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1102화 (1,099/1,615)

1102====================

사신지혼(四神之魂)

영보천존?!

그 순간, 나는 과거의 일을 떠올렸다.

‘태허천존…. 그 녀석은 원래 영보천존이었다고 들었다. 그리고 태허천존은 아마도 내 전생에 관여하려는 흑막같은 놈!!’

그런 태허천존을 계속해서 신경쓴다고 지금까지 상당히 움직임이 제약받았을 정도다. 정체는 잘 모르지만 태허천존은 천계를 뒤에서 맘대로 주무르고 있었기에 최대한 몸을 사렸다. 그리고 태허천존이 바로 영보천존이라면 나는 지금 이 놈 앞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확실한 건 지금 저 놈한테 내 정체를 들키는 건 안 될 일이다. 이 자리에서 영보천존에게 니가 무슨 음모를 꾸미느냐고 추궁해봐야 아무런 소용도 없기에, 나는 영보천존을 일단 지켜보기로 마음먹었다.

“아! 들어 봤습니다. 저한테 사형이 또 있었네요.”

“…얼빠진 녀석.”

영보천존은 희한하다는 듯 혀를 끌끌 차더니 말을 이었다.

“사형이라니 설마 소개받아 왔다는 게 네가 복희님의 제자가 된다는 말이냐?”

“그렇습니다만.”

“말도 안 되는 이야기군. 이제 와서 무슨 변덕이란 말인가.”

투덜거리던 영보천존이 내게 말했다.

“태허궁에서 뭘 해도 좋지만 여기서 나가지 마라. 네가 함부로 돌아다닐 곳이 아니다.”

파앗

영보천존은 말이 끝나는 순간 사라졌다. 나는 영보천존이 나를 의심하는 기색은 있지만 그게 어디까지나 복희에 대한 의구심이었기에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잘 넘겼군. 그럼 이제….’

복희가 돌아오길 기다릴까? 아니면 태허궁을 탐색할까?

나는 어떻게 해야할지 생각하다가 그냥 후자를 택하기로 마음먹었다.

‘복희가 되돌아오는 걸 기다리는 게 안전하겠지만, 왠지 영보천존이 뭘 숨기려는지가 마음에 걸리는군!’

까짓거 죽는 것밖에 더 하겠어? 나는 마음을 대충 먹고는 내가 있던 방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설렁거리며 복도를 걷자, 이 태허궁이 과거에 항우와 함께 도달했을 때와는 많이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좀 더 단순하며 건축양식 자체가 굉장히 이질적인 느낌이었다.

‘…중화문명 특유의 느낌이 전혀 나지 않아. 밋밋하면서도 마치 이계의 것을 그대로 본 따온 것 같은 기둥과 벽이군.’

그러고보니 아까 봤던 원시천존, 태상노군, 영보천존 셋의 옷 또한 중화의 옷이라기엔 묘하게 달랐다. 기본적인 느낌은 남아있지만 사실은 다른 문명권의 무언가라는 느낌이었다.

‘아틀란티스. 과거의 기억을 보면 아틀란티스를 포함해서 초고대에도 인간의 문명은 존재했지만 망해버렸고 그 후에 간신히 문명이 되살아났다고 했지. 그렇다면 지금은 문명의 극초기로군.’

나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어떤 방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방은 특이하게도 커다란 비취석이 가득 박혀있어서 청람빛이 가득 흘렀으며 기이한 영기가 흐르고 있었다.

‘예전에 태허궁에 왔을 때 저 위치에 저런 방은 없었는데?’

나는 의아함을 느끼고 비취의 방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파앗!

그 순간 문 바로 앞에 영보천존이 순간이동을 써서 나타났다. 영보천존은 상당히 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 놈… 함부로 돌아다니지 말라고 했을 텐데!! 말한지 얼마나 됐다고 내 말을 무시하는 것이냐?”

“…….”

음…. 딱 걸려버렸군. 하지만 나는 기죽지 않고 태연하게 대꾸했다.

