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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1100화 (1,097/1,615)

1100====================

사신지혼(四神之魂)

나는 일단 몸을 숨길 곳부터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저런 신격들의 싸움에 휘말리면 죽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나는 빠르게 주위를 감지하다가 문득 계곡 안쪽에 어두운 공간이 있다는 걸 알아차리고는 재빨리 그쪽으로 피신했다.

타닷

‘젠장, 삼황 같은 존재가 이런 데 숨는다고 날 못 알아차릴 리는 없지만….’

신의 감각은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에 이미 저자들은 나를 감지했을 것이다. 다만 그렇다고 해도 대놓고 서 있는 것과 숨어 있는 것은 다르기 때문에 적어도 저자들이 용건을 끝낼 때까지는 내게로 주의가 쏠리지 않게끔 하려는 것이었다. 나는 삼황의 전투를 볼 생각도 하지 못하고 어두운 동혈로 들어온 후 머리를 굴렸다.

‘아, 어떻게 하지? 여기서 빨리 탈출해야 하는….’

번쩍!!

그때였다. 바깥에서 백광(白光)이 거세게 일어나더니 한동안 불빛만 계속 번쩍이기 시작했다. 바깥을 보기만 해도 불빛에 눈이 멀 것 같았고, 그 기세는 폭탄이나 현대 과학의 광선 따위와는 차원을 달리했다. 올올이 뻗어 나오는 섬광의 가닥가닥에 어마어마한 힘이 실려 있어서 파도치고 있기에 닿기만 해도 부스러지리라.

쿠구구구….

절벽이 곧 붕괴된다. 나는 그 사실을 알아챈 직후 이미 깊은 동굴에 들어온 상황에서 어떻게 피해야 할지 당황했는데, 이윽고 이를 악물고는 검을 휘둘렀다.

무량단(無量斷)

명곡(鳴曲)!

뇌신류 특유의 뇌기와 무당파 칠대절학의 하나인 진무칠절경 명곡의 힘이 의념천주에 의해 결합했다. 그리고 뇌력을 머금은 검뢰가 마치 투과하듯이 거대한 절벽의 암벽 내부로 실선처럼 뻗어 나갔고, 이내 파장을 통해 증폭되었다. 나는 검뢰의 밀사(密絲)같은 확장을 느끼다가 거미줄이 다 뻗어 나갔을 때 눈을 번쩍 뜨고는 검뢰 하나하나를 뇌화(雷花)로 변화시켰다.

슈콰콰쾅 - !!

순식간에 산 하나가 내부에서 폭발하더니 반대편으로 커다란 구멍이 뻥 하고 뚫렸다. 나는 백련교주처럼 순식간에 산을 꿰뚫는 장법은 쓸 수 없었으므로 여러 절기를 혼합해서 뚫어 낸 것이다. 그리고 내가 멸혼보를 써서 날듯이 뚫린 구멍 너머로 날아가자마자 등 뒤에서 폭발음이 울렸다.

콰콰광 -

바로 등 뒤까지 신력(神力)이 만들어 낸 폭풍이 날아드는 게 느껴졌다. 솜털까지 쭈뼛 설 정도였고, 폭풍의 가닥이 마치 창날처럼 변해서 내 등짝을 살짝 찔렀다. 그리고 나는 호신강기를 두르고 있었음에도 유리처럼 관통해서 내 피부를 쭉 가르는 감각에 그만 당황했다.

“헉.”

나는 멸혼보를 더욱 가속시켜서야 겨우 벗어날 수 있었고, 기력을 상당히 소모했기에 살짝 숨이 차는 기분이 들었다. 그것은 무한에 가까운 내공을 가지고 있는데도 잠깐 기력의 바닥을 볼 정도로 멸혼보를 강하게 썼다는 이야기였다. 파천일보를 시전하기 일보 직전까지 몰아가서야 겨우 신력의 후폭풍을 피할 수 있었기에 아찔한 기분이 들었다.

‘순식간에 최소한 일백 리를 이동했거늘 신력에 휘말려 죽는 걸 피하는 것조차 힘들단 말인가?’

절대지경에 이르지 않고 여기에 왔다면 무조건 죽었으리라.

