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5====================
사신지혼(四神之魂)
[……?]
내 말에 소호금천은 갸웃하는 기색이었다. 뿐만 아니라 장내가 잠시 얼어붙었다.
소호금천이 내게 말했다.
[넌 복희의 제자가 아니냐? 그런데 내 사도가 되겠다고?]
“어… 그게….”
[제정신으로 한 말이냐?]
나는 내심 생각했다.
‘소호금천의 사도가 된 채로 죽고나면 다음 생에 소호금천의 힘을 빌려올 수 있으니 유용한 도구가 하나 더 생기는 셈인지라 사도로 삼아달라고 한 건데….’
복희와 오제는 현재 서로 대립중인데, 복희의 제자인 내가 소호금천의 사도가 된다는 건 정말 이상한 일이다.
하지만 나는 약간이지만 여기에 대해서도 생각했었다. 그래서 옆에 있던 복희의 눈치를 보면서 말했다.
“어, 거시기, 신들끼리 백날 싸우기만 하라는 법은 없지 않습니까?”
[뭐?]
“나중에 그쪽의 군주인 황제가 마음이 바뀌어서 복희, 여와, 신농 등과 손을 잡게 되면 그때가서 친하게 지내기도 민망하겠지요! 그러니까 그 때 제가 관계계선에 적극적으로 노력하겠습니다. 평소부터 사도같은 거 해보고 싶어서….”
[뭐라고? 나중에 우리가 저들과 손을 잡게 된다고? 무슨 근거냐.]
소호금천이 비명을 지르듯 격렬하게 거부반응을 보였다.
[웃기지 마라! 여와고 신농이고 복희고 다 죽여버릴테다!]
“…….”
이 녀석도 방금 전 바로 나서지 않았을 뿐 전욱과 속마음은 비슷한 거였군!
칼을 갈고 싸우러 온 자들에게 이런 말을 해봤자 안 먹힐 수밖에!
‘초기의 삼황오제는 정말 사이가 나빴구나.’
젠장.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
방금 전까지 복희와 전욱이 죽어라 싸우던 중이었는데 이런 소리를 해봤자 잘 와 닿지 않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나는 재빨리 머리를 굴리며 말했다.
“위대한 신들께서 뭣 때문에 싸우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신들의 기준으로 [종말]과 [계시]는 얼마 남지 않았잖습니까. 수천 년이라 해도 신들한테는 금방이잖습니까.”
[흠.]
‘종말’이라는 단어에 소호금천이 약간 반응하는 듯 했다. 하지만 이내 그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니깟놈이 걱정할 일이 아니다. 네가 방금 전 얼마나 말도 안되는 소리를 지껄였는지 아느냐?]
“압니다. 정말 멍청한 소리 했다는 거. 하지만…. 소호금천님께 나쁠 건 없지 않습니까?”
[나쁠 건 없다고?]
나는 지금이 중요한 순간이란 걸 알아챘다. 그래서 필사적으로 설득하려 했다.
“그 찰나같은 시간동안 투닥거린다고 힘만 낭비하고 남 좋은 일만 시켜줄 수도 없지 않습니까. 어차피 그쪽도 이쪽도 강력하기에 쉽게 결판나지도 않을 싸움 아닙니까? 게다가 여기저기에 외계에서 온 옛 지배자들도 많은 판국에….”
[…….]
“결국 서로 타협할 때는 올 거 같습니다만…. 절대로 이만한 격을 지닌 신성끼리 끝없이 싸우진 않을 거라구요. 하지만 서로 죽어라 싸우다가 그제서야 서로 손내밀려고 하면 민망하지 않겠습니까.”
[민망하다고.]
나는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서 약간 무리수로 넘겨짚어보기로 했다.
“네. 만에 하나 신들끼리 정전(停戰)을 하게 되면 최선을 다합지요. 잘은 모르겠지만 황제도 그런 기색을 보인 적이 있지 않습니까? 지금은 복희네랑 전쟁을 하지만 나중에는 안 할 수도 있다던가 뭐 그런….”
