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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1106화 (1,103/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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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반고의 부활!

기백천사의 말에 복희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다지.”

[진심이오? 반고는 창세신이며 그가 부활하면 그대들의 세력은 전례없이 거대해질 것이거늘.]

그 말에 복희는 껄껄 웃으며 비웃는 기색이었다.

“후후. 대답할 가치조차 없구나. 네가 반고에 대해 대체 뭘 아느냐? 그의 시체에서 태어난 나보다 잘 안단 말이냐?”

[뭐라고….]

“너 정도 녀석과 굳이 심계를 겨루고 싶지 않다. 네 주인더러 직접 오라고 하라.”

스으으

복희가 부채를 들었다. 그리고는 곧장 신술을 시전했다.

신술(神術)

태극도(太極圖)!

파앙!

그 순간 기백천사가 있던 공간이 새하얀 백색의 태극에 감싸였고 기백천사가 벗어나려는 듯 잠시동안 자신의 눈알을 빛내며 크게 발광(發光)했다.

[쉽게 당하진 않는다!]

발광과 동시에 그의 주변에 있던 모든 시공간이 구겨지는 듯한 일그러짐이 느껴졌고 짧은 순간 기백천사가 뿜어낸 신력이 어마어마했기에 나는 잠시동안 숨이 턱하고 막혔다.

“……!!”

뭐, 뭐가 이렇게 강해?

나는 기백천사가 생긴 꼴이 그저 흉한 괴물같았기에 내심 얕보는 마음이 있었는데 일순간 느껴진 힘이 웬만한 마왕급을 아득히 초월해 있었기에 손발의 피가 쏵하고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이 정도면 도저히 필멸자 수준에서 이길 수 있는 괴물이 절대로 아니다! 음신지력을 비롯한 신력을 많이 갖고 있지 않았다면 이 순간 시공간법칙의 왜곡 때문에 터져 죽었으리라.

삼황오제가 없다면 지상의 문명을 몇 번이고 만들었다가 멸망시켜도 모자람이 없는 괴물 - 그것이 바로 기백천사의 격(格)이었다. 저런 괴물을 어떻게 일개 사도로 부릴 수가 있단 말인가?

하지만 복희의 태극도는 잠시동안 기백천사의 신력에 부풀어오르는 듯 하다가 도리어 더욱 강하게 기백천사를 압박했고, 이윽고 천천히 쪼그라들었다. 기백천사가 뿜어내는 신력은 서서히 사그라들더니 백색의 태극만이 고요히 그 공간을 차지하게 되었다.

우웅….

나는 그 모습에 놀라서 복희에게 말했다.

“시, 신술로 저런 수준의 괴물을 태극도에 가둘 수 있습니까? 못 나옵니까?”

“사용자에 따라 다르겠지. 같은 신술이라도 시전자의 역량에 따라 위력은 큰 차이가 나니까.”

복희는 부채를 거두어서 접으며 말을 이었다.

“내가 쓴다면 신술로, 흠, 네가 칭하는 삼황오제를 상대하기에 모자람이 없다. 기백천사 정도는 영원히 봉인할 수 있지.”

이제는 복희도 내가 말했던 삼황오제라는 명칭을 쓰기로 한 모양이다.

“…인간이 신술을 쓴다면요?”

“좀 힘들겠지? 하하하. 아무리 그래도 신은 신이니까.”

“…….”

“극한에 이른다면 어찌어찌 상대할 순 있겠지만 한계는 있다. 그건 어쩔 수 없지.”

그는 쓴웃음을 짓더니 말했다.

“내가 인간에게 신술을 전해준 이유는 삼황오제와 맞상대해서 물리치라는 게 아니다. 신은 근본적으로 한없는 오만함을 지니고 있기에, 자신과 너무 격차이가 나면 이야기를 들을 생각조차 하지 않지. 하지만 자신에게 송곳니를 들이댈 수 있는 존재라면 이야기를 들어줄 가능성이 있지.”

“즉 대화를 하기 위해서 만든 능력이란 겁니까?”

“뭐 그런 거지. 어떤 놈들은 내가 다른 신들을 쓰러뜨리기 위해 최강의 세력을 일구려 신술을 만들었다는데 가당치도 않은 소리.”

