오로지 복희만이 황제의 진면목을 어느 정도 눈치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확실하진 않지만 그게 아니라면 우릴 상대로 별다른 수를 쓰지 않고도 대치상태를 만들 순 없지. 황제 본인은커녕 밑의 부하들을 상대로 그럴듯한 전쟁조차 벌이지 않았는데도 우린 아무것도 못 하고 있었다. 결국 그자가 거대한 인과율을 읽어서 미세하게 자기가 원하는 미래를 만들어갔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으음…!!]

“자. 더 망설일 이유는 없다.”

스윽

복희가 한걸음 앞으로 나서서 거인의 혼혈의 머리 위에 손을 올렸다. 그 손을 본 신농과 여와도 천천히 손을 올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세 존재가 모두 손을 올리자, 복희가 고요히 말했다.

“나 복희, 내 이름의 힘을 걸고 이 자의 지혜를 일깨우노라.”

[나 여와, 내 이름의 힘을 걸고 이 자의 영성을 일깨우노라.]

[나 신농, 내 이름의 힘을 걸고 이 자의 권능을 일깨우노라.]

파아아앗!!

삼황이 언령을 영창한 순간이었다. 갑자기 빛이 나면서 혼혈아는 자신의 머리를 부여잡고 마구 흔들기 시작했고, 그의 정수리에서 회색빛이 서서히 흘러나왔다.

쿠구구구

“크아아아아….”

마치 짐승과도 같은 울음소리. 그리고 회색빛이 점차 강해지면서 혼혈아의 몸이 거인에 걸맞게 거대해지기 시작했고, 피부의 표면에 강력한 주술의 언어가 문신처럼 새겨지는 게 눈에 보였다. 또한 그가 지니고 있는 마력과 혼돈의 권능이 급격히 증폭되기 시작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제 저 자가 [만신을 파괴하는 자]의 힘을 얻게 되는 건가!’

그리고 황제조차 두려워했던 어마어마한 힘을 내 눈으로 직접 보게 되는 건가…!!

나는 조마조마하게 기대 섞인 눈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았는데 뭔가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걸 어렴풋이 느꼈다.

“……?”

왜 삼황의 얼굴이 모두 굳어 있지?

잠시 후 제일 먼저 손을 뗀 것은 바로 여와였다. 여와는 약간 놀란 듯 말했다.

[뭐지? 이 녀석은 대체….]

그 다음으로 신농이 손을 뗐다. 신농 또한 질린 기색이었다.

[비어 있구나…. 전혀 눈치채지 못했거늘.]

마지막으로 복희는 손을 뗄지 말지 고민하는 기색이었다. 그러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손을 거두면서 말했다.

“뭔가가 이 안에 있다가 빠져나갔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건…. 껍데기다. 제대로 된 존재가 아냐.”

껍데기?

내가 복희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어리둥절해하자 복희가 설명해 줬다.

“거짓 육신이다. 처음부터 영혼이 없었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 안에 있던 재능과 힘은, 그 ‘무언가’가 빠져나가고 남은 껍데기였을 뿐.”

“네? 껍데기라고요?”

나는 황당해서 반문했다.

“하지만 첫 대면에서 엄청난 재능을 품고 있다고 하셨잖습니까.”

“…….”

복희가 짧게 한숨을 쉬었다.

“껍데기만으로도 말이지.”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복희는 신농을 바라보고 말했다.

“그대만한 자가 수백만 년만에 생긴 후손을 애지중지했는데도 이게 껍데기라고 눈치채지 못했나?”

[민망하군. 겉으로 볼 때는 완전히 이성을 갖춘 존재였고 위화감도 없었다. 껍데기라곤 생각지도 못했지. 잠재력 또한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여기에 영혼이 없다면 그 이성은 어디서 발현된 거지? 흐음.”

신기하다는 듯 복희가 혼혈아를 살펴보았다. 그러더니 말했다.