이대로는 개소리일 뿐이지만 황제를 끌어들여 본다!
넘겨짚기가 잘 되면 좋고 안 되면 죽는 거지 뭐!
[…….]
침묵을 하고 있었지만 소호금천의 반응이 뭔가 달랐다. 뿐만 아니라 근처에서 대화를 지켜보고 있던 전욱과 제곡도 왠지 솔깃한 기색이었다.
정말 황제가 뭔가 언질을 해두었던 건가?
‘다, 다행이군.’
내가 한 말이 그들에게 약간 먹혀든 모양이었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손을 비볐다.
“그리고 제가 워낙 소호금천님을 존경해서 이런 옥새까지 만들었는데 한번만 부탁 좀 들어주십쇼. 헤헤.”
[흐음….]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잖습니까.”
소호금천은 잠시동안 뭔가 생각하다가 말했다.
[좋다. 까짓거 벌레같은 인간사도를 한 번 만들어봐도 재밌겠지.]
“그럼…!!”
[나 소호금천은 너 백웅을 내 사도로 삼겠노라! 복희, 동의하는가?]
복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뭐 좋겠지. 그런 거라면 나는 찬성이다.”
그는 도리어 여유롭게 웃기까지 했다.
“이런 예시는 없는 건 아니야. 너와 나, 서로의 비밀을 엄수하는 계약을 백웅에게 넣으면 되겠지?”
[그렇게 하지.]
파앗!!
[사도로 임명한다!]
그 순간 소호금천의 거대한 깃털이 날아와서 내 심장에 박혔다. 인과를 왜곡했는지 피할 새도 없었고, 나는 깃털이 내게 아무런 상처도 주지 않은 채 서서히 은빛으로 변해서 심장에 스며드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우우웅
‘이것이 소호금천의 신력인가?’
순수하게 파괴를 추구하는 은빛이라는 기분이 든다. 전욱의 신력도 파괴적이긴 했지만 소호금천의 것은 마치 시초부터 별을 파괴하기 위해 만들어진 힘같았다. 전욱의 음신지력보다 응용력이나 안정성은 훨씬 적지만 아마도 공격력이 훨씬 높을 것이다.
그 때 옆에 있던 전욱이 말했다.
[이 놈…. 지금 이 순간을 기다렸다!]
뭐라고?
나는 소호금천의 힘이 흘러들어오는 순간 내면에 있던 광대한 음신지력이 크게 격발되어서 전욱을 자극했다는 걸 알아챘다. 아니, 전욱은 이미 날 주시하고 있었던 건가?
찰나의 순간 전욱은 날카로운 눈으로 날 쳐다보다가 크게 외쳤다.
[감히…. 어떻게 나와 인과율을 이었는지 몰라도, 네 녀석에게 다른 놈의 사도가 될 자격은 없다!!]
“……?!”
[음신지력을 내놓아라!]
파앙!
그 순간 내 몸에 배여들던 소호금천의 신력이 마구 뒤엉키더니 전욱의 음신지력과 싸우기 시작했다. 싸운다고 표현한 것은 갑작스럽게 상이한 두 가지 성향의 신력이 서로를 몰아내기 위해서 격렬한 거부반응을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찌지지직
“아아아아악.”
음신지력이 차지한 반신(半身)은 새파란 빛으로 변했고 소호금천의 힘이 차지한 곳은 창백한 빛으로 변했다. 청백(靑白)이 서로 휘감기면서 내 몸이 얼룩덜룩해졌고 내 피부가 쉴 새 없이 찢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도리어 출혈은 일어나지 않았는데 피조차 흐르지 않게끔 신력이 내 몸을 침식하고 있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전욱! 내 사도한테 무슨 짓이냐!]
소호금천이 불쾌하다는 듯 전욱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전욱이 팔짱을 끼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사도는 무슨. 네녀석에겐 장난거리겠지만 나는 내 힘을 저 놈에게서 돌려받아야겠다.]