“벌써 사형이라고 유세떠는 겁니까? 복희님한테 사형의 명령대로 하라고 들은 적은 없습니다.”

“뭐, 뭐라고?”

원래라면 영보천존이 태허천존이라 생각할 경우 저 놈이 날 죽일까봐 겁먹어야 정상이다. 그러나 나는 왜인지 저 놈이 앞에 있으니 만만하다는 기분이 들어서 잔뜩 배짱을 부려보기로 마음먹었다.

“돌아다니면 안 되는 이유도 안 가르쳐 주면서 닥치고 박혀있으라니, 난 그렇게는 못 하겠습니다. 어차피 내가 복희 님의 제자가 된다면 이 방의 정체도 알게 될 건데.”

영보천존은 내 말에 황당한 표정을 짓다가 말했다.

“백웅. 넌 대체 어디서 온 놈이냐? 지상의 야만인들 중엔 너같은 옷을 입고 있는 자가 없다. 그리고 스승님께서는 중대한 일을 앞두고 계셔서 제자를 더 이상 들일 이유가 없으실 텐데.”

“중대한 일?”

“아무튼 돌아다니지 마라!! 이건 네 녀석을 위한 충고이기도 하다.”

“아니 이유나 좀 말해달라는 건데 그게 그렇게 어렵습니까?”

내가 계속해서 밀어붙이자 영보천존은 끄응 하고 어쩔수없다는 듯 대답했다.

“여기서는 인간의 신을 제작하는 중이다.”

“인간의 신이요?”

“스승님의 연구가 담겨있는 중대한 곳이다. 인공혼의 연구도 함께 하고 있지.”

“어….”

나는 뭔가 생각날듯 말듯한 기분이 들었다. 언젠가 한 번 이런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은데 어디서 들었었지?

‘아 맞다!! 인공혼! 옛날에 신공표가 암천향 측천무후의 궁에서 말한 적 있어!’

그 때 신공표가 측천무후의 궁에 침입해서 이족화된 측천무후의 백성들을 마구잡이로 학살하려고 하길래 내가 제지했더니, 신공표가 나한테 인간의 혼(魂)이 얼마나 무가치한지 설명해준 적이 있었던 것이다.

[내 스승이었던 태상노군과 원시천존은 삼황오제 복희의 직계제자이자 술법의 종사였다. 최초로 신의 제자로서 술법을 전승받은 이들이었지. 그들과 같은 대현자가 너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 같은가?]

[그들은 혼이 육체에 갇혀있다는 관점으로 연구를 시작했다. 거짓된 세계 속에서 흐르는 영원이 갇혀있다고 판단했지. 그들은 영혼이야말로 세계의 본질이라 생각했던 거다. 그래서 그들이 어떤 실험을 했는줄 아느냐?]

[인공혼을 만들어서 세계의 매질을 늘리려 했다. [옛 지배자]가 인신공양으로 흡수하는 영혼을 인공혼으로 대체하며 진짜 영혼들이 보다 자유롭게 살 수 있도록 하고, 이 세계에 사는 생명체들의 가능성을 높이고, 종말의 시기를 늦추려 한 거지. 그래서 그들은 술력을 모아서 영혼을 무한정 생성하는 도구를 만들었다.]

[또한 영혼이 많아진다면 그걸 이용해서 태어난 인간에게 혼돈의 재능을 발아시킬 확률도 크다고 판단했겠지.]

[대실패였지. 인공혼은 진짜 혼을 대체할 수도 없었고 새로운 제물로 쓰이지도 못했다. 무엇보다도 혼이 육체에 강하게 영향을 받는다는 점, 그리고 기억이 영혼의 본질을 증명할 수 없기 때문에 수많은 실패사례와 비극이 양산되었다. 그들은 결국 실험을 중단하고 말았지. 나타같은 전투보패를 만들 순 있었지만 그나마도 희귀한 사례였고.]