복희는 전방에 있는 백색의 태극도를 가만히 쳐다보며 말했다.

“눈앞의 저놈도 그렇고, 개미같은 존재와는 절대 진지하게 대화하려 하지 않아. 비단 신만이 그런 게 아니고 너희 인간도 마찬가지지. 너는 발밑의 개미가 기어다니면 가까이 다가가서 말을 걸려고 노력하나?”

“…그러진 않죠.”

“하지만 그 개미에게 날개도 있고 독도 있고, 물면 아프고, 심지어 인간의 말도 할 줄 안다면 너의 대응은 달라지겠지. 생각없이 걸어가다가 개미집을 밟기 전에 한 번 정도는 생각해보게 될 것이다.”

“…….”

“나는 개미를 생존시키기 위해 개조시키는 중이라고 할까?”

과연.

신술이란 이 우주에서 개미같은 인간을 위해 주어진 ‘독’이란 말인가….

나는 복희의 말에 반문했다.

“그렇지만 저같으면 날아다니는 독개미가 위협적이라 생각해서 더 없애려고 들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하하. 일리있는 말이야. 거기서부터는 내가 도와줄 부분이겠지. 최소한의 자구능력을 지니고 있다면 그때부턴 내가 조금만 도와줘도 너희가 이 우주에서 생존하긴 편할 테니까.”

“으음.”

“내가 도와주는 한 인간은 결코 비참하게 멸족하지 않을 것이고, 노예종족으로 전락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복희의 자신감 넘치는 말에 순간 할 말을 잊었다.

‘지, 지금껏 만나왔던 그 어떤 신과도 다르다! 순수한 애정과 호의가 느껴져….’

인간에 호의적인 신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들조차도 인간에 대해 다소 귀찮음을 느끼고 있었고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복희는 순수하게 인간을 좋아해서 보호해주려고 하는 일관된 성향을 보여주었고, 나는 그게 진심이란 걸 깨닫게 된 것이다.

나는 약간 당황해서 말했다.

“인간을 그리 돌봐주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인간 말고도 이 우주에는 수백 수천만의 종족들이 존재하고, 인간을 돌보지 않아도 복희 님과는 아무 상관도 없을 텐데….”

“…….”

“인간이 가장 선량한 종족이라서입니까?”

나는 약간의 기대를 갖고 질문했지만 복희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너희는 딱히 선량한 종족이 아니다. 선량하다는 기준으로 따지면 우주 전체에서 중하 정도지.”

“네?”

“악하다고 단정지을 수 없지만 선하다고도 할 수 없어. 되려 조금 불량한 족속이지. 극악(極惡)보다야 낫지만.”

뜻밖의 대답에 나는 머리가 띵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인간이 선량한 종족까지는 아니라고?

“너희보다 선량한 종족은 꽤 많이 있다. 실제로도 내가 태어났던 초기인 수십억년 전에 다른 차원을 여행하면서 그런 종족들을 여럿 도와줬지. 딱히 인간이 제일 선량해서 도와주는 건 아니야.”

복희의 인간 평가는 적나라할 정도였다. 나는 혼란스러워서 대꾸했다.

“그, 그럼 어째서.”

“…너희보다 선량한 종족들은 너무 선량해서 멸족했거나, 혹은 발전가능성을 잃어버렸거든. 그건 업보에 따라 당연할 수밖에 없는 거지. 이 세계에서 선악은 하나의 기준에 지나지 않기에.”

복희는 한숨을 쉬었다.

“우주의 균형이란 필멸자들이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광대하면서도 정교하다. 단순히 절대선과 절대악으로 구분할 수 있는 건 존재치 않고, 모든 것에 인(因)과 연(緣)이 존재하지. 그리고 선하기만 해서는 우주의 균형을 정면으로 헤쳐갈 힘을 가질 수가 없어.”

“어째서입니까?”

“왜냐하면 권선징악을 원하는 게 지성있는 자의 본성이라면, 약육강식(弱肉强食)은 우주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선량한 종족들은 약육강식조차도 원천적으로 거부해버리는 경우가 있었으므로, 그들에게는 타고난 한계가 존재했어. 신조차도 약육강식의 굴레는 벗어날 수가 없거늘.”

“…….”