투웅

나는 몸을 허공에서 튕겨서 뒤를 돌아보았는데 가히 장관이었다. 하늘은 아직도 백염(白炎)으로 불타는 중이었으며 쉴 새 없이 수백만 개의 괴 광선과 유성이 날아다니고 있었고, 하늘이 열리면서 알 수 없는 소환수가 꿈틀거리며 포효하는 게 보였다.

구오오오!!

용과 거북을 섞은 듯한 소환수가 포효하자 입에서 먹빛 광선이 삭제 폭포수처럼 뿜어져 나갔고, 그 광선이 뇌신을 때렸다.

[하하하.]

그러나 뇌신은 광선을 피하기는커녕 오히려 주먹을 휘둘러 버렸고, 소환수의 광선이 튕겨져 나가면서 소환수마저 곤죽이 되어서 터지는 게 보였다.

푸콰콱

여와가 불쾌한 듯 노성을 내지르는 게 들렸다.

[감히 내 소환수를!]

[어쩌란 말이냐?]

나는 머나먼 곳에서 간신히 화안금정의 천리안으로 그들의 싸움을 목격하다가 이를 악물었다.

‘젠장…! 구경이나 할 때가 아니지! 여기가 기억 속의 세계라 해도 저들의 싸움이 미치지 않는 곳까지 도망친다면.’

나는 이미 이 행성을 반쯤 일주한 경험이 있다. 무한에 가까운 내공을 이용해서 계속 달리고 또 달리면 저자들에게서 수천 리나 멀어지는 게 가능할 것이다. 나는 마음의 결정을 내리고는 재빨리 도망치려고 멸혼보를 운용했다.

스스 -

멸혼보를 써서 약 열 걸음을 뛰었을 때였다. 갑자기 둔중한 목소리가 내 귓전에 울리는 게 들렸다.

[너는 대체 누구냐. 이리 오너라.]

스윽

다음 순간, 나는 내 몸뚱이가 그대로 투명한 손에 붙잡혀 차원의 벽을 넘어가는 걸 느꼈다. 도저히 무공으로는 저항할 방법이 전무한 것 같았다. 손이 언제 내 몸을 붙잡았는지도 모르겠고, 그 손에 담긴 힘이 너무 강해서 빠져나올 방법이 없을 것 같았다.

‘으아아아!! 미치겠네!’

나는 다가오는 죽음을 느끼고는 짧은 순간에 미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죽는 건 그렇다 치더라도 마치 벌레처럼 죽을 거라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당장이라도 자살을 선택할지 끝까지 버틸지 순간적으로 엄청난 갈등을 느꼈지만 나는 이내 삶의 의지를 불태우며 정신력을 한데 모았다.

멸혼보(滅魂步)

파천일보(破天一步)!

머릿속에서 거대한 종소리가 울리며 세계가 쪼그라들기 시작했다. 테스카틀리포카와 싸울 때 제대로 발현했던 경험이 바탕이 되어서였는지 이번에는 좀 더 집중력이 덜 소모된 느낌이었다. 그리고 움직일 수 없는데도 마음의 영역이 내 움직임을 끌어내었고 이윽고 강신(降神)의 느낌과 함께 투명한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으아아아아!!”

푸확!!

파천일보의 효과로 내 몸이 무형의 손을 터뜨리며 수십 리 밖으로 튕기듯 날아가자, 뒤쪽에서 놀란 듯한 영언이 들려왔다.

[호오….]

여와의 놀란 듯한 목소리도 들렸다.

[복희. 저 벌레가 네 손을 벗어났단 말이냐?]

[재미있군.]

나는 그 여상한 대화에서 방금 내게 손을 뻗은 게 삼황인 태호 복희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진중한 무게감을 뿜어내는 거대한 용이 뭔가 술수를 썼던 것이다. 다만 복희의 모습은 예전에 봤던 어마어마한 크기가 아니었기에 지금은 이 세계의 크기에 맞춰서 현신한 것이리라.

그러자 뇌신이 약간 화를 내는 기색이었다.

[네놈들, 감히 날 앞두고 여유부리는 건가? 저딴 벌레가 뭐라고!!]

