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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제자라구?!
나는 뜻밖의 말에 깜짝 놀랐지만 다음 순간 여와가 외쳤다.
[복희! 네가 나의 혈육이지만 함부로 나서는 건 용납할 수 없다!]
구우우우
[달이여! 달에 속한 모든 존재여! 여의 손에 들어와라!]
여와의 언령이 터져 나옴과 동시에 나는 달과 함께 통째로 여와의 손바닥으로 빨려들어 갔다. 정말로 물리적으로는 말도 안 되는 일이었으며 생물체의 상식으로 초월하는 일이었지만 아마 여와가 신의 힘으로 현실을 왜곡한 것이리라. 나는 도저히 대적할 방법조차 없어서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러나 다음 순간, 복희 또한 마주 언령을 썼다.
[업(業)이여, 인과여, 팔괘의 이름으로 금(禁)하노라!]
파앗
여와가 만들어 낸 행위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나는 다시 월면에 나동그라졌고, 내심 생각했다.
‘[작은 굴레]를 돌린 건가?! 아니, 그렇다기엔 좀 다른데.’
나는 지금까지 [옛 지배자]들의 전투를 많이 보았지만 지금 여와와 복희의 대결은 [작은 굴레]를 서로 돌려 대는 것과는 다른 것 같았다. 다만 지금 내 수준으로는 그 이질감이 어째서 생기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자 지켜보고 있던 뇌신이 버럭 화를 냈다.
[가면이고 뭐고 나를 이토록 무시하느냐? 쳐 죽여 버리겠다!]
투확
말이 끝나자마자 뇌신이 뇌극을 투척했다. 투척된 뇌극은 어찌된 일인지 빛보다 훨씬 빨라서 그 일격에 복희가 그대로 적중되고 말았다.
쿠콰콰콰
뇌극이 회전하며 태룡(太龍) 복희의 거대한 비늘을 꿰뚫기 시작했다. 뇌신이 즐겁다는 듯 광소를 터뜨렸다.
[하하하하…. 뱀 꼬치로 만들어 주지!]
[…….]
복희는 뇌신에게 공격당했음에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그저 조용히 우주에 떠 있을 뿐이었다. 그러더니 잠시 후 말했다.
[뇌신이여, 그대의 힘이 강하다는 걸 인정하겠다. 허나 설마 너 정도의 권능을 지닌 자가 쉴 새 없는 분노에 갈음하다니…. 어찌 불멸자가 이리도 얕아 보인단 말인가.]
[뭐라고? 감히….]
복희가 고개를 돌리듯 잠시 옆으로 향하더니 나직이 말했다.
[제자들이여, 잠시 저자를 상대하라.]
슈슉!
잠시 후 우주 공간에 두 명의 인영(人影)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알겠습니다!”
“위대한 스승의 뜻대로.”
그리고 각각 백의와 흑의를 입은 자들의 권능이 발휘되기 시작했다. 흑의인이 외쳤다.
“빨아들여라, 원시천반!”
시조보패(始祖寶貝)
원시천반(元始天盤)
위이이잉!!
다음 순간 거대한 팔괘의 원반이 떠올라서 흑의인의 전방에 나타났고, 흑의인은 팔괘원반을 전방으로 내던졌다. 던져진 팔괘원반은 갑자기 중앙에 기이한 문양을 떠올리더니 뇌신의 뇌극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뇌극은 삽시간에 팔괘원반 속으로 빨려들어 가 버렸으며 흔적도 없어졌다.
연이어 백의인이 양손으로 수인(手印)을 맺은 후 전방으로 검지와 중지를 모아 떨쳐 내었다.
“그대의 영기를 무(無)로 되돌리겠다!”
신술(神術)
태극도(太極圖)
파앗!!
백의인의 술법이 펼쳐지자마자 뇌신의 이마와 심장, 단전에 각각 하나씩 태극인(太極印)이 찍혔다. 아무리 상대가 삼황오제급 존재라 하더라도 태극도는 주술방어력을 무시하는 듯했다.