[크흐…. 짜증나게 하는군.]
[해보자는 거냐 소호.]
[못할 것도 없지.]
파멸의 붕조와 어둠의 거인이 서로를 노려보았다.
그들이 대화를 잇는 동안에 나는 한층 몸 안의 파열음이 심하게 어긋나는 게 느껴졌다.
찌지지직!!
“크아아아아아악.”
너무 아프다!! 산 채로 살갗에 바늘을 꿰매는데 그 바늘이 불에 달군 것이라면 이런 고통이리라!! 그것도 전신의 수십 군데에서 일어나는 고통이었기에 나는 말 그대로 눈알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내가 아파서 신음을 도저히 참지 못하자 옆에서 지켜보던 복희가 말했다.
“흐음. 과유불급(過猶不及)이구나.”
“허, 허억…. 제, 제발 도와주십… 시오….”
복희는 바닥을 구르는 내 앞에 쪼그려 앉아서 부채로 내 이마를 톡톡 쳤다.
“네가 왜 거대한 음신지력을 갖고있는지는 뭐 따지지 않겠지만…. 소호금천이 화가 났군. 그래서 지금 사도인 걸 핑계로 직접 네 몸에 강신(降神)하려고 비집어 들어가는 중이다. 이렇게 되면 당초에 네 몸에 소호의 신력보다 음신지력이 훨씬 많았던 건 중요하지 않게 되겠지.”
“…네?”
“쉽게 말하자면 네 몸을 사이에 두고 전욱과 소호금천이 줄다리기를 하는 중이구나. 전욱은 원래 인과율상 끼어들 수 없을 테지만 나와 소호 사이에 맺어진 계약의 헛점을 이용해서 네게 간섭했군. 원래 있을 수 없는 일인데, 이미 네가 전욱과 뭔가 했던 거냐?”
“헉….”
나는 찔끔했다. 짚이는 게 있었기 때문이다.
“끼어든 이유는 쉽게 추측할 수 있구나. 네 몸에 있는 음신지력을 공짜로 먹고싶은 거겠군.”
나는 순간적으로 고통을 잊을 정도로 경악하고 말았다. 복희의 말이 너무나 잘 이해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죽을 거야!! 이대로 가면 무조건 죽는다!’
오제 두 명이 나를 사이에 두고 줄다리기를 한다면? 결국 줄은 끊어지고 말 것이다! 아니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 나는 절반으로 찢겨 죽어본 경험은 없었으며 앞으로도 없었으면 좋을 것 같았기에 필사적으로 복희에게 매달렸다.
“복희 님…!! 오제의 사도가 되겠다고 망발을 해서 죄송합니다!! 제, 제발 살려주십쇼.”
“아니 뭐. 딱히 화난 건 아니다.”
“네?”
“하하하.”
복희는 웃으면서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백웅. 난 처음부터 널 하나도 의심하지 않았으니까 소호의 사도가 된다고 해도 별로 화날 건 없지. 계속 말하지 않았더냐.”
“…….”
너, 너무 고단수다.
나는 복희가 싱긋 웃는 걸 보자 할 말이 없었다. 정말 내가 만나왔던 그 어떤 자와도 다른 인물이라는 게 여실히 느껴졌다.
“그렇다 해도 이 상황에서 내가 널 도와줄 방법은 딱히 없군. 내가 줄다리기에 참여한다면 네 몸이 토막나는 걸 잠시 멈출 순 있겠지만, 결국 네 몸은 신의 힘에 이기지 못하고 부스러지겠지.”
“헉! 끄악! 으으으윽…. 허어으윽.”
나는 복희가 말을 하는 순간에도 연속해서 달군 바늘로 생살을 저미는 느낌에 신음을 억눌러야만 했다. 금의위의 고문이라고 해도 이토록 지독한 고통을 주지는 않으리라. 내가 고통 때문에 바들바들 떨고 있을 때 복희가 말했다.