그러더니 뇌신이 신경질적으로 외쳤다.

[싸움에 집중할 수 있게끔 내가 벌레를 잡아 주지!]

뭐라고?!

그리고 다음 순간 갑자기 파직 하는 번갯불이 내 앞에 나타났고 나는 그대로 광속(光速)으로 어떤 공격이 날아온다는 걸 감지했다. 그러나 형용하는 표현이 아니라 말 그대로 빛의 속도였기에 아무리 절대지경의 감각이라도 이걸 제대로 방어할 수는 없었고, 찰나의 대응 시간만이 남겨졌을 뿐이었다. 이래서는 검 한 번 휘두를 시간이 존재치 않는다.

‘큭!! 뇌신지혼에 제대로 당한 것 같은 기분…!!’

그러나 의념이 번개보다 빠를 수도 있기에 찰나의 대응 시간이 있으면 충분하다. 뇌신지혼이 절대지경 내에서 절대무적이 아닌 이유다. 그리고 나는 이 상황에서 쓸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 무쌍패뿐이란 걸 알아챘다.

무쌍패(無雙覇)!

아무리 뇌신지혼의 공격이라 해도 무쌍패의 무위전변을 이용하면 무(無)로 돌릴 수 있다! 의념과 동시에 무쌍패가 상대의 공격을 무위로 되돌리기 시작했고, 선명한 태극(太極)이 허공에 그려졌다. 나는 무쌍패가 실패하지 않고 성공한 것에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좋아. 무쌍패로 한번 버티고 나서 다시 한번 파천일보를…. 연속으로 두 번이나 쓰면 몸에 무리가 가겠지만 그래도….’

키리링

번개가 울리는 소리.

잠깐 동안 그 가느다란 소리가 귓전을 스치고 지나갔다.

푸콱!

‘…어?’

나는 태극을 관통해서 뇌극(雷戟)이 내 명치를 꿰뚫었다는 걸 알아챘다. 그리고 나를 꿰뚫은 뇌극은 이윽고 내 몸 전체를 감전시켰고, 나는 세포 하나하나가 타들어가는 듯한 격통에 울부짖었다.

파지직

“으아아아아아!!”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설마 무쌍패가 뚫렸단 말인가?!

이럴 수는 없어!

파밧

내가 공황 상태에 빠져서 고통에 울부짖고 있을 때 이번에는 뇌신이란 존재가 바로 내 눈앞에 나타났다. 나는 그제야 뇌신을 제대로 볼 수 있었는데, 그자는 전신이 열광(熱光)같은 백색으로 빛나는 뇌전의 화신과 같았다. 또한 그의 등 뒤에는 여러 쌍의 날개가 있었는데, 한 쌍만 실체인 듯했고 나머지는 물결치는 번개처럼 보였다. 이목구비가 없는지라 마치 팔부신중 천인의 본체를 연상시켰다.

뇌신이 노한 듯 중얼거렸다.

[감히 천상천하를 불태우는 이 몸 앞에서 하찮은 태극 따위의 리(理)로 맞섰단 말인가? 갈기갈기 찢어 죽여주마!]

허, 허억….

엄청난 살기다…!!

나는 절대지경에 이르고 어지간한 살기에는 눈도 꿈쩍하지 않게 되었고, 심지어 웬만한 신격들을 상대로도 배짱을 부릴 정도였다. 그러나 뇌신이 지금 내뿜는 살기는 정말로 차원이 다른 살기라서, 살기만으로도 천지의 기운이 죽어 버리는 기분이었으며 항우의 천살성 기운조차 뇌신에 맞설 수 있을지 의문일 정도였다.

나는 감전되어서 몸을 부들부들 떨며 입에서 거품을 흘리면서도 필사적으로 빠져나오려 했다. 그러나 이제는 방법이 없는 듯했다.

‘미친…!! 무쌍패가 안 먹히는 공격이 있었….’

나는 그 순간 절감했다.

[옛 지배자]중에서도 차원을 달리하는 존재와 싸우게 되면 아무리 무쌍패라도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위잉

바로 그때, 뇌신의 몸 주변에 팔괘(八卦)가 떠올라서 원형의 결계처럼 그를 감쌌다.