“그래. 그렇군. 그냥 잔류사념이 남았을 뿐인데 너무 강한 힘이 잔류되어서였어. 그게 마치 이성있는 것처럼 행동해버린 거야. 이런 일도 있을 수 있군….”

나는 복희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아서 말했다.

“복희 님. 상황이 잘 이해가 안 되는데 이 껍데기를 놔두고 ‘뭔가’가 빠져나갔다면 어째서입니까?”

“그것까진 알 수 없지. 하지만 굳이 추측하자면.”

복희는 부채로 혼혈아의 빛 없는 눈동자 바로 앞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빠져나간 놈은 이 껍데기보다 훨씬 큰 힘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다. 또 한 가지는, 수십억 년을 살아온 우리조차도 단 한 번도 마주해본 적 없는 존재라는 사실이고.”

“……!!”

“흐음, 황제의 말이 점점 현실성을 띄기 시작하는데…. 이 정도는 되어야 [만신을 파괴하는 자]라고 할 수 있단 건가.”

복희의 말에 옆에 있던 여와가 초조한 듯 말했다.

[복희. 태평하게 있을 때가 아니다. 당장 여기서 빠져나간 존재를 붙잡아야 할 것이다.]

“왜?”

[왜냐니…. 네가 정녕 몰라서 물어보는 것이냐?]

“당연히 알지.”

복희가 쓴웃음을 지었다.

“여기서 빠져나간 본체는 이미 우리만큼 강할 테니까.”

“……!!”

“껍데기에 잔류된 힘만 봐도 얼마나 센지 추측이 가능하군.”

뭐?!

내가 깜짝 놀라고 있을 때 여와가 말했다.

[그렇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 더 강해질 거란 사실이다.]

“정말 큰 문제인데.”

복희는 그리 초조해하지 않았다. 도리어 유들유들하게 신농을 보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뭐 어쩔 수 있겠나. 이렇게 된 이상 원래 계획대로 황제나 치러 가는 거지.”

[…복희, 진심이냐? 이런 불안요소를 놔둔 채 황제와 총력전을 벌여도 된다는 말을 하는 거냐.]

신농도 여와도 불안한 기색으로 복희를 보았다. 상식적으로 이미 그들과 동급의 힘을 지닌 의문의 존재를 놔두고서 황제라는 강적과 자웅을 결하는 건 안 될 말이었다. 왜냐하면 어부지리, 즉 황제와 공멸하고 그 의문의 존재만 좋은 일을 시켜줄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복희는 가볍게 말했다.

“어차피 뇌신(雷神)이라는 놈도 우리를 노리고 있잖은가? 이제 와서 적이 하나 늘어나든 둘이 늘어나든 상관없어. 도리어 우리는 신경쓸 게 많아져서 운신이 좁아지지만 황제는 결국 인과율을 읽어 그 흐름조차 자기의 편으로 만들겠지. 다시 말하지만 싸우려면 속전속결이다.”

[좋다, 복희. 너를 믿어 보겠다.]

신농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옆에 있던 여와는 크게 망설이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나의 혈육이여! 우리가 둘 다 잘못된다면 이 우주의 균형이 크게 흔들린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

“후후, 그걸 어찌 잊을 수가 있겠는가? 반고가 굳이 형태의 죽음을 취한 이유를 그 누구보다 잘 아는 존재로써….”

[좋다…. 가자! 가서 황제의 수급을 취하자.]

삼황의 의지가 일치단결했다!

[백웅.]

그리고 복희는 그 와중에 내게 몰래 신어로 머릿속에 의사를 전달해 왔다.

[넌 여기 남아 있어라.]

[네? 저도 따라가서 지켜봐야….]

[네가 지상에서 해줘야 할 일이 있다.]

이어진 복희의 명령에 나는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네가 죽으면 재시작한다고 하더라도 괜히 여기 따라와서 죽을 필요는 없지 않겠느냐? 가서 태상노군이나 만나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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