백의인은 뇌신을 노려보며 노갈했다.
“하앗!!”
잠시 후 태극인이 터졌다.
콰앙
뇌신의 몸뚱이가 태극도에 당해서 터져 나가는 게 눈에 보였다. 아무래도 태극도는 봉인식 말고도 타격식으로 전환해서 쓸 수 있는 술법인 듯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자마자 흑백인들의 정체를 깨닫고는 눈을 부릅떴다.
“워… 원시천존! 태상노군!”
천계 삼청(三淸)의 쌍두(雙頭)!
도교 최고신위!
천계를 창시한 존재들이자 신선들의 지존(至尊)!
말로만 들었던 자들이 눈앞에서 생생하게 움직이고 있다! 최초의 보패인 원시천반과 궁극신술 태극도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자들이라면 그들 외에는 생각할 수가 없는 것이다.
‘저자들이 왜?!’
내가 살아가던 시점에서는 이미 고인이던 전설상의 존재들이 인간의 모습으로 살아서 활동하는 걸 보자 당황스러웠지만 이내 내 머릿속에서 한 가지 사실이 떠올랐다.
‘원시천존과 태상노군은 복희의 직계제자…!!’
그들이야말로 세상에서 최초로 신의 제자가 된 존재이며 술법을 전승받은 인간!
그들이 복희의 부름에 나타나는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닌 것이다.
파지지직
[…….]
뇌신은 태극도에 당해서 몸뚱이 너덜너덜해진 채 침묵하며 우주에 떠 있었다. 그러더니 순식간에 원상태로 되돌아오며 으르렁거렸다.
[기껏 반신(半神) 주제에 목숨 아까운 줄 모르는군. 네놈들의 영혼을 붙잡아 고문해주마!]
화아악!!
뇌신이 뇌영(雷影)을 뿜어내자 빛의 속도로 원시천존과 태상노군이 서 있던 곳이 번개에 휩싸였다. 말 그대로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없는 공격이었는데 그 순간 시조보패 원시천반이 찰나 간에 빛을 내뿜었다.
원시천반(元始天盤)
초극의(超極義)
신능반사(神能反射)
파앙!
뇌영이 고스란히 뇌신에게 되돌아가자 뇌신은 본인이 피하지도 못하고 맞아 버리고 말았다.
[큭!]
촤라락
뇌신이 당황하는 사이에 원시천존과 태상노군은 갑작스럽게 뇌신의 등 뒤에 나타나 있었다. 둘은 원시천반을 마치 방패처럼 앞에 두고는 재차 뇌신을 공격했다.
“보패 반고번! 움직이지 마라!”
원시천존은 보패를 또 하나 꺼내서는 뇌신이 서 있는 공간 자체를 왜곡시키는 듯했다. 어마어마한 힘이 작용하며 뇌신을 주춤거리게 만들자 다시 한번 태상노군이 추가로 공격했다.
“태극도!”
콰과과광
[이놈들…. 그 무기는 대체 뭐냐!]
“스승님이 주신 것이다!”
뇌신은 뜻밖에 원시천반이 강력한 효과를 발휘하자 곤혹스러워했고, 삼청의 둘은 서로 호흡을 맞추며 뇌신의 발을 묶는 듯했다. 내가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 복희가 내게 말을 걸었다.
[백웅이여, 잠시 이야기를 할까?]
슈슈슉….
갑자기 주변 풍경이 우주의 시꺼먼 공간에서 새하얀 무의 공간으로 뒤바뀌었다. 그리고 내 앞에는 머리를 허리까지 기른 아름다운 미청년이 서 있었다. 어찌나 잘생겼는지 아름답다는 표현을 쓸 정도로 기품이 넘치는 외모였고, 살면서 별의별 미남 미녀를 다 보아 왔던 나조차도 잠시 넋을 잃을 정도였다.