콰콰쾅

뇌신이 귀찮다는 듯 날개를 한번 떨치자 팔괘는 모조리 터져 버렸지만 이윽고 장중한 적태극(赤太極)과 청태극(靑太極)이 천지상하를 채우며 뇌신을 원통 안에 가두었다. 저건 내가 알고 있는 그 어떤 술법으로도 설명이 불가능한 기이한 힘이었다.

그리고 뇌신이 멈칫하는 사이에 원통의 태극이 압착되었고, 허공에 태극만이 남게 되었다.

쿠궁

거대한 용, 복희의 영언이 들려왔다.

[끝없이 오만한 자로군. 태극이란 나, 복희가 새로이 만들어 낸 우주의 이치. 그토록 나를 깔아뭉개고 싶은가?]

지지지직….!!

지지직

번개가 이글거리는 소리가 잠시 동안 퍼져 나오더니 이윽고 태극의 정중앙에 있는 균열이 찢어졌고, 그 사이로 뇌신의 손이 뻗어 나왔다.

쩌억!!

뇌신은 태극을 찢어 열면서 외쳤다.

[신이면 신답게 시공간이나 갖고 놀며 싸울 것인지 어딜 잘난 체하는 것이냐? 태극이라니, 결국 신의 발아래 있는 법칙에 불과하거늘!]

뇌신의 말에 나는 번뜩 뭔가를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저자들은 그저 신력을 현실에 드러내어 겨루고 있을 뿐, [옛 지배자]들이 싸울 때처럼 시공간을 조작하며 법칙 대결을 하지 않고 있다! 그러자 뇌신의 말에 복희가 담담하게 대꾸했다.

[신성(神聖)이라면 피차 [작은 굴레]나 시공간쯤 가볍게 다룰 수 있으니 아무리 조종해 봐야 서로가 가진 혼돈의 핵에는 타격을 입힐 수 없지. 압도적인 격차가 아니라면 승부가 나기 힘들고, 얼마나 싸움을 준비했냐가 중요하지. 그래서 네놈도 일부러 그 날개를 만들어서 조종하고 있지 않은가?]

[…….]

[우리의 화신부터 다 제거해서 약화시킨 후 우리의 본체를 없애려고.]

뇌신이 갑작스럽게 언령을 토해 냈다.

[잔말할 것 없다. 너흰 내게 목을 내놓아라! 너희의 목을 취하고 이 우주를 파괴할 것이다.]

쿠콰콰쾅

뇌신의 날개가 펼쳐지며 갑자기 천지아래 광뢰(狂雷)의 폭풍이 몰아쳤다. 그리고 번개가 눈앞을 뒤덮음과 동시에 복희가 내 머릿속으로 말했다.

[기이한 자여, 넌 좀 있다 보자. 잠깐 나가 있어라.]

휘리릭

그 말이 끝나자마자 나는 형상화된 팔괘 덩어리에 몸이 칭칭 감긴 채 어디론가 날아갔고, 잠시 후 나는 숨을 쉴 수 없다는 걸 알아챘다. 사방천지가 시꺼먼 어둠과 성광뿐이었다.

‘우, 우주 공간!!’

복희의 술법으로 우주에 내던져진 것인가!

아니나 다를까 약간 시선을 돌리자 저만치에 지구가 보였고, 또한 지구를 가득 채운 뇌운(雷雲)이 행성 전체를 빛나게 하는 게 보였다. 그리고 행성이 번쩍거리는 걸 우주에서 보고 있으니 섬찟한 기분이 들었다.

‘뇌신의 번개가 지구 전역을 때리는구나…. 무슨 저런 무식한…. 어….’

저게 뭐야? 커진다!

쿠구구구

잠시 후 지구가 백광에 휩싸이더니 번개의 폭풍이 지구를 중심으로 우주 공간을 향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눈 깜짝할 사이 내가 있는 곳까지 번개의 폭풍이 밀려오는 걸 보고 경악했고, 이윽고 저 폭풍 또한 빛의 속도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가히 우주적인 재앙이었기에 나는 극히 당황하면서 주위를 둘러보았고, 이윽고 달을 발견하고는 그쪽으로 비등을 써서 순간이동했다.