“백웅. 넌 태극을 알고 있고 쓸 수 있다. 네가 저번에 신의 공격을 막을 때 쓴 기술은 태극을 깨닫지 않으면 못 쓰는 기술이지. 그렇지 않느냐?”
무쌍패를 얘기하는 거군.
“흐으윽…. 네…. 그렇습니다만….”
“그럼 그 위기도 자력으로 극복할 수 있다. 태극이 어떤 성질을 갖고있는가를 잘 생각해 보거라.”
“……?!”
“내 제자라면 할 수 있다.”
태극을 이용해서 극복하라고?
태극의 성질?
‘그게 뭐지?’
나는 문득 무쌍패를 쓸 때 음양의 무위전변이 존재한다는 걸 알아차렸다.
‘설마 위지혼처럼 하나하나의 힘을 음과 양으로 나누어서 조화(調和)를 이루라는 것인가!’
위지혼은 투신 아르쥬나와의 전투에서 자신의 삶을 양, 죽음을 음으로 분화시켜서 의천태극을 만들어내었다. 그런 식으로 접근한다면 비교적 양(陽)의 힘을 갖고있는 소호금천의 신력을 양으로 만들고 음신지력을 음으로 하여 음양을 맞출 수도 있긴 하다.
하지만….
‘안 돼…!!’
나는 이윽고 좌절하고 말았다.
도대체 뭐 어떻게 하는 거지?!
무쌍패를 쓸 때의 음양은 매우 단순하다. 육대절학의 합일으로 이루어진 어마어마한 패력을 무위전변으로 바꾸어 상대의 힘을 무화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달리 말하면 이 구도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난다면 그때부터는 천부적인 감각만으로 천지사해의 모든 것을 음양구도에 자력으로 끌어들여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인지 어떻게 하는 건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위지혼은 대체 뭘 어떻게 해서 의천태극을 만든 것일까? 무쌍패의 틀을 벗어나서 자유자재로 응용하는 경지는 아직 내게는 너무 머나먼 수준이었고, 인간을 완전히 초월했다고 볼 수 있었다.
쿨룩! 쿨룩!!
내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무력하게 피만 토하고 있자 복희는 예상 밖이라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흠. 원리는 알고있는 것 같은데 응용이 안 되는군. 뭐가 문제지?”
“헉…. 허억…. 무, 무쌍패의 무위전변같은 방식으로 바꾸기엔…. 아무것도 감이 오질 않아서….”
“호오. 무쌍패 무위전변이라. 좋은 이름이야.”
뭔가 감탄하는 듯하던 복희가 내 이마에 검지손가락을 갖다대었다.
“별 수 없군. 인간은 왜 이리 약하단 말인가? 네가 지금 죽으면 곤란하니 일단 도와주마.”
신술(神術)
선천팔괘(先天八卦)
쿠와아앗
다음 순간 나는 전신의 고통이 씻은듯이 사라지며, 팔다리와 정수리, 이마, 심장, 하단전에 각각 팔괘가 내려앉았다는 걸 깨달았다.
‘선천팔괘!’
나는 이것이 동양술수 중에서 팔괘의 근원으로써 법칙 자체를 회전시키는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것 또한 신술이었을 줄이야?
‘그, 그러고보니 초상기인의 몸 또한 선천팔괘가 작용해서 혼돈의 힘을 회전시키게끔 되어있었는데 그게 설마….’
선사시대에는 본디 신술로 전해지는 것이었지만 후대에는 신술을 사역할 역량을 지닌 자가 없었기에 직접적 술법으로 나타나지 못하고 주역공부로 넘어가게 된 것이었던가?!
나는 어이없는 사실을 깨달은 것 같았지만 고통을 이겨내자 정신이 혼미해져서 당장 기절할 것만 같았다. 내가 풀썩하고 땅에 엎어져서 쓰러지자 복희가 내 뒤통수를 부채로 톡톡 치면서 말했다.