“내 제자들이 뇌신을 상대로 오래 잡아 두지는 못할 것이니 빨리 이야기를 하거라. 지금은 당황해하고 있지만 저 존재는 나와 동격이니까 제자들의 실력으로는 당해 낼 수가 없다.”
그렇게 중얼거린 절세미청년이 내게 말을 걸었다.
“백웅이여, 네가 황제의 가면을 벗길 수 있는가? 어떻게?”
“…. 다, 당신이 삼황 복희입니까?”
“삼황?”
삼황이라는 명칭에 그는 잠시 어리둥절하는 기색이다가 되물었다.
“세 명의 황제란 말인가? 하지만 나는 황제의 편이 아니다.”
“…….”
삼황오제에게 삼황이라고 부른 것뿐인데 못 알아듣다니?
하지만 나는 이내 삼황오제라는 게 인간의 역사에 남은 신의 총칭일 뿐, 신이 그런 칭호를 알 리가 없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더욱이 지금은 인간의 역사가 변변히 발전하지도 못한 초고대이니 삼황오제라는 단어 자체가 없을 수도 있으리라. 나는 조심스레 말했다.
“다, 당신과 여와, 신농을 묶어서 삼황이라 하고, 황제와 그 밑의 사제를 일컬어 오제라고 부릅니다.”
“누가?”
“…인간들이.”
“흐음, 지금 인간들은 고대 문명이 망한 후라서 야만인이다. 막 동굴에서 나와서 석기(石器)나 갈고 있고, 아직 문자도 만들어 주지 않았는데 재밌는 소리를 하는구나.”
“…….”
헉…. 괜한 말을 한 건가?
내가 우물쭈물하자 절세미청년이 빙긋 웃더니 말했다.
“기이한 인간이로다. 미래에서 왔다고 하면 이해가 되지만 [작은 굴레]를 돌린 기록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 말은 네가 외우주에서 왔거나 [큰 굴레]를 돌렸다는 뜻인데, 어느 쪽이든 범상치 않군.”
“으, 으으으. 복희시여, 전 그냥 살고 싶을 뿐입니다. 살려 주십시오.”
“그러한가? 살고 싶다기보다는 죽을지 말지 고민하는 감정이 느껴지는데…. 이 또한 인간의 감정선과는 많이 다르구나.”
“…….”
내 감정까지 느낄 수 있는 건가?
내가 움찔할 때 그가 말했다.
“좋다. 네 내력은 묻지 않도록 하지. 황제의 가면을 벗길 수 있는지만 솔직히 대답하거라.”
“네!!”
복희가 숨을 트여준 덕에 나는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재빨리 살기 위해서 내 능력을 보여 주기로 했다. 나는 손을 들어 올리며 설명했다.
“제 능력은 뭐든 훔치는 손입니다! 만상지투라고 하고, 이걸로 상대의 가면을 드러내서 훔칠 수 있습니다! 신의 가면이라도 훔칠 수 있습니다.”
“어찌 그렇게 자신하지? [가면]을 갖고 노는 존재를 상대로 훔치기를 시도했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조차 없다. 그 일족의 배후는 범상치 않으니 그 누구도 섣불리 건드릴 수가 없었지.”
“어, 그게….”
“설마 백웅, 너는 신의 가면을 훔친 적이 있는 것이냐? 해 본 적이 없다면 그렇게 자신만만해할 수는 없거늘.”
큭….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어떻게 계속 정곡만 찔러 오는 거지?!
나는 복희의 말에 너무 당황하면 큰일 날 거라고 생각하며 화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뇨!! 신인지 뭔지 몰라도 아무튼 가면을 훔칠 수 있는 능력인데, 거 뭐시기냐, 아무튼 전 되게 잘 훔칩니다!!”
“…….”