파밧

월면(月面)에 도착했지만 아직도 뇌신의 번개가 기운을 뻗치고 있는 중이다.

‘제길…. 1초도 안되잖아….’

나는 이곳도 금세 뇌신의 폭풍에 휩싸일 거라 생각하자 암울한 기분이 들었다. 달과 지구가 모조리 휩싸인다면 도대체 어디로 도망쳐야 하는 걸까? 무작정 우주로 멸혼보를 쓰면서 달려 나가 봤자 무의미하기 짝이 없는데! 너무 급박해서인지 비등으로 도망칠 장소라고 해도 바로 떠오르지 않았다.

“씨발!!! 나한테만 왜 지랄이야!”

나는 결국 욕을 토해 내며 그대로 전신에 흐르는 음신지력을 단번에 모아서 대방출했다. 신들끼리 개싸움을 하는 와중이라면 나도 신력으로 대응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내가 터뜨린 음신지력은 용형(龍形)으로 변하더니 번개의 폭풍에 정면으로 맞섰다!

콰지직 콰지직

“엥?!”

저거 뭐야!

내가 만든 건가?!

음신지력의 용은 아가리를 벌리면서 뇌전의 폭풍 속으로 꾸역꾸역 날아가고 있었다. 마치 승천하려는 용을 번개가 짓누르는 듯한 형상이었지만 음신지력은 전혀 기죽지 않고 고개를 꼿꼿이 치켜들고 있었다.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날아가는 음신지력을 보고는 황당했다.

‘흑웅도 없는데 이게 대체….’

뜻밖의 현상에 당황스럽다.

‘좋아! 그럼 기왕 하는 김에….’

그리고 나는 혹시 하는 생각이 들어서 사이탄의 언령을 외웠다. 통제력을 더 강화시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잠시 후 언령이 완결되자 음신지력의 용은 한층 더 힘을 받더니 이윽고 없던 날개가 생겨났다.

푸드덕!!

날개를 크게 홰친 음신지력의 용은 흰자위로 가득 찬 눈을 번들거리며 포효했다.

크어어어어!!

촤아악 하는 소리와 함께 포효가 퍼져 나갔고, 마치 공간 그 자체가 얼어 버리는 것 같았다. 거대한 한기와 함께 냉멸(冷滅)의 기세가 우주 공간에서 청백(靑白)의 나선이 되어 번개 폭풍 사이로 스며드는 듯했다. 잠시 후 엄청난 태음(太陰)의 신력이 공간을 가득 채웠고, 음신지력의 용 또한 사라지고 말았다.

슈슉….

“…시간이 멈췄나?”

나는 허공에서 광대한 영역의 번개와 태음이 얽힌 채 한 치의 미동도 없이 굳어 있는 걸 보자 어이가 없어서 중얼거렸다. 심지어 지금 음신지력이 물리법칙을 인위적으로 왜곡시켰는지 달인데도 불구하고 편하게 숨 쉬고 말도 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음신지력이 이런 힘까지 발휘할 수가 있단 말인가? 나조차도 알지 못했던 음신지력의 위력에 다른 신들조차 놀랐는지 이윽고 그때까지 잠잠하게 있던 여와가 내게 영언을 보냈다.

[그 혼돈의 속성은 전욱의 것. 네놈은 전욱의 화신이었구나!]

“아, 아니, 전욱의 화신이 아니라 사도일지도….”

[일개 사도가 그토록 농후하고 강대한 신력을 가진다고? 웃기는 소리!]

“…….”

[전욱, 감히 우리와 지상에서 세력을 다투는 중에 화신을 보내오다니! 건방진 놈, 황제를 등에 업고 눈에 보이는 게 없구나!]

나는 기가 막혔다. 고작 기억 속의 세계일 뿐인데 왜 이리 생생하단 말인가? 도저히 이게 현실이 아니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여와의 신력이 쩌렁쩌렁 내 머릿속을 울리는 걸 느끼고 있자니 아득한 기분마저 들었다.