기억의 한켠이 마치 터져나오듯이 구체적으로 기억을 떠올려냈다. 나는 그 당시에 신공표가 하는 말이 워낙 옛날 일이라 그다지 깊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설마 지금 그 사건의 진상을 보게 될 줄이야?

나는 혹시하는 마음에 영보천존에게 말했다.

“신은 모르겠지만 인공혼 연구는 실패할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요?”

영보천존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말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나는 신공표에서 들었던 말을 떠올리며 그대로 대답했다.

“인공혼은 진짜 혼을 대체할수도 없고 제물로 쓰이지도 못하잖습니까. 게다가 혼은 육체에 강하게 영향을 받고, 기억이 영혼의 본질을 증명할수도 없고….”

“…….”

“혼과 육체는 상보적인 관계니까 거기에 어긋나는 인공혼은 성공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그러자 영보천존은 자신의 수염에 손을 올리며 뭔가를 곰곰히 생각하는 듯 했다. 그러더니 씩 웃으면서 말했다.

“제법이군. 맹해보이는 녀석인데 꽤나 요점을 짚지 않았는가. 혼과 육체가 상보적이라는 걸 알고 있다니, 혼에 상당한 조예가 있구나.”

“그냥 뭐….”

“신의 제자로 들어올 자격은 있군.”

영보천존이 비취문을 만지작거리며 말을 이었다.

“…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애초에 성공할 수가 없는 실험이지. 하지만 신의 제작과는 달리 인공혼의 연구는 사형들이 스승님께 주청해서 함께 진행하는 것이다. 자기들의 힘만으로는 부족하니 신인 복희님의 힘을 빌리는 거지.”

“흐음.”

“여러가지 이득이 있겠지만 사실 사형들이 인공혼 실험을 행한 근본적인 이유는 인간을 너무 사랑해서다.”

“네? 무슨 말씀인지.”

“어찌되었든 종말은 예정되어 있고 인간은 이 행성에 사는 한 거기에 휩쓸리게 될 것이다. 그래서 사형들은 복희 님의 도움으로 인간을 빨리 성장시키고 혼돈의 재능을 발아시켜서 종말에서 빠져나가고 싶은 마음이겠지만….”

인공혼을 연구하는 이유가 예전에 신공표에게 들었던 것과 다르다.

‘흠. 아무래도 시초에는 인간의 격 자체를 향상시키려는 의도로 연구를 진행했었나보다.’

그러다가 나중에 삼황오제가 협정을 맺게 되면서 인간의 희생을 줄이려는 의도로 변질된 모양이었다. 나중에는 윤회체계가 망가지고 [옛 지배자]에게 인간의 영혼이 잡아먹히는 형태로 사후세계가 바뀌게 되었기 때문이다.

영보천존이 문득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인간이 신의 손으로 구원받을 가치가 있겠나?”

“……?”

이건 무슨 소리야?

나는 진심으로 이해가 되지 않아서 영보천존에게 말했다.

“사형도 신의 관점에서 보는 겁니까? 신이야 당연히 인간을 벌레보듯 하니까 그런 생각을 하는 거겠지만….”

“그럴수도 있지. 허나 나는 인간을 객관적으로 구원받을 가치가 없는 족속이라고 보는 편이다.”

“…….”

“애당초 구원이란 게 뭐지? 인간의 문명이 발전하고 존속하는 성장은 물론이고 사후세계의 구원까지 보장되는 게 사형들이 원하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란 게 사후의 평안을 인정해줘도 될 정도로 착한 존재인가.”

나는 영보천존의 말에 잠깐 생각하다가 말했다.

“어… 다 착하진 않죠. 좀 나쁜 놈들도 많고….”

“인간은 처음부터 혼돈으로 빚어진 생물이다. 당연히 혼의 원형에는 혼돈이 품어져 있고 악(惡)도 강하게 새겨져 있지. 인간이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한없이 악해질 수가 있는 것이다. 뭐…. 만든 놈이 만든 놈인 만큼.”