“질서는 수렴하며 혼돈은 발산하는 성질을 갖고 있기 때문일까. 그러므로 나는 너희에게 굴레를 타파할 가능성을 엿보았다. 그것도 큰 이유라고 말해두지.”

복희는 빙긋 웃었다.

“너희 인간은 정말 재밌는 종족이야. 선과 악을 모두 타고났으면서도 혼돈을 거의 갖고 있지 않아. 그런데 혼돈을 갖고 있지 않으면서 본성적으로 혼돈을 따라가려고 하는 유일한 종족이기도 해. 보통은 종족 자체가 혼돈을 많이 내재하고 있기 때문에 따라가는 건데.”

“네? 그렇단 말입니까?”

“뭐, 그래서 너희는 개털이지. 태어날 때부터 아무것도 가진 게 없어. 보통 강대한 육체나 마법 중 어느 한 가지는 갖고 있던데 너무 가진 게 없어서 내가 술법을 만들어 줬던 거다.”

“…….”

개털이라니!

“인간이란 무(無)이면서도 혼돈지향적이고 질서에도 순응하는 유일무이한 종족이야.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지만 아무거나 될 수 있지. 그래서 무(無)에서부터 쌓아가는 걸 지켜보는 게 즐거워.”

“그, 그렇군요.”

나는 복희가 마치 인간처럼 이야기하고 있지만 도리어 이 대화로 그가 철저한 신중의 신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인간은 상상치 못하는 자기만의 기준으로 인간을 보호하고 있으며, 거기에 깃든 애정이란 고도의 철학적인 사유 끝에 나타난 것이리라.

‘절대자 삼황 복희가 인간에 쏟는 애정은…. 인간이 인간에게 가지는 그런 종류의 애정과 달라. 계산적인 건 아니지만 신이 인간에게 가지는 것이기에, 생명체의 감성과는 근본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어.’

나는 순간적으로 이 사실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사실이 왠지 굉장히 중요하리라는 것 또한 직감했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이 사실이 중대한 결정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곰곰히 생각하고 있을 때 뜬금없이 복희가 말했다.

“근데 백웅. 신술 태극도가 ‘가두는 것’이라는 건 어떻게 알았지?”

“네?”

“지금 상황을 보면 아무리 봐도 태극도로 기백선사를 공격해서 소멸시킨 것일 텐데 봉인술법이란 걸 당연한 듯이 말하는구나. 태극도의 최대장점 중 하나가 소멸계인지 봉인계인지 구분할 수 없다는 건데.”

“…….”

아, 아차!

나는 또 다시 정곡을 찔렸기에 우물쭈물하고 말았다. 등줄기에 땀이 났다.

‘젠장…!! 난 왜 자꾸 실수하는 거지?’

그렇다고 ‘하하. 제가 예전에 무릉도원을 지키고 있던 태공망의 신술 태극도에 당해서 죽을 뻔 했다가 흑웅이 소멸하는 대가로 간신히 탈출했으니까 모를 수가 없습니다’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나는 머리를 필사적으로 돌리다가 말했다.

“어…. 그냥 감입니다! 복희님이 살생을 그리 좋아하지 않으니 죽이기보단 봉인을 하셨을 거라고 생각해서….”

“호오. 나를 황제의 부하 한마리 못 죽일 정도로 유약한 인물로 본 건가?”

“아뇨 그게 아니라….”

“하하하. 역시 넌 전혀 의심스럽지 않다.”

“…….”

이젠 그냥 입 닫고 있는 게 좋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복희는 내가 말로 어찌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다.

“슬슬 때가 되어가는구나.”

때라고?

바로 그 때였다.

[크아아아아아악…!!]

기백천사의 비명이 흰색 태극도 안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내가 놀라서 태극도를 지켜보자 복희가 말했다.

“태극도 안에 들어간 자는 서서히 신력이 분해되어 소멸상태에 이르게 되지. 진정한 신격이라면 소멸되지는 않겠지만 영원히 혼백이 분리되어 태극도를 떠돌게 되며, 그 아래급들은 혼백조차 남지 않는다.”

“……!!”

“자, 최대심복인 기백천사가 내 손에 소멸직전이다. 과연 황제는 저 놈을 구할 것 같으냐?”