‘젠장, 정신 차리자!’

아직 자살하기는 일러!

‘삼황급 존재들한테서 도망치는 건 불가능하겠지. 그럼 이젠 교섭이다.’

달까지 도망쳤는데도 도저히 답이 안 나온다면 더 이상 도주는 할 수 없다.

인간의 힘으로 더 도망치는 건 한계가 있는 것이다.

어떻게든 교섭으로 마무리를 지어서 살아날 길을 찾는 수밖에!

‘으, 정향의 인과율이 남아 있어야 할 텐데. 이제 없나…?’

나는 머리를 냉정하게 돌린 후, 이를 악물며 외쳤다.

“세 분 중 아무나 나 좀 살려 주십시오!! 그럼 제 모든 힘을 다해 생명의 은인에게 보답하겠습니다!”

그리고 신들의 대답은 곧장 되돌아왔다.

[찢어 죽여주마 벌레 같은 놈!]

[잠깐 기다려라, 밟아 죽여주마!]

[호오, 조그마한 녀석아. 어떻게 보답하겠다는 말인가?]

“…….”

차례대로 뇌신, 여와, 복희의 순서였다.

나는 오만한 뇌신과 여와가 나를 쳐 죽이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자 할 말이 없었지만 다행히도 복희만큼은 내 말을 들어 보겠다는 태도였다.

‘젠장!! 그래도 하나는 건져서 다행이다!’

나는 급히 복희에게 대답했다.

“이 조그마한 녀석이 감히 복희께 말씀드립니다. 저를 살려 주신다면 거 뭐시냐….”

나는 두서없이 말을 꺼내다가 말문이 막혔다.

‘큰일 났다! 줄 게 없네!’

도대체 천하의 삼황 복희에게 무엇을 해 주어야 목숨의 대가가 될 수 있을까? 복희만 한 존재는 전 우주를 통틀어도 찾기 힘들었으며 창조신 반고의 직계 후예라는 어마어마한 신격이었다. 심지어 창세 신으로까지 불렸으니 내가 갖고 있는 보물이나 보패 따위는 복희에게 있어서 한 줌의 가치조차 없을 것이리라. 팔괘와 태극, 술법의 창조자에게 술법에 기인한 선물을 해 봤자 무슨 소용이겠는가?

심지어 신공표나 구천현녀가 나선다 하더라도 물질적으로 복희에게 의미 있는 선물을 줄 수는 없으리라. 모든 술법의 근원이 바로 그였기 때문이다.

이것저것 다 제외하면 남는 건 칠요지만, 그렇다고 수요나 화요를 줘도 될까?

칠요는 삼황오제에게 있어서 보통 의미가 있는 게 아니다. 자칫했다가는 더더욱 내 정체를 추궁 받다가 적대적으로 돌변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아, 젠장, 젠장…. 뭘 줘야 하지? 젠장!’

뭔가 주긴 줘야 하는데 자살하는 것보다 못해선 안 된다.

너무 좋은 걸 줘서는 안 되는데, 그렇다고 죽음을 받아들일 수도 없다.

‘줄 게 없으면 몸으로 때우자!!’

나는 초조해져서 발을 구르다가 막 떠오르는 생각대로 외쳤다. 너무 당황했는지 말이 더듬거리며 나왔다.

“화, 황제의 가, 가면을 벗겨 드리지요!!!!”

[…….]

“제가 가면을 벗길 줄 알아서…. 헤헤….”

한동안 침묵이 흐르는 게 느껴졌다.

[…….]

[…….]

[…….]

어, 어라? 뭐 잘못 말했나?

잠시 후, 복희가 우렁찬 목소리로 말하는 게 들렸다.

[네 이름은 무엇이냐?]

“백웅입니다….”

[인간 백웅이여, 듣거라.]

이윽고 복희가 우주 공간에 어마어마한 육신을 드러냈다. 그 모습은 과거 비늘 한 장이 대륙의 크기에 필적했던, 바로 그 복희의 모습이었다. 묵룡(墨龍) 복희가 눈을 번득이는 게 보였다.

[이제부터 너를 내 제자로 받아들이겠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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