그렇게 말한 영보천존이 히죽 웃으며 손으로 비취문을 퉁퉁 두들겼다.

“사형들은 자기 마음대로 인류를 재단하고 있어. 돌봐야 할 착하고 어린 양처럼 여기고 있지. 그러니까 이런 멍청한 짓을 하는 게 아니겠나.”

“…….”

“인간이란 건 제멋대로 악의로 가득찬 세상을 활보하다가 벌레처럼 죽는 게 제 맛이지….”

잘은 모르겠지만 영보천존이 무척이나 짜증나는 놈이라는 건 순식간에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이 놈에 대해서 또 다른 사실을 깨달았다.

‘영보천존. 태허천존과는 완전히 다른 놈이야! 절대 동일인물이 아닌 것 같다.’

동일인물이란 걸 사전에 듣지 못했다면 전혀 생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인격이 다르다. 내가 봤던 태허천존의 성격은 절대 이렇지 않았던 것이다. 설마 태허천존으로 살아오면서 성격이 크게 바뀌기라도 한 것인가?

‘뭐지…. 이건 왠지 중요할 것 같다.’

뭔가 강렬한 위화감이 느껴졌고 이건 중대한 단서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나는 일단은 그런 생각을 뒤로 밀어넣으며 말했다.

“사형.”

“응?”

나는 영보천존을 손가락질했다.

“대사형과 작은사형한테 다 이를 겁니다!”

“…….”

“아무리 그래도 윗사람 뒷담은 좀 아니죠. 처돌았습니까?”

내 말에 영보천존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이…이 새끼가. 감히 어디서 사형에게….”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말해달라고 한 적도 없는데 지맘대로 떠든게 누군데요? 하여튼 비취방은 보면 안되는거 알겠으니까 이제 그만 가 주십쇼.”

“그렇게는 못 하겠다. 네 녀석은 가만 놔두면 천계를 어지럽힐 것 같으니 제압해 주마.”

휘리릭!!

다음 순간 영보천존이 들고 있던 커다란 장(杖)을 휘둘렀다. 그러자 내 몸에 투명한 그물이 감싸지더니 순식간에 내 몸을 꽁꽁 묶었다. 내가 힐끔 투명한 그물을 바라보자 영보천존이 말했다.

“네놈도 나름대로 한가닥 하는 듯 하지만 풀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푸는 순간 나와 싸우고 싶다는 걸로 받아들이겠다.”

“호오, 싸움 좀 하시나 봅니다 사형. 한번 항렬 내려놓고 붙어볼까요.”

“뭐?”

“사제한테 맞기 전에 이거 푸십쇼!”

내가 으르렁거리자 영보천존이 황당해했다.

“…너, 아까부터 왜 이렇게 까부느냐? 내가 만만하냐?”

“네! 만만하네요!”

정말 만만한 기분이 든다!

왜 이런 걸까!

“…….”

“…….”

잠시 할 말을 잃은 영보천존이 이윽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으으, 이유를 모르겠군. 왜 네 녀석을 죽이고싶은 마음이 잘 안 드는건지.”

“……?”

“흥. 망아지같은 놈.”

슈륵

다음 순간 영보천존의 속박술법이 풀렸다. 내가 자유를 찾은 팔다리를 한 번 털자 영보천존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리도 돌아다니고 싶으면 맘대로 해라. 네놈이 스승님께 무슨 소리를 듣든 이제부터 내 책임은 없다!”

슈욱

영보천존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나는 팔을 한 바퀴 돌려서 몸을 풀고는 생각했다.

‘저 놈이 정말 태허천존이 맞긴 한 건가?’

가면술을 쓰는 자로써 알 수 있다. 방금 대했던 영보천존은 결코 천계의 흑막이라는 느낌이 아니었으며 도리어 고리타분한 대라신선의 전형이었다. 저 놈이 엄청난 흉계를 꾸며서 나를 엿먹인다는 것 자체가 잘 상상이 되지 않는다.