“진짠데…. 아무튼 황제가 눈앞에 있으면 황제 가면도 어쩌면 훔칠 수 있을지도…. 어….”
갑자기 자신감이 줄어들어서 말소리가 쪼그라들자 복희가 껄껄 웃었다.
“하하하…. 재밌는 녀석이군. 좋다, 그러면 네가 그 능력을 나를 위해 쓰는 대신에 내 제자가 되는 것에 동의하겠느냐?”
“네?”
“나는 필멸자를 가르치는 걸 좋아하지. 저 두 녀석도 필멸자 중에 영특한 편이라 특별히 거두었는데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 무한의 세월을 살아오며 필멸자의 성장을 볼 때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성취감을 느낀다.”
“복희 님의 술법을 가르쳐주신단 말입니까?”
“그렇다.”
이건 말할 것도 없다. 나는 생각할 것도 없이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겠습니다!!”
어차피 복희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이 상황에서 술법의 진정한 창조자 복희의 술법까지 배울 수 있으면 완전히 이득이지! 그러나 내가 대답을 한 순간, 갑자기 내 목 앞에 새하얀 손이 나타나서 꽉 조르기 시작했다.
꾸우욱
“으에에엑….”
음울하면서도 사나운 영언이 장내에 울려 퍼졌다.
[복희, 이런 교활한 놈에게 속지 마라.]
“여와.”
[전욱의 신력을 휘두르는 놈을 어떻게 믿지? 어쩌면 이놈조차도 황제의 계략일지도 모른다.]
방금 전까지 뇌신과 싸웠던 여와가 어느새 이 공간에 간섭해 온 것이다.
그 말에 복희는 힐끔 나를 보더니 말했다.
“우둔한데 욕심이 많아 보이긴 하는군.”
“…….”
“허나 나는 황제의 부하라고 생각하지는 않아. 그자라면 좀 더 우아한 방식을 쓰겠지. 이렇게 멍청한 녀석을 보내 올 리는 없지 않겠나?”
[그걸 역으로 노렸을 수도 있지.]
“후후, 나의 혈육 여와여, 우리가 한 쌍의 뱀으로 태어나 세계의 신좌를 벗어날 때부터 생각했던 거지만 그대는 정말 의심이 많군. 하지만 의심만 해서는 아무것도 이룰 수가 없어.”
우웅
복희가 손을 휘두르자 내 목을 조르던 여와의 손이 소멸되었다. 그러자 여와의 목소리가 이 공간에 남아서 떠돌았다.
[복희…. 시간 낭비하지 말라…. 빨리 그 벌레를 죽여 버려라. 같이 뇌신을 잡기나 하자.]
여와의 목소리가 완전히 사라지고 정적이 흘렀다.
복희는 내게 말했다.
“그럼 나의 제자 백웅이여. 이제부터 내게서 술법을 배울 것인데 어디 술법 재능을 한번 볼까?”
복희가 내 이마 위에 손가락을 갖다 대었다.
웅웅웅
가벼운 진동이 내 머리통을 울리는 듯했다. 내가 약간 현기증을 느끼고 있자 복희가 잠시 후 손가락을 떼며 말했다.
“흠…. 백웅이여.”
“네?”
복희가 싱긋 웃었다.
“재능이 너무 바닥이구나. 내가 보아 왔던 인간 중에 제일 최악이구나.”
“…….”
“너무 바닥이라서 도리어 재미있구나. 하하하하하.”
아니, 전혀 재밌지가 않다고!
나는 졸지에 술법의 창조자에게 재능 바닥이란 말을 듣자 머리가 텅 비는 느낌이 들었다. 다들 나보고 무공보다 더 재능 없다고 했지만 어찌어찌 구르다 보니 술법을 몇 개 익혔으므로 그리 깊게는 생각한 적 없다. 그런데 내 술법 재능이 정말로 이 정도로 낮았을 줄이야!