나는 말을 안 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지만 복희가 대답을 요구하는 듯한 눈빛으로 쳐다보았기에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아뇨…. 안 구할 것 같습니다.”

“호오. 왜지?”

“황제가 모든 판을 읽을 수 있는 인물이라면 부하 하나 죽는다고 자신의 승리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 안 할 테니까요…. 도리어 목표를 위해서라면 부하 따위 몇 마리가 죽어도 개의치 않을 자 같습니다. 자기만 성공하면 되니까요.”

“…….”

“기백천사 정도는 복희 님께 던져주고 자기는 더 큰 이득을 얻기 위해 뒤에서 움직이려 들 거 같은데….”

내 대답에 복희가 일순간 놀란 눈으로 날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희한하다는 듯 말했다.

“놀랍군. 어찌 황제를 그렇게까지 잘 파악하고 있지? 나 말고는 삼황 중 그 누구도 거기까진 파악하지 못했을 텐데.”

“네? 아, 아뇨. 그냥… 그럴 거 같아서.”

복희는 방금 전까지 나를 곯려먹던 태도에서 약간 눈빛이 바뀌었다.

“인과율을 읽는 존재라는 언급만으로는 거기까지 유추할 수가 없을 터.”

“…….”

나는 말을 할수록 손해라는 걸 깨달았는데도 입을 열어버린 사실에 후회를 했다.

‘제길. 직접 봐 왔던 게 그랬는데 어쩌라고!’

나는 과거 마주쳤던 창힐이나 칠요의 시련을 생각했었다. 그리고 자신의 직속으로 키웠던 창힐조차도 패로 쓸만하지 못하자 바로 던져버렸던 일이나, 칠요의 시련 자체를 거대한 함정으로 삼았던 일을 생각해보았던 것이다. 그런 과거에 비춰보면 창힐이나 칠요조차 던져버린 황제가 기껏해야 직속사도인 기백천사 따위를 버리지 못할 리는 없으리라.

내가 말문을 열지 못하자 복희가 말했다.

“백웅. 너에 대한 평가를 좀 바꿀 필요가 있겠군.”

“어떻게 말입니까?”

복희가 진지하게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전혀 수상하지 않지만…. 제법 되바라진 녀석이군!”

“…….”

대체 뭐가 바뀐 거야?!

내가 황당해할 때였다.

츠아아아 -

갑자기 기백천사가 갇혀있던 태극 위에 기이한 황금빛이 흐르듯이 내려앉았다. 그 황금빛은 태극을 물줄기처럼 감싸기 시작했고, 잠시 후 태극을 안에서 비집어서 열어버렸다.

푸확!

기백천사로 보이는 백색 혼백체가 뛰쳐나오더니 곧장 차원의 문을 열어서 도망쳐 버렸다. 복희는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가 중얼거렸다.

“흐음, 예상이 틀렸군. 기백천사가 생각보다는 중요한 부하였나 보지?”

웅웅웅

복희가 눈앞에 떠 있는 황금빛 덩어리를 보며 훗하고 웃었다.

“황제여.”

스스스스스…

잠시 후 황금빛 덩어리가 구체화되기 시작했고 ‘어떤 생물’의 형태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치 황금빛의 짐승, 어찌보면 용 같기도 하고 기린 같기도 한 그 모습을 보았을 때 나는 눈을 부릅떴다.

“……!!”

저, 저것은 천마(天魔)의 모습이 아닌가?

시몬 마구스를 먹어치울 때 사공린에게 환영처럼 나타났던 그 모습!

황금빛 짐승이 서서히 복희에게 입을 열었다.

[복희. 반고의 특이점으로 거래하자.]

“다짜고짜 본론인가? 그래, 거래내용이나 들어 보지.”

[먼저 말해둔다. 이번 거래와 함께 너희측과 휴전하고 싶다.]

“들어보고.”

잠시 후 황금빛 짐승의 모습을 빌린 황제가 ‘본론’을 이야기했다.

[너희 측에 [만신(萬神)을 파괴하는 자]가 모습을 드러냈을 것이다. 그 자를 지금이라도 우리 모두가 힘을 합쳐서 없애자. 그렇게 해 준다면 반고가 이 세상에 부활할 수 있도록, 내 힘을 써서 반고의 특이점을 유예시키는 의식을 치러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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