“힘든 체 하지 말거라. 아직 체력도 정신력도 남아있으면서.”
“끄윽…. 너무 아픕니다….”
“이제 안 아프잖아. 일어나.”
마치 내 상태를 다 꿰뚫어보는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내가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서자 복희가 말했다.
“네가 말하는 무위전변을 너 대신 내가 선천팔괘를 써서 구현해 봤다. 신의 힘은 잠시 갈무리 되었고 전욱과 소호도 일시적으로 선천팔괘때문에 네게 간섭하지 못한다.”
“감사합니다.”
“좋아할 건 없다.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거라서 문제해결은 되지 못했어. 이렇게 되었으니 내가 일단 우주의 태룡으로써 매듭을 지어 주마.”
그렇게 말한 복희는 허공에 있는 전욱을 향해 외쳤다.
“전욱! 정말 이리도 유치하게 굴 건가?”
전욱은 되려 소리를 버럭 질렀다.
[유치하다니 뭐가 유치하단 말이냐, 복희!! 내가 사도로 임명한 적도 없는 자가 나와 사도의 인과율을 맺고 있는 상황인데 이게 가만있을 수 있는 일인가? 게다가 그 놈의 음신지력은 도저히 필멸자가 지닐 수 없는 양이다!]
“허어…. 그런가?”
[그렇다! 그 놈은 너무 수상하다! 처음부터 수상했지만 인과율의 법칙 때문에 건들지도 못하고 있다가 이제 손을 쓴 것이다!]
“…….”
[내가 못할 짓을 했다 말하진 못하겠지!]
“그렇긴 하군. 나라도 좌불안석이겠어.”
복희가 긍정하자 전욱이 어둠의 기운을 강하게 뿜어내며 외쳤다.
[그 놈이 인간이고 아니고는 더 이상 중요치 않다! 당장 없애버리는 게 좋다!]
“…….”
복희는 뭔가를 생각하는 듯 했다.
그리고 잠시 후 빙긋 웃으며 말했다.
“전욱. 난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어지는 성격일세. 반대도 마찬가지지. 하라고 하면 안 해.”
[뭐라고….]
전욱이 황당해하자 복희가 자조적으로 중얼거렸다.
“내가 여와와 사이가 좋지 않은 이유는 아마 이 성격 때문일 거야.”
복희는 자신의 부채를 접어서 품속에 넣었다.
그리고는 눈을 번득였다.
“너무 번잡한 상황이군. 황제만 빼고 오늘은 이만 다 꺼져주게.”
[복희…!!]
우주태룡후(宇宙太龍吼)
두웅!
복희가 다음 순간 [용의 포효]를 내질렀다.
그 [포효]는 사람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지만, 분명히 포효하는 대상은 정해져 있었다. 그것은 바로 복희의 전방에 있던 오제(五帝)를 향한 것이었다! 포효가 날아들자 오제들은 제각기 신의 권능을 이용해서 그 공격을 막으려 했지만 이윽고 소호금천이 당황한 듯 말했다.
[[작은 굴레]가 움직이지 않다니!!]
후와악!
소호금천이 순식간에 포효에 휘말려서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그를 시작으로 전욱과 제곡도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차원문째로 사라져 버렸고, 요순의 차원문도 함께 사라져 버렸다.
유일한 예외는 황제의 사도인 기백천사와 그가 존재하는 차원문이었다. 그 존재들은 복희의 포효에도 멀쩡했던 것이다. 내가 깜짝 놀라서 복희에게 외쳤다.
“서, 설마 포효 한 번으로 오제를 모조리 소멸시킨 겁니까?!”
복희는 빙긋 웃었다.
“흐음. 백웅.”
“네!”
“내가 볼 때 넌 전혀 의심스럽지 않지만 조금 멍청한 것 같구나.”
“…….”
복희는 도로 부채를 품에서 꺼내며 말했다.
“아무리 나라고 해도 그럴 수는 없지. [아버지]도 아니고 그게 어찌 되겠느냐? 단지 현실에서 추방해 버렸을 뿐이다.”