“그런데 이상하군. 어째서 네 머릿속에 신술(神術)이 기록되어 있지? 남극선옹의 창천대신광(蒼天大神光)은 그 녀석에게만 알려 줬을 텐데.”
움찔
나는 복희가 내 머릿속의 술법을 다 뒤져 봤다는 걸 알아채곤 소름이 돋았다.
‘아 맞다!!’
예전에 혈주가 된 남극선옹의 가면을 뺏었을 때 그자의 인격이 내게 덮어씌워진 적이 있었고, 그때 강렬한 기억 때문인지 남극선옹의 신술이 내 기억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신술 또한 삼황 복희가 만들어 내어 남극선옹에게 전수한 것이었기에 복희가 의아함을 느낄 수밖에!
내가 등줄기에 땀을 줄줄 흘리고 있자 복희가 나를 날카로운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흐음, 이건 그냥 넘길 수 없겠는걸….”
“저, 저는 의심스럽지 않습니다.”
“너무 의심스러워서 재미있구나, 하하하.”
또 다시 껄껄 웃는 복희를 보자 미쳐 버릴 것 같았다.
‘뭐야?! 도저히 감정이 읽히지 않아….’
언뜻 인간적으로 보이긴 하지만 마치 인간이 아닌 존재가 억지로 인간을 흉내 내는 듯한 위화감이 들었다. 복희가 짐짓 정 있는 척 웃고 있지만 나는 가면술을 익혔을 때의 감각으로 상대가 전혀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걸 파악한 것이다.
이것이 신인 건가?
잠시 후 복희가 말했다.
“일단 뇌신부터 퇴치하고 와야겠군. 너는 천계에 가 있어라.”
“네?”
파앗!
복희의 모습이 사라짐과 동시에 나는 알 수 없는 장소로 이동해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이 장소에 눈이 익게 되자 이곳에 와 본 적이 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여긴…. 태허궁(太虛宮)!”
그렇다면 여긴 천계가 확실하다!
느닷없이 고대의 천계에 오게 되자 나는 정신없이 휙휙 넘어가는 상황에 혼란스러웠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래, 이렇게 된 이상 탈출은 이제 관두자. 복희가 어떻게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그에게서 적어도 한 가지 이상 비밀을 알아내자.’
상황에 따라서는 죽는 것도 감수해야겠다.
왜냐하면 삼황 복희가 말해 줄 수 있는 비밀은 내 죽음 1번 이상의 가치가 있을 테니까!
내가 마음을 다지고 있을 때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음? 웬 인간이 여기에 와 있지?”
내가 뒤를 돌아보자, 거기에는 선풍도골의 신선이 한 명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신선은 법장(法杖)을 땅에 짚고 있다가 흰 눈썹을 꿈틀거리며 말을 이었다.
“정체를 밝히거라.”
“아, 신선이십니까?”
“정체를 밝히래도.”
뭐 대라신선이겠지! 대라신선을 상대로 뭐 겁먹을 거 있겠냐!
나는 놀란 마음을 다소 쓸어내린 채 느긋하게 대답했다.
“복희 님의 소개로 태허궁에 온 백웅이라고 합니다, 하하하.”
“……?”
선풍도골의 신선은 고개를 갸웃하다가 말했다.
“뭐라고? 그 복희 님이 너같이 멍청해 보이는 놈을?”
“…….”
아니, 제기랄!
왜 보는 놈마다 나보고 멍청하다는 거야!
“왠지 넌 어디서 본 것 같은데.”
나는 눈앞의 신선이 괜히 짜증나서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그러는 당신은 누구십니까? 대라신선입니까?”
“흐음. 나를 모르다니. 정말 멍청하군.”
“아, 좀 그만….”
나는 크게 역정을 내려고 했지만 이어진 신선의 말에 눈을 부릅뜨고 말았다.
“나는 복희 님의 제자인 영보천존(靈寶天尊)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