‘뭔가…. 뭔가 알 것 같은데…. 으 젠장!’

나는 이 상황을 명쾌하게 정리할 수 있는 뭔가가 있다는 걸 직감했지만 내 머리로는 그걸 생각하는 게 한계였기에 그냥 머리를 털어버리고 말았다. 어차피 나중에 책사들이 정리를 해 줄 거라 생각하며, 나는 서서히 비취문으로 다가갔다.

이 비취문 너머에 인공혼에 대해서 연구하고 있다. 나는 이걸 열면 원시천존과 태상노군에게 엿을 먹이는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이내 힘을 주어 문을 강하게 열었다.

끼이익!!

‘어차피 신공표 말로는 실패한 실험이라는데 지금 실패하면 뭐 어때! 지금 실패하나 나중에 실패하나 그게 그거지.’

내가 고대의 정보 한 줄이라도 더 얻는 게 좋지!

나는 안으로 문을 열고 들어가자 생각보다 넓은 공간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기이한 도기나 자기가 사방에 둥둥 떠 있으며 혼처럼 보이는 유체가 연기처럼 날아다니는 게 보였다.

‘흠…. 저건?’

나는 문득 굉장히 거대한 혼(魂)이 떠 있다는 걸 알아챘다. 크기가 약 이 장 정도였는데 느껴지는 혼의 밀도는 평범한 수준이 아니었다.

‘테스카틀리포카, 신의 혼만큼은 아니지만…. 일반적인 혼의 수만 배나 되는 밀도군.’

일반적인 혼을 뭉친다면 최소한 백만 단위의 혼백체가 뭉쳐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저건 정상적인 생명체가 가질 수 있는 혼은 아니다.

이게 바로 인공적으로 혼을 양생(養生)해서 키운 결과물인가?

하지만 왜 이렇게 혼을 키울 필요가 있는 것일까?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등 뒤에서 목소리를 들었다.

“지금 뭐 하는 것이냐?”

나는 그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거기에는 얼굴이 딱딱하게 굳은 한 흑의의 장년인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나는 그가 누군지 알고 있었으므로 찔끔하는 기분이 들었다.

“헉! 원시천존.”

“백웅이라고 했었지. 너는 어찌 초면인데 내 명호를 알고 있느냐?”

“…….”

“그리고 감히 인공혼 연구실에 들어오다니…. 설마 혼을 훔쳐가려고 했느냐!”

원시천존은 상당히 노한 기색이었다. 나는 괜한 짓을 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젠장…. 이렇게 된 이상 질러나 보자!’

나는 조심스럽게 원시천존에게 말했다.

“사형. 왜 이렇게 거대한 인공혼을 만든 겁니까?”

“네가 그걸 알아서 뭐하려는 거냐.”

“너무 호기심이 강한 성격이라서…. 지금의 무례는 어떻게든 사죄하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크게 푹 숙이면서 말을 이었다.

“제발 알려주십시오!”

“…….”

그 때 옆에서 느긋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알려주지 그러느냐.”

“스승님!”

복희와 태상노군이 이어서 비취실 안으로 걸어들어오고 있었다. 복희는 흥미로운 눈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역시 범상한 녀석은 아니군. 태허궁으로 보내자마자 태허궁에서 가장 엄중한 연구를 진행중인 곳에 성큼 들어와 버리다니.”

“스승님…. 저 놈은 수상합니다. 정녕 제자로 들이실 생각이십니까?”

“말해 무엇하겠느냐. 어차피 저 아이의 힘으로는 수만 년을 수련해도 내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거늘.”

“…….”

“나는 특이한 제자를 키우고 싶다.”

복희의 말에 태상노군과 원시천존은 말없이 수긍하는 듯 했다. 그리고 복희의 눈짓을 받은 원시천존이 어쩔 수 없다는 듯 내게 설명해 주었다.

“백웅. 그 거대 인공혼은 인간(人間)의 신(神)을 제작하려고 만드는 것이다.”

“인간의 신? 무슨 말입니까.”

“…지금은 복희 님과 여와 님이 인간을 보호해주고 있지만 황제의 세력과 수많은 지배자들을 상대로 끝까지 돌봐주는 건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복희 님의 권능으로 만들어진 새로운 신성을 만들어내어 인류의 보호와 발전을 이룩하려는 것이다. 바로 그 인공혼이 모체가 되겠지.”

“그게 가능한 겁니까?”

“그렇다.”

원시천존이 서서히 거대 인공혼 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옆에 있던 웬 조그마한 묘목을 들더니 말을 이었다.

“삼천세계의 중앙에 존재하는 [신의 나무]에서 힘을 빌려온다면 가능한 일이지.”

“근데 그냥 사형들이 신이 되면 안되는 겁니까? 그게 더 간편하고 빠를 것 같은데.”

“안 된다. 우리가 지배자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면 스승님께 너무 큰 도움을 받았기에 인과율에 크게 제약당한다. 이 인공혼을 만드는 이유는 인과율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존재를 만들려는 거니까.”

“…….”

어?

이런 거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아하! 맞아! 기신(機神)!’

아베노 세이메이와 미호!

후대에 그들이 시도했던 인위적인 신위 승격작업이 고대에도 복희의 주도로 체계적으로 이뤄지고 있었던 것이다! 아베노 세이메이가 생각할 수 있는 일을 술법의 창조자 복희가 생각하지 못할 리가 없는 것이다.

기신제작.

인간의 신을 만들어 인간을 지키는 것.

동영의 신을 만들어 동영을 지키는 것과 규모의 차이가 있을 뿐 크게 다르진 않으리라.

‘근데 어째서 이 이야기는 후대에 전해지지 않았던 거지?’

인간만의 신이 존재한다면 틀림없이 알려질 법도 했는데 내가 알기로는 전혀 그런 존재를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 설마 인공혼 실험의 실패와 뭔가 연관이 있는 것일까?

내가 의아해하고 있을 때 복희가 말했다.

“뭔가 하고싶은 말이 있는 표정이군. 더 궁금한 게 있느냐?”

“어… 그게….”

나는 우물쭈물하다가 머릿속에 확 떠오르는 게 있었다. 그래서 원시천존과 태상노군을 한 차례씩 쳐다본 후 외쳤다.

“영보천존이 사형들이 인공혼연구로 개삽질한다고 비웃었습니다! 인간들은 벌레처럼 죽는 게 나은데 쓸데없는 짓 한다고 그랬습니다.”

일단 일러바치고 보자!

“…….”

“…….”

원시천존과 태상노군의 표정이 크게 일그러졌다. 복희가 옆에서 흐음, 하고 자신의 턱을 쓰다듬다가 말했다.

“그랬느냐? 가서 영보천존을 잡아오너라.”

“네!”

파밧

잠시 후 원시천존과 태상노군의 모습이 사라졌고, 약 한 식경이 지나서 영보천존이 그들과 함께 되돌아왔다. 복희는 그들 앞의 의자에 앉아있다가 선선히 부채를 부치며 말했다.

“감히 네가 겉과 속이 다른데도 숨기고 있었다니. 언제부터 인간에 적대적으로 변한 것이냐?”

“스승님….”

“나는 우주의 태룡(太龍)이며 질서의 후계자로서 인간을 적대하는 존재를 내 제자로 놔둘 순 없다. 이건 사소한 사안이 아니다.”

“스승님께서는 저 하룻강아지 때문에 수백 년간 스승님을 모신 저를 문책하시는 것입니까!”

영보천존이 억울하다는 듯 말했지만 복희는 아무런 감정의 변화도 없이 대꾸했다.

“그래서 백웅의 말이 사실이냐 아니냐?”

“거짓말입니다. 제가 언제 그런 말을 했겠습니까.”

“흐음.”

복희는 약간 눈을 크게 떴다.

우우웅!!

그 순간, 영보천존이 방금 전 나와 대화했던 광경이 눈앞에 환영으로 떠올랐다. 심지어 말소리도 똑똑히 들렸다.

[인간이 신의 손으로 구원받을 가치가 있겠나?]

[사형도 신의 관점에서 보는 겁니까?]

과거의 환영이 그대로 떠오르자 영보천존은 그대로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복희는 느긋하게 그 환영을 끝까지 보고 있다가 말했다.

“백웅이 잘못했군. 건방지게 사형에게 대들었고 하지 말라는 짓은 다 했어. 영보천존, 네가 잘못한 건 없다. 스승으로써 백웅을 징계하는 게 옳다.”

“스승님, 감사합….”

“하지만 너는 왜 내게 거짓말을 했느냐?”

“…….”

분위기가 급속히 냉각되었다. 복희는 훗하고 웃더니 말했다.

“웃기는 일이군. 너 만한 자가 백웅에게 단숨에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은 것도 모자라 그 사실을 숨기려 내게 거짓말까지 하다니…. 백웅에게 어떠한 힘이 있길래 그런 실수를 한 것이냐?”

“그, 그것이….”

“굉장히 부자연스럽군.”

영보천존은 나를 원망스러운 눈으로 한 차례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꿇어앉은 채 말했다.

“용서해 주십시오. 스승님께 반역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걸론 부족하다. 너 스스로 이유를 추측해 보아라.”

영보천존이 구슬땀을 흘리며 필사적으로 말했다.

“저 백웅이란 자 앞에서는 제 오랜 수양도 소용없었고 저 자신을 통제할 수 없었습니다. 방금 전 제 속마음이 시키는대로 말하는 걸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복희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중얼거렸다.

“그렇군. 가면이 백웅 자체에게 반응한 거군. 그렇다면 백웅은 뭐지?”

“네?”

“영보천존이여. 너는 정말 특출난 재능을 지닌 제자다. 인간이 타고나는 혼돈의 재능을 특출나게 타고났기에 앞으로 몇백년만 수련하면 원시천존과 태상노군을 뛰어넘을 수 있기에 너를 제자로 들였다.”

그렇게 말한 복희가 아무런 감정도 없는 눈으로 영보천존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혼돈을 너무 많이 타고난 듯하군. 그래서는 질서 너머의 영역을 다룰 수는 없을 테니, 네 한계를 오늘 보게 된 것 같구나.”

“…….”

“더 이상 기대할 게 없으니 너를 파문(破門)하겠다. 마지막으로 하고싶은 말이 있느냐?”

복희의 말에 영보천존이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가 천천히 얼굴을 들었다. 그리고는 서서히 입을 열었다.

“스승이시여. 저는 제 자신을 찾으러 가겠습니다. 부디 옥체 보중하소서. 그럼….”

복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디로 갈 생각인가? 나는 가라고 한 적이 없는데.”

“그 말씀은….”

복희는 웃었다.

“인간인 척 하는 네 본질을 내가 모르는 줄 알았더냐? 너같은 자는 후환이 되니 가만 놔둘 수가 없다.”

“……?!”

영보천존의 얼굴에 순간적으로 절망이 가득 찼다. 복희는 손가락을 들어서 영보천존을 가리켰다.

“우주의 먼지가 되거라.”

퓨웅!

다음 순간, 영보천존은 잿더미가 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

뭐?! 겨우 그거 일렀다고 처형당했다고?!

그냥 곯려주려는 정도였는데!

나는 복희의 극단적인 행동에 옆에서 지켜보며 깜짝 놀랐지만 이윽고 복희가 나직이 내게 말했다.

“백웅. 네가 이제부터 세 번째 제자다.”

나는 복희와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삼황 복희는 따스하게 웃으며 말했다.

“만나야 할 자가 있다. 지금 바로 탁록(涿鹿)으로 가자꾸나.”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