“추방요?”
“그래. 나는 반고의 직계로써 그 어떤 혼돈의 존재든지 이 세계에서 추방해 버릴 수 있다. 횟수제한은 있지만 이 권능은 [작은 굴레]를 조작해도 막을 수 없다.”
“……!!”
세상에 그럴 수가!
나는 생전 들은 적도 없었던 복희의 엄청난 권능에 경악하고 말았다. 온갖 엄청난 초능력들을 보아 왔다지만 [작은 굴레]와 시공간을 조작하는 능력보다 더욱 상위의 능력은 거의 본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옛 지배자]를 별다른 싸움도 없이 추방해 버릴 수 있다면 이보다 좋은 능력은 거의 없으리라!
나는 그 말에 반문했다.
“그럼 저 자들이 추방되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겁니까?”
“아니. 한 천 년쯤 있으면 되돌아올 수 있지.”
“…….”
“어쨌든 강력한 신성이니까 오래 추방하진 못해.”
좋은 거야 나쁜 거야?
복희는 껄껄 웃었다.
“그냥 곯려먹기 좋은 능력이야. 저 녀석들도 천 년쯤 추방당하면 자기 차원계에서 심심해 죽을걸. 하하하.”
“보, 복희 님.”
“되돌아오면 또 추방하고 또 추방하고…. 그러다보면 얘기가 좀 되겠지.”
나는 복희가 오제를 전혀 진지하게 싸움대상으로 보고있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그저 자기랑 놀아줄 악우(惡友) 정도로 생각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어이가 없어서 복희에게 말했다.
“저 마신들을 쓰러뜨려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결국 복희님과 여와님 신농님을 공격해서 없애려 드는 자들인데.”
“글쎄. 황제 본체를 어찌하지 않는 한 그의 주구에게 열내봤자지. 전욱이나 제곡한테 열내고 있으면 황제가 아마 날 비웃을 거야.”
그렇게 대꾸한 복희가 멀리 있던 기백천사를 응시하며 말을 걸었다.
“그리 생각하지 않나? 기백(岐伯).”
복희가 말을 걸자 기백이라 불린 존재는 잠시 열 개의 눈을 들어 복희를 응시하다가 신어(神語)를 써서 대꾸했다.
[황제께서 말씀하시길, 다음에 그대를 보겠다 하시었소.]
“오호 그래?”
복희가 웃으며 비꼬았다.
“부하 네 명하고 같이 나를 공격하려다가 부하들이 쫓겨나니까 겁이 나는건가? 음흉하기 그지없구나.”
[…….]
“황제란 자, 일대일로는 나를 만날 용기도 없는 자였군.”
기백천사는 상당히 화가 난 듯, 자신의 눈알과 날개를 부들거리며 떠는 듯 했다.
[복희여. 함부로 그분에 대해 언급하지 마시오!]
“화를 낼 줄 아는군. 기껏해야 황제가 창조한 괴물인 주제에.”
[으으으.]
기백천사는 단단히 열받은 듯 간헐적으로 전신에서 황금광을 뿜어내었다. 그 황금광에는 강렬한 신력이 깃들어 있었고, 멀리 있는 데도 위압적으로 현실을 왜곡하는 환영이 보일 정도였다. 저 존재가 웬만한 신보다 강하다는 복희의 평가는 사실인 것이리라.
그러나 복희를 직접 공격못하는 걸 보면 복희와 싸워도 자신이 진다고 생각해서 자제하는 느낌이었다.
[복희여. 아무리 위대한 신이라지만 어디까지 오만불손할 생각이오…. 우린 오늘 단지 싸우러 온 게 아니었소.]
“그래보이더군. 뭔가 중요한 말이라도 하러 왔나?”
[그렇소.]
이어진 기백천사의 말은 의외였다.
[정말 당신의 어버이 반고를 부활시킬 방법을 폐하께 듣고 싶지 